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5장 1~27절>
서론: 육의 눈이 감길 때, 영의 눈이 열리다
인생의 암흑은 누구에게나 불쑥 찾아옵니다. 내가 가진 정교한 계획, 세상을 향한 비전, 내 힘으로 쌓아 올린 성공의 탑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은 극심한 허무와 고통에 직면합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이 바로 그러한 인생의 암흑을 통과한 인물이었습니다. 청정하고 신실한 신앙을 가졌던 그는 청년 시절 세상을 바꿀 정치적·신학적 글들을 써 내려갔으나, 44세라는 한창의 나이에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정치적 지형이 바뀌며 재산과 명예를 모두 잃고 감옥에 수감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완전히 실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이 감기고 세상의 계획이 꺾인 그 참담한 암흑 속에서, 밀턴은 억울함과 원망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바라보았고, 딸들의 도움을 받아 인류 문학사에 불후의 명작으로 남은《실낙원(Paradise Lost)과 《복낙원(Paradise Regained)》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편과 욥기의 고백처럼 "외부의 빛이 꺼졌을 때, 내면의 신성한 빛이 더욱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바스는 앞의 4장에 이어 인과응보의 세계관으로 욥을 정죄하고 있지만 이를 걷어내면 그가 선포하는 변론을 통해, 밀턴의 고백처럼 우리의 고난을 승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3가지 은혜를 긍정적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1. 인간의 지혜가 꺽일 때, 작용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
"지혜로운 자(하카밈)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욥 5:13) 히브리어 하카밈의 명사 호크마(חָכְמָה)는 인간의 지혜, 꾀, 계락을 뜻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 W. F. Hegel)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석양이 질 때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종종 모든 것이 무너지고 어두워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존 밀턴 역시 자신의 정교한 지식과 정치적 호크마(지혜)로 세상을 개혁하려 했으나, 시력을 잃고 감옥에 갇히면서 인간이 가진 지혜의 유한성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9절을 통해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고 명시하며 정확히 욥기 5장 13절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세상의 지혜와 내 육신의 자만이 무너질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진정한 능력은 내 지혜(호크마)를 내려놓고, 세상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지혜'를 붙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세상의 계산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신뢰할 때, 어떤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2. 고난의 때를 영혼을 조율하는 징계로 승화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무사르)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욥 5:17) 히브리어 무사르 (מוּסָר), 징계는 분노에 찬 처벌이 아닙니다. 자녀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랑으로 인격을 다듬는 '신성한 교정(Divinity Discipline)'입니다.
존 밀턴은 시력을 잃은 고통의 시간을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가혹한 형벌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이 시기를 자신의 오만과 영적 고집을 깎아내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무사르의 시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육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자에서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노래하는 대시인으로 거듭났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0-11절은 이를 이렇게 확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성도 여러분, 고난을 만났을 때 "왜 하필 나인가?"라며 수동적으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무사르라는 영적 정련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 불필요한 거품을 제거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나라의 음높이에 맞게 재조율(Tuning)하고 계십니다. 고난은 파멸의 징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3. 상처를 싸매시는 라파의 하나님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라파)" (욥 5:18) 히브리어 라파 (רָפָא)는 치료하다, 고치다, 싸매다는 의미로서 엘리바스 고백의 정점은 상처보다 크신 하나님의 치유, 즉 '여호와 라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을 때로 아프게 하시는 것 같으나, 결코 상한 채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친히 손으로 싸매어 고치시는 분입니다.
이 구약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선언합니다.
밀턴이《실낙원 》비극에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다룬《복낙원》을 완성할 수 있었던 동력 역시, 자신을 싸매시고 영원히 고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라파)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환경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처받은 영혼을 이전보다 더 깊고 숭고하게 치유하시는 라파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묻은 손길을 힘입어 아파하는 이들을 감싸 안는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결론: 암흑 속에서 노래하는 승리의 삶
존 밀턴은 세상의 빛을 모두 잃은 암흑의 처소에서 인류 역사에 남을 소망의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장벽이나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은 인간의 절망적 한계와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손길이 만나는 거룩한 지점을 보여줍니다.
나의 보잘것없는 호크마(חָכְמָה, 지혜)를 내려놓읍시다. 비로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무사르(מוּסָר, 징계)로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인격과 영혼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우리를 친히 손으로 싸매시는 라파(רָפָא, 치유)의 하나님을 믿읍시다.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며 영원한 승리를 선사하실 것입니다.
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성도 여러분의 삶과 우리 교회 위에 온전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Keywords: 호크마(חָכְמָה, 지혜), 무사르(מוּסָר, 징계), 라파(רָפָא, 치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