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길이 시작되고, 걸어지고 그리고 마무리되고
또 다른 길이 어슴푸레 보이고 또다시 걸어지고
수안보 직전에 만나는 돌고개 위의 마을을 보호하는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이다.
과거객이나 조선의 관리들이 왕래하던 길이었지만 길이 너무 질어 바닥에 돌을 깔고 다닌 데서 유래가 된 돌고개
깊은 산속이라 산짐승이 자주 출몰해 아래 동네인 안보역이 있던 안보리 마을에서 액운을 막고, 지나가는 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서낭당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서낭당 옆에는 오래된 당목이 있었으나 불타고 그 씨앗이 자라 어미가 그렀던 것처럼 서낭당을 보호하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에는 서낭신과 당목신이 있었고
천상에는 천신
부족국가의 시조이며 한나라를 세운 국조신
자손을 지켜주는 조상신
산을 관장하는 산신
바다에는 해신
연못에는 지소신
물을 다스리는 용왕신
산과 들을 지켜주는 법신
이 모든 신들이 가족을 지켜주고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이다.
지나가는 이의 무사 안녕을 위해 합장하고
짐승계의 최종 보스 격인 호랭이가 자주 출몰해서 그런지 서낭당 안에는 산신과 호랭이가 사이좋게 계시는데
단군신화 속의 곰은 사람이 되었으나 호랭이는 마늘 먹기 싫어 산신 곁에 남았으며 왕대(王大)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수많은 산신각 속에서
산신과 함께 산다.
곰도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쑥
삼겹살과 잘 어울리지만 호랭이를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던 마늘
수안보에 들어오니 일몰이 시작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태양과 달
밤에 전기가 아무리 밝아도,
낮이 되어 태양이 밝아지면 아무 소용없듯
주위에는 더 쎈놈은 있기 마련이니 가능한 강한 놈 곁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쌍용이 나르샤
용은 물을 관장하는 신(神) 답게 용비어천가에도 등장하는데 농업의 기본이 물이니
수안보에도 물을 관장하는 용답게 헛기침이라도 하며 마주 보고 있다.
농사의 기본이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
논농사에 있어서 평균 1천 톤의 물을 사용해서 1톤의 곡식을 얻는데 요즘은 쌀 한가마 가격이 높지 않다
쌀 보다 돈이 되는 짐승들이 더 많으니 우리나라 3대 가축이라는 소, 돼지, 닭 중에서 소는 9만 농가에서 약 340만 마리로 한 달 6만 마리 도축되고, 돼지는 2천800 농가에서 1천133만 마리가 키워지고,
하루에 5만 마리가 전국 71개의 도축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네 밥상 위에 올라온다.
닭은 매달 1억 2천 마리가량이 도축되는데 이 중에 어린 숫 병아리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억 마리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생을 마감한다.
이 처럼 많은 짐승을 키우다 보니 전 세계의 곡물이 37%가 짐승들 먹이로 사용되고, 돼지는 사람의 10배, 소는 사람의 50배 정도의 분뇨를 만들어 내니 하천은 오염되고 더러워진다.
경기도땅에 들어가면 축사나 돈사가 많으니 그곳 사람들이 또 어떻게 살아 가는지 가다 보면 알게 될 것 같다
오늘밤은 맥가이버님을 만나 수안보에서 토종닭 한 마리 물에 빠트려 놓고 주상(主上)이 아닌 주상( 酒床) 전하를 영접해서
이야기 나누다가 맥가이버님께서 제공해 주신 수안보 상록 호텔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하얀 이불이 곱게 깔린 잠자리, 풍찬노숙이 아닌 분에 넘친 잠자리라 잠은 오지 않고 새벽녘 일찍 나와 마패봉에서 발원해 흘러온 석문 동천길 옛 국도 3호선 길로 걷는다.
동천이란 동쪽(東川)에서 흐른다고 해서 동천이 아니며, 깊은 산중의 계곡으로 도가(道家)의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하는 동천(洞川)을 뜻하는 말이다.
