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어머니 (열왕기상 3:16-28)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은 세상입니다.
한때 ‘순진짜참기름’이란 광고가 있었습니다.
참기름이란 말이 참깨로 짠 기름, 진유(眞油)라는 뜻인데, 거기에 순(純), 진짜라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그만큼 가짜가 많기 때문에 이상한 이름의 참기름이 생긴 것입니다.
부모도 가짜가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지어 죽이는 부모들의 뉴스를 자주 대합니다.
전에는 계모들이 전(前) 부인의 자식들을 학대하는 일들이 많아 계모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습니다.
동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에도 못된 계모가 나옵니다.
신데렐라(Cinderella)도 주인공의 원래 이름이 엘라(Ella)인데, 계모의 학대로 부엌 아궁이 옆에서 지내다 보니 얼굴이나
옷에 재(灰, cinder)가 붙어서 신데렐라(Cinderella)가 되었는데, '재(灰)투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계모들은 자식들을 사랑하고 훌륭한 이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친부모 중에도 자식을 학대하고 죽이는 가짜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지혜의 왕으로 유명한 솔로몬 왕의 일화 가운데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는 재판 이야기가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왕위에 오르자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와 간구를 하였습니다.
최근 여러 교회들이 솔로몬의 일천번제와 같이 간절한 소원과 헌금을 천 일 동안 드리는 행사들을 하는데, 솔로몬의
일천번제와 다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물으시는 하나님께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주셔서 백성들의 재판과 선악간 분별을 잘하게
해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대개의 경우 장수(長壽)나 부귀영화를 구하는데, 솔로몬의 간구를 기뻐하신 하나님이 지혜로운 마음과 함께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면서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2절)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전무(全無)란 말이 좋지, 전무후무(前無後無)란 말을 쓰지 말기를 권합니다.
지금까지 없었던(전무한) 복과 은혜를 받고, 앞으로 갈수록 더 큰 은혜와 복을 받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는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솔로몬 왕의 지혜를 보여 주는 일화가 본문의 진짜 어머니를 찾는 재판과 스바의 여왕이 찾아온 일입니다(열왕기상 10장).
본문은 진짜 어머니를 찾는 솔로몬 왕의 지혜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특히 어머니란 말 때문에 이다ㄴ인 안사ㅇ호ㅇ증이ㄴ회에서 이 본문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 외에도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으로 본문을 검색하면 그들의 주장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이다ㄴ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이나 방송을 통해 얻는 정보도 조심하기 바랍니다.
두 창기가 한 집에 살면서 3일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 여자가 자다가 자기 아들을 깔아 죽게 하고는 산 아기와 바꿔치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여자가 서로 산 아기가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다가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모성애를 이용하여 진짜 어머니가 누군지 찾았습니다.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6절)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주는 한이 있어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가짜 어머니는 내 아이가 아니니,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자세입니다.
어차피 자기 아이는 죽었으니 다른 여자의 아이도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영화 솔로몬의 재판 장면을 동영상으로 봅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byBPWyTm0
지혜의 왕 솔로몬의 명 판결입니다.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It’s true mother!)”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의 차이는 모성애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26절)
자기 아이를 빼앗길 처지에서 왕에게 호소했는데, 왕이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준다고 하니 진짜 어머니의 마음은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진짜 어머니에게는 아이를 죽일 수 없다는 불붙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짜 어머니는 아이를 죽여도 좋다는 것이니, 그런 불붙는 마음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것이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의 차이입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의 수양서인 ‘하가꾸레기끼가끼(葉隱聞書)’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느 가난한 홀아비 무사(武士)가 떡장수 이웃집에 살고 있었는데, 떡집에 가서 놀던 무사의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떡장수는 무사에게 떡값을 내라고 다그쳤고, 무사는 떡장수에게 “내 아들은 굶어죽을지언정 떡을 훔쳐 먹을 짓은 절대로
할 아이가 아니오.” 하였습니다.
떡장수는 “당신 아들이 떡을 훔쳐 먹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그런 소리 하지도 마시오.”라며 떡값을 내놓으라고 계속
몰아붙였습니다.
무사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기 아들을 쓰러뜨리고는 그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아들이 떡을 훔쳐 먹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놀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떡장수를 노려보던 무사는 떡장수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사도 그 자리에 정좌하고 앉아 두 사람을 죽인 칼을 들어 자신의 아랫배를 찔러 할복하였습니다.
일본 무사(사무라이)들의 정신을 강조한 이야기겠지만 실제로는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무라이의 명예와 자기 아들의 결백을 보여 주기 위해 생명을 죽이고 죽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차라리 떡값을 지불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진짜 어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생명입니다.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주는 한이 있어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아들을 빼앗긴다 해도 아들이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상대방 여자에게 아들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진짜 어머니입니다.
가짜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생명보다 자기의 주장과 욕심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의 생명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제 아이가 죽은 마당에 다른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죽었으니 차라리 다른 아이도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내 기분만 만족하면, 내 입장만 서면 아이의 생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짜 어머니입니다.
이런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과 구경하던 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조롱하며 소리쳤습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태복음 27:41-42)
우리 같아도 잠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봐라. 이놈들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왕이 아니냐. 이제 믿겠느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방법으로 자신을 증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조롱을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7)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온갖 조롱과 모욕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불붙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어떤 것도 참으며 감수합니다.
식사하다 보면 아이가 남긴 음식을 부모가 먹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에게 위생관념이나 품위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험한 꼴을 당해도 가족을 생각하여 참습니다.
그들에게 자존심이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향한 마음, 자식을 향한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참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자기의 입장과 유익만 생각한다면 진짜 어머니가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에도 그런 면이 보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1:23-28)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들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을 두고도 투기하고 분쟁거리로 삼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위해서라면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빌립보서 1:12-18).
바울에게 교회를 향한 불붙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항에서 해외여행을 하던 여자가 잠시 화장실에 가면서 값비싼 외투를 곁에 있던 여자에게 맡겼습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옷을 맡은 여자가 외투를 입고서 자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두 여자가 외투를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면서 공항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이 와서 자초지종을 듣고는 외투를 조사한다고 가져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습니다.
경찰이 두 여자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 외투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이 외투의 주인이 누구이든지 외투 속에서 코카인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이 외투 속에서 나온 코카인입니다.”
그러면서 비닐 봉지 두 개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옷을 맡았던 여자가 급히 일어나 나가면서 “이 외투는 저 사람 것이예요. 나는 장난한 것 뿐이예요.” 하였습니다.
경찰이 외투를 주인에게 주면서 잘 해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물었습니다. “코카인은? 그게 왜 외투에 들어 있는지 모르겠네요.”
경찰이 대답하였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외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제가 일부러 넣은 소금입니다.”
가짜 어머니는 아들을 향한 불붙는 마음이 없으니 아이를 둘로 나누자고 합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아이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교회를 향한 불붙는 마음이 없으면 함부로 말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합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온갖 희생과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비판합니다.
교회를 향한 불붙는 마음이 없으면 교회 생각보다 자기의 입장과 명예만 생각합니다.
빌립보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서로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우다 교회에 문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진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자기의 주장을 접고 아들을 포기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어머니입니까?
자녀들에게, 가족들에게 진짜 어머니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데 진짜 어머니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진짜 어머니를 찾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진짜 어머니인가를 아십니다.
아픔과 상처를 품고서도 가정을 사랑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 아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진짜 어머니의 마음으로 섬기는 성도가 누구인지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이를 찾아 주실 것입니다.
진짜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 불붙는 마음으로 가정과 교회를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