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7장 강해 (행1-9)
오늘은 사도행전17장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17장은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 가운데
데살로니가 지역, 현재는 그리스의 테살로니키라는 지역과
그리고 베뢰아, 현재는 그리스의 북부도시 마케도니아에 위치한 베리아라는 지역
그리고 아덴 현재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를 말하는데
이 3곳을 중심으로 전도한 내용을 17장에서는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1차 전도여행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복음을 전하다보면, 공통적으로 겪는게 2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과,
두 번째는 생각지도 못한 환영과 영접입니다.
전도하다보면 우리도 똑같이 겪는 상황입니다.
어떤 때는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한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상하게 여기거나 실망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누가 뭐래도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보고 복음을 전합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보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행18: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그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반대자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시험에 빠지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어떤분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다투고 시험에 빠지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복음 전도의 의미를 모르고 전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보세요.
사도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반대자들과 훼방자꾼들이 생깁니다.
그것도 같은 민족 유대인들이 더 합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그런 현상은 항상 나타난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저런 건 저것 때문에 전도 못하겠다....그건 핑계에 불과하고
전도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교회도 열심히 전도하시는데
금욜에는 남집사님, 이웃교회 사모님들, 또 우리 민용기 성도님을 비롯해서
주일마다 아침에 전도하시는 최집사님 이도훈 집사님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에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란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전도의 열매가 맺히는걸 보면, 그 기쁨도 크다는걸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말씀에도 그런 사건이 나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상황을 한번 봅시다.
데살로니가에서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한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는 그리스도다.
즉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언약하신 메시아다라고 사도 바울이 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는 그리스도 즉 메시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메시아가 무슨 뜻입니까? 기름부음 받은자....이런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할 때, 세 부류에게만 기름을 부어줍니다.
첫째는 왕입니다.
둘째는 제사장입니다.
세 번째는 선지자입니다.
이 세 직분자들에게만 기름을 부었는데, 성경에 보면 거룩한 관유라고 나옵니다.
이 거룩한 관유는 주로 올리브유가 주재료인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거룩한 관유로 정하신 기름으로
특별하게 선택받은 왕과 제사장, 선지자에게만
이 거룩한 관유를 머리에 쏟아서 부었습니다.
이런 예식을 하는 이유는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택하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목사 임직을 할 때, 안수식을 하고 선배목사들로부터 안수를 받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택한 종이라는 일종의 예식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종교예식에는 기름을 머리에 부어 하나님의 택한 종임을 알렸습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서의 모든 자격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 메시야라는 뜻인데,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다라고 하는 이 사실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데살로니가에서 전했는데 누가 듣기 싫어했냐?
같은 동족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이렇게 유난히 듣기 싫어하고 전하는걸 방해했냐?
시기심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게 5절에 나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조심해야 할게 시기심입니다.
내가 먼저 신앙생활을 했어. 내가 먼저 오래 동안 이 교회에 다녔어.
근데, 신앙의 신자도 모르는 사람, 교회 나온지도 얼마 안된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너무 잘해, 게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어요.
그래서 전도도 잘하고, 말씀도 잘 듣고, 주일도 잘 지키고,
오래 다닌 사람보다 너무너무 신앙생활을 잘해....자기보다 더 잘해.
그래서 목사님이나 다른 성도들에게 너무 칭찬받고 이쁨을 받어...
다 칭찬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시기심을 가진 사람은 이게 배 아파.
그런 사람이 교회 안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제가 그동안 여러교회를 다니면서 그런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봐왔어요.
여러분, 그러면 안됩니다.
그런분을 보면 더 분발해야지. 왜 시기하고 질투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심에 눈이 어두운 유대인들이 어떻게 합니까? 모함을 합니다.
5절 중후반 이후로 보면, 소동을 일으키고, 거짓말을 지어냅니다.
이상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일행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도바울 일행이 베뢰아로 쫓겨 갑니다.
10절부터는 쫓겨간 두 번째 도시 베뢰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제가 틈만 나면 칭찬했던 교회가 어느 교횝니까? 그렇습니다. 베뢰아 교횝니다.
왜냐?
제가 왜 이 베뢰아는 제가 항상 본받아야 할 교회로 지목하느냐? 그 이유가 뭡니까?
우리가 베뢰아 교회를 본받아야 할 3가지가 있습니다.
1) 신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젠틀했습니다.
젠틀맨이 무슨 뜻입니까? 예의를 아는 사람, 예의바른 사람을 지칭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의가 없으면 그건 믿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신사적이어야 합니다.