수안보면 온천2리 마을 옛 과거길로 들어가
충주의 경찰학교 앞을 지나
충주시 부안보와 살미면 고개를 이어주는 갈마고개를 지나며
대림산성
대림산은 충주댐이 내려다 보이는 계명산과 함께 충주의 진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안보로 가는 국도변에 우뚝 솟아있다.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여 포곡형으로 성을 쌓았으며 전체 길이 약 5천 미터이다.
시간이 많으면 한 바퀴 돌아 보련만 예전에 성문이 있던 곳에는 도로만 나있고 도로 따라 들어가면
향상마을 몇 가구가 보인다.
대림산성을 지나면 도로 우측에 깎아지른 절벽이 자리하고 그 아래는 달천이 유유히 흐른 곳에 노루목이란 곳이 있고
한 사람이 능히 백 명을 상대할 수 있는 곳인데 전란이 일어났을 때 그 역할을 다 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충북 보은땅 속리산 천왕봉 동쪽에서 흘러온 달천가에 충주시 풍동 마을의 논공 공단이 자리하니 불이 훤하다.
속리산 하면 법주사가 떠오르는데 법주사는 속리산 자락의 수정봉 정상의 거북바위 아래 자리 잡은 국내 4대 사찰 중의 하나이죠
안 가보신 분 들은 법주사에 한번 가보시고 아울러 수정봉 천년 거북바위도 보고 오시면 좋을 듯합니다.
충주시 초입의 유주막 삼거리
예전에 주막과 달천 나루터가 있어 과객이나 보부상을 쉽고 편하게 건너주던 곳
이곳과 달천 평야가 있는 송림마을에도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나무는 눕지 않는다...
예전에 나루터가 있어 달천 반대편 마을인 충주시 용관동을 이어주던 곳에 보호수로 지정된 450년 된 높이 13미터 둘레 2,8미터의 버드나무가 세월을 이기며 서있다.
조선시대 전국 1천 개 이상의 5일장을 주름잡던 보부상들의 애환 그리고 보부상의 하루 20-40리의 발걸음이 하천을 만나면서
잠시 멈추던 곳이건만 이제 옛 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가하천 62개 중의 하나이며, 다슬기가 많이 사는 123km의 달천
충북 보은땅 속리산 정상 부근에서 흘러와 청주-괴산땅을 지나 충주에서 남한강과 만나는데
남한강과 만나는 곳에는 탄금대나 달천평야가 자리하는데 달천 평야에는 신립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우던 곳이다.
임진왜란 전에 조선 최고의 무장으로 신립과 이일 장군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두 분은 이름뿐인 장군이었고
이순신 장군이나 권율 장군 같은 최고의 무장이 거대한 혜성처럼 등장하셨다.
또한, 남한강과 달천과 만나는 곳은 배로 쌀과 곡식을 실어 나르던 조창(漕創)이 있던 곳이다
해안에 설치하면 해창(海創), 내륙의 강가에 설치하면 강창(江創)이라고 부르는데
유자(儒子)의 땅인 조선 땅에 살면 나라에 세금을 내야 했기에 세금을 거두어 한양으로 보내지던 곳
조창은 주로 남해와 서해안 바닷가에 설치하였는데 내륙에 설치한 곳은 충주의 덕흥창(달천하구의 창동리인근)과 강원도 원주의 흥원창 두 곳이다.
고려시대 13개 조창은 강원도(원주시 부론면 흥원창)
충청도(충주 덕흥창, 아산 하양창, 서산 영풍창)
전라도(부안 안흥창, 군산, 진성창, 영광 부용창, 나주, 해릉창, 영암, 장흥창, 순천, 해룡창,)
경상도(마산 석두창, 사천, 통양창)
대부분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며 모두가 어전(御前)으로 향하는 조창이다.
달천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충주시 대소원면-주덕읍-신니면-음성땅 생극면까지 약 28km 구간은
예전 3번 국도 지금은 2차선 길이라 차량의 이동도 뜸한 편이다.
