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의 집에는 간단한 연고와 반창고 그리고 소위 말하는 빨간약(머큐로크롬)
외에는 이렇다 할 치료용구가 없었다. 현일은 급한대로 화장실의 얇은 수건을
붕대삼아 머큐로크롬을 듬뿥 부어댄 희경의 손목을 조심스레 감아주었다.
생리때 먹던 진통제를 바리케이트로 좀전까지 사용했다가 무너진 잡동사니 안
에서 찾아내어 네알을 삼키고 나자 진경은 어느정도 통증도 가라앉고 진정이
되는 것 같아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대체 저 사람들은 누구에요?"
희경은 코앞까지 닥쳐온 죽음의 공포에서 생각치도 못하게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내준 남자들에게 물었다. 태수는 거실 여기저기에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옷가지와 소지품들을 살펴보다가 희경의 질문에 답했다.
"솔직히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차림새나 신분증 같은걸 보아서는
그냥 근처 마을에 사는 주민이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같아보이는데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좀전까지 저... 사람들의 행동은 결코 평범한게 아니였잖아요."
희경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차마 사람이란 단어가 입에서 나오
지 않았는지 억지로 내뱉는 투로 말했다.
"그렇긴 하죠.. 정말 저희로서도 이해할수 없는 일이에요.. 단지 모습이 괴상
하게 변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곳에 오기전에 산에서
한번 더 이런 사람들과 맞부닥친 적이 있는데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경에 대한 간단한 처치를 마친 현일이 말했다. 그러자 태수가 말을 이어 받
아서 부연 설명을 했다.
"지금까지 접해본 바로는 이 사람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적어도 통증과
그에 수반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공포에 굉장히 둔감한 상태에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총알이 배를 관통하고 지나가도 벌에 쏘인 정도의 반응조차 보
이지 않을 정도이거든요, 따라서 왠만한 공격으로는 이들을 쓰러뜨리거나 무
력화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이들을 단번에 쓰러뜨릴 유일한 수단이라
면 신체 전체에 기능을 전담하는 신경계를 공격하거나 심장의 기능을 정지시
키는 것 뿐이라는게 여지껏 살펴본 결과 우리가 내린 결론입니다."
태수의 설명의 황당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임
으로서 생기는 암담함과 공포심 때문이였는지 두 자매는 아무말도 못하고 가
만히 태수와 현일만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이 답답했는지 태수가 한마디를
더 붙였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머리를 잘라버리거나 심장에 구멍을 내버리는 것이 이
들을 가장 확실하게 무력화 시키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만해 주세요.. 정말 끔찍한 얘기네요..."
진경이 진통제의 효과로 약간 몽롱한 기운을 느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요, 끔찍한 얘기죠, 황당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들 눈
앞에 쓰러져 있는 이자들은 10분전 까지만 해도 제가 휘두른 배트에 팔이 부러
지고 늑골이 내려앉은 상태에서도 성난 황소처럼 저에게로 달려들려 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정말.. 이 자들이 사람인 걸까요?"
희경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분명 그것은 민감한 사안이였다. 살아 있는 사
람을 공격해서 물어뜯어 버리는 그들의 공격적 행동이나 무시무시할 정도의
생명력은 분명 괴물이라 할만한 것이였지만 그 밖의 차림이나 행색은 주변의
민간인임에 분명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민간인.. 더 정확히는 마을 주
민이고 어떠한 요인으로 일시적으로 광적인 행동을 보인것이라면 그들의 머리
를 총으로 박살내버리고 심장에 구멍을 내버린 태수와 현일의 행동은 쉽사리
정당화 하기 힘든 것이였다.
"확실히 이중 몇몇은 낯이 익어요, 마을사람이거나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사
람들이에요.. 그렇다는건 지금은 이렇게 괴물처럼 변한채 사람을 습격하고는
있지만 한때는 우리와 마찬가지인 보통 사람이였을지도 보른 다는거 아니에요
게다가.. 어쩌면 이런 모든 현상이 일시적인 걸수도 있어요..."
