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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10월의 마지막이자 토요일이다,
아홉시 반에 집을 나와 김밥두줄, 사보루빵 하나, 생수 한병을 사서 팔공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약 2주전 예고도 없이 쳐들어온 불청객이 테니스장으로 향하는 발목을 붙잡고 놓지를 않아 할수없이
높은곳으로 방향을 틀은 것이다.
팔공산 순환도로에 들어서니 레스토랑, 카페, 식당, 모텔등의 간판이 현란하게 눈을 자극한다.
레스토랑 등은 있어야 할 위치를 찾은듯한데 모텔은 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지 그 까닭을 알수가 없다.
혹시 혼외정사의 불륜스님이 거주하는곳은 아닐까? 일단 그 궁금증은 접어두고
수태골을 향하여 얼마쯤 달리는데 단풍나무 일색인 가로수가 나의 산행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이
고운 잎으로 단장한채 가지를 흔든다.
홍단풍, 청단풍이 골고루 섞여서 색의 조화를 이룬 듯하다.
아마 홍단풍 일색이거나, 청단풍 일색이라면 너무 단조롭지 않을까 싶다.
산행의 초입에는 40대 초반의 남자 네명이 계곡에 둘러앉아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찌푸러지는 눈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큰소리로 웃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아 벌써 술에 취한 듯 하다.
그렇게 많은 등산객들중 대부분이 짝을 이루거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가끔씩 추월당하는 등산객들이 혼자인 나를 처량하다는 듯이 동정의 눈초리로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 아마 나만의 자격지심 일런지도 모른다.
서서히 가속도가 붙어면서 나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아마 내 마음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추월본능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 10년전 안동에 근무할때의 일이다.
토요일 오후, 옆자석에 직장 상사분을 모시고 대구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지금은 2차선으로 확장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중앙고속도로는 일차선이었다.
엑세리다를 힘껏 밟고 앞서가는 3대의 승용차를 추월하는데 갑자기
맞은편에서 차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급한마음에 헨들어 꺽었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어버린 자동차는 갈지자로 춤을
추다가 맞은편 가대를 들이받고 멈추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살짝 비켜갔기 때문이 참혹한 사고는 면할수
있었다. 알지 못하는 구원의 손길이 아슬아슬한 죽음의 문턱에서 우리를 구했는지,
아니면 저승사자가 가까이 왔다가 때가 아님을 알고 발길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고 이후 추월본능을 충분히 잠재웠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추월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옆에서 나에게 추월당하고 있는 두분은 아마도 부부일 것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 정답고 다정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아내와 남편을 부부라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내가 없다. 아마 처음부터 아내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편을 내조하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상대를 아내라고 정의 한다면 그렇다는 애기다.
나에게는 아내는 없고 마누라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식을 사랑하고, 훌륭하게 자라도록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존재가 어머니라면
내 자식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계모도 어머니라면 달리 할말은 없다.
한번쯤 자식들에게 어머니가 존재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니 절대로 그러한 질문을 던져서는 아니된다. 아빠로서 자식들에게 지들 엄마를 비난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런지도 모른다.
타는듯한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 되었는데도 길따라 이어진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바다까지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일부는 바다까지 이르지 못하고 공업용수, 식수 등으로 생명을 마감할 것이다.
가까이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점차 산길이 가팔라진다.
추월당하는 등산객들의 숨이 거칠어지고 호흡이 빨라진다.
그런데 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잠잘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숨소리가 고르고 안정되게 들렸을 것이다.
산골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나뭇짐을 지고 산길을 다녔고, 주말이면 온종일
테니스장을 누비면서 몸을 단련시켰으니 그럴만도 하다.
일반인들의 정상적인 심장박동수는 65에서 81로 나타난다고 한다.
지난번 종합검진 결과 나의 심장박동수는 55로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낮은 수치는 마라톤 선수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수치로서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많이한 결과로서 극히 좋은 몸상태라는 것이 의사
선생의 소견이다.
