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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S#1 학원 강의실(낮)
길게 F4되면 - 칠판에 적혀지는 영어문장.
In the long history of the world, only a few generation have been granted
the role of definding freedom in its hour of the maximum danger-
강사가 문장을 분석하며 수업이 진행된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현실의 병태이다.
넓은 강의실에는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인다.
진행되는 수업.
S#2 학원 교무실(낮)
널찍한 교무실.
소파에서 TV보는 선생, 자리에서 신문 보는 선생 등 어딘가 분위기가 냉랭해 보인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병태, 지나가던 한 남자선생.
박선생 : (병태에게) 한선생, 우리 언제 소주 한 잔 해야 되는데...
서로 바쁘다 보니까 말이지... 언제 날 한번 잡읍시다.
으레 적인 인사처럼 들렀는지 병태-
병 태 : (머쓱하게) 그...그러죠. 언제 한번 하죠...
이 때, 여직원의 소리 들린다.
여직원 : 한선생님, 2번 전화 왔어요.
앞 책상의 전화를 끌어 전화 받는 병태.
병 태 : 여보세요... 응, 그래. 8시가 마지막 수업이야... 그래... 그 집에서, 알았어...
전화 끊는 병태.
S#3 음식점(저녁)
넓은 공간에 꽉 찬 손님들. 격식 없이 꾸며진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다.
실내를 가득 메우는 뿌연 연기.
종업원들의 분주한 모습 속에 병태와 황영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다.
영 수 : 야! 영지엄만 요즘엔 좀 수그러졌냐?
병 태 : ... 그렇지 뭐...
영 수 : 너 회사 관둔다고 그랬을 때, 그 날 우리 집 찾아와서 말려 달라고 난리치던 거
생각하면... 여하튼, 대단했어.
병 태 : ... 그 사람 입장에서야...
술 마시는 병태.
영 수 : 하긴, 그땐 나도 널 이해할 수 없었는데 뭐 ...
영수, 잔을 권하며 분위기 바꾸려는 듯.
영 수 : 너 학원선생 한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잖아?
병 태 : ... 그럭저럭...
영 수 : 니 체질에 맞긴 맞는 것도 같구...
병 태 : 눈치볼 일은 없으니까... 그것만으로 괜찮다면 괜찮은 거지...
영 수 : 가르치는 실력대로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니까, 매력도 있잖아?
빙긋이 웃는 병태.
영 수 : 요번달에는 수강생이 좀 늘었냐?
병 태 : 지난달보다는 좀 나아졌어.
영 수 : 아참, 오늘 시골집에서 전화 왔는데, 너 왜 최선생 알지?
병 태 : 최선생?
영 수 : 국민학교 때 5학년 담임선생!
병 태 : (조금 굳으며) ...응 ...왜?
영 수 : 돌아가셨대.
병 태 : ......
영 수 : 내일 모레 발인이래. 너 한번 안 가볼래?
병 태 : 거길... 왜 가?
영 수 : 넌 졸업하고 그 동네 한번도 안 가봤잖아? 동네 변한 것도 볼겸 한번 갔다와 봐.
병 태 : ...
영 수 : 난 내일 일본출장이라 못 가는데... 넌 한번...
병태 이야기 막으며, 「그 얘기 그만하고 술 먹자.」술잔을 털어 넣는 병태.
그런 병태의 반응에 조금 어색해하는 영수.
S#4 아파트 광장(밤)
한밤중. 조용한 단지 분위기.
택시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입구로 들어서는 병태.
몹시 술이 취해 있다.
S#5 병태의 아파트 내부(밤)
병태 방- 작은 방이다.
옷을 채 벗지도 못하고 바닥에 웅크려 자고 있는 병태.
그 너머로는 병태의 이력을 보여주는 소품들이 어슴프레 보인다.
잠에서 깨는 병태. 갈증을 느끼고 일어서 나온다.
S#6 동, 거실(밤)
방에서 나와 주방 쪽으로 가는 병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낸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냉장고 불빛만이 비추고 있다.
컵을 찾다가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정적을 깨는 소리의 울림.
물을 마시는 병태.
이 때,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으로 안방에서 나오는 병태처. 못마땅한 표정이다.
병태처 : 애들 깨요!
병 태 : ...
병태처 : 당신, 웬 술을 그렇게 마셔요?
계속 물을 마시는 병태.
병태처 : 내일 또 휴강할려고 그래요? (따지는 듯한 부인의 표정)
당신 학원 강사도 못 한다면 끝장인 거 알죠?
방으로 들어가는 부인.
병태,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문다.
이때 울리는 전화벨. 받는 병태.
병 태 : 여보세요. 응...그래. 잘 들어왔어... 출장이나 잘 갔다와... 안 간다니까...
누구... 엄석대?...
굳어진 병태의 표정.
S#7 서울역 플랫홈(이른 새벽)
플랫홈 옆의 계단을 내려오는 병태.
기차 안의 실내등이 전체의 어둠과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기차에 오르는 병태.
S#8 기차 인서트(새벽)
푸- 하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 바퀴.
S#9 기차 안(새벽)
창가에 앉아 있는 병태.
김이 서린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낸다.
밖으로 스쳐 가는 가로등. 창 밖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유리창에 비치는 병태 얼굴.
그 병태의 얼굴에 과거의 아스라한 기억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서서히 밝아오는 먼동과 함께 창밖의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떠오르는 메인 타이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기차, 터널로 들어서면 화면, 어두워진다.
여기에 들리는 병태 소리-
병태(소리) : 벌써 30여 년이 지났지만 그 해 가을에서 겨울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기차, 터널을 나오면 창밖의 풍경 다시 보인다.
S#10 열차 안(과거)
초가을의 농촌 풍경이 보여진다.
카메라 서서히 틀며 빠지면-
어린 병태가 다소 들뜬 모습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한 손에 쥐어진 새장.
그 옆에 졸고 있는 동생, 준태.
병태(소리) : 자유당 정권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 해 가을,
나는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의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병태.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병태 부의 굳은 표정.
병태 모, 남편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 위에-
병태(소리) :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아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열 두 살,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엉거주춤한 무렵이었다.
S#11 시골길(아침)
전형적인 비포장 시골길.
우마차가 지나간다.
멀리서 걸어오는 병태와 병태 모, 깔끔한 서울풍 엄마와 아이다.
병태, 짜증스런 모습이다.
병 태 : 아직도 멀었어?
병태모 : 아니야,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병 태 : 에이, 다리 아파 죽겠는데...
S#12 운천국민학교(아침)
교문 입구로 들어서는 병태와 병태 모.
병태, 짜증스럽고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시선으로-
초라한 교사가 보인다.
나란히 서 있는 일본식 시멘트 건물과 판자로 지은 가교사.
한쪽에는 퇴비가 쌓여 있다.
인상만 쓰고 있는 병태를 몇 발 앞서던 병태 모, 되돌아와 달래듯 병태를 이끈다.
병 태 : (손을 뿌리치며) 우리학교 반도 안되잖아!
병태모 : 그래도 이 지역에선 제일 큰 학교야!
마지못해 어머니를 따라 걸음을 떼는 병태.
S#13 교무실(낮)
조선생 : (큰소리로) 글세 벌써 두 달째나 숙직 수당을 못 받고 있다니까요.
커다란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만이 유독 눈에 띄는 궁색한 풍경의 교무실.
바둑판 주위에 나이 든 선생님들이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점심시간 직후의 나른한 교무실로 들어오는 병태 모와 병태.
딸딸이 전화기를 들고 큰 소리를 내는 조선생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생 : 알았습니다. 지난건 그렇다 치고라도 이 달부터는 제 때 수령하게 해주십시오.
바둑판 주위에 앉아 있다가, 멀뚱하게 교무실 안을 휘 둘러보며 서 있는
병태모와 병태를 발견한 허름한 양복의 한 명이 일어나 다가온다.
교 감 : (반색하며) 서울에서 오신 군청 총무과장님의...
병태모 : 네, 안녕하세요?
교 감 : 어서 오세요.
병태모 : (병태에게) 인사 드려야지.
꾸벅 인사를 하는 병태.
교감, 병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교 감 : 오 너로구나. 자식 똘똘하게 생겼네.
병태모 : 선생님께서... 최성식 선생님...?
교 감 : (웃으며) 아닙니다, 최선생님은...
교감이 고개를 돌린 구석에는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를 향해 의자에 기댄 채
졸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교 감 : 최선생!
졸고 있던 구석의 선생으로부터 잠이 덜 깬 부시시한 대답소리가 들린다.
교 감 : 이리 좀 와 봐요.
겨우 일어나 다가오는 최선생을 병태 모에게 인사시키는 교감.
교 감 : 그럼 말씀 나누세요, 불편한 것 있으면 언제든 찾아 오시구요.
병태모 : 네, 고맙습니다.
최선생 : (병태에게) 이름이 뭐지?
병 태 : 한병태에요.
병태, 최선생의 생김새와 낡아빠진 양복 등의 깔끔하지 못한 모습에
실망의 눈빛이 스친다.
병태모 : 공부는 잘 했어요. 서울서도 반에서 거의 일등 하다시피 했거든요.
급장도 여러번 하구요.
최선생 : (끄덕이며) 네...
병태모 : 또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도 여러 번 탔구요, 못하는 게 없는 편이죠.
줄곧 병태의 시선에 들어오는 최선생의 닳아서 터진 옷소매와
상의에 군데 군데 묻어있는 막걸리 자국.
S#14 복도
병태를 앞에 두고 걸어나오는 병태 모와 최선생.
병태모 : 선생님, 전 그럼...
최선생,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고는-
최선생 : 자, 가자!
병태모 : 아참! 선생님...
최선생 : 네?
병태모 : 저... 잠깐만요.
최선생, 다가온다.
주변을 돌아보는 병태. 생경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최선생 : 가자!
병태. 돌아보면 어머니가 현관문 밖으로 나서고 있다.
교실 쪽으로 다가가는데... 돌연 우렁찬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걸어감에 따라 그 소리 점점 커지는데-
S#15 교실
흐트러짐 없이 규격화된 교실.
아이들의 통일된 책 읽는 소리만 들려온다.
교실 유리창으로 최선생의 모습이 보이자 돌연 들려오는-
석 대 : 그만!
동시에 책읽기를 그치는 아이들.
최선생과 병태 들어선다.
차렷!
일사불란한 아이들의 동작.
최선생, 교단에 오르면-
경례!
계속 어리둥절한 병태.
빡빡머리 아이들의 시선이 병태에게 모아진다.
최선생 : 서울에서 전학 온 한... 한 뭐라고 했지?
병 태 : 한병태요.
최선생 : 그래 한병태다. 잘 지내도록...
최선생, 백묵을 챙긴다.
그때, 자기소개 하려고 단상에 오르는 병태.
병 태 : 한병탭니다. 저는 서울 교동국민학교에서...
순간, 최선생 병태를 돌아보며,
최선생 :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아라.
주춤하는 병태, 최선생을 쳐다본다.
최서생 : 왜?
병 태 : 저... (주춤거리다가, 이내) 아뇨...
최선생 : 들어가.
쭈뼛거리며 교단을 내려오는 병태.
어디선가 킥킥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오자 모두 다 웃음을 터뜨린다.
얼굴이 붉어지는 병태. 겨우 자리를 찾아간다.
최선생 : 조용히 해! (책을 피며) 어디 할 차례지?
영 수 : 화랑정신과 관창을 할 차례입니다.
최선생 : 사회시간 아니야?
영 수 : 국어시간 인데요.
최선생 : 그래? 급장! 국어시간 맞어?
석 대 : 네, 맞습니다.
최선생 :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잠깐 자습하고 있어.
최선생 나가자 눈치를 살피며 병태 쪽으로 몸을 돌린다.
본 석 : 야, 너 남대문 봤어?
종 희 : 에이, 그건 나두 봤다. 야, 너 전차 타봤어?
본 석 : 니가 남대문을 봤어? 에이 순 쌩...
종 희 : 봤으면?
본 석 : 구라 까지 마!
종 희 : 봤다. 그림에서...
낄낄거리는 아이들.
종 희 : 말해 봐. 전차 타봤어?
병 태 : (마지못해) 응.
본 석 : (병태의 연필을 만지작거리며) 전찬 나두 타 봤다.
종 희 :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고) 우와! 이게 전차 타 봤대. 새빨간 구라!
본 석 : 정말이야, 임마.
종 희 : 진짜? 목숨 걸 수 있어?
본 석 : 이게!
종 희 : 어쭈!
석 대 : 조용히 해.
일순, 모든 소음이 사라진다.
씩씩거리며 노려보기만 하는 종희와 본석.
병태, 이상한 듯 뒤를 돌아보면 자신을 지켜보던 석대와 눈이 마주친다.
김문세 : 상고머리, 이리 와봐.
문세의 소리는 느낀 듯, 허나 아랑곳 않는 병태.
김문세 : 야, 한병태!
병 태 : (돌아보며) 왜?
김문세 : 이리 와봐!
병 태 : 할말 있으면 니가 이리 와두 되잖아.
김문세 : 뭐.
주춤하는 문세.
순간, 문세의 눈꼬리가 올라가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덩치 큰 아이가 달려와 병태 앞에 선다.
강동규 : 일어나 임마!
얼떨결에 벌떡 일어나는 병태.
병 태 : (가다듬고) 넌 뭐야?
동 규 : 체육부장이야. 왜? (손가락으로 찌르며) 임마 급장한테 신고시키려고 오라는데
안 가?
병 태 : 급장이면 다야. 급장한테 신고하라는 법이 있냐구?
동 규 : (기가 막힌 듯) 뭐?
갑자기 반 아이들 전체가 와르르 웃어 버린다.
당황하는 병태.
동 규 : (웃음을 참으며) 그럼 전학 온 놈이 급장한테 신고도 안 해?
너 어디 학교에서 왔어? 그 학교엔 급장도 없었어?
돌연, 병태를 휘어잡고 끌어내는 동규.
그 완력에 몰려 석대 쪽으로 넘어진다.
웃는 아이들.
석 대 : (다정하게 병태를 일으키며) 나한테 잠깐 오기가 그렇게 힘든 일이야?
석대, 부드러운 태도에 더욱 정신을 못 차리는 병태.
석대 : 너 서울서 공부 잘했어?
병 태 : ...
석 대 : 말해봐, 괜찮아.
병 태 : (가다듬고) 거의 일등 했어.
석 대 : (웃으며) 그래? 학교도 꽤 크지?
병 태 : 한 학년이 열반도 넘어.
석 대 : 다른 건 뭘 잘해?
병 태 : 사생대회에서 특선 두 번 했어. 입선은 여러 번 했고...
석 대 : 그래? 아버지는 뭐 하시니?
병 태 : 군청 총무과장이셔.
