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2. 4. 17.~19.(금~일) - 음력(3. 17.~19.), 일출 05:48~일몰 18:57
●산행지: 호미지맥 1구간(삼강봉 - 흰날재)
●산행코스: 소호분교-갈림길-삼강봉(845m)-656m봉-내와봉(398.7m)-탑곡상봉(482m)-560m봉-천마산(611m)-557m봉-278m봉-신복안고개-복안봉(404.7m)-복안고개-삼봉(359.2m)-국도, 고속도로 지하도-지방도로삼거리-미호교차로-임도-경부고속국도 미호육교/ 열박재-능선진입계단-225.2m봉-210m봉-중리고개-변전소철조망 끝지점-임도삼거리갈림길-당산고개-644m봉-치술령(765.4m)-721m봉-묵장산(781m)-700.7m봉-서라벌 C.C.-420m봉-사일고개/ 서낭재-327.5m봉-270.6m봉-마석산(531m)-성원봉(420.3m)-밀양박씨표지석-육의당/ 석호정사-제네길네거리-193.6m봉-장구방이 안부-원고개-감산사-317m봉-삼태지맥분기점-동산령-528.6m봉-석굴암주차장-토함산(746m)-485m봉-추령/ 백년찻집-507m봉-494.2m봉-수렛재-550m봉-함월산(584m)-습지갈림길-560m봉-591.4m봉-산사태절개지-481.9m봉(헬기장)-성황재/ 14번국도-390m봉-진전봉(403.5m)-시경계갈림길-암자갈림길-만리성산(428m)-묘봉산(363m)-월미산갈림이정표-삼봉산(291.3m)-사격장철조망임도-세계원재-장승박이마을-통점마을-군용도로-178m봉-석곡묘갈림길-조항산(246m)-200m봉-흰날재-198m봉-백일령-동산공원묘원-금오산(230.4m)-212m봉-윷판재-공개산(214.6m)-봉수대갈림길-눌태전망대-발산봉수대-명월산(189m)-우물재산(180.1m)-123m봉-고금산(122m)갈림길-호미곶태양사슴목장-929지방도로-호미곶
●먹거리: 생수1.5리터, 옥수수호빵2, 양갱3, 단백질바3, 에너지바2, 사탕25, 추파춥스3, 게비스콘2
●준비물: 하계텐트, 동계패딩, 무릎담요, 바람막이, 메트,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반장갑, 휴지, 물티슈,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43
●거리: 약 107.2Km
●소요시간: 56.19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고속20,600, 시외3,700, 사일고개14,000, 원고개능포12,000, 휴게실6,100, 석굴암4,500, 뒤풀이24,000, 고속31,200
●날씨: 7~24, 대체로 좋음, 새벽에 살짝 춥고....
●산행경과:
* 4. 17.(일) :
- 06:47 : 소호초교/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蘇湖里)
- 07:47 : 낙동정맥
- 07:58 : 백운산(白雲山, 901m)/ 면계(상북면 - 두서면)/ 삼리봉(상북면 소호리, 두서면 내와리, 인보리)
- 08:20 : 삼강봉(三江峰, 845m)/ 삼강 분기점(낙동강, 태화강, 형산강)/ 면계(상북면 - 두서면)
- 09:13 : 내와리고개/ 탑곡고개/ 삼거리 임도
- 10:12 : 천마산(天馬山, 613.3m)
- 11:18 : 상동재/ 신복안고개/ 뒷북안고개/ 전읍복안로
- 12:32 : 삼봉(361m)
- 13:14 : 열박재(咽薄嶺, 悅朴嶺)/ 열백재/경부고속도로
- 13:33 : 226.1m봉/ 삼각점봉/ 면계(두서면 - 두동면)
- 14:15~25 : 중리(中里)고개/ 식육점 식당/ 2차선 도로
- 15:10 : 당산(堂山)고개/ 2차선 도로/ 충효정
- 17:24~39 : 치술령(鵄述嶺, 766.7m)/ 지술령(至述嶺)/ 시도계(울산광역시 - 경주시)
- 18:26 : 묵장산(墨匠山, 781.2m)/ 먹장산
- 19:15 : 서라벌C.C.
- 20:05~21:56 : 사일고개/ 서낭재/ 식당(소담뜰), 흥부주유소
- 22:15~05:44 : 철탑봉 비박
* 4. 18.(월) :
- 05:54 : 출발
- 06:55 : 270.6m봉/ 읍면계(외동읍 - 내남면)/ 삼각점봉
- 07:53~08:07 : 마석산(磨石山, 531m)/ 멧돌산/ 삼각점봉
- 09:10~25 : 육의당/ 석호정사
- 10:06 : 산불초소봉(193.6m)/ 삼각점봉
- 11:18~58 : 외동읍 괘릉리 원고개/ 굿모닝 휴게실
- 13:55~14:30 : 456m봉/ 삼태지맥 분기봉/ 읍면계(외동읍 - 문무대왕면)
- 14:12~16 : 경풍루/ 경주풍력발전소
- 15:40~16:00 : 석굴암주차장/ 석굴암입구
- 16:22 : 486m봉/ 삼리동봉(경주시 황용동, 문무대왕면 범곡리 → 장항리)
- 16:28~37 : 토함산(吐含山, 745m)/ 삼면동봉(경주시 문무대왕면, 경주시 마동 → 황용동)
- 17:47~55 : 추령(楸嶺, 310m)/ 가내동재/ 백년찻집
- 19:50 : 494.2m봉/ 묘지봉
- 20:15 : 수렛재/ 네거리 안부
- 21:08 : 함월산(含月山, 584m)
- 22:21 : 591.4m봉/ 시계 삼읍면동봉(문무대왕면 호암리, 경주시 암곡동 →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삼각점봉
- 23:35 : 481.9m봉/ 시경계(경주시 문무대왕면 - 포항시 남구 오천읍)
- 00:10 : 성황재 비박/ 14번국도/ 포항시-경주시 경계지점/ 간이휴게소
* 4. 19.(화) :
- 06:13 : 성황재 출발
- 06:58 : 옛 성황재
- 07:20 : 403.5m봉
- 07:49~55 : 암자(식수)
- 07:58 : 시경계/ 삼읍면 경계면(포항시 남구 오천읍, 경주시 문무대왕면 → 포항시 남구 장기면)/ 연대분맥갈림능선
- 08:25 : 만리성산(萬里城, 427m)/ 만리봉산
- 10:10~18 : 묘봉산갈림길/ 오른쪽으로 120m 묘봉산
- 10:15 : 묘봉산(妙峰山, 361.5m)
- 11:14 : 월미산, 용봉갈림길
- 11:41~56 : 삼봉산(三峰山, 290.5m)/ 삼각점봉/ 50m
- 12:50 : 세계원재(世界阮, 122m)/ 장승박이마을/ 면계(장기면 - 동해면)
- 13:08 : 산불진화대기소/ 삼면 경계면(포항시 남구 장기면, 포항시 남구 오천읍 → 포항시 남구 동해면)
- 13:18 : 통점마을
- 14:14 : 금광석산(228.9m)
- 14:51 : 조항산(鳥項山, 245.6m)
- 15:44 : 흰날재(白日嶺)/ 리계(동해면 석리 - 상정리)/ 육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세부구간거리
소호분교-2.3km-호미지맥분기점-백운산분기점-2.8km-탑곡공소삼거리-2km-천마산(613.3m)-2.3km-신복안고개-1.4km-복안고개-2km-미호교(경부고속도로)-4.6km-한전고개-2.4km-당산고개-4.4km-치술령-4.6km-서라벌CC고개-2.4km-사일고개-5.9km-마석산-7.8km-원고개-5.4km-토함산목장-1.9km-삼태지맥분기점-2.3km-석굴암주차장-1.2km-(석굴암 왕복 1.7km)-석굴암입구-1.4km-토함산(745.8m)-2.8km-추령-4.8km-수렛재-1.2km-함월산-2.3km-삼읍면봉-4.3km-성황재-3.9km-만리성재-3.4km-묘봉산(362.5m)-4.5km-삼봉산-3km-세계원재-3.2km-조항산갈림길-4.8km-조항산-1.9km-흰날재-3.3km-금오산-4.8km-윷판재-1km-공개산-4.8km-우물재산-4.4km-고금산-1.9km-호미곶
* 구간거리
- 삼강봉~장승백이/세계원재 80.4km
- 소호분교~당산고개 22.4km (접근 2.5km 포함)
-. 소호분교~못안골재(전읍복안로) 9.9km
-. 신복안고개~당산고개 11.4km
- 소호분교~원고개 42.2km
- 당산고개~ 원고개 22.2km
-. 당산고개~사일고개 10.7km
-. 사일고개~원고개 16km
- 원고개~성황재 26.6km
-. 원고개~추령 13.7km
-. 추령~성황재 12.7km
- 성황재~흰날재 21.6km
-. 흰날재~호미곶 20.4km
-. 성황재~세계원재 17.7km
- 세계원재~호미곶 27.8km
-. 세계원재~금오산 10km
-. 세계원재~윷판재 14.6km
-. 윷판재~호미곶 13.2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출발지: 소호슈퍼
- 신복안고개: 인가 식수보충
- 미호교: 고속도로 통과
- 중리고개: 대우농장숮불고기식당(11시~21시 영업), 식수보충
- 치술령: 울산망부석 데크목 왼쪽 100m 참새미약수터 음용불가
- 치술령 지나서 안부 약수터
- 서낭재/ 사일고개: 주유소 아랫집 식당 추천(뷔페식)
- 원고개: 굿모닝휴게실, 식당가
- 석굴암입구/ 석굴암주차장: 수도, 자판기
- 추령: 백년찻집/ 식수보충(두꺼비)
- 성황재: 휴게소(주간만 운영, 음료 구매, 물 구할 수 없음)
- 오천읍 개인택시: 054-292-6666, 중앙콜센터:054-293-8888 (오천읍~성황재휴게소 2만원)
- 암자: 식수보충
- 장승백이/ 세계원재: 인가 수도 물보충 가능
- 통점마을 입구: 산불전문진화대기소: 수도
- 조항산: 체육공원/ 수도
- 흰날재: 민가 수도
* 서울에서 소호리 내려가는 길
- 동서울~경주시외버스: 15:30, 17:20, 4h, 30,000원
- 서울경부~경주고속버스: 17:10, 20:05, 3.30h, 20,600~30,500
- ktx서울~신경주: 18:30, 18:55, 21:30, 2.10h, 49,300
- 신경주~경주터미널: 노선버스
- 경주시외버스터미널~언양임시터미널: 21:10분 막차, 0.35h 소요, 3,700원
- ktx서울~울산(통도사): 18시, 18:15, 18:30, 19시, 19:37, 2.15h, 53,500
- 통도사 신평터미널~언양임시터미널: 막차 22:15
- 언양임시터미널~소호리행: 06:15분 첫차, 40분 소요, 구버스터미널 맞은편 338번 버스 승차, 소호분교 하차
- 언양~소호초교: 택시 2만원
* 세계원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세계원재~포항터미널: 버스
- 포항고속터미널~서울경부: 16:30, 21시, 3.40h, 31,200
- 포항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 17:20, 4.38h, 35,000
- ktx포항역~서울역: 17:30, 18시, 18:56, 19:21, 21:36, 2.35h, 53,600
* 서울에서 세계원재/ 장승백이 내려가는 길
- 서울경부~포항고속터미널: 06시~, 17:30, 3.40h, 21,000
- 심야 01시, 3.40h, 34,300
- 동서울~포항: 07시~, 17:20, 4.30h, 3,5000
- ktx서울역~포항역: 20:40, 22:20, 2.27h, 48,200~53,600 (05:05, 2.17h, 42,900)
- 포항고속터미널~장기면: 정천버스장류장 하차(장승백이)
- 포항시외버스터미널~포항역: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107번 버스, 0.30h소요
* 흰날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석리/성정1리 버스정류장 도보이동
- 석리마을버스정류장~포항시외버스터미널: 209번버스, 30분소요
* 포항에서 흰날재 가는 길
- 포항고속버스터미널~석리: 209번버스, 05:30분 첫차, 30분, 터미널 건너편 도로변 버스정류장에서 승차
- 코라이와이드포항교통양덕영업소: 054-251-7202/ 코라이와이드 포항교통: 054-293-0320
* 호미곶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호미곶광장버스정류장~구룡포: 200번 버스, 0.35h, 1,600원
- 구룡포수협(환승센터)버스정류장~포항터미널: 0.50h, 1,600원
- 포항고속터미널~서울경부: 16:30, 21시, 3.40h, 31,200
- 포항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 17:20, 4.38h, 35,000
- ktx포항역~서울역: 17:30, 18시, 18:56, 19:21, 21:36, 2.35h, 53,600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일구와 6기맥을 마치고, 100km급 지맥 15개를 선정하여 2021. 1. 13일 고흥지맥을 시작으로 어언 마지막 지맥인 호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운영진과 영축지맥을 그리고 앵자지맥을 끝냈고요.
16일 야간에 경주에서 빈 좌석이 없어 막판까지 기다리다가 언양 가는 시외버스 막차를 간신히 승차하여 언양 임시터미널 옆 정자에서 비박하고, 다음날 태종으로 들어가는 첫차로 소호초교에 내려 첫날은 사일고개 주유소 아래 식당에서 쏘맥을 말아먹고 재네리갈림길로 올라가 송전탑봉 평장묘지에서 1박, 둘쨋날은 성황재에 00:10분에 도착해 1박했습니다.
