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심양에 도착하니 내 어리벙벙한 여행에 대하여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라싸로 가는 길, 이게 내 목표였지만 그 또한 전혀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었다. 이렇게 한심한 놈이 바로 나였다. 나는 다만 중국지도 한 장을 달랑 들고 있을 뿐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그 얼마 뒤에 더 한심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와 우선 숙소를 잡아야 했다. 심양에는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였다.
소위 서탑 거리였다. 이곳에 우리 교포 2만여 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양 역에서 택시로 10위안 거리인 서탑 거리로 들어서자 거리에 온통 한글 간판이 즐비하게 보였다. 지금 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든 업종이 골고루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도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고려식 민박집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루 숙박비 100위안. 50위안을 하는 일반적 민박집보다는 비싼 편이었다. 약간 불만스러웠지만 워낙 형편이 형편인 만큼 배에서 찌든 땀과 피곤을 우선 풀어야 하겠기에 군말없이 투숙하고 말았다. 우선 샤워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머리 의 피부에서는 땀으로 인한 곰팡이가 자라 두더지가 땅을 파듯 불쑥불쑥 일어나고 한 군데는 그여 밤톨만한 혹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혹은 여행 내내 화농하여 터지고 구멍을 내어 나를 괴롭힌 바 있었다.
나는 다시 방바닥에 지도를 펴놓고 어떤 행로를 거칠까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지도에 표시하여 둔 행로를 이행해야 할지, 아니면 잠시 수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세상 팔자 좋게도, 여행이라면 몸 닿는 곳에서 하루 이틀 빈둥거리며 묵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며 그 지방의 낯선 풍광을 즐기다가 떠나는 것이 진정 낭만적인 여행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내 처지로서 벌써부터 조바심을 낸다는 것이 영 마음에 편치 않았다. 하긴 그보다도 지금 생각해 보면, 목표 없이 임해야 하는 내일의 불안이 더 큰 일이지 않았을까? 전에 동북 쪽 답사를 왔던 경우, 단동을 거쳐 통화, 통화에서 집안, 집안에서 백두산과 도문, 훈춘, 연길까지 갔었던 일이 있어 이번에는 동북부인 장춘과 심양, 수도인 북경과 중국의 서북부인 고비사막을 거쳐 남서부 지역인 라싸까지 중국을 한번 꿰뚫는 길을 답사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잡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도를 보니 장춘과 통화가 90도를 사이에 두고 각각 심양의 북부와 동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심양 역으로 나갔다. 중국의 기차역은 언제 어느 때이든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창구마다 까맣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 한 가닥 끝을 잡고 한시간만에 다가온 내 차례엔 오늘밤과 내일 새벽 기차표는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 매표원의 ‘메이오’ 소리에 질겁을 하고 다시 매달려 겨우 통화행 아침 9시 반 차표를 얻을 수 있었다. 30위안. 나는 감지덕지 하였다. 이로써 내 여행은 전에 왔던 통화에서 라싸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보다 계획성 없이 날짜와 여행 경비를 소비하여 일정을 허둥거리게 만든 일은 없었다. 이 통화까지의 길은 내 여정에 하등의 필요성이 없었던 여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한 기차는 꼭 7시간이 지나 그날 오후에 통화에 닿았다. 이 통화는 고구려를 보고 싶어하는 한국의 관광객 대부분이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보기 위해 지안으로 가거나 백두산을 탐방하기 위해 이도백하로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할 일이 없었다. 다만 기차에서 놓친 점심을 때우는 일뿐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다시 돌아서 역으로 향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베이징까지 나아가는 저녁 열차는 있었으나 침대 칸은 없었고 경좌 즉 딱딱한 자리밖에 없었다. 중국 돈 131원. 그거라도 얻어 탈 수 밖에. 그곳에서 하루를 묵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저녁 여덟 시에 출발한 기차는 어둠 속을 밤새워 달리고 있었다. 기차 위의 작은 식탁에 물병과 먹을 것을 잔뜩 올려놓고 먹어대던 승객들도 모두 여기 저기 픽픽 쓰러지고 기대어 고단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뒤통수 환부가 더욱 욱신거리는 동시에 내일에 대한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기차 여행 내내 그들이 즐기고, 어쩌다 권하는 해바라기 씨를 집어 먹어보려 했으나 도저히 내 재주로는 그들처럼 새앙쥐 주둥이로 까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깔깔한 입을 컵 라면 하나로 때웠다. 전날에도 그들은 기차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도 있겠으나 먹는 것의 즐거움 때문인지 무언가 먹을 것을 가방 가득 바리바리 넣어 가지고 와 마구마구 먹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찌꺼기는 아낌없이 창문 밖으로 바람에 날려보내었다. 비닐, 빈 병, 캔, 일회용 라면 컵, 과일껍질 등등, 창문 밖이 아주 편리한 쓰레기 투척구로 보이는가 보았다. 발톱도 빼지 않은 닭발을 유난히 좋아하는지 어쩌다 옆 사람을 보면 찐득찐득한 닭발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해바라기 씨나 호박씨는 그들의 최고 간식거리로 여겨졌다. 그들의 해바리기 씨는 우리의 씨와는 달리 길이가 좀 길어 보였다. 그들은 이 씨의 굵은 쪽을 잡고 앞니로 앞과 뒤를 ‘딱, 딱’ 두 번 깨물면 어느새 씨가 빠져 입 속에 놓여지는가 보았다. 난 이번 여행 내내, 이 해바라기 씨를 능숙하게 먹는 법을 배워보려고 했으나 끝내 배우지 못하고 말았다.