고개를 끄덕이는 석대.
석 대 : 야, 김경수 여기 한병태와 자리 바꿔.
두말 없이 일어서 병태의 자리로 가는 김경수.
병 태 : (놀란 표정으로) 선생님이 저기 앉으라고 하셨는데...
석 대 : 괜찮아.
병태, 머뭇거리다가 결국 석대 건너편 앞자리로 간다.
자신의 옆으로 머뭇거리며 다가와 앉는 병태를 보고 히쭉 웃는 영팔.
최태규 : (복도 쪽 유리창에서 머리를 빼며) 떴다!
석 대 : 정문수.
기다렸다는 듯이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국어책을 읽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병태의 넋 나간 모습.
S#16 복도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덩그라니 비어 있는 복도에 요란한 타종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나오는 각 반의 선생님들.
5학년 2반의 뒷문에서 아이들 몇이 몰려나오고 그 뒤로 어깨를 늘어뜨린 병태가 나온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
이때 옆 반의 문이 왈칵 열리며 공을 가진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나온다.
그 기세에 밀려 한 구석으로 쓰러지는 병태.
S#17 교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옷을 털며 들어오는 병태.
아이들이 자신의 필통, 책받침 등을 만져보고 있다.
병태를 보자 움찔하는 아이들.
병 태 : 괜찮아, 구경해.
한쪽 구석에서 아까의 종희와 본석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앞문이 열리고-
태규를 앞세우고 들어서는-
석 대 : (여유 있게) 이리 와, 이리 와봐!
한 덩어리로 엎치락뒤치락 하던 아이들이 석대의 소리를 듣자 두말없이 갈라선다.
석 대 : (천천히 걸어와 걸려있는 지휘봉을 들고) 왜 그래?
본 석 : 먼저 때리잖아.
종 희 : 이게 자꾸 전차 타봤다고 쌩까잖아!
석 대 : (한심한 듯) 참, 네. 이거 코피가 나잖아!
두 아이 동시에 손을 코로 가져간다.
본석의 코에서 피가 흐른다.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본석.
안도의 숨을 쉬는 종희.
석 대 : 김경수, 솜가져 와!
잠시 후-
타종과 함께 들어오는 최선생.
교단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종희를 발견한다.
최선생 : (석대를 보며) 무슨 일이야?
석 대 : 구본석과 싸워서 코피를 나게 했습니다.
최선생 : 일어서.
겁에 질려 일어나는 종희의 손바닥을 지휘봉으로 때린다.
과장된 엄살로 다 죽어 가는 시늉을 하는 종희.
최선생 : 들어가! 책들 펴고!
석대의 처벌에 대한 선생님의 강력한 추인에 다시 한번 어리둥절해지는 병태.
모든 게 알쏭달쏭 하다.
S#18 교문 앞 (오후)
풀빵 장수, 뽑기 장수들이 양편에 자리잡은 가운데
학교가 파한 듯 아이들이 무리 지어 나오고 있다.
급하게 뛰어 나오는 병태. 바로 뒤엔 새로운 짝 영팔이가 뒤쫓아온다.
멀찌감치 뒤에서 우르르 그들을 쫓고 있는 한 떼의 아이들.
아이들 : 서울내기 다마내기 서울내기 다마내기...
뜀박질을 멈추고 사나운 얼굴로 노려보는 병태.
쫓아오던 아이들도 그 자리에서 멈춰서 여전히 놀려댄다.
영 팔 : 그냥 가...
걸어가는 병태와 영팔.
걸으면 걷고, 뛰면 같이 뛰며 놀림을 계속한다.
S#19 철둑길(오후)
걸어오던 병태와 영팔.
돌아보면-
저만치 갈림길에서 서서 계속 놀려대는 아이들.
병 태 : (돌아서 가며) 촌놈들!
그 소리를 듣고 헤벌쭉 웃는 영팔이.
잔뜩 내려온 콧물을 훌쩍 들이마시며 병태를 따라 걷는다.
병 태 : 급장이 몇 살이니?
영 팔 : 열다섯, 아니 쉰다섯살.
병 태 : ... 그럼 공부 잘 하니?
영 팔 : 몰라!
철둑길을 따라 걷는 병태와 영팔.
병 태 : 니네 집은 어디니?
영 팔 : 저-기...
이미 걸어온 길을 가리킨다.
병 태 : 근데 왜 이리 가지?
말 없이 히죽 웃는 영팔.
병 태 : 가, 어서...
여전히 해푼 웃음을 흘리며 바라만 보고 있다.
병 태 : 가라니까, 내일 만나!
그제서야 휙 돌아 달음질쳐 가는 영팔.
병 태 : 영팔아 잘가!
돌아서 한참 걸음을 옮기는데-
영팔(소리) : 잘 가. 한병태...
돌아보면 멀리서 손을 흔드는 영팔.
병태, 답례로 가방을 휘둘러 원을 그린다.
뒤돌아서 가다가 철로로 처박히는 영팔. 다시 일어나 뛰어간다.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는 병태.
초가을의 투명한 햇살 속에 아득한 평행선이 펼쳐져 있다.
기억을 더듬는 듯한 병태의 눈동자.
S#20 서울학교 교실(회상)
햇살이 가득 퍼져 있는 정돈된 교실.
소프트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단정하고 밝은 표정의 아이들과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선생님이 병태를 둘러싸고 있다.
전학을 가게 된 병태를 아쉬워하는 자리.
아이들 각자가 준비한 선물을 병태에게 전해준다.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하지만 한껏 고마움을 표시하는 병태.
빨간 리본을 맨 여자아이가 다가와 병태의 손바닥에
반짝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박힌 1달러 은전을 쥐어준다.
슬픔을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손을 눈가로 가져가는 여자아이.
벅차 오르는 병태. 고개를 떨구고 손을 펴본다.
반짝 빛을 발하는 1달러 은전.
S#21 병태의 방안(밤)
손에 든 1달러 동전을 불빛에 비춰보는 병태. 침울한 표정이다.
그 옆에는 잠들어 있는 동생. 준태.
안방의 라디오에서-
“야야야야 야야야 치치치 야야야”
하는 진로소주 선전이 흘러나온다.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문 가운데 반투명한 유리가 데어져 있고,
그것을 통해 부모들이 그림자가 보인다.
현관에 들어서는 병태 부- (들려오는 소리)
병태모(소리) : 약주 하셨어요?
병태부(소리) : 직원들이 하두 성화라서... 할 수 없이 한잔했지... 병태는?
병태모(소리) : 잔뜩 부었어요.
병태부(소리) : 왜?
병태모(소리) : 급장이란 애가 맘에 안 드나 봐요.
반 아이들 모두가 선생님보다 더 어려워 한 대요.
병태부(소리) : 그래? 거 대단한 놈일세.
아버지의 말소리가 가까워지자 얼른 일어나는 병태.
아버지 들어서며.
병태부 : 이 녀석 뭐가 불만이라구?
말이 없는 병태.
병태모 : 말씀드려 봐 병태야...
재촉하는 어머니 시선에-
병 태 : 반 애들이 모두 이상해요. 급장 말이면 꼼짝 못해요.
병태부 : 그런데, 그게 왜?
병 태 : 걔가 꼭 선생님 같이 행동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하구...
병태부 : 근데 왜 니가 화가 나지?
병 태 : 서울 학교에서는 급장이랑 애들이랑 똑같았는데
여기는 애들이 모두 급장 꼬봉이야.
병태부 : 이런 못난 놈! 그 급장이라는 놈 대단한 놈이다. 얼마나 힘을 가졌으면 반 애들이
그렇게 절절 매겠니? 남자는 힘이 있어야 되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큰 인물이 되지.
취기가 더욱 도는 병태 부.
병태부 : 너 시골로 온 거 싫지? 아버지도 오기 싫었어. 근데 왜 온지 알아?
힘이 없었기 때문이야.
병태 모, 보다 못해 나서며
병태모 : 아니 이 양반이!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병태 부, 아랑곳 않고.
병태부 : 병태 너 잘 들어라. 기껏 그 애 심부름꾼 되기 싫어서 불평만 하지말고,
너도 그런 힘있는 급장이 될 생각을 하란 말이야. 그런 생각은 못 하니?
에이 약해 빠진 놈.
병태 모, 병태 부를 끌다시피 데리고 나가며.
병태모 : 당신, 취하셨어요. 그만 나가세요.
당황한 병태. 눈가에 눈물이 서린다.
S#22 병태집 앞(밤)
현관 앞의 계단에 쭈그려 앉아 있는 병태.
외등이 쓸쓸해 보이기만 한다.
S#23 복도(낮)
커다란 물주전자를 들고 낑낑대며 걸어오는 두 아이.
창 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여남은 명의 남루해 보이는 아이들.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S#24 교실(낮)
점심시간의 풍경-
아이들이 소란스레 도시락을 펼치고 있다.
나란히 앉은 양종희와 구본석도 각자의 도시락을 꺼낸다.
드문드문 섞인 쌀에 온통 보리. 그것도 반은 고구마로 채워져 있다.
밥주발에 싸온 양종희의 보자기 끝이 책상 가운데
그어진 선을 넘어가자 휙 치워버리는 구본석. 또 티격태격 분쟁이 인다.
엉덩이 밑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영팔.
영 팔 : 아, 따뜻하다.
인상을 찌푸리는 병태.
도시락을 열다가 삶은 계란을 고이 들고 뒷자리로 가는 임만순을 본다.
이미 반찬들과 찐 고구마, 사과 등이 놓여져 있는 석대의 책상.
만순이 계란을 바치자 석대, 씽긋 웃어준다.
석 대 : 권칠만, 이기환, 김민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 일어서는 아이들. 석대 앞에 다가가 줄을 선다.
그들에게 베풀 듯 책상 위에 음식들을 나누어준다.
고마워 하는 아이들.
이를 지켜보는 병태, 의아한 표정이다.
병태, 고개를 돌려 도시락을 먹는데-
다가온-
만 순 : 오늘은 네가 당번이야.
병 태 : (밥을 입에 가득 넣고) 뭐?
만 순 : 급장 물 떠다 주라구. 네가 당번이니까...
병 태 : 급장은 손이 없어? 왜 내가 물을 떠다 바쳐야 돼? 급장이 뭐 선생님인가?
만 순 : 어쭈?
병 태 : 내 말이 틀렸어? 그리고 넌 왜 계란을 갖다 주니? 너희들도 그러지 마.
당황하는 만순.
김문세(소리) : 야! 한병태 물 떠와 빨리...
병 태 : (돌아보며) 싫어, 난 못해!
어느새 한걸음에 달려온 강동규. 주먹을 둘러댄다.
주춤 몸을 사리는 병태.
김문세, 양승찬, 정문수 등 몇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뒤에서 눈치보며 가세하는 부급장 황영수.
기세에 눌려 얼떨결에 일어나 주전자 쪽으로 걸어가다가 몸을 휙 돌려 앞문으로 향한다.
병 태 : 좋아. 그럼 먼저 선생님한테 물어 보겠어. 급장이면 물을 떠다 바쳐야 되는지...
병태, 앞문 앞에 이르러 나가려고 하는데-
석 대 : (차분하게) 한병태! 됐어! 니 자리에서 밥이나 먹어.
석대의 묘한 시선을 느끼면서도 태연히 걸어와 도시락을 먹는 병태.
그런 병태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팔.
S#25 변소 뒤(낮)
불쑥 내밀어지는 주먹.
어리둥절한 병태를 영팔이가 웃으며 바라본다.
천천히 주먹을 펴면 나타나는 노란 탄피 하나.
영 팔 : 가져.
도리질하는 병태.
손을 거두지 않고 슬슬 웃음만 흘리는 영팔.
병태, 마지못해 받는다.
영팔이의 만족한 웃음.
S#26 교실(낮)
앞문이 열리고 석대 뛰어 들어온다.
석 대 : 운동장에 집합!
황영수 : 음악인데...
석 대 : 풍금이 고장이다. 빨리 집합.
뛰어가는 석대.
소란스레 쫓아 나가는 아이들.
엇갈려 들어오던 병태와 영팔 영문을 몰라한다.
S#27 운동장(낮)
운동장에 양편으로 대열을 갖춘 아이들.
좀 떨어진 곳에 대여섯의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허겁지겁 뛰어오는 병태.
석대의 시선을 느끼고 의도적으로 당당하게 걸어온다.
석 대 : 한병태! 저기로 가.
석대가 가리키는 아이들 곁에 가 앉는 병태.
시작!
하나로 엉클어져 싸우는 아이들을 보다가 앉아있는 아이들 쪽으로 다가간다.
석 대 : (맨 앞의 종희에게) 왜 늦었지?
종 희 : 너무 일찍 시작했잖아.
석 대 : 시끄러! 지각한 벌로 토끼뜀 세 바퀴 그리고 오늘 청소!
본 석 : 에이-
석 대 : 뛰어 빨리.
깡총거리며 할 수 없이 맨 뒤에 따라 붙는다.
계속 토끼뜀을 하는 병태의 시야에-
석대 및 모든 풍경들이 흔들리고 있다.
S#28 펌프가(오후)
물을 들어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대는 병태.
하지만 칙- 소리와 함께 빠져버리곤 한다.
몇 번만에 간신히 물을 끌어올리는 병태.
손을 호호 불며 걸래를 빤다.
S#29 교실(오후)
교실바닥을 쓸기 위해 의자를 올린 책상들이 뒷편으로 옮겨진 교실.
싸리 빗자루 등을 들고 책상들이 옮겨진 교실 뒷편에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와 함께 걸레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는 병태.
병태를 발견한 아이들 중 누군가가 의자가 올려진 맨 뒤쪽의 책상을 발로 밀자
대충 정렬되어 있던 책상들과 의자들이 연차적으로 넘어간다.
자신을 향해 밀려 넘어오는 책상과 의자들을 보고 기겁을 한 병태가 피하려다
손에 양동이와 함께 교실 바닥으로 쓰러진다.
쓰러지는 병태의 옆으로 쏟아지는 책상과 의자들.
양동이서 쏟아진 질펀한 물 위로 나뒹구는 병태.
그 위로 아이들의 웃음이 쏟아진다.
S#30 읍내거리(황혼)
세 갈래 작은 길이 모여 나름대로 큰 한 길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우리 읍내 거리다.
길가에는 초라한 극장 등 여러 점포들이 늘어져 있다.
거리를 지나는 병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고 있다.
S#31 교실 안(낮) (비젼)
‘기타사항’이란 글씨를 쓰는 서기의 손.
흑판에는 주훈이나 금주의 실천사항들이 적혀 있다.
교탁에 서 있는 석대. 교실 안의 아이들을 둘러본다.
석 대 : 그럼 실습지 작업일정은 실천사항에 적힌 대로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기타사항... 의견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드십시오.