마지막날 만리성에서부터 사격장에서 콩볶는 소리가 들리기에, 군부대를 통과할까도 싶었지만 도착시간으로 보아 점심시간에 통과가 가능하리라 보았고, 실제 삼봉산에 도착해 초소에서 오전 사격이 종료되기를 기다린 시간은 10분 정도였습니다. 마침 다음 달에 전역예정이라는 하사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저희 관내 청량리 용두동 굴다리 옆 주택가에 살더군요. 객지에서 우연히 동네 아저씨를 만난 느낌이었을겁니다.^^
해병1사단이 있는 세계원재까지만 갈려고 했는데 워낙에 길도 좋고 졸업구간에 구룡포 관광을 위해 2시간 더 벌어 두었습니다. 서울경부 고속터미널에서 포항가는 새벽 1시 버스가 있네요. 2구간은 13시에 호미를 졸업하고, 구룡포에 가서 뒤풀하며 두시간 정도 관광을 즐기고 올라올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호미지맥(虎尾枝脈)이란
호미지맥(虎尾枝脈)은 낙동정맥 고현산(1,034m)과 단석산(827m) 사이에 위치한 백운산(892.7m) 북쪽 0.9km 지점의 세번째 봉우리인 삼강봉(845m)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울주 천마산(620.5m)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치술령(致述嶺, 766.9m)에서 북동진하여 마석산(531m), 천년고도 경주 토함산(745.8m)을 지나 삼봉산(290.5m), 조항산(245.6m), 금오산(230.1m), 공개산(213.7m), 고금산(121.5m)으로 포항 영일만(迎日灣) 남쪽 호미곶(虎尾串)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102.6km(실거리 110.8km)인 산줄기이다.
산경표에는 지맥의 산줄기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산자분수령 원칙은 정맥까지 적용되는 개념이다. 원칙이란 공히 그 분야 전반에 걸쳐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162지맥 중 일부가 합수점으로 흐른다고 원칙이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산줄기는 형산강(兄山江)의 남쪽 수계 역할을 하므로 굳이 산경표 원리대로 이름을 붙인다면 형산강 남쪽 줄기이니 형남지맥(兄南枝脈)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통상은 땅끝, 고흥, 여수, 통영, 진양기맥 처럼 반도의 끝으로 가는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호미지맥이라 칭한다. 이 산줄기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형산강(兄山江)으로,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태화강으로, 그 중 일부는 장기천, 대화천으로 흘러 동해바다로 들어간다.
♤ 호미지맥 지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호미지맥을 지나는 동네
* 울산광역시 울주군(蔚州郡)
울주군은 경남 북동쪽 동해안에 위치하며 울산광역시의 서남부에 있는 자치군이다. 서쪽으로 경남 밀양시와 경남 양산시, 북쪽으로 경북 경주시, 동쪽으로는 울산 시내와 동해,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인접한다. 삼남읍에는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이 있다. 이름은 울산과의 동질성을 나타내기 위해 '울' 자를 따고 지명에 흔히 쓰이는 글자 중 하나인 '주'를 붙여서 만들어졌다. 광역시 산하 군 중에서 가장 넓지만 면적에 비해 인구는 적어 인구밀도는 낮은 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군을 통틀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군이다. 가장 인구가 많은 군은 대구광역시의 달성군인데 사실 울주군이 쭉 달성군보다 인구가 많았으나 테크노폴리스, 다사읍 개발 등으로 인해 달성군 인구가 급성장하여 2017년에 인구 순위가 역전되었다. 울주군이 넓기는 하지만 산지가 많고 온산공단 등 대규모로 공단이 펼쳐져 있어 추가로 크게 무언가를 개발할 만한 땅은 없다. 그래도 울산 시내 외곽 지역으로서 동네마다 남는 땅을 소규모로 듬성듬성 개발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군청 소재지는 청량읍 율리이다. 1962년 울산읍이 울산시로 승격되자 울산군을 울주군으로 개칭하였다. 온산공업단지 등으로 공업이 발달하였다. 명승지로는 서생성지(西生城址), 문수암(文殊庵), 처용암(處容庵) 등이 있다. 울주군의 전신인 울주구(蔚州區)는 1995년 1월 1일 (구)울산시와 울산군의 통합과 함께 설치되었다. 이 통합은 울산의 광역시 승격을 전제로 추진되었으며, 당시 (구)울산시는 3개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통합과 함께 1개구를 증설하게 되었다. 울주군을 세분화하면 크게 서부권 + 범서읍 지역, 남부권, 그리고 가운데의 웅촌권 등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 울산시내로 향하는 교통망은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구축되어 있으나 정작 이들 지역 사이를 오가는 교통은 매우 열악하다. 수요가 없기도 하고 지형도 산맥으로 서로 막혀 있어 비록 같은 울주로 묶여 있지만 연결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울주군의 역사를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의 (현 언양읍 중심의) 언양군과 (현 중구 중심의) 울산군이 일제시대에 합쳐져 탄생한 울산군에서, 1962년 도시지역(현재 중구, 남구, 동구, 북구 일부 지역)이 울산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읍면 지역 전체를 울주군으로 남겨두었고, 광역시 승격 당시 농소읍과 강동면을 신설되는 북구로 편입하면서 현재의 울주군 구역이 확정되었다. 1994년까지의 지방자치법에서는 도시지역인 시, 구에 읍, 면을 둘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울주군은 1962년 시 승격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경기도의 시흥시나 남양주시처럼 울산 외곽 지역의 여러 읍면들만을 모아서 하나로 합쳐 놓은 행정구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양읍 중심의 서부권과 온양읍·온산읍 중심의 남부권은 역사와 생활권이 전혀 다르고 거리도 멀어서 교통편이 부족하다. 그래서 행정기관이 특정 구역에 위치하면 다른 지역의 불편함이 매우 크므로 서부와 남부 모두에서 적당히 가까운 시내구역에 위치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서부권은 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남부권은 철도를 중심으로 발전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서부권 중심지인 언양읍은 경부고속도로와 울산고속도로의 교차점으로 울산의 도로교통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남부권은 동해선이 지나는 곳으로서 철도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기에 남창역, 덕하역 주변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2021년 12월 말 동해선 복선전철화가 완료되어 동해선 광역철도가 운행을 시작함에 따라, 남부권은 울산의 직장과 부산의 인프라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교통 여건이 극적으로 좋아졌다. 최근에는 서부권과 남부권 모두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교통이 발전하고 있다. 2010년, 서부권인 언양읍에 경부고속선 울산역이 들어서 언양읍은 울산의 철도교통 중심지가 되고, 남부권은 동해고속도로와 함양울산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각각 포항시, 경주시와 밀양시 등과의 교류가 증가하는 등 도로교통이 발전하고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경주시(慶州市)
경북 동남부에 있는 시이다. 신라의 건국 초기(기원전 57년)부터 신라 멸망(935년)까지 서라벌(徐羅伐), 금성(金城)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으며 992년(약 1000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현재의 이름인 '경주'로 불린 것은 935년(고려 태조 18년)이다. 이후 동경, 계림부 등으로 바뀌었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경주로 바뀌었다. 백두대간의 지맥인 낙동정맥과 호미지맥이 시의 동부와 서부를 남북으로 뻗어 있어 시의 지세는 크게 동쪽의 해안지역, 중앙의 분지지역, 서쪽의 산악지역으로 구분된다. 해안지역은 급경사를 이루어 하천이 짧고 평야가 적다. 중앙의 분지지역에 해당하는 동지역은 토함산(吐含山, 745m), 금오산(金鰲山, 495m) 등에 둘러싸였으며, 하천에 의해 형성된 화강암 침식분지이다. 서쪽의 산악지역에는 도덕산(道德山, 703m)·구미산(龜尾山, 594m)·주사산(朱砂山, 622m)·단석산(斷石山, 827m) 등이 솟아 있다. 인천(麟川)은 울산광역시 백운산(白雲山)에서 발원하여 금오산 서쪽을 따라 북류하다가 건천읍에서 동류하는 대천과 반월성을 감싸며 시가지 남쪽을 따라 흐르는 남천과 합류하여 서천(西川)이 된다. 이는 다시 덕동호(德洞湖)와 보문지(普門池)를 거쳐 시가지 북쪽을 따라 서류하는 북천과 합류하며, 경주시 현곡면 어림산(御臨山)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는 현곡천(見谷川)과도 합류하여 형산강 본류를 이룬다. 경주평야를 중심으로 한 내남·건천·안강 평야 등 비옥한 평야지대는 신라 천년 문화의 바탕이 되었다. 경주에는 사찰, 유적, 석탑 등 많은 신라시대 문화재뿐 만 아니라 경주 양동마을 등 조선시대 양반마을이 보존되어 있으며, 불국사, 석굴암과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산성 등 5곳의 경주역사유적지구, 그리고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울산광역시·포항시·영천시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은 동해와 접한다. 대한민국의 주요 관광도시로 신라시대의 풍부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진한의 중심지였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6·25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우리나라 최대의 유물·유적이 보존된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다. 많은 청동기 유물들이 경주시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어 신라의 전신이며 경주 6촌에서 성장한 사로국의 생활모습을 짐작케 한다. 57년 6부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거서간으로 추대하고 나라이름을 서야벌이라 했다. 65년(탈해왕 9)에는 국호를 계림으로 고치고, 307년(또는 503년이라고도 함)에 국호를 신라라 했다. 935년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자 경주로 개칭하여 경순왕의 식읍으로 주었으며,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1308년 계림부윤으로 바꾸었다가 1413년 경주로 정해졌다. 별호는 금성·월성·낙랑·금오·문천이었다. 경주의 고읍으로는 대성군·약장현·상성군·임관군·안강현·기계현·신광현·음즙현·장진현이 있었다. 1895년 지방관제 개편으로 군으로 바뀌어 대구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에 속했다. 1931년 경주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55년 경주읍과 내동면 전역, 천북면과 내남면 일부가 통합되어 경주시로 승격했으며, 경주군은 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에는 다시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실시된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주군과 통합되어 경주시라는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2009년 행정동 통폐합에 따라 4개읍 8개면 11개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포항시(浦項市)
대한민국 내륙 지방 최동단에 있는 도시로 경북 동해안 영일만에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와 접하며, 서남쪽으로 영천시·경주시와 인접한다. 북쪽으로는 청송군·영덕군이 있다. 1995년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포항시와 영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농업과 수산업이 함께 행해지던 지역으로 수산업의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에 포항종합제철(주) (현재 포스코) 이 들어서고 시설확장이 계속되는 한편 관련 산업이 발달하여 세계적인 제철도시로 성장했다. 포항시 지역은 삼국시대에 신라의 근오지현 또는 오량지현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임정현으로 개칭되었고,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영일현으로 이름을 고쳤다. 조선시대에도 영일현을 유지했다. 지역의 북서부지역은 백두대간 남단에 해당하는 낙동정맥의 산악지대로 해발고도가 높고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동해에 이른다. 북부와 서부 경계를 따라 동대산(791m)·바데산(646m)·구암산(807m)·자초산(763m)·베틀봉(930m)·면봉산(1,113m)·보현산(839m)·수석봉(821m)·운주산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또한 북부 송라면·신광면·기북면·죽장면 등지에는 향로봉(930m)·천령산(775m)·삿갓봉(716m)·침곡산(725m)·비학산(762m) 등이 솟아 있다. 이 지역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형산강은 경주시 서면 인내산(513m)에서 발원하며 경주시에서 남천을 합류하고 포항시 북서부를 남동류하는 기계천을 합류해 영일만에 유입하면서 만내에 넓은 충적평야를 발달시켰다. 또한 남쪽 오천읍을 지나는 냉천은 북쪽으로 흘러 영일만에 유입한다. 그밖에 광천·청하천·월포천·서정천·곡강천 등은 동류해서 동해에 유입하며, 자호천이 이 지역의 북서부를 남서류한다. 수산업은 경북에서 가장 활발하며 연안유자망어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국토의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구룡포항을 비롯해 50여 개의 어항이 있다. 포항시에는 총 100개의 광구가 있으며, 현재 58개의 가행광구에서 불석·고령토·규조토·견운모 등이 채굴되고 있다(2013). 1967년부터 시의 남부인 송내동·장흥동·동촌동 일대에 포항공업단지가 조성되어 1970년 포항종합제철(주) (현재 포스코)의 건설을 시작으로 이와 연관된 철강산업과 철강가공산업체가 들어서면서 제조업이 급속히 성장했다. 경상북도의 문호 역할을 하는 항구도시로 육로와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다. 1962년 포항항이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해상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포항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작고 수심이 깊은 영일만 깊숙이 위치한 천혜의 양항으로, 이는 포항공업단지의 선정에 큰 역할을 했다. 동해안과 낙동정맥이 함께 있어 산악·해안 관광지로서 전망이 밝다. 송라면의 보경사 뒤편을 흐르는 광천 상류에는 경상북도 3경의 하나인 내연산십이폭포가 있으며, 호미곶면의 장기갑등대를 비롯해 1984년에 신축된 등대박물관에는 710점에 이르는 등대 관련 자료와 시설물이 전시되어 있다. 예로부터 형산강 하구와 해안 등의 경관이 뛰어나 아름다운 경관 8가지를 꼽은 포항8경이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호미지맥은 일명 형남지맥으로 불리듯 포항 형산강의 남쪽과 동시에 울산 태화강의 북쪽 울타리로 두 강을 구분짓는 분수령이다. 낙동정맥 분기점(삼강봉)에서 출발하여 호미곶으로 진행하게 되면 왼쪽(북)은 형산강의 수계요, 오른쪽(남)은 태화강의 수계가 된다. 호미지맥 첫구간은, 호미지맥 분기봉까지 접속 구간은 울산광역시 상북면 소호리 안을 진행하여 낙동정맥 능선에 올라서면서 울산광역시 두서면을 만나 호미지맥 분기봉인 삼강봉까지 소호면과 두서면 면계를 따르고, 분기봉(삼강봉)에서 우틀하여 온전히 두서면 안으로 들어서서 날머리인 전읍복안로가 지나는 가칭 신복안고개 이후까지 이어진다.
궁근정초등학교 소호분교와 노인정 사이에서 시작합니다.
