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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네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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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아름다운국내여행 스크랩 나를 찾아서.....
쥔님 추천 0 조회 117 08.03.15 07: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행지
영원한 아름다움- 라싸....그러나..
여행기간
2007년 8월 10일 - 8월 20일
비용
약 100만원
강추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나를 찾아가는 길 -라싸(拉薩Lasa)

 

 거얼무와 시닝 사이의 대평원에 아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탄 기차는 티벳 고원의 3000m가 넘는 평지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라싸에서 어제 아침 10시에 떠난 기차가 힘겨운 몸짓으로 5072m의 탕그라(唐古拉) 산을 넘고 낮과 밤 하루를 꼬박 달려, 몇 시간 후면 만 하루를 달리고서도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목을 떨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거나 티 테이블에 머리를 붙이고 가수면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라싸를 떠날 때의 어지럽던 기차의 발소리도, 소란스럽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도 잦아들어 있었다. 어제 낮에 기차의 스피커를 통하여 그렇게 귀를 아프게 하던 중국 특유의 쨍강거리는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고 오직 기차 바퀴의 덜컹거리는 소리만이 단조롭게 연속되고 있었다.

  나는 살그머니 눈을 떠 밖을 내다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보아도 걸림이 없는 티벳 대평원에 기차가 움직이는 대로 아주 조금씩 아침이 걸어오고 있었다. 처음엔 어둠 속에서 한없이 빠져들 것 같은 회색빛 수면이 나타나더니 거기에 흐린 초록빛을 뭉턱 던져 입히듯 뭉실 뭉실 초록빛 초원이 살아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록빛의 색깔이 조금 진해졌을 뿐 초원은 그 자체가 가지고있는 마른 풀들의 파리한 은회색으로 후광을 더해 애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직 한가지 끝없이 펼쳐진 흐린 초록색에서 어쩌다 보이는 노란 씀바귀의 작은 꽃은 눈을 선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긴 중국에서 종이꽃은 많이 보았으나 꽃밭이나 화분에 기르는 꽃은 본 일이 드물어 어쩌다 눈에 띈 그들 중국인들의 담장 너머로 보이는 붉고 노란 다알리아 꽃이 그렇게 신선할 수가 없었다.    

 벌써 중국에 온지 일주일이 돼가고 있었다. 나를 찾아 나선 길, 명색은 그럴 듯 했지만 사실은 권태 혹은 나태로부터의 도피였다. 부처처럼 앉아서 찌는 폭염으로 땀만 쪽쪽 흘리자니 이러다간 머릿속이 정지된, 마른 미라가 되기 십상이었다. 명태처럼 건조된 권태스런 내 머리 속에서 나를 찾아보았으나 어디도 나는 없었다. 나를 찾는 길은 없을까?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으나 사방은 막혀 있었다. 배나 비행기로의 탈출구는 여름철 성수기로 이미 동이 나 있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아야 하겠다고 염원하던 곳, 티벳의 라싸(Lasa). 그곳으로 가는 길은 없을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여본 결과 간신히 중국, 대련으로 가는 배편을 찾을 수 있었다. 인천에서 화,수,금 중국으로 떠나는 대인훼리. 나는 앞뒤 재지 않고 덜컥 예약을 해 버렸다.

      

 

  대련은 중국 요동 반도의 끝으로 남만주 철도의 종점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 노서아와 일본의 조차지가 되었던 곳으로 일찍이 상하이와 더불어 외국의 영향을 받았던 곳이었다. 최근에는 도시 생활에 환경 개념이 도입되어 시가도 비교적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오후 4시에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짐을 챙기고 버스에 올랐다. 여권의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내심 불안했으나 배에서 비자 신청을 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인천에서는 버스터미널을 외곽으로 옮기는 바람에 배가 출발하는 인천항까지는 택시 요금이 일만 삼천 원이나 나왔다.

 대인 훼리는 비교적 큰 배였으나 내 눈으로 보기엔 비교적 위생이 청결한 배는 아니었다. 이미 여러 번 사용한 흔적이 있는 3등실 매트리스 위에서 간신히 옆구리를 붙이고 잠을 자고 나니 이미 배는 중국 쪽 영해에 들어와 항해를 하고 있었다.

