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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재와 미래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와의 인터뷰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와의 인터뷰
PRESENTE E FUTURO DELLA COREA
Intervista a mons. Hyginus Kim Hee-Joong*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예수회)**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전주교구, 광주가톨릭대학교) 옮김
9월 초에 태평양을 사이에 둔 북한과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점차 증가시키고 있을 때, 아시아와 유럽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상적인 다리가 놓여졌다. 한국 천주교회가 서울에서 준비한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이란 제목의 전시회가 성 베드로 광장 전면에 새로 단장한 웅대한 브라치오 디 카를로 마뇨(Braccio di Carlo Magno) 홀에서 시작되었다.1)
전시회가 열리는 그 날, 프란치스코 교종은 여러 해를 기다렸던 평화 협정을 축하하기 위하여 로마에서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로 여행을 떠났다. 한국과 콜롬비아 사이에 직접 연관되는 것은 적지만, 전쟁 위협과 평화에 대한 갈구 그리고 신앙 역사의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둘의 발자취가 의미심장하게 엮여 있다.
183점의 고귀한 전시물은 어떻게 몇 세기 동안에 복음에 대한 지식이 한반도에 퍼져 왔는지 증언하고 있다. 이 전시회를 위해 한국 남서부에 위치한 광주의 대주교이자 한국주교회의 의장이신 김희중 히지노 몬시뇰이 로마에 왔다. 1947년 출생인 대주교는 로마를 잘 알고 있다. 로마에 소재한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종교간 대화일치 교황청 위원회와 그리스도교 일치증진을 위한 교황청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대주교는 한국에서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의장을 맡았었다. 남한의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며칠간 북한을 방문하였다. 이 인터뷰에서 대주교에게 그의 조국 한국과 한국이 살아온 신앙 역사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한국과 극동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긴장에 대해서도 질문하였다.
대주교님, 한국 천주교회는 젊은 교회이고,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아니라 그 땅의 평신도들에 의해서 시작된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사에서 유일한 경우입니다. 이 역사는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이 특별한 역사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외국에 의해 복음화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몇몇 평신도들이 스스로 복음의 길을 찾아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셨던 것은 참으로 커다란 은총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 전시회는 바로 지나간 역사의 생생한 증언이며, 동시에 전통 신앙의 유산을 현재에 투영하여 이루고자 하는 재도약의 발판입니다. 즉, 이 전시회는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여전히 능동적이며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초기 천주교 공동체 정신을 다시 확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한국 교회 사목 활동은 생기가 넘치고 역동적이며, 평신도들은 사제들의 사목 활동, 자원 봉사자 활동과 평신도 단체 활동에 아주 열심히 참여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함께 일하며 열매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매년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늘어나고, 사제와 수도자 성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생명력이 어떻게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되고 서구 형태의 소비주의가 뚜렷한 현재 한국 사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약 15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매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늘어나고, 사제와 수도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제와 수도자 성소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빛은 어둠과 공존합니다. 세례 받은 이들의 수가 늘어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종교 활동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 형태의 소비주의 경향은 사제와 수도자 성소에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고 성소 감소에 원인이 됩니다.
대주교님은 어떠한 것이 한국 천주교회가 피해야 할 위험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도 사제 생활의 ‘관료화’입니다. 사제들이 관리나 행정가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파견하신 목자들임을 더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사제 생활의 본질은 원칙적으로 ‘직무’가 아니라 ‘하느님 사람’이라는 신원이 지닌 영적 가치입니다. 그리고 사제의 사명은 기도와 말씀 선포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만함에 다다를 수도 있는 승리주의의 위험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비신자들까지도 사제들과 천주교를 대단히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평신도들을 더욱 겸손하고 더 깊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한국 교회의 세속화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신 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는 길을 찾으면서, 교회의 감각(sensus Ecclesiae), 복음의 가르침과 교회의 교도권에 따라 때때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한국에는 커다란 유교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 유교는 어느 방식으로 천주교회의 삶과 종교적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사회-정치적인 측면, 윤리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으로 구분해서 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회-정치적인 측면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조선왕조(1392-1910)의 권력과 사회-정치 제도는 유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왕에 대한 충성과 복종이 중심인 유교의 가르침을 어떤 개인이나 사회집단이 거부했다면, 그것은 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 내지 사회 질서의 전복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당대의 사회-정치 체제 내에서 수용될 수 없었고, 국가와 사회질서의 반역자들로 간주되어 박해받았습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기로 결정한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까? 유교와 그리스도교 간에 긴장이 있습니까?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차원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유교의 많은 요소는 그리스도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는 효도입니다. 그리스도 윤리 계명을 유교의 도덕적 가치로 대체하지는 않았으나, 신앙에 그 가치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인들은 복음에 비추어 유교의 중요한 윤리적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였고 실천했습니다.