♤ 울산광역시 상북면 소호리(蘇湖里)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법정 리(里)로 경주시 산내면과 울주군 두서면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상북면의 13개 법정 리(里) 중 가장 오지에 분지지형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리, 대곡, 대리, 와리, 태종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소호(蘇湖)의 옛 이름인 소야(所也)는 수리에서 비롯된 말로, 수리는 높이 솟은 산 또는 정수리라는 의미로 소(所)·소(蘇)·술(述)·술(戌)·취(鷲) 등으로 차자(借字) 된 수리골의 뜻을 담고 있다. 당리마을은 소호리 중심에 자리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복판에 당수(堂樹)가 있어서 붙여졌고 《당수말》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느티나무숲이 우거져 마을의 당제(堂祭)를 모셨고, 지금도 소호분교 운동장에는 느티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있어 매년 정월대보름 저녁에 당제를 지낸다. 당리마을 남서쪽 대리마을은 조선시대까지는 소호에서 가장 큰 마을이어서 대리(大理)라 했는데, 1800년대 말 대형 산불로 마을이 소실되어 임야로 방치되어 오다가, 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다시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옛길을 복원하여 참새미길 숲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 백운산(白雲山, 892.7m)/ 열박산/ 면계(상북면 - 두서면)/ 삼리봉(상북면 소호리, 두서면 내와리, 인보리)
백운산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두서면 내와리에 있는 산으로 신라때는 "열박산"이라 칭하였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17세 때에 단석산 석굴로 들어가서 고구려, 백제, 말갈의 적침을 물리치고 나아가 삼국을 통일할 능력을 하늘에 빌고 있을 때, 난승이란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 그에게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이듬해(서기 612년)에 이웃 적병의 침공을 당하여 김유신은 더욱 비장한 각오로 혼자서 보검을 들고 열박산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서 향을 피우며 하늘에 빌기를「적국이 무도하여 시랑과 범이 되어 우리 강역을 침략하여 거의 편안한 해가 없습니다. 나는 한낱 미약한 신하로서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뜻을 화란소청에 두고 있사오니 상천은 하감하시와 나에게 능력을 빌려주십시오.」라 하였다. 그랬더니 천관신은 빛을 내리어 보검에 영기를 얻었고 3일 되는 밤에 허숙과 각숙의 두별이 뻗친 신령한 빛이 환하게 내려닿으니 동요하는 것 같았다고 전하여 온다. 위와 같은 이야기로 미루어볼 때 열박산은 예로부터 신령한 산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열박산은 언제 백운산으로 바뀌었는지 알수 없으나 대체로 「열밝」의 본 뜻, "환하게 열린 산"이란 뜻을 그대로 가진 산 이름이다. 옛날에는 지금의 백운산은 물론이고 그 동편 산 일대를 다 열박산이라 한듯 지금도 마리골에서 실그내로 넘어가는 재를 열박이라고 하고 있다. 또 재 이름의 의미는 도적떼가 많다는 뜻과 재 이름을 비유하여 열사람씩 백이 되어야 재를 안전하게 넘을 수 있으며 낮에는 열사람 밤에는 백사람이라야 넘는다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백운산 탑골샘은 울산 태화강의 발원지로 유역 길이가 47.53Km이다. 아울러 가지산 쌀바위도 상징적인 발원지로 정하고 있다. 이 백운산은 네개 봉우리가 있는데 맨 아랫쪽의 892.7m봉이 주봉이고 그 북쪽으로 860m봉, 845m봉, 855m봉이 연이어 있는데 호미지맥은 그 중 아래에서 세번째봉인 845m봉에서 능선의 아래쪽으로 급히 내려가는 맥이지만 동쪽으로 가지를 쳐 천마산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치술령부터는 북동진하며 포항이 호미곶까지 이어진다. 근자에 이곳에 근처의 산악회에서 삼강봉이란 작은 정상석을 설치하여 호미지맥의 분기봉으로 안내하고 있다.
♤ 삼강봉(三江峰, 845m)/ 삼강 분기점(낙동강, 태화강, 형산강)/ 면계(상북면 - 두서면)
백운산 정상 북쪽의 삼강봉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삼등분 되어 세 갈래로 흘러내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동남쪽 탑곡으로 흐르는 물은 탑골을 거쳐 미호천, 대곡천을 경유 태화강으로 흘러가고, 동북쪽 큰골로 흐르는 물은 경주 시내를 지나 포항 형산강으로 흐르며,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밀양강 원류인 소호리 동창천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속리산의 삼파수와 비슷하고 백두대간에 삼수령도 있다. 호미지맥은 이곳 삼강봉에서 동쪽으로 달려 형산강과 태화강의 수계를 경계지으며 천마산(621m)~치술령(767m)~토함산(745m)~추령(감포고개)을 거쳐 호미곶에 닿는다. 호미지맥갈림봉(삼강봉)에서 급경사의 희미한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등로로 내려서야 한다.
- 부산 같이하는 산악회에서 2009년 7월에 세운 호미지맥분기점 이정표와 호미지맥분기봉의 삼강봉/ 해발 845m 표지석이 있다.
♤ 내와봉(398.9m)/ 삼각점봉
묘지 두기가 자리하고 있다. 좌측으로 올라서면 4등삼각점(언양 412/ )이 있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울산 울주군을 포함한 경남 양산·밀양, 경북 청도·경주의 3개 시·도, 5개 시·군의 행정구역에 이어지는 총 240㎞의 탐방로로,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총 9개의 해발 1,000m 고도의 산군들이 연결된 영남 알프스에 조성되어 있다.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고헌산 아래로 연결된 울산 구간은 총 5개 구간으로, 전체 영남알프스 둘레길 240km 중 77.3km에 달한다. 울산 구간 둘레길은 삼남면 방기리 오케이 목장 식당에서부터 시작하여 두서면 외와 마을까지 이어지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 · 쑥부쟁이 한들거리는 들길 · 호젓한 계곡길 · 고즈넉한 산골 마을 토담 길 · 수풀 우거진 묵은 길 등의 별칭을 붙여 이어 가서 자연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마을마다 내려오는 전설과 잊힌 역사가 둘레꾼의 발목을 붙잡아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해가 되지 않도록 사람의 손길을 자제했으며, 위험한 구간에는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재정비하였다. 그중 5코스는 하선필마을 삼거리-중선필마을-상선필마을-탑골샘삼거리-내와마을-외와마을-박달재 구간의 9.3km 둘레길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내와리고개/ 탑곡고개/ 삼거리 임도/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와 두서면 전율리를 잇는 고개
- 숲, 물, 옛길이 있는 무릉도원 가매달 계곡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 복안 저수지 끝나는 곳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가매달 계곡은 태화강 백리 길이 숨겨둔 보물이다. 저수지 끝에서 50여 m쯤 올라가다 보면 물가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작은 바위가 있는데, '가마바위'라 불린다. 색시가 탄 가마가 계곡물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색시가 빠져 죽었는데, 가마 속에 둔 요강을 닮은 소(沼)가 만들어졌다는 '요강소'를 비롯하여, 선녀가 목욕을 했던 선녀탕, 구렁이가 약이 올라 빠져 죽었다는 구이소, 계곡을 건너던 소금장수가 미끄러져 계곡물이 짠물로 변했다는 소금쟁이 소를 비롯하여 열 개의 소(沼)와 여섯 개의 징검다리가 있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태화강 백리 길이 만나는 개미허리 골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태화강 백리 길이 만나는 곳이다. 개미허리 골 아래 내와(內瓦) 마을은 경주시 남면이었다가 울산면 두북면으로 이속된 곳이다. 기와를 굽고 쇠를 녹이던 불매골이었다. 쇠를 녹이던 재동비알 쇠점터, 점터걸, 서말찌 조선솥을 굽던 중점이 있다.
-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길
백운산 아래 둘레길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길이다. 세월을 묻어둔 오지 마을, 피톤치드 내뿜는 낙락장송, 태화강의 발원지 탑골 마당메기, 고개 우측 1~2km 떨어진 탑곡 자연마을,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가해질 때 수많은 순교자들이 은거하며 촌락을 형성했던 세 곳의 미니 공소로 이어진 순례길, 짐을 진 말이 고꾸라질 만큼 가파른 말구부리길이 있다.
- 탑골 안부 T자 갈림길에서 우측 유촌마을 방향으로 몇 발자국 나가면, 좌측 편에 지맥 들머리가 있다. 이 곳에서 2.2km 지점에 태화강 발원지인 탑골샘이 위치해 있다.
♤ 태화강발원지/ 탑골샘
태화강 발원지는 삼강봉과 655.2m봉 우측 아래의 탑골샘을 태화강 유로연장 최장거리인 47.54km로 비정하고 있다. 태화강은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893m) 북동쪽 골짜기인 탑골에 있는 탑골샘에서 발원한다. 현재 삼백육십오일사로 올라가는 도로에서 등산로로 1.2㎞를 올라가면 큰 바위에 ‘태화강 발원지 백운산 탑골샘(사진)’이라고 새겨두었는데 실제 물은 이 바위보다는 위에서 흘러내려 온다. 탑골샘에서는 하루 15톤 정도의 물이 솟아나 계곡을 따라 흘러 미호(복안)저수지로 들고, 이어 대곡천으로 흘러 태화강으로 합류한다. 예전에는 가지산 쌀바위의 샘을 태화강 발원지로 여겼는데 2006년 울산시가 울산발전연구원에 의뢰해 실측한 결과 탑골샘을 태화강 발원지로 확정했다.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쌀바위에서 잰 태화강의 길이는 45.43㎞, 최장거리 발원지인 백운산 탑골샘은 쌀바위보다 2.11㎞가 긴 47.54㎞로 나타났다. 두 물줄기는 울주군 범서읍에서 만난다.
♤ 천마산(天馬山, 613.3m)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 상동마을에 있는 산이다. 울산 울주군은 경주와 접해 있어서인지 신라와 관련한 전설이 제법 전해온다. 특히 김유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낙동정맥이 지나는 백운산(열박산) 정상 근처에는 삼국 통일 전 김유신이 수도했다는 동굴이 있다. 김유신이 이 동굴에서 나와 천마를 타고 힘껏 땅을 박차고 날아 처음 발을 디딘 곳이 천마산이라고 한다. 백운산 정상에서 천마산 정상까지는 대략 4㎞, 즉 10리이니 천마의 한 걸음이 대략 그 정도 되나보다. 또 백운산부터 고헌산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동남쪽에 솟은 마병산엔 김유신이 말과 병사를 훈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김유신과의 연관성 외에 호미지맥의 첫 봉우리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 아담한 화강석 정상석이 있다. 빡신 오름에 비해 볼것이 별로 없고, 5분 정도 진행한 557m봉이 전망이 뛰어나다.
♤ 상동재/ 신복안고개/ 뒷북안고개/ 전읍복안로
278봉m과 404.7m봉 중간의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이다. 이 고개 아래에 있는 미호리의 서편 위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상동재다. 약 400여년 전 조선조 광해군 때 지금의 저수지 근처에 김해 김씨가 자리를 잡았는데,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가 자주 내려와 사람을 해치므로 공포에 질려 지금의 상동마을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도로는 남쪽 두서면 미호리(嵋湖里) 상동마을에서 북쪽 복안리(伏安里) 오작골못 및 음지마을을 잇는 고개로 현재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 [전읍복안로]로 정비가 되어 있다. 이곳 고개에서 약 1.2km 더 진행하면 나오는 옛 고개의 이름인 '복안고개'에서 그 이름을 따와, 뒤에 새 도로가 나면서 생긴 새 고개라 하여 산꾼들이 신복안고개로 이름 붙였다. 서쪽 천마산과 동쪽 삼봉을 이어 주는 능선 사이의 400m 고지를 기준으로, 현 위치의 뒷복안고개/신복안고개와 앞으로 진행하게 될 동쪽의 아랫복안고개/복안고개가 있다. 뒷복안고개의 남쪽 미호리에는 복안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 고갯마루에 독립가옥 양옥집이 한채 있는데 물인심이 좋다고 한다.
복안저수지에서 올라와 백운산을 걸쳐 아미산까지 간다는 젊은 등산객을 한분 만났습니다. 호미지맥을 모르시는군요. 능선을 따르면 호미지맥이고, 계곡을 따르면 태화강발원지로 백운산에 오를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 울산 아미산
아미산은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하나로 쓰촨성에 위치한 산인데, 우리나라에도 홍천 아미산, 군위 아미산, 보령 아미산, 당진 아미산, 순창 아미산, 해운대 아미산 등 여러 산이 있다. 아미산과 천마산 사이의 가메들 계곡은 백운산 탑곡에서 시류하는 태화강 최상류 발원지로 자연 경관이 빼어난데다, 그 긴 계곡 중간중간에 거울 같은 석반을 끼고 호박소, 구이소, 가마소 등 아름다운 소가 많아 지금도 이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 복안(伏安)고개/ 아랫복안고개
복안고개는 복안리(伏安里)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남쪽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嵋湖里) 상동에서 북쪽 복안리 새터를 잇는 고개다. 아랫복안고개는 남쪽 미호리 상동마을에서 갓쟁이골을 통과하여 북쪽 복안리 새터마을을 잇는 옛고개인데 현재는 차량 통행이 어려운 소로로 남아 있다.
- 신복안고개에서 약 30분 거리이다.
♤ 삼봉(361m)/ 산불감시초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와 활천리, 복안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넓은 공터에 잡풀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전위봉(352m)에서 좌틀하여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삼봉이다.
- 4등삼각점(복안 410/ 82 재설)이 있다. 우틀하여 3시방향으로 내려선다.
♤ 구 35번 국도가 지나는 미호육교[열박재]로 접속하는 방법
비석이 커다란 통정대부 월성 이공 묘에서 30여 m 내려서면 'Y자' 갈림길이 나온다. 고속도로와 35번 국도 때문에 정확한 지맥 능선의 의미가 무색한 상황에서 갈림길에서 안전하고 편한 루트인 우측 직진 방향 선명한 등로 따라 내려서서 '미호중동길'에서 좌틀하여, 미호천교(35번 국도)와 미호교(경부고속도로) 다리 밑을 통과해 미호교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삼영폴리테크를 지나 미호고개에 접속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을 택하면 4차선 35번국도를 무단횡단하고 고속도로 위로 미호육교를 건너서 왼쪽 도로를 따라 200여m를 내려가다 오른쪽 철계단으로 올라선다. 철계단으로 올라서서 약간 오른쪽 능선으로 접어들면 잔디가 없는 월성 최공 묘지가 나오고 직진하면 임도가 나온다.
- 경부고속도로와 35번국도가 만나는 미호육교에서 철계단을 이용하여 지맥 능선으로 진입하는게 쉽다.