 꼬박 18시간을 항해해서 대련에 도착한 후 무엇이 아쉬운지 한시간을 배에서 기다리게 한다. 나는 중국에 도착하고 난 이후에도 몇 번인가 이런 까닭 모를 기다림을 경험하면서 마음 속으로 조바심과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왜 대체로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남의 시간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일까? 지나친 신중함은 태만이 아니던가? 그들은 그들의 큰 대륙에 비하여 교통은 느린 편이었고 행동은 둔중한 편이었다.

 비자 신청 창구에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섰다. 배에서 나눠준 초청장과 신청서, 여권과 20불을 접수시킨 후 옆 창구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전혀 안내하는 쪽지 말도 없었다. 그저 손으로 옆을 가리킬 뿐이었다.

 입국 절차를 끝내고 항만국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중국에 도착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홀로 움직여야 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을 나타내는 기초적인 중국어도 익혀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기차역이 어디에 있으며 버스 터미널은 어디에 있는가? 걸어가야 하는가? 차를 타야 하는가? 난 다른 사람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도록 갈 곳을 잃고 한동안 멍하니 항만국 광장 앞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구세주같이 택시 기사의 바가지 요금에 한국말로 툴툴거리면서 차를 잡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난 우선 이 사람에게 꼭지를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대련에서 심양에 가려는 사람이었다. 중국에 들어와 사업을 시작한지 4년이 되었다는 사람이었다. 나는 코뚜레 꿰인 송아지처럼 꼼짝없이 이끌려 함께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다.   

 중국은 내년의 북경 올림픽 개최로 인하여 전국 고속도로망을 정비하였는지 대련과 심양 사이에 네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있었다. 고속버스비 107원. 중국에 대해 비교적 사시의 눈을 가지고 있는 나에 비해함께 가는 사람은 상당히 긍정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춰지고 있는 중국의 이미지는 대부분 우리 한국인이 조장하여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방영된 종이 만두 사건도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가 상주하고 있는 곳에 별 불만이 없어 다행이었다.

 고속 버스의 계기판은 120을 가리키고 있었고 차창 밖으로는 만주의 벌판이 쉴새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변에 보이는 대부분의 경작지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어쩌다 나타나는 야산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붉은 땅이 드러나 있었다. 고속도로 변의 나무들은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지 굵기가 어른 팔뚝만한 것뿐이었다.

 나무를 보니, 많지 않은 중국 방문이었으나 그 때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나무에 대한 무신경 내지 무관심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들은 나무가 그들의 경작물에 대한 걸림돌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손이 미치는 한 그 넓은 중국 대륙 어는 한 부분 철저하게 나무를 제거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현재 그들의 삼림 지역으로 보존되고 있다고 하는 동북 삼성과 일부 관광지역은 다만 그들의 손이 미처 미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해발 2-3천 미터의 산들도 집요하게 민둥산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이 일반적으로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고지대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경우에 따라 어떤 곳은 훌륭하게 나무가 자라는 곳도 있었고 또 이제 그들도 나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지 묘목을 길러 식재를 한 곳도 보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대체로 나무가 없는 나라였다.

 창 밖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휩싸이다 보니 어느새 버스가 심양에 도착하고 있었다. 심양에서의 1박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야 할 그 어느 곳 한곳에 대해서도 전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교통 기관이나 시간, 숙소, 음식 등등은 물론이었다.     

 

막상 심양에 도착하니 내 어리벙벙한 여행에 대하여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라싸로 가는 길, 이게 내 목표였지만 그 또한 전혀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었다. 이렇게 한심한 놈이 바로 나였다. 나는 다만 중국지도 한 장을 달랑 들고 있을 뿐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그 얼마 뒤에 더 한심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와 우선 숙소를 잡아야 했다. 심양에는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였다.