달천 초등학교 앞을 지나
잠시 4차선 갓길로 걸으며
대소원 면 사무소 앞을 지나
독립 유공자 류자명(건국훈장 애국장), 서정기(건국훈장 애국장), 이일신(건국포장)님의 추모비 앞에서 묵념하고
주덕역을 지나
주덕 초등학교도 지나고
신니면에 도착하여
앞에 보이는 도로는 예전 3번 국도인 왕복 2차선 도로
예전 길가에 살구나무가 많아 향촌으로 불리던 마을
신니면 사무소 앞을 지나
멀리 삼봉산이나 구악산 방향으로
들판의 곡식은 익어가고 하늘의 구름도 너무 아름답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으로 1천 톤의 물을 사용해 1톤의 곡식을 얻는 곳
가끔 4대 강 이후 낙동강에 녹조라는 이름의 녹조라떼가 생각나는데
녹조의 원인으로는 물이 고여있어 그런 게 아니라
영양분이 과다해서 생기는데 (햇볕, 물, 영양분) 여름에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햇볕이 강하고 또 농업용 비료에서 나오는 인, 질소가 녹조를 만든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강원도 평창의 송천 같은 경우를 살펴보면 송천의 발원지가 백두대간 황병산 동쪽 계곡이다.
대관령 목장이 있음에도 물은 어느 정도 깨끗하게 흘러 왔으나 물이 고이는 곳에는 도암댐이 자리하는데
2001년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지금까지 발전가동 중단되었다
강원도는 산뿐이니 대관령 목장과 끝이 보이지 않은 430만 평의 고랭지밭과 골프장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심한 곳이다.
목장에서는 축사 분뇨, 고랭지 밭에는 농작물에 몇 번 치는지 알 수 없는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토사유입
인간이 할 수 있는 자연파괴 3박자를 모두 갖춘 곳이 바로 송천이다 보니 산은 깎여져 비가 오면 토사(土沙)와 함께
화학 비료나 축사 거름은 강으로 쓸려 내려가고 그러한 문제들은 매년 되풀이되는 곳이다.
그 물이 결국 흘러들어 아우리지에서 골지천이 되고, 조양강이 되고, 영월에서 동강이 되고 단양에서 남한강이 되어
보이는 들판 넘어 흐르는 한강 되어 흐른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답게 멋진 풍경이 좋고
이 단풍의 계절 그리고 수확의 계절에 백두의 등줄기에서 가장 멋지고 진산이라는 설악, 오대, 태백, 소백, 속리, 덕유, 지리
그리고, 그 산줄기에서 벗어나 있는 경상도의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이나 낙동강이 흐르는 곳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봉화의 청량산 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 들판과 가을산들이 한동안 들녘과 함께 펼쳐진다.
산은 산속에서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멀리서 다양한 색감과 함께 무르익어야 남도의 밥상처럼 다양한 맛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신니면 선당리
예전에는 집이 몇 채 있었으나 모두 떠나고 지금은 수백 년 된 느티나무만 외롭게 서있다.
잡풀은 우거지고 떠났던 고향사람들이 언제나 돌아올까 두 팔 벌려 기다린 지 몇백 년
기다림의 인내가 더 할수록 외로움이 더욱 커 보인다
죽어도 서있을 나무 죽기 전까지 눕지 않는 나무 "네게는 사랑밖에 없으니 힘내라! 전해주고
대한민국에는 약 1만 5천 그루의 보호수가 존재하지만 선당리 마을의 느티나무는 잡풀만 무성할 뿐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못한 듯하다.
늙은 느티나무를 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가 도로 따라 걸으니
도로 우측에는 신덕 저수지가 자리하고 길게만 느껴지는 선당 고개를 넘어간다.
신덕 저수지
인생무상인가?
마루에 걸터앉아 할아버지 한분과 이야기를 나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든 저수지이며 예전 3호 국도가 지나가던 자리라고 하셨는데
촌로의 얼굴에는 세월을 이긴 흔적과 왠지 모를 수심이 가득 느껴진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곳의 늙은 느티나무가 자리하던 곳에도 예전에는 집이 있었지만
모두 고향을 떠나고 흙집은 비바람에 무너지고 지금은 잡풀만 무성하다고...