쉬지 않고 걷다보니 벌써 8부 능선이다. 이제야 쓰고 있는 안경알에 땀방울이
떨어지고, 어제 저녂에 마신 알콜이 서서히 땀구멍을 통해 밖으로 비집고 나온다.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봐도 가을단풍은 보이지 않는다.
말라 비틀어진 나뭇닢만 바닥에 뒹굴고 있고, 일부는 가벼운 흔들림에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메달려 있다.
아마도 만추의 찬바람이 단풍을 산의 하단부로 밀어 버렸을 것이다.
잠시후 서쪽으로 가면 서봉, 동쪽으로 가면 동봉이라고 표지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나의 발걸음은 갈림길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쪽을 향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궁금했는지, 아니면 동쪽으로 간 달마의 안부가
궁금했는지 발걸음이 말을 하지 않으니 전혀 알수가 없다.
마지막 급계단을 오르니 해발 1168미터의 동봉 정상이다.
또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벌써 세 번째다.
불청객 때문에 당분간은 테니스를 할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심사가 얄밉다.
주말이면 항상 테니스장을 향하던 내마음의 안테나는 불청객의 침입과 더불어 날개를 접었고,
테니스장에 고정되어 있던 신경의 주파수는 방향을 잃어버린채 산위에서 이리 저리 방황하고
있는데도 휴대폰은 변함이 없다.
왔던길로 되돌아 갈까, 능선따라 쭉 갓바위까지 갈까, 그것도 아니면 중간지점에서
방향을 틀어 동화사로 내려가버릴까?
소보루빵 한조각 입에 넣고, 생수로 목을 추기고 나니 서시히 갈등히 생긴다.
굳이 방향을 정하지 않고 발길 가는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하고 보니 선택의 자유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갈등히 사그러진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온 세상이 발아래 엎드려 있다.
출구를 알수 없는 미로처럼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이 높은곳에서 내려다 보면
술술 풀릴줄 알았는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원한 공기를 뚫고 바위위에 고요히 내려앉은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얼마 남지 않은 나뭇닢이 가을바람에 흔들릴때 마다 그늘속에서 햇살이 벌래처럼 꼼지락 거린다.
지난날의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한줌의 흙으로 썩어 없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산마루에 뒹구는 낙옆들 속에 묻어 두고 싶다.
몇해전 바로 이곳에서 한 마리의 들고양이를 본적이 있다.
죽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정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고독을 씹어삼키며 수명을 다했거나
냉정한 먹이사슬 속에서 목숨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혹독한 추위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또 배고픔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아마 더러운 세상이 보기싫어 세속을 떠나는 심정으로 산꼭대기를 선택 했는지도 모른다.
정상을 출발하여 호젓한 능선길을 얼마쯤 걸아가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부부로 보이는
한쌍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누라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들을 또다시 되살려 준채 지나가 버린다.
세상에 죽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내 마누라가 책을 보는 일일 것이다.
결혼한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까지 한권의 책도, 아니 한페이지도 읽는 것을 본적이 없다.
내기억이 틀림이 없다면 말이다.
가끔씩 책좀 읽어라고, 그래서 마음의 곡간에 양식좀 쌓아 가라고 그렇게 권했는데도 우이독경이다.
다시 말하면 암소가 음메 하고 약간의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하고많은 사람중에 나같이 정없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받기는커녕 미움만 받고 있으니
어떨땐 마누라가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성인이 아닌 이상 단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부부관계를 맺어 서로 위하고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단점까지도
사랑할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는 않는다.
마누라를 자랑하는 사람을 두고 팔불출이라 했지만 마누라를 비방하는 사람은
팔불출 보다 더 못한 인간이 아닐까 싶다.
팔불출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어도 좋으니 나도 마누라에게 자랑거리가 있어
주위사람들에게 자랑좀 해봤으면 좋겠다.
마치 벌레처럼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꿈틀거리는 가운데 막 신령재를 지나고 있다.