 소위 서탑 거리였다. 이곳에 우리 교포 2만여 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양 역에서 택시로 10위안 거리인 서탑 거리로 들어서자 거리에 온통 한글 간판이 즐비하게 보였다. 지금 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든 업종이 골고루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다.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도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고려식 민박집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루 숙박비 100위안. 50위안을 하는 일반적 민박집보다는 비싼 편이었다. 약간 불만스러웠지만 워낙 형편이 형편인 만큼 배에서 찌든 땀과 피곤을 우선 풀어야 하겠기에 군말없이 투숙하고 말았다. 우선 샤워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머리 의 피부에서는 땀으로 인한 곰팡이가 자라 두더지가 땅을 파듯 불쑥불쑥 일어나고 한 군데는 그여 밤톨만한 혹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혹은 여행 내내 화농하여 터지고 구멍을 내어 나를 괴롭힌 바 있었다.

 나는 다시 방바닥에 지도를 펴놓고 어떤 행로를 거칠까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지도에 표시하여 둔 행로를 이행해야 할지, 아니면 잠시 수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세상 팔자 좋게도, 여행이라면 몸 닿는 곳에서 하루 이틀 빈둥거리며 묵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며 그 지방의 낯선 풍광을 즐기다가 떠나는 것이 진정 낭만적인 여행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내 처지로서 벌써부터 조바심을 낸다는 것이 영 마음에 편치 않았다. 하긴 그보다도 지금 생각해 보면, 목표 없이 임해야 하는 내일의 불안이 더 큰 일이지 않았을까? 전에 동북 쪽 답사를 왔던 경우, 단동을 거쳐 통화, 통화에서 집안, 집안에서 백두산과 도문, 훈춘, 연길까지 갔었던 일이 있어 이번에는 동북부인 장춘과 심양, 수도인 북경과 중국의 서북부인 고비사막을 거쳐 남서부 지역인 라싸까지 중국을 한번 꿰뚫는 길을 답사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잡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도를 보니 장춘과 통화가 90도를 사이에 두고 각각 심양의 북부와 동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심양 역으로 나갔다. 중국의 기차역은 언제 어느 때이든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창구마다 까맣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 한 가닥 끝을 잡고 한시간만에 다가온 내 차례엔 오늘밤과 내일 새벽 기차표는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 매표원의 ‘메이오’ 소리에 질겁을 하고 다시 매달려 겨우 통화행 아침 9시 반 차표를 얻을 수 있었다. 30위안. 나는 감지덕지 하였다. 이로써 내 여행은 전에 왔던 통화에서 라싸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보다 계획성 없이 날짜와 여행 경비를 소비하여 일정을 허둥거리게 만든 일은 없었다. 이 통화까지의 길은 내 여정에 하등의 필요성이 없었던 여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한 기차는 꼭 7시간이 지나 그날 오후에 통화에 닿았다. 이 통화는 고구려를 보고 싶어하는 한국의 관광객 대부분이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보기 위해 지안으로 가거나 백두산을 탐방하기 위해 이도백하로 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할 일이 없었다. 다만 기차에서 놓친 점심을 때우는 일뿐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다시 돌아서 역으로 향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베이징까지 나아가는 저녁 열차는 있었으나 침대 칸은 없었고 경좌 즉 딱딱한 자리밖에 없었다. 중국 돈 131원. 그거라도 얻어 탈 수 밖에. 그곳에서 하루를 묵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저녁 여덟 시에 출발한 기차는 어둠 속을 밤새워 달리고 있었다. 기차 위의 작은 식탁에 물병과 먹을 것을 잔뜩 올려놓고 먹어대던 승객들도 모두 여기 저기 픽픽 쓰러지고 기대어 고단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뒤통수 환부가 더욱 욱신거리는 동시에 내일에 대한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기차 여행 내내 그들이 즐기고, 어쩌다 권하는 해바라기 씨를 집어 먹어보려 했으나 도저히 내 재주로는 그들처럼 새앙쥐 주둥이로 까먹을 수가 없었다. 겨우 깔깔한 입을 컵 라면 하나로 때웠다. 전날에도 그들은 기차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도 있겠으나 먹는 것의 즐거움 때문인지 무언가 먹을 것을 가방 가득 바리바리 넣어 가지고 와 마구마구 먹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찌꺼기는 아낌없이 창문 밖으로 바람에 날려보내었다. 비닐, 빈 병, 캔, 일회용 라면 컵, 과일껍질 등등, 창문 밖이 아주 편리한 쓰레기 투척구로 보이는가 보았다. 발톱도 빼지 않은 닭발을 유난히 좋아하는지 어쩌다 옆 사람을 보면 찐득찐득한 닭발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해바라기 씨나 호박씨는 그들의 최고 간식거리로 여겨졌다. 그들의 해바리기 씨는 우리의 씨와는 달리 길이가 좀 길어 보였다. 그들은 이 씨의 굵은 쪽을 잡고 앞니로 앞과 뒤를 ‘딱, 딱’ 두 번 깨물면 어느새 씨가 빠져 입 속에 놓여지는가 보았다. 난 이번 여행 내내, 이 해바라기 씨를 능숙하게 먹는 법을 배워보려고 했으나 끝내 배우지 못하고 말았다.

