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이 안 온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 메뉴를 바꾼다. 일반 Breakfast를 Yak Steak로 바꾼다. 보름 동안 고기 써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불과 200R. 차이다. 잘 먹고 잘 걸어야 한다. 주인 마담이 3490R.가 나왔는데 많이 팔아주어서 인지 3400R.만 받는다. 90R.가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지금까지 깎아준 경우가 전혀 없었다.
07:40에 Jomsom으로 향한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일찍 출발하고 일찍 끝내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추워서 햇볕을 찾았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그늘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늘이 없다. Jharkot을 지나면서 허허벌판 황량한 아름다움이 전개되는 길이다. 가끔
지나치는 지프차에는 트레커들이 타고 있다. Muktinath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그 후부터 걸어서 Thorung La를 넘어갈 모양이다. 남녀 5명이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지나간다. 보기가 좋다. 나도 언젠가는 친구들과 그럴지도 모른다. 비포장 길에 먼지만 가득한
그러나 왠지 정이 가는 이 길에서 친구들과 땀을 흘리며 달려보고 싶다. 그런데 아가씨들 자전거 타는
모습이 조금 불안해 보인다. 어쨌든 젊음을 무기로 멋진 여행들을 하고 있다. 버스 지프차 오토바이 등이 지나가면서 진한 흙먼지를 일으키고 나는 그것을 몽땅 감수해야만 한다. 손바닥만한 그늘 조차 없는 곳을 걸어보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름의 멋이 있다. 온 몸을 이 것 저 것으로 감싸고 묵묵히 걷는다. 도를 닦는 과정도
아니면서 도를 닦는 기분이다. 2시간 그리고 20분만에 걸어서
오르는 5명의 트레커를 만난다. 이미 끝낸 나로서는 그들을
보니 왠지 힘이 솟는 것 같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 자는 누구일까? 나
홀로 걷는다. 그들이 차를 타고 가던 말던 걷는 자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아깝다. 여기까지 시간 내어 돈 들여서 왔다가 오로지 Thorung La만을 느끼고 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삭막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침묵하는 자연미가 기막히게 아름답다.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히말라야의 한 단면이 나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깊고 깊은 감명을 준다. 그 대자연으로부터 무언가 태고의 신비를 전해 듣고 싶다. Kagbeni가
내려다 보이고 이색적이고 특이한 풍광이 보이는 언덕에 앉아 깊은 상념에 젖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언제 또 보고 느껴볼 수 있는 모습일까? 한 일본인이
가이드와 내려가기 바쁘다. ‘니혼진데스까? 곤니찌와?’ 그 일본인은 일본말을 들으니 되게 반가우면서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잠시 물 한 잔 마시며 쉬어가면 좋으련만 어디까지 가는 게 목적이 아니고 순간 순간을 보고 느끼며 즐겨야 하는 것을. 한 동안 쉼을 멈추고 움직이려 하는데 한 네팔리 가이드가 내려 온다. 실례를
무릅쓰고 사진을 부탁했더니 온갖 정성을 다하여 찍어준다. 아마도 그것이 트레커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소문으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것일 게다. 대부분의 차량과 오토바이들은 길고 긴 지그재그 길을
먼지 피우며 올라가고 내려가지만 트레커들은 약간의 급경사를 지름 길로 삼아 내려 간다. 많은 외국인
아마도 유럽인인 것 같다. 무슨 목적에서 인지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중간 중간 촬영을 하며 다닌다. 그 촬영 속에 나까지 포함 시킨다. Kagbeni에서 마을을 경유하는
아랫길을 놓치고 차량들이 다니는 윗길로 접어든다. 넓게 얕게 이어지는 강의 모습이 생소하고 이채롭다. 그 모습 또한 대단한 경관이다. 길가에 트레커들이 탔던 차량이 고장으로
수리 중이고 트레커들은 땡볕아래 마냥 대기 중이다. 모두가 어제 그제 산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들을 지나치지만 걷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Old
Kagbeni에서 180R.짜리 콜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그 사이 한 쌍의 부부가 Muktinath를 향해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주변 휴게소에는 올라가는 자들인지 내려가는 자들인지 모르겠지만 4-5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시다 남은 콜라를 수통에 옮겨 담고
걷기를 계속한다. 갑자기 몸을 날릴듯한 심한 바람이 몰아친다. 그리고
갈림 길이 나타난다. 한 쪽은 높이 올라야 하고, 다른 한
쪽은 강바닥을 따라 가는 길이다. 당연히 낮은 강바닥 길을 택하지만 길이 끊겨 싯누런 강 물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시야 끄트머리에 까만 점이 두 개 움직인다. 자신감을 갖고 한 참을 가다 보니 내 뒤 먼 곳에서도 짐을 실은 당나귀 떼가 오고 있다. 안심하고 강바닥 바로 옆에서 강을 따라 걷는다. 넓고 넓은 강바닥은
자갈투성이로 되어있고 사이 사이 어쩔 수 없이 흘러야만 하는 강물이 겨우 겨우 힘겹게 흐르고 있다. 끝
지점에 이르자 Jomsom이 보인다. 또 휴식을 취하며 태고를
감상하는 중 한 쌍의 젊은 남녀가 힘찬 발걸음으로 지나친다. 오후 2시에 Jomsom에 도착한다. 잠시
Marpha까지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마치기로 한다. 처음에 숙소를 잡지 못해 한참을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가 그럴듯한 호텔로 들어선다. 시설 좋고 분위기 좋은데 아침 저녁 포함하여 25$이란다. 망설임 없이 그냥 나와 다른 곳을 찾아 간다. 방값이 600R.란다. 생각보다
꽤 비싼 편이다. 깎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한다. 언짢은 마음에 다른 곳으로 향한다. 1Bed에 800R.란다. 더 싼 방을 요구하니 2Bed는 600R.란다. 짐을
풀고 점심을 주문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능숙한 한국말로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부부가 한국 수원에서 6년간 일을 해 번 돈으로 지금의 숙소를 차렸다며 대단히 자랑스러워 한다. 마치
한국인을 만난 것처럼 무척이나 반가워 무엇이던 더 팔아주고 싶어 럼주에 맥주까지 주문한다. 아말과 멍걸리라고
하는 부부 사이에 13살 딸은 포카라에서 학교를 다닌단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대화가 통하니 참으로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다. 한국을 위해
6년간 일해준 이들을 위해 좌우지간 무엇이던 팔아줄 것이다. 아주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어제 제대로 말리지 못한 빨래를 옥상에 넌다. 일기를 쓰다 보니 세 번째 볼펜이 끝난다. 아말에게 볼펜을 팔라고 했더니 그냥 준다. 서로가 고마운 일이다. 길가에서 볼 때는 허술해 보여도 방은 아늑하고 훌륭하다. 음식도
짜지 않고 괜찮아 야채스프에 볶음밥을 다 먹고 내일 아침도 같은 것으로 주문한다. 긴 밤을 지새우기
힘들어 하모니카 몇 곡을 부르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