좌중을 둘러보는 석대.
아이들의 얼굴에는 학급회의가 끝난 것처럼 다음 시간을 준비하려는 듯
가방에서 책을 꺼내 놓는 등 작은 웅성거림이 생긴다.
교탁의 석대를 바라보는 병태.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손을 치켜올린다.
병태에게로 모아지는 아이들의 시선.
석대와 병태의 시선이 짧게 부딪친다.
석 대 : 한병태 어린이...
일어서는 병태.
병 태 : 학급 건의함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석 대 : 건의함?
병 태 : 제가 다니던 서울 학교에서는 건의함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하고 싶은 얘기,
학교 생활에 불편한 점, 또 누가 자기를 괴롭히는 일 등을 무기명으로 적어 넣는
겁니다. 건의함은 담임 선생님만 열어볼 수 있게 하구요.
병태의 말이 끝나자마자 뒷편에 앉아 있던 동규의 손이 번쩍 올라간다.
석 대 : 강동규 어린이.
동 규 : 그런 건 학급회의 때 얘기하면 급장이 전부 알아서 해왔던 것들입니다.
몇몇 아이들로부터 동규의 말에 찬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병 태 : (그대로 선 채) 표결에 붙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로부터 어이없다는 듯한 약간의 웃음이 흘러나온다.
분필을 든 채 석대의 눈치를 살피는 서기.
석 대 : 좋습니다.
흑판에 ‘건의함’이란 글씨를 쓰는 서기.
석 대 : 한병태 어린이의 말에 찬성하는 사람 손 들어 주십시오.
아이들, 전혀 반응이 없다.
석 대 : 그럼 반대하는 사람.
아이들의 손이 일제히 올라간다.
아이들의 엄청난 반응에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병태의 얼굴.
석 대 : 그럼 학급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서기에 의해 지워지는 ‘건의함’ 글씨.
S#32 병태의 방(밤) (현실)
노트에 ‘엄 석 대’란 글씨를 쓰는 병태.
그 쓰여진 글씨 위에 거듭 같은 글씨를 덧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쓰던 손을 멈춘 병태의 시선이
구석에 놓여진 사기 저금통으로 가 멈춘다.
‘엄석대’란 글씨가 적힌 노트 위로 깨지는 사기 저금통.
S#33 복도 뒤쪽(오후)
수업이 끝났는지 ‘와’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청소 준비를 위해 책상 걸상을 뒤로 밀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인다.
바깥 창쪽에서 석대를 중심으로 간부 아이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잠시 후, 강동규 앞으로 나온다.
강동규 : 야, 오늘 급장이 서커스 구경 시켜준대. 가자!
환성을 지르며 우르르 몰려나가는 아이들.
허나, 그쪽 팀에서 안 끼워 주는 듯 시무룩하게 복도 쪽으로 들어서는 태규.
서성이고 있던 만순, 문수 등의 아이들 쪽으로 온다.
태 규 : ...우리들은...안 된대... 오늘 수업시간에 떠들고, 지각도 하고...
실망한 표정의 아이들.
서로의 눈치만을 보다가 각자 흩어지려 한다.
이를 계속 지켜보던 병태가 다가온다.
병 태 : 너희들 극장 구경 안 갈래?
만 순 : 빠방?
나서는 만순을 저지하고 창밖에 석대 일행을 살피는 태규.
석대 일행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태 규 : (표정을 바꾸고는) 빠방 태워준다고?
병 태 : 아니... 극장.
문 수 : 그래, 극장 구경. 그치?
만 순 : 정말?
병 태 : 그래. 영화 보러 가자.
어느새 왔는지 영팔이 끼여든다.
영 팔 : 히히... 나두 가자...
병 태 : (할 수 없다는 듯) ... 그래 ...
S#34 극장 입구(오후)
유치해 보이는 듯한 서부의 총잡이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극장 간판.
병태를 비롯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잠시 후 기도가 손짓하자 쏜살같이 들어가는 아이들.
즐겁기만 한 표정이다.
S#35 극장 안
화면에 흐르는 리버티 뉴스 필림.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홍보용 화면들이 흐르고 있다.
신나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들.
문 수 : 야! 신기하다.
태 규 : 너 여기 처음 와 봤냐?
문 수 : 난... 사실 천막극장에서... 만...
태 규 : 야이 촌놈. (자신 있게) 난 두 번째다.
웃는 아이들.
병태, 아이들 눈치를 살피며.
병 태 : 서커스 구경보다 여기가 더 낫지?
만 순 : 그럼 그걸 말이라고 해?
태 규 : 돈도 이게 훨씬 비싸잖아!
이때, 본 영화가 시작한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아이들. 즐거운 탄성을 지른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병태, 흐뭇해한다.
S#36 중국집(저녁)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아이들. 멀뚱멀뚱 눈만 껌뻑인다.
처음 와 본 중국집에 주눅이 든 표정들.
병 태 : 아 참, 너희들 이거 줄까?
가방에서 연필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병태.
태 규 : 이거 잘 안 부러지는 연필이잖아.
만 순 : 정말 가져도 돼?
병 태 : 그럼.
영 팔 : (바닥에 침을 뱉으며) 땅에다 맹세했다.
병 태 : 좋아.
만 순 : 내일 병철이랑 연필 싸움해야지.
아이들의 헤벌어진 얼굴들을 바라보는 병태.
병 태 : 다음엔 지우개 줄게.
이때, 테이블에 짜장면이 놓여진다.
병 태 : 자, 먹자.
병태가 젓가락을 들고 면을 비비자 주뼛거리던 아이들이 비로소 따라한다.
아이들의 얼굴과 손에 얼룩지는 짜장.
병태가 빙그레 웃자, 아이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병 태 : 급장 선거는 언제 하니?
태 규 : 봄에 한번, 왜?
병 태 : ... 그래 ... 우리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두 번 하거든.
만 순 : 그게 무슨 상관이야?
병 태 : 투표로 하니?
태 규 : 응, 그런데 하나마나야. 항상 엄석대 표가 다 나오니까...
잠시 생각하는 병태.
S#37 학교 앞(아침)
등교길의 학교 전경.
주번 완장을 두른 아이들이 지켜 서 있다.
S#38 교실(낮)
미제 연필을 깎고 있는 석대.
그 옆에는 미제 연필 두 자루가 놓여 있다.
중국집에서 병태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그 연필이다.
뒷문으로 들어서던 병태. 그 모습을 보고 굳어진다.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석대의 시선을 의식하고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에 와 앉는 병태.
옆의 영팔이에게.
병 태 : (낮게) 무슨 일 있었니?
연필 뒤의 고무로 코를 후비던-
영 팔 : 난 몰라...
히죽 웃는다.
승찬이 태규, 만순, 문수를 끌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
도살장에 가듯 끌려가는 태규의 표정.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떨떨해진 병태.
복도쪽 창을 통해 병태의 교실 쪽으로 걸어오는
험상궂게 생긴 6학년 두 명의 모습이 보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교실문.
들어와 교탁에 선 두 아이가 교실 안을 휘둘러본다.
석대와 마주치는 두 아이의 시선.
교실을 나가는 석대.
석대가 나가나마자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6학년.
6학년1 : 야 상고머리! 일어서.
쭈뼛거리며 일어나는 병태.
6학년1 : 이리 나와.
병태, 뒤를 돌아보지만 어느새 석대는 없다.
6학년 1 : 너 어제 극장 갔었지?
놀라는 병태.
6학년2 : 쪼그만 놈이...
6학년1 : 넌 이제 퇴학이야!
병태의 뺨을 툭툭 친다.
6학년 : 따라와!
성큼성큼 앞문을 향한다.
곤혹스러운 병태.
6학년 : (버럭) 빨리!
울상이 되어버린 병태. 마지못해 따라 나간다.
S#39 화장실 근처
병태 6학년 1.2에게 얻어맞고 있다.
고통을 못 참는 듯 주저앉는다.
병 태 : 형, 잘못했어요.
때리는 것을 멈추는 6학년 1. 2.
병 태 :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선생님께 말하지 마세요.
6학년1 : 이 자아식!
때리려는 6학년2. 이때 석대가 나타난다.
석 대 : 왜 그래!
6학년1 : 이 조그만 놈이 어제 극장 갔대!
석 대 :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들은 가봐.
6학년 1.2 고개만 끄덕이고 교실 쪽으로 간다.
석 대 ; (점잖게) 조심해. 퇴학 안 당할려면...
병 태 : ...
거의 울상이 되어버린 병태. 고개를 숙인다.
석 대 : 이젠 괜찮으니까. 씻고 자리로 가.
석대, 교실 쪽으로 향해간다.
병태, 석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울상이 되어버린 병태의 얼굴 굳어진다.
S#40 병태의 집 근처 골목길(황혼)
축 쳐진 어깨로 걷고 있는 병태.
그 골목에 높은 축대와 함께 근사한 집이 있는 곳으로 병태. 걸어가면-
창 밖으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어느 여학생의 고운 노래 소리.
시선은 닫힌 창문 쪽에 고정된 채 축대 밑에 서서 유심히 듣는 병태의 얼굴 위로.
병태(소리) : 엄석대는 확실히 놀라운 아이였다. 나에게 내려지는 시련과 박해는
언제나 정당해 보였고, 엄석대는 구원자나 해결자로서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한층 더 치열하게 적의가 타올랐으며
그것으로서 나는 그 뒤의 길고 힘든 싸움을 견뎌 나갔다.
S#41 병태의 집 전경(밤)
조용하고 깊은 밤.
멀리서 들려오는 인경 소리.
병태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잠시 후, 정전-
병태 방에 성냥불로 촛불이 붙여진다.
희미하게 그림자로 보여지는 병태의 모습.
S#42 병태 방(밤)
책상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병태.
터진 입술, 부풀어 오른 눈덩이, 침통한 표정이다.
잠시 후, 문 열고 들어서는 병태모.
병태모 : 아직 안 자고 뭐 하니? (아무 말 없이 공부하는 병태) 그만 자라
(병태, 대답이 없자) 갑자기 너 왜 그러니? 그렇게 극성 안 떨어도
이 촌구석에서 일등 못 하겠니? (이때 병태의 코에서 코피가 조금 흐른다)
(깜짝 놀라며) 코피 나잖아?
병태, 아무렇지 않은 듯 코를 막는다.
S#43 교실 (오전)
일제고사날이다.
공부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아이들.
담담한 병태.
그러나 자신 있는 얼굴로 주위를 쓱-한번 둘러본다.
석대에게 뭐라고 귓속말하고 자기 자리로 가는 박원하.
짧은 순간 병태와 시선이 마주친다.
시험지를 나눠주는 최선생.
-시간 경과.
열심히 답안을 써나가는 병태.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고개를 들고 보면 그 옆에 영팔은 연필을 물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석대의 자신 있는 모습.
한 구석에선 서로 시험지를 훔쳐보다가 머리를 부딪고 무안해져 버리는 종희, 본석.
S#44 병태의 집 앞 (낮)
집 앞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뛰어 올라가는 병태.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대문을 힘차게 연다.
병태 : 엄마! 저 왔어요.
병태 모, 방문을 열고 나온다.
병태모 : 시험은 잘 쳤니?
병태 : 네.
방안으로 들어가는 병태.
S#45 성적 게시판
나오는 병태의 얼굴.
‘전학년 1등 5학년 2반 평균점수 98.1 엄석대’가 크게 들려온다.
병태는 전교 6등 평균 92.4
어두워지는 병태의 얼굴. 힘이 쪽 빠진다.
그 얼굴 위에...
병태(소리) : 마지막으로 은근히 믿었던 공부에서의 패배는 나를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도 나는 알 수 없는 열정에 휩싸여 그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그를 이길 수 있는 길이 어쩌면 있을 것 같았고
그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길게 F-O
BLACK 에 나레이션 계속된다
S#46 교실 앞 화단 (낮)
교실 창문 밖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창 너머 잔뜩 몰려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S#47 교실 (낮)
한군데 몰려서 서로 돌아가며 라이터를 만져보는 아이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병태가 보인다.
임자인 듯한 약해 보이는 한 아이가 따라다니며,
병조 : 그만, 이제 그만 봐!
간신히 자신의 손에 돌아온 라이터를 반짝 켜 보는 병조, 이 때...
석대 : 어디 봐! (병조가 불안스레 내민 라이터를 살핀다) 야, 이거 좋은데...
병조 : (울먹이며) 이건... 울 아버지건데...
석대 : (불을 한번 켜보고) 이거 가져온 거 누가 알아?
병조 : 내 동생 ... (개미 소리로) 돌려줘...
그만 풀이 죽어버리는 병조.
석대, 저 쪽에 있는 병대의 시선을 느끼고는 짧은 순간 미간을 찌푸려 무언가 생각하다가,
석대 : 자, 가져가!
얼굴이 환히 퍼지며 두 손으로 받는 병조.
이 때, 담임 선생님이 큼지막한 부대자루를 들고 들어온다.
최선생 : 각자 자리로 가 (아이들 얼굴이 밝아지며 어수선해진다)
급장, 일번부터 나눠 줘!
석대 : 예
우르르 줄을 서는 아이들
UN 마크가 찍힌 부대자루에서 우유가루를 퍼내 보자기나 도시락 뚜껑에 나눠준다.
S#48 교문 앞 (오후)
삼삼오오 재잘대며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
“위대하신 우리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길이 길일...!”
노래 부르며 고무줄 하는 여자아이들이 보인다.
막 달려나오다 속도를 줄이는 병태,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한쪽으로 뛰어간다.
S#49 한적한 길 (오후)
무언가를 쫓아가던 병태.
움찔하면 앞에 가던 병조가 뒤돌아본다.
잠시 주춤했다 다시 걷는 병조.
좌우를 살피고는 바짝 따라 붙으며,
병태 : 너 라이터 뺏겼지? (멈칫하는 병조) (하지만 못 들은 척 내처 걷는다)
(재촉하며) 그치?
병조 : 빼앗긴 건 아냐
발 앞의 돌을 걷어찬다
병태 : 그래? 난 또 뺏겼으면 찾아줄까 했는데...
우뚝 멈춰서는 병조
병조 : (한 가닥 기대에) 니가 어떻게?
병태 : 뺏겼지?
병조 : 빌려줬는데 돌려주지 않을 거야... (울 것 같다)
병태 : 알았어. 내가 찾아줄게
그 옆을 지나던 우마차가 먼지를 일으킨다
S#50 교무실 앞 (아침)
유리창을 기웃거리는 병태.
난로 주위에 몰려 담소를 나누는 선생들이 보인다.
유독 높은 톤의 여선생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S#51 교무실 안 (아침)
문을 열고 들어서는 병태를 발견하고,
최선생 : 한병태 웬일이지?