망나니처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말과 행동에 품위를 지켜야 하고, 예의를 갖추고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히 대해야 합니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베뢰아 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젠틀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두 번째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것은 말씀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없으면 쭉정이 신앙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묵상하기를 원하고, 배우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나 컸던 시기가 바로 한국교회 부흥의 시기입니다.
일년에 적어도 2번은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씩 했어요.
부흥회 기간에는 교회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서 부흥회만 하면, 교회가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 부흥회 참석할려고 직장에 휴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웃교회 교인들도 참석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부흥이 안될 수가 없죠.
그런데 요즘 부흥회 하는 교회 봤습니까? 자기교회 교인들도 안와.
왜요?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졌거든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세상이 바빠졌거든요.
근데 보세요. 그건 이유가 안돼요. 하나님 말씀듣는거 보다 더 중요한게 어딧어요?
성경에도 보세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가 예수님이 심방을 왔는데
마르다는 손님 접대하는 일에 분주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 듣는데 집중하잖아요. 근데 누가 더 칭찬 받아요? 마리아가 더 칭찬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뭐가 더 중요한지를 놓치고 살면 안돼요.
세상일이 더 중요해요? 하나님 말씀을 듣는 예배가 더 중요해요?
그 우선 순위가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고 내 일이 더 우선순위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감동하시겠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거죠.
제가 요즘 삼일밤 예배, 주일저녁 예배를 안드리는데,
누구하나 목사님 우리 삼일밤 예배 드립시다. 주일 오후 예배 드립시다. 요청을 안해.
누가 좋아요? 저야 좋죠.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한번이라도 예배 제대로 드리는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예배 드리는건 차라리 안 드리는게 낫다 싶어서 안드리는 겁니다. 그건 형식적이잖아요. 외식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사님, 우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자주 하나님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함을 가지고 예배 드려야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고, 하나님을 감동시키게 되는거죠.
예수님께서 뭐라 그러셨습니까? 그리고 제가 예배가 시작될때마다 선포하는 말씀이 뭐죠?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이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죠.
그리고 베뢰아 교인들의 큰 장점은 형식적으로 말씀을 안 받았어요.
항상 그런가 아니그런가를 묵상했다...원문에 보면, 연구했다라고 나와요.
묵상은 소가 여물을 먹고 되새김질 하는것과 같은 뜻이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걸 마음에 되새김질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냐? 안한다는 겁니다. 교회 문 밖에만 나가면 잊어버려.
그러니까 말씀과 삶이 일치가 안돼. 근데 말씀을 자꾸 들으면 뭐하냐고 잊어 버리는데.....
그래도 듣긴 들어야 돼요. 자꾸 듣다보면 또 깨닫게 되는 날도 오니까.....
조금만 말씀이 길면 길다 그러고 불평, 귀에 안들어온다고 불평...
말씀을 자꾸 평가하지 묵상은 안할려고해.. 이게 오늘 우리의 문제고 병이예요.
보세요.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절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설교를 전해 들은 말씀을 그런가 아니가 묵상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젠틀맨이 안될 수가 없죠. 신사적인 안되는게 더 이상한거지.
여러분, 기적이 뭐가 기적인줄 아세요.
그렇게 말씀을 듣고도 안변하는 사람이 기적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기적적인 사람들이예요.
여러분들은 다 예수 바로 믿고 신사적인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믿는 사람들은 입으로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삶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예요.
그 다음으로 쫓겨간 지역이 아덴입니다. 아테네죠.
이 당시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였어요. 지식의 도시죠.
그런데, 지식으로 말하자면 사도바울도 남에게 뒤지지 않죠.
근데, 이 아덴, 아테네에서 사도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거의 실패해요.
왠지 아세요.
사람들이 너무 지식적이면, 하나님을 믿기 어려워요.
왜요? 자꾸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을 재단합니다.
자기 지식이 모든 잣대가 돼요. 요즘 현대인들이 왜 예수 믿는게 어려운지 아십니까?
아는건 많아. 근데 교만해요. 마음이 높아.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자기 똑똑이예요. 남의 말을 잘 안들어.
이게 지식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예요. 불행한죠.
아덴이 그랬어요. 그래서 사실 아덴 사람들은 복음을 안듣고 조롱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고 아덴을 떠나버려요.
예수님께서 그랬죠. 환영하지 않는 마을에서는
그 마을 밖에 나가서 니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리라....그랬죠. 일종의 저줍니다.
사랑하는 우리 두란노교회 성도여러분, 말씀에 열심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겸손해서 하나님 말씀을 잘 경청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처럼
우리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거룩한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