그렇다면 유교는 종교입니까? 초월자와의 관계가 중시되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는 유교를 종교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정확한 지적입니다. 유교에서 왕에 대한 충성, 자녀의 효성과 조상 제례의식은 “종교적인” 형태의 중요한 의무들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초기 천주교 공동체는 조상 제례가 효성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제례의식은 미신 숭배라고 판단하고 거부했습니다. 이 문제가 약 1세기 동안 천주교인들을 박해하는 주요한 원인들 중에 하나였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오늘날 천주교회는 조상 제례의식을 죽은 이들을 위한 종교 신심과 기도의 표현으로 해석해서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인들은 유교의 긍정적인 가치를 윤리적인 배경에서 보완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유교에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내용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역사는 중국과 일본 ‘제국’과 경계를 이루면서 받게 된 평화로운 문화적 영향과 더불어 참혹한 폭력의 영향에 대해 말합니다. 또한, 한국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냉전이 초래한 긴장을 감내했습니다. 한국은 20세기 중반에 분단된 지정학적 영토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엇보다 한국은 유교와 무속, 나아가 불교와 도교처럼 서로 구별되는 아주 오래된 전통과 다양한 형태의 문화들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런 영성과 문화들 사이의 긴장과 다원성이 어떻게 한국인들, 특히 천주교인들의 감수성을 형성하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한국은 이른바 ‘강대국’인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냉전과 같은 긴장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도록 외세로부터 강요받았습니다. 우리 영토가 20세기 중반의 지정학적 긴장 상태에 지금까지도 머물고 있는 주요 원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이 두 강대국 간의 갈등입니다. 질문의 둘째 측면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서로 다르고 다양한 형태의 문화 집단으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을 형성했습니다. 비록 시대에 따라 세 국가 또는 다섯 국가로 정치적으로 분할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기원후 4세기부터 고유한 단일성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습니다. 한국은 매우 오래되고 서로 다른 전통들을 간직한 나라로 유교와 무속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가 공존해왔습니다. 한국 종교심성의 기본 토대는 행운과 행복을 얻고 역경과 불행을 피하고자 신에게 비는 무속적 경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삶의 역경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와 근래 일부 개신교 공동체들은 이러한 무속적 종교심성을 이용해서 일반 대중들 사이에 자신의 종교를 널리 퍼뜨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바로 이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교,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종교 전통들이 평온하게 공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한국에는 60여개가 넘는 다양한 종교들과 종파들이 있기 때문에 종교 박물관이라고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심각한 대립 없이 우리 모두는 함께 평화롭게 지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다른 종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이웃종교”라고 말합니다. 이웃종교들의 신앙이나 교의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보편적인 도덕 가치를 무시하지 않는 한 그들의 긍정적인 의미를 인정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에서 “차이”는 바로 “실수나 오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색상의 차이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은 다양한 색상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예술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악기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악기들이 지닌 서로 다른 음질, 음조와 음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화를 이룰 때 하나의 교향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오직 서로 다른 형태, 색깔과 크기의 꽃들이 많이 있을 때에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습니다. 3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여러 종교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삶이라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갑니다.” 우리 모두, 한국 7대 종교 지도자 대표는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면서 사회와 국가의 문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함께 협력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의 감수성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가톨릭 신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이웃종교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특히, 윤리 부문에서 문화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를 구별하면서 이웃종교들의 긍정적인 가치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매년 사제수품을 준비하는 가톨릭 부제들은 이웃종교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7대 종교들의 중앙본부들을 방문합니다. 이는 부제들의 이웃 종교들에 대한 이해를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 및 다른 아시아 국가의 주교들과 폭 넓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이는 한국 사목방문의 근본적인 중심 열쇠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계획과 한국 천주교 공동체가 도전으로 마주해야 할 승리주의와 경제적 풍요 그리고 신자와 사목자의 거리감 이라는 세 가지 위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교황님은 해미에서 근본적인 사목 자세로서 ‘공감’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황님은 승리주의의 위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교회 공동체가 이 위험을 심각한 도전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옳은 말씀입니다. 실제로 천주교인들이 조금 교만해졌습니다. 어떤 심각한 사회적 또는 국가적 문제가 발생할 때, 가톨릭 신자 여부를 떠나 대다수 한국인들이 한국 천주교의 소신 표명을 기다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숫자상으로 가톨릭 공동체는 작은 집단이지만, 이웃종교들보다 더 큰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천주교인들이 더욱 겸손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교황님은 경제적 풍요에 안주하는 위험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교회가 물질주의에 오염되는 위험에 처한다면, 경제적 풍요는 정말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경제적 풍요를 지나치게 찾는 사람은 쉽사리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자리가 더 이상 없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자주 언급하시는 이유입니다. 가난은 우리에게 주님을 따르고 찾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선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물질적인 풍요는 한국 천주교회에 매우 위험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형제애와 사랑의 정신으로 더 가난한 교회들과 함께 걸으면서, 강력하고 구체적인 대대적인 쇄신을 이루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와 사목자들 간의 거리감은 교황님이 경계하시는 또 다른 위험입니다.