꾸벅 절을 하는 병태에게 선생님들의 시선이 몰린다.
여선생 : (끼여들며) 네가 서울서 온 아이구나. 맞지? 한... 뭐라 그랬지?
병태 : 한병탭니다
여선생 : (자연스럽게 웃으며) 좀 빤질빤질하게 생겼구나!
당황하는 병태, 최선생 쪽으로 간다
최선생 : 왜 할 말 있어?
병태 : 네
최선생 : 뭔데?
병태 : (주위를 의식하며) 저...
최선생, 얼른 눈치 채고 구석진 자신의 책상으로 간다.
그 앞에서는 병태, 얼른 말문을 못 연다.
최선생 : 말해봐, 이제...
병태 : 네, 저 엄석대가 아니 급장이 윤병조 라이터를 뺏었어요.
최선생 : 윤병조가 무슨 라이터가 있어.
병태 : 어제 가져 왔어요. 자기 아버지꺼라던데...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는 최선생.
이때 곁에서 서성이던 급사가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최선생 : (다그치듯) 분명해?
병태 : 네, 윤병조는 엄석대가 때릴까봐 말을 못해요. 그래서 제가...
여선생 : (쪼그리고 다가오며) 얘, 엄석대가 어쨌다구?
선뜻 대답을 못하는 담임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는 병태
최선생 : 아녜요, 아무것두... 알았어, 가봐!
꾸벅 인사하고 나가는 병태에게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여선생
S#52 복도
교무실 문을 닫고 복도를 걷는데 종전의 급사 아이가 시선을 외면한 채 마주 지나친다.
별 생각 없이 자기 반을 찾아가는 병태.
S#53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는 병태의 눈에 석대 앞에 서 있는 윤병조가 보인다.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뭔가를 만지작 하고 있다.
석대의 턱짓에 따라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병태.
석대 : 그럼 계속 읽어!
사회책을 띄엄띄엄 읽어 나가는 아이. 모르는 글자를 여기 저기서 알려준다.
낭패감을 느끼는 병태, 자리에 앉으며 영팔을 보지만
실실 웃음을 흘리는 그에게서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것 같다
잠시 후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최선생이 들어온다
최선생 : 그만 앉아! (갑자기 백여 개의 눈동자가 긴장한다) 엄석대 라이타 이리 가져와!
석대 : 네?
최선생 : 윤병조 아버지 것 말이야.
석대 : 아까 돌려 줬는데요.
최선생 : 뭐라고? 윤병조, 정말이야?
윤병조 : (큰 소리로) 네
라이터를 꺼내 보인다
최선생의 시선이 잠시 병태에게 머무르다가,
최선생 : 급장, 그런 왜 가져갔지?
석대 : 집에 아무도 없대서요. 혹시 불장난이라도 할까 봐서...
최선생 : 그래? 알았어.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출석부를 펴들고 출석을 부른다
최선생 : 김강현, 박수구, 이용석...
창백한 얼굴의 병태.
S#54 교무실
문이 열리고 최선생이 들어온다
그 뒤로 죄인처럼 따라오는 병태. 의자에 털썩 앉는다
최선생 : 고자질을 하는 건 나쁜 짓이야, 게다가 넌 거짓말까지 했어.
(성급히 담배를 피워 문다) 솔직히 실망했다. 네가 서울서 오고 공부도
잘 하기에 기대 했었는데... 우리 반은 아직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어.
그때 다리를 절룩이며 호들갑스럽게 들어오는 여선생,
그 뒤에 귀를 잡혀 끌려오는 꼬마 하나.
교감 : 무슨 일이에요?
여선생 : 화장실을 들어서는데 글쎄 창문으로 머리 하나가 쑥 올라오잖아요. 나 참...
꼬마의 머리를 쥐어박는 여선생.
병태를 발견하고,
여선생 : 아니, 얘 또 왔네? 어떻게 됐어요. 선생님.
최선생 :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선생 : 그럴 거예요. 엄석대가 그럴 리가 있나요?
최선생 : 가봐!
돌아설 생각은 않고 울먹한 표정이 되는 병태.
최선생 : 할 말이 있으면 하구...
병태 : 아마... 아침에 돌여줬을 거예요.
최선생 : 그래, 불장난을 할까 봐 그랬다잖아...
병태 : 누군가... 급사가... 알려줬을 거예요
최선생 : 이런,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순간,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진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
병태 : 엄석대가... 없는데서...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등을 돌리고 있던...
여선생 : (돌아서며) 어머 얘 좀 봐, 서울 선생이 애들 상대로 못할 짓을 자주 했나 보군요.
세상에... 순 고자질하는 것만 가르쳤나봐.
최선생 : (긴 한숨과 함께 담배를 비벼 끄며) 알았어! 네 말대로 다시 한 번 해 보지,
돌아가 있어.
그제서야 눈물을 훔치고 돌아서는 병태.
S#55 펌프가
눈물 자국을 지우려 세수를 하는 병태.
S#56 교실
교단에 서서 말을 하고 있는 석대, 병태가 들어오는 걸 보며... 교단을 내려서는 석대.
중간에서 병태와 엇갈린다.
여유 있는 미소로 병태를 훑어보는 석대.
그의 눈을 피한 채 자리에 앉은 병태.
최선생 들어온다.
석대 : 차렷!
최선생 : (손을 내저으며) 아냐, 됐어! 급장은 교무실에 가봐. 선생님이 책상 위에
그리다만 저축 그래프 마저 그려 놓도록, 어제 못한 산수 채점도 마저 하고...
석대 : 네.
석대가 나간 후 각 분달별로 백지를 돌리는
최선생 : 나눠준 종이에 엄석대에 대해 느낀 바를 솔직히 써주기 바란다.
선생님이 듣기로 엄석대가 여러분에게 못된 짓을 간혹 하는 것 같은데...
그런 일을 당한 경우가 있으면 모두 써라. 이건 고자질이나 누굴 흉보는
일이 아닌 우리 반을 위하는 일이다. 이름은 적을 필요도 없고 옆 사람 눈치를
볼 것도 없다, 자, 시작.
열심히 적기 시작하는 병태.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들 연필을 만지작거리거나 멀거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를 눈치 챈...
최선생 : 아, 선생님이 말을 잘못한 것 같은데 이건 엄석대에 관한 것 뿐 아니라 다른
누구든 무엇이든 잘못이 있으면 적어내란 얘기다.
급우의 잘못을 알고도 덮어주는 건 더 나쁜 거야. 어서 쓰도록!
그제서야 하나, 둘 연필을 들어 쓰기 시작하는 아이들.
- 시간 경과 -
최선생 : (시험지 추리며) 그럼 다음 시간은 각자 조용히 자습하고 있도록!
시험지를 추려 들고 나가는 최선생.
아이들 제자리에 앉아 낙서를 하거나 낮은 소리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뒷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석대.
일순 조용해지는 교실.
승찬, 동규를 데리고 다시 나간다.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하는 아이들.
그 곳에서 병태만이 들떠 있다.
병태 : (가방을 뒤적이며 혼잣말처럼) 무슨 공부를 하지, 산수를 할까? 아냐, 재미없어.
국어책 읽어야지
잠시 후 밝혀질 진실에 대한 기대로 안정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이때 들어서는 석대.
굳은 얼굴로 병태를 쏘아보며 병태 곁을 스쳐간다.
- 시간 경과 -
쉬는 시간을 알리는 타종 소리.
석대 나가면 승찬, 동규 따라 나간다.
이상하다는 듯 다른 반 아이들이 복도쪽의 유리창을 기웃거린다.
병태 : (혼잣말처럼) 다음 시간이 뭐더라... (애써 긴장을 감추고 옆 아이에게)
다음시간 음악 맞지?
최태규 : 응
병태 : 당번 풍금 갖고 와야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통 때 같지 않은 병태의 행동을 힐끔거리는 아이들
황영수 : 당번 풍금 가져와!
당번, 두 명이 일어나 나간다.
병태 : 오늘 어디 할 차례더라... 맞아 고향 생각 할 차례지.
병태 혼자 흥얼거리는 데 딱, 앞문이 열리면서 들어서는 석대.
자신 있는 미소를 보내며 교실 전체를 둘러보다가 병태와 눈이 마주친다.
갑자기 불안해지는 병태.
비로소 교실의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풀린다.
뒤이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의 담임이 들어오고
풍금을 낑낑대며 들고 오는 당번이 뒤따른다
- 시간 경과 -
음악 시간이 진행 중이다.
풍금 앞에 최선생에 맞춰 입을 크게 벌려 노래하는 아이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잔뜩 긴장된 병태의 귀엔 노랫소리가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순간 돌멩이가 날아와 병태의 머리를 친다.
병태 : 아야!
비로소 들여오는 현실음.
뒤를 돌아보면 크게 입을 벌려 노래하는 아이들의 부릅뜬 눈만 보인다.
어디선가...
아이소리 : 개새끼, 순 고자질장이!
S#57 변소
축 쳐진 어깨로 변소에 들어서는 병태.
변기 앞에서 바지를 내리려는데...
보면 바로 옆에 와 서는 석대.
석대의 굵고 힘찬 오줌소리.
압도당한 병태.
아무리 기다려도 오줌이 나오지 않는다.
S#58 숙직실 (황혼)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황혼의 붉은 빛이 최선생의 담배 연기를 비추고 있다.
몇 덩이로 분류된 고발장을 앞에 놓고 망연히 앉아 있는 병태.
이윽도 담배를 끄고 몸을 돌리는 최선생이 얼굴에 황혼 한 자락이 닿는다.
최선생 : 도대체 석대가 뭘 어쨌다는 거야? 공부 잘 하고 통솔력 좋고...
너도 생각을 좀 해 보라고. 그만한 급장이 어딨어?
탁자 위에 쌓인 아이들의 백지소원 서류를 거칠게 병태 쪽으로 밀친다
최선생 : 이걸 봐! 도대체 석대가 어쨌다는 건 너 하나잖아!
그런데, 보라구. 네가 나 쁘다는 걸 좀 봐. 이게 어디 한두 장이야?
축 늘어진 병태의 어깨.
숙여진 병태의 얼굴에서 떨어진 눈물이 아이들의 백지소원 서류 위에 어린다.
최선생 : 그래, 짐작은 가, 서울하고는 다르겠지. 너하고 잘 맞지도 않고,
그렇지만 그럴수록 네가 좀 더 잘해야지, 안 그래?
S#59 운동장 (황혼)
이미 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해진 텅 빈 운동장을 병태 혼자 힘없이 걸어간다
병태(소리) : 만약 싸움이란 게 공격정신이나 적극적인 방어개념만으로 되어 있다면
석대와의 싸움은 그 날로 끝이었다. 그러나 불복종이나 비타협도
싸움의 형태로 볼 수 있다면 내 외롭고 고단한 싸움은 그 뒤로도 얼마간
더 이어진다. 엄석대의 보이지 않는 손아래서 비겁하거나 혹은 어리석은
다수에 의해 내게 가해진 폭력은 그 전보다 몇 갑절이나 더 집요하고
엄중했으며... 더 괴롭고... 고단한 것이었다
S#60 읍내거래 (황혼)
하교길의 읍내 거리.
병태 쓸쓸히 걷고 있다.
여기에 전 씬의 나레이션 들린다.
S#61 뒷동산 (낮)
나무 위에 망보는 아이.
학교 쪽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의 환상이 일자 아래서 쳐다본다.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후다닥 맞붙어 싸우는 병태와 작은 아이.
밀고 밀리던 끝에 병태가 태규를 깔고 앉는다.
이 때 슬쩍 팔을 뻗어 병태에게 힘을 가하는 승찬,
그 틈을 이용해 병태를 깔고 앉는 작은 아이.
돌연 병태의 얼굴에 덮이는 신발주머니.
계속 날아드는 손과 발, 또 다시 손이 다가와 버둥대는 병태의 다리를 잡는다.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석대의 눈치를 살피며 빙긋 웃는 승찬.
이미 싸움은 작은 아이의 승리로 결정된다.
승찬 : 그만, 그만
씩씩거리는 병태.
의기양양한 아이의 얼굴에는 승자의 환희가 퍼져 있다.
아이들 몰려 내려가며 작은 아이의 등을 쳐준다.
승찬 : 좀 봐 주지 그랬냐?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병태.
뛰어내리는 아이들을 보며 이를 악문다.
S#62 교실 (낮)
병태, 문을 열고 들어선다.
조용히 필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 일제히 고개를 든다.
칠판에 쓰던 글씨를 멈추는...
최선생 : 뭐냐, 점심시간 끝난 게 언젠데 이제 오지? (비척비척 다가온 병태, 말이 없다)
손바닥 펴! (세 차례 호되게 때린 후...) 저기 무릎 꿇어!
담임이 가리키는 곳에 이미 영팔이가 손들고 앉아 있다.
다가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 병태.
영팔, 병태를 보며 반가운 듯 히죽 웃는다.
고개를 푹 숙이며 손을 드는 병태.
낄낄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저주스럽다.
S#63 화장실 (오후)
커다란 물 양동이를 들고 화장실 근처로 다가오는 병태.
교사용 화장실이다.
청소를 시작하려는데- 누군가 저쪽 화장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스쳐가는 그림자.
병태의 고된 청소는 계속되는데, 돌연-
여자(소리) : 어미! 누구야!
병태, 누군가 돌아서 달아나는 먼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가 다가가려다 그만 두고
다시 화장실 쪽으로 돌아서는데,
앞으로 막아서는-
여선생 : (불쑥) 잡았다. 너지?
병태 : ...에? ...뭘요
여선생 : (병태 귀를 잡고서) 너 이놈 혼좀 나봐라!
끌고 가는 여선생.
S#64 교무실(오후)
문이 쿵 열리면 병태의 귀를 잡고 돌아오는 이선생.
이선생 : (씩씩거리며) 저기 끓어 않아!
병태 : (억울한 듯) 선생님 전 아닌데요.
이때 날아오는 이선생님 손, 계속해서 따귀를 몇 대 올리고는-
여선생 : 끓어 않아서 손들어! ...엉큼한 놈 같으니...
이때 다가오는 교감선생.
계속되는 여선생의-
여선생 : 못된 놈이 하는 짓은 다하고 이제 이 짓만 남았지?
병태 : (글썽이며) 전 아니에요. 전...
교감 :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한병태!
병태 : ...
여선생 : 글쎄... 화장실에 가는데... 저 녀석이 그 밑 틈으로...
혀를 차는 교감. 병태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교감 : 요즘엔 니가 나쁜 짓은 죄다 일등이구나...에이...쯔쯔...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과 소사의 차가운 눈길이 병태에게 닿는다.
거꾸로 별을 서는 병태, 그의 시선으로- 운동장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이 보여진다.
