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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체질 만들기
본문 / 에베소서 6장 19-20절
일시 / 2015년 10월 25일 주일 예배
Jtbc 방송의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진짜 가수 한 명과 그 가수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즉 모창을 하는 아마추어 출연진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진짜 가수를 가려내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아마추어 출연진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진짜 가수도 듣고서 놀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리 모창을 잘 할까요? 제가 그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보니까 출연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더라구요.
첫째, 그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최근 버즈의 민경훈 노래를 불렀던 27살의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때 청소년 쉼터(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가는 곳입니다)에서 머물던 중 비망록이라는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 라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합니다. 어떤 출연진은 퍼니락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궁금해서 가사를 찾아보니 이별 노래인데 일반 이별 노래처럼 눈물 질질 짜고 애처로움을 자아내는 가사가 아니라 쿨 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그냥 넘겨버리라는 가사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아~ 시련 당해서 무지 상처 받고 있었는데, 이런 가사에 은혜를 받았구나.”
둘째, 그 노래가 좋기 때문에 수년 동안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러다 보니 원 가수와 비슷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그 가수의 체질로 바뀌는 것입니다. 한 대학생은 군대에서 민경훈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을 잤고, 한 공무원 시험 준비자는 값싼 코인 노래방에 가서 민경훈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래서 이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출연하게 되는구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래,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에는 그것을 하게 된 계기가 있고 그것을 좋아하면 수년 동안 계속하면서 거기에 맞는 체질로 변해가겠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제 주일학교 해피데이가 있었는데 몇 명의 친구들이 초대되어 함께 하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여러 모습으로 섬겨준 선생님들과 도와준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우리 장년 성도들이 12월 24일에 있을 해피데이와 목장초대를 위해서 선포식을 갖는 날입니다. 이 해피데이와 해피데이 선포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전도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중요한 전도가, 행사가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의 자연스런 체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사는 행사가 있을 때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제한적이 됩니다. 그러나 체질이 되면 행사 기간과 관계없이 나의 관심과 목표가 되어서 수시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행사로 하는 전도와 체질에서 나온 전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험 기간에만 반짝 공부하는 학생과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학생의 차이와 같을 것이고, 건강을 위해서 잠간 운동하는 사람과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의 차이와 같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해피데이를 준비하면서 우리 안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연스런 체질,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것이 자연스런 체질로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체질이 자연스럽게 전도하는 체질이 되고, 우리 교회가 자연스럽게 전도하는 체질이 될까요?
첫째, 전도가 엄연한 나의 사명이며 책임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의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보면 비용을 계산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의무가 있는데 첫 번째는 세상을 섬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도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존 스토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전도한다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하셨다. 가정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또는 일터에서 견실하고 정직하며 겸손하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등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엄연한 책임이다.”
이방의 선교를 담당한 바울은 고전9:16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바울은 순회 전도를 하면서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불모지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양육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셀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런 힘든 시간을 거쳤기에 자랑할 만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요? 어쩔 수 없이 복음을 전했는데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화를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했는데, 그것이 어찌 자랑이 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중에 “그냥 나는 적당히 예수 믿고,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리고 사람들 만나고 생활 속에서 힘들 때 기도하면서 살거야.”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전도와 무관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전도는 책임이요 의무요 사명이요 힘써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우리 안에서 분명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를 할 때 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9,10)
당시 번화한 항구 도시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고린도라는 도시를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무엇을 보여줍니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보여줍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돈과 쾌락을 사랑하고 아주 세속화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 고린도에서 이전의 전도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로 1년 6개월 동안 장기 체류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양육을 하게 됩니다.