진경이 희경의 질문에 답하듯 말했다.
"정당방위라고는 하지만.. 이 사람들이 어떤 질병이나 외부 요인 같은 것에
의해 일시적으로 광적인 증세를 보였던 것 뿐이라면 어쩌죠...?"
진경의 말에 태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바닥에 머리가 터져 나간채 널부러져
있는 남자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박살나 버린 지금의 그 시신은 그저
총에 맞아 죽은 죄없는 민간인의 것처럼 보였다.
"외부요인이던 뭐던 간에... 이런 상태의 사람이 우리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
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 나아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이런 괴상한 증세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처럼 정상적인 덕천리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것을 통신기를 통해서.... 희경씨? 라고 하셨죠.. 희경씨 께서 간접적으로나
마 확인했다고 한 이상.. 우리로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들의
공격에서 살아남고 봐야 합니다."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는 태수 대신에 현일이 단호한 어조로 진경을 설득
하려 했다. 그러자 진경은 조금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살아남는다구요.. 하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했던것 처럼 위험한 존재
가 아니라면 어떡하죠.. 단순히 공격적 본능에 사로잡혀서 조금 물어뜯는 정
도의 증세를 보이는 것뿐이였는지 확실치 안잖아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덜 위험할지도 모른다구요? 아가씨 직접 놈들에게 공
격을 받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왜 여기에 왔
는지 아십니까? 오늘 새벽녘에 산에서 심마니의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처음엔
산짐승에 의한 습격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신고되었지만 우리가 직접 살펴본
결과로는 심마니 시신에 난 상처 상당수가 사람에 의해 물어뜯겨 생긴 것이였
고 그 상처들이 심마니를 죽게한 결정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왜냐구요? 그 시신을 확인하고 내려오는 길에 또다른 심마니 한명과 우리 동
료 형사 한사람이, 이.. 괴물같은 인간들에게 우리 눈앞에서 습격을 당해 죽는
것을 직접 두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민간인 차림의 그들을
총으로 잔인하게 사살한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은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가씨의 말대로 일시적 증세일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더라도 치료될수도 있는
질병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그런 생명존중적인 생각을 하고 있
다간 우린 꼼짝없이 시체가 되어서 놈들의 간식거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우리를 공격하는 놈들은 죽여버리고 재빨리
이곳을 뜨는 것 밖에는 없어요!!"
현일은 급박한 상황속에서 일말의 양심에 집착하는 진경의 모습에 흥분해서는
어느새 격한 어조로 거의 소리지르듯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현일의 말
이 잠시 끊기자 태수는 잽싸게 끼어들어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어찌 되었든, 아까 희경씨가 들은 것이 맞다면 마을 교회에 이렇게 변해버리
지 않은 정상적인 주민들이 대피해 있다고 하니까 우리도 그쪽으로 가보는게
어떨까요? 차 없이는 저희들이 왔었던 산길을 통해 마을을 빠져 나간다는 것
은 불가능한 일이고, 게다가 어디에서 또다시 습격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마을로 가서 차량을 구해보는 쪽이 나을거 같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차를 찾기도 훨씬 수월하겠죠? 게다가 진경씨의 상처도 그곳에 있는
구급약품으로 더 제대로 치료할수 있을테구 말입니다."
"그래요, 하지만 교회까지 가려면 거리가 만만치 않아요... 도중에 또 습격을
받지 말란 법도 없구 말이에요."
희경은 태수의 의견에 찬성하면서도 내심 어디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사람들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가 비까지 내려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밖으
로 나가는 것은 내키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표적이 되어 기다리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오히려 자꾸 이동하는 쪽이 유리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우리와 같
은 사람이라면 저들에게도 밖의 상황은 똑같이 불리할 테구 말이에요."
태수는 희경을 안심시키면서 현일 쪽을 보았다. 어느새 평정을 되찾고는 자동
권총의 탄창에 탄알을 장전하고 있던 현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역시 찬성입니다. 일단은 교회쪽으로 이동합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
요한건 마을밖까지 우리를 태워다 줄 자동차니까 말입니다."