퇴근하는 최선생과 여선생도 보인다.
S#65 교실(늦은 오후)
청소를 끝낸 서넛의 아이들이 나간다.
그들과 교차하여 들어오는 병태. 가방을 챙겨들고 나가려다 주위를 살핀다.
칠판의 분필을 들고 와 석대의 책상에 “김인성”이라고 쓰는 병태.
고소한 미소를 짓는다.
문을 닫고 교실을 나서는 병태.
잠시 후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태 뛰어 들어와 손바닥으로 급히 글씨를 지운다.
S#66 (F.I)운동장 (오후)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인상적이다.
운동장 한 구석에 멍하니 않아 있는 병태.
저쪽에서 말타기하며 즐겁게 놀고 있는 반 아이들이 보인다.
이를 넋 놓고 바라보는 병태의 얼굴에서-
그 아이들과 아울러 말타기를 하는 병태.
즐겁게 괴성을 지르며 말에 오른다.
허공을 폰이 솟는 병태
허나 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 옆을 보면 아까 아이들이 웃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육체적 고통과 창피함으로 더욱 고통스러워하는 병태의 표정.
병태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귀에서 귀로 무언가 속삭이다가 병태를 보곤
다시 조롱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때...
옆에서 병태 어깨를 툭 치는 손.
영팔이다..
환영에서 깨어나는 병태.
아이들은 저만치서 계속 즐겁게 놀고 있자.
병태의 소외와 대비를 이루듯-
영팔 : (히죽 웃으며) 우리 반 모두 오늘 저녁에 서커스 구경간대...
병태 : ...?
영팔 : 가자.
운동장에 반 아이들 즐거운 표정으로 몰려 나간다.
병태쪽을 지나치는 석대 일행들
병태, 서커스 구경을 하고 싶은 아이의 본심을 감출 수 없는 듯하다.
S#67 서커스장 밖(저녁)
개구멍이 잇는 곳에 한쪽 구석으로 아이들 몰려있다.
병태와 영팔, 아이들 뒤편에서 서성이고 있다.
석대, 서커스단 입구 쪽에서 기도처럼 보이는 자기 또래의 아이와 이야기 하고 있다.
잠시 후,
석대, 아이들에게 다가와서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아이들, 하나씩 개구멍으로 들어간다.
병태쪽을 흘낏 쳐다보는 석대, 아이들이 다 들어가고 나자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영팔, 어느 틈엔가 개구멍으로 들어가고 있다.
머뭇거리는 병태, 결심한 듯 개구멍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병태, 고개를 숙이는 순간, 큼직한 손이 병태의 어깨를 잡는다.
놀라는 병태..
기도 : 이자식.
병태의 멱살을 잡는다.
병태, 발이 거의 땅에 안닿을 지경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병태.
병태 : (시치미를 뚝 떼며) 우리반 아이들과 같이...
기도 : 이거 순 도둑놈 아니야?
기도, 병태를 내팽개친다.
나가떨어지는 병태.
S#68 병태의 집 근처 골목 (저녁)
높은 축대와 근사한 집이 있는 골목길을 걸어가는 병태.
피아노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던 바로 그 집이다.
창문에서 들려오는 고운 노랫소리.
병태, 바라본다.
이때, 여학생 창문을 열고 폼을 잡으며 노래한다.
그 드러난 모습에 빠져드는 병태.
여학생, 병태를 발견한다.
다시 닫히는 창문.
병태 아쉽기만 하다
순간, 창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물세례가 내려진다.
일그러지는 병태의 얼굴.
S#69 병태의 집 (밤)
대문을 열고 들어선 병태, 부엌을 향한다.
병태모 : (돌아보며) 왜 그러니 또?
병태 : 서울로 다시 가.
병태모 : 얘가... 그렇게 얘기를 해도 몰라.
병태 : 몰라, 다시 가.
병태모 : 도대체 왜 그래! 요즘 성적도 말이 아니구...
씩씩대며 엄마를 바라보는 병태.
소리나게 문을 열고 발을 땅땅 구르며 방으로 들어간다.
병태모 : 애 망치겠네, 정말...
방안에서 터져 나오는 준태의 울음소리.
병태모 : (뛰쳐나가며) 왜 또 동생은 때리니!
병태모 방으로 들어가면, 병태 밖으로 뛰어 나간다.
병태모 : (등에다 대고) 어디 가니 병태야!
울고 있던 준태, 나와서 엄마에게 안긴다.
S#70 등교길 (아침)
멀리 학교가 보인다.
등교하는 아이들.
그 속에 병태가 보인다.
넋 나간 듯한 병태. 걸음을 멈춘다.
생각에 잠기는 병태.
발걸음을 돌려 반대쪽으로 간다.
S#71 산등성 외딴 곳 (낮)
기차길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산등성.
혼자 앉아 있는 병태.
한겨울 추위가 느껴진다.
S#72 구릉 (낮)
밑으로 학교 교사와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홀로 앉아 있는 병태
찬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밥을 입안 가득히 넣은 채 학교 쪽을 쳐다본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타종소리와 함께 아이들 몰려나온다.
씹는 것을 멈추는 병태.
이내 못 먹겠다는 듯 도시락 뚜껑을 덮는다.
S#73 철뚝길 (오후)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며 긴 화물차가 지나간다.
끝없이 뻗어나간 평행선.
병태, 좀 떨어진 언덕에 앉아 그 끝을 헤아리고 있다.
아이답지 않은 고뇌의 표정이다.
눈에 들어오는 서울행 이정표 “서울 344km"
이때, 저쪽 철교 아래쪽에서 다가오는 한 무리.
자세히 보면 석대 일행과 중학생 패들이다.
얼른 몸을 숨기는 병태.
철로 쪽에 와서는 석대는 한 쪽 철로에 눕는다.
그를 보고는 다른 편 철로에 눕는 중학생.
병태, 의아한 표정으로 숨어 보고 있다.
잠시 후, 기적소리가 들리고 저쪽에서 열차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꼼짝 않고 누워있는 두 아이.
병태, 긴장하기 시작한다.
열차 점점 다가오고-
두 아이는 미동치 않고-
점점 긴장이 고조되다가, 결국 중학생 철도 밖으로 벗어난다.
거의 눈앞에 다가오는 열차.
석대, 그때서야 몸을 날린다.
손에 땀을 쥐는 병태.
중학생 패거리들이 석대 앞에 무릎을 꿇는다.
병태, 석대의 엄청난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S#74 병태의 집 밖 거리 (아침)
두부 장사의 작은 종소리가 들려오는 아침 거리
S#75 병태의 방 (아침)
꿈을 꾸듯 헛소리를 하고 있는 병태.
준태, 병태를 흔들어 깨운다.
준태 : (울먹이며) 형아... 새가 죽었어!
결국 울어버리는 준태.
병태, 벌떡 일어나 새장 앞으로 가면, 앵무새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멍하니 바라보는 병태.
새장을 들고 나간다.
S#76 병태 집 마당 (아침)
맨발로 마당에 우뚝 서 있는 병태.
살아있는 한 마리 새를 넋을 잃고 날려보낸다.
차갑게 식은 새의 한기를 느끼는 병태.
눈물도 나지 않는다.
S#77 등교길 (아침)
시원하게 쳐올린 하얀 머리와 책보, 그리고 검은 고무신.
병태의 변모한 모습이 보여진다.
지나는 여느 아이들과 동화된 모습.
S#78 교실 (낮)
점심시간이다.
늘 그래왔듯이 석대의 책상 앞에 놓이는 음식들.
석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병태, 뒤에 놓여있는 물주전자를 몇 번 쳐다본다.
그의 의식으로 물 컵을 들고 가 석대 앞에 놓은 병태.
그때 한 아이가 물주전자 앞에 와서는 컵에 물을 따라 석대 쪽으로 간다.
그때서야 깨어나 도시락을 꺼내는 병태.
뚜껑을 열자 악-! 소스라친다.
빈 도시락 속에서 꿈틀대는 뱀 한 마리.
옆에 있던 영팔이가 얼른 뚜껑을 덮는다.
사색이 된 병태의 얼굴.
S#79 운동장
조회시간이다.
정렬해 있는 아이들
교장 : 표창장. 5학년 2반 엄석대. 위 어린이는 성적이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고,
뛰어난 통솔력으로 맡은 바 급장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타에 모범이
되었으므로 이에 상장을 수여함. 1959년 12월 1일.
- 강원도 교육위원회 장학사 이승천 대독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인다.
교장으로부터 상장을 받는 석대.
열 속에 끼어 있는 병태. 힘없이 박수를 친다.
모든 의욕이 사라진 듯한 얼굴.
병태(소리) : 무슨 한처럼 나를 지탱시켜 주던 믿음도 완전히 무디어졌고, 저항의 의사를
모두 버린 나는 하루하루, 반을 겉돌며 기회를 노렸지만... 괴롭게도 그 기회
조차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롭고 고단한 싸움도 끝날 날이 왔다
S#80 복도 (오후)
교무실을 나오는 선생님들을 보고 떠들고 있던 아이들이
재빨리 각자의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여선생님 : 이번에 임명된 장학관은 이기붕씨하고 어떻게 된다면서요?
최선생 : 그래요? 큰 빽 찼구만!
1반선생님 : 청소 잘 해야겠네! 찍히지 않을려면.
최선생 : 그 양반 어디 학교보고 온답니까? 딴 생각이 있어서 찾아다니는 거지...
여선생님 : 그냥 대충 하세요. 최선생님 수고하세요
여자 학급인 3반 교실로 들어간다.
이어 2반 교실로 들어가는 담임 선생님.
1반선생님 : 아차!
뭘 잊어먹은 듯 쿵쾅거리며 되돌아간다.
S#81 교실 (오후)
분달별 또는 개인별 청소량을 칠판에 가득 적고 있는 석대,
선생님이 들어오자 얼른 자기 자리로 가서는-
석대 : 차렷! 경례!
만족스러운 웃음을 석대에게 보이며-
최선생 : 역시 우리반 급장이 최고다 (칠판을 훑어본 후 - ) 됐어,
이대로 한 후 급장에게 검사 맡도록, 자 시작해!
자기 걸상을 책상에 올리는 아이들 틈으로 석대에게 다가오는 선생님.
병태 바로 뒤에서.
최선생 : 나 먼저 들어갈 테니까 마지막까지 보고 가라.
석대의 등을 두드리고 뒷문으로 나간다
S#82 화단 (오후)
삽을 들고 흙을 고르며 돌멩이를 치우는 등 부산스레 일하는 아이들에게
공을 들고 다가오는 -
석대 : 야! 1반하고 축구시합 하기로 했다
아이들 : 걔들이 또 한 대?
석대 : 그래, 약이 바작 올라 있더라, 황영수 너 애들한테 돌 걷어!
영수 : 돈내기로 한 대?
석대 : 그래, 잘 해야 돼, 자, 빨리 끝내
돌아서려다 위를 올려다보자
창틀에 걸터앉아 그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던 병태와 시선이 마주친다.
무표정이 바라보는 석대에게 희미한 아부의 미소를 던지는 병태.
S#83 교실 (오후)
자신의 미소를 무시한 채 공을 차며 가는 석대를 보고도
오히려 더 열심히 유리창을 닦는 병태. 물걸레로 먼지와 때를 말끔히 씻어낸다.
이때 창가로 다가오는 석대.
밝아지는 병태의 얼굴.
석대, 병태를 무시하고 교실 청소중인 강동규를 불러내 무어라 얘기를 한 후 휭 가버린다.
강동규 : 야 빨리 빨리 해. 빨리 교실 청소는 이미 합격했어.
아이들 : 와!
청소하는 움직임이 빨라진다.
상관 않고 열심히 유리를 닦는 병태.
책상의 줄을 맞춘 뒤 유리창에 매달린 아이들의 부러움을 뒤로하고 몰려 나가는 아이들.
S#84 운동장 (오후)
뛰어 나오는 아이들에게 -
석대 : 2반 여기 집합!
우르르 열을 짓는 아이들.
석대 : 우선 골대를 만들어!
열심히 눈을 뭉치는 아이들.
1반도 마찬가지다.
공을 차면서 싱글거리며 바라보고 있는 석대.
S#85 교실 (오후)
창에 붙어 있던 아이들이 내려와 구슬치기를 하고 있다.
병태만이 혼자 남아 자신이 맡은 유리창을 정성을 다해 닦고 있다.
입김을 호호 불어 하얀 습자지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애써서 닦는다.
S#86 운동장 (오후)
커다란 눈사람으로 골문을 만든 채 땀을 흘리며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
임만순이 끼어들며-
만순 : 급장, 유리창 청소 다했어!
대꾸도 없이 공을 받아 적진으로 몰고 가는 석대.
만순 : (크게) 급장, 청소 다 했어!
석대 : 짜아식! (뛰어와 가볍게 군밤을 준다) 가! 뛰어가!
만순을 앞세우고 뛰는 석대.
S#87 교실
뛰어 들어오는 석대.
구슬치기를 하고 있던 아이들이 각자 자기가 맡았던 창틀 앞에 숨을 죽이고 선다.
하나씩 검사해 내가는 -
석대 : 불합격!
히 웃는 영팔, 덩달아 병태도 어쩐지 불안해진다.
그 앞에 와서,
석대 : 이것도 불합격, 여기 얼룩이 있어!
냉담한 시선으로 병태를 본다.
병태 아무 말도 없자 합격된 아이들과 함께 교실을 나가는 석대.
얼른 유리창을 살피니 정말로 물이 흐른 자욱이 채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다시 창틀에 올라 유리를 닦는 병태.
교실바닥에서 구슬을 줍는 영팔.
구슬을 눈으로 가져가 하늘을 본다.
S#88 운동장
한창 공을 몰고 막아서는 아이들을 젖히며 적진으로 들어가는 석대.
병태 : 급장!
병태의 목소리인 것을 알자 순순히 공을 다른 아이에게 넘기고 빠져 나온다.
병태 : (자신 있게) 검사해 줘!
무표정한 얼굴로 병태를 흘끗 보곤 두말 않고 앞서 걷는다
그 뒤를 쫓는 병태와 영팔
S#89 교실
빈 교실에 들어와 영팔이의 유리창에 서는 석대.
자신의 창틀 앞에 가 서는 영팔과 병태.
석대 : 합격!
씩 웃는 영팔, 병태를 보며 억지 미소를 짓고 있다.
유리를 자세히 살피던-
석대 : 안 되겠어. 이 구석 먼지를 다시 닦아!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참는 병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며 -
병태 : 얘께 더 더러운데?
석대 : 얘는 얘고, 너는 너야. 어쨌든 다시 닦아. 넌 가, 김영팔!
얼떨결에 영팔이까지 석대를 따라 나간다.
텅 빈 교실에 혼자 남게 된 병태.