고려시대의 개국공신인 신숭겸등 8인의 장수들이 무시무시한 칼을 들고 사방에서 튀어 나올 것 같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벌거벗은 고산목이 가는길을 가로막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하늘로 뻗쳐올린 가지에는 푸른잎이 무성했을 것이다.
꿋꿋이 버티고 서있는 저 고산목처럼 내 마음속에 덕지 덕지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잡념들을 훌훌 날려버릴수는 없을까?
잡다한 생각들을 접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인봉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할겸 해서 그늘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땀을 식히고 있는데 저 멀리서
까마귀가 울어댄다. 마치 마누라 자랑할일은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암시를 주는 것같다.
지난날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반장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마누라와 자식이 물에 빠졌고 그중 한사람 밖에 건질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식을 포기하고
마누라를 건지겠다는 것이다.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만 똑같은 마누라는 다시 구할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할수 있는지 나로서는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에 하나이다.
그 반장이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았기를 바랄뿐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해마다 직원과 그 배우자에게 종합검진을 받도록 배려해준다.
하지만 나에겐 아내가 없으므로 지난주 나 혼자 대구 동산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내 스스로 45만원 상당의 직원 복지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공기를 가르면서 귓전을 파고드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갓바위가 가까이 있음을 알린다.
걸음을 재촉하여 갓바위에 도착하니 수능입시 100일 기도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어니 나도 몇가지 소원을 빌어야 겠다.
삼가 부처님께 비옵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저의 마누라가 마누라에서 아내의 위치로, 그리고 계모에서 어머니의 위치로 돌아올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둘째 주위 사람들에세 마누라를 자랑할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셋째 불쌍한 마누라가 아내가 되어 무정하고 무심한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을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저의 머리속에 벌레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증오, 집착, 욕심을
미련없이 버릴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한가지만 덧붙일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다면 마지막 소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4년후 지구 종말이 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살만한 세상이니까요.
진짜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팔꿈치에 쳐들어와 저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불청객을 물리쳐 주십시오.
그러면 마누라 대신 아내를 죽이는 일은 절대로 없을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저의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죽었던 아내를 소생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누라 목숨을 걸고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죄송합니다. 관세음 보살로 수정하겠습니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마친후 갓바위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수험생 학부모들의 기도
행렬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병 모가지 현상처럼 발걸음이 더딘 가운데 간신히 갓바위 주차장에 도착하니 신나는 밴드소리가
들려온다. 10.29일부터 11월 2일까지 갓바위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각설이 차림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우연찮게도 천년을 빌려준다면 이란 제목의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만약에 나에게 천년을 빌려 준다면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 쓸수 있을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알수 있는 것은 마누라의 목숨을 걸고 장담하는데
절대 마누라는 아니라는 점이다.
좀더 확실한 것은 그 천년을 마누라를 위해 쓰는 조건으로 빌려준다면 그 즉시 반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벌써 하루해가 서쪽 산마루에 걸린다.
아직까지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알수가 없다.
굳이 알고싶지도 않고 알아야 할 이유 또한 없다.
클래식을 듣지 않아도, 그리고 모나리자나 최후의 심판을 볼줄 몰라도 살아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알지 못해도 살아
가는데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알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가 지나면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른다는
것이고, 인간의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갓바위 주차장에서 나의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수태골까지는 상당한 거리인데
어떻게 갈것인가 하는 난제가 가끔씩 내인생을 비틀거리게 하는 내인생의
골치덩어리처럼 하루의 마지막 일정을 가로막는다.
택시요금 12,000원으로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므로서 고단한 하루 일정이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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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년 10월달, 테니스를 무리하게 하다가 팔꿈치에 엘보가 와서 혼자 팔공산에 다녀오고나서 산행 후기로 기록해 놓았던 글을 가져와서 실었습니다, 원래 농담이나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진지함이 떨어지니 이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내가 쓴 글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