비슷한 구절이 구약의 선교책이라 볼 수 있는 요나서에 나옵니다. 요나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곳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였는데, 당시 앗수르는 피정복지에 대하여 아주 잔인한 정책을 펼쳤던 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속한 이스라엘은 그 앗수르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제국의 수도였으니 그 나라에 가서 “회개하고 멸망을 피하시오”라고 외치는 요나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고 싫었겠습니까?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니느웨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4:11)
이방인을 향한, 심판 받아 마땅한 잔인한 제국의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끼는 마음,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전도를 할 때 이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주님께 인도하려고 하는 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며, 사랑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을 알고 느껴야 합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주님께 나오지 않을 때 주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심장이 찢어지듯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우리가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기에 내가 사랑하는 그 주님을 위해서라도 전도하는 것입니다.
딱 일 주일 전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셋째 아이를 키우느라 밤마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에는 불이 켜져 있으면 잠을 잘 못 잤는데, 요즘은 아기 울음 소리만 없으면 불을 두 개 켜 놓아도 잠을 잘 자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다 깨다를 수시로 반복합니다. 사실 그러다 보니 꿈 꿀 여유도 없습니다. 근데 생각하지도 못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전에 가르쳤던 청년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그 청년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그 청년은 믿음에서 떠난 상태였고, 그 청년이 믿음에서 떠난 시점을 알았기에 저는 꿈속에서 물었습니다. “근데 왜 그 때 그렇게 했니?” 그러자 그 청년은 그 때 말없이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꿈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청년으로 인해서 가슴 아팠던 시간들과 마음들이 다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펑펑 울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기에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먹먹하다’라는 단어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울다가 꿈에서 깼지만 저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꿈을 깬 후에도 신음하면서 울었습니다. 아픈 마음을 어떻게 할 수 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적인 마음은 추슬러졌지만 그때 다시 한 번 하나님 아버지의 영혼에 대한 마음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주님을 믿다가 중도에 그만 둔 사람들, 주님을 대적하며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마음은 한없는 긍휼이며, 아픈 마음이며, 구원으로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갖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주님을 찾아야 겠습니다.
셋째, 전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의 기도 제목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도제목에는 그 사람의 관심사와 체질, 인생의 목적 등이 어느 정도 그러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에게 기도제목은 인생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기도제목이 그 사람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를 위한 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 전도에 관심을 갖게 되며 전도에 도전하게 되고 그러면서 전도의 열매도 맺고 전도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전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에베소 성도들의 기도는 분명 바울의 사역에 힘을 보탭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의 전도를 위한 기도는 그들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20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내가 옥중에서도 전해야 될 말씀을 담대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입니다.
한 번 이 기도를 해 보세요. “하나님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도 전해야 될 말씀을 담대하게 전파하게 해 주세요.” 어떻습니까? 마음이 찡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만 하고 전도는 안할까요?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전도를 위한 기도지만 자신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 기도를 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전도해야 겠다 생각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전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이런데, 만일 자신이 직접하는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영혼에 대한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전도와 선교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요? 저는 전도를 위한 기도야말로 성도들로 하여금 전도의 DNA, 전도의 체질을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있고, 전도대상자가 있어도 전도에 대한 기도가 없으면 전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전도의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에 대한 기도는 해피데이는 물론이고 해피데이과 상관없이 늘 해야 합니다.
안산의 동산교회를 담임하는 김인중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분의 책을 조금 인용하겠습니다.
<매일같이 큰 형님 김희중으로 시작해서 내가 전도해야 할 영혼의 이름을 부르고 마치는 식의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렇게 늘어난 이름이 3천5백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기도 일지를 보고 부르던 이름이 반복 지속되자 기억에 자리를 잡아 보지 않고도 부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3천5백명을 넘어서자 기억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점 전체를 부르는 담력을 주신 것이다. 어떤 곳을 위하여 기도할까 생각하다가 관공서, 주요 건물,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연립주택 등을 선정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내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소서. 안산 시청, 등기소, 소방서, 파출소, 해양연구소, 고잔 1단지, 2단지, 3단지, 4단지, 성포 1단지, 2단지, 3단지, 예술인, 선경, 라성 연립, 광운 연립, 삼성 연립에 전도의 문을 열어주소서!”