수심 가득한 어르신께 방해가 될 것 같아 건강하시라 전하고 일어선다.
동락 전승비
동락 전승비 1950년 7월 7일 6,25 전쟁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이며
이곳에서 처음 81미리 박격포를 북한군에게 쏘던곳이다.
잠시 묵념하고
생극면으로 가는 길에
콤바인은 누가 뭐래도 "이세키"농기계
충북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마을 앞의 모도원 비
예전에 원(院)이 있던 마을인데 오래전 광산 김씨가 도망간 노비를 잡으러 왔다가 이곳의 경치가 너무 좋아 눌러앉았다는 마을
영남길은 부산에서 한양길은 과거객이나 장사꾼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었으며 왜군들이 지나갔던 길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부산에 침략하고 사흘 반 만에 파발이 4월 17일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4월 17일이면 부산진과 동래읍성이 모두 도륙되고 삼랑진의 작원관에서, 조선병사 300명 과 일본 소서행장의 주력 부대 18,700명이 싸우던 날이다. 일당 백에 있어 이 정도면 한판 붙어 볼만한데...
파발이 왜 이리 늦었던 걸까!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길 통상 30리마다 역이 있었다고 보면 대략 30개의 역이 있었다
역에는 평균 100명 이상의 인원이 상주하며, 말은 50필 정도 있었고 계주(릴레이) 형태로 보더라도 하루 반이면 한양에 도착해야
정상일 텐데 임진왜란 때 봉수대를 피운 흔적은 없고, 파발만 죽어라 운영했던 이유는 뭘까
이 길을 통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양으로 달리던 말과 말고삐를 잡았던 역졸의 숨 가쁜 모습도 그려진다.
임진왜란 이후에 또 한 번의 전쟁인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침략하자 인근의 용골산 봉수대에 적이 침입했다고 연기가 몇 차례 올랐는데 그곳을 책임지던 대원수 김자점이란 인물이 이를 믿지 못해 정찰 삼아 의주로 파발을 보낸다.
의주로 갔던 부하가 와서 큰일 났다고 했지만 순간 화가 난 김자점이 부하의 목을 치려고"야! 이기 어디서 헛소리를...
대군(大軍)이 오려면 압록강이 얼어야 하는데 압록강이 얼었더냐"며 무시를 했고 결국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대피하였다가
청태종한테 굴욕적인 삼고구도루례 까지 하게 만든 인물이다.
(김자점은 조선시대 3대 간신으로 유자광, 엄사홍과 함께 간신계의 최고봉이다.)
파발이나 봉수대 큰 전란이 있을 때 과연 제 역할을 했나 생각하게 만든다.
모로원 고개를 지나
모로원 고개의 신목이 서 있건만
뭐! 딱히 바라거나, 간절하게 빌건 없고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오생 삼거리에서 생리마을길인 예전 국도 3호선으로
생리마을의 고추 먹고 맴맴
동요 고추 먹고 맴맴 노래의 발상지 마을
초등학교 때 부르던 동요인데
윤석중 선생의 고추 먹고 맴맴의 동요마을 앞을 지나면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도착한다.
주막에 들러 밥 한 공기로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한 번에 해결하고
편의점에 들러 휴대폰 비상 배터리 두 개 사서 배낭에 넣고
306번 지방도로 따라 일죽면 하봉 4거리까지 진행해야 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마을 앞에 노숙할 정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은 멀고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 해 빠질 무렵이면 찾아오는 안 해도 될 걱정 미리부터 해보고
아홉살이 고개를 지나며
이곳에서 남쪽으로 멀리 않은 곳 음성군 금왕면 상봉리에는 자린고비의 조륵선생이 계셨던 곳이라
한번 가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하여 급한 마음에 내 갈길만 생각한다.
큰 바위얼굴 테마 파크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주인장이 밖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여 사진만 한 장 찍어도 되냐고 여쭈니 한 장만 찍고 나가란다.
이천시 율면 산성리 마을 앞의 경기도 영남길 표시판
목표를 정하고 그 길 따라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이런 표시판을 만난다
그럴때면 음!~ 잘 찾아왔구나 생각이 들고
지도를 살펴보니 한남정맥길의 문수산을 오르는 경로이다.