♤ 열박재(咽薄嶺, 悅朴嶺)/ 열백재
직진 위로 '미호육교'가 보이는데, 상동재 또는 미호육교로 다리만 표기된 이 고개를 열박재/ 열백재라고 한다. 열박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의 활천리의 가정마을에서 미호리의 상동마을로 오고 갈 수 있는 고개로 옛날 두 마을 사람들이 열박재를 넘나들며 친목과 상업 활동을 하였다. 예전에는 고개였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경부고속도로와 4차선국도 그리고 도로의 역할을 35번 신도로에 뺏겨버린 구도로까지를 합치면 3개 도로가 지나가는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가 되어버려 도보 이용은 사라지게 되었다. 미호리는 천마산과 아미산, 삼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미호리 상동마을에서는 미호리에서 발원하여 범서읍 사연리 태화강(太和江)으로 흐르는 대곡천(大谷川)이 흐르고 있다. 백운산(白雲山)은 신라의 열박산이다. ‘열박(咽薄)’은 열치고 밝은 산이라는 뜻이 있는데, 열(咽)은 열치다의 이두(吏讀), 박(薄)은 박(朴)·백(白)과도 같은 광명을 뜻한다. 김유신(金庾信)장군이 백운산에 들어가 천신에게 기도하여 비상한 힘을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백운산의 열박을 따라 열박재라 부르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226.1m봉/ 삼각점봉/ 면계(두서면 - 두동면)
임도 좌측편 10여m 밋밋한 봉우리에 위에 있다. 준·희선생님의 호미지맥 / ▲225.2m 산패와 독도님의 코팅지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숲에서 내려오면 또다른 양회임도를 만나고 이곳에서 왼쪽 도로를 계속 따른다.
- 4등삼각점(언양 417/ 1982 재설)이 있다.
♤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九味里)
두동면 구미리는 본래 경주(월성)군 외남면의 지역으로서, 밀구미(密仇味)가 변하여 구미리라 하였다. 구미리를 조선 초에는 구시(仇沙)라 하였고 경주 외남면 때에는 밀구미동이라 불리었으며, 밀구미란 대밀과 구미가 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어 진다. 구시라 함은 목조(木槽)를 뜻하며, 목조란 명사로 구유(소먹이통)를 지칭한다. 구시는 지역이 굽은 데서 나온 말이다. 그후 구시가 구미로 변하였지만 의미에는 변함이 없다. 1906년 울산(울주)군에 이속되었고, 1911년 두북면 구미동에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중리/ 주원/ 당산을 병합, 구미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선략장군(宣略將軍) 일선김공묘소 입구
선략장군은 조선시대 무산계(武散階)의 하나로, 지방 세력가와 공이 있는 평민, 평인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하던 고려와는 달리 조선에서는 무신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하였다. 종 4품의 무관을 상·하로 나누어 상에게는 정략장군(定略將軍), 하에게는 선략장군의 관계(官階)를 주었다.
♤ 중리(中里)고개/ 식육점 식당/ 2차선 도로
왼쪽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와 오른쪽 두동면 구미리 중리마을을 잇는 두동로가 지나는 고개다. 울산/ 언양/ 경주 방면의 중간 교차지점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개 오른쪽에 골프연습장, 대우농장숯불고기, 위락시설이 있는 두동일신랜드 입간판이 보인다. 31번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이곳에서 주원천이 발원한다.
- 도로 따라 왼쪽으로 약간 내려서서 ㅏ자 갈림길에서 오른쪽 울주 변전소로 들어가는 임도로 진입한다.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변전소 우회지점이다.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는 변전소를 우회하기도 하고, 변전소 정문에서 왼쪽으로 철조망 울타리를 따르기도 한다. 변전소 철조망을 돌고돌아 열려있는 뒤쪽 대문으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꺽어져 철조망을 따라 3번송전탑까지 계속 올라간다.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꺽어진다. 처사 전명구의 묘를 지나 임도로 들어서서 체육시설을 지나고 임도삼거리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올라선다.
♤ 일가 4형제 국가유공자 위령비(一家4兄弟國家有功者慰靈碑)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111에 위치한 국가유공자 묘역이다.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동에서 태어난 4형제는 이재양·류분기 부부의 자녀 6형제 중 장남 이민건(육군 하사), 차남 이태건(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해병 중사)으로, 장남·차남·삼남은 6·25전쟁에서, 막내는 베트남전쟁[월남전]에서 각각 전사하였다. 먼저 전사한 아들 세 명은 6·25전쟁 때 1950년 8월 15일 함께 입대하여, 1년 뒤인 1951년 금화 지구와 철원 지구에서 장남과 차남이 잇따라 전사하였고, 삼남은 전사 일시와 장소가 확인되지 않았다. 막내는 1964년 23세의 나이로 해병에 입대하여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 꽝나이 지구에서 전사했다. 1971년 정부는 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어머니 류분기에게 보국훈장 천수장을 수여하였다.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은 1997년 6월 6일 울주군 언양읍 평리 선산에 부모님 묘역을 조성하고 일가 4형제 국가유공자 위령비를 건립하여 매년 추모 행사를 거행해오다, 2000년 1월 묘역을 두동면 구미리 111번지로 이전하였다. 장남 이민건 하사의 유골은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경주이씨 선산에, 육남 이승건 중사의 유골은 서울 현충원에 각각 안치되어 있다. 차남과 삼남의 유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은 2009년 4형제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자 충효정을 건립하였고, 충효정 앞 도로의 명칭은 ‘호국영웅 4형제로’로 지정했다.
♤ 당산(堂山)고개/ 2차선 도로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와 두동면 구미리를 잇는 28번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고개 바로 아래 대밀 북쪽에 당산마을이 있어서 당산고개라고 부른다. 옛날 당이 있어 당상이라 하다가 변하여 당산이 되었다고 한다. 당산나무(神木)는 매년 정월보름에 동제를 지내는 마을의 나무,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목을 당산나무라 하는데, 옛날의 당이 있던 곳은 당수등(산산의 입구)이라 추정된다. 충효정 묘역을 나서서 좌향 하여 나가면 2차선 포장도로인 구미월평로로 나서고, 도로건너 절개지 옹벽 좌측으로 진입한다.
- 도로 따라 좌측으로 약간 나가면 고갯마루 당산고개에 도착한다. 북쪽으로 약간 올라서면 들머리다. 고갯마루 환기통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선다.
♤ 420.4m봉/ 삼거리 이정표
송전탑과 묘지지대를 지나 준희선생님 격려산패에서부터 꾸준히 치술령을 향해 꾸준히 올라선다. 오래되어 곧 떨어질 듯한 이정표는, 치술령 정상 2.0km(1시간 20분), 당산마을 0.9km(36분), 상월평 마을 2.0km(1시간 20분)를 표시하고 있다.
- 가야 할 치술령까지 아직 2.0km 남았다. 우틀하여 계속 오른다.
♤ 울주군 두동면 상월평마을
치술령 북쪽 들판에 떡하니 자리잡은 마을이 월평(月坪)마을이다. 못안과 봉계 사이에 있는 월평 마을은 상월평과 하월평 두 마을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곳 월평은 경주 외남면 시절 먹을 만드는 먹점이 있어 묵장(墨匠)으로 불렸을 정도였으나 먹점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다만 20세기 초에만 해도 이곳은 쇠붙이 터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곳 들판이 산에 둘러싸여 흡사 한문의 월(月)자 처럼 생겼다해 마을 이름도 월평이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주 외남에서 울산에 속하게 되었다. 치술령과 먹장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들판은 두동면 가운데 가장 넓다. 그래서 상,하월평 마을에는 200집 가까이가 들판 한쪽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치술령 골짜기의 백양곡 물줄기는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내달린 뒤 동해의 푸른물과 섞인다. 월평이 바로 형산강의 발원지이다.
치술령에 망부석 바위가 두개 있네요. 서남쪽은 울산을 바라보고 있어 울산 망부석, 남쪽은 경주를 바라보고 있어 경주 망부석이랍니다.
♤ 박제상 유적(망부석: 朴堤上遺蹟)/ 데크 전망대
전망 데크로 조성된 망부석이란 바위 위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이 바위는 1979년 울산 향토사 연구회에서 바위면에 '望夫石'이란 대형 글자를 새긴 이후부터 망부석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417~458재위) 때의 유명한 충신이다. 눌지왕은 고구려와 왜국(倭國)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동생인 복호(卜好)와 미사흔(未斯欣)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 박제상은 왕의 명령을 받아 먼저 고구려로 가서 복호를 구출해 냈다. 다시 왜국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출해 귀국시켰으나, 일이 탄로나 자신은 붙잡혔다. 왜 왕이 자신의 신하가 되면 상을 많이 주겠다고 달랬지만 박제상은 끝내 신라 신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왜 왕은 심하게 고문해도 소용이 없자 박제상을 불에 태워 죽이고 말았다. 한편 박제상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이곳 치술령에 올라 왜국 쪽을 바라보며 일본에 볼모가 된 남편을 그리며 통곡하다가 죽었는데, 그 몸이 돌로 변해 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한다. 울산 망부석에서 바라보는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이전리 일대에 박제상 유적지가 위치해 있다. 울산광역시에서는 치산서원(鵄山書院) 터, 은을암(隱乙巖), 망부석(望夫石) 등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 관련 유적 3곳을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하였다. 치산서원은 박제상과 그 아내인 금교부인(金校夫人, 또는 김씨 부인)을 기리는 서원이며, 망부석은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기리다 죽은 뒤 몸이 굳어져 된 바위라고 전해진다. 은을암(隱乙庵)은 조계종 통도사의 말사로, 사찰 내에는 박제상의 부인이 새가 되어 숨어들었다는 바위인 은을암(隱乙巖)이 있다.
♤ 치술신모와 망부석
치술신모와 망부석의 전반부는 왜국에 가서 죽음으로 충을 다하는 박제상(朴堤上)의 충절담이고, 후반부는 박제상 아내가 일본에 간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는데 몸은 망부석(望夫石)[울주군 두동면 월평리 산156]이 되었다는 암석 유래담이고, 혼은 수리새가 되어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는 치술령(鵄述嶺) 산신 유래담이다. 또한 새가 날아와서 앉은 자리를 비자현(飛自峴), 비조(飛鳥) 등으로 부르고, 새가 숨은 바위를 은을암(隱乙巖)으로 각각 불렀다는 지명 유래담이기도 하다. 이를 「치술령 망부석」, 「치술령과 망부석」이라고도 한다.
- 데크길을 따라 치술령 정상 남쪽으로 약 50m 내려서면 경주 망부석이 있다. 경주시에서 치술령 망부석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치술령 정상 도경계 아래 경주 땅에 망부석이라 이름 붙여진 암반이 이곳이고, 조금 전에 지나온 0.3km 전방의 울산 땅에 망부석 바위가 각각 따로 이름 붙여져 있는데, 두 지자체에서 서로 자기 지역의 망부석이 진짜 망부석이라고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 경주시 외동읍과 녹동리 일대가 조망된다. 2등삼각점(울산 24/ 2006년 복구)이 있다.
지금까지 울주군 두동면 관내를 지나 온 기맥 길은 이곳 치술령에서 경주시 외동읍을 만나 시도 경계를 가르며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하게 됩니다.
♤ 치술령(鵄述嶺, 766.7m)/ 지술령(至述嶺)/ 시도계(울산광역시 - 경주시)
경상북도 경주시의 외동읍 녹동리와 울산광역시 두동면의 경계선에 있는 산이다. 지술령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나물왕 김제상'에 눌지마립간의 동생인 미사흔을 구하러 왜국에 갔다가 죽은 박제상[김제상으로 기록되는 경우도 있다]의 아내가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어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치술신모에서의 치술이 바로 치술령을 의미한다. 치(鵄)는 솔개 등의 새를 나타내는 단어이고, 술(述)은 수리, 즉 높은 산을 뜻하므로 치술령은 '새가 사는 높은 산'을 의미한다. 남쪽의 울산 방향으로 향하는 곳에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에 일본을 향한 전망이 좋다. 『삼국유사』에는 '仍爲鵄述神母 今祠堂存焉(그리하여 치술신모가 되었으니 지금도 사당이 있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과 신라 눌지왕이 박제상과 그의 김씨 부인, 두 딸의 충절에 보답하기 위해 "신묘사"라는 사당을 치술령 정상에 세웠는데, 그 신묘사당이 위치했던 곳이 신모사지(神母寺址)다. 기우단 등이 남아 있다. 조선지형도(울산)와 조선지지자료에는 모두 치술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 바윗길을 올라서면 넓게 공터가 조성된 '치술령 정상'이다. 치술령 정상에서 왼쪽 능선 아래로 7분여 내려서서 '약수터' 갈림길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00m 거리에 참새미(일명 望夫泉)가 있다.
긴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선 묵장산 정상에는 '치술령(울산) - 금오봉(경주)' 팻말이 붙어있다. 작은묵장산(700.7m) 남쪽의 전망바위에서 서라벌C.C. - 420봉 - 329봉 - 241.9봉 - 원고개로 이어지는 호미지맥 능선이 조망된다. 묵장산에서 약 1.9km 진행한 700.7m봉에서 시도계를 벗어나 우틀하여 경주시 외동읍으로 진입, 완만하게 내려선다.
♤ 묵장산(墨匠山, 781.2m)/ 먹장산
울주군 두동면 상월평 마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며 경주시 외동읍에 걸쳐있는 산으로 치술령의 북쪽에 있는 주산이다.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쪽에서는 치술령을 먹장산으로 불렀다. 멀리 보이는 치술령이 언제나 거무스레하게, 즉 먹처럼 검게 보였기 때문이다. 정상석도 없고, 전망도 좋지 못하다. 먹장에서 먹은 검은색을 뜻함이요, 장은 구들장(구들돌)과 같은 음차로서 이는 석탄이 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먹장산 자락의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와 봉계리 일부를 먹장(墨匠)마을로 불렀다. 지금도 먹장골이란 지명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갈탄 채굴이 이뤄졌으나 경제성이 없어 중단됐다고 한다.
- 준희선생님의 추억의 묵장산 산패가 있었는데 신상으로 교체되어 있다.
♤ 서라벌CC
서라벌CC입구에서 왼쪽 직원주차장 방향으로 들어선다. 골프장 입구 도로로 들어서서 주차장 좌측 끝 골프장 코스 관리동 앞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오른다. 골프장 외곽 도로를 따라 오르다, 고갯마루 직전에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421.2m봉 이후 사일고개까지 근 200고지를 내려서는데 무덤을 엄청 많이 지난다.