"알았어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진경 역시 문이란 문은 죄다 부숴져 버린 자신의 집에 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판단하고는 찬성을했고 네 사람은 세차게 내리치는 빗속으로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이 채비를 갖추고 진경의 집을 나섰을때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욱 굵어져 있었다. 마치 하
늘에 구멍이라도 뚫린양 쏟아지는 비때문에 한사람당 하나씩 들고 비추고 있는 손전등 불빛도
고작해야 2~3미터 앞의 사물을 간신히 분간할수 있게 해줄뿐 전등이 만들어내는 흰색의 빛기둥에
보이는 건 빠르게 떨어지는 물방의 궤적 뿐이였다. 비가 감추어 버린 것은 그들의 시야뿐만이
아니였다. 세차게 바닥을 내리치는 빗소리는 서로 가까이 붙어서 걷고 있음에도 서로간에 의사
소통이 불편할 정도의 소음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일행의 시각과 청각 정보는
매우 제한된 상태였고 그러한 답답함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습격자들의 공포와 합쳐져서 빗속
을 걷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선두에 나서서 사방을 주시하며 걷고 있는 현일의 뒤에 바짝 붙어서 진경이 걷고 있었다. 진통제
는 손목에서 끊임없이 전해지는 통증을 어느정도 잦아들게 하였지만 동시에 정신을 몽롱하게 만
들어 똑바로 걷는것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차가운 빗줄기로 인해 낮아진 체온도 심한 출혈이 있
었던 그녀에게는 큰 영향을주고 있었기에 진경의 몸은 연신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문득 돌아본 진경이 심하게 떨고 있는것을 본 현일은 놀라며 물었다.
"괜찮아요, 좀... 춥네요.. 비를 맞아서 그런지.."
"이런.. 약기운 때문에 체온조절이 제대로 안되는 걸거에요.. 낭패군.. 옷을 좀더 껴입고 나왔어
야 하는데.. 교회가 여기에서 먼가요?"
현일의 질문에 진경은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간신히 불빛이 비추어지는 곳의 풍경을 살펴보
았다. 그들은 지금 산을 따라 만들어진 밭과 그 앞에 이어진 논 사이의 둑길을 걷고 있었다. 진
경의 집에서 마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였기에 선택한 곳이였지만 쏟아지는 비로 질퍽해진 바닥
탓에 그들의 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못했기에 그리 빨리 도착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1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할거 같아요.."
진경의 대답에 현일은 진경쪽으로 다가와 진경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래가지고는 10분은 커녕 5분도 채 못견딜 거에요, 나한테 붙어서요. 지금으로선 체온으로라도
몸을 보호하는 수 밖에 없을거 같으니까..."
진경은 갑작스레 현일이 자신의 몸을 끌어안자 조금 당황하면서도 몸과 몸이 붙으면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를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 역시 현일 쪽으로 몸을 기댔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상태라서.."
현일은 손전등이 비추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채로 진경에게 사과의 말을 꺼냈다.
"아니에요, 이런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침착하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걸꺼에요, 저도 공포
에 질려서 상황파악 못하고 뗑강부린거 밖에 더되나요..."
"하하... 그런식으로 말하시면 제가 더 미안해집니다.."
현일은 쑥스러운듯 웃으면서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둑길 여기저기를 비춰 보았다.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위협에 대한 경계를 위한 것도 있겠지만 만난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의
어깨를 감싸안고 있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동작이기도 했다. 그러던중 현일
은 문득 뒤편이 조용하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태수와 진경의 동생인 희경이 쫓아오고 있을 터인
데 빗소리때문에 소리가 묻힌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여지껏 한마디 말도없이 이렇다할 기척도 별
로 느껴지지 않았던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일은 불안한 마음에 얼른 뒤로 돌아보며
손전등을 가져갔다. 그러나 현일의 손전등 불빛이 닿은 곳에는 태수와 희경이 멀쩡하게 나란히
서서는 현일의 품에 안긴 진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음흉스레 웃고 있었다.