 통화에서 북경까지는 꼬박 22시간이 걸렸다. 어제 저녁 8시경에 타서 오늘 6시쯤에 북경에 도착하고 나니 온몸의 관절이 욱신욱신거렸다. 잠을 충분히 편안하게 자지 못했으니 걷는 걸음에도 힘이 없었다. 저녁 일몰이 다가오고 있으니 무언가 서둘러야 하였다.

 나는 우선 아랫녁으로 내려가는 차표를 사야 했으나 매표구에 파는 중국말을 도저히 알아들 수 없거니와 내 짧은 영어도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을 듯 보였다. 마침 한국말을 하는 승객을 만나 표를 부탁해보기로 하였다. 베이징에서 라싸나 그 중간 기착지인 시닝까지 가는 침대표.

 수십 개의 창구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1년 후면 베이징 올림픽을 여는 나라의 중심 역에서 겪는 혼란도는 그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표를 사다 지친 사람들은 광장의 여기저기서 쓰러져 짐 보따리처럼 잠들어 있었고 매표구는 비좁고 어두우며 혼란 그 자체였다. 새치기는 다반사였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광장은 사장 바닥과 한가지였으며 공중 화장실은 불결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무튼 그 큰 역사 건물에 비해 매표구는 턱없이 옹색하고 협소하여 혼란을 유발하고 있었다.

 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매표원의 태도였다.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지 매표창구에는 하나같이 돈과 표를 교환하는 쥐구멍만 있을 뿐 두꺼운 유리로 서로를 차단시키고 있었다. 그 두꺼운 유리벽 저 뒤에서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표를 팔던 매표원은 줄을 길게 늘어선 손님들의 욕구와는 달리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잠깐 차라도 마실 요량이면 가차없이 잠시 쉬겠다는 팻말을 돌려놓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20여분씩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정말 시간이 바쁘거나 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길에 이것을 두 번이나 겪었다. 애써 한시간여나 기다리고 표를 사려면 내 앞줄 서너 명 앞에서 ‘잠시 휴식중’이라는 팻말을 내거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표를 부탁한 승객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아프도록 기다린 끝에 거의 차례가 돌아오자 매정하게도 매표원은 푯말을 돌려놓고 자리를 떠버렸다. 아이구 이런, 투덜거리며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녀가 돌아왔다. 라싸로 가는 표를 물어보니 ‘메이오’ 이 한마디였다.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난감하여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도 그 먼 곳인 라싸로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기에 표가 없다는 말인가? 나는 무어라도 좋으니 한마디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뒷사람에 떠밀려 나오고 말았다. 참 멍청이 같으니라고. 어찌 한단 말인가? 광장에서 난감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워 물며 다음 행동을 빨리 결정해야 하였다.