신자와 사목자들 사이의 거리감은 한국의 실제적인 문제이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일반적으로 본당들에서 직접 사목하는 사제들과 신자들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반면에 본당에서 봉사하지 않는 사제들에게 이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이런 관계 문제 외에도, 몇몇 사제들이 사목 활동의 관료화 경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직자 피정과 신학교 양성에서, 근본적인 사목 자세인 겸손의 정신으로 신자들을 존중하고 돌보라고 자주 권고합니다.
교황님의 말씀이 교회 의식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주었습니까?
저는 종종 교황님의 말씀을 신자들과 성직자 그리고 수도자들의 생활을 쇄신하는 주요 기준으로 인용합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후, 한국 주교들은 다른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 통장”이라고 일컫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기금을 모아서 다른 나라의 가난한 교회들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금과 더불어 한국 주교회의는 주교들의 개인 수입의 일부를 모아서 매년 가장 가난한 교회들과 구체적으로 연대합니다.2)
한국 초기 천주교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평신도들은 중국 여행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사제도 중국인 주문모 신부였습니다. 북경 주교에 의해 파견된 그분은 서울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제들과 평신도들은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중국 천주교회와도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네. 모든 관계가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애국교회와 더불어 지하교회와도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종종 애국교회는 자신의 대신학교 또는 수녀회의 양성, 철학과 신학 그리고 교부학 교육, 또는 피정과 영신수련 지도에 필요한 도움을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런 요청이 정말로 대신학교 양성 자체를 위한 것인지, 단지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성청과 중국 양자 사이에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공통 관심에 기초한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태오 리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선교사가 지금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 대륙의 정부는 서방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역사를 상기하면서 국가 내에서 인종과 사회단체로 인한 분열을 피하려고 합니다. 중국 종교법에 따르면, 외국인 선교사들은 대륙의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활동할 수 없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은 양국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한 상호 이해와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주최국을 번갈아가며 해마다 만나고 있습니다. 일반 원칙으로서 중국인들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상업과 외교 등 모든 관계에서 “신뢰”를 근본 요소로 간주합니다.
중국과 바티칸시국 간의 미래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과 성청의 미래 관계는 서로에게 유익한 교류로 양국 간에 신뢰를 쌓아 가는 데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중국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교황청과 맺는 관계에 매우 주의합니다. 저는 양국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과 좋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세계 평화에 관해 중국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교황님을 초청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3)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삼천년기가 아시아 교회의 시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망에 대해 주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부름 받은 한국 천주교회가 어떤 공헌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습니까?
1966년에 제가 광주대신학교 신학생이었을 때 교수였던 미국 예수회 신부님들은 우리에게 중국어를 배우도록 권하셨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 복음을 증거하고 더 잘 알리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젊은이들과 문화 교류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를 향해 교회의 창을 열고 문을 여는 첫 번째 단계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알리도록 부름 받은 한국 천주교회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헌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에 대해 말할 때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도 지칭합니다. 북한은 현 체제가 도래하기 이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잘 뿌리내고 피어났던 곳입니다. 이북에 복음의 씨앗이 아직까지 있다고 보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까요?
복음의 씨앗이 지금도 존재하지만 매우 제한적입니다. 우리는 북한 당국과 더욱더 역동적인 방식으로 활발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북한 정부는 한국 주교회의와 연계된 국제 카리타스의 협력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도달한 합의에 따라, 평양에서 대축일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몇몇 사제들을 조속히 파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남한과 북한 간의 인도적이고 종교적인 교류와 협력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하면서 북한의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합니다.
