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와인경매사가 낙찰봉을 고쳐 잡았다. 그가 봉을 내려치자마자 부호인 포브스 2세가 입찰 번호판을 앞으로 향해 올렸다. 순간 정적이 깨어지면서 좌중은 술렁술렁.
이윽고 낙찰봉의 경쾌한 소리가 와인경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꾸어 놓았다. “15만6450달러에 팔렸습니다.” 와인 단 1병에 15만달러가 넘다니. 와인경매의 신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포브스 2세는 ‘아버지의 중대한 심부름을 마쳤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 역사를 쓰게 만든 와인경매사 브로드벤트에게도 역시 힘든 시간이었다. 와인 1병을 팔기 위해 경매사가 쓴 시간 중 가장 길게 기록되는 와인이었기 때문이다.
1985년 가을 저녁에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의 일이었다. 미국 잡지재벌 포브스 2세가 갖고 간 1787년 산 라피트 와인 한 병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와인. ‘제퍼슨 소장품’ 파티를 계획한 포브스 1세에게 제퍼슨의 소장 와인은 구미가 당기는 소품이었다. 약 200살이 되는 이 와인 한 병은 파티 참가자 모두를 타임머신에 태울 수 있다는 생각에 포브스 1세는 아들 손에 백지수표를 흔쾌히 건넸다.
이날 2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 경매에는 유난히도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몰려들었다. 경매사 브로드벤트가 경매를 시작했을 때 가격은 이제껏 최고가인 1만5000달러. 제퍼슨이 한때 소유했다고 추정되는 1.5ℓ들이 와인 한 병에 쏟아진 관심은 경매사의 출발 가격 호가와 함께 놀라운 광경을 연출했다. 그것은 바로 패들(입찰 번호판)의 바다. 약 30여명의 응찰자가 모두 자신만만하게 패들을 올렸다. 경매사 왼쪽에 있던 전화 응찰자용 책상의 전화선이 모두 불통이 될 지경이었다.
이 가운데에는 미국의 와인 전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의 발행인인 생컨도 눈에 띄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3만달러라고 작정하며 이 와인 사냥에 참가했다. 그러나 포브스 2세가 7만5000달러까지 값을 끌어올리자 생컨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코 놓칠 수 없지, 포브스에게 뺏길 수는 없어.” 그리고 경매사가 막 낙찰 호령을 하기 직전에 생컨은 덥석 패들을 쥐고 오른손을 허공에 올렸다. 전광판에는 벌써 15만달러가 반짝였다. 벨기에 출신의 한 와인거래상은 생컨을 바라보며 브이를 그렸다.
“남의 속도 모르고.” 생컨은 한숨을 지었다. 3만달러를 쓰리라 다짐하며 참가한 와인경매에서 15만달러라니! 냉정을 되찾은 생컨은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자책하고 있다. 바로 그 순간 보르도에서 날아온 한 귀부인은 장갑을 고쳐 끼고는 고개를 돌려 포브스 2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포브스 2세가 번쩍 손을 들어 와인을 낚아채면서 새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미술품 외에도 명품 와인을 수집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1995년 뉴욕 소더비에서 그는 피카소 그림을 2900만달러(약 350억원)에 사기도 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용돈을 아껴 와인을 사 모았으며 작곡가가 된 이후에도 와인을 곧잘 구매하곤 했었다. 같은 물건이라도 유명인이 소장하면 몇 배가 오르기 마련인데, 런던에 있는 경매회사 소더비는 웨버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와인경매를 기획하였다.
1997년 5월 20일 웨버의 와인만을 가지고 단독경매를 개최했는데 모두 1만8000병이었다. 이틀 동안에 연속으로 치러진 낙찰가액은 약 600만달러(72억원). 이는 와인 경매사상 3번째로 큰 규모의 단독 출품 와인 경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날의 경매는 추정가의 30%를 뛰어넘어 낙찰되었으며, 접수된 부재자 응찰횟수는 1만2000건에 달하는 등 출품자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기록적인 것이었다. 경매를 주관한 소더비의 와인 책임자인 세레나 서클리프 여사는 “웨버의 와인 컬렉션은 수량, 품질 그리고 소장기록이 잘 구성된 정말 독특한 컬렉션”이라며 “자연 그대로 보관된 품질에다 뮤지컬 스타의 소장품이라는 명성이 결합하여 거의 100%가 낙찰된 드문 경매”라고 평가했다.
첫댓글 어제자 조선일보를 구해야 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