과거 보러 가는데 문수산에 올라갈 이유가 있나 싶어 지도는 참고만 하고 내 갈길로
참고 지도
충청도 땅은 끝나고 쌀맛 좋기로 이름난 경기도 이천시 율면땅에 도착
경기도라는 지명의 유래는 임금이 다스리는 곳을 경헌이라 부르고, 통치하기 가까운 기헌이라 부르는데
1,414년인 태종 14년에 문경새재가 뚫리던 해에 탄생한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비가 오려나 멀리서 천둥 번개가 치고 요란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 비 피할 곳도 없고 대략 난감일세
비가 올 것 같아 마음은 급해지는데 길가에 컨테이너 박스가 보여 문을 여니
아주 깨끗하고 맞춤형으로 제작한 듯 보인다.
들어가서 문을 닫자마자 소나기가 퍼붓는다.
지나날 백두대간을 하면서 17일간 비와 함께 걸으며 산신께 대들었더니 요즘은 비가 올듯하면
'산신 할배 조금만 참아 주시면... 하고 빌면 보란 듯 비가 그친다.
오늘도 1초 사이로 비 맞지 않고 5성급 호텔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한겨울 풍찬노숙은 아니지만 한겨울 논가에 쌓아둔 짚단 속에 잠자던 것에 비하면 호텔이다.
함석지붕에 소나기 떨어지는 소리
아스팔트길 위에도 떨어지니 참 듣기 좋고
비 소리를 벗 삼아 잤더니 늦잠
평소 같으면 늦어도 1시 30분인데 새벽 2시가 넘었다.
새벽에 나오니 비는 그치고 검은 하늘은 너무 맑아 별들이 많이 보이지만
밤하늘의 제왕인 북극성만 오롯이 보며 걷는다.
율면 마이산 안내판이 보이는데
금강으로 흘러드는 미호천의 발원지가 마이산 남쪽 계곡이다.
미호천은 지도상으로 마이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음성과 진천 농다리를 지나 청주로 흐르지만
최장 발원지는 음성군 감우리 보현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흘러오는 초평천이 조금 더 길다.
산양리 마을 앞에서
경기도 이천땅을 지나왔으나 밥맛 좋다는 쌀은 구경도 못해보고 소똥향기 가득한 땅 안성땅의 안성고개에 도착
소똥 향기 안성땅도 대단하지만
아랫동네인 김제시도 대단한데 분뇨 공장만 무려 40개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곳이다.
안성땅으로 흐르는 물은 대부분 안성천이며 안성천은 서해 바다로 흘러드는데 발원지로는 삼죽면 내강리 (한남정맥 뒷산 부근)의 안성천과 용인시 처인구 목리의 시궁산에서 발원하는 진위천이 있다.
영조 때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수고(山水古)에는 조선의 산과 강을 12곳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았다. 산수고의 조선 12강(江)
과 산경표(山經表)의 백두대간에서 흐르는 10 대강(구색 맞추기:청천강, 예성강, 임진강)과는 몇 가지 다르다 할 수 있겠다.
산수고의 조선 12 대강을 살펴보면
1, 조선의 궁궐 앞으로 흐르는 한강(임진강)을 가장 먼저 최우선으로 하고
2, 고려의 수도가 있던 예성강을 예우 차원에서 두 번째로 넣은 듯
3, 농업의 기반이 되고 한양을 지척에 두면서 서해로 흐르는 두강인 대진강(진위천과 무한천) 현, 안성천과 삽교천
4, 옛 백제땅으로 흐르는 금강
5, 나주평야를 이루는 영산강,
6, 섬진강, 7, 낙동강, 8, 대동강, 9, 청천강,
10 용흠강(태조 이성계 위로 5대조의 신위와 제사를 지내던 함경남도 함흥에 있고 태조의 높이기 위해 넣은 강
11, 압록강, 12, 두만강 조선의 변방을 넣어 12대 강을 만들었다
글에서 알 수 있듯 서열 3위까지는 모두 한양 인근으로 한강을 통해서 물자나 자원을 빠르게 실어 나르기 용이하다는 이점 때문에 그런 것 같다
12곳 중에서 가장 깨끗한 물은 어디일까
북한에는 안 가봐서 모르고, 금강(진안에서 영동까지). 한강(정선에서 충주호까지) 낙동강(봉화에서 삼강주막까지) 상류지역만 그나마 조금 깨끗한 편에 속하며 경치도 아주 빼어난 곳이다
일죽면 일성로 금산 일반 산업단지와 도드람푸드공장이 있는 금산고개를 지나
이천 옛길 안내판
화봉 사거리에서 도로길을 버리고
장암리로 들어가 중부 고속도로 굴다리 방향으로
소똥향기가 나는 길로 진행하니 이 길도 경기도에서 만든 경기 둘레길과 함께하는 길이다
역시 감각이 우선이다.
