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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2. 2. 28.~3. 2.(월~수) - 음력(1. 28.~30.), 일출 06:58~일몰 18:18
●산행지: 팔공지맥 1구간(노귀재-효령재)
●산행코스: 노귀재-석심산(750.6m)-팔공지맥갈림봉-695.6m봉-579m봉-532m봉-수기령-582m봉-612m봉-747m봉(봉림산갈림길)- 이기재-702m봉-700m봉-683m봉-돌탑봉(아미산갈림봉)-방가산-장곡휴양림갈림봉-688m봉-675m봉-611m봉-살구재-군작전도로-645.9m봉-군사도로-유격장정문-조림기념비-785.1m봉-작전도로삼거리-637강의장-828강의장-화산-803m봉-임도-감자골안부-화산분교-722.9m봉(산불감시탑)-옛갑령-476.9m봉-갑령재-오리터널-임도-298.8m봉-사기점고개-성황당-388.2m봉-300m봉-자주고개-505m봉-시루봉-군부대우회길-헬기장-1213m봉-시루바위-군사도로-비로봉-마애여래좌상-오도재-1054m봉-마당재-파계봉-파계재-834m봉-805m봉-748m봉-한티재-783.6m봉-795m봉-삼면봉-할매할배바위-808m봉-772m봉-치키봉-가산산성-전망대-가산-가산산성 중문-가산바위-서문-황학지맥분기점-모래재-661m봉-734m봉-725.3m봉-돌탑봉-무인산불감시탑-565.6m봉-502.7m봉-438.7m봉-374.1m봉-5번국도-효령재
●먹거리: 생수1.5리터3, 게토레이, 빵3, 약식, 양갱3, 단백질바3, 자유시간들, 사탕25, 게비스콘6
●준비물: 하계텐트, 동계침낭, 침낭커버, 바람막이, 메트, 스틱, 헤드랜턴, 장갑,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팔토시, 말방울, 세라컵, 경광점멸등,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25
●거리: 약 74.35Km
●소요시간: 56.04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영천행고속버스18,700, 편의점14,000, 리젠시모텔30,000, 군위영천휴게소(식사9,500, 음료,빵19,650), 한티휴게소13,800, 장천면 뒤풀이42,000, 김천구미역ktx35,100
●날씨: -6~6,
●산행경과:
* 2. 28.(월) :
- 05:33 : 노귀재
- 06:18 : 석심산(750.6m)/ 삼시군봉(영천시 화북면, 청송군 현서면 → 군위군 삼국유사면)
- 06:21 : 팔공지맥 분기점
- 06:45~57 : 행동식
- 07:25 : 수기령(水基嶺, 420m)/ 908번지방도로
- 08:23 : 봉림산분기봉(747.8m)/ 삼면봉(군위군 고로면, 영천시 화북면 → 화남면)
- ??:30 : 질매재
- ??:00 : 이기재
- 09:35 : 돌탑봉(742m)/ 아미산갈림봉/ 편도 1.7km
- 09:45 : 방가산(方可山, 755.8m)/ 삼각점봉
- 10:00 : 장곡휴양림 갈림봉(588m)
- 10:45 : 경림산(瓊林山, 689.9m)
- 11:04~17 : 행동식
- 11:43 : 살구재(杏峴)
- 12:01 : 충성로/ 작전도로
- 12:50 : 645.9m봉/ 삼면봉(군위군 삼국유사면, 영천시 화남면 → 화산면)
- 12:34 : 육군3사관학교 유격장 정문
- 13:09 : 삼각점봉(785.1m)/ 삼면봉(군위군 삼국유사면, 영천시 화산면 → 신녕면)
- 13:52~56 : 초콜렛
- 14:10 : 화산(華山, 828.1m)/ 3등삼각점
- 15:10~14 : 감자마을 물보충
- 15:28 : 철탑봉(722.9m)/ 산불감시초소/ 이동통신중계탑 3개
- 15:41~49 행동식
- 16:03 : 옛 갑령(甲嶺, 288m)
- 16:27 : 479.6m봉/ 영천시로 진입((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
- 16:55~00 : 갑령재/ 화서교차로/ 28번국도, 908지방도
- 17:14 : 장고개/ 오림터널
- 17:37 : 298.8m봉/ 삼각점봉
- 18:03 : 사기점(沙器店)고개/ 2차선 도로
- 18:46~52 : 행동식
- 19:16 : 380m봉/ 시군계(영천시 - 군위군)
- 19:22 : 388.2m봉
- 19:43 : 자주고개/ 잦이재/ 919번 지방도
- 19:57~04:34 : 군위영천고속도로 휴게소, 식사
* 3. 1.(화) :
- 05:49 : 501.3m봉
- 06:54 : 시루봉(甑峰, 726m)
- 07:34 : 매봉분맥분기봉(850m)/ 삼면봉(영천시 신녕면, 군위군 산성면 → 부계면)
- 08:23 : 1001.5m봉
- ??:?? : 맷돌바위/ 시루바위/ 떡바위
- 09:18~31 : 청운대, 원효굴
- 10:12~31 : 팔공산(八公山) 비로봉(毘盧峰, 1,192.9m)/ 제왕봉(帝王峰)/ 중봉/ 삼광시군봉(군위군 부계면, 영천시 신녕면 → 대구광역시 동구)/ 유봉지맥분기점/ 1등삼각점, 행동식
- 10:39~11:07 : 동봉분기점
- 10:52 : 동봉
- 11:26 :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
- 11:43 : 느지매재/ 오도재
- 11:54 : 서봉/ 삼성봉(三聖峰, 1,150)/ 북쪽에 헬기장
- 13:19~27 : 행동식
- 13:39 : 가마바위봉(1,053.9m)
- 14:00 : 마당재
- 14:05 : 신무능선분기봉(979.2m)/ 현위치표시목 128번
- 14:43 : 장꼬방말랭이(994m)/ 장꼬방봉
- 14:50 : 파계봉(把溪峰, 991.2m)/ 삼각점
- 15:02 : 들뫼능선 분기봉(935m)
- 15:16 : 파계재(把溪峙)/파계사갈림점
- 15:28 : 한티재 갈림봉(834m봉)/ 삼광군봉(군위군 부계면, 대구광역시 동구 → 칠곡군 동명면)
- 16:00~17:00 : 한티재(718m)/ 대현(大峴)/ 휴게소, 화장실
- 17:39 : 부계봉(缶溪峰, 783.6m)/ 삼면봉(칠곡군 동명면, 군위군 부계면 → 칠곡군 가산면)
- 18:27 : 치키봉(757.3m)
- ??:20 : 선돌재(立石, 690m)
- 18:45 : 할아버지, 할머니바위
- 19:14~07:45 : 비박, 행동식, 60.30km
* 3. 2.(수) :
- 07:55 : 가산산성(架山山城)
- 08:15 : 가산(架山, 901.6m)/ 칠봉산(七峰山)
- 08:37 : 가암(架岩, 860m)/ 가산바위
- 08:58 : 황학지맥 분기봉(851.5m)
- 09:27 : 모래재(578m)/ 팔각정
- 10:13 : 726.9m봉/ 군계(칠곡군 가산면 - 군위군 효령면)
- 10:26~35 : 행동식
- 10:51 : 갈매기산(740.6m)
- 11:09 : 무명봉(710.5m)/ 무인산불감시카메라
- 11:30 : 고지봉(565.6m)
- 12:05 : 금산(435.6m)
- 12:25 : 깃대봉(374.1m)/ 삼각점봉
- 12:57 : 갈비재/ 석우재/ 알프스모텔, 주유소/ 5번국도
- 13:24 : 224m봉/ 삼군봉(군위군 효령면, 칠곡군 가산면 → 구미시 장천면)
- 13:32 : 효령재/ 906번 지방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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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공지맥 세부 구간거리
노귀재-0.8km-석심산(751m)-2.2km-수기령-2km-747봉-3.5km-방가산(756m)-2.7km-690m봉-2.7km-살구재-2.8km-충성문-0.2km-785m봉-2.7km-화산(828m)-2.9km-722.9m봉-2.7km-갑령재-3km-사기점고개-2.3km-388.2m봉-1.2km-자주고개-4km-시루봉-2km-1009m봉-1.2km-시루바위-0.8km-팔공산(1,192m)-0.8km-서봉(1,150m)-2km-1,054m봉-1.3km-파계봉-1.1km-파계재-2.3km-한티재-3.2km-치키봉(757m)-2.6km-가산(902m)-3km-모래재-1.2km-745봉-1.7km-566봉-2.8km-374봉-1.5km 갈비재-1.5km-효령재
* 구간거리
- 노귀재~효령재 67.8km
- 효령재~합수점 64.7km
- 노귀재~갑령재 27.3km
-.노귀재~사기점고개 30.8km
-. 노귀재~살구재 14.4km
-. 살구재~갑령재 12.9km
- 갑령재~효령재 40.5km
- 갑령재~팔공산/비로봉 15.5km
-. 비로봉~한티재 7.6km
-. 한티재~효령재 18.1km
* 식수 보충 및 참고사항
- 영천 귀인(추성태님): 010-3505-1659
- 영천시내버스터미널: 054-333-3551, 영천시외버스터미널: 054-334-2211
- 영천터미널 리젠시모텔: 현금 3만원 (편의점, 해장국집)
- 노귀재 휴게소, 음식점: 노귀재휴게소 주인, 010-2801-6190
- 감자마을: 화산분교 위 인가 수도
- 갑령재~신녕터미널: 6.6km, 택시 1만원
- 신녕면 개인택시: 010-4020-067
- 자주고개에서 상주영천고속도로 생태통로로 지나 배수로 오른쪽에서 절개지로 내리면 군위영천휴게소
- 한티재: 휴게소, 편의점(11시~19시)
- 갈비재: 알프스모텔(폐업), 주유소, 만남의 휴게소(왼쪽으로 10분 거리)
- 곰재~장천면: 8.3km, 택시8,000원
- 구미시 장천면 개인택시: 054-471-5111, 010-2810-3232
* 팔공지맥 분기점 노귀재 가는 교통편
- 서울경부~영천터미널: 07:30, 13:05, 18:50, 03.25h, 18,700
- 영천시외버스터미널: 054-334-2211
* 서울~영천가는 기차
- 청량리역~영천역: 06:50, 14:50, 3.59h, 21,100원
- 서울역~동대구역: 05:05, 05:15, 05:30, 05:40, 05:56, 06, 06:05, 06:16, 06:35, 06:38, 06:45, 07, 07:04, 1.50h,
-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의성시외버스터미널: 07시, 09:20, 10:40, 14:30, 16:40, 19:30, 21:30, 1.30h, 6,200
* 영천터미널에서 노귀재 가는길
- 영천~상송리행: 06:40, 1h, 351-1번, 51-1번, 영천버스터미널 건너편
- 상송리~노귀재: 도보 50분(3.8km)
* 한티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한티재주차장 출구쪽 버스정류소(17시 막차)~칠곡군 동명면소재지~칠곡시장~대구
* 갈비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갈비재 만남의휴게소 화성철강 앞 정류소: 300번 버스 대구 북구 북부터미널,
- 석우1리 정류소(약 800m 이동): 885번 버스, 구미역 (전국버스앱 참조)
* 효령재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장천면버스터미널~구미역:
- 기산면 천평~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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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급 지맥 14번째, 팔공지맥 1구간 노귀재~효령재 다녀왔습니다.