대주교님께서는 한국 천주교 대표단 그리고 교회일치 대표단과 함께 평양을 여러 번 방문하셨습니다. 이런 만남이 화해의 결실을 가져왔고, 미래에 다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 두 국가의 화해는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것처럼 한 순간에 실현될 수 없고,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커다란 인내와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종교들은 북한의 권력에 대해 어떤 요구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곳의 지역 통치체제가 종교 단체에 대해서 강력한 억제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종교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서방 세계 내에서 종교가 지닌 사회-정치적 영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서방 국가들의 종교와 사회단체 그리고 정부의 협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6월 북한이 남한의 7대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였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로 주목할 만합니다. 하지만 국제연합(UN)의 북한 제제 강화 결정 후 초청이 연기되어 버렸습니다. 초청이 조속히 다시 이루어기를 희망합니다.
문재인 대한민국 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주교님을 교황 ‘특별대사’로 임명하여 친서를 교황님께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 시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할 때였습니다. 이 특별 사명의 경과와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교황 ‘특별대사’로 파견되었을 때 미국과 북한 간의 대립으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 위협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님을 알현하기 이전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자신의 입장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설명 드리고 기도와 도움을 청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 사명은 국무원장 베드로 파롤린 추기경님의 덕분에 잘 수행되었습니다. 세례명이 ‘티모테오’인 문재인 새 대통령은 교황님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저도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님, 베드로 파롤린 추기경님과 한국 교황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관련된 국제적인 긴장 앞에서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정서는 어떻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한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정서는 그들의 보수적 또는 진보적 정치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의 그러한 행위를 강대국들에 맞서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해석합니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그런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전쟁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시용 미사일 발사는 미국과 동등한 위치가 보장될 때에만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일부는 북한의 핵실험 포기를 그들과의 대화의 조건으로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쩌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북한의 핵실험 포기가 정확하게 바로 그 대화 목적이 되어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까지 북한과 미국 간에, 한국과 북한 간에 여러 대화가 있었지만 확실한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한국인들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금 북한과의 긴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국가들은 지금 이러한 한반도의 긴장을 이용하고 연장시키면서 어마어마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생활의 주의 깊은 관찰자이자 주역이시고, 중요한 대교구의 사목자이자 주교회의 의장이신 대주교님은 ‘두 한국’ 간의 평화로운 화해의 길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바로 이행해야 될 필요가 있는 구체적인 행보는 무엇일까요?
우리 한반도의 평화로운 화해의 길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남한에서든 북한에서든 한국 백성은 같은 말, 문자, 역사, 문화 그리고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핏줄과 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백성의 근본적인 동질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강대국들이 우리의 화해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어 내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건설의 일꾼으로 봉사하며 전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간적 문화적 자원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떤 외부 국가의 개입을 배제한 남한과 북한의 직접 대화를 지지하고 도모하는 것이 더 좋다고 봅니다.
최근 대주교님은 한국 7대종교의 지도자들로 구성된 대표단과 함께 교황님을 알현하셨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에서 여러 종파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공헌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런 배경에서 무엇이 가톨릭 신자들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공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의 성격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동양인들은 직관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고, 서양인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7대 종교 지도자들은 2년마다 약 한 주간 동안 다함께 순례를 하며 각 종교의 여러 성지들을 번갈아가며 방문합니다. 순례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끼리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유익한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 순례 체험은 우리가 더 쉽게 협력하도록 만들어 주고 특별하게 민감한 문제를 참을성 있게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우리 사이에(inter nos) 깃든 평화는 우리 밖의 다른 이들과의 평화에 아주 큰 영향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천주교가 관대하고 자애로운 종교로 봅니다. 그런 만큼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보다 천주교의 입장을 더 받아들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 그리고 한반도 전체에서 평화, 정의와 화합을 실현하기 위해서 한국의 다양한 종파 사이의 협동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이 협동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역할을 다른 종교들이 천주교회에 부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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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iviltà Cattolica 2017 IV 166-177 | 4016 (21 ott/4 nov 2017)**
Antonio Spadaro S.I.1)
전시회는 서울대교구의 한국순교자 현양위원회의 협력으로 준비되었고, 서울대교구와 서울역사박물관이 공동주관 주관하고 서울특별시, 주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바티칸 박물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2)
A. Spadaro, “Il viaggio di papa Francesco nella Repubblica di Corea, Custodia, empatia, consolazione”, in Civ.Catt. 2014 III 403-418 참조.3)
교황청과 중국 교회 그리고 중국 정부 간의 관계에 관하여, J. Guo Jiang, “Il cattolicesimo in Cina nel XXI secolo”, in Civ. Catt. 2017 II 417-424; A. Spadaro, “La Chiesa e il governo cinese. Intervista a p. Joseph Shih”, ivi 2017 IV 52-5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