며느리 소원바위
며느리가 일하기 싫어서... 결국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니 며느리의 손에서 물이 말랐다는 이야기인데
안성땅으로 흐르는 물은 대부분 안성천인데 비해 이곳의 물은 청미천으로 장호원을 지나 강원도 운주에서 흘러온 섬강 맞은편에서 남한강에 합류한다.
참고로 용인시 처인구의 문수산은 특이하게도 남쪽으로 흐르는 한천은 안성땅을 적시며 흐르는 안성천의 지류인 진위천 다음으로 긴 물줄기이고
동쪽으로 흐르면 일죽면과 장호원을 지나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청미천 발원지가 되고
서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경기도 광주시를 지나 초월읍 지월리에 이르러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여류시인인 허난설헌이 묻힌 곳에 이르렀다가 남한강의 팔당으로 가는 경안천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문수산은 이처럼 세 곳으로 흐르는 물의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장암고개를 지나면서 축사나 돈사의 똥향기가 대단하다.
중부고속도로 아래에 영남길이라는 안내판이 쓰여있다
간밤에 비가 많이 아서 비포장길은 온통 진흙이고
일죽면 월정리로 들어와
지나온 장암고개 방향
일죽면 종배길 조그만 목장 4거리에서 죽산 성지 입구 서기리에 도착해서
38번 서-동대로 죽산천까지 진행
17번 죽산 교차로 아래를 지나
매산리 석불 입상 (부산에서 355km 지점)
죽산면 매산리 미륵마을에서
안성은 과거 팔만 구암자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불교문화가 발전하였는데 특히 미륵불이 많아
미륵의 고장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안성은 24기의 미륵불이 분포하는데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륵불을 보유하고 있는 고장이며
이곳 매산리 미륵불은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과 김윤후 장군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 전한다. 또 중앙의 관리들의 출장 시 숙소로 제공하던 역원(驛院)인 태평원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미륵불의 돌을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도 함께 있으니 아들 낳고 싶은 분 계시면 미륵불상의 돌을 갈아 드시면...
경북 봉화에서 단양,충주,음성을 지나 이곳까지, 그리고 통영대로에서 창원 ,성주,상주에서 합류하는 영남 우로까지 수많은
과거객들이 이곳 미륵 마을을 지나니 모두가 무사 안녕을 기원했을 것같다.
천민이라 여기던 스님네들이 관리하던 이곳에서 그냥 지나쳤을까 아니면 108배나 두 손 모아 기도를 했을까
오늘은 미륵 부처님께 과거 보러 가는 나그네가 이른 새벽에 찾아와 합격을 기원하며 지나갑니다.
죽주산성 앞의 부사 우홍규 청덕애민 선정비
목민심서에 우홍규 이야기 황해 병마절도사, 전라수군절도사등을 지낸 무인으로서 영조 때 정 3품 벼슬을 하셨던 분
우홍규(禹弘圭)가 죽산 부사(竹山府使)가 되었을 때 용인현(龍仁縣)에 갔더니, 그 고을의 어느 사람이 소를 시장에서 팔아 받은 돈 10냥을 옆에 놓아두었다가 도둑을 맞았다.