대구비실이대선배님의 귀한 택배로 노귀재에서 새벽에 달라붙을 수 있었고, 효령재에는 고닥교 친구가 기꺼이 마중나와 주었습니다.
비박장빌 메고 자주고개 군위영천고속도휴게소에서 1박, 가산산성에서 1박하며 2박3일로 진행했고요.
둘쨋날 아침 팔공산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적은 양이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행스럽게 후둑후둑 흩뿌리는 정도에 그쳐주었습니다.
이번 구간 군위영천 화산산성, 팔공산 공산성, 칠곡 가산산성 세개의 산성을 지났습니다. 가산산성 가암에서 학명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다부동전적지 다부원이 있던 소야고개죠. 산행 마치고 친구와 같이 다부동전적지를 방문할 수 있어 팔공지맥 1구간이 더없이 멋진 마무리가 되었네요.
100km급 15개 지맥 중에 이제 호미지맥 하나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제 후기를 대하는 후답자님들께 전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선배님들의 후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앞으로 똑같은 길을 걸을 후답자 분들이 자료를 찾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보다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 자료를 남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또 저보다 더 나은 시각으로 162지맥을 명품으로 이끌어 내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에 얼마든 제 후기를 가져다 활용하고 수정하고 보완하여 한명이라도 더 걷고 싶은 명품 지맥을 만들어 주실 것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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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공지맥이란
석심산에서 남서쪽으로 분기한 팔공지맥은 방가산(755.8m), 화산(828.1m), 팔공산(1,192.8m)을 지나 가산(901.6m)에서 북진하고, 좌베틀산(369.2m), 청화산(700.7m)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서 낙동강에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20.7km 되는 산줄기이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 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가 가산을 지난 이후 부터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 팔공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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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공지맥을 지나는 동네
* 청송군(靑松郡)
경북 중동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영덕군과 포항시, 서쪽은 안동시·의성군·군위군, 남쪽은 영천시, 북쪽은 영양군과 접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영향으로 험준한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낙동정맥과 주왕산을 경계로 영덕군, 포항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은 태행산(太行山, 933m)·금은(金銀)광이(812m)·주왕산(周王山, 721m)·무포산(霧抱山, 717m)·대둔산(905m)·무장산(霧藏山, 641m) 등이 솟아 험한 산악지역을 이룬다. 중북부에 방광산(519m)·중대산(680m), 서쪽에는 사일산(649m)·연점산(鉛店山, 871m)·산지봉(産芝峰, 890m)·구무산(676m)·산두봉(719m) 등이 솟아 안동시와 의성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은 비봉산(飛鳳山, 671m)·고산(529m)·광덕산(484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은 구암산(九巖山, 807m)·면봉산(眠峰山, 1,113m)·베틀봉(930m)·보현산(普賢山, 1,124m) 등이 보현지맥을 이루어 포항시·영천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부동면 일대는 주왕산국립공원에 자리하여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주요 하천으로는 용전천(龍纏川)·길안천(吉安川)·보현천(普賢川)을 들 수 있다. 용전천은 부동면·부남면에서 흐르는 지류를 합하여 청송읍과 파천면을 경유하여 영양에서 안동을 흐르는 반변천(半邊川)과 합류한다. 길안천은 현서면 방각산(方覺山)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현서면 보현산에서 발원하여 갈전리·성재리·복리를 지나 북류하는 보현천과 안덕면 명당리에서 합류한다. 더 나아가 신성리에 이르러 베틀봉·면봉산 등의 보현지맥에서 발원하여 월매리·개일리·도평리를 지나 북류하는 눌인천(訥仁川)과 다시 합류한다. 그리고 화부산(花釜山, 626m)과 연점산(鉛店山, 871m) 사이에 감입곡류를 형성하면서 관류한다. 그 뒤 안동시 중앙부를 관류하며 임하면 신덕리에 이르러 반변천으로 흘러든다. 길안천의 중하류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전개되며, 이 지방의 주요 농업지대로 취락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지금의 청송군은 옛 청송도호부와 진보현(眞寶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군이다. 옛 청송도호부는 삼국시대에 신라의 청기현(靑己縣)이었는데,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적선현(積善縣)으로 개칭되어 야성군(野城郡:盈德)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 부이현(鳧伊縣:또는 島伊縣), 다시 운봉현(雲鳳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들 지역은 각기 유력한 호족들이 대두하여 할거하고 있었지만, 주로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 후 점차 고려의 세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922년(태조 5) 진보성 장군 홍술(洪術)이, 930년 재암성(載巖城: 진보면) 장군 선필(善弼)이 고려에 차례로 귀부하였다. 1914년 군면폐합으로 청송군의 부내면·부동면·부남면·현동면은 그대로, 현남면·현서면이 현서면으로, 현북면·현내면이 안덕면으로, 부서면과 진보군 남면이 파천면으로 통합되었다. 이때 진보군이 폐지되고 진보군 상리면·하리면·서면은 진보면으로 폐합되어 청송군에 편입되었다. 부내면이 청송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79년에 청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낙동정맥이 뻗어내려 군의 북서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군의 동쪽에는 태행산(933m)·대둔산(905m)·주왕산(721m)·무포산(717m) 등이, 북쪽에는 비봉산(671m)·고산(529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에는 보현지맥을 이루고 있는 구암산(807m)·보현산(1,124m) 등이 군의 경계를 따라 솟아 있다. 하천으로는 군의 중앙을 북서류하는 용전천이 주방천·마평천 등과 합류하여 진보면에서 군의 북부를 동서로 흐르는 반변천에 합류한다. 또한 군의 남부에는 보현산 북서사면에서 발원한 보현천이 북류하여 눌인천과 합쳐져 길안천으로 흘러든다. 하천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한다. 진보면이 청송읍보다 인구가 많은데 이는 진보면이 안동시·영양군·영덕군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있고 상권도 발달했기 때문이다. 교통은 국도의 31호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이 외에도 안동·포항·영양·의성 등의 지방도가 각 지역으로 나 있다. 2007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한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청송군을 지나고 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영천시(永川市)
대한민국 중동부, 경상북도 동남쪽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청송군에 맞닿아있다. 영천의 지세는 '이수삼산(二水三山)'이라 표현한다. 이때 '이수(二手)'는 남천과 북천을 말하는데, 남천은 보현산 동쪽에서 발원하여 임고면을 지나는 자호천과, 어림산에서 발원하여 고경면을 지나는 고촌천이 조교동에서 합쳐지는 강 줄기를 말한다. 북천은 보현산 왼쪽에 위치한 화북면에서 발원한 고현천과, 팔공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신녕면으로 흐르는 신녕천이 합쳐진 하류이다. '삼산(三山)'은 좁은 의미로는 작산·마현산·유봉산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보현산·팔공산·운주산을 가리킨다. 삼국시대에 신라의 절야화군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임고군으로 개칭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도동현과 임천현을 병합하고 영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1413년(태종 13)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영천군이 되었다. 영천의 별호는 익양·영양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에 경상북도 영천군이 되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영천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영천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영천시를 이루었다. 1998년 교동·대전동 일부를 서부동으로, 명산동·대전동 일부를 중앙동으로, 주남동·봉작동·영도동을 남부동으로 개편했다. 북쪽과 동쪽은 낙동정맥이 뻗어내려 화산(828m)·방가산(756m)·보현산(1,124m)·수석봉(821m)·운주산(806m)·도덕산(703m)·천장산(695m)·어림산(510m) 등의 산들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화강암질의 팔공산(1,192m) 지리와 태실봉(466m)이, 남쪽에는 침식에 강한 분암류로 이루어진 금박산(432m)·구룡산(675m)·사룡산(685m) 등이 솟아 있다. 갑령·노고재·시티재·땅고개 등의 고개는 예로부터 주요교통로로 이용되어왔다. 이 지역의 주요하천으로는 동부와 남부를 남서류하는 금호강과 남부를 서류하는 북안천, 북부에서 남류하는 고현천, 중앙을 서류하는 고촌천, 서부를 남동류하는 신령하천 등이 있다. 이들 하천은 영천시에서 금호강에 합류하여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시가지는 금호강을 중심으로 북안에 구시가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남안에 신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팔공산도립공원을 비롯하여 산세가 수려한 산들이 시를 둘러싸고 있고, 금호강이 시의 중앙을 흐르고 있어 관광명소가 많다. 예로부터 내륙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중앙선이 시를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영천역에서 분기한 대구선이 시의 남서부를 통과한다. 경부고속도로가 시의 남부를 지나고, 대구-경주, 의성-포항, 양산-안동을 잇는 국도가 교차한다. 대구까지는 30분 정도, 서울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군위군(軍威郡)
경북 중남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영천시, 서쪽은 구미시, 남쪽은 대구광역시와 칠곡군, 북쪽은 의성군과 접하고 있다. 남부의 대구권과 북부의 안동권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대구의 통근권·통학권으로서 1일생활권에 속한다. 삼한시대 이전의 역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삼한시대의 변진 24국 중 여잠국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한 후 노동멱현과 모혜현이 설치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노동멱현은 군위현으로, 모혜현은 효령현으로 개칭되어 숭선군(선산)의 영현이 되었다. 군위현과 효령현은 고려시대에 상주에 예속되었다가 1143년 일선현(선산)에 환속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군위현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효령현을 병합하여 독립했다. 조선시대에는 1413년 현감을 설치하여 조선 후기까지 큰 변동이 없었다. 군위의 별칭은 적라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의해 인접한 의흥군이 폐지되고 의흥면·우보면·산성면·부계면·고로면의 5개면으로 재편되어 군위군에 합병되었다. 1979년 군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고로면 화북리에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인각사가 있음에 따라 '삼국유사면'으로 변경하는 주민투표를 거쳐 2021년 1월 1일 고로면의 명칭을 '삼국유사면'으로 변경했다. 위천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642년(선덕여왕 11)의상대사가 세운 사찰로 우리 나라 최고의 역사서 『삼국유사』를 낳은 유서 깊은 사찰 인각사가 있는데, 주위에 수십 층의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아래에는 맑고 깊은 소(沼)가 있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백학의 모습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낸다. 지금도 운치 있는 절경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동쪽에 있는 팔공산(1,192m)이 대구광역시·영천시와의 분수령을 이루며, 그 지맥이 이어져 동부군계에는 선암산(879m)·방가산(756m)·화산(828m) 등의 높고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군의 중앙부에는 매봉산(488m), 북부에는 선방산(437m)이 솟아 있으며, 이를 둘러싼 지역에는 100~300m의 구릉성산지가 발달하여 있다. 동부산지의 삼국유사면 낙전리·학암리 일대에서 발원한 위천이 동남산지의 팔공산 줄기에서 발원한 남천·사창천 등을 효령면 병수동에서 합류하여 북서부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 연안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나 군 전역에 산이 많아 농경지의 발달이 미약하다. 화산암류의 구릉지와 현무암의 풍화토인 사양토가 많아 토질은 척박하나 관개는 우수하다. 교통은 중앙선 철도가 군의 동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2개의 국도가 각각 군의 서부와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여 대구-안동, 영천-안동을 연결한다. 3개의 지방도가 각각 대구·선산·영천을 연결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대구광역시
삼국시대에 신라의 위화군(喟火郡)과 달구화현(達句火縣:또는 達句伐)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위화군을 수창군(壽昌郡)으로, 달구화현을 대구현(大口縣)으로 개칭하여 양주(良州:양산) 관하에 두었다. 이때 수창군은 대구현·하빈현(河濱縣)·팔리현(八里縣)·화원현(花園縣)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940년 수창군은 수성군(壽城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현종 9)에 경주에 속했다가 1390년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대구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성주)의 속현이 되었으나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둠으로써 그 지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조선초 1394년(태조 3)에는 대구현이 수성현과 해안현(解顔縣)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419년(세종 1)에 군으로, 1466년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구의 군사적·지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1601년(선조 34) 경상도 관찰사영이 설치됨으로써 경상도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현종 때에는 풍각현(豊角縣)을, 숙종 때에는 화원현을 다시 합병하여 면적을 확대함은 물론 교통의 요지를 확보했다. 별호는 달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대구군, 1896년에 경상북도 대구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인 각북면·각현내면·각초동면·각이동면이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1911년 동상면과 서상면을 합하여 대구면을 신설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시가지 부분인 대구면은 대구부가 설치되어 독립되고, 옛 대구부의 30개면이 12개면으로, 현풍군의 15개면이 4개면으로 통합되어 달성군이 되었다. 대구의 성장에 따라 1938년에 달성군의 수성면 일원과 성북면·달성면 일부가 대구부로 편입되었으며, 1949년에 대구시로 개칭되었다. 1958년에 달성군의 동촌·공산·성서·월배·가창의 5개면이 대구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동촌면을 제외한 4개면이 다시 달성군에 환속되었다. 1962년에 구제가 실시되고 1980년에 수성구가 신설되었다. 1981년에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산군의 안심읍·고산면, 달성군의 월배읍·성서읍·공산면, 칠곡군의 칠곡읍이 편입되었으며, 1988년에 달서구가 신설되었다.