통화에서 북경까지는 꼬박 22시간이 걸렸다. 어제 저녁 8시경에 타서 오늘 6시쯤에 북경에 도착하고 나니 온몸의 관절이 욱신욱신거렸다. 잠을 충분히 편안하게 자지 못했으니 걷는 걸음에도 힘이 없었다. 저녁 일몰이 다가오고 있으니 무언가 서둘러야 하였다.
나는 우선 아랫녁으로 내려가는 차표를 사야 했으나 매표구에 파는 중국말을 도저히 알아들 수 없거니와 내 짧은 영어도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을 듯 보였다. 마침 한국말을 하는 승객을 만나 표를 부탁해보기로 하였다. 베이징에서 라싸나 그 중간 기착지인 시닝까지 가는 침대표.
수십 개의 창구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1년 후면 베이징 올림픽을 여는 나라의 중심 역에서 겪는 혼란도는 그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표를 사다 지친 사람들은 광장의 여기저기서 쓰러져 짐 보따리처럼 잠들어 있었고 매표구는 비좁고 어두우며 혼란 그 자체였다. 새치기는 다반사였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광장은 사장 바닥과 한가지였으며 공중 화장실은 불결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무튼 그 큰 역사 건물에 비해 매표구는 턱없이 옹색하고 협소하여 혼란을 유발하고 있었다.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매표원의 태도였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지 매표창구에는 하나같이 돈과 표를 교환하는 쥐구멍만 있을 뿐 두꺼운 유리로 서로를 차단시키고 있었다. 그 두꺼운 유리벽 저 뒤에서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표를 팔던 매표원은 줄을 길게 늘어선 손님들의 욕구와는 달리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잠깐 차라도 마실 요량이면 가차없이 잠시 쉬겠다는 팻말을 돌려놓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20여분씩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정말 시간이 바쁘거나 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길에 이것을 두 번이나 겪었다. 애써 한시간여나 기다리고 표를 사려면 내 앞줄 서너 명 앞에서 ‘잠시 휴식중’이라는 팻말을 내거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표를 부탁한 승객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아프도록 기다린 끝에 거의 차례가 돌아오자 매정하게도 매표원은 푯말을 돌려놓고 자리를 떠버렸다. 아이구 이런, 투덜거리며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녀가 돌아왔다. 라싸로 가는 표를 물어보니 ‘메이오’ 이 한마디였다.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난감하여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도 그 먼 곳인 라싸로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기에 표가 없다는 말인가? 나는 무어라도 좋으니 한마디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뒷사람에 떠밀려 나오고 말았다. 참 멍청이 같으니라고. 어찌 한단 말인가? 광장에서 난감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워 물며 다음 행동을 빨리 결정해야 하였다.
