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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한 이레와 야곱의 환난
12장 10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곡과 마곡의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 사이에 있게 될 7년 대환난의 때 고토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될 사건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에 뼈들이 상합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히나 그 속에 생기가 없더니(겔 37:7,8), 또 다시 생기를 향해 대언할 때 그들이 살아 일어나 큰 군대로 변화되는 환상(겔 37:9,10)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이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민족적으로 회개함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나게 될 것을 보여준 환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948년 5월 14일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세웠지만, 에스겔의 예언대로라면 마른뼈들이 서로 상합하고 가죽이 덮히는 은혜를 경험했지만, 아직 그 안에 생기가 없는 상태인데,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저들이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면 비로소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나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저들에게 주신 제사장의 사명이 회복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되는 7년 대환난을 다니엘 9장 27절에서는 ‘한 이레’의 사건으로, 예레미야 30장 7절에서는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엔 잠시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한 이레의 사건”과 “야곱의 환난의 때”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한 이레(단 9:24-27)
a. 다니엘 9장에는 바벨론 포로 이후의 이스라엘의 운명을 묻는 다니엘의 질문에 하나님이 주신 응답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 24절에 보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70이레라고 할 때, ‘이레’(week)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사부아’는 7일 혹은 7년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7년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해 70이레 다시 말해 70 곱하기 7년인 490년의 시간을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겁니다.
24절에서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될 것”이라는 말씀은 초림의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고,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씀은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통해 의의 왕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 하셨지만, 저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이것이 미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미뤄지고 그 대신 교회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의 시대가 열린 것인데, 이 은혜의 시대가 교회의 휴거 사건으로 끝나게 되면 이후론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한 뒤 재림의 주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고 이 땅에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해 천년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b. 이처럼 다니엘에게 주신 70 이레에 관한 말씀은 바벨론 포로 이후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주는 말씀인데, 24절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 70 이레에 관한 예언이 또다시 7 이레와 62이레, 그리고 한 이레의 대한 예언으로 세분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70 이레 - 먼저,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이레와 62이레가 지나갈 것”이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은 기원전 445년 니산 월 1일에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에 의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성취가 되는데, 느헤미야 2장에 보면 아닥사스다 왕 니산 월에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가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다 했습니다. 이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에서 두 차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지만, 대적들의 방해로 아직 예루살렘 성도 재건하지 못한 채 버려져 있었습니다. B.C. 538년경 스룹바벨 총독과 함께 1차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B.C. 515년경에 성전을 재건했지만 이후로 70년 동안 예루살렘 성벽이 건설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먼 땅에서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던 느헤미야가 B.C. 445 아닥사스다 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성을 재건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함으로 이스라엘이 비로소 성전과 성벽을 갖춘 온전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느 2:1).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려진 때(B.C. 445)로부터 70 이레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2) 일곱 이레 - 70이레 가운데 7 이레(49년)면 BC 445년으로부터 BC 397년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BC 397년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이 일곱 이레 후에 이스라엘 땅에는 세례요한이 등장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동안 선지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전했음에도 저들이 듣지 않자,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입니다.