1990년 7개구 141개동의 행정구역에서 1992년 서구 평리동·산격동, 수성구 만촌동·지산동·황금동, 달서구 월배동이 분동함으로써 7개구 147개동으로 행정구역이 늘어났다. 1995년 시의 명칭이 광역시로 변경되었으며, 같은 해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달성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지금에 이른다. 대구광역시의 도심에 해당하는 대구분지는 북쪽으로 팔공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지와 남쪽으로 청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지, 동쪽으로 용지봉과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사이로 금호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이 일대는 내륙분지지역이어서 연중 기온의 차가 크며 강우량은 상대적으로 낮다. 1942년 이래 대한민국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인 40도를 여러번 기록한 지역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대구시의 면적이 계속 확대되고 해방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도 계속 증가했다. 1981년 직할시로 개편될 때에 183만 명이었던 인구는 1990년대 들어 200만 명을 넘었고 2018년에는 248만 명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1960년대부터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화학섬유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1970년대에는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도시가 발전했으나, 1990년대 후반 IMF로 인해 침체기를 겪었다. 2000년대에 들어 최첨단 소재산업의 중심지로 재도약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칠곡군(漆谷郡)
경북 서남부에 있는 군. 동쪽으로는 군위군, 대구광역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김천시, 성주군과 맞닿아 있다. 남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북쪽으로는 구미시와 접한다. 영남지방 교통의 요지이며, 이 대구광역시와 구미시에 주된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위성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왜관읍에는 칠곡왜관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기산면에는 칠곡기산농공단지가 입지한다. 칠곡군은 신라시대의 대목현(大木縣, 지금의 북삼읍·약목면·기산면 지역), 사동화현(斯同火縣, 지금의 석적읍·가산면 지역), 팔거리현(八居里縣, 지금의 왜관읍·지천면·기산면 지역)이 합쳐져 형성된 곳이다. 이 지역은 삼한시대 진한의 군미국(軍彌國)과 변한의 변군미국(弁軍彌國)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소국들은 신라의 세력 확장에 따라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고려 940년(태조 23) 계자현은 약목현(若木縣)으로 변경되어 경산부(지금의 성주군)에 소속되었고, 수동현은 인동현(仁同縣)으로, 팔리현은 팔거현(八莒縣)으로 바뀌었다. 1018년(현종 9)에 인동현과 팔거현은 경산부 소속이 되었고, 1391년(공양왕 3) 약목현은 인동현의 속현이 되어 이후 조선시대까지 쭉 인동현의 속현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1593년(선조 26) 팔거현에는 임진왜란 때 경상도 관찰사영이 한때 이곳 팔거현으로 이전됨으로써 이 지역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640년(인조18) 가산산성을 새로 쌓고 칠곡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01년(선조 34)에는 인동현도 인동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이후 1895년(고종 32) 23부제의 실시로 인동 도호부는 인동군으로, 칠곡 도호부는 칠곡군으로 개편되면서 대구부에 속해졌다. 이듬해 다시 전국을 13도 7부제로 개편하면서 인동군과 칠곡군은 경상북도 소속의 속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는 인동군이 칠곡군에 병합되어 오늘날 칠곡군의 모습을 갖추었고, 이때 왜관면·지천면·칠곡면·동명면·가산면·인동면·석적면·북삼면·약목면 등 9개면 99개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왜관면이, 1980년 칠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8년 인동면 일부 지역이 구미시로, 1981년 칠곡읍 일부 지역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1974년 설치된 약목면 동부 출장소는 1986년에 기산면으로 승격되었고, 1987년에는 선산군 장천면 석우리가 가산면에, 1989년에는 가산면 신장리가 선산군에 편입되었다. 2003년에는 북삼면이, 2006년에는 석적면이 각각 북삼읍과 석적읍으로 승격되었다. 전체적인 지형은 대체로 서부의 낙동강 연안평야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갈수록 높아져 5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서쪽에 금오산(977m)·영암산(782m)·누진산(742m), 북쪽에 유학산(839m)·숲데미산(519m)·천생산(407m), 동쪽에 가산(902m)·도덕산(660m), 남쪽에 명봉산(402m)·도고산(349m)·금무산(268m), 중앙에 황학산(782m)·백운산(713m)·소학산(622m) 등 1,000m 미만의 산들이 솟아 있다. 낙동강의 본류가 군의 중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주변 산지에서 발원하는 경호천·서원천·두만천·한천 등이 동서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이언천(伊彦川)·송산천 등이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한 후 대구를 서류하여 낙동강에 흘러든다. 국방과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 가산면 가산리의 가산산성(사적 제216호)과 천생산성(天生山城), 기산면 각산리의 박집산봉수대(朴執山烽燧臺) 등이 있으며, 6·25전쟁의 기념물로는 낙동강철교가 있다. 이곳에서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낙동강을 건너 교통의 맥을 이으며, 4개의 국도와 지방도가 나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군 중서부를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이 남북으로 관통하며, 김천-경주, 구미-고령, 안동-창녕, 상주-청도를 잇는 국도가 지난다. 중앙고속도로의 일부구간이 군의 동부를 관통한다.[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 구미시(龜尾市)
대한민국 중남부에 있는 도시로 1970년 국가 수출정책을 바탕으로 내륙 최대 수출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발전했다. 주로 반도체·휴대전화·LCD·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제품을 생산한다. 경부선 철도, KTX, 경부고속도로, 국도가 도시 안팎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원활하다.동남쪽에는 칠곡군, 서쪽에 김천시, 북쪽에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을 접하고 있다. 백두대간 줄기의 군봉(郡峰)이 남쪽으로 흘러 뻗어 형성한 연악산맥(淵岳山脈)의 지맥인 수선산(修善山, 684m)·복우산(伏牛山, 509m)·원통산(元通山, 476m)·옥녀봉(玉女峰, 520m)·비봉산(飛鳳山)·삼봉산(三峰山, 448m) 등이 솟아 남쪽으로는 금오산(金烏山, 977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쪽에는 팔공연산(八公連山)의 지맥인 유학산(遊鶴山, 839m)·청화산(靑華山, 701m)·냉산(冷山, 692m)·베틀산(369m) 등이 솟아 곳곳에 고산준령이 있다. 퇴적암으로 된 천생산(天生山, 407m), 응회암질 암층으로 구성된 봉두암산(鳳頭岩山, 327m)과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산계가 급한 경사와 상당한 기복량을 나타내며, 그들 사이를 이계천이 동서로 개석(開析)하면서 충적층을 이룬다. 또한 북서부지역의 중앙부에는 감천(甘川)·해평천 등 크고 작은 지류를 합치면서 낙동강이 남류하고, 유역에는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선산분지를 이루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도문리의 냉일재에서 발원해 남서류하면서 해평면 도문리·월호리·낙성리·해평리를 관류하는 습문천(習文川)은 해평면 부근에서, 장천면 오로리·금산리·상림리를 흐르는 금산천과 여남리·상장리를 남서류하는 한천이 도심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이 지역은 전근대사회에서 선산·인동의 두 지역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 지역의 초기 역사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임수동·인의동, 선산읍 생곡리 등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 이후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어 사회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 선산지역)과 사동화현(斯同火縣: 인동지역)이 설치되었다. 후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이곳은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907년(효공왕 11)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한 이래 후백제의 영역에 들어감으로써 후백제가 경상도 북부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936년(태조 19) 양국의 군대가 선산읍 동쪽 일리천(一利川)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여 여기서 승리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때 이 곳의 호족 김선궁(金宣弓)이 왕건에게 귀부해 큰 공을 세워 중용되었고, 이후 그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선주(善州)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되었으나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일선현으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어 해평군·군위현·효령현·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리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되었다. 인동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어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가 되었다. 한편 1235년(고종 22)이유정(李裕貞)이 군대를 이끌고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했고, 1380년(우왕 6)과 1383년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크게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 때 금오산성(金烏山城)과 선주 읍성(邑城)이 축조되어, 백성들이 안주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시 선주는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인동현은 현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각기 군수·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선산군은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 곳의 토지는 선산지역이 비옥한 반면 인동지역은 비옥·척박이 반반이며, 풍속은 선산은 화려하고 학문을 좋아한 반면 인동은 검솔하고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한편 고려 후기 이래 이곳의 선산김씨·해평윤씨·인동장씨들이 명문으로 등장했고, 길재(吉再)의 성리학이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인재(人才)의 부고(府庫)’인 영남지방 중에서 “영남의 인재 가운데 반은 선산에 있다(嶺南人才 半在一善).”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장현광(張顯光)과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선산군·인동군이 되었으나, 1914년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구미시는 과거 선산도호부 및 인동도호부의 일부 지역이 시로 발전한 곳이다. 구미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이곳의 이름이 선산도호부의 상구미면과 하구미면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선산과 인동이 군이 되었으며, 1896년에는 경상북도에 속했다. 1914년 상구미면·하구미면이 구미면으로 통합되고,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1963년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구미가 현재와 같은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69년 경상북도가 지방공업 개발장려지구로 지정, 섬유단지인 1단지와 전자공업단지인 2단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이다. 그후 1977년에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인동지역이 개발되면서 1978년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 구미시로 승격되어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도시로 성장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국가경쟁력강화와 도시와 농촌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선산군과 통합되어 새로운 구미시가 되었다.[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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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은 오래전 부터 낙동정맥 가사령에서 분기되어 이 산줄기의 최고봉이자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1192.8m)을 거쳐 상주시 중동면 새띠마을까지 이어지는 160.1km의 산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알고 답사를 해왔다. 그러나 박성태님의 신상경표란 책자가 발행(2004. 8.) 되면서 석심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비록 최고봉인 산두봉이 해발 719m에 불과하고, 군위와 의성의 이름 없는 산으로 이어지지만 그 길이가 기존 팔공지맥보다 6.7km 더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낙동 분기점(0)→석심산(39.4km)→위천北(166.8km)
낙동 분기점(0)→석심산(39.4km)→위천南(160.1km)
낙동정맥 가사봉에서 분기한 산줄기 중에서 가장 긴 것은 보현산을 지나 석심산에서 위천 북쪽 울타리로 이어지는 맥으로 도상거리가 166.8km이다. 길이로만 본다면 이 산줄기가 당연히 주맥이 되어야 하고 그 산줄기에서 최고봉인 보현산(1124.4m)의 명칭을 따서 보현지맥으로 칭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가사봉에서 분기한 산줄기에서 가장 높고 이름난 산을 택한다면, 석심산에서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1192.8m)으로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 산자분수령원칙과 마찬가지로 학문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신산경표의 지맥 기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하겠다.