 라싸로 가는 길은 불투명하기만 한데 북경의 일몰은 빨리만 다가왔다. 참, 그러고 보니 또 한번 내 어리숙함이 절실히 드러나 보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북경에도 한국 민박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미리 한 곳도 조사해 오지 않은 것이었다. 뒤늦게 내 미욱함을 탓해서 무엇하리. 빨리 숙소를 잡아야 한다. 북경역이나 서역 근처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호텔은 있었으나 내가 원하는 중급의 빙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룻밤 자는데 호화롭게 자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따로 있는 방이면 족하였다. 잠시 광장에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누군가 와서 말을 건다. 중국말이니 알아들을 턱이 없다. 그러나 말하는 품과 내미는 명함으로 보아 중국의 여관인 ‘빙관’을 권함이 틀림이 없다. 하루 저녁에 160위안. 바가지 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미 그들의 수법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방이 다급하게 필요한 사람을 물색하고 이런 방 값에도 방이 없다고 뻥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방을 구하고 싶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한 입장에서 좀처럼 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방 값을 100위안을 깎아 내렸다. 그러나 그는 120위안을 고집하며 내일 라싸에 가는 차표를 구해주고 최고급 방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를 떠나 잠시 광장을 서성거렸다. 또 접근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바로 다른 사람이 접근하여 왔다. 그 여자는 선뜻 100위안에 방을 주고 표까지 구해주겠다고 장담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믿고 방을 정하기로 하였다. 광장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잠시 기다리면 차가 와 태워서 방을 보여주고 그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숙하지 않아도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를 따라 역의 서편 한 구석을 가니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2-3분이면 차가 온다더니 30분이 지나도 차가 오지 않았다. 그들이 좀 수상쩍은 면이 있어 다시 한번 120위안을 제시했던 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광장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다시 낯선 객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니 100위안 짜리 방은 동이 나고 120위안 짜리가 있단다. 나는 그들의 말바꾸기에 짜증이 났지만 어서 빨리 방을 보기를 원하였다. 한참만에 차 한 대가 앞에 와 섰다. 차를 타니 북경 서역과 본역 중간쯤의 어디인지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얼마 후에 도착하여 보니 북경의 변두리인지 차가 뜸하고 집들도 허름한 동네의 한구석에 도착해 있었다. 전부 1층뿐인 방에 306호이니 507호이니 층수를 나타내는 방 번호를 붙여놓고 있었다. 지배인은 화장실이 딸린 방 하나가 겨우 남았는데 그나마도 가격이 140위안이란다. 나 원 참, 그들의 하는 짓거리로 그럴 것 같았다. 싫으면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라니.... 그들도 그런 것을 노렸으리라. 방을 보니 침대 시트는 땟국물이 흐르고 천장은 한쪽이 무너져 지붕의 나무판자가 다 보였다. 창문도 없어 방은 후덥지근하였다. 종일 기차에 부대끼고 광장에서 서성거렸기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역으로 되돌아가 다시 방을 구한다는 것도 몸이 피곤하니 역겨운 일로 여겨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또 차표를 구해준다고 하니 그냥 쓰러져 자기로 하였다. 샤워기의 꼭지를 트니 물은 겨우 어린아이 오줌발만큼이나 나오고 그들의 샤워실이 그렇듯 샤워기의 코크는 저 높은 천장에 달려 있고 샤워기는 대변기 옆에서 대롱거렸다. 난 지금도 중국식 화장실의 샤워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간신히 몸에 물을 찍어 바르니 배가 출출하여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배를 곯아가면서 여행을 해야만 한다는 명제는 원래 생각지도 않던 일이었다. 먹을 것은 먹으면서 다녀야 한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 어둠 속에서도 길거리에서 만두를 파는 사람이 있어 사먹고 싶었으나 좌판을 보니 불결하기 짝이 없어 포기하였다. 대신 근처에 보이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빵 한 개와 음료수를 구해 저녁을 대신하기로 하였다. 간신히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는 했으나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고생을 사서 하기 위해 집을 떠나온 것일까? 표는 구할 수 있는 것일까? 여관 사람들이 라싸 표를 구해주기로는 했지만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루를 기차에서 시달렸다고 잠은 사납게 눈두덩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더러운 침대 시트 위에서도 등을 대고 눕고 말았다. 중국에서 뚜렷한 행보도 없이 허무하게 벌써 3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떠나온 지는 4일째였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그래도 잠이나마 잤다고 새로운 힘이 몸 속에 고여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관 지배인에게 물으니 라싸행 차표는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럴 줄 알았어 이눔들아.’ 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원래부터 내 숙박비를 따먹기 위해서 되지도 않은 거짓말을 늘어놓은 거여. 이눔들아, 이 나쁜 놈들아.’