3) 62 이레 - 25절에는 이런 7 이레 이후에 또 다시 62이레의 시간, 즉 483년의 시간이 지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날” 것이라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이 내려진 뒤 정확히 483년의 시간을 계산하면 AD 32년 니산 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나오는데(성경에서의 1년은 365일이 아니라 360일로 계산되었기 때문에 날짜로 따지면 173,880일이 된다 ), 이날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료주일인데, 이때 예수님은 대관식을 치루던 이스라엘 왕들의 전통을 따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69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날 것”이라는 25절의 예언이 정확히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4)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예루살렘 성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로 환영했지만,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길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26절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 하신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어지는 26절의 말씀에는 “(이후로)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예루살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는데, 이 예언이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받음으로 문자적, 역사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b. 한 이레 - 여기까지가 70 이레 가운데 69 이레에 대한 예언이고, 27절이 마지막 한 이레에 관한 예언인데, 27절에 보면 “한 왕이(그가) 와서 이스라엘과 한 이레 동안 언약(평화조약)을 맺음으로 이 예언의 성취가 시작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왕(26, 그가)”이 바로 마지막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인데, 적그리스도가 처음 등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한 이레(7년)의 언약을 맺을 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처럼 여기고 환영할 것이지만, 이레의 절반이 지나 적그리스도가 성전에다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길 강요할 때 비로소 저가 그리스도가 아닌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하튼 이레의 절반에 적그리스도가 성전에다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길 강요할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본격적인 환란이 시작될 것인데, 이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3분의 1을 구원하여 광야의 도피처로 옮기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보존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2. 야곱의 환난의 때(렘 30:7-10)
다니엘 9장에서 “한 이레의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는 종말론적 사건을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 대환난”으로 예레미야 30장 7절에서는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제는 “한 이레”에 이어 “야곱의 환난의 때”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a.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하십니다.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지만(창 32:28),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죄의 길을 갈 땐 이스라엘이 아니라, 야곱의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사 41:4). 예레미야 30장 7절에서 마지막 때에 한 이레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환난을 “이스라엘의 환난의 때”라 하지 않으시고 “야곱의 환난의 때”라 부르신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뿐 아니라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은 시몬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날 땐 예수님이 저를 베드로가 아닌 시몬으로 부르셨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 찾아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부르신 것이 그 대표적인 일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스라엘)과 시몬(베드로)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성도(목사, 권사, 집사)’라는 이름이 있는데, 우리가 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성도(목사, 권사, 집사)’라는 이름이 아닌, 우리의 옛 이름을 부르시며 책망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b. 여하튼 “한 이레” 혹은 “야곱의 환난의 때”로 불리는 7년 대환난 기간 동안 세상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큰 환난이 찾아올 것인데, 특별히 7년 대환난의 중반부에 적그리스도가 성전에다 우상을 세우고 경배하길 강요하면서 본격적인 환난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는 본문의 말씀들을 통해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회개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될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II. 예루살렘의 애통(12:10-14)
1. 10절,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하십니다.
a. 먼저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하십니다.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할 것을 예언한 말씀인데,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실 때” 비로소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은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의미인데, 진리의 영이요,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부어주셔야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b.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할 것”이라 하십니다.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즉 2000년 전 저들이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찌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면서 회개와 회복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애통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창에 찔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한 자들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겁니다.
c. 10절에 두 번 등장하는 “그를”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엘라’인데, 이 단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나를(me, KJV)’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이 그 찌른바 나를(엘라) 바라보고 나를(엘라) 위하여 애통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20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찌른 대상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일뿐 아니라 성육하신 성자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B.C. 586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받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것처럼, 20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육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고 창으로 찔러 죽임으로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을 받고 1900년 가까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이스라엘이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한 이레의 기간 동안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10)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된다는 겁니다.
2. 11절,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하십니다.
a. 므깃도는 ‘주둔지’란 뜻을 가진 갈멜 산 남쪽에 위치한 성읍(왕상 4:12)인데, 위로는 유럽과 아시아로 아래로는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비아 마리스(Via Maris)’, ‘해변 길’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고대로부터 많은 전쟁이 벌어졌던 장소요, 앞으로 7년 대환난의 마지막에 아마겟돈(하르 므깃도, 므깃도 언덕) 전쟁이 벌어질 장소이기도 합니다.