♤ 석심산(750.6m)/ 삼시군봉(영천시 화북면, 청송군 현서면 → 군위군 삼국유사면)
석심산은 영천시 화북면, 청송군 현서면, 군위군 삼국유사면을 가르는 삼시군봉(삼면계봉)으로, 좌측은 그대로 영천이지만 우측 길이 청송에서 군위군 삼국유사면 학암리로 바뀌게 된다. 이곳부터 팔공산 정상까지 군위군과 영천시계를 가르며 달리게 된다. 박성태님의 신상경표상에 석심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위천을 중심으로 낙동강과 합수할 때 남쪽 합수점과 북쪽 합수점으로 거의 엇비슷한 세력을 형성한 채 산줄기가 분기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진행하는 팔공지맥은 남쪽 합수점을 위주로 하였지만 신산경표에서는 가사령에서 북쪽 합수점까지를 보현지맥, 이곳에서 남쪽 합수점까지를 팔공지맥으로 표현을 하면서 북쪽을 위주로 하고 있어 차이가 난다.
- 잡목 공터이다. 준ㆍ희선생님의 ▲석심산 750.6m 표지판과 수많은 시그날, 그리고 3등삼각점(화북 303/ 2004복구)이 있다.
♤ 팔공지맥 분기점
석심산에서 약 80m 정도 내려서면 팔공지맥과 보현지맥이 갈리는 갈림길에 이르고, 이 곳에서 팔공지맥은 좌측으로 이어져 수기령까지 급경사 내리막길이 된다.
♤ 팔공지맥 군위군 현황도
♤ 군위군 삼국유사면(三國遺事面)
경북 군위군 동부에 있는 면으로 면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다. 화산의 고위평탄면(600~800m)에는 개척촌이 이루어졌으며 고랭지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파·가지가 군내에서 가장 많이 나며 약초·잎담배도 생산된다. 원래 이름은 '고로면(古老面)'이었으나 화북리에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인각사(麟角寺)가 있음에 따라 2020년 지역의 고유성과 역사성이 담긴 이름인 '삼국유사면'으로 변경하기로 결정, 2021년 1월 1일 변경되었다. 화북리 위천 상류에는 백학의 서식처인 학소대가 있다.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 일대가 내려다보입니다.
♤ 수기령(水基嶺, 420m)/ 908번지방도로
수기령은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와 군위군 삼국유사면 학암리를 잇는 908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삼국유사면 학암리와 낙전리가 팔공지맥의 대미를 장식하는 위천의 발원지이다. 두 마을 위쪽에 있는 수기령은 물의 기원이 되는 고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보현과 팔공 두 지맥 사이의 개울을 따라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팔공지맥은 위천의 남쪽, 보현지맥은 위천의 북쪽 분수령이 된다. 최근 이곳 아래에서는 흘러내리는 물을 가두는 보현산, 고로댐 공사가 한창이다. 도로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약간 나서면 먼저 군위군에서 설치한 ‘군위군 고로면’ 표지석이 있고, 국기게양대와 영천 로타리클럽에서 설치한 ‘식수사업기념탑’이 위치하고 있다. 영천 방향으로는 가운데 멀리 뾰족한 부약산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기룡산이 보인다.
- 삼국유사로란 교통표지판이 있으며 수기령에서의 들머리는 볼록거울과 '군위군 고로면' 표지석 뒤편에 있다.
♤ 군위군 삼국유사면 학암리(鶴岩里) 방학동
군위 동쪽의 경계점이며 영천군과의 경계지점이다. 부락 뒷편 고개 위에서 학을 놓아주었다는 설에 따라 방학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지역은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에는 부적당하다. 다만 여름철에만 이곳에 올라가서 밭을 경작하다가 늦가을이 되면 모두 내려온다고 한다.
♤ 봉림산분기봉(747.8m)/ 삼면봉(군위군 고로면, 영천시 화북면 → 화남면)/ 질매봉
지금까지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 화북면 경계선을 이어오던 지맥길은 이 봉우리부터 좌측으로 행정구역이 영천시 화북면에서 화남면으로 바뀌어 이어지게 된다. 지맥길은 이 봉우리에서 오른쪽(서향)으로 바뀌어 방가산을 향해 꺾여 나가고, 자칫 방심했다간 알바하기 쉽다.
- 준ㆍ희님의 '추억에 산길을 걷노라면/ 봉림산 가는 길' 표지판과 서래야 박건석님의 '질매봉(747m)' 코팅지가 나무에 붙어있다.
♤ 질매재
봉림산분기봉 아래에 길마재 또는 질매재라는 명칭이 붙은 자연 마을이 있는데, 방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이기재와 이 산의 허리가 마치 말의 길마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서정주시인의 질마재 등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이지만 알고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온 왜색이 강한 단어이다.
♤ 이기재
나무꾼마저 사라지고 행인의 왕래가 끊긴 옛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지름길로 시그널이 달린 안부이다.
- 노귀재에서 약 5.9km 거리이다.
701.1m봉-서낭당터-683.6m봉으로 이어지며 아기자기한 잔펀치가 계속되며 멀리 영천시 화남면 일대가 바라다 보인다. 진행방향 앞쪽 능선으로, 중앙 봉우리가 돌탑봉(아미산 갈림봉)이고 왼쪽봉이 방가산이다. 방가산 좌측 멀리 화산 능선과 그 뒤로 팔공산 능선이 계속 조망된다.
♤ 돌탑봉(745.7m)/ 아미산갈림봉/ 편도 1.7km
정상에 얼기설기 쌓아놓은 돌탑이 있고 현위치 돌탑봉 이정표(↑수기령 5.0km, ↓방가산 0.4km, ←아미산 1.7km)가 있다. 지맥은 왼쪽 방가산으로 이어지고, 돌탑봉에서 오른쪽(북쪽) 방향의 756.1m봉과 그 뒤 아미산(737.3m) 전경인데, 아미산은 이 곳에서 1.7km 정도 벗어나 있다. 지금까지 서쪽으로 달려 온 기맥길은 돌탑봉에서 다시 남쪽으로 꺾여져 이어진다.
- 준ㆍ희님의 「그곳에 오르고 싶은 산/ ▲742m/ 준ㆍ희」표지판과 서래야 박건석님의 '돌탑봉(742.0m)' 코팅지가 있다.
♤ 아미산(峨嵋山, 737.3m)
아미산은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 회북면 사이에 있는 산이다. 아미산은 높은 산위에 또 하나의 높은 산이 있다는 의미이고, 앵기랑바위는 산 아래 양지마을에서 보면 애기동자승이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붙인 이름이다. 아미산은 팔공산(1192m)에서 뻗은 팔공지맥의 살짝 벗어난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낮지만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옮겨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다. 팔공산 줄기는 시루봉을 지나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를 지나며 끊어질듯 야트막한 야산이 되었다가 조림산과 화산(華山, 828m)이 만나는 갑령재에 이르러 다시 치솟는다. 화산을 넘으면서 탄력을 받은 줄기는 방가산을 지나 팔공지맥에서 약간 벗어나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아미산이다. 아미산은 높이로 말하는 산이 아니다. 산세가 수려하며 산이 작아 보여도 바위 형태가 만물상을 이룬 듯하다. 바위 틈 사이에서 자라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분재 같은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크게 다섯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양들이 마치 촛대 같이 생겨 청송 주왕산의 촛대바위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산의 모양은 다섯 개의 바위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댄 형국이고, 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마을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어서 예로부터 이곳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 방가산(方可山, 755.8m)/ 삼각점봉
방가산은 경북 영천시 화남면의 북쪽에 위치하여 화북면 자천리·죽전리·옥계리에 걸쳐 있으며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경계에 있다. 팔공지맥이 지나는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명칭은 산의 모양이 상제가 밖에 나갈 때 쓰던 방갓[方笠]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남서쪽은 화산, 북쪽은 마이산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화북댐에 의한 화북호가 있다. 서북으로 위천, 동북과 남서로 고현천이 경계를 이룬다. 북쪽에 암봉으로 이루어진 아미산, 남쪽에 경림산(689m)과 인접해 있다. 지방 향토지에 의하면, 이 산에서 통쇠 즉 구리를 추출해 내었던 제철지(製鐵地)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워낙 오지의 산이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특히 동서로 깊게 패인 계곡이 많아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한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돌탑봉에서 직진하여 남서 방향으로 약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방가산이다. 방가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몇발자욱 내려서면 특이한 묘비명의 묘지가 있다. 유인반남박씨(孺人潘南朴氏)와 고묘의흥거안길등(考墓義興居安吉嶝) 합장 묘비명인데, 이런 남자의 묘비명은 처음 본다. 방가산 이후부터는 등로가 잘 다듬어져 있고 급경사 지역에는 침목 계단길로 조성되어 있어서 편하게 이어갈 수 있다.
- 방가산 정상에는 대리석 정상석(해발 755.8m/ 방가산/ 方可山/ 군위군)과 이정목[←자연휴양림(주차장) 5.08km(임도 1.0km)], 깨어진 2등삼각점(화북23)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 장곡휴양림 갈림봉(588m)
우측 방향이 장곡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자연휴양림 주차장 표시가 되어있는 좌측 방향으로 지맥길을 계속 이어간다. 이 곳에서 장곡자연휴양림으로 진입시 입장료를 징수한다는데, 그냥 통과만 하는데도 입장료를 내야 해 시비가 더러 발생하기도 한다. 넓은 봉우리에 긴 의자 3개와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주차장 4.18km표시는 없어지고 '→방가산 0.91㎞' 표시만 남은 이정표와 군위군의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더러 이 봉우리에서 산행을 마치고 우측 장곡자연휴양림 방향으로 내려서기도 하는데 자연휴양림까지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 휴양림주차장 갈림길에서 약간 좌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따라 급경사 내리막길을 계단으로 내려선다.
♤ 갈림봉(653m)
긴급구조표시목[현위치: no.13(1.63km)]을 지나 약간 더 오르면 '(3)방가산 입구' 이정목(←방가산 2.5km, →휴양림관리사무소 2.6km, ↑괴산마을 4.9km)이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개념도 상 653m봉인데, 현 위치를 '방가산 입구'로 표시한 것은 뭔가 잘못된 듯하다. 이 곳에서 오른쪽 장곡자연휴양림으로 탈출하는 거리가 가장 짧은 곳(2.6km)인 듯한데, 지맥은 왼쪽 괴산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 경림산(瓊林山, 688.8m)
화남면의 북쪽과 군위군의 경계에 있는 경림산(瓊林山)은 정상을 빙 둘러 석축을 쌓아 평지를 만들어 놓은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의 ‘팔공지맥/ 690m’ 표지판과 서래야 박건석님의 '경림산(690m)' 코팅지가 붙어있다. 봉우리 다른 쪽 나무에는 故 한현우대장님의 '3,000산 오르기/ 瓊林山/ 689.8m봉/ 3,893번째' 코팅지가 붙어있다.