소를 판 사람이 도적을 따라가니 그 사람이 또한 자기 물건이라고 하여 그만 송사하게 되었다. 현령이 힐문하기를, “돈꿰미의 노끈을 무엇으로 하였느냐?” 하니,
도둑질해 간 자는 대답하지만 소를 판 자는 알지 못하니 여기서 도둑질한 자에게 돈을 주었던 것이다. 우홍규가 의심하여 재차 두 사람의 사는 곳을 묻고 가둔 다음, 비밀히 사람을 시켜서 각각 그 아내를 잡아다가 문초하였는데,
소를 판 자의 아내는 그 남편이 소를 팔려고 시장에 갔다 하고, 도둑질한 자의 아내는 그 남편이 빈손으로 저자에 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도둑질한 자를 심문하여 사실을 알아내니 온 고을 안이 놀라고 탄복하였다. 는 내용
심능석 영세불망비 임금을 가까이서 호위하는 부대소속이니 내금위장이나 금군별장을 지내신 분
참고로 제가 한문을 잘 모르기에 저의 친구 공주의 팔개님(한문학 박사)께서 모든 걸 해석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한문에 까막눈이 아니시겠지만 모르는 한문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공주의 팔개님께 해석 부탁 드려 보십시오
육교에서 본 죽림산 , 산박골산 방향으로 여명이 밝아오고
도로가에 자리하는 주막집 셀프 백반집에 들어가
남의 생일잔치에 미역국으로...
미역국 먹고 과거에 떨어지면 어쩌나
한평교에서
문수산에서 발원해서 흘러온 청미천이 보이고 물은 더럽고 돈사 분뇨와 소똥 향기에 취해 길바닥에 꼬꾸라질 판이다.
축사 냄새가 너무 심하여 골이 띵하고, 한국 농촌 경제의 축이라는 한우 농가와 돼지 돈사로 인해 청미천은 죽어 가고 있으니
전국에서 돼지 농가가 가장 많은 곳이 충남 홍성군 그다음이 이곳이다.
좋든 싫든 돼지들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이곳과 홍성이이라면
지구 최강의 최상위 포식자 인간이 살고 있는 곳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
강릉 인천, 수원, 춘천, 광주, 대구, 대전, 제주, 부산, 울산, 서울이 있는데 소똥향기와 거리가 먼 곳들이다.
산수가 좋은 곳과 살기 좋은 곳은 다른데 산수가 좋은 곳은 가끔 생각날 때 찾는 곳이 되고
살기 좋은 곳은 기름진 땅과 넓은 들판이 있어 집을 짓고 살기에 좋다고 한다. 남송(南宋) 때 주자는 무이산의 경치를 너무 좋아해서
산과 물에 대해서 글을 짓고 그 아름다움을 묘사했지만 그곳에 집을 짓고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옛날 속의 이야기가 아날까 생각이 든다. 요즘은 넓은 들판에는 거의가 거대한 축사나 돈사가 자리하니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안성시 일죽면 방초리 오방 마을을 지나
소똥인지 돼지 똥인지 어지러울 정도였으니
다 큰 돼지는 30리터의 물은 무시고 20리터의 오줌을 싸는데
답답해 보이는 갈색의 청미천 물은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팔당으로 향하여 흐른다.
팔당호는 총 저수량 2억 4천만 톤이며, 경기, 수도권 2천500만 ,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매일 사용하는 식수로써
일일 7,828백만 톤의 상수원수로 공급된다.
지구에는 천만종 이상의 생물이 살고 있지만 혼자서는 살 수 있는 생물이 없다. 모든 생물이 서로가 의지하며 복잡한 사슬에
얽혀 살고 있기에 팔당호로 흘러드는 청미천의 더러운 축사 오줌물도 결국은 먹이 사슬에 얽혀 사람이 먹어야 할 팔자이다.
청미천 건너오면 만나는 방초 사거리
사거리에 서서
이런곳에 서면 갈 길을 잠시 멈추고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해 본다.
