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을 사모하라. (전도서 3:11-15)
“하루는 무척 길지만 1년은 짧고, 10년은 더 짧다.”
배우 박○원 씨의 말입니다.
최근 신문에 “명사들이 쓰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 나 떠나는 날엔”이라는 칼럼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항상 외워 두는 게 있다. 1년 365일, 8760시간, 52만 5600분, 3153만 6000초…”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시간의 소중함, 현재 생의 귀함을 알기에 그럴 것입니다.
오늘은 7월 1일, 2018년 한 해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요즘 한창인 월드컵 축구 경기로 보자면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금년 한 해의 전반전을 보내고 후반전을 시작합니다.
말 많고 탈 많고 별의별(벼라별) 일이 많은 세상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들이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것은 한 해의 절반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온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루는 무척 길지만 1년은 짧고 10년은 더 짧다.”라는 박○원 씨의 말에 공감합니다.
순간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지만 성도는 영원을 삽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왕이 인생에 대해 말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전도서 3:1-8).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1절)
솔로몬은 2가지씩 짝을 이루어 14가지를 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2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 (4절)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6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 (8절)
인생은 온갖 때가 있고, 그것도 상반된 일의 연속입니다.
나서 죽기까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춤추기도 하고, 찾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전쟁하기도 하고 평화롭게 살기도 합니다.
인생은 노고(勞苦,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수고스럽게 힘들이고 애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0절)
인생은 평생 일하고 수고하고 고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세기 3:17-19)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1절)
인생에는 원하는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치 않는 고통과 괴로움, 병, 실패, 이별의 때가 있습니다.
가장 힘든 죽음의 때도 누구나 한번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시고, 또 운행하십니다.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공사장은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다 완공되면 멋집 건물이 섭니다.
일곱 색깔 아름다운 무지개도 비가 온 후에야 나타납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자수(刺繡)를 놓을 때 뒷면을 보면 우리 인생과 비슷합니다.
어지럽고 실이 끊기고 무슨 그림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 완성한 후 앞면을 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인생에는 앞면의 아름다움과 함께 뒷면의 고난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고난의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수(繡)를 놓고 계신다고 여기면 됩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 고난의 때를 만나면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아름다운 그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터널과 같습니다.
굴은 들어갈수록 막다른 곳이지만 터널은 저만치에 출구가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어둡고 답답한 시간도 터널과 같아서 조만간 밝은 끝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라는 터널을 지나면 천국 출구가 나타납니다.
사는 동안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3절)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시원하게 마시는 것, 삶에 누리는 기쁨들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진수성찬을 두고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같이 있으면서도 불화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평생 시각 장애인으로 살았던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의 말입니다.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 묻곤 합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숲을 산책하고 온 친구에게 무엇을 발견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은 없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중략)
그때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만지기만 해도 이런 큰 기쁨이 있는데 눈으로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만일 사흘만이라도 보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볼 것인가?
첫째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해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날, 먼동이 트면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 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셋째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 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 가 공연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가 그토록 보고자 소망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일상 속에서 대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며 선물인 줄은 모릅니다.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
내일이면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사는 날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복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2절)
기뻐하며 사는 것이 복입니다.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찍어 주는 도장처럼) “참 잘했다.” 하실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지혜는 때를 알고 영원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어제(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내일(미래)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도 나의 시간이 될지,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기뻐하며 선을 행하며 살고, 영원을 사모하는 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11절)
동물들은 생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은 영원으로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결(永訣,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영원히 이별함), 후생(後生,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명복(冥福,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란 말들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영혼을 주신 것을 모르고 엉뚱한 영원을 생각합니다.
성도는 주어진 생을 열심히 살면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삽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6-8)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인생이 영원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재산과 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난 1955년에 국내 100대 기업 중 50년 동안 살아 남은 기업이 7개에 불과하였습니다(2005년).
권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선거 때마다 낙선하여 역사의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힘이나 세력 따위가 한번 성하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말이 정치인들에게 교훈이 됩니다.
사랑, 성공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건강과 생명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가면 청춘도 가고, 자신있던 건강도 무너지고, 늙고 병들고, 마침내 흙으로 졸아갑니다.
운동 경기에서도 영원한 강자가 없습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 경기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독일 우리나라에 완패하여 예선을 탈락하였습니다.
독일은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경기 준결승에서 브라질을 7-1로 대파하고 우승하였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16강에도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육상 단거리의 영웅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선수는 남자 100m, 200m, 400m 계주(2016년은 후에 팀원의 금지 약물
복용으로 박탈)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m의 왕좌를 내어 주며 은퇴하였습니다.
인생은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원하지만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1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4절)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에게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일들까지도 아름답게 수놓아 주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산다고 하여도 천국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면서 아름답고 복된 인생을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