- 고도편차가 거의없는 편안한 안부능선이다.
♤ 살구재(杏峴)
오른쪽은 군위군 삼국유사면 괴산리 괴산마을로 내려서는 등로이고 왼쪽은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로 내리는 등로이다. 수령이 꽤 됨직한 노거수 한 그루가 잘록이 안부를 지키고 있다. 지맥길은 직진방향 작전도로로 향하는 능선길이다.
- 준ㆍ희선생님의 ‘팔공지맥/ 여기가 살구재입니다’ 표지판이 있다.
♤ 충성로/ 작전도로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오각놀이 공원에서 3사관학교 화산유격훈련장으로 이어지는 충성로라 이름 붙여진 작전도로이다. 작전도로를 따라 약 200m를 진행하고, 여기서 작전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서도 되지만, 왼쪽 산위로 선명하게 나있는 숲길로 올라서서 삼면봉인 645.9m봉을 찍고 진행하는 것이 지맥길에 더 충실한 행로가 된다.
영천시 화산면 구간은 이 곳 삼면봉(645.9m)에서 삼각점봉(785.1m)까지 약 2.1km이다.
♤ 645.9m봉/ 삼면봉(군위군 삼국유사면, 영천시 화남면 → 화산면)
삼거리 갈림능선에서 오른쪽 봉우리로 향한다. 645.9m봉은, 오른쪽은 계속 군위군 삼국유사면이나 왼쪽은 영천시 화남면에서 화산면으로 바뀌는 삼면봉이다.
- 몸통이 묻혀있어 판독이 안되는 삼각점이 있다. 준희선생님의 '팔공지맥/ ▲645.9m' 정상 산패가 붙어있다.
♤ 영천시 화산면(花山面)
영천시 화산면(花山面)은 신녕군의 옛 이름인 화산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산면의 동쪽은 화북면(華北面), 서쪽은 노고산을 경계로 신녕면(新寧面), 남쪽은 서부동과 청통면(淸通面), 북쪽은 화북면 및 군위군 삼국유사면(三國遺史面)에 접한다. 화산면의 지형은 화산(華山, 828m), 노고산(老姑山, 558m)으로 이어지는 북부 일대 높이 500m 이상의 산지가 서북을 가로막고 있고, 동남부는 구릉성 산지, 중앙부는 침식분지로 구분된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보리·쌀 중심의 주곡 농업 외에 신녕천변의 하천 부지에서는 사과와 양파·마늘 등 다양한 소득 작물을 재배하였는데, 현재는 사과와 양파 대신 복숭아와 마늘이 주로 재배되고 있다.
삼면봉에서 능선길을 따라 약간 앞으로 나가면, 정면에 가야할 봉우리(785.1m)가 보이고 '5'표시가 써있는 군용 콘크리트 사각 말뚝봉을 지나, 617m봉에서 오른쪽 1시방향으로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괴산마을과 그 뒤 군위호가, 그 뒤 뾰족하면서 볼록한 옥녀봉(각시봉)이 보인다. 다시 충성로로 내려서서 20분 정도 도로를 따르면 화산유격장 정문 충성문이 나온다. 충성문으로 들어서서 바로 왼쪽편 능선으로 지맥길은 이어진다.
♤ 육군3사관학교(陸軍三士官學校)
대한민국 육군의 정예 장교 양성을 위해 육군3사관학교 설치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2년제 군사교육기관. 1960년대 북한의 도발로 인해 국방력 강화 및 단기간 장교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후에 제2사관학교를 흡수하면서 규모가 확장되었다. 한국의 5대 사관학교 중 유일하게 예비생도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와 더불어 육군장교를 배출하는 2대 교육기관이다. 생도 모집 시, 4년제 대학교의 2학년 수료 학점을 취득한 경우나 2년제 혹은 3년제 대학교의 졸업자 혹은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한다. 즉, 편입학 개념으로 생도들을 선발하고 있다. 1960년대 북한의 무력 도발로 인해 국방력의 강화와 정예 장교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1968년 육군 중견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1968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영천에서 개교했다. 국가와 군이 필요로 하는 초급간부의 자질 함양을 교육 목표로 설정한 육군제3사관학교의 교육기간은 설립 당시에는 불과 1년에 지나지 않았으나, 1971년 1월부터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리고 그 규모 역시 1972년 4월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던 육군제2사관학교를 흡수·통합함으로써 더욱 확장되었다. 1974년 12월 <단기사관학교 설치법>의 제정·공포에 따라 졸업생들은 초급 대학의 졸업 자격을 부여 받았으며, 1978년 9월 개정된 <단기사관학교 설치법>에 의해 4년제 대학 3학년에 편입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후 2004년에는 기존의 <단기사관학교 설치법>을 <육군3사관학교 설치법>으로 개정하고 교명 또한 육군3사관학교로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때는 육군 초임 장교의 52% 이상을 배출했으나 학사사관을 비롯한 특수사관 양성 기능을 육군학생군사학교로 이전하면서 사관생도 양성에 집중하게 되었다.
♤ 삼각점봉(785.1m)/ 삼면봉(군위군 삼국유사면, 영천시 화산면 → 신녕면)
이 봉우리의 마루금 북쪽은 계속 군위군 삼국유사면이 이어지고, 마루금 남쪽이 영천시 화산면에서 영천시 신녕면으로 바뀌는 삼면봉이다. 3사관학교 유격장 충성문에서 15분 정도 오른 지점이다. 785.1m봉에서 등로를 따라 약간 나가면 우측 멀리 화산 군부대 건물이 보인다. 778m봉은 능선길을 따르지 않고 임도로 우회해야 한다. 778m봉 이후부터 814m봉 직전까지는 화산유격훈련장의 각종 시설물이 위치해 있어 지맥 능선으로 재진입하지 않고 훈련장내 임도를 따라 814m봉 직전 828강의실까지 걸어야 한다. 삼각점봉에서 화산까지 약 1시간 군부대 유격장 내 도로를 따른다. 지나온 방향 멀리 보현산과 면봉산이 보이고, 낙동정맥과 호미지맥도 보인다.
- 준희선생님의 ‘팔공지맥/ 삼각점봉 785m’ 표지판과 삼각점(화북 48/ 2004 재설)이 있다.
♤ 영천시 신녕면(新寧面)
경북 영천시 신녕면은 영천 시내에서 북서로 약 17㎞ 떨어진 서북부에 있는 면으로 신녕면은 본래 신녕군의 지역으로 신녕 현청이 있는 곳이므로 현내면이라 했었다. 그러나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현내면과 치산면을 합하여 신녕군의 이름을 따서 신녕면이라 개칭하였다. 팔공지맥이 면내에 이어져 대체로 200~800m의 산지를 이루며, 신녕면의 동쪽은 노고산(老姑山, 560m)을 경계로 화산면, 서쪽은 팔공산(八公山, 1,193m), 시루봉 등의 연봉을 사이에 두고 군위군 산성면, 남쪽은 매산(梅山, 416m)을 경계로 청통면과 대구광역시, 북쪽은 화산(華山, 828m), 갑령(甲嶺) 등을 경계로 군위군 고로면에 접한다. 예로부터 지리적·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된 지역이다. 신녕향교를 비롯한 권응수 장군유물관 등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하고 팔공산 자락에 치산 계곡 관광지와 캐러반캠핑장 등 치산 산촌 생태 마을이 있다. 평야는 신녕천과 그 지류를 따라 소규모로 발달했다. 쌀·보리 외에 양파·마늘 등이 특산물로 생산된다.
억새밭을 10분 정도 통과하면 3사관학교장 경고판이 서있는 안부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 능선으로 가도 되고 화장실이 있는 오른쪽 군사도로로 향해도 된다. 군작전도로 삼거리에서 맞은편 등로로 오로지 않고 계속해서 직진으로 이어간다. 637강의장을 지나 저 멀리 화산 아래 보이는 파란 지붕의 828강의장을 향해 계속해서 도로로 걸어가다 삼거리에서 도로를 버리고 828강의장이 있는 화산 방향으로 올라선다.
♤ 화산(華山, 828.1m)/ 3등삼각점
화산은 경북 영천시의 북쪽에 위치하여, 신령면 화남리와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에 걸쳐 있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삼국유사면의 산중에 크기가 가장 큰 산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산이나 산정은 평탄한 분지로 울창한 숲이 있어서 산수가 좋기로 유명하다. 연화봉과 상자치의 경치가 매우 화려하여 화산(華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산세 수려한 화산이 개발되지 않은 것은 이곳이 군사 훈련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보면 산성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방기념물인 화산산성이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화산(華山, 華山城): 영조 때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성을 쌓았는데, 현재 북문(홍예문)과 수구문이 남아 있음. 안에 윤병사비(尹兵使碑)와 약수, 풍혈(風穴)이 있으며, 산이 높아서 사방이 탁 트이고 경치가 훌륭함"이라는 기록을 통해 산 지명과 산성의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있다. 화산에서 10여보 앞으로 내려서다, 우측 3시 방향으로 길이 없지만 꺾어서 내려서야 한다. 직진 방향 능선은 혈암산과 화암산으로 가는 등로이므로 주의를 하여야 할 지점이다.
- 3등삼각점(화북 315/ 2004 재설)이 있다. 준·희선생님의 '팔공지맥/ ▲화산 828.1m' 산패와 수많은 시그날이 있다.
고등학교 때 교장선생님이 3사관학교장 출신이었습니다. 학도병출신으로 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었죠. 그분이 교장 재임시기에 화산산성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는지 많은 말씀을 하셨어요. 도리사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하시고 방학에 집에 가지않고 기숙사에 잔류한 학생들을 데리고 도리사도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재학생 때 학교 버스로 단체로 다부동전적지에도 다녀왔는데 그저 다녀왔다는 기억만 남아있네요.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 47호
화산산성은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화산 일대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산성으로, 1709년 (조선 숙종 35년) 병마절도사 윤숙 장군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당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지은 절 군수사지(軍需寺址)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아름다운 반월형 홍례문과 수구문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하여 먼저 홍예문(虹霓門)을 세우고, 혜후와 두청스님으로 하여금 군수물자를 비축해두기 위한 사찰인 군수사(軍需寺)를 짓게 하였다. 그 후 홍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의 성벽을 구축하던 중 심한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고 20년간 후임자 없이 공사가 헛되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전체 성터 가운데 가장 잘 남아있는 북문터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아치문을 이루고 있으며, 성의 내벽을 구축하여 내·외협축의 성벽을 만들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구문터도 조선 중기이후 유행한 2층의 수구로 축조하려던 모습이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이 공사는 국가의 재정적 뒷받침없이 윤숙 자신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로 시작되었으며, 일체의 민폐도 끼치지 않았음이 특징이다. 현재 북문과 수구문터는 축성을 시작하여 공사하던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축성의 기법과 공사의 순차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산성 안에는 옥정영원(玉井靈源)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지름 5m의 바위구멍에서 솟는 석간수이다.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여름에도 10℃이하의 시원한 냉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흥)』에 “신령면의 진산(鎭山)이다. 이 산의 이름을 신령면의 옛 이름 화산(華山)에서 따왔다. 화산은 현의 동쪽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유사한 기록이 『여지도서(의흥)』에 "화산(華山)은 관아의 동쪽 30리에 있다. 청송부 보현산에서 뻗어 나와 공산(팔공산)의 으뜸 줄기를 이룬다."라고 기재되어 있어 산줄기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증보문헌비고(의흥)』에는 "화산성(華山城)은 숙종(肅宗) 35년(1709)에 성을 쌓다가 그만두었는데, 둘레가 9,300여 보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화산 위에 있던 산성의 연혁을 알 수 있다.