♤ 사일고개/ 서낭재/ 식당(소담뜰), 흥부휴게소
사일고개는 904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오른쪽(동쪽)은 경주시 외동읍 냉천리 덕동마을 방향이고, 왼쪽(서편)은 외동읍 제내리 사일 마을 방향이다. 사일고개에서 진행하여 올라선 송전탑봉(327.5m) 이후에 이어지는 호미지맥 길이 세 갈래 길로 나뉘어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데, 현재 통상적으로 지맥길로 인정되고 있는 맥길은 'ㄷ자' 형태로 길게 우회하여 거리가 많이 늘어나지만 327.5m봉~270.6m봉~마석산(531m)~북토 마을~순지 마을을 지나 136m봉에서 호미지맥으로 합류하는 길이다.
- 도로를 건너 낮은 축대 뒤편 시그널이 달려있는 곳으로 들어선다.
송전탑봉(327.5m)에서 바라본 365.7m봉-마석산 능선이 뚜렷해서 일부는 호미지맥 능선이라 주장하지만 원동천을 건너야 한다. 327.5m봉에서 241.9m봉-제내리-193.6m봉으로 이어진 지맥 능선은 마석산에 비해 마루금 고도는 낮아도 제내1리에서 193.6m봉-원고개로 이어져 있으나 능선 끝부분인 지초마을에서 신원마을 까지가 농경지로 개간되어 지맥 능선을 찾을 수 없다. 일부 산행기는 산자분수령을 따져 송전탑봉(327.5m봉)을 넘어 241.1m봉을 올랐다가 지초마을~순지마을~장구방이를 진행하여 마루금이 잇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241.1m봉을 내려 제네길을 따르다 산불초소봉(193.6m)을 거쳐 장구방이 안부로 진행을 하기도 한다.
이와같이 초창기 신산경표는 327.5m봉을 거쳐 토성소류지 오른쪽으로 진행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은산님께서 2006년 6월 10일 현지 답사 결과 마석산이 정상 마루금임을 확인하고 수정 보완되었다. 즉, 토성소류지는 인공물이므로 없다고 보는 경우 마석산 구간이 마루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마석산에서 내려가면 북토리에서 토성소류지에서 흘러내리는 도랑(다리)을 건너게 된다.
♤ 송전탑봉(327.5m)/ 바위전망대봉
송전탑 아래 새로 넓게 평장무덤으로 조성된 경주 최씨 묘원에 올라선다. 지맥길은 이곳 묘원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서 마석산으로 향하나, 직진하여 약 100m 위의 송전탑에 있는 바위전망대봉(327.5m)에 올라 앞으로 진행해 가야 할 270.6m, 365.7m, 마석산(531m)으로 이어지는 능선, 북쪽 잡목 너머로 삼태지맥 241.9m, 지초마을, 193.6m 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방향 경관을 조망하고 출발한다. 전망 바위에서 내려서서 다시 묘지가 있는 앞쪽으로 돌아나와 묘 좌측으로 내려서며 호미지맥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지하도를 통과하여 지맥 등로에서 약간 떨어진 삼각점봉(270,6m)을 다녀오고 365.7m봉을 거쳐 마석산에 오른다.
♤ 270.6m봉/ 면계(외동읍 - 내남면)/ 삼각점봉
등로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잠시 다녀온다. 우틀로 내려서면, '마석산 가는 길' 노란 팻말이 붙어 있다. 지금까지 경주시 외동읍 관내를 진행해 온 지맥은 이 봉에서 경주시 내남면을 만나 좌 내남면, 우 외동읍을 가르며 북서진으로 마석산을 향하게 된다.
♤ 마석산(磨石山, 531m)/ 멧돌산/ 삼각점봉
경북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와 외동읍 제내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상봉에 있는 바위가 맷돌처럼 생겨 일명 맷돌산, 뺏돌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여 마석산(磨石山)이라고 하였다. 산 곳곳에 기암괴석들이 많고 나무로 뒤덮인 정상에는 헬기 착륙장이 있다. 북서쪽으로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가 이어지며 남쪽 산 아래로 904번 지방 도로가 지나간다. 정상 부근의 거대한 암벽 위에 새긴 높이 4.6m의 백운대 마애불 입상(경북 유형문화재 제206호)과 마석산 삼층석탑 등의 유적이 있다.
- 마봉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있다. 마석산 정상에서 올라선 방향으로 약간 내려서서 좌틀로 진행한다.
♤ 성원봉(420.3m)
마석산 정상을 다녀와 큰바위를 만나는 곳에서 경관을 조망하며 진행 방향을 가늠하고, 등로 왼쪽에 위치한 성원봉(420.3m) 삼각점을 확인하고 돌아나와 특이한 바위 전시장을 지나고 북토마을까지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 석호정사(石壕精舍)/ 육의당(六宜堂)
육의당 최계종(1570~1647)이 광해군 11년(1619)에 세운 별장으로 그 후 4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못안 모정 나무숲에 있다. 육의당은 정무공 최진립(崔震立)장군의 동생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1594년 무과에 급제했다. 서생포 첨사를 거쳐 남포현감(藍浦縣監)에 임명되었으나 광해군의 난정에 항거하여 부임하지 않아 귀향을 갔다. 그 후 일생 벼슬을 멀리하고 이곳 별장에 은거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육의정(六宜亭)이라고도 부른다. 그 북쪽에 1994년에 새로 지은 육의당의 위패를 봉안하는 상의사가 있다.
이 마을은 신라 때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집이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조선 현종 때 철광석을 발견한 구충당 이의립(求忠堂 李義立)의 『구충당일기』에 따르면 박제상의 집은 치술령 뒤쪽 토상제(吐上堤) 부근에 있다고 하였다. 토상제는 돌매못으로 이 부근에 박제상의 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웃마을인 북토에도 박제상의 말 무덤이 있다. 왜국으로 떠나던 박제상이 자신의 말 발목에 집에 전할 편지를 묶어 말만 보냈는데 북토에 이르러 말이 죽어 이곳에 묻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박제상의 집이 이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堤內里)/ 토성소류지
제내는 멧돌산(摩石山)의 동쪽 기슭에 이루어진 마을로 본래 돌이 많아서 '돌매', 토상촌(吐上村)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 토성계(土城谿)에 돌매못을 막은 후부터는 마을이 돌매못의 안쪽이 되므로 '못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제 때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못안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제내(堤內)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토상촌(吐上村)과 토성계(土城谿)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석산 기슭인 이 일대가 돌과 마사토로 이루어져 물이 계곡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거의 땅속으로 스며들어 샘물로 솟아난다. 이 샘물이 솟아난 곳에 못을 막았는데 이 곳을 토성계(土城谿)라고 했다. 그리고 이 마을이 마석산이 토해내는 샘물의 위쪽에 위치하므로 토상촌(吐上村)이라고 한듯하다. 그것은 샘물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을 북토리(北吐里)라고 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샘물을 마석산이 물을 머금었다가 토해내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돌매못은 돌매 동쪽에 있는 못으로 토상제(吐上堤)라고도 한다. 이 못은 남쪽 일부가 작은 동산에 잇대어 있을 뿐, 나머지 3면은 모두 둑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못이다. 일반적으로 못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유입수를 저장할 목적으로 유입수가 많은 계곡 아래의 좁은 골짜기를 가로막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돌매못은 산골짜기를 끼지도 않았고, 흘러드는 거랑조차도 없다. 샘물이 수원이기 때문이다. 물이 워낙 차고 맑아서 잉어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이 못을 언제 막았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또 토성계 즉, 샘못인 돌매못은 형산강과 태화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마석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곳에서 북쪽으로 난 뱀거랑으로 흐르면 형산강이 되고, 못 아래로 흘려 남쪽으로 흐르면 태화강이 되는 것이다.
♤ 산불초소봉(193.6m)
북토리에서 토성소류지로부터 내려오는 하천을 만나 왼쪽 둑을 따라 순지마을로 가야 하지만 어느 등로를 택하여도 작은 수로를 건너야 되므로 산자분수령을 지키기는 어려운 구간인지라 북토마을로 내려서지 않고 밀양박씨 표지석 지난 네거리에서 우틀하여 육의당 방향으로 진행한다. 제네마을에 도착하여 토성지 자연생태공원과 육의당, 석호정사 별장을 탐방하고, 제네2공단길을 걸어 장구방이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진행하다 큰 바위군을 지나 삼각점봉인 산불초소봉(193.6m)을 거쳐 장구방이 안부를 만나 지맥 등로로 합류한다. 장구방이 안부에서 원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에는 유난히 많은 무덤이 있다.
원고개에서 맥길은 원성사 표지석을 따라 직선으로 원성사 뒤편 능선 산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선답자 대부분 충효마을 괘릉동 표지석 오른쪽 도로를 따라 사슴목장 2km→ 안내판 옆 도로를 따라 들어선다. 과수원을 지나 절뒤로 들어서면 산으로 진행할 수 있게 길이 좋다. 절에서 제지하지 않으니 절 내로 들어가 첫번째 당우를 지나 좌측으로 진입하면 좋다. 원고개-감산사 2.4km는 포장도로를 따르는 구간이다. 마을길을 따르다가 감산사 갈림길에서 본격적으로 산길로 진입한다.
원고개에 있던 철로는 터널로 우회하고 제거되었습니다. 능포식당에서 청국장과 맥주를 말아먹고, 성황재를 그냥 지날 수도 있겠다 싶어 휴게소에서 꽈배기와 과자를 구입하여 출발합니다.
♤ 외동읍 괘릉리 원고개/ 굿모닝 휴게실
울산-포항간 철도와 7번 국도가 통과하는 경주시 시래동과 외동읍 괘릉리를 잇는 원고개는 왼고개, 왼곡, 어인고개, 영곡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 두 노승(老僧)이 불국사(佛國寺)를 향해 가다가 이곳을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웬 고개냐?’라고 물은 것이 왼고개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불국사역(佛國寺驛) 남방 1.2㎞ 국도변에 접하고 있다. 이 고개가 위치하고 있는 자미산은 울산만(蔚山灣)으로 흘러드는 동천강(東川江: 일명 禹朴川)과 영일만(迎日灣)으로 흘러드는 형산강(兄山江)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남쪽 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동천강을 거쳐 울산 태화강(太和江)으로 흘러가고, 북쪽 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경주의 남천(南川)과 서천(西川)을 거쳐 포항 영일만으로 흘러간다. 왼고개를 지도에서는 원고개라고 기재하고 있고, 현지에서는 웽고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7번 국도가 지나는 원고개에는 원성사와 '충효 마을 괘릉동(挂陵洞)'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우측에 '능포 미역국·추어탕' 음식점과 괘릉 입구 주차장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 괘릉(掛陵)/ 원성왕릉
괘릉은 경주 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약 12km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이곳 원고개에서 동남쪽으로 5~600m 정도 떨어진, 외동읍 괘릉리 산 17번지에 소재한다. 1845년에 간행된 <동경잡기>에, 이전에 알려졌던 신라 왕릉 10기 이외에, 괘릉을 포함한 20기의 왕릉이 추가로 언급되면서, 원성왕릉의 위치가 알려지게 되었다.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 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괘릉의 형태는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밑둘레 69m, 지름 약 22, 높이 7.4m이며, 능의 둘레에 있는 호석(護石)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돋을새김 되어 있고 그 주위로 돌난간이 에워싸고 있다. 봉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화표석(華表石), 문인석, 무인석과 돌사자를 좌우로 마주보게 세웠으며, 무인석은 서역인(西域人)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능은 신라 능묘 중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곡사(鵠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숭복사(崇福寺) 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왕릉을 만들었다. 별칭으로 괘릉(掛陵)이라고 부르는 것은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널[棺]을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掛陵里) 유래
약 400년 전 이만동(李晩童)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신라 제38대 원성왕릉(元聖王陵)이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능말, 능지촌(陵旨村) 또는 괘동(掛洞)이라 불렀다 한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계리의 상신리(上薪里). 하신리(下薪里), 영지리(影池里)의 일부를 합하여 괘릉리(掛陵里)라 하게 되었다.
- 괘릉동 회관앞을 지난다.
감산사 경내를 한바퀴 둘르고 싶었지만 사정상 산자락님이 올려주신 후기로 갈음했습니다. ^^
♤ 감산사(甘山寺)
감산사는 경주시 외동읍 ‘하이골’ 아래쪽 괘릉재(동산령) 기슭에 있는 사찰인데, 719년(신라 성덕왕 18) 중아찬(重阿飡) 김지성(金志誠)이 감산(甘山)에 있는 장전(莊田)을 희사하여, 부 인장(仁章) 일길간(一吉干)과 모 관초리(觀肖里) 부인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그 일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미륵보살상 1구와 아미타불상 1구를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이후 1915년 이곳에서 발굴된 불상(佛像) 2구는 각각 국보(國寶) 제81호인 석조아미타불입상(石造阿彌陀佛立像)과 국보 제82호인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으로 현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절터는 전답으로 변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인 감산사지삼층석탑과 석등(石燈), 대석(臺石) 등이 남아 있다.
- 감산사갈림길에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서 꾸준히 오르막길을 오른다. 직진하여 감산사를 잠깐 둘러봐도 좋다.
317m봉에 닿기 전에 지맥 왼쪽 아래로 괘릉저수지가 보입니다.
♤ 괘릉저수지
감산사 위쪽 대리곡 골짜기 입구에 외동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괘릉 저수지가 위치한다. 이 저수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고갈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1950년대 대물림되던 보릿고개를 벗어나기 위해 근동 주민들이 동원되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수지 둑을 쌓았는데, 완공 직전 1959년 영남지역을 초토화시킨 사라호 태풍의 영향으로 전부 유실되어 실의에 빠진 주민들은 하나 둘 울산공단과 포항공단으로 이주하였다. 이 저수지는 2001년경 정부에서 완공하였다고 한다.
♤ 456m봉/ 삼태지맥 분기봉/ 읍면계(외동읍 - 문무대왕면)/ 경풍루
경주시 외동읍과 문무대왕면의 면계이다. 지맥은 삼태지맥 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나 분기점에서 우틀하여 잠시 경풍루를 들르기도 하지만 장거리는 경풍로보다는 차라리 석굴암을 권한다. 한가한 날은 바다바람도 머물고 조항산, 토함산에서 날라오는 바람 쏘이는 곳이다. 경풍루는 말 그대로 경주 풍력발전단지에 세운 누대이다.