교단 위로 가지런히 모아둔 축구하는 아이들의 가방과 책보 등을 발길로 찬다.
S#90 운동장
석대 편의 승리로 축구가 끝난 듯 상대방 아이가 황영수에게 돈을 건넨다.
받은 돈을 석대에게 흔들어 보이는 영수.
어린이들의 함성이 요란하다.
석대 : 가자!
아이들을 몰고 교문 밖으로 뛰어간다.
S#91 교실
우두커니 창틀 위에 앉아 교문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병태.
깊은 무력감으로 인해 허탈한 표정이다.
먼 산에 눈을 준 채 맨손으로 유리창을 한 번 쓱 문질러 보는 병태.
소사 : (지나가며) 넌 오늘도 늦게까지 청소냐? 자식 하구는...
S#92 인서트 (황혼)
바람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가지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다.
S#93 교실
창을 열어놓은 채로 자기 책상 위에 고개를 묻은 채 엎드려 있는 병태.
잠시 후 복도 저 밑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그대로 있는 병태.
석대와 함께 들어온 아이들이 엎드려 있는 병태를 발견하곤 석대의 눈치를 살핀다.
석대 : (나직이) 먼저들 가!
조심스런 동작으로 가방과 책보를 들고 나가는 아이들.
영수도 있다.
바람이 들이치는 창을 막고 병태쪽을 살피는 석대.
병태의 등이 흔들린다.
석대 : 한병태!
천천히 고개를 드는 병태, 석대와의 시선이 교환된다.
이내 눈가에 눈물이 질펀해진다.
석대 : 합격, 이제 돌아가도 좋아!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며 밖으로 나가는 석대.
허탈한 표정으로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는 병태. 천천히 일어선다.
S#94 복도
힘없이 병태가 걸어나오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석대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다.
샤프펜슬을 꺼내는 병태.
석대에게 다가가서 -
병태 : 급장, 이거 가져!
석대 : (놀란 척 하며) 아냐, 아냐!
병태가 손을 거둘 생각을 안 하자, 마지못한 척 받는다.
같이 걸어가는 병태와 석대.
S#95 교사 입구
교사 입구를 나서는 두 사람.
해는 붉게 물들어 가고-
적막하기 짝이 없는 운동장을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다.
그 위에-
병태(소리) : 짐작컨대, 그는 내 눈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음에 틀림이 없었다.
거기서 결코 뒤집힐 리 없는 자신의 승리를 확인하고,
나를 그 외롭고 고단한 싸움에서 풀어 주었다.
S#96 읍내거리 (황혼)
두 갈래 골목길이다.
들어서는 병태와 석대.
갈라지는 지점에서-
병태 : 급장, 난 이쪽으로 ...
석대 : 그래, 난 이쪽으로 갈게.
병태 : ... 잘가, ... 급장...
사라지는 석대.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준다.
- 여기에 전 씬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소리 : 어이없이 끝난 싸움이었지만 굴종의 열매는 달랐다.
S#97 교사 뒷편 (낮)
엉클어져 치고 받으며 싸우는 병태와 승찬.
병태의 주먹이 승찬의 코피를 터뜨린다.
울음을 터뜨리는 승찬.
그 옆에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든 태규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서 있다.
석대 : (아이들을 둘러보며) 또 누가 덤빌 거야?
아무 대답이 없는 아이들
석대 : 좋아, 그럼 이제부터는 한병태는 강동규 다음이야, 모두 알았지?
모든 아이들이 긍정적이 대답을 듣고 병태를 돌아보면,
두 주먹을 풀지 않은 채 의기양양하게 서 있다.
S#98 몽타쥬
(1) 성적 게시판의 병태의 석차가 44등에서부터 서서히 오른다
O.L 되어 흐르는 성적 게시판에 다음의 그림들이 더블 익스포우즈 된다
(2) 교실 _ 병태에게 박수를 치는 최선생과 아이들.
(3) 운동장 _ 즐겁게 석대 패들과 섞여 말타기 하는 병태.
한 구설에 외롭게 앉아 있는 영팔도 보인다.
(4) 안방 - 병태의 성적에 흐뭇해지는 부모.
(5) 교실 - 석대와 같이 도시락을 나눠먹는 병태.
(6) 운동장 - 석대의 패스를 받아 공을 몰고 가는 병태 - 슈팅
S#99 교실 (낮)
미술시간 -
칠판에는 “용감한 국군장병 그리기”라고 씌여 있다.
육군, 해군, 공군의 모습을 적절히 배치해서 능숙하게 그려 나가는 병태.
다 완성하고 석대를 본다.
아직까지도 연필로 스케치만 하고 있는 석대.
병태 : (다가가며) 급장!
석대 : ...?
병태 : (조심스럽게) 내가 도와줘도 될까?
석대 : 괜찮아.
병태 : 다른 식으로 하나 그려줄게.
병태, 석대의 도화지를 가져가려는데-
석대 : 그럼 네가 그린 걸 날 주구 넌 빨리 다시 그려.
병태 : (순순히) 그러지 뭐.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다 그린 도화지를 가져간 병태.
이때 책상 서랍에서 탄피가 글러 떨어진다.
얼른 집는 손, 영팔이다.
병태, 영팔과 시선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는다.
힘없이 탄피를 줍는 영팔.
S#100 읍내거리 (오후)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책보를 등에 메고 화난 표정으로 걸어오는 영팔.
저만치 뒤에 빠른 걸음으로 쫓아오는-
병태 : 영팔아! 영팔아!
곁에 다가와 걸으며 -
병태 : 왜 그래? 내가 어쨌다구 그래?
말 없이 앞만 보고 걷는 영팔.
은근히 화가 나는 듯 멈춰서는 병태.
큰 소리로-
병태 : 관둬, 너랑 같이 안가면 집에 못 갈 줄 알아?
휙 돌아보는 영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영팔 : 가, 너랑 안 놀아!
돌아서서 걸어간다.
영팔이의 말에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듯
멀어져 가는 영팔이의 뒷모습만을 막연히 바라보고 섰는 병태.
병태(소리) :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은 석대가 내게서 빼앗아갔던 것들이고,
나는 내 것을 되찾은 것뿐이었으나, 한번 굴절을 겪은 내 의식에는 모든 것이
하나같이 크나 큰 석대의 은총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왕국에 온전히
길들여지고 그 질서에 비판 없이 안주하게 됐을 무렵
나는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S#101 교실 (오전)
시험지 상단에 쓰인 “황영수”란 이름을 지우고 “엄석대”라 써넣는 영수.
고개를 들다가 가방 너머 옆자리의 병태와 시선이 마주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행위를 주시하는 병태의 시선에 순간 움찍하다
모른 척 시험지를 들고 나간다.
“학년말 시험”이란 글씨가 쓰여져 있는 칠판 앞에 여선생이 따분하다는 듯이 서 있다.
영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병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표정이다.
S#102 화장실 안
병태 서둘러 나오면 저만치 걸어가는 황영수가 보인다.
병태 : 황영수!
돌아보는 영수의 곁으로 뛰어가 뚫어지게 바라본다.
영수 : (짜증스레) 왜?
병태 : 엄석대가 부탁했지?
영수 : (언뜻, 병태의 눈치를 살핀 후) 응, 산수는 항상 내가 해,
다음 시간 사회는 아마 문셀걸? ... 왜?
병태 : 아... 아니야...
영수 : (눈치를 보고는) 너도 미술시간에 석대의 그림을 그려주었잖아. 그것도 시험을
대신 쳐주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병태 : 응, 응. 그래
영수 : 어? 그럼 너 몰랐어?
병태 : ... 아냐 ... 알았어
영수 : 왜 물어 근데?
병태 : 그냥, 한번 물어봤어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병태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영수.
S#103 교실
뒷벽에 붙은 그림을 살피는 병태.
자신의 이름이 붙은 것과 엄석대의 이름이 붙은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황급히 자리로 가 앉는 병태.
복도측 창가에 앉아 있는 석대.
창을 열면 영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상체를 창밖으로 기울이는 석대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건다.
이어 감독관이 바뀐 듯 시험지 뭉치를 들고 들어오는 담임 선생님.
괜히 좋아하는 아이들.
병태 언뜻 김문세를 보면 태연히 앉아 있는 김문세.
최선생 : 사회야, 공부 많이 했지?
시험지를 돌리는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병태
- 시간 경과 -
거의 백지상태의 시험지를 앞에 놓고 생각에 골똘한 병태.
이미 끝난 석대와의 싸움을 뒤집어 보고픈 강한 유혹에 휩싸인다.
그 병태의 의식 속에 굴종 이후 퍼부어졌던 석대의 은혜들이 인터 컷되어 들어온다.
그 유혹을 떨쳐 내고자 강하게 머리를 흔들며 진통을 겪는 병태,
다시금 과거 석대와의 길고도 외로웠던 싸움.
자신에게 탄피를 건네주는 영팔 등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이때, 시험 종료를 알리는 타종소리.
병태 과거의 의식에서 깨어난다.
시험지를 추슬러 나가는 최선생.
그 뒤를 병태가 서둘러 쫓아 나간다.
그런 병태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석대.
S#104 복도
뒷문을 나서는 병태.
저만치서 가고 있던 최선생이 보인다.
병태의 표정에 어리는 각오.
S#105 병태의 환영
병태 : 선생님
돌아보는 최선생.
최선생 : ...?
병태 : 저...
최선생 : (재촉하는 눈길을 보낸다) ... 왜?
병태 : (빠르게) 엄석대가 시험지를 바꿔치기 했습니다. 엄석대의 명령에 따라 황영수,
김문세, 박원하가 매 시험마다 자기 이름을 지우고 엄석대의 이름을 써넣고 있어요
최선생 : (놀라며) 그게... 정말이냐?
병태 : 네, 확실합니다.
곤혹스러운 표정의 최선생
순간, 갑작스런-
석대(소리) : 한병태!
S106 복도 (다시 현실)
흠칫 굳어지는 병태.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새 나타난 엄석대가 씩 - 웃으며 다가온다.
이미, 저쪽 모퉁이로 사라지고 있는 최선생.
애써 당황을 감추고 억지 웃음을 짓는 병태.
석대 : 뭐하고 있어?
병태 : 응? 아무것도 ...
석대 : 오늘 일제고사도 끝났는데 우리 어디 놀러 가는 게 어때?
병태 : (펄쩍 놀라며) 추운데 어딜?
석대 : 미포리 어때? 거기 춥지 않게 놀 수 있는 근사한 곳이 있지.
병태 : (머뭇거린다) ...
석대 : 어때?
병태 : 그러지 뭐.
석대 : (뒤에 둘러선 아이들을 보며) 모두 같이 가자구.
신나하는 아이들 떠들썩하다.
얼떨떨한 표정의 병태.
S#107 교사 뒤편 (오후)
한쪽 구석에 엄석대를 비롯하여 강동규, 김문세, 황영수, 양승찬, 정문수 등이 보인다.
석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한다.
끄덕이는 아이들.
S#108 읍내 거리 (오후)
거리로 접어들고 있는 석대와 병태.
그 뒤로 아이들 일행이 보인다.
담벼락에는 대통령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석대, 멈추어 서서는-
석대 : 알았지, 그럼 거기서 집합하는 거다!
아이들 : 그래.
석대 : 자, 출발.
아이들 흩어져 간다.
혼자 남은 병태, 석대의 눈치를 살피면
석대 : 한병태, 넌 나랑 같이 가!
천천히 걸어간다.
S#109 미포리 가는 길 (황혼)
걷고 있는 석대와 병태.
석대 : 서울은 ... 어떠냐?
병태 :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응?
석대 : 서울 말야, 어떠냐구?
병태 : 뭐가?
석대 : 무척 크겠지? cken 많구... 사람도 많구 뭐든지 다 많겠지?
병태 : 응... 여기 열배 아니 스무배도 넘을 걸.
석대 : 창신동 알어?
병태 : 응, 근데 왜?
석대 : 아, 아냐, 관둬.
석대의 표정에서 어떤 쓸쓸함을 느끼는 병태.
S#110 공장터 (저녁)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는 아이들.
승찬, 덫에 걸린 토끼 두 마리를 들고 들어온다.
뒤이어 석대와 병태가 들어온다.
사열하듯 아이들을 지나 앉는 석대.
석대, 승찬이 함께 가져온 예리한 꼬챙이로 아직 살아있는 토끼의 목을 관통한다.
고개 돌리는 병태의 얼굴에 튀는 토끼의 선혈.
아이들은 신나는 듯 박수를 친다.
이때 -
강동규와 함께 들어서는 두 명의 여학생.
- 시간 경과 -
제사 때 남은 술인지 댓병짜리 정종병으로 제기에다 술을 따라주는 석대.
병태와 아이들, 처음 먹어보는 제대로 된 술이라서 그런지 긴장된 표정이다.
건배!를 위치며 잔을 높이 드는 석대.
여학생들도 묘한 표정들이다.
얼굴 잔뜩 찌푸리면서도 마시는 아이들.
병태도 눈치를 보며 겨우 마신다.
결국 토한다.
서로 보며 웃는 아이들.
석대의 지시로 일어나 노래하는 여학생.
“무스크 달라 머나 먼 길 찾아갔더니 세상에서 제일 가는 아가씨도 없더라...?”
석대, 담배를 꺼내 물고 자연스레 불을 당긴다.
- 시간 경과 -
박수를 치며 노래하는 아이들.
한 아이가 일어서서 걸쭉한 남도창을 불러 젖힌다.
석대의 지시로 여학생 하나가 병태 옆에 앉는다.
병태가 축대가 있는 집 창문에서 본 여학생이다.
놀라는 병태.
신이 오르자 고추를 늘어뜨려 바이올린을 켜듯 재주를 부리는 아이.
어디서 나왔는지 하모니카와 반구가 들린다.
배를 들어내 놓고 북을 치는 아이.
왁자하게 터지는 웃음.
옆에 있는 병태에게 무언가 말하는 석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병태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간다.
그런 속에 소리를 내어 타 들어가는 모닥불.
그 불길 속에 던져지는 1달러 은화-
병태(소리) : 그 날 나를 대하는 석대의 태도는 보통 때와 사뭇 달랐으며,
나는 그가 베풀어 준 권력의 단맛에 흠뻑 취했다. 나는 진정으로 그의 왕국과
질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그 안에서 확보된 나의 남다른 특권 또한
그러하기를 믿고 또 바랬다. 그 해 겨울은 그렇게 흘렀다.
S#111 상가집 빈소 (초저녁)
최선생의 영정.
병태, 향을 피우고 정중히 절을 한다.
상주들의 곡소리.
무언가 묘한 느낌을 갖는 병태.
상주들과 맞절한다.
절을 마친 병태, 상주 앞에 앉는다.