♤ 인각사(麟角寺)/ 사적 제374호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산(華山)에 있는 삼국시대 643년(선덕여왕 연간)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절의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속전(俗傳)에 기린이 뿔을 이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화산의 형태가 기린을 닮았고 인각사의 위치가 기린의 뿔에 해당되는 지점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 기린의 뿔이 인각사의 동서로 흘러내린 산자락으로 보아도 무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뒤 1307년(충렬왕 33)에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一然)이 중창하고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당시 이 절은 크고 높은 본당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앞에 탑, 좌측에는 회랑, 우측에는 이선당(以善堂) 등이 있었고, 본당 뒤에 무무당(無無堂)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일연은 총림법회(叢林法會) 등 대규모의 불교행사를 개최하였다. 시대는 미상이나 조정의 명으로 김용검(金龍劍)이 절을 크게 중건하고 밭 100여 경(頃)을 헌납하였다. 조선 중기까지 총림법회를 자주 열고, 승속(僧俗)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華北里)
화북리 인각(麟角)이라고 부르는 곳은 화북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인각사 앞에 있으므로 인각이라 부른다. 경주이씨들이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인각사의 유래는 사찰 맞은 편에 학소대라는 가파른 절벽이 있는데 여기서 놀던 기린이 암벽에 떨어져 뿔이 빠져서 인각사라 하였다 하며, 절 창건은 신라 때 의상조사가 하였다 한다. 고려 때 일연이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으며 보각국사비가 있다. 숙종 25년 현감 박성환이 중축했다. 둥디이 둥딩 둥둥이 부부(缶缶)라고 부르는 곳은 부락 뒷산이 흡사 장구 모양을 하고 있으며 소리가 둥둥 나는것 같다고 해서 둥디이라고 불렀다. 산이 작고 모양이 같은 산이 나란히 둘러있다 하여 부부동이라고도 하였으며 마을사람들이 정기가 계속 울려야 좋다하여 자주 풍악놀이로 마을의 운을 기원하면 둥둥 북소리를 울렸기에 둥둥이 또는 둥디이라고도 한다. 쌀매기 쌀미기 용암(龍岩)이라고 부르는 곳은 쌀이 많이 났다하여 쌀매기라 불렀다. 지금은 논이 많지않으나 과수원과 양봉을 약간 하고 있다. 용처럼 생긴 바위가 마을 입구에 있으며 골짜기에는 용추폭포가 있는데 비류직하 수십척이라 옛날의 의흥군수가 큰 가뭄 때 기우제를 올리던 곳으로 신령한 곳이라 한다.
♤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화산마을
화산마을은 1962년 '재건동' 혹은 '개간촌'이라 불리던 마을이다. 말 그대로 임야를 개간해 밭을 만들고 그 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초창기 정착민들은 정부로부터 6,000평 정도의 임야를 무상으로 지급받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많은 지역의 산간마을이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화산마을도 그 중 하나였던 셈이다. 개간촌이 형성될 당시에는 모두 네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제법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세개 마을은 인근 영천시의 감자골로 옮겨졌고, 지금은 한개 마을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민가라고는 산비탈에 띄엄띄엄 들어앉은 10여 채 뿐이다. 그래도 꽤나 잘 사는지 집집마다 차량 한대씩은 다 있어 보인다. 화산마을이 세간에 알려진건 화산산성(경상북도 기념물 제 47호) 때문이라고 한다.
♤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감자골
화산A지구 재건동(再建洞)이라고 부르는 곳은 1962년 정착민들로 구성된 A, B, C, D마을이 산재되었는데 군부대가 주둔하여 민간 주민들은 A지구 마을만 그대로 두고 다른 부락은 다 철거시켰다. 철거민은 주변지역인 감자골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감자골은 영천군 신녕면 화남리이며, 권오룡씨가 세계 제2차대전 때 징용 및 보국대로 주민들이 끌려가자 남은 사람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화산(華山)벌을 개간하여 감자를 많이 심어 감자골이라고도 한다.
♤ 722.9m봉/ 산불감시초소/ 이동통신중계탑 3개
화산에서 육/훈 표지석이 있는 805.5m봉에 올라 고랭지채소밭을 지나고 멀리 보이는 감자골마을을 향한다. 감자골마을 폐교가 된 화산분교를 지나 올라선 722.9m봉에는 부서져 방치된 산불감시초소와 무인산불감시카메라 그리고 이동통신중계탑 3개와 관리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조림산(638m)이 보이고, 북쪽으로 삼국유사면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왼쪽의 뾰족한 옥녀봉(562m)과 오른쪽 위천의 고로댐 저수지도 보인다. 그 뒤쪽으로 선암지맥의 선암산(881m), 뱀산(838m)도 조망해 볼 수 있다.
- 밑둥이 깨져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좌틀하여 임도로 내려선다.
♤ 옛 갑령(甲嶺, 288m)
갑령은 경북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삼국유사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갑티·갑치· 갑현· 갑령재·갑티고개·갑령고개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고개가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장군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실제로 이 고개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고개 밑에는 갑현(甲峴)이라는 취락과 갑현제(甲峴堤)라는 못이 있다. 급경사를 내려선 옛 갑령재에서 다시 눈앞에 커다란 봉우리가 앞을 가로 막는다.
- 아무런 표시도 없는 희미한 잘록이 안부이다.
이제까지 군위군과 영천시 경계를 지나오던 지맥은 479.6m봉에서 온전하게 영천시 내안으로 진입하며 팔공산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지맥능선이 바라다 보입니다.
♤ 479.6m봉/ 영천시로 진입(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
잘록이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정면 높이 바위산이 가로막아 왼쪽 산사면으로 우회하여 능선에 올라선다. 이 곳 능선에서 지맥길은 왼쪽으로 이어지나, 오른쪽 편의 산봉우리로 올라선다. T자 갈림 능선인 이 곳부터, 지금까지 오른쪽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왼쪽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를 가르며 이어오던 지맥은, 온전히 영천시 신녕면으로 들어서서 왼쪽 동남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쪽(서쪽) 신녕면 화서리와 왼쪽(동쪽) 신녕면 화남리를 경계지으며 이어간다. 갈림길에서 약 120m 정도 오른쪽으로 오르면 479.6m봉이다. 479.6m봉에서 팔공산과 가산, 구미 금오산이 멀리 조망된다. 되돌아 내려서면, 오른쪽 아래로 갑령재가 지나는 화서교차로가 보인다.
여의치 않다면 신녕택시를 불러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있는 신녕면으로 나가 끊어가기 좋은 곳으로 영천시 신녕면까지는 택시비 1만원 이내입니다. 신녕면 개인택시: 010-4020-0674
♤ 갑령재/ 화서교차로/ 28번국도, 908지방도
현재의 갑령재는 중앙선 철도와 영천시 의성~포항간 국도 28호선이 신녕면 화남리와 군위군 산성면 화서리를 지나고 908번 지방도가 분기되는 삼거리 교차로이다. 새로운 도로를 내면서 고개 너머 갑령의 이름을 이곳으로 가져왔다. 고개 밑에는 갑현(甲峴)이라는 취락과 갑현제(甲峴堤)라는 못이 있고 중앙선 역인 갑현역이 자리하고 있다.
-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화서육교와 화서교차로 방향으로 내려 육교를 건너, 성덕대학교와 부림한방병원 표시판, 속도제한 표시판(60km)과 수준점(244m)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들머리이다.
♤ 장고개/ 오림터널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의 중앙선 철도터널인 오림터널이 지나가는 잘록이 안부이다.
♤ 298.8m봉/ 삼각점봉
봉우리인지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밋밋하다. 팔공지맥/ 298.8m/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는 300m 봉우리에 올라서면 진행방향으로 팔공산 능선의 좌측 투구봉, 우측 팔공산 주봉이 뚜렷하다.
- 4등삼각점(군위 468/ 2004 복구)이 있다는데 찾기가 쉽지 않다.
성균 초시 경주김씨 묘를 지난다.
♤ 초시
조선시대 교육제도는 과거제도와 긴밀히 연결되어서, 초시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유생(儒生)에게 우선적으로 성균관에의 입학 기회를 주었다. 성균관에는 최고의 책임자로 정3품직인 대사성(大司成)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제주(祭酒)·악정(樂正)·직강(直講)·박사(博士)·학정(學正)·학록(學錄)·학유(學諭) 등의 관직을 두었다.
- 305m봉을 지나 약간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신녕면 부산리와 사기점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 정면으로 팔공산 능선이 시원스레 뻗어 있다. 멀리 중앙에 팔공산이, 좌측에 투구봉이 보인다.
♤ 사기점(沙器店)고개/ 2차선 도로
경북 영천시 신령면 부산리 능선에 있는 고개로 919번, 904번 지방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많은 개념도와 안내 지도에는 이 곳을 '사기정 고개'로 표기하고 있으나, 온라인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좌측 아래 신녕천 가까이에 사기점마을이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기점고개가 변형된듯 하다. 통상 사기점은 조선시대 사기그릇을 만들어 낸 곳에다 붙이는 이름이다.
- 내려서서 좌측 부산리 방향으로 이동하여 도로 건너 낙석 방지펜스 시작지점에서 우측 산길로 진입하여 성황당고개로 가게 된다.
♤ 388.2m봉 전위봉/ 시군계(영천시 - 군위군)/ 군위군과 영천시의 경계에 다시 만난다.
성황당 안부를 지나는 이곳 335.9m봉 부터 갑령재에서 헤어진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와 군위군 산성면 봉림리의 경계와 다시 만난다. 지맥의 우측은 삼국유사면에서 산성면으로 바뀌어 있다.
- 준희선생님의 '팔공지맥/ ▲388.2m' 정상 표지판이 있다. 지맥길은 좌틀로 이어지나, 삼각점은 우측 방향으로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에 매설되어 있다.
♤ 잦이재 순절비
잦이재로 내려서는 좌측편에 최근에 조성된 듯한 묘비명이 세워져 있는데, '의사용연공휘치강지순절비(義士龍淵公諱致剛之殉節碑)'와 '의사만은공휘흔지순절비(義士晩隱公諱忻之殉節碑)', 그리고 통정대부 의성김공 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순절비를 살펴보면 임진왜란 때 순절하였다는 내용이다.
♤ 자주고개/ 잦이재/ 919번 지방도/ 팔공산권역 진입
군위군 산성면 삼산리와 영천군 신녕면 치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신녕~산성~부계 사이 도로의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와 군위군 산성면 경계점에 있는 잦이재(잦이고개)를 통해 드디어 팔공산 본 덩어리로 들어선다. 잦이재를 지도들은 자주고개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인근 마을 사람들은 오차없이 잦이재라 했다. 그들은 특히 '잦'에 엑센트를 줘 발음하고 있었다.
- 순절비에서 도로에 내려서면 왼쪽편에 준희선생님의 여기가 자주고개입니다 산패와 들머리가 있다.
