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2차 세계대전 ; 서부전선 이상없다.
1차 대전의 역설은 독일(빌헬름2세에서 바이마르 공화국)과 러시아(짜르에서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소비에트공화국)가 둘 다 공화정으로 바뀌게 된다. 2차 대전의 역설은 식민지 전쟁이었지만 2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39년 독소 불가침조약. 서구 지성인(좌파, 공산당원들이 많았음)에게 준 영향은 상당히 컸음.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과 소련은 서로 지원을 하면서 대립관계에 있었음. 엄청나게 많은 서구 지식인들이 스페인 공화파를 위해 싸웠고, 스탈린도 공화파를 도와주고 있었음. 조지 오웰(카탈루니아 찬가)란 책을 보면 공화파와 스탈린 파에 의한 알력을 그린 소설임. 공화국과 프랑크 총독(히틀러)과의 스페인 내전에서 히틀러의 마을 포격을 보고 울면서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피카소가 그리게 됨.
폴란드 점령전. 8월 독소불가침 조약 체결이후 9월 폴란드 침공, 소련 폴란드 침공, 폴란드 95만, 독일 180만 + 소련 80만, 폴란드와 독일 축구에서 열광하는 이유. 폴란드 20만 전사, 70만 포로. 카틴 숲 학살사건(2.5만, 사회지도층 인사를 스탈린이 학살). 전격전 용어 최초 사용(기갑부대+공군지원). 폴란드는 프랑스와 영국을 믿고 전쟁을 하지 않고 영국과 프랑스는 선전포고만 함.
철벽 대독전선 ; 마지노선. 프랑스 육군장관 마지노. 1927~1936간 참호전 대비 건설. 스위스 ~룩셈부르크 간 총 750km. 벨기에 거부로 벨기에 라인 무방비. 2차 대전은 탱크가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제작함. 원래 이 당시의 생각은 보병들이 오고 탱크가 지원하는 전략이었으며, 탱크와 포격전을 생각해서 만들게 됨. 독일은 1차 대전 패배이후 베르사유조약 때문에 무기를 만들 수가 없는데 러시아에서 기술을 배워 무기를 만들었음. 프랑스가 100만명의 군대로 마지노선을 지킴. 마지노선을 설치하는 바람에 프랑스의 공군력이 약화됨. 프랑스와 독일은 공군전이 없었음.
1차 대전 낫질작전을 생각하여 프랑스는 백만 대군을 보냈고, 중앙은 아르덴숲이 있어서 독일의 기갑부대가 못 올 줄 알았지만, 독일은 나무를 베면서 진격하게 됨. 뒤를 돌아서 100만 대군을 포위 섬멸하게 되고 34만명이 덩케르크(영국 프랑스 34만명 구출작전, 프랑스 2개 사단 철수지원, 영국의 덩케르크 정신)로 도망을 갔는데 히틀러가 추격을 하지 않아 그 부대가 나중에 프랑스를 재건하는 바탕이 되는 전쟁사의 미스테리임. 전격전으로 공군 폭격기가 방송, 통신, 물류를 차단, 수송기가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교란, 탱크 기갑부대 진입, 보병이 진군하는 전략. 이 전략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독일은 전쟁 경험이 많아서 전격전을 사용하게 됨. 독일이 프랑스 점령 이후 무솔리니 이태리 군 50만명이 프랑스 군 2개 사단에게 전멸함.
독일의 영국 항공전.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수에게 빚을 진 적은 없었다 – 처칠. 바다사자 작전-> 항공전 패배로 포기. 독일 1389대 격추, 영국 792대 격추. 이 당시는 항공기보다 조종사가 더 중요함. 독일 괴링(공군참모총장)이 실패한 이유는 영국 상공에서 싸웠기 때문이고, 이 당시 비행기들은 장거리 능력이 없었음. 이 전쟁으로 독일이 처음으로 위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