1988년 안산이 도시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번화가를 중심으로 유흥업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 “공단의 희망없는 사람들을 살리려고 제가 왔는데, 술집 때문에 영혼이 병들어 갑니다. 술집들 다 문 닫게 하시고 그 사장들도 다 예수 믿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당시 민속촌이라는 유명한 요정의 여주인 K씨에게 사영리를 전해서 그 사람이 예수 믿고 교회 나오게 되었고, 그녀의 신랑도 나오게 되었는데 그 신랑이 고백하기를 자기가 전에 교회 청년회장까지 했던 사람인데 술집을 하는 것에 대해 늘 부담이 있었는데 이참에 술집을 정리하고 함께 교회 다니자고 주일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안산 최대 나이트클럽의 사장이며 폭력조직의 보스 였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안산과 시흥에 8개나 되는 스탠드바를 운영하던 사람이 모든 업소를 정리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어보면 거점을 두고 기도했던 곳에서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011년도 당시 안산시청 직원 67명이 그 교회에 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에 앞서, 그리고 전도하면서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한 존스토트 목사님의 책을 조금 더 인용하겠습니다.
<전도의 일은 기도를 통해 시작된다. 한두 명의 친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대개의 경우, 성별이 같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택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회개를 위해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기도를 하라. 그러면서 이 일을 위해 그들과 사귀고, 힘이 들더라도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라.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라. 그렇게 하면 머지않아 복음을 증거하는 예배나 모임에 데리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또는 신앙 서적을 빌려 줄 기회나, 예수 그리그리스도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그를 만났는지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이 전하는 것과 다를 경우에는 제아무리 멋진 증거를 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반면에 그리스도가 변화시키시는 것이 분명한 삶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영향력이 있다.>
우리는 한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무수히 많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는 기도가 아무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면 짧은 기도라 하더라도 반복해서 기도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어떤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담대하게 전도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기도부탁했던 19,20절 말씀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것 아닙니까?
말씀을 정리하면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해피데이에 초대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가족과 친척을 비롯해서 직장 동료, 친구, 이웃 등 믿지 않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번 그 목록을 작성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그 사람들의 이름을 올려보면 어떨까요?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내가 다니는 직장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하면 어떨까요?
제의 전도대상자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ㆍ가족(11명)
둘째형 조경연, 넷째 누나 조월연, (조카들)조성민, 조햇볕, 이만근, 정윤미, 정윤경, 이수철, 이이슬 / (처가)박남선, 이세종
ㆍ이웃집(2 가구)
201호, 101호
ㆍ수영장(4명)
(강사)홍성배, 권혁주, (회원)최종성, 유진
ㆍ교회 주변(2명)
가락마트 청년, 달구나 사장님
ㆍ학생들(23명)
이동훈, 김동규, 최성욱, 장경빈, 장현빈, 김학희 / 홍승표, 소재홍, 정형창, 최형준, 최이레, 이상민, 이승운, 정린, 송무진, 안제욱, 정다운, 윤결, 이창훈, 임선아, 정영재 / 진시우 / 혜린 /
ㆍ학창 시절 친구(4명, 최근에 만난 사람들, 연락하는 사람들)
김연경, 윤덕식, 송해석, 조성근
ㆍ지인들(1명)
정형근
ㆍ컴백홈해야 하는 사람들(4명)
김정현, 박우병, 정희수, 김지연
대략 55명 되었습니다. 김인중 목사님의 3천5백명 앞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러면서 제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 나의 기도와 전도 습관 중에서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전도하려는 사람이 가능성이 없거나 내가 주일에 교회에 데려올 가능성이 없어지면 그 때부터 기도가 점차 약해지면서 결국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가 없는 결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나의 사명과 책임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믿음의 기도. 그런데 이제 이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을 믿고 꾸준히 기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닮아서, 바울을 교훈으로 삼아서, 그리고 주변의 전도하는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이 전도에 다시 한 번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