♤ 상주-영천고속도로(尙州永川高速道路, 고속국도 제301호선)
상주-영천고속도로는 경북 상주시를 기점으로, 경북 영천시를 종점으로 하는 고속도로 노선이다. 2012년 6월 28일에 착공되었으며, 이 중 당진-영덕고속도로와의 중첩 구간인 낙동 분기점~상주 분기점 구간이 2016년 12월 26일에 당진-영덕고속도로 상주 분기점~영덕 나들목 구간과 함께 먼저 개통되었고, 나머지 상주 분기점~영천 분기점 구간은 2017년 6월 28일 0시에 개통되었다. 2008년 1월 3일에 기존 계획된 노선인 김천-영천고속도로를 대신하여 신설되었다. 사업은 수익형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되어 상주-영천고속도로(주)가 건설하게 되며 총연장 93.9km이며 총 사업비는 1조 3,986억으로, 그 중 민자로 1조 1,325억 원이 투입된다. 최초 통행료는 5,814원이 책정되어 다른 고속도로의 같은 구간 요금인 6,007원에 비해 훨씬 싼 편이다. 이 고속도로의 개통 후 영천/경주/포항/울산/부산(노포동)방면 고속버스 노선들이 2019년에 상주-영천고속도로로 인가를 변경하여 운행 중이며, 낙동강휴게소가 환승 휴게소로 지정됐다.
자주고개에서 상주영천고속도로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오른쪽 배수로로 절개지를 내려서면 군위영천휴게소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식당은 21시에 닫지만, 편의점은 24시간 운영하여 비상식수 조달이 가능합니다. 화서교차로에서 비실이대선배님과 통화하며 낼아침 비가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심야에 시루봉까지 올라가서 바위 아래 비박지를 찾아보느냐, 아니면 휴게소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비박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느냐 고민에 잠겨야 했습니다.
억새구간에서 4등삼각점(군위 468/ )이 있는 332.3m봉과 501.3m봉(묘지)을 지나 시루봉 직전 조망바위에 올라선다. 시루봉 직전은 암벽구간, 직벽구간이다. 암릉 중앙으로 길이 열린다. 정상에 서면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일대가 잘 내려다 보인다.
♤ 시루봉(甑峰, 726m)
팔공산 시루봉은 팔공산의 수문장으로 영천군 신녕면 치산리에 있으며 북쪽으로 군위군 산성면에 접한다. 치산리 마을 뒤에 마치 ‘시루를 엎어 놓은 것’과 같다는 시루봉은 박춘립(朴春立)과 권상현(權象鉉)의 문집 등에 그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시루봉은 화산에서 이어진 팔공산의 관문으로 정상부는 넓고 평평하고, 사방이 깎아지른 단애로 되어있는 천혜의 요새로 남아있는 성벽의 흔적은 임진왜란 당시 공산성의 북쪽 전초성이 있었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팔공지맥 능선산의 암봉인 작은 봉우리이지만 군위군 산성면과 영천군 신녕면 방향으로 시원한 조망이 있는 멋진 봉우리이다. 등산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여러 조망처를 제공하고 팔공지맥을 하는 맥꾼들은 꼭 지나야 한다.
♤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
백학리는 동리 입구 바위에 백학이 많이 깃들어 유래된 지명이다. 자연마을로는 소하동, 전거리 등이 있다. 소하동은 인가가 생기 전 소하사(蘇下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윗마을을 소상(蘇上), 아랫마을을 소하(蘇下)라 한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시루봉을 지나 다시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공산성의 흔적들이 보인다. 이곳부터 시작되는 팔공산은 우리나라 전쟁의 아픈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와 후백제의 다툼, 몽고군의 침입,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에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하여 부산을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대구쪽으로 몰려올 떄 조선을 침략하여 강토를 유린하고 살인, 방화, 약탈, 강간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일삼는 왜적을 섬멸하고 조선과 백성을 지키고자 주변 고을의 선비 사대부들이 팔공산에 모여 들어 구국 의병을 일으키기로 맹세한 것이 바로 공산회맹이다. 이때 회맹한 의병장은 대구, 상주, 밀양, 영천, 하양, 흥해, 청송, 청도, 영일, 울산의 수십명이었다. 임진 7월, 신녕의 권응수 장군은 각 고을 의병장들을 거느리고 군사교통의 요충인 영천성 수복작전을 전개하여 3천5백의 창의정용군이라 이름한 구국충절에 불타는 군대로 영천성을 공격하여 화공작전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 휴정으로부터 팔도의 승려들이 궐기할 것을 촉구하는 격문을 받고 영규, 처영, 사명당 유정 등이 승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용감히 싸웠다. 동화사에는 영남 승군사령부를 두어 사명당 유정선사가 승군 총섭(사령관)이 되어 승군을 훈련하고 이들을 지휘하여 공산성을 수축하고 이 지역을 수호했다. 1597년 정유재란에 왜군들이 재침했을 때도 이곳 팔공산성은 민초들을 지켜준 곳이다.
♤ 매봉분맥분기봉(850m)/ 삼면봉(영천시 신녕면, 군위군 산성면 → 부계면)/ 헬기장
팔공지맥이 자주고개에서 팔공산으로 오르다가 시루봉을 넘어 약1km정도 꾸준히 올라 팔공산 하늘공원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와 만나는 등고선상 850m지점이다. 도로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다. 원래 군사도로로 통제되었으나 팔공산 정상부 청운대에 군위 하늘공원이 조성되면서 일반인도 승용차로 오를 수 있다.
- 도로를 따라 5~60m 정도 올라 좌측 가드레일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숲속으로 들어서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간다.
♤ 매봉분맥이란
군위군 부계면, 산성면, 영천시 신녕면의 삼면지점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부계면과 산성면의 경계를 따라 설봉(805m)-송골봉(757.5m)-소상동ㅏ자도로(450m)-도립공원 끝지점(410m)-상주~영천간고속도로 산성휴게소(230m)-79번국지도 재주쉼터(210m)-미터지고개 도로 사거리(210m)-십자안부 도로 삼거리(230m)-344.7m봉-삭골재 도로 생태육교(250m)-삼경점(270m)-삼면봉(350m)-못안고개 도로(230m)-기곡고개 도로(310m)-신흥사 뒷산(430m)-박태산(450m)-임도삼거리 여림실고개(390m)-감시카메라철탑(450m)-매봉산(488.7m)-임도(350m)-간동고개 임도(310m)-333m봉-224.4m지점-5번국도 병천교(90m)를 지나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 남천이 위천을 만나는 곳(90m)에서 끝나는 약29km의 산줄기를 말한다.
1,001.5m봉의 성터를 지나고 다음 올라선 봉우리에서 부대가 보입니다. 부대 울타리 왼편으로 멧돌바위가 보이지만 저는 산사태로 무너져 내려 위험한 왼쪽 울타리로 돌지 않고, 군위에서 조성한 하늘정원으로 향하는 데크길이 조성된 부대 오른쪽 울타리를 선택했습니다.
♤ 맷돌바위/ 시루바위/ 떡바위
맥길 정상에 공군부대가 있어 울타리를 따라 우회해야 한다. 왼쪽이 맥길에 가깝지만 철조망으로 인해 까다로와 오른쪽으로 우회하는게 편하다. 산성봉 동편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맷돌바위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일부 시루바위나 떡바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나, 위 아래로 맞물려 돌아가는 형상의 맷돌바위가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된다. 비로봉 정상부 공군레이다기지를 우회한다.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에서 통신탑이 위치한 제왕봉까지는 하늘정원 가는길 도로를 따른다.
- 영천시에 속하는 산성봉에는 레이다기지와 벼랑바위가 있다.
♤ 군위군 부계면(缶溪面) 동산리
경북 군위군 부계면은 칠곡군 동명면,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과 마주보고 있다. 1914년 3월 부.군.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정비한 현내 현서 부남의 3개 면을 합병하여 부계면이 되었다. 팔공산은 흔히 대구의 명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팔공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의 행정구역은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이다. 비로봉은 양쪽에 동봉과 서봉이 보좌를 하고 있는 모양새인데, 그중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봉의 행정구역은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소재이다. 동산계곡은 남쪽 끝에 솟은 팔공산의 원시림과 4km에 걸쳐 흐르는 맑은 물이 어우러진 계곡이다. 울창한 숲과 맑고 깨끗한 물, 그리고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있고 예로부터 물의 양이 많다고 해서 "멱바우"라고 불리고 있으며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폭포가 계곡 따라 이어져 있어 절경을 더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군위 삼존석굴, 팔공산도립공원 등 둘러볼 만한 곳이 많아서 좋다. 대구에서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군위로 들어가는 79번 지방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여서 여름철이면 이 동산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 인근의 주요 관광지 및 체험장으로는 삼존석굴, 팔공산 하늘정원, 고로 인각사, 산성 화본역, 우보 리틀포레스트 촬영지 등이 있다.
군위하늘정에 배낭을 두고 청운대(0.3km)로 가서 원효굴(80m)과 좌선대를 구경하고 다시 되돌아와야 합니다.
♤ 오도암/ 청운대(1,122m)/ 원효굴
2009년 비로봉 개방, 비로봉 북쪽 군사시설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었던 하늘정원은 4년의 공사 끝에 2014년 개방되었다. 그리하여 동산리 주차장에서 오도암~하늘정원을 연결하는 2㎞ 거리의 구도 길이 개방되며, 팔공산 비로봉을 가장 짧고 빠르게 찾는 길이 열린 것이다. 오도암(悟道庵)은 팔공산 제일의 명당으로 청운대 절벽아래 자리잡고 있는 이 절은 신라 654년(태종무열왕 원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오도(悟道)한 곳이라 하여 오도암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1963년 폐사이래 유허만 남아있고 빼어난 상호의 불상과 고탱화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절 뒤편에 청운대에는 원효효대사가 득도한 원효굴과 그보다 약 20여년 앞서 젊은 시절 김유신 장군이 기거하며 그 물을 먹으면서 앞날을 생각했다는 장군수(將軍水)가 있다.