병태, 별 할 말이 없다.
어색한 병태, 가벼운 목례만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S#112 상가집 마당 (초저녁)
왁자지껄 술을 마시는 사람들.
화투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몇 사람들 음식을 들고 분주히 뛰어 다닌다.
병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좌우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
영팔, 술병을 들고나오며 병태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영팔 : 저 혹시 한...
병태 : 네?
영팔 : 한... 병... 한병태 아니세요?
병태 : 그런데 누구시...
영팔 : 나야, 영팔이, 기억하겠어?
병태 : 응 그래, 영팔이.
서먹했던 분위기 금새 풀린다.
영팔 : 여기 좀 앉어.
한 쪽 빈자리에 앉는 두 사람.
병태 : 잘 있었니?
영팔 : 응... 너한테도 연락하려고 그랬는데...
병태 : 그래?... 근데 엄석대가 온다고 했어?
영팔 : 응.. 어떻게 알았는지 이 집 상주한테 전화가 왔다고 그러더라.
잠시 생각에 잠기는 병태.
이때 동창으로 보이는 몇몇 무리가 병태 옆으로 지나간다.
강동규 : 가만 있어봐. 이름이... 한...
영팔 : 병태야, 5학년 2학기 때 전학 왔던...
강동규 : 그래 맞아 병태, 한병태지, 반갑다
악수를 청한다.
누구인지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병태.
강동규 : 나 강동규야, 체육부장.
김문세 : 이 자아식은 아직도 체육 부장이야. 나야 김문세.
병태, 김문세, 양승찬과도 악수를 한다.
자리에 앉는 사람들.
병태에게 잔을 권하는 강동규.
(소리) : 야, 강동규
병태, 잔을 들다 말고 그 쪽을 쳐다본다.
살이 찌고 키가 작은 한 중년의 남자. 병태가 있는 자리 쪽으로 걸어온다.
고급스러운 양복과 손에는 번쩍이는 장식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임만순 : 옆에 좀 있으라니까 왜 여기 와 있어?
강동규 : 응...
어색해하는 동규. 임만순 그때서야 병태를 발견한다.
임만순 : 가만 있어봐. 이게 누구더라.
병태 : 한병태다.
임만순 : (자리에 앉으며) 그래, 한병태 , 허허허... 오래간만이다.
너 서울에서 큰 회사 다닌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래 잘 되니?
병태 : ... 그럭저럭...
임만순 : 난 사업해. 대세투자개발 주식회사.
명함을 꺼내는 만순.
승찬 : 무슨 놈의 투자개발이냐, 부동산이지.
임만순 : 방앗간 사장님! 조용히 좀 하시지! 나중에 사업 얘기 좀 하자.
영팔, 소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일어난다.
병태, 거들먹거리며 임만순을 피해 영팔을 따라 일어선다.
S#113 상가집 구석진 곳 (저녁)
병태 : 넌 뭐하고 지내니?
영팔 : 촌놈이 뭐 할 것 있니? 농사짓지...
병태 : 넌 참, 하나두 안 변했다.
영팔 : 그래?
병태 : 아이는?
영팔 ; 딸 셋에 아들 하나, 애들 고등학교에 보내기도 힘들어.
잔을 영팔에게 건네는 병태.
병태 : 그런데, 엄석대는 최선생님이 돌아가신 걸 어떻게 알았을까?
누군가 소식 닿는 애가 있나 보지?
영팔 : 모르겠어.
이때, 마당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S#114 상가집 마당 (밤)
강동규 : 이 짜아식, 땅 값 올라 졸부된 주제에, 옛날 같으면...
강동규, 임만순의 멱살을 잡는다.
이를 뿌리치는 임만순.
임만순 : 이 새끼는 아직도 옛날 찾네! 운짱 주제에.
이를 말리는 동창들.
강동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들의 혼란스런 모습을 보며 잔을 비우는 병태.
병태(소리) : 1960년 봄, 우리는 육학년이 되었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S#115 운동장 (아침)
이른봄의 아침 햇살 속에 도열해 있는 아이들.
“전교 회장”이라 써 있는 완장을 찬 엄석대의 선창에 따라 복창한다.
석대 : 우리의 맹세! 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다.
아이들 :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다!
석대 : 하나,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 침략자를 쳐부순다.
아이들 : 공산 침략자를 쳐부순다!
석대 : 하나,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남북통일 완수하자.
아이들 : 남북통일 완수하자!
선서가 끝나기를 기다려 단에 오르는-
교장 : 오늘은 조회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에게 새로 오신 유능한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하겠어요. 서울에서 사범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셨을 뿐 아니라
2년 간의 현직교사 생활에서도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자, 김선생님.
교장의 박수를 신호로 전체 아이들의 박수 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진다.
여지껏 보아온 다른 선생님들과 짐짓 다른 느낌을 풍긴다.
단정한 머리에 곤색 상의를 걸친 김선생은 현명하면서도 냉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선생 : 김정원입니다. 아름다운 고장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
무척 기쁩니다.
태극기 위에 구름에 가렸던 태양이 서서히 먹구름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S#116 교실 (아침)
교단에 서 있는 김선생.
그 뒤로 김정원이란 이름과 정직과 진실이란 글씨가 보인다.
김선생 : 정직하고 진실 되게 살아라. 이렇게 말하는 나는 지금 몹시 부끄럽다. 하지만
너희들이 살아갈 시대는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그럴 것이다. 이 선생님은 그렇게
너희들을 가르치고 싶다. 다소 공부를 못하는 건 용서할 수 있지만 거짓말을
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모두 알겠나?
아이들 : 네에.
말뜻을 잘 모르겠다는 듯 아이들의 대답에 힘이 없다.
김선생 : (미소지으며) 내 말이 어렵지? 하지만 곧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칠판에 써 있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며-
김선생 : 자, 이제부터는 미리 말했던 대로 반장선거를 해 보자.
먼저 자기가 반장이 되어 우리 반을 멋지게 만들어 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
아이들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서로 나서지 않는다.
김선생 : 없어? 없으면 추천해!
아이들의 시선이 뒷자리의 엄석대에게 몰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김선생.
시침을 뚝 땐 채 앉아있는 석대에게 시선이 간다.
야릇한 침묵이 흐른다.
S#117 교무실 (낮)
책상에 앉아 학적부를 뒤적거리는 김선생.
그 옆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던-
여선생 : 서울에선 신풍운동 때문에 그렇게 야단이라면서요?
김선생 : 야단은요 뭐... 이미 있어야 될 게 없었을 뿐이죠
난로가에 눈을 감고 반쯤 졸고 있던 -
늙은선생 : 젊은 선생들이 나 같은 늙은이를 다 쫓아낸다면서요
김선생 : (웃으며) ... 글쎄요. 그럴리야 있겠어요. 하지만 뭔가 달라져야 되겠죠.
여선생 : 그것도 다 세태예요.
김선생 : 나쁜 건 고쳐야죠.
여선생 : 글쎄요.... 그게 어디 쉽게 되나요...
김선생 : (화제 돌리며) 참, 선생님 엄석대 아시죠?
여선생 : 그럼요, 우리 학교에서 모를 사람이 있나요?
김선생 : 참, 이런 일이 ... 글쎄 급장 투표를 했는데 61명중에 59명이 걔를 찍었어요.
나머지 두 표는 하나는 그 애 자신 표구 하난 무효구요.
여선생 : 그게 어때서요? 엄석대가 어떤 아인데요. 2년 동안 쭉 전교 1등이었어요.
김선생 : 계속이요?
여선생 : 네에.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 되는 김선생
옆에 라디오에서는 3.15 부정선거에 관한 방송이 흐른다
두 선생님의 말을 엿듣고 있던 급사,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여선생 : 최선생 들어오시면 물어보세요. 2년 동안 엄석대반 담임이었으니까.
김선생 : 네, 고맙습니다.
주위를 둘러본다
책상 앞으로 다가간 자리에 앉는 김선생
S#118 가축 축사 앞 (오후)
석대와 급사 아이가 걸어와 주위를 살핀다.
긴밀한 얘기를 나누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석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S#119 교실 (낮)
칠판에 산수문제를 적는 김선생.
몸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면 -
김선생 : 이 문제 풀 사람?
손드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김선생 : 그런, 엄석대 나와서 풀어 봐!
힘겹게 교단까지 나오는 석대.
한참을 끙끙거리지만 반도 채 못 푼 상태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김선생 : 영 알 수가 없구나. 2년 간 계속 1등을 차지했다는 녀석이... 들어가!
석대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에 저으기 당황하는 아이들.
약간의 소란이 벌어진다.
김선생 : 왜들 떠들어! 각자 공책에 풀어 보도록!
고개를 숙인 석대에게 의심을 눈초리를 보낸다.
S#120 복도 (오후)
청소를 끝낸 아이들이 교실에서 나온다.
복도를 걸어나오는-
김선생 : 어디들 가, 청소검사 안 맡아?
아이들 : 맡았어요.
김선생 : 뭐?
아이들 : 급장이 가라고 했어요.
김선생 : 급장이 왜?
아이들 : 청소검사는 언제나 급장이 하는 걸요.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김선생 : 안 돼 지금부터, 똑같은 아이들끼리 청소검사가 뭐야. 들어들 와!
교실로 들어가는 김선생.
저으기 당황하는 아이들이 뒤쫓아 들어간다.
쓱- 모습을 드러내는 석대.
교실 쪽을 보며 곤혹스러운 듯 깊이 생각에 잠긴다.
S#121 교무실 (오후)
들어오는 김선생, 최선생을 발견한다
다가가서는-
김선생 : 최선생님!
최선생 : 어, 김선생!
김선생 : 지금 저희 6학년 2반을 2년 동안 담임하셨다면서요?
최선생 : 아 예, 엄석대반... 그렇죠
김선생 : 엄석대 반이요?!
어느 틈엔가 여선생 끼어들며,
여선생 : 그반 급장이 엄석대잖아요! 그러니까 엄석대반이죠!
김선생 : 아니죠, 6학년 2반이죠. 2반에는 엄석대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여선생 : 에이 그게 그거죠.
최선생 : 아이 뭐 어쨌든. 그런데 왜요. 김선생! 뭐 문제라도 생겼어요?
김선생 : 예, 반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요.
아이들이 아이들 같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워서요.
최선생, 피다만 담배를 다시 또 피기 위해 조심스레 끄면서-
최선생 : 허허 김선생! 엄석대 반이 어떤 반인지 잘 모르시는구만.
김선생 : ...
여선생 : 그 반은 성적도 항상 일등. 환경미화도 일등. 운동회를 해도 일등만 하는
일등반이 예요.
김선생 : ... 글쎄...
최선생 : (옆에 있던 책을 만지작거리다 말고는) 엄석대반이 왜 그러는지 아세요?
질서가 있어서 그래요! 뭘 시키면 일사불란하고 사고도 없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체계가 있어요.
김선생 : 체계요?! 어떤 체계죠?
최선생 : 엄석대반을 계속 맡아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여선생 : 김선생님은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하시나 본데, 담임 한번 해 보실래요?
문제아 반 담임!
웃는 여선생, 답답한 표정의 김선생.
S#122 교무실 앞 복도 (오전)
걸어오는 석대.
그 곁을 스치며 한 아이.
급히 뛰어 교무실로 향한다.
석대 : (돌아보며) 야! (주춤거리는 아이) 뭐야?
태규 : 응, 양종회랑 구본석이 또 싸워서 코피 났어!
석대 : 근데?
태규 : 선생님 부르러...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가, 석대의 굳어진 표정에 주눅이 드는 태규.
석대 : (신경질적으로) 가서 솜이나 가져와!
머뭇거리는 태규.
석대 : (버럭) 빨리!
뛰어가는 태규.
S#123 교실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알리는 타종소리.
김선생 나가고 아이들 도시락을 꺼내느라 분주하다.
보자기를 푸는 병태 곁을 스쳐 뚜벅뚜벅 힘차게 교단을 향하는 강동규.
동규 : (교탁을 땅! 치며) 오늘 물당번 누구야!
한 아이 큰일났다는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일어난다.
동규 : 이리 나와!
머리를 긁으며 나오는 정문수.
동규 : 이것들이 요즘 좀 풀어주니까....
문수를 때리려는데...
석대 : 체육부장 됐어. 깜박 했겠지. 정문수 들어가 밥 먹어!
석대의 부드러운 말씨와 관용에 놀라는 아이들.
S#124 인서트
밤, 학교 교사 외경
S#125 교무실 (밤)
한줄기 달빛이 드리워져 있는 텅빈 실내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두 그림자, 한 책상에 다가간다.
책상 위를 비추는 후라쉬 불빛에 작은 액자에 끼워진 김선생의 가족사진이 보인다.
서랍을 열어 이것저것을 뒤지다가 서두르는 바람에 액자에 소리를 내며 떨어져 깨진다.
숨을 죽이며 책상 밑에 엎드리는 둘.
아무 인기척이 없다.
다른 캐비넷을 뒤지는데-
창을 통해 강렬한 불빛이 들어온다.
불빛 어지럽게 흔들리며-
소사 : 누구야!
S#126 복도 (밤)
성급히 뛰어오는 둘의 발.
그중 하나가 무엇에 걸린 듯 나동그라졌다가 다시 재빨리 일어나 뛰어간다.
거친 발자국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린다.
S#127 교실 (아침)
시험기간, 머리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 아이들.
이마에 반창고를 붙인 석대의 모습도 보인다.
시험지를 다 나눠주고 교단에 올라서는 김선생.
김선생 : 나는 이 말만하겠다. - 정직과 진실 - 그 다음 행동은 너희들이 하리라 믿는다.
자, 그럼 시작
교단에서 내려와 창가의 의자에 앉는 김선생.
시험감독에는 관심이 없는 듯 책을 꺼내어 읽는다.
선생의 눈치를 살피던 종회.
슬그머니 옆을 곁눈질 하다가 우연히 돌아오는 김선생의 시선과 맞부딪친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쳐다본다.
오히려 무안해진 종회, 달아오르는 얼굴을 숙인다.
S#128 철길 (오후)
양쪽 철길 위를 평행으로 걷는 병태와 영수.
자꾸 선로에서 떨어지는 병태. 아예 내려서 걷는다.
중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영수에게-
병태 : 시험... 잘 봤니?
영수 : 응.
병태 : ... 이번에두 그렇게 했어?
영수 : 뭘.
병태 : (짜증스레) 그거.
영수 : (갑자기 굳어지며) 응!
병태 : 엄석대가 그러래?
고개를 끄덕이는 영수.
어느 덧 걸음을 멈춘 채 뻗어간 평행선만 바라보고 있다.
깊은 두려움에 잠기는 두 아이.