 그들은 내 고함 소리의 의미도 모르면서 무심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라싸로 가는 길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근처의 식당에서 쌀죽과 만두를 먹고, 그 만두 한판을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은 후 북경 서역으로 택시를 재촉하였다.

 아침 9시, 북경 서역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은 역시 꼬리를 무는 줄로 이어져 있었다. 다시 그 꼬리 끝에 붙어 내 차례를 천천히 기다렸다. 드디어 세 사람만 줄어들면 내 차례였다. 그런데 아, 그 매정한 매표원 아줌마는 휴식중이라는 팻말을 돌려놓고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살얼음처럼 혹시나 ‘메이오’라는 소리가 나오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라싸는 꿈도 꿔 보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줄을 서고 있었는데 매표를 잠시 중단하다니......그것도 2-30분 씩이나 걸리는 시간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지만 매표실의 한 쪽 사면에 커다랗게 붙여진 전광판에서는 무슨 말인지 중국어와 영어로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는 말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심히 보고 넘겼지만 가만히 보니 고원 여행에 필요한 증명서니 어쩌니 하는 말 같았다. 짚이는 게 있었다. 라싸와 같은 티베트 여행은 고원여행증명서 같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자세히 내용을 파악해야 할 것 같았으나 아직 표도 못 구한 주제에 알아서 무엇하나 하는 마음과 또 그것 때문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애써 전광판을 외면했으나 이제는 사람들 머리 사이에서 사면으로 보였다가 빠르게 없어지는 글자가 무슨 의미인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고개를 빼들고 잘 읽어보려 했으나 무위였다. 계속 매표원을 기다리는 수밖에.....20여분만에 매표원이 나타나자 앞의 두 사람이 표도 구하지 못한 채 물러서고 말았다. 매표구에서는 중국 전역의 표를 팔고 있었다. 나는 우선 한국인이라고 우선 밝혔다.    

 ‘너희들이 내년에 이곳에서 올림픽을 여니 외국인들에게 더 친절하지 않겠   느냐?’ 하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종이에 적은 목적지를 내밀었다. 베이징(北京)에서 시닝(西擰)까지 가겠노라고, 그것도 침대 칸으로. 매표원은 잠시 시니컬한 표정을 감추다가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었다. 

 ‘어, 그게 아닌데.......’ 나는 좀 당황했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잠시 뒤에 그 아줌마는 젊은 아가씨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아가씨가 뜻밖에 영어로 언제 출발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아이고, 살았다.’ 당연히 오늘이라고 답했다.

 다시 아줌마 매표원이 자리에 앉더니 자판을 두드려 자리를 만드는 듯 했다. 라싸의 중간 기착지인 시닝까지 658위안. 연와 2층 칸. 햐, 기가 막힌 일이었다. 매표원은 두 말도 없이 표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득의에 차 그 표를 받아들고 매표구를 빠져 나왔다. 북경의 매연에 찬 하늘이 파랗게 보였다. 시간을 보니 그날 오후 2시 20분. 시간이 남아 넘쳤다.

