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과 칼국수
전주에 가면 비빔밥이 있고, 마산에 가면 아귀찜이 있다. 춘천에 가면 막국수와 닭갈비가 있고, 대구에 가면 막창이 있다. 이뿐인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의 종류와 수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대표적 향토음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외지인들은 대전의 전통음식이 없다고 말한다. 혹자는 대전역 가락국수를 이야기 하곤 한다. 대전 시민들조차 ‘대전엔 대표적인 향토음식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외지인들이 대전을 찾으면 꼭 먹어보고 싶어 하는 음식이 딱히 없다.
전주비빔밥이나 춘천닭갈비처럼 전국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전에도 독특한 향토음식이 있으니 다름 아닌 칼국수이다. 전국 어디를 가보아도 대전만큼 칼국수 전문식당이 많은 곳이 없다. 전국 어디를 가보아도 대전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칼국수를 조리하는 곳이 없다. 대전처럼 시민들이 칼국수를 좋아하고 즐겨먹는 지역을 보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지는 못하고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대전의 대표적 향토음식은 칼국수이다.
몇 해 전 대전시는 전문가 집단에 의뢰해 대전의 대표적 향토음식을 선정해달라고 주문했고,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삼계탕’을 대전의 대표적 전통음식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다수의 시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삼계탕을 대전의 대표음식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 역시 전문가들이 무슨 근거로 대전의 대표적 향토음식을 삼계탕이라고 발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대외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대내적으로는 칼국수와 더불어 두부두루치기를 대전의 대표음식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실제로 대전 시민들은 참으로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 그런 만큼 칼국수 전문식당이 참으로 많다. 타 지역의 경우, 일반 음식점에서 칼국수를 구색 맞추는 메뉴 정도로 갖춰 놓은 경우가 많은데 대전은 칼국수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참으로 많다. 대흥동에는 칼국수 전문 거리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그 일대가 개발되면서 특화거리는 명성을 잃었다. 대흥동 칼국수 골목이 아니어도 대전 시내를 두루 다니다보면 칼국수 전문 식당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 관공서 주변은 칼국수 식당이 유난히 많다.
대전의 칼국수 식당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특징 중 하나는 곁들여 먹는 음식이 발달돼 있다는 점이다. 곁들이는 음식은 무척 종류가 다양하지만 크게는 돼지고기 수육, 두부두루치기 또는 오징어두루치기, 두부김치 등이 손꼽힌다. 과거에는 두루치기 종류가 대세를 이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대세가 돼지고기 수육으로 옮겨가고 있다. 돼지고기 사태나 목살, 뱃살 등을 삶아서 수육으로 만들어 새우젓을 찍어 쌈장과 함께 고추나 마늘을 넣고 상추나 배추에 싸먹는 것을 대전 시민들은 무척 좋아한다. 소주 한 잔을 곁들이기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몇몇 식당은 주 메뉴인 칼국수보다 수육을 잘 삶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육을 곁들인 칼국수를 대접하면 저렴한 가격이지만 누구 하나 서운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 대전의 접대문화이다.
또 다른 특징은 칼국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는 점이다. 사골국물에 끓인 칼국수가 있는가 하면 조개국물에 끓이는 경우가 있고, 또 멸치국물에 끓이기도 한다. 별도의 육수를 내지 않고 그냥 호박, 감자를 넣고 끓이기도 한다. 손으로 반죽해 쫄깃한 식감을 살린 칼국수가 있는가 하면 기계국수지만 손칼국수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경우도 있다. 일명 얼큰이 칼국수라 하여 고춧가루를 풀어 붉은색 국물을 내는 식당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바지락을 넣고 국물을 내는 집도 있다. 칼국수를 건져내 소면처럼 양념장에 버무려 비빔칼국수를 내놓은 식당도 있다.
이처럼 대전의 칼국수는 종류와 맛이 다양해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가 있다. 대전 시민들은 누군가와 만나 인사를 나눌 때 “언제 같이 칼국수나 함께 한 그릇 합시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 가운데도 공무원들의 칼국수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어느 관공서든 주변에는 칼국수집이 즐비하고 어느 집이라도 점심시간이면 빈 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북새통이다. 그래서 지역 내 유명한 칼국수 식당 상당수가 관공서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전 공무원들은 적어도 1주일에 서너 번 이상은 칼국수를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무원들의 칼국수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다.
80년 간 대전에 위치해 있던 충남도청이 새로운 도청이전신도시를 조성해 2013년 1월 1일을 기해 홍성과 예산 일대로 이전했다. 대전에서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 년을 근무했던 도청 공무원들은 홍성과 예산으로 이전해 온 뒤 칼국수를 제대로 먹지 못해 극심한 금단 현상을 보였다. 자신들도 그토록 칼국수를 몸에서 주기적으로 원할 것이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공무원들은 신도시 근처의 칼국수 식당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전처럼 다양한 맛을 내지도 못했고,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식당을 방문할 때마다 칼국수를 새로운 메뉴로 추가하고, 돼지고기 수육을 준비해보라고 권했다.
일부 식당 주인은 그 말을 허투루 들었지만 일부는 실제로 칼국수 메뉴를 특화시켰고, 전에 없던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내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의 말을 귀담다 듣고 수육을 곁들인 칼국수를 메뉴로 개발한 몇몇 식당들은 자신들도 놀랄 만큼 엄청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새로운 메뉴를 준비했는데 대박이 터졌으니 식당 주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칼국수 대박 소문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칼국수 전문점을 준비하는 식당도 나타나고 있다. 신도시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 1천여 명의 공무원들이 몰고 온 대전의 칼국수 문화가 홍성과 예산 일대에도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칼국수가 진정한 대전의 향토음식이고 대표음식이란 사실을 인지했는지 대전시와 중구는 2013년 대대적인 칼국수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대전의 내로라는 칼국수 식당들이 한데 모여 다채로운 칼국수를 시민들에게 선보였고, 시민들은 지역 내 곳곳에 산재한 유명 칼국수 식당을 한데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무엇보다 칼국수가 대전의 대표음식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무척 즐거워했다. 축제장을 찾은 시민들은 저마다 “이제야 칼국수가 대전의 대표음식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며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전에는 칼국수집이 많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칼국수가 준비되고 곁들일 수 있는 음식도 다채롭게 존재한다. 그러나 춘천 닭갈비골목이나 대구 막창골목처럼 특정 업소가 밀집된 거리가 없다. 특화거리가 조성돼있지 않다는 점은 칼국수가 대전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재료나 조리법이 각양각색이라는 점도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대전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기는 음식, 대전을 가장 대표할 만한 음식은 칼국수라는 사실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대전시민인 나도 칼국수를 사랑한다.
첫댓글 저는 쌍화탕(17가지 한약재로 10시간 고아서 끓인 차)로 수육을 삶고~ 들깨가루에 찹쌀가루로 끓인 들깨칼국수를 대접합니다~~ 현재 제가 하는 일입니다^^
어딘지 궁금합니다
영동에 오실일이 있으시면 마차다리앞 배일훈내과 지하에 ''동의보감'' 이 있습니다~ 기회되시면 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