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성형 / 남정언
드디어 수능이 끝났다. 수능점수 발표가 났고 대입 정시만 남아있다. 고3 학생들은 대학 입학 전에 준비하는 것이 많다.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거나 여행을 가거나 내면을 위한 마음준비를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외모 가꾸는데 관심이 높다. 삼 년 내내 공부하느라 쌓인 살을 빼러 헬스나 요가, 킥복싱, 스피닝을 등록하는 사람이 많다. 거기에 여드름 자국을 지우기 위해 피부과를, 쌍꺼풀 수술을 하러 성형외과에 상담하러 가는 학생들이 꽤 보인다.
육 년 전 이맘때 나는 다이어트 중이었다. 큰 수술을 하고 갱년기가 빨리 왔는데, 갑자기 허릿살까지 늘어났다. 건강검진에서 역류성 식도염과 경도 비만이 나왔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의사 선생님은 심각하게 체중조절과 운동을 권했다. 적당한 체지방은 아이를 낳고 치마를 입는 여성에게 필요조건이지만, 과도한 옆구리 살은 자기관리를 안 하는 매력 없는 여성으로 보인다. 게다가 식습관까지 좋지 않아 체중은 야금야금 늘었고 걸을 때마다 무릎이 아팠다.
옷들이 작아졌다. 블라우스 단추가 미어지고 청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았다. 여자의 자존심은 66치수까지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77치수 풍덩한 원피스를 사게 되었다. 옷값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를 받았다. 임산부석에 앉으라고. 요즘 늦게 결혼하는 사람이 많기에 원피스를 입고 배만 나온 내 모습만 보면 누가 봐도 고령의 임산부였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주위 사람들 모두가 앉아서 편하게 가라고 했다. 난감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다이어트를 해야만 했다.
일주일 넘게 정보를 찾았다. 비만과 관련해 보조식품, 단일 음식 다이어트, 여러 가지 운동, 단기 금식, 한약, 해독주스, 연예인 OO 비법, 물 마시기 등 모조리 훑었다. 먹는 거 좋아하고 운동 싫어하고, 체중은 줄이고 싶지만 굶기는 싫고, 배가 고프면 잠을 이루지 못해 뭐라도 먹어야 하는 잡식성에 역류성 식도염은 낫지 않고, 다이어트약은 부작용이 있을까 두렵기만 했다. 쉬운 방법이 없었다.
인기 있는 여자 연예인이 말했다. 과거에 살이 쪄서 십 년을 무명으로 보냈다고. 죽고 싶은 마음에 일 년을 굶었더니 20kg이 빠졌단다. 그때야 출연작품이 있더라며 서글프게 이야기한다. 마르고 예뻐야 역할이 온다고. 굶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나도 하루에 한 끼 줄여 두 끼만 먹기로 한다. 식탐 많은 내게 굶기란 고문이었다. 그는 연예인이니까 그렇게 했겠지만 나는 일반인이지 않은가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따뜻한 물을 하루 2L 이상 마셨다. 가장 쉬운 방법이라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닦고 물 마시기 시작해 비타민 먹고 한 잔, 오이와 당근 파프리카 먹고 한 잔, 점심 후에 한 잔, 양배추 먹고, 배고파서 한 잔,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타서 한 잔, 심심해서 마신 물까지 내 몸을 꽉 짜면 물이 줄줄 흐를 것 같았다. 맹물이 넘어가지 않아 체지방이 빠진다는 허브차를 마셨다. 드디어 1주일에 1kg이 빠지기 시작한다.
출산의 고통보다 힘든 일은 굶는 일이다. 하루 점심 한 끼를 먹으며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다행히 죽지 않고 손이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 가끔 무서웠다. 친구들이 독하다 그렇게 살 빼서 뭐할 거냐고 수군대도 신경 쓸 힘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배고픈 슬픔은 체중이 계속 빠지는 기쁨과 맞바꾸기로 작정하고 예민한 감정을 절제했다. 한 달 집중하니 4kg이 빠졌다.
몸이 가볍다. 날아갈 것 같아 하루 만 보 이상 걷기 시작한다. 무릎에 부담이 줄어 오래 걸어도 가뿐하다. 기다리던 66치수 옷들이 반갑다. 얼굴이 맑아졌다. 좋아하는 빵과 과자를 버리고 신선한 채소와 친해졌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요요현상이 오더라도 먹고 싶었다.
언젠가 식욕이 올라와 피자와 통닭을 시켜놓고 정신없이 먹다가 펑펑 울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아주 절제 잘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사실은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돈 계산이나 마음 계산을 시작해보자고 생각하는 미숙한 사람이다. 성취하고 싶은 욕구만 강해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들어 자신을 달달 볶는 피곤한 사람인 줄 아무도 모른다.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녁 6시 이후 금식이다. 갱년기 기초 대사량은 젊은 사람과 다르기에 저녁을 자제해야 한다. 석 달 고생 끝에 11kg을 감량했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실내 암벽타기를 하며 근육량을 늘렸다. 아직 요요현상 없이 치수를 유지하고, 종합검진 결과가 정상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오욕 중에 식욕이 가장 앞선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에 남자는 담배를 끊은 사람이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유지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언제나 내 몫이기에 조심스럽다. 식탐 중독의 고리 끊기가 어렵고 음식을 절제하기란 더욱 힘들다. 그래서 적절한 다이어트는 자기관리이며 삶의 질을 올려 기운을 상승시켜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겠다.
얼마 전, 대구 친구가 수백만 원의 성형외과 견적을 뽑았다고 한다. 삼십 년 같이 산 남편이 외모 무시 발언을 한단다. 난 먼저 몸무게를 줄여보라고, 그렇게 해보고 안 되면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친구는 내 말대로 10kg을 감량하고 처녀 때 몸매를 되찾았다. 당연히 성형외과는 가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시작했던 친구 딸도 다이어트에 성공해 소극적인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했고 취업 면접에서 합격했다. 아마 면접 볼 때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가 한 부분 차지했을 터이다.
살찌기 쉬운 계절이다. 거울을 보면 양쪽 얼굴이 완벽하게 대칭인 사람은 거의 없다. 졸업을 앞둔 고3 학생들이 외모뿐만 아니라 개성을 가진 사람이면 더 바랄 게 없으련만.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집중했으면 좋겠다.
최고의 성형은 나를 믿는 거다. 살이 빠지자 얼굴 주름이 부쩍 늘었다. 잡티도 보인다. 눈가와 입가에 주름을 없애야 하나. 아니면 사각턱을 브이라인으로 만들어야 하나. 겉모습에 천착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과한 욕심의 기미와 잡티까지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안 되겠다! 이제 마음을 성형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