- 삼태지맥분기점 직전 양회임도로 나서서 좌틀한다. 오른쪽으로 삼태지맥 분기봉이 보인다.
♤ 경주시 문무대왕면(文武大王面)/ 舊 양북면
경북 경주시 동부에 있는 면으로 면내 곳곳에 토함산(745m)·조항산(596m)·형제산(531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며, 남동쪽은 동해에 면해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와읍리 일대에서 합류하여 대종천을 이룬다. 경지는 하천연안을 따라 분포할 뿐 평야의 발달은 미약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감나무·약초 재배와 산나물 채취가 많다. 원래 양북면이었으나 2021년 4월 1일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문무대왕면으로 개칭되었다. 유물·유적으로 기림사 경내에 기림사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기림사3층석탑 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경주감은사지(사적 제31호)·감은사지3층석탑(국보 제112호)·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 등이 있다. 면의 서북부는 경주국립공원 대본지구에 속하며, 봉길리에는 해수욕장이 있다. 영천을 잇는 국도가 면내를 지난다. 행정구역은 어일리·와읍리·용동리·권이리·호암리·안동리·장항리·범곡리·입천리·송전리·죽전리·두산리·용당리·구길리·봉길리 등 15개리가 있다.
♤ 삼태지맥(三台枝脈)이란
삼태 지맥(三台枝脈)은 호미지맥의 토함산 남쪽 5.9km 지점, 토함산목장 부근의 456m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경주 삼태봉(630.5m)· 울산 동대산(444.8m)· 무룡산(450.7m)을 지나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정자고개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마골산(297m)· 염포산(203m)· 망계산(85m)을 지나 울산 현대중공업 제2공장 화암문 안쪽에 위치한 동해 화암추 등대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44.6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호미지맥과 더불어 태화강의 북동쪽 울타리를 치면서 태화강의 하류에서, 역시 낙동정맥 정족산에서 갈래친 남암지맥의 끝과 마주한다. 호미지맥에서 분기해서 큰 굴곡없이 곧장 남쪽으로 내리 뻗는데 대부분의 마루금 따라 임도가 함께간다. 염포산을 전후한 구간은 울산시민들과 함께하는 공원길을 걷게되고, 마지막 방어진의 봉화재 아스팔트 도로 이후 꽃바위길은 도심지를 통과하게 되나 불과 1시간 이내의 짧은 거리다. 애석한 일은 산줄기가 물과 만나는 끝점이 현대중공업 회사 영역내라 물가에 내려설 수 없다는 점이다.
♤ 삼태지맥 개념도
♤ 경주풍력발전
경주 풍력발전은 토함산(석굴암 2km 이격)과 인접한 조항산(596m)에 1단계 7기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가동 중이며, 최근 2단계 사업으로 9기의 풍력발전기 설치를 위한 개발행위 허가를 경주시로부터 받은 뒤 공사 중이다. 2mW급 풍력발전기 16기가 설치되었다는데, 통상 풍력발전기가 자력으로 회전할 수 있는 시동 풍속은 초속 3m/s이고, 정격 출력을 생산할 수 있는 풍속은 초속 13m/s이며, 최대 운전 풍속은 초속 20m/s 까지라고 한다. 풍력발전기 회전자(날개) 직경(지름)은 82m이고, 허브(기둥) 높이는 80m이다.
♤ 경주시 문무대왕면 장항리(獐項里) 장항지
마을 앞산의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목, 장항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의거 경주군 외동면 상신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항리로 하였다.
지맥은 오른쪽 토함정사로 가는 갈림길에서 직진합니다. 토함산 관광목장-석굴암 매표소 구간은 포장도로를 따르는 구간입니다.
♤ 토함정사
토함 정사는 30년 넘게 도자기를 빚다 불가에 귀의한 대호 박병석(토함 정사 주지)의 작은 사찰이다. 본당이 양옥집이라는데, 마당에는 특이한 형태의 마애 석불들이 전시되어 있고, 전통 자기와 생활 자기 전시장이 있다. 토함 정사 지하 아래로 4번 국도 터널인 '토함산 터널'이 지나가고 있다.
♤ 불국사갈림길
토함산 솔밭가든 입구로 나서면 불국로이다. 불국로를 따른다. 도로와 맥길이 같이간다. 불국사-석굴암삼거리 갈림길을 지나 석굴암주차장으로 이어진다. 도로 옆 혹은 도로에 붙여 놓은 '19년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대회' 안내 표지를 지나는데, 이 행사는 11.09(토) 18시 부터 익일 13시까지 진행되었는데, '신라의 달밤 165리 걷기대회'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경주 일대를 달밤에 함께 걸으면서 천년의 역사 속에서 신라의 숨결을 함께 느끼고 걷기의 생활화와 극기체험을 통하여 강인한 체력단련과 호연지기를 키우고자 하는 취지에서 2000년부터 시행되어 온 연례 행사다. 걷는 거리로 풀코스는 165리(66km)이고, 단축 거리는 75리(30km)이다.
경주시내로 석굴암을 오가는 노선버스가 자주 있는가 봅니다.
♤ 석굴암주차장
왼쪽 매표소 뒤로 탐방안내소가 있고 지맥은 그리 진행한다. 지맥 길을 벗어나 국보 제24호 유네스코문화유산 석굴암을 둘러 보는 총거리는 1.7km로 약 30분 소요된다.
- 탐방비 5,000원
♤ 석굴암 통일 대종
석굴암 통일 대종은 불국사 주지 월산성림의 주창에 따라,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면서, 겨레의 숙원인 남북통일의 대업과 불교의 세계화· 인류화를 이룩하는 뜻을 새기며 6천만 겨레의 마음을 담는 그릇을 만들고자 6천관의 쇳물을 녹여 만들었다. 대종은 성덕대왕신종의 소리 형태 및 조각 등을 참고하여 제작에 들어가 두 차례의 실패 끝에 불기 2532년(1988년)에 비로소 시타에 성공하였고, 익년 4월 통일 대종의 타종식을 올렸다. 재질은 청동으로, 크기는 종신고 393cm, 구경 236cm, 용두 95cm, 무게 23.5톤, 고유진동수 62.5hz이다. 종각 옆에는 '통일 대종 타종 시 1,000원 이상을 내고 타종하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난데없이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곤 한다.
일주문의 「吐含山石窟庵」 현판은 서예가 송성용의 글씨다.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은 한국서예의 독자적 경지를 이룬 호남을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유학자이다. 일찍이 전, 예, 해, 행, 초 5체는 물론이고 대나무, 난초, 매화, 국화, 소나무, 파초, 괴석 등 다양한 소재의 문인화에 일가를 이루었다. 그는 서예뿐만 아니라 민족의식이 강한 유학자로, 일제시대 창씨 계명을 하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보발과 한복을 지키며 한평생 선비로서의 강직함을 지키면서 보냈다고 한다. 강암 선생의 작품으로 호남제일문, 내장산내장사, 토함산석굴암, 두륜산대둔사, 불국사자하문, 불국사불국선원,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 연지문, 금산사보제루, 백양사화엄전, 화엄사적멸당, 금오산향일암, 동춘송선생유허비, 신도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 석굴암 석굴[慶州石窟庵石窟]/ 국보 제24호/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이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재위 742~765) 재위 당시 751년(경덕왕 10년) 재상 김대성(金大城)이 처음 건립하였는데, 당시에는 석불사(石佛寺)라고 불렀다. 경덕왕 때에는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황룡사 대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만들어져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석굴의 평면 구조는 앞쪽이 네모나고 뒤쪽은 둥글다. 석굴에는 본존불(本尊佛)을 중심으로 천부상(天部像)· 보살상(菩薩像)· 나한상(羅漢像)· 거사상(居士像)· 사천왕상(四天王像)· 인왕상(仁王像)·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 사원과는 달리 화강암을 인공으로 다듬어 조립한 이 석굴은 불교 세계의 이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세련된 조각 솜씨가 어우러진 걸작이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둥근 형태의 주실 천장을 교묘하게 축조한 것이다. 이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드문 뛰어난 기술이다.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했다고 전하는 석굴암은 실라 예술의 극치이자 동양 불교미술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안내판 내용] 참고로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세웠다고 한다.
성화 채화지를 지납니다.
♤ 추령갈림길 삼거리/ 삼리동봉(문무대왕면 범곡리, 경주시 진현동 → 마동)
이정표가 있다. 토함산에 올랐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와 추령으로 향해야 한다. 맥길은 토함산 정상 부근에서 비탐방구역을 300m 진행하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등로와 만나는 탐방구역으로 진행하게 된다.
♤ 문무대왕면 범곡리
토함산 중턱 해발 220m 지점에 자리한 범곡마을이다. 조금 더 위쪽 해발 300m 지점에는 상범곡 마을까지 있는데 세상과 단절된 듯한 산간오지다. 바로 위에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석굴암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격리감이다. 무릇 범(凡) 자를 쓰지만 원래는 범골 혹은 호랑이골이었을 것이다. 산이 깊으니 100년 전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했을 것이고 일제는 안전을 이유로 한반도에서 호랑이를 소탕했는데, 1922년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잡힌 곳이 바로 토함산 서쪽 대덕산(320m)이었으니 토함산은 한국 호랑이의 최후 거점이기도 했다.
경주국립공원은 토함산지구, 동대봉산(무장산)지구, 남산지구가 있습니다. 토함산에서부터 경주시 황용동과 문무대왕면의 경계를 따라 함월산 이후까지 계속 이어갑니다.
♤ 토함산(吐含山, 745m)/ 삼면동봉(경주시 마동, 황용동, 문무대왕면)
토함산은 경주시 황용동·마동과 문무대왕면 범곡리 사이에 있는 경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경주에서는 단석산(斷石山, 827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신라인의 얼이 깃든 영산으로 일명 동악(東岳)이라고도 불리며, 신라 5명산 중의 하나로 예부터 불교의 성지로 자리 잡아 산 전체가 마치 하나의 유적지로 보일 만큼 유물과 유적이 많다. 또한 소나무, 참나무 숲으로 덮여 녹음이 짙다. 토함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토함산과 인연이 깊은 탈해왕의 이름과 비슷하다는 견해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탈해는 “한편 토해(吐解)라고도 한다”고 했는데, 특히 『삼국유사』에서 토해라고 많이 쓰고 있다. 토해와 토함은 유사음이니 토함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토함산의 경관에서 연유한 것이다. ‘안개와 구름을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산’이 토함산이다. 정말로 이 산이 동해와 가까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바다의 습기와 바람은 변화무쌍하여 지척을 분별 못할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여 잇단 봉우리와 소나무 숲이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루기도 한다. 토함산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자리해 남산과 비슷하게 골골마다 향 내음 그윽한 불국토 같고, 경주시내에서 올려다 보여 친근감을 준다. 하지만 주능선을 넘어선 동사면은 완전히 딴판이다. 폐허만이 남은 장항리사지 외에 유적은 거의 없고 울창한 숲과 인적 없는 계곡만 가득하다. 석굴암이 동사면에 있다고는 하나 불국사에서 주능선을 넘어선 정상 바로 턱밑에 있어 별개의 공간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토함산에서 불국사와 석굴암만 제외하면, 신라 천년을 장식한 역사와 진한 불교적 색채는 돌연 사라지고 아무러 치장 없는 날것 그대로의 원시 자연만 남는다.
- 넓은 토함산 정상에 정상석 2개와 2등삼각점(불국사 24/ 1989),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복구토함산 정상을 나서서,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직진으로 내려선다. 우측 아래 헬기장이 있다. 갈림길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목책 앞으로 정상 지맥길로 보이는 넓은 등산로가 보인다.
♤ 486m봉/ 삼리동봉(경주시 황용동, 문무대왕면 범곡리 → 장항리)
토함산 아래 추령 갈림길에서 지금까지 동쪽으로 진행해 온 기맥 길은 이 봉에서 북향으로 바뀐다. 데크 계단길을 짧게 올라서면 이정표[←추령 1.3km, ↓토함산 1.7km/ 석굴암 주차장 2.5km]와 위치표시[경주 22-03, 해발 486m]가 함께 붙어있는 봉우리이다.
- 좌틀하여 데크 계단길을 길게 내려선다.
대문으로 들어서서 백년다원 건물 게이트 앞에 있는 두꺼비가 물을 뿜고 있네요. 허락을 득하고 식수를 준비합니다.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지구 입구로 나서서 백년다원 건물 앞을 지나 출입구 쪽으로 나갑니다. 추령에서 포항시 경계까지 비탐방이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통과해야 합니다.
♤ 추령(楸嶺, 310m)/ 가내동재
경북 경주시 황룡동과 문무대왕면 장항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가래나무 楸자를 써서 가내동재라고도 한다. 1998년 고개 밑으로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국도 4번 길이 이어져 제법 붐비는 고갯마루였으나 지금은 인적이 뜸해져 간혹 찾는 아베크족이나 산꾼들이 지나가는 고개로 남게 되었다. 토함산의 북쪽에 있으며 경주국립공원 토함산 지구에 포함된다. 서쪽에 보문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남쪽에 석굴암(국보 제24호)·불국사(명승 및 사적 제1호), 북쪽에 기림사·골굴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 등의 유적이 있다. 추령에 얽힌 이야기는 신라시대로부터 현대까지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도 많다. 문무왕과 신문왕이 추령을 넘어 동해로 이어지는 길을 오가며, 백성의 안위를 걱정한 이야기는 대표적이다. 문무왕이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을 지키고자 넘었던 길, 신문왕이 문무왕의 뜻을 따라 감은사를 짓기 위해 넘었던 길, 신문왕이 옥대와 만파식적(萬波息笛: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날이 개는 등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함)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오던 길이 ‘왕의 길’이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감은사에서 기림사를 지나 용연폭포, 불령봉표, 수렛재, 추원사, 모차골, 추령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이 등산로로 정비되어 있다.
- 백년찻집 앞에서 약간 왼쪽 아래의 오른쪽 편이 들머리다.
♤ 494.2m봉/ 삼각점봉/ 묘지봉
지맥에서 약간 왼쪽에 위치하여 왕복해서 다녀와야 한다. 묘지 넘어가 헬기장이고 헬기장 가장자리에 삼각점이 있다.