"얼레리 꼴레리.."
태수가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현일을 놀리며 웃어댔다.
'헤구.. 내가 저녀석을 걱정했다니 미쳤지...'
현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앞으로 손전등 불빛을 돌렸다.
"언니분하고 우리선배 분위기가 좋아보이죠?"
"그러게요... 그다지 언니 타입은 아니신데..."
"왜요, 남자답고 머리좋고.... 지금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렇지 여자한테 매너도 좋아요 선배.."
"그래도.. 우리 언니 타입은 미소년 쪽인데..."
"큰일이네, 선배는 그쪽하고는 담쌓은 얼굴인데!"
태수와 희경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농담은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현일의 귀에 들려왔으나 현일
은 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다. 진경 역시 두사람의 만담이 들렸는지 아무
말 없이 기댄채 현일이 가는 데로 따라서 걷기만 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가야해요."
어둠속에서 갑작스레 갈림길이 나타나자 진경은 손으로 오른편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에 따라
그쪽 편으로 빛을 비추자 전신주와 담벼락이 보였다. 민가가 모여있는 지역으로 들어서는 보이지
않는 마을 입구쯤 되는 곳인 모양이였다.
"조금만 더 가면 교회 건물이에요..."
진경의 말에 네 사람은 바싹 긴장했다. 지금까지는 별일 없었지만 아까 희경이 통신기를 통해 들
은 소리가 진짜라면 마을 어디엔가 이상하게 변해버린 사람들이 숨어있을지 알수 없는 노릇이였
던 것이다. 태수와 현일의 손에는 어느새 권총이 들려 있었고 희경 역시 태수에게 받은 배트를
치켜들며 언제라도 휘두를 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네요... 마을 길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어요..."
태수는 신발이 다 잠길 정도로 바닥에 들어찬 빗물을 보면서 말했다.
"시골이라서 배수구가 없어요.. 논이랑 연결된 배수로가 막히면 이렇게 마을까지 물이 들이 닥치
죠.. 보통 이쯤 되면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물길을 트곤 하는데..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네요"
희경의 설명은 새삼 이 마을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수 있게 했다. 20여 미터를 더
걸어가자 어둠속에서 꽤나 커다란 건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2층 높이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
은 놀랍게도 외벽을 붉은색 벽돌로 치장한 꽤나 그럴듯해 보이는 교회 건물이였다. 마을주민이라
고 해봤자 다해서 200명도 채 되지 않을 조그만 마을에 들어선것 치고는 꽤나 고풍스럽고 커다란
건물에 현일은 놀라며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와.. 상당하네요 이런곳에 있는 교회 치고는..."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이에요.. 무슨 목적인지 몰라도 여기에 지어졌다가 해방후에 잠시 창고
로 쓰이던 것을 교구에서 사들여서 교회로 개조한 거죠..."
희경은 호기심에 마을의 역사에 대해 조사해본 경험을 빌어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크긴
하지만 교회 건물이라고 하기엔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저기 봐요.."
태수는 작은 창 틈으로 하얗게 새어 나오는 형광등 불빛을 보고는 소리쳤다.
"어서 들어갑시다."
현일은 내심 안심하면서 진경을 부축하며 건물의 정문쪽으로 다가갔다. 당연히 잠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던 교회의 문은 현일이 손으로 밀자 뜻밖에도 스르륵 열렸다. 양쪽으로 열리게 되어있는
커다란 나무문이 안쪽으로 열리면서 경첩에서 삐그덕 거리며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목재문 안에
는 작은 로비가 있었고 다시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유리문이 나타났다.
유리문 안쪽에서 비추어져 나오는 불빛 덕분에 로비는 상당히 환했다. 손전등의 스위치를 끄고는
태수가 앞으로 나와 유리문을 열어 재꼈다.
"맙소사...."