 마음만 먹으면 천안문이나 자금성을 보아도 충분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전에 한번 다녀본 일이 있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이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우선 천천히 걸어 중국 은행을 찾았다. 아무래도 준비해간 위안화가 모자랄 것 같았다. 가지고 간 달러를 환전하기로 했다. 지갑에 있는 우리 돈은 화폐로서 전혀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은행에서 환전을 마치고 길거리에서 파는 대추와 바나나를 샀다. 5위안. 대추가 어린아이 주먹만했다. 이 대추는 그 뒤 퍽퍽한 빵을 먹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또 길거리 상점에서 전병을 샀다. 종이장처럼 얇은 전병 위에 다시 계란부침을 올려 주었다. 이 전병 또한 기차 속에서 요긴하게 식사 대용으로 쓰였다. 다시 천천히 역사로 돌아왔다. 고원 증명서가 없었지만 그것은 목적지인 시닝에 가서 따질 일이다. 시닝까지는 증명서가 필요 없는 구간이었다. 시닝까지는 28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만 하루를 더 넘기는 장거리 여행이다. 지갑 속에 시닝까지의 차표가 얌전히 들어있지만 원래 라싸까지 표를 구했다면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었을는지 모르는 일이다. 또 모두 3일이 걸리는 시간을 기차 속에서 무료하게 보내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주 천천히 북경서역의 3층으로 올라갔다. 게이트 번호 4번. 서역의 3층에는 중국 각지로 흩어지는 게이트가 50여 군데가 넘는 듯,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다. 4번 대합실에 들어가니 역시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광주와 시닝으로 출발하는 대합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우선 좀 앉아야 하는데 앉을 자리가 없다.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아주머니의 양해를 구했다. 말문을 튼 아주머니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란주’까지 가는 사람이었다. 콧날이 꺾어진 것으로 보아 한족은 아닌 듯 했으나 자기 몸처럼 커다란 여행가방에 따로 든 여행용 가방, 손가방 등에 무슨 물건인지 잔뜩 넣고 개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북경에서 물건을 가져다 지방에서 파는 상인이라고 했다. 역에서 파는 간이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2시간이나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개찰 시간. 비로소 내가 티베트 지역으로 가는구나 실감했다. 승차구를 통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 내 차의 방을 찾았다. 침대 4칸으로 구성된 내 방에는 이미 초등학교쯤의 아이를 둔 부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난 조용히 미소로 내 칸에 올라갔다. 그리고 사정없이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몇 시간이나 잠을 잤을까. 아직도 기차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밖은 일몰에 가까워 어둑해지고 있었다. 문밖으로 나와 기차가 달리고 있는 주위를 살펴보니 끝없는 벌판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옥수수 밭. 먼 곳의 풍경은 무슨 작물을 심었나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역시 옥수수를 심지 않았나 싶게 뿌옇게 흐려 보였다. 중국의 거대한 굴뚝 산업도 보였다. 시커먼 매연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색깔을 가진 꽃 한송이를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그 넓은 대륙에 철저하게 식량위주의 밭작물을 재배할 뿐 꽃은 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듯 보였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오고 있었다. 나도 남들이 하는 것처럼 기차 속에서 오가는 밀차 상인에게서 컵 라면을 사 저녁을 때웠다. 아침에 산 만두와 전병은 내일 아침으로 먹기 위해 아껴두었다. 한참을 통로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다시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다시 잠, 잠. 한없이 잠에 떨어지고 그나마 침대 기차라서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같은 방의 남자는 제법 영어를 할 줄 아는 인텔리였다. 그는 시닝의 앞 역인 ‘란주’까지 가는 사람이었다. 중국에서도 연와 침대차를 이용할 수 있는 승객이라면 제법 재력이 있는 사람에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묻지는 않았으나 란주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인 듯 했다. 그에게 내가 ‘충찡(重慶)’ 철도를 이용하여 라싸까지 갈려고 한다니까 갈 수는 있으되 매우 힘들다는 말을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까닭을 알 수 없으며 도저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렵다고 하는가? 왜 운남성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가? 고원여행 증명서가 없기 때문일까? 말을 하다 서로 의사 소통이 어려워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기차 속에 붙어 있는 ‘라싸’까지의 시간표를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우리가 헤어지고 난 후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 실수였다. 난 ‘칭짱’ 철도를 ‘충찡’ 철도로 잘못 표현하고 있었으니 그가 자꾸 ‘충찡’ 철도와 연관지어 말했던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칭짱’철도는 내가 시닝에서 라싸까지 여행하려는 철도이며, ‘충찡’철도는 양쯔강을 끼고 운남성 쪽으로 내려가 다시 육로로 이어지는 사천성 옆 서남부 노선의 철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서로 말이 헷갈리고 엇갈릴 수밖에...... 난 또 한번 내 실수를 크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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