♤ 수렛재/ 네거리 안부
이 고개는 '왕의 길'이 지나는 고개다. 신라 때 신문왕이 문무왕의 뜻을 따라 감은사를 짓기 위해 지난 길이었고, 옥대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왔던 길이기도 하였는데, 감은사에서 기림사를 지나 용연폭포, 불령봉표(佛嶺封標)를 지나 이곳 수렛재를 거쳐 추원사, 모차골, 추령을 넘어 토함산으로 이어지는 왕의 길이 등산로로 정비되었다. 이정표는 내려 선 방향에서 보아 좌측 1.4km 지점에 모차골이, 우측 2.5km 지점에 '용연폭포'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우측 '용연폭포' 방향은 세수방(신라 신문왕이 긴 여정에 잠시 쉬며 손을 씻었던 곳이라 함), 원동리로 내려가는 계곡길이기도 하다.
♤ 대종천
큰 종(鐘)을 뜻하는 대종천은 13세기 몽골군이 황룡사에 있던 종을 배로 옮겨가다 풍랑을 만나 가라앉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임진왜란 때 왜군의 소행이라는 설도 있음). 대종천 하류에는 문무대왕을 기리는 감은사와 이견대가 있고 하구 근처에 문무대왕릉(대왕암)이 있어 죽은 문무대왕이 종을 지켰다고도 전해온다. 에밀레종의 4배나 된다는 황룡사 종을 실은 배가 지났다지만 지금의 대종천은 시무내천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말라 허옇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 함월산(含月山, 584m)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면 호암리에 있는 산으로 달을 머금은 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일설에는 천(天)의 본뜻인 '한밝'이 한박(寒朴) 혹은 함박(含朴)으로 되었으며 함월(含月), 즉 함달[含月]도 함박에서 분화된 말이라고 한다. 달을 삼키는 함월산은 경주국립공원 토함산지구에 속한다. 추령을 사이에 두고 품은 해를 토해내는 토함산과 마주하여 솟아있는데, 이 산이 유명한 것은 산세의 수려함 때문이 아니라 산자락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기림사와 석굴사원 골굴사를 품고 있어서다. 기림사는 골굴사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그 옛날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위치가 역전되어 불국사의 말사로 있다. 연꽃 모양 산세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는 기림사는 경주 시내에서 거리가 멀고 교통편이 불편하지만 소장 문화재만 본다면 불국사에 부족함이 없다. 남쪽은 추령(楸嶺)을 지나 토함산(吐含山), 북쪽은 운제산(雲悌山)으로 이어진다. 정상 부근은 바위가 많아 험준하지만 대부분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망이 좋아 정상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보물 제833호),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삼신불(보물 제958호), 복장유물(보물 제959호) 등이 소장된 신라의 유서 깊은 절 기림사(祇林寺)와 암벽에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을 새겨놓은 석굴사원 골골사(骨窟寺)가 있다.
- 넓은 정상에 초라한 나무 정상석이 서있다. 급좌틀하여 내려선다.
♤ 기림사(祗林寺)
기림사는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호암리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인도 승려인 광유(光有)가 창건하고 이름은 임정사(林井寺)라고 했다. 643년에 원효가 중창한 뒤 기림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기림사는 석가모니 생존 때 세워졌던 인도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기'자를 따와 붙인 이름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서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았다는 전설이 실려 있는데, 이때 신문왕이 귀환하는 도중에 기림사 서쪽 계곡에서 점심을 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창건 연대는 적어도 신문왕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지은 감은사의 터나 문무왕릉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요충지라 승병 운동의 중심지였다. 조선 철종 14년인 186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한 건물이 남아 있다. 보물 415호인 건칠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소조비로자나삼존불, 기림사 삼층석탑, 목탑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불전 양식을 볼 수 있는 대적광전, 김시습의 사당인 매월당사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문적과 어필이 다수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절에는 원래 오정수(五井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 중 장군수(將軍水)는 마시면 힘이 용솟음친다 하여 인근에 널리 알려졌는데, 조선시대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역적모의를 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샘을 메워버렸다고 한다. 나한전 앞쪽 탑 자리에도 샘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또 하나는 절 입구에 있었으나 최근 도로확장 때 매몰되었으며, 현재는 큰 방 옆과 아랫마을에만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였으나 조계종에서는 불국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 591.4m봉/ 삼읍면동봉(문무대왕면 호암리, 경주시 암곡동 →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시계/ 삼각점봉
591.4m봉은 삼읍면동이 갈리는 봉우리로, 지금까지 좌 경주시 황용동, 우 경주시 문무대왕면을 가르며 이어온 지맥길이 이 봉에서 경주시 암곡동, 포항시 남구 오천읍을 만나, 이후 북동향 하면서 좌 포항시 오천읍, 우 경주시 문무대왕면을 가르며 성황재로 이어진다. 지맥의 왼쪽은 여기부터 포항시 남구 오천읍을 만나 세계원재 직후 통점마을 직전 임도까지 길게 계속된다.
삼읍면동봉에서 잠시 내려서다 다시 올라선 595m봉에서 좌측으로 보면, 무장산과 산허리에 옛 '오리온 목장'이 조망되는 곳입니다.
♤ 무장산(鍪藏山, 624m)
무장산은 1990년대만 해도 경주시민들도 잘 모르는 해발 624m의 평범한 산이었다. 이 산이 유명해진 것은 정상인 무장봉 일대에 있는 억새 군락지 덕분이다. 1970년대 초부터 동양그룹이 운영한 오리온 목장이 1980년대 비업무용 토지 강제 매각 조치에 따라 모 축산회사에 팔려 1996년까지 운영되다가 문을 닫은 뒤 목초지에 억새 군락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면 계곡 단풍과 정상부 148만여㎡ 땅에서 억새가 흩날리는 장관이 점차 입소문을 타게 되었는데, 드라마 '선덕여왕'과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와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촬영된 곳으로 알려지면서 탐방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맑은 날에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떨어진 포항 시가지와 동해도 볼 수 있다. 산 중턱에는 무장사지가 있는데, 무장사터는 경주시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깊은 산골에 있으며,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병기와 투구를 매장한 곳이라는 뜻으로 ‘무장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즉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스러운 시대를 열겠다는 문무왕의 결연한 의지가 이 절을 창건하는데 큰 힘이 되었고, 또한 절 안에 3층석탑을 세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현재 무장사지 삼층석탑과 귀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 오어지(吾魚池)
포항시 남구 오천읍 포스코산업단지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 운제산(482m)에 오어사(吾魚寺)와 약 12만 평의 오어지(吾魚池)가 있다. 이곳에는 자장암과 대왕바위가 있는데 자장암은 신라 때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암자로 특히 자장암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운제산에 둘러싸인 오어사와 가을 햇빛에 반사된 오어지의 금빛 물살이 형형색색의 단풍과 조화돼 비경을 이룬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579-632)때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로 신라 정신을 이끈 원효·혜공·의상·자장 등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천년 고찰이다. 현재의 오어지(池)는 운제산 계곡을 막아 만들어졌지만 원래 저수지 자리에 오어사가 있었다고 한다. 오어사가 옮겨진 뒤 초기에는 길이 없어서 배를 타고 오어사를 왕래할 수밖에 없었다. 신라시대의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법력으로 개천의 물고기를 생환토록 시합을 한 전설 즉, 불력을 시험하기 위해 물고기를 먹은 후 생환하는 시험을 한 결과, 한 마리는 물속 깊이 유유히 사라졌고 다른 한 마리는 물 위에 놀고 있었다. 이에 두 스님은 물 위에 있는 고기를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고승이 자신을 뽐내기보다 서로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를 지칭하는 '오(吾)'와 고기어(魚)'자를 써서 오어지, 오어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물고기를 잡아 한 마리씩 삼키고 변을 보았는데 한 마리가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해서 나를 뜻하는 나 오(吾)와 고기를 뜻하는 물고기 어(魚)를 붙여 이름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 481.9m봉/ 시경계(경주시 문무대왕면 - 포항시 남구 오천읍)
산사태 절개지역을 지나 오르는 묵은 헬기장이다. 멀리 포항시내가 조망된다. 남쪽 작은 함월산 방향으로 내려서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틀한다. 직진하면 정상석이 있는 작은함월산(465m)으로 알바다.
지맥길은 경주시 문무대왕면 권이리와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리의 시계이자 읍면계를 따라 북향합니다. 오천읍으로 나갈려면 성황재에서 왼쪽방향으로 오천읍 진전리버스정류소(종점)까지 45분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 성황재/ 14번국도/ 포항시-경주시 경계지점/ 간이휴게소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리와 경주시 문무대왕면 호암리를 잇는 성황재의 넓은 수렛길을 만나 성황재에 내려서지만 14번국도 기림로로 나서는 입구에 철망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펜스를 따라 내려가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드레일을 넘어 좌측 아래로 약간 내려서면 진전리에 있는 성황재 간이휴게소다. 성황재는 국도 14번 호선이 지나는 고개로 '거제-포항선'이라고도 한다. 고개 북쪽 아래에 휴게소가 있다. 지금은 고개 밑으로 울산-포항 간 65번 도로인 동해고속도로의 양북 5터널이 이어지고 있어서, 한산한 고개로 바뀌었다.
- 성황재의 '급경사 구간' 교통 표지판이 있는 절개지로 올라서는 것이 들머리다. 절개지 우측의 임도로 들어서도 바로 합류하게 된다.
♤ 옛 성황당(城隍堂)고개/ 안부
산판임도 끝까지 가서 왼쪽으로 등로가 있다. 399m봉 직전 갈림길에서 15분여 길게 내려서면, 문무대왕면 권이리 세바시골에서 오천읍 진전리 음지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돌무덤이 있는 성황당고개를 지난다.
♤ 403.5m봉 산사태지역
경주 지역에서는 지난 2016년 9월 12일 경주시 남남서 쪽 8km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은 1978년 대한민국 지진 관측 이래 역대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대한민국 내륙 지진으로는 1978년 홍성 지진 이후 38년 만의 대형 지진이며, 한반도 내륙 지진으로는 1980년 평안북도 지진 이후 36년 만의 대형 지진이다. 또한 2017년 11월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였는데,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한 바 있는데, 이 포항 지진 원인 등을 조사해온 정부 연구단은 2019년 3월 20일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이 사태 지역이 경주 혹은 포항 지진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지진 발생 훨씬 이전부터 일어났다고 하므로 지진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듯하다.
♤ 시경계/ 삼면능선(포항시 남구 오천읍, 경주시 문무대왕면 → 남구 장기면)/ 연대분맥갈림능선
이 갈림 능선이 삼면읍이 갈리는 곳이자 경주시계를 벗어나 온전히 포항 시계로 들어서는 지점이다. 즉 지금까지 좌측으로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리(陳田里), 우측으로 경주시 문무대왕면 권이리(權伊里)를 가르며 진행해 온 맥길은 이 지점에서 좌틀(북향)하여 온전히 포항 시계 안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왼쪽은 여전히 진전리고 오른쪽은 포항시 남구 장기면 산서리(山西里)를 가르며 이어진다.
-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능선 위에 오르면, 이정표가 서 있는 경주시 경계의 상단이다. 왼쪽 '제1기동 사격장/ 10.8km' 방향이 지맥 길이다.
♤ 포항시 남구 장기면(長鬐面)
해안경관이 빼어나며, 경주시와 경계지점으로 포항시의 최남단이며 14.5km의 긴 바다를 낀 어촌12개마을과 농촌21개 마을이 있으며 어촌에는 우렁쉥이, 미역이 풍부하며 해풍이 만나는 육지에는 산딸기(복분자)가 유명하고 문화재로 장기읍성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성문 3개의 읍성으로 국가사적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 서원, 장기모포줄, 척화비등 문화유적이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다. 장기는 지답현(只沓縣)으로 출발하여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기립현으로 개명되었다가 고려조 현종 9년(1018)부터 장기현으로 불렀다. 1011년 장기성을 쌓고 1290년 군량과 마초를 저장했으며 조선조 세종 21년(1439)에는 성을 다시 쌓고 수직군(水直軍)이 주둔하는 등 장기는 흥해, 연일, 청하와 함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점철된 포항을 대표하는 역사의 고장이다. 또 현재의 구룡포읍과 호미곶면을 포괄했던 포항 역사의 뿌리이자 원형질 같은 고장이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장기로 결정된 유배인은 모두 149회 200여 명에 이른다. 장기는 조선조의 대표적 유배지(流配地)로 당대의 실세 정객들이 장기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중앙의 고급 문화와 최고 수준의 학문(유학)을 유포했다. 특히 유교의 대가인 송시열, 실학파의 태두인 정약용 등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지역 선비들을 교육하여 장기를 유학의 고장으로 변화시켰다. 아울러 송시열을 기리는 죽림서원(竹林書院) 등이 세워지는 등 동일지역 내에서 가장 많은 서원이 운영되는 등 장기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유학이 꽃을 피운 포항정신문화의 본산이 아닐 수 없다. 장기는 신라 때부터 국방의 일익을 담당한 군사기지로 그 역할을 다했던 충절의 고장이다. 고려조 현종 때 동여진(東女眞)의 침공을 격퇴했고, 조선조 태조5년(1396)에는 침입한 왜구를 괴멸시켰다. 세종은 모포에 병선 8척과 병사 6백여 명을 주둔시켰으며 종4품 벼슬인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다. 현감이 종6품임을 감안할 때 상당한 고위직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의병들이 소봉대 앞바다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등 역내에만 6개소의 봉수대가 있었던 국방의 전진기지였다. 이렇게 장기는 외적의 침입에 결사 항전했던 충절의 고장으로 후손들에게 호국의 견학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 연대분맥이란
아울러 경주와 포항시 경계 능선은 오른쪽(동남향) 406.2m봉 쪽으로 이어지는데, 이 능선은 연대분맥이다. 연대분맥은 이 갈림 능선에서 동남향으로 이어져 삿갓봉, 연대산을 지나 동해에서 맥을 다하는 길이 21.75km의 맥길이다.