므깃도에서 발생한 대표적 전투를 살펴보면 ① 먼저, B.C. 1468년경 애굽 왕 투트모스 3세가 므깃도를 점령하고 가나안 부족을 몰아냈었고, ② 여호수아 당시에는 므낫세 지파가 이곳을 정복하여 그 일대의 땅을 차지했습니다(수 12:7, 21; 17:11). ③ 사사기 5장에 보면 사사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나오고(삿 5:19-21), ④ 솔로몬 왕은 이 므깃도를 요새화하여 이곳에서 500필의 말을 사육하며 왕실 마병대를 육성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왕상 9:15; 대하 9:25). ⑤ 예후의 반란 때는 유다 왕 아하시야가 부상을 입고 이곳에서 전사하였고(왕하 9:27), ⑥ 유다 왕 요시야 때는 므깃도 근처에 있는 하다 드림몬 성읍에서 요시야 왕이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원정을 가는 느고 왕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가 전사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대하 35:20-24). 본문에서 말하는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이 바로 요시야 왕의 전사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다드림몬에서 목놓아 애통했던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⑦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16장에는 여섯째 대접이 쏟아질 때 유브라데 강이 말라 동방의 왕들이 바로 이곳 므깃도 언덕(아마겟돈)에 집결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려다가 포도주틀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b. 므깃도 하다드림몬에서 전사한 요시야 왕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피면, 아몬 왕의 뒤를 이어 8세에 등극한 요시야는 이스라엘의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요시야는 기원전 622년, 앗수르와의 정치적, 종교적 관계를 단절하고, 성전을 수리하던 중 우연히 율법책을 발견한 뒤, 이 율법의 말씀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열왕기하 22:3~20). 대대적인 개혁을 통하여 우상을 타파하고(열왕기하 23:4~18), 유월절 절기를 다시 회복시키고(열왕기하 23:21~23)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 다했는데, 이런 요시야 왕에 대해 열왕기하 23장 25절에서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시야 왕이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 남유다 땅을 통과하고 있던 이집트의 느고 왕을 맞아 므깃도 하다 드림몬에서 싸우다가 허망하게 전사했기에(열왕기하 23:29~30, 역대지하 35:20~24)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애통한 것입니다.
이처럼 남유다 역사 속에서 가장 의로운 왕으로 기록되고 있는 요시야 왕이 죽은 뒤에는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 왕위가 이어졌는데, 이들은 요시야의 행적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이전에 조상들이 지은 죄들을 반복하다가 결국 바벨론으로부터 3차례나 침공을 당한 뒤 멸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서 유다 백성들이 요시야 왕의 죽음을 보고 통곡한 것은 남유다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드린 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통한 것인데,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런 애통하는 마음으로 2000년 전 저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분이 메시아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며 회개하게 될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3. 12-14절,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하십니다.
a. 12절에서 언급하는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라는 말씀에서 “각 족속이 따로”라는 말씀을 영어성경(KJV)에서 살피면 “every family apart”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하면 “모든 족속이 각기 따로”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기(따로) 12,000명씩 하나님의 인 맞은 자 144,000명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7년 대환난이 되면 이런 144,000명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들이 각 족속별(every family apart)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된다는 겁니다.
b. 두 번째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다윗의 족속과 나단의 족속와 레위의 족속 시므이 족속이 따로 할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다윗과 그의 아들이었던 나단(삼하 5:14)의 족속은 왕족으로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을 상징하고, 레위와 그의 손자인 시므이(출 6:17) 족속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회개의 역사가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인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아도 지도자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고, 지도자들이 바로 설 때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c. 흥미로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의 족속과 레위의 족속과 같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회개를 시작할 때 “아내들이 따로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갈 때 남편과 아내로 이루어진 가정이 존재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천년왕국 기간 동안에는 이미 부활의 사건에 참여하여 시집가고 장가가지 않는 “부활의 자녀”(눅 20:36)들과 함께 7년 대환난을 통과한 뒤 육신의 몸을 가지고 참여하여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서 남편과 아내로서 후손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가운데는 3분의 1이 환난을 통과하고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재림하실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의 들어갈 것이고(슥 13:8), 이방인들 가운데도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하신 말씀처럼 극소수의 사람이지만 7년 대환난을 통과하여 살아남아, 양과 염소를 나누는 심판을 통과한 뒤, 천년왕국의 기간 동안 육신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며 후손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이 때가 되면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사 65:20)하신 말씀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살면서 후손을 남기게 될 것인데, 그렇게 후손을 남기게 되면 천년왕국이 끝날 때쯤에는 80억 가까운 지금의 인구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이렇게 천년왕국이 끝나갈 때쯤이면 하나님이 무저갱에서 용을 풀어놓아 세상을 미혹케 하심으로 천년왕국 기간동안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나누시고(계 20:8-10), 최종적으로 백보좌 심판을 행하신(계 20:11-15) 뒤에, 지금의 하늘과 땅을 불태워 없애시고, 새하늘과 새땅을 지으신 뒤에 이곳에 새 예루살렘성이 머물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계 21:1,2).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과 교회에 약속된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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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장 넉넉한 사람은~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 불만이 없는 사람이지요.
싱그러운 향기와 더불어 기분 좋은 미소가 바람과 함께 솔 솔 솔~~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