유리문 안쪽의 풍경을 보자마자 태수는 낮게 신음하였다. 뒤따라 들어오던 희경은 아무말도 못하
고 숨을 죽인채 한쪽에 놓여있는 탁자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손을 짚었다. 현일 역시 피로와 충
격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진경을 간신히 부축하면서 놀란 눈으로 교회 안을 둘러보았다.
3m쯤 되는 높이의 교회건물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나무를 이어 붙여서 만들어진 바닥은 건물이
지어진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조금은 낡은 느낌이였으나 상당히 튼튼한 것이였다. 가장
앞쪽에는 바닥보다 조금 높여 만든 연단이 있었고 뒤편으로는 짙은 자주색의 커튼이 둘러져 있었
다. 그 커튼 가운데 커다란 나무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양편으로 걸쳐서 종이에 써서 붙인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글귀가 걸려져 있었다. 연단에서 조금 떨어져서 놓여져 있는 기다란 나
무 의자들은 2열로 양쪽에 나란히 놓여져 있었던 것 같았으나 지금은 마구 흐트러진 채 엉망으로
이리저리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자들 사이사이 마다 여기저기 피칠갑을 한 마을 주민들이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
다. 몇몇은 의자에 앉은 채 엎드려 있었고, 몇몇은 통로와 의자 밑에 널부러 진채 간간히 겹쳐져
쌓이듯이 누운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도 끔직한 것은 가장 앞의 연단이였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연단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들이 흘린듯한 피로 연단은 새빨갛게 물들어
져 있었고 가장 가운데 나무 십자가에 기대어 목사인듯한 복장을 한 초로의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너무 늦었군, 이곳도 놈들의 습격을 막지 못했던 거야..."
현일은 침통하게 읊조리며 연단이 있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에 구급상자가 있어요..."
연단 뒷쪽의 사물함을 뒤지던 태수가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플라스틱 상자
를 꺼내 들고는 소리쳤다.
"그런데 대체 그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요?"
희경은 바닥과 같은 목재로 만들어진 연단의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앉으며 물었다. 수구의 시체
들과 거기서 나온 피로 물들어진 연단에 편안하게 앉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했기에 그들로
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으려는 수고였지만 그리 효과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태수에게 건네받은 상자에서 필요한 것을 꺼내 진경을 치료하면서 현일은 말했다.
"저희로서도 알 길이 없죠... 애초에 이곳에 올때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으니.."
"하여간에 숫자가 상당한 것은 분명해요, 아무리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였다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공격하려면 몇명가지고는 어림도 없을테니까 말이에요..."
태수는 주위에 널려져 있는 수십구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그보다 이상한건.. 외부로 부터 이렇다할 침입 흔적이 없다는 거야..."
현일이 자뭇 심각한 어조로 말하자 그제서야 태수와 희경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분명 교회 내부는 집기들이 여기저기 널부러 진채 격렬한 저항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
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보았던 현관의 나무문이나 이어지는 유리문은 말짱한 채 전혀 부수고
들어온 흔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창문도 문도.. 부숴진게 없어요, 아까 진경씨 집과는 달리 말이에요,
이건 마치..."
태수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자신도 믿기지 않는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뒤의
말을 자신도 알기라도 하듯 희경이 받아서 이었다.
"마치 안에서 부터 공격을 받은거 같아요..."
"그건 이상하지 않아요? 안에서 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주민들이 이 괴물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상태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이잖아요... 게다가 이정도의 인원을 습격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면 그들이 이곳에 숨어있는 것을 모른채 들어왔다는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요.."
태수가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현일이 치료를 마친 진경을 바닥에 누이며 말했다.
"한가지 가능성이 있지..."
"가능성이라뇨?"
희경은 바닥에 누운채 혼미한 정신을 부여 잡기위해 애쓰며 괴로워 하고 있는 언니쪽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괴물로 변하게 하는 요인이 전염 되는 것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전염?!!"
현일의 말에 놀라며 태수가 소리쳤다.