♤ 만리성산(萬里城, 427m)/ 만리봉산
경북 포항시 오천읍 진전리와 갈평리 그리고 장기면 산서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이다. 돌 축대를 쌓아 조성한 묘지로 올라서서 보면, 망주석이 세워져 있는 '가선대부 도은(陶隱) 김공' 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좁다란 소로를 따라 몇 발자욱 떼면 만리성 정상이다. 해병대 1사단 체력단련 코스다. 만리성 오석 정상석이 서 있고, 해병 훈련 깃발이 설치되어 있다. 만리성 봉우리 위에서 북쪽 영일만과 포항시 방향을 조망해 보고, 진행 방향으로 묘봉산을 가늠하고 우틀로 내려선다.
- 3등삼각점(불국사 307/ 2007 재설)이 있다.
♤ 묘봉산갈림길/ 오른쪽으로 120m 묘봉산
군인들이 조성해 놓은 임도급 산길에서 묘봉산 갈림길을 만난다. 묘봉산' 갈림길에 석남사와 정상 나무 팻말이 옆 소나무에 달려 있다. 지형도에도 없는 묘봉산은 호미지맥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지만 동해바다가 장쾌하게 조망돼 한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오른쪽으로 20m쯤 가면 바닥에 석남, 갈평 이정표가 떨어져 있다. 다시 묘봉산 갈림길로 돌아가 침목을 댄 오른쪽 내리막길로 향한다.
- 손글씨 안내판이 소나무 둥치에 달려 있다. 세계원재 6.5km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군인들의 넓은 행군로가 계속된다.
♤ 묘봉산(妙峰山, 361.5m)
경북 포항시 오천읍 갈평리와 장기면 방산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나즈막한 산이다. 묘봉산은 호미지맥에서 오른쪽으로 약 120m 벗어나 있지만 포항항을 비롯하여 영일만 일대를 훤히 굽어볼 수 있을 만큼 시야가 트이는 곳이다. 남포항클럽에서 세운 1.5m 높이의 바위 옆에 361.5m라고 적힌 조그만 오석 정상석이 서있다. 정면엔 동해바다, 반대쪽엔 운제산, 보이지 않지만 우측이 호미곶 방향이다.
♤ 뒤뜸이재
방산 저수지 0.6km 갈림길에서 직진의 제1기동사격장 3.5km 방향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면 뒤뜸재 안부이다. 뒤뜸재는 뒷동네라는 뜻의 뒤뜸으로 뒷동네 재를 말하는데 이곳에선 길등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최근에 설치된 듯한 튼튼한 군부대 펜스가 시작되는 곳에서, 펜스 오른쪽 넓은 임도를 따라 진행해 나가다 해병에서 돌탑을 쌓은 곳이 나오는데 그곳이 뒤뜸재라고 한다. 해병 부대 펜스 출입문이 열려있는 곳에서 펜스 우측으로 난 등로를 따른다. 원 지맥능선은 군부대 훈련장이라 군부대로 들어서지 않고 우측 능선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 포항시 남구 오천읍 문충리(文忠里)
월미산 용봉 아래에 있는 문충리는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며 태어난 곳은 영천이씨 집안 출신인 모친의 친정인 영천 임고에서 출생하였고 7세까지 영천에서 기거하다가 문충리로 왔다는 설과 문충리에서 출생하여 영천으로 갔다는 설이 있다. 후에 포은의 고향 문충리에서 문충곡(文忠谷) 팔경을 소개한 글을 남겼고 문충리는 예로부터 선비들의 학문이 터전이요 훌륭한 인재를 배출한 선비촌으로 옛 지명에서도 고려시대 사거리(士居里), 삭거리(索居里)라 불려졌고 신라시대에 이곳 출신이 태사자(太師者)란 벼슬을 했다고 하여 사거리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고려조의 마지막 충신이며 본관은 영일(연일), 시호는 문충으로 이 지방 오천읍이 공의 고향이다.
♤ 삼봉산(三峰山, 290.5m)/ 삼각점봉/ 50m 떨어져 있다.
경북 포항시 오천읍 용산리와 장기면 방산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세개 붙어서 삼봉산이라고 부른다. 군부대 울타리 초소를 만나는 지점에서 멈춰 다녀와야 한다. 왼쪽으로 포항시내 조망이 좋다.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있다.
- 경고문 뒤로 정상에 오르고 정상에서 왼쪽으로 숲을 헤치고 5분 정도 내려서면 행군로를 만난다.
원형 철조망을 지나 내려서면, 다시 군 펜스가 좌우를 가르는 곳으로 내려선다. 솔밭재를 우회해야 한다. 펜스 왼쪽으로 '객개전투' 교육장이 보인다. 각개전투장 안으로 진입하면 나갈 방법이 없다. 군부대 울타리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내려서야 한다. 밭가장자리 우측으로 나가 대나무밭 옆 임도를 따라 나가면 아스팔트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난다. 군부대 울타리로 도로를 따라 왼쪽 언덕을 넘어 내려선다. 왼쪽 편에 해병부대 '각개전투교장/ 침투교장'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해병대 제1기동 사격장 출입문이 굳게 잠겨있다. 마루금은 사격장을 지나는데 간혹 빗장이 열려있기도 하다. 장승백이 교차로'로 내려서서 좌틀 한다. 넓은 929번 도로의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원래의 지맥 길이 지나는 장승백이 마을 방향으로 진행해 간다.
장승박이 마을 뒤 대나무숲을 약간 헤맸습니다만 그냥 마을 안쪽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게 편할것 같습니다.
♤ 세계원(世界阮, 122m)재/ 장승백이마을/ 면계(장기면 - 동해면)/ 주유소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세계리와 장기면 정천리를 잇는 경계이다. 옛날 장승이 서있던 곳이라 하여 장승박이 또는 장승백이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버스정류장 명칭은 정천(井泉)이다. 들머리는 장기면 정천리 장승백이 마을 입구 '장기로 1404번 길 1' 주택 우측 마을 안길이다. 들머리 서쪽(왼쪽)에는 31번 국도와 929번 지방도가 교차하는 ‘세계교차로’가 위치하며, 이곳 지명이 '세계원재'라고도 부른다. 세계(世界), 세계원(世界阮), 혜제(惠濟), 혜제원(惠濟阮)은 신라 때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일월지에 제사를 지냈더니, 그 빛이 고지대인 이곳에 제일 먼저 비쳐 온 세계가 환하게 되었다고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 마을 인가 수도에서 물보충이 가능하다.
♤ 포항시 남구 장기면 정천리(井泉里)
정족산의 북동쪽으로 펼쳐진 참샘이, 장승박이, 퉁점을 정천1리라 하고 냉천마을을 지나는 하천과 죽정에서 흐르는 하천과 만나는 지점에 정천2리에 속하는 하정이 있다. 서로는 오천읍과 북으로는 동해면과 경계를 이룬다. 정천리에는 운천 김윤찬의 효자비와 백운 김광화의 충절 유허비 및 만취 이헌칠을 기리는 이요정이 있다.
※ 1구간에 진행한 세계원재~흰날재 구간은 사진 초과로 인해 2구간 후기에 올려두겠습니다. 산행후기에 올리지 않은 산패는 모두 트랙에 저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가끔 한번에 대포를 쏘시는 풍라라님 대단 하십니다
날씨도 좋고 그래도 지금은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지요
조금 지나면 잎이 나고 가시들이 번성하면 모두들 힘들겁니다
역사가 깊은 경주를 통가하시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나홀로 산행 정말 멋짐니다
늘 안산 즐산 하시고 봄 모임때 뵙겠습니다^)^
와룡산선배님!
길이 워낙 좋아 슉슉 잘 나갔습니다.
토성소류지 토상지쉼터에 이르러,
오른발 뒤꿈치에 물이 잡혀 부직포를 발랐지만 효과가 없어 드레스밴드를 붙이니 괜찮았습니다.
아주 멋진 호미지맥이네요.
하지만 아직도 경주 남산과 토함산의 방위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거리가 20km, 90%가 임도라고 하니 다 간거나 다름 없습니다.
모임에 방가이 뵙고 술 한잔 올려드릴께요. 감사합니다.^^
대단하신 퐁라라운영자님
연 삼일동안 107km가 넘는 장도를 산하와 동요되셨네요.
추억의 낙동정맥 백운산을 지나 삼강봉 분기점에서 출발, 결국 토함산까지 내려서셨네요.
석굴암 일주문을 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거침없이 진행된 멋진 발자취를 남긴 셈입니다.
100km 이상의 주요 산줄기도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힘든 여정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장님!^^
처음 계획으로는 할 수 있을까 의문쩍었지만 막상 들이대니 가능했습니다.^^
특히,
마석산에서 우회하는 제내리가 치술령과 관련된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집이 있었던 곳이라고도 하네요.
즉 제(堤)의 위(上)에 사는 사람입니다.
당연 신라 눌지왕 박제상(363~419) 시절에도 제내리에 토성못이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했습니다.
인공으로 조성한 못은 틀림없으니 산자분수령에 관계되는 물을 건넌다는 의미와는 무관하구요.
마석산에서 장구뱅이로 넘어가는 산줄기는 토성소류지에서 흐르는 하천으로 인하여 그 형체가 없어졌다고 봐야 하겠더군요.
마석산에서부터 제내리를 지나는 일부 내용을 보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100km가 넘는 호미지맥을 2박3일에 걸쳐 한방에 해치우셨나 봅니다.
우리는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이제는 언제갈지 모르는 산줄기가 되엇습니다.
뒷 애기도 함 바야겠습니다.
ㅋㅋ 부뜰성님!
한방은 저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구룡포 관광과 잘 버무려 보려고 말미를 약간 남겨두었습니다.
한방에 하면 왠지 서운하자나요.^^ 그래도 꽤 많이 간 셈입니다.
중간중간 물이 있는 곳은 최대한 찾아서 기록을 유지하려 한답니다.
물을 구할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어야 짊어지고 가는 물의 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술령 정상의 참새미샘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용기에 고인 물인데 개구리가 뒤집어져 허우적거려 음용할 수 없었습니다.
치술령 넘어선 안부에도 약수터 표시가 있던데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성황재 휴게소도 물을 포함 음료수를 판매할려다보니 음용수를 따로 구할 수 없었습니다.
24시간 사람이 상주하는게 아니고 낮에만 와서 장사하고 밤에는 퇴근하는 모양이더군요. 다시 말해 늦게 도착하면 아무 것도 구할 수 없습니다.
난도는 그다지 없습니다. 잡목도 없고, 전체 60%가 임도를 걷는다고 보면 되겠더군요. 크게 부담갖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호미지맥 졸업은 언제 하시려나?
넵! 다음 주 주중에 출격합니다~^^
범산선배님!
범산선배님도 토성못을 충분히 고민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셨군요.^^
저도 그 지형을 이해하려 전,중,후로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미분적 사고보다는 적분적 사고로 보아야 답이 나온다 였습니다.
마석산에서 산불감시초소 능선으로 넘어가는 제내, 지초, 신원, 순지마을을 둘러싼 지형이
농사를 지으며 물길을 내고, 농토를 확장하다보니 얕은 구릉지는 우공이산격으로 없어졌습니다.
신라 박제상 이전부터 저 토성못이 있었구요.
미분적 사고로는 마석산을 내려서서 토성소류지를 건너는 사라진 지형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고로,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만 받아들인다면 2번이 맞습니다.^^
그러나 전체 지형을 이해한 산꾼이라면 1,2,3,4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게 제가 말하는 적분적 사고입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호미지맥 길게도 이으셨네요 삼강봉 낙동정맥으로 호미지맥으로 감회가 새롭고 포항 해병대 훈련로길과 겹치는 호미지맥 1구간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항상 궁금했는데 그분과 같이 오신다니 더 반갑습니다. 언능 꼬랑지 달으세요~^^
말도 마십시요!
저기 성황재 철조망에서 스틱과 배낭을 도로에 던지고 문을 넘는데,,,
아 글쎄 상단에 가시철조망이 한가닥 있는데 그게 거시기에 껴가지고 빠지지도 않고,,,
뿡알이 절단날 뻔 했습니다. ㅋ~
며칠 지나고보니 사타구니가 가시철조망에 두군데가 찔려서 고름이 잡히는지 통증이 감지되더군요.
염증완화제와 소염진통제를 사먹고, 소독약도 바르고 있습니다.
다행히 파상풍 주사는 덕산지맥 때 손가락 꿰매면서 맞았습니다.
한밤중에 힘이 다 소진된 상태에서 넘다보니,,,, 주위에 도움을 바랄 아무것도 없는데 아찔했습니다요~^^
3일간의 대장정 입니다.
홀산으로 등로가 좋다고는 하지만 홀산으로
진행하기에 만만한 거리가 아닌데...
정말 대단 하십니다. 퐁라라님...
저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호미지맥이다 보니
사진만 봐도 그날이 훤히 떠 오릅니다.
긴거리다 보니 흰날재 까지의 거리가 지루지루
하셨을 수도 있으시겠어요..
저도 백운산 들려서 신고식 하고 호미지맥 분기점
으로 왔었는데 퐁라라님도 그렇게 하셨네요.
대부분은 낙동정맥 당시 지났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일고개 지나 올라서 남의집 안방 마당에 자리 잡고
편히 쉬셧네요 ㅎㅎ
어지간한 간담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면 거기서 숙면하기
쉽지 않으실 텐데요 ^^
마석산 지나 420.3m봉 에서는 알바 안하셨어요?
전 아무 생각없이 지나다 알바 했거든요 ㅋㅋ
원성사 지나 외동읍 괘릉리 는 마을이 너무 아담하고 포근해서
한참을 여기저기 둘러 보기도 하고 했던 기억입니다.
석굴암 앞에서 바라보던 빛내림도 장관 이였구요..
갑자기 "오백원" 이 나와서 뭐지 했네요 ㅋㅋ
그와중에 500원도 거시구 ㅎㅎ
성황재 임도 철조망 큰일 나실뻔 했습니다.
힘빠졌을때 넘어 서기 쉽지는 않으시죠.
워낙 세세히 기록 하시니 시간날때 마다 읽는다 해도
시간이 엄청스리 오래 걸리네요.. ㅎㅎ
정성스레 올리신 산행기 잘읽었습니다.
다음구간은 여유 있게 눈누난나 즐기실듯 싶습니다. ^^
다류대장님!^^
감사합니다. 이 시각 호미곶에 도착했습니다.^^
파도가 넘 멋집니다.^^
한바퀴 돌고 구룡포 나가서도 한바퀴 돌고 그리고 포항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