♤ 공산 동수 전투(公山 棟藪 戰鬪)
고려 태조 10년(927년), 왕건이 친히 고려·신라 동맹군을 이끌고 용주(龍州·예천 용궁)와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문경)을 점령하여 죽령(竹嶺)과 함께 계립령(雞立嶺·鳥嶺)의 요충지를 확보하자, 후백제의 견훤은 소수의 별동대로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 있는 북방지역을 공격하는 한편, 자신은 동남쪽으로 진격하여 고울부(高鬱府·永川)을 짓밟고 동경(경주)으로 다가갔다. 견훤이 신라의 경주를 공격한 것은 경애왕(景哀王)의 친 고려 정책과 고려와 신라의 군사동맹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남방의 신라를 제압하여 친 고려 왕권을 친 백제 왕권으로 교체할 목적이었다. 경애왕이 사신을 급파하여 구원을 요청하자, 왕건은 강공훤(康公萱)·손행(孫幸)ㆍ련주(聯珠) 등에게 정예 10,000명의 대군을 보내 신라를 구원케 했으나, 견훤은 이보다 앞서 동경(경주)을 공격했다. 이때 경애왕은 남산 포석정(鮑石亭)에 있다가 후백제군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남(城南)의 이궁(離宮)에 숨었으나 잡혀와서 처형당했다. 견훤은 경애왕의 표제(表弟ㆍ외종사촌동생) 김부(金傅)를 왕으로 옹립하고 왕의 아우 효렴(孝廉)과 재상 영경(英景) 등을 인질로 하고 신라의 진보(珍寶)·병장(兵仗)·백공(百工)·자녀(子女)들을 노획, 철군했다. 후백제군은 개선 길에 공산 동쪽 은해사 일대에서 고려의 5,000의 기병과 접전하였다.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팔공산 남사면 지역이 팔공지맥이 오는 원래 지맥길이다. 팔공산에서 가장 높은 주봉인데 군부대가 장악하고 있어 대접을 못 받는 곳이지만 공군부대가 둥굴게 울타리를 치고 있는 저 봉우리가 바로 옛 공산성(公山城)이다. 공산 동수 전투(公山 棟藪 戰鬪)는 후삼국시대인 927년 신라 공산(公山, 현 팔공산)는 동수(棟藪, 현 지묘동)에서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치른 전투로 견훤이 왕건군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고 오랜 행군으로 피로에 지친 고려군이 패퇴하자, 왕건은 태조지(太祖旨)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물러나 공산의 남쪽 동수(桐藪) 일대에서 후백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형세가 불리하여 견훤의 군사가 왕건을 포위하여 매우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대장(大將) 신숭겸(申崇謙)과 김락(金樂)은 포위망을 풀기 위해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고려군은 패배하였으나 왕건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곳에서 신숭겸 등 8명의 장수가 전사해 지명이 공산에서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설화도 있고 반야월 등 대구의 대표 지명들이 이 전투에서 생겼으며 대구에는 아직도 파군재, 독좌암, 왕산, 안심, 해안, 백안, 연경, 살내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의 격전지임을 알 수 있다. 후삼국시대(927년)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 견훤과의 싸움에서 전세가 위급하자 태조(왕건)의 복장으로 변복하고 싸우다 전사했는데 견훤은 이를 왕건으로 알고 목을 베어갔다. 그 배경이 이곳 공산성 전투이다. 비로봉에서 보니 장엄하다. 그 밑에 사는 부계 사람들이 남포루라 불러왔다고 한다. 남쪽에 있는 대포 요새 같이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팔공산 정상의 구성은 서봉-(삼성봉)-오도재-주봉(비로봉)-장군메기-동봉(미타봉)으로 되어있다. 주봉이 좀 북쪽으로 물러 앉았고 양 날개는 남쪽으로 나와 있어 마치 삼각편대를 연상케 한다. 마치 절에 가면 대웅전에 석가모니를 주불로 하고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있는 것처럼,, 그 아래에는 수태골이 형성되어 있다.
- 후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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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집을 나가셨네요.
걍 산에서 사시지 왜 ?? 파계하셨나요??
3일간 고생 넘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릎 조심 하셔야 합니다.
늙어 고생 하지 않으시려면.......
네, 조위원장님!^^
장거리를 넘 많이 쉬었나봅니다.
평소 근지구력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허리도 욱씬하고 한쪽 눈에 핏발이 섰네요.
하지만 무릎은 의외로 멀쩡한걸요.^^ ㅋ
가산산성에서 푹 쉬었더니, 마지막 날은 힘이 나던걸요. 물론 등로도 좋았지만요.
갈매기산에서 갈비재로 내려서며 마루금을 따라 교통호와 유해발굴지역이 보였습니다.
여기도 낙동강전선 최후 축차방어진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답니다.
그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고마운 분들이 계셔서 들머리와 날머리 교통이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조위원장님 말씀에 한표.
무릎팍 원형보존관리법위반으로 과태료 피하실려믄.
비실이대선배님!.
그 임고사장님이요, 평소 존경하는분이라면서 담에 오실일 있음 또 연락달라네요.^^
모텔앞 편의점이 잠깐 문을 닫았더라고요. 그래서 곧바로 출발해서 아침부터 행동식으로 떼웠습니다.
한티재에서도 밥을 먹을 거로 기대했는데 식당은 없고,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이나 햇반은 팔지 않더라구요.
중간에 군위영천고속도휴게소에서만 식사가 가능했는데 여기서는 소주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ㅋ~
대구사령관님이 직접 길을 열어주신 덕분에 팔공이 순조롭게 풀려 팔공산을 무사히 통과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힘들게 장거리를 산횅하셨네요~~~~ 팔공산 정상 근처의 멋진 조망이 날씨로~~아쉽겠습니다.
덕분에 가산산성의 조망과 팔공산 주변 조망을 잘 하고 갑니다.다부동도요~~~~
황학지맥을 하면 다부동기념관도 지나게 되더라고요.
앞으로도 가시는 산길마다 무탈하게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덩달이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사전투표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아하! 황학지맥을 하면 다부동전적지를 지나게 되는거군요.
그런데 황학지맥을 하며 다부동이 아군 전사상자만 1만이 넘는 시산혈해의 지역이란 사실을 모르고 지나시는 분도 많은가 봅니다.
팔공산에 처음 가보았습니다. 그것도 제일 길게 자주고개에서 모래재까지....
하지만 어디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한번 더 오라는 깊은 뜻으로 해석하고요,
팔공산 주변 동서남북 방위감을 익힌 것만으로도 크나큰 수확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고장에 있는 팔공지맥에 산행에 드셨네요
대구에서 가까워 미루고 있는 지맥 중 하나 입니다
팔공산이 있는 대구의 명산 이지요
한티재 아래에 아직 선산이 있어서 부모님 산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벌초 추석에는 늘 갔다 오곤 하지요
팔공지맥 한티재 지나서 가산 가기전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를 지났네요
거기에 아래로 보면 마을이 보일 겁니다
그 마을 윗쪽에 같은 동네 이지만 1.5km 떨어진 곳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이지요
아랫마을 윗마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 곳이지요
16살쯤 대구로 이사를 하고 말았지요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에서 보이는 마을에는 사촌이 큰 식당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팔공지맥 풍라라님 산행기를 보면서 문득 고향이 그리워져서 울컥 했네요
예전 우리마을에서는 갱상도 말로 영감 할마이 방구라고 했지요
그때는 거리가 엄청 멀더니만 지금은 가까게 보이네요
가산 아래 가산 산성 시작되는 혜원정사 에서 좌측 성벽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아래가고향마을 입니다
일년에 벌초 시제 때문에 가네요
지금은 어릴적 흔적은 없고 온통 주택지로 변해 외지인이 태반 입니다
그래서 나무하려 가산 아래까지 가고 했지요
예전에는 집근처에는 땔감이 없으니 멀리 갔다 오고 했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가난 했는지 그래서 아직 전 음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나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요
그때 고향은 엄청 골짜기 사람이 안살려고 하는 동네 입니다
그것이 천지개벽되어 지금 도롯가에 땅1평이 사백만원 한다니
다부전투전적비 예전에 우리는 다부고개로 불렀지만 황학지맥을 알면서
소야고개로 부르는 것이 이제 알았네요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니 고향이 생각이 문득 나고 하는데
풍라라님 팔공지맥 산행기를 읽으면서 고향이 더 그리워 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나이가 먹어가고 늙어가는 증거 이겠지요
고향을 다시 그리워지고 친구들이 그립고 고향산천이 그립고
오늘 정말 행복한 하루인것 같습니다
팔공지맥 마무리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와룡산선배님!
치키봉삼거리에서 진남문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더군요.
그리 내려가면 윗산당마을이랍니다.
칠곡군 동명면 가산산성 아래쪽 마을이구요.
그곳이 고향이시군요.^^
할아버지할머니바위를 지나 동문 가기 직전에 성터 옆에서 비박을 틀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불빛이 다부동전적지가 있는 유학산터널 아래 마을로 보였구요.
유학산, 황학산에서 비박하면 아직도 젊은 영혼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더군요.
선배님 고향 마을은 가산바위에서 도덕산 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방향같습니다.
지나가며 그 마을을 바라본 기억도 납니다.
다부동 유학산에서 내려서서 대구로 향하는 도로 양 옆으로 마을을 보고시는
6.25에는 저 골짜기에 군인들이 꽉 찼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남문 정문에서 좌측으로 성벽을 따라 오르면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2리(원당) 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가 고향 이고 팔공지맥 종주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룩스맵에 보면 진남문 아래에 있는 마을이 새남창 마을 입니다
여기에 사촌이 살고 있고 우리 고향은 윗쪽 원당이라는 지명이 있을 겁니다
같은 남원2리 이지만 윗동네 아랫동네 이지요
풍라라님 이야기 쪽 팔공지맥 우측이 아니고 좌측 입니다
우리마을에서 보면 우측이 서산 좌측이 도덕산 입니다
거기도 지금 엄청나게 전원주택지가 있어 예전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에이...
와룡산님은 사천이 고향 아닌가요??
와룡지맥에 있는... 문중 기록을 잘 보셔요...
어! 조위원장님
저는 안동 용암지맥 와룡면으로 알았다가 이번 기회에 다시 알았습니다.^^ ㅋㅋ
팔공지맥 첫 구간은 노귀재에서 효령재까지 진행하셨네요.
74km, 이틀 반 가까이를 마루금과 함께 하신 셈이군요.
이 구간 화산, 공, 가산산성 등 세 곳의 산성을 지나고 멋진 풍광도 잘 드러납니다.
우중 산행도 만났고, 마지막 날은 친구분과 다부동 전적지를 방문해서 멋진 추억을 남긴 듯 싶습니다.
만만치 않은 장도를 주야없이 이어가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지는 안전한 여정되시길 기대합니다.^^
방장님,
예정에 없던 비가 온다길래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하필, 가져다니던 휴대용 우의도 때마침 보이질 않고 휴게소에서 우의를 구할 수도 없더군요.
하지만 일단 멈출만한 양은 아니라 다행이었고, 산 위에는 비보다 눈일거란 예상도 들었습니다.
조금 일찍 출발해 약간씩 비가 내리고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시루봉에 서둘러 올르느라 진땀이 삐질 났답니다.
가산산성 이후론 계속해서 다부동과 낙동강전선이 머리속에 꽉 차있었습니다.
군위와 구미의 경계를 나누는 팔공 마루금이 낙동강전선 축차방어진지였단 사실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팔공산을 우회한 영천 안강, 포항 보현산, 내연산 전선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학도병까지 투입되는 다급한 상황이었죠.
일찍 마쳐 시간 여유도 있겠다 가까이 있는 다부동전적지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거운 박 배낭을 메고 3일간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네요
최근에 근처의 지맥들을 많이 다녀오다 보니 내가 걸은 듯 반갑기도 하고 추억이 되살아 나기도 하네요
저 화산은 근처의 다른 지맥 산행을 하면서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곳인데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었나 봅니다.
남아 있는 구간도 무탈하게 즐거운 산행길 이어가며 안전하게 마무리하시기 바람니다.
사진이 100장이 넘어가니 두번으로 나눠 산행기를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알기에 더욱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 봅니다.
넵! 칠갑산선배님~
아무리 박배낭이라 해도 저는 10kg은 넘어가지 않을려고 노력한답니다.
이번에도 사용하지 않는 옷가지를 너무 많이 넣어가지고 다녔습니다.
정작 필요한 비닐우의는 빠뜨리고요. ㅋ
화산에 풍력발전기가 언제부터 설치되었는지는 모르겠고, 현재 7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몇 기가 더 설치될지 아직 진행중인 모양이더군요.
화산마을에도 빨간 풍차가 보이는 등 주변 지역이 관광 상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화산으로 다가가며 군위호와 옥녀봉이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물 좋고, 공기 좋고 아직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원마을로 보였구요. 곧, 군위군이 대구광역시에 포함된다고 하니, 대구의 휴양도시로 많이 발전할것 같았습니다.
칠갑산선배님 처럼 가급적 주변을 많이 보고 가능한 오래 기억에 남도록 진행하고 싶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