나도 너도 누군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이 있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보고 싶은 마음 바람이 되어 둥근 원안에 머물다 바람따라 가다보면 보고싶은 사람에게로 가지 않겠나
텅 빈 사거리에 서서 잠시 바람 되어 갈 곳을 정한다. 인마!~ 간다,
국도 17번 왕복 4차선 옆으로 이어지는 옛 도로 길 따라
길은 가다가 끊어지고 지하통로인 굴다리 지나서 연결되고
우리네 인생도 쉽게 가다가 다시 마음 편하게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길가의 은행나무는 모두 고사한 것인가 삐쩍 말라 애처롭기까지 하고
드디어 용인땅으로 들어와
대주천을 지나
사은 마을도 지나고
음 건너편에는 먹을 수 있는 주막이 있지만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없고
한진드림 익스프레스 물류센터를 지나는데
주인장께서 갓길을 내어 주셨다.
물류센터 안이라 대형차들이 지나다녀 경비아저씨께서 웃으시며 후다닥 빨리 지나가라고...
안성땅 인근으로 특별하게 기억될 산은 없고
하천은 모두 더러우니 앞으로 어찌 살라고 그러시나.
내 집 앞이 깨끗하면 다른 곳도 깨끗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러지 못하다
알아주지 않아도 드러나는 멋이 있고
잘 보이려고 포장을 덕지덕지 해도 잡스러운 것이 있다.
길고 길었던 영남 길도 이제 한양을 목전에 두고 있으나
경부 고속도로 인근으로 어찌 찾아갈지 그리고 한양에 가면 주상전하께서 버선발로 뛰어나와주실지
첫댓글 맷돼지는 주로 산중턱 잡목 사이로 다니며 천적으로 부터 몸을 숨긴다 알고 있는데..
반면 마루금을 타며 날카로운 눈으로 산 아래를 지켜보는 조선의 호랑이 왕대..
이마에 선명하게 그려진 임금 왕(王)자 덕분에 왕대(王大)라 불린 조선의 호랑이는..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섬겨야 할 산신령과도 같은 존재였다 알고 있습니다..
ㅋㅋㅋ
타키님 12구간 백두대간 졸업 축하합니다.^^
@두건(頭巾) 아.. 축하 감사드립니다🤭
3부가 끝이 아니군요 ㅎㅎ
4부에는 한양땅을 밟겠네요.
주막집 셀프 백반집 미역국과 나물 반찬이 무지 맛나게 보입니다.
길고 긴 걸음 만큼 후기도 길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완전 개고생이구만요..ㅎㅎ
그나마 가을이라서 좀 여름과 겨울은 생각만해도...
수고 하셨고요
홀로 긴여정길 걷는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는 걸러봐야만
알겠지요 ~~~~~
함께 하고픈 마음은 조금만 알아주시길 ~~~
수고하시고 고생하셨습니다
다양한 볼거리와 사연이 있는 길
그 길이 이젠 끝이 보이는군요.
언제나 다양하고 소소한 정보를 제공해주시는
방장님의 멋진 걸음을 응원합니다.
은행나무는 고사한것 같습니다.
벌써 은행잎이 저렇게 하나도 없을리가....
음! 대충봐도 월악산근처부터 용인 변두리까지 오신건데 대단하고 부럽습니다. 특히 노숙은 제가 해보고 싶은겁니다. 저는 산에 특전사처럼 땅파고 노숙해보고 싶은데~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 혹 왕방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ㅎㅎ
사계절은 시간이 흘러도 가을이 찾아오고
황금 들녘과 할아버지에 모진 풍파속 살아온 날들이
얼굴속에서 느껴 짐니다.
방장님 용인까지 발걸음..다음 후기 글 기다려 짐니다.
식사좀 많이좀 드셔야 되느데 양이 적습니다..ㅎㅎ
괴나리봇짐 메고 몆날을 날밤새며
재넘고 물건너고 올라봐야 썰렁한 가을풍경 정도밖에 없을건데 제가 멍청이 맹탕 이네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넓은 견식에 감히 그림자도 못밟겠습니다.
꿀이 꽉찬 꿀벌집 같은 과거길 수행기에서 알듯모를듯 많이 얻어 갑니다.
수고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