(소리) : 그때 석대도 새 담임의 부임으로 시작된 변화의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호랑이 등에 탄 격이 되어 끝까지 달려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가 2년 간 키워온 엄석대의 왕국이 너무 크고 훌륭했으며 화려했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저 화려한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서와는 달리 우리반의
혁명은 갑작스럽고 약간은 엉뚱하게 시작되었다.
S#129 교실 (아침)
교탁에 시험지 뭉치와 함께 굵은 몽둥이를 소리나게 내려놓는-
김선생 : 지난 일제고사 성적이 나왔다. 엄석대가 평균 98점으로 전학년에서 1등을 했고,
한병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전학년 10등 밖이다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아이들의 눈에 공포가 어린다.
김선생 : 나는 오늘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겠다. 엄석대, 이리 나와!
잠깐 석대의 눈에 망설임이 스치더니 포기한 듯 일어서 걸어나온다.
김선생 : 엎드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엄석대.
김선생 : 빨리!
엎드리는 석대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김선생.
이윽고 석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오며 교실 바닥에 엎어진다.
시험지 뭉치를 들척여 석대의 코앞에 들이대며-
김선생 : 이거 알지?
신음을 삼키며 말이 없는 석대.
다시 몽둥이를 집어들며-
김선생 : 알아 몰라!
석대 : 잘못... 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안 보이는 동요가 일어난다.
김선생 : 교단 위에 올라가 손들고 꿇고 앉아.
박원하. 황영수, 이치규, 김문세 앞으로 나와!
벌벌 떨면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또 한 차례 호된 매를 때린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김선생 : 너희들은 오래 전부터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딴 이름을 써서 냈어!
그게 누구지?
고개를 떨구고 있던 석대의 눈이 번쩍 빛을 발하며 아이들을 쏘아본다.
김선생 : 더 맞고 싶어? 누구와 시험지를 바꾼 거지? 박원하 말해 봐.
원하 : (떠듬 떠듬) 엄... 석... 대
김선생 : 모두 맞아?
아이들 : ... 네...에...
김선생 : 못난 놈들. 너희는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모두 꿇어앉아 스스로 반성해! (반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 더욱 큰 문제는 너희들 모두에게 있다. 우리 반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잘못된 지난날부터 정리해야 해. 일 번부터 일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석대의
잘못이나 석대에게 당했던 괴로운 일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도록 한다!
다시 눈을 흡뜨고 쏘아보는 석대의 눈길에 흠칫해진 아이들.
눈치만 볼 뿐 아무 말이 없다.
김선생 : 이미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도 또
너희들이 입을 다물어 석대를 옹호한다면 이 일을 여기서 끝내겠다. 시험지를
바꾼 벌은 끝났으니 다시 이 반을 석대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겠나?
(아이들 마음 속 동요를 눈치채고) 1번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는 아이)
말해 봐 어서!
한 대 휘둘러 치는 김선생. 그때서야 석대의 눈을 피하면서-
1번 : (작게) 연필을 빌려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김선생 : 다음 2번
2번 : 3반 여자애 팔을 붙들게 했어요. 다른 애한테 치마를 들추게 했구요.
석대를 빤히 노려본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외면하는 석대.
3번 : 토요일마다 100환씩 주었어요.
4번 : 한병태와 싸우라고 했어요. 거들어 준다고요.
5번 : 저희 집이 과수원 한다고 점심시간마다 과일을 가져오게 했어요. 순 나쁜새끼.
6번 : 여자 목욕탕을 몰래 훔쳐보다가 자기 바지 속으로 내 손을 넣었어요.
그리고 만져 달랬어요. 아주 아주 나쁜 놈.
계속해서 일어나 말하는 아이들의 감정이 점점 격해져 상대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등
거리낌없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
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 석대.
아이들의 말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김선생 : 다음!
일어서는 병태, 아무 말이 없다
김선생 : 말해 봐 어서.
병태 : ... 저는 ... 잘 모릅니다
일순 교실 안이 조용해진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석대.
아이1(소리) : 말해, 마.
아이2(소리) : 저 새끼 순 석대 꼬붕이...
아이3(소리) : 넌 쓸개도 없냐 마?
김선생 : 조용히들 해 알았어. 다음, 한병태 다음.
다른아이 : (벌떡 일어서며) 아니예요, 선생님. 저 새끼가 제일 잘 알아요
김선생 : 알았다니까.
이때, 수업 끝을 알리는 타종이 울린다.
김선생: 괜찮아. 계속해
엉금엉금 나오는 아이. 영팔이다.
아이들과 석대를 번갈아 보는 영팔.
영팔 : 니네들도 나뻐!
갑자기 울어 버린다.
S#130 복도 (오후)
어느 새 새까맣게 몰려들어 2반 안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다른 반 아이들.
휘둥그레지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리창 안에서는 모든 아이들의 고발이 끝난 듯 말소리가 그친다.
잠시, 침통한 표정의 김선생이 아이들을 향해 무어라 이야기하자
하나 둘씩 일어나 각자의 책상 위에 무릎을 꿇는다.
손을 높이 쳐든 아이들.
1,2분단의 통로에 들어서서 마구 호된 매를 가하는 김선생.
이쪽 저쪽에서 울음이 터진다.
이때 또다시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호기심을 누른 채
각자의 반으로 흩어지는 아이들.
복도를 걸어오는 5학년 때 담임 최선생이 2반 안을 들여다본다.
놀라움에서 상황의 이해로, 이해에서 자책으로 발전되는
최선생의 심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고개를 떨구고 느릿하게 걸음을 때는 최선생.
S#131 교실 (오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교단으로 돌아온 -
김선생 : 이것으로 너희들의 지난 비겁함에 대한 대가는 치러졌다. 매를 때린 것은
선생님이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매는 너희 각자의
양심의 소리인 것이다. 모두 내려와 자리에 앉아! (교단의 아이들에게) 제 자리에
돌아가도록, 엄석대도. (반 아이들이 모두 제 자리에 앉은 후 - ) 이제 선생님이
너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다 끝났다. 부급장이 다시 임시 의장을 맡아
급장 선거를 다시 하도록!
예의 창가로 돌아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김선생.
앞으로 걸어나와 교단에 서서-
황영수 : 급장선거에 앞서 기록을 맡을 사람과 개표할 사람을 선출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 지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머뭇거리며 손을 드는 몇몇 아이)
박원하 말씀해 주십시오.
원하 : 투표를 했으면 합니다
영수 : 또 다른 어린이? 최태규.
태규 : 1번부터 10번까지 하죠.
영수 : 또 김문세.
문세 : 5번, 15번, 25번 이런 식으로 끝자리 5번인 어린이가 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경수 : 동의합니다
정문수 : 그러지 말고 의장이 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반대하는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가 들린다.
영수 : 조용히 하세요, 그럼 제가 임의로 선출하겠습니다.
칠판에다 이름을 적는 영수.
아이들 서로 자신의 이름을 대며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때-
드르륵- 문소리에 모든 시선이 뒤로 집중된다.
석대 : (뱉듯이) 잘해 봐, 이 개새끼들아!
벌떡 일어서는 김선생.
앞문으로 뛰어 나간다.
후다닥 뛰는 석대.
S#132 복도 (오후)
내달리는 석대를 쫓아오며-
김선생 : 엄석대, 거기 서!
탁! 멈추어 무섭게 째려보는 석대. 휙 몸을 돌려 쏜살같이 뛰어간다.
착잡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선생.
S#133 교실 안
창으로 몰려들어 운동장 저만치 뛰어가는 석대를 보고 있는 아이들.
병태, 자기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다.
앞문으로 들어서는 김선생.
병태와 눈이 마주친다.
S#134 읍내거리 (황혼)
4.19의 기분이 번져 있는 거리의 분위기.
“이 박사는 물러가라”
“살인경찰 양국순을 처단하라”
등의 몇 장의 플랭카드가 찢겨진 채 바람에 흔들리는 3.15 선거의 포스터들
모여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전파상 앞에서 뉴스를 듣는 사람들.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등학생들 등의 거리 모습이 스케치된다.
S#135 언덕길 (아침)
골고루 퍼져 있는 아침 햇살.
개나리 줄기를 휘두르며 강동규와 학교로 가는 김문헤.
산모퉁이를 돌다가 깜짝 놀라 멈춘다.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중학생 두 명.
순간적으로 도망치려는데 어느 틈에 그 앞을 막아서는 다른 중학생
중학생 : 비열한 배신자 새끼1
동규 : ... 잘못했어...
중학생 아이들, 강동규와 김문세를 끌고 간다.
S#136 교실 (아침)
조회시간 전의 교실.
칠판의 왼쪽 상단에 걸려있던 이승만 박사의 사진틀이 수위의 손에 의해 벗겨진다.
하얗게 드러나는 백면의 액자자국.
액자를 떼어낸 수위가 말 없이 액자를 들고 교실을 나간다.
얼굴들에 상처 난 아이들 몇 명을 중심으로 모여 수군거리는 아이들.
그 교실의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뚫고 들어오는 김선생.
급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들로 우당탕거리던 교실이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교실 안을 휘 둘러보는 김선생.
군데군데 비어 있는 몇 개의 자리.
김선생과 시선이 마주친 상처난 얼굴의 아이들이 얼굴을 숙인다.
김선생 : 언제까지 이럴 꺼야, 너희들.
갑작스런 김선생의 높아진 언성에 아이들의 고개가 더 숙여진다.
김선생 : 이렇게 매일 얻어맞고 그게 무서워 결석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기가 죽은 아이들을 굳은 얼굴로 둘러보는 김선생.
김선생 : 석대가 그렇게 무서워? 난 너희들 같은 겁쟁이들은 가르치고 싶지 않다.
절대 피하지 마라. 맨손으로 안되면 돌이라고 들고 싸워라. 한 사람이 안되면
두 사람, 그래도 안되면 전부 다들 덤벼라. 내말 알아듣겠나?
아이들 중 몇 명이 죽어 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김선생 : 다시! 알아듣겠나?
아이들 : (조금 커진 소리로) 네.
김선생 : 다시
아이들 : (일제히 힘차게) 네!
S#137 교실 (밤)
나무 의자와 책상 등이 불길에 쌓여 있다.
S#138 동 밖 (밤)
물을 길어와 교실 안에도 끼얹는 동에 사람들.
서서히 불길이 잡힌다.
(F?O)
S#139 (F?I) 같은 장소 (아침)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아이들.
입을 꽉 다문 병태도 섞여 있다.
급하게 뛰어온 김선생. 주먹을 불끈 쥔다.
병태, 시커먼 병이 나무둥치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철쭉과 진달래의 붉은 색이 눈을 어지럽힌다.
교문 쪽으로 먼 시선을 주고 있던 병태, 다시 한번 쓰러져 있는 병을 본다.
병태(소리) : 그 날 이후 엄석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재가한 서울의 어머니를 찾아갔다던가?
S#140 교실 (오후)
칠판에는 제7차 급장 선거라는 글씨와 후보들의 이름, 개표 결과가 써 있다.
김선생 교단위로 올라서면서-
김선생 : 좀 혼란했던 기간이 있긴 했지만 이제는 너희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구나.
각자의 일들을 알아서 처리하고 공동의 일들은 서로 협력해서 처리하는 새로운
6학년 2반이 되주길 바란다. 급장!
황영수 : (단상에 오르지 않고 앞에 나와 서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절 불러 주세요.
기꺼이 여러분께 봉사하는 급장이 되겠습니다.
박수 치는 아이들. 전에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를 쳐다보는 병태.
병태(소리) : 그 후 학교생활은 정상으로 돌아갔고 굴절되었던 내 의식도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석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그러나...
시험과 경쟁으로 숨가쁘게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사회에 나왔을 무렵
엄석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되살아났다.
S#141 상가집 구석진 곳 (현실)
병태, 생각에 잠겨 잔을 기울이고 있다.
동창1 : 야 한병태, 한잔해라.
무반응의 병태, 어색해진 동창 1.
옆 사람과 잔을 부딪힌다.
병태, 옆의 영팔에게-
병태 : 참, 김선생님 소식을 들었니?
영팔 : 글쎄, 우리가 졸업하고 바로 벽지 학교로 전근 가셨다는 얘기만 들었어. 그 후론...
병태 : 그래...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영팔 : ... 그럼
병태와 영팔, 각자의 생각에 잠긴다.
임만순 : 어이, 한병태, 이리 와서 같이 어울리자고, 뭐 하고 있어.
병태 : 응, 그래...
일어나는 병태와 영팔.
영팔, 부엌 쪽으로 간다.
S#142 상가집 마당 (밤)
병태, 임만순 옆에 가서 앉는다.
패를 돌리는 임만순.
임만순 : 한병태, 안 칠래?
병태 : 됐어. 술이나 마시지 뭐.
병태, 옆에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른다.
임만순, 패를 돌린다.
패를 내려놓는 동창2와 김문세.
임만순,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찾는다.
강동규, 얼른 담배를 찾아 임만순에게 건네고 불을 붙여준다.
문세 : 엄석대가 온다고 영팔이가 그러던데.
병태, 잔을 들다 말고 문세쪽을 쳐다본다
양승찬 : 걔는 지금 뭐 하고 있니?
강동규 : 내가 듣기로는 어느 큰 회사 사장이 되었다고 그러든데...
김문세 : 이름을 바꾸어서 어디선가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더라.
양승찬 : 하여간 그 놈은 대단한 놈이야. 또 어디선가 일을 벌이고 있을 거야.
야, 이거 또 쌌네 썅-
임만순 : 야 그 새끼 얘기는 왜 꺼네, 그 자식 해 봤자 도둑질 밖에 더 하겠어
강동규 : ...
승찬과 동규, 만순 열심히 화투를 치고 있고
병태는 취기가 오른 얼굴로 술을 들이키고 있다.
이때, 대문이 열리며 상당히 크고 화려한 화환 2개가 인부들의 손에 의해 들어오고 있다.
화환 옆에 써 있는 5학년 2반 일등이라는 글씨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 2개의 화환을 도의원 김문세, 대세투자개발 주식회사회장 임만순 글씨가 써 있는
화환 옆에 놓여진다.
김문세 : 5학년 2반 일동이... 그럼 엄석대! 급장, 아니 석대가 곧 오겠네.
임만순 : 걔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오겠니?
강동규 : 급장, 아니 석대는 올 거야.
병태, 자리에서 일어난다
임만순 : 어이 한병태 어디가?
임만순, 다시 화투에 신경을 쓴다.
S#143 한적한 시골길 (새벽)
침묵이 흐르는 거리.
병태, 상갓집 조등을 뒤로하고 약간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멍한 의식 속의 병태.
그 위로 들리는 병태의 소리-
병태(소리) : 엄석대!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3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어디선가
절대자가 되어 또 다른 5학년 2반을 주무르고 있겠지. 그렇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다.
(끝)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