라싸로 가는 길은 불투명하기만 한데 북경의 일몰은 빨리만 다가왔다. 참, 그러고 보니 또 한번 내 어리숙함이 절실히 드러나 보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북경에도 한국 민박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미리 한 곳도 조사해 오지 않은 것이었다. 뒤늦게 내 미욱함을 탓해서 무엇하리. 빨리 숙소를 잡아야 한다. 북경역이나 서역 근처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호텔은 있었으나 내가 원하는 중급의 빙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룻밤 자는데 호화롭게 자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따로 있는 방이면 족하였다. 잠시 광장에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누군가 와서 말을 건다. 중국말이니 알아들을 턱이 없다. 그러나 말하는 품과 내미는 명함으로 보아 중국의 여관인 ‘빙관’을 권함이 틀림이 없다. 하루 저녁에 160위안. 바가지 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미 그들의 수법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방이 다급하게 필요한 사람을 물색하고 이런 방 값에도 방이 없다고 뻥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방을 구하고 싶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한 입장에서 좀처럼 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방 값을 100위안을 깎아 내렸다. 그러나 그는 120위안을 고집하며 내일 라싸에 가는 차표를 구해주고 최고급 방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를 떠나 잠시 광장을 서성거렸다. 또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바로 다른 사람이 접근하여 왔다. 그 여자는 선뜻 100위안에 방을 주고 표까지 구해주겠다고 장담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믿고 방을 정하기로 하였다. 광장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잠시 기다리면 차가 와 태워서 방을 보여주고 그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숙하지 않아도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를 따라 역의 서편 한 구석을 가니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2-3분이면 차가 온다더니 30분이 지나도 차가 오지 않았다. 그들이 좀 수상쩍은 면이 있어 다시 한번 120위안을 제시했던 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광장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다시 낯선 객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니 100위안 짜리 방은 동이 나고 120위안 짜리가 있단다. 나는 그들의 말바꾸기에 짜증이 났지만 어서 빨리 방을 보기를 원하였다. 한참만에 차 한 대가 앞에 와 섰다. 차를 타니 북경 서역과 본역 중간쯤의 어디인지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얼마 후에 도착하여 보니 북경의 변두리인지 차가 뜸하고 집들도 허름한 동네의 한구석에 도착해 있었다. 전부 1층뿐인 방에 306호이니 507호이니 층수를 나타내는 방 번호를 붙여놓고 있었다. 지배인은 화장실이 딸린 방 하나가 겨우 남았는데 그나마도 가격이 140위안이란다. 나 원 참, 그들의 하는 짓거리로 그럴 것 같았다. 싫으면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라니.... 그들도 그런 것을 노렸으리라. 방을 보니 침대 시트는 땟국물이 흐르고 천장은 한쪽이 무너져 지붕의 나무판자가 다 보였다. 창문도 없어 방은 후덥지근하였다. 종일 기차에 부대끼고 광장에서 서성거렸기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역으로 되돌아가 다시 방을 구한다는 것도 몸이 피곤하니 역겨운 일로 여겨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또 차표를 구해준다고 하니 그냥 쓰러져 자기로 하였다. 샤워기의 꼭지를 트니 물은 겨우 어린아이 오줌발만큼이나 나오고 그들의 샤워실이 그렇듯 샤워기의 코크는 저 높은 천장에 달려 있고 샤워기는 대변기 옆에서 대롱거렸다. 난 지금도 중국식 화장실의 샤워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간신히 몸에 물을 찍어 바르니 배가 출출하여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배를 곯아가면서 여행을 해야만 한다는 명제는 원래 생각지도 않던 일이었다. 먹을 것은 먹으면서 다녀야 한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 어둠 속에서도 길거리에서 만두를 파는 사람이 있어 사먹고 싶었으나 좌판을 보니 불결하기 짝이 없어 포기하였다. 대신 근처에 보이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빵 한 개와 음료수를 구해 저녁을 대신하기로 하였다. 간신히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는 했으나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 집을 떠나온 것일까? 표는 구할 수 있는 것일까? 여관 사람들이 라싸 표를 구해주기로는 했지만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루를 기차에서 시달렸다고 잠은 사납게 눈두덩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더러운 침대 시트 위에서도 등을 대고 눕고 말았다. 중국에서 뚜렷한 행보도 없이 허무하게 벌써 3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떠나온 지는 4일째였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그래도 잠이나마 잤다고 새로운 힘이 몸 속에 고여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관 지배인에게 물으니 라싸행 차표는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럴 줄 알았어 이눔들아.’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원래부터 내 숙박비를 따먹기 위해서 되지도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은 거여. 이눔들아, 이 나쁜 놈들아.’
그들은 내 고함 소리의 의미도 모르면서 무심히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