"그래, 우리가 봤던 그 괴물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변한 것이고 그것이
감염자에게 물린 상처를 통해 전염되는 것이라고 가정해 보잔 말이야, 그럴 경우 그 사실을 모르
고 감염자에게 물린 부상자들까지 함께 대피를 해서 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을거야, 그리고 얼마
안있어 전염된 사람들이 하나둘 발작을 일으키며 바깥에 있었을 괴물들과 같이 변해버리게 되고
결국 그런식으로 변해버린 사람들에 의해 안에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던 거지.. 그렇게 되면
다시 이곳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봉해놨던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치려 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될
거고 말이야..."
태수는 손으로 그들이 들어올때 지났던 교회의 출구쪽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상당수의 사람
들이 입구 근처에서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잠겨진 문을 열자마자 밖에서 부터 또다른 놈들이 쳐들어 온다...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여기저기에서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죽고 만다..."
태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누워있는 진경을 보았다. 그런 태수의 모습을 보곤
희경은 놀라며 진경을 감싸 안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해요...!!"
"그렇죠, 가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는 얘기죠, 진경씨 몸은 좀 어떤가요?"
현일은 애서 태연한척 하면서 진경에게 물었다.
"잔인하시네요.. 그런 말을 하고 나서 몸상태를 물어보시다니... 몽롱하긴 하지만 아직 정신은
말짱해요.. 다만..."
진경은 머뭇거리면서 힘겹게 말했다.
"아까부터 온몸이 따가워요, 마치 무언가가 몸안에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에요... 자꾸 갈증이
나고... 여기 오는 와중부터 몸이 이상해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요, 어쩌면 현일씨의 가설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언니! 무슨 소리야!!"
희경은 화를 내면서 진경의 몸을 흔들어 댔다.
"미안해 희경아.. 하지만 온몸이 불타 없어지는 것만 같아.. 너무 뜨겁다구, 몸속에서 뭔가가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 정신도 혼미해지구.."
"정신차려 언니! 말도 안돼는 소리에 현혹되지 말라구!!!"
희경은 흥분해서 울부짖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바로 그때 희경의 뒷편에서 누군가가 신음과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모두.. 사실입니다..."
"꺄악!!"
희경은 자신의 뒷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진경을 부여
잡은채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신부였다. 희경의 뒷편에서 십자가에 기대어
앉아있던 피투성이의 신부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선 일행을 힙겹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악마였습니다..."
"맙소사 살아있었군요!!"
현일은 놀라며 신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 교회 안에서?"
"당신의 추리대로입니다... 우리는 괴물로 변해버린 형제들에게서 도망쳐 이곳으로 대피했었죠.
다행히 건물이 튼튼했던 터에 어느정도 안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그들
에게 물렸던 사람들 중 몇몇이 숨이 끊어졌고.. 그뒤 갑자기 죽었던 자들이 다시 일어서서 우리
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농간입니다.. 질병이나 바이러스 같은것이라면 죽은
시체를 일으키진 못할테니까 말이에요.."
신부는 말하는 것도 힘이 드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죽은 사람이 움직였다구요?"
"그렇습니다. 한번 숨이 멎은 사람은 수분 안에 괴물로 변해버렸어요... 그리고 우리를 공격했죠
그들에겐 십자가도 성경도 소용 없었습니다. 다만 끔찍한 살육과 공포만이 이곳을 뒤덮었을 뿐..
몇몇은 간신히 밖으로 도망쳤지만 그도 잠시 밖에서 부터 다른 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얼마 못
가 교회안의 모든 사람들이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나도 간신히 살아있을뿐 더이상 버틸 힘이 없
군요...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믿었건만.. 이곳에서 이런식으로..."
신부의 말은 갑자기 끊겼다. 놀란 현일은 신부의 목에 손을 가져가 맥을 짚어 보았다.
"젠장.. 숨이 멎었어..."
현일은 안타까워하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선배..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요..."
갑자기 일어서 입구쪽을 바라보며 태수가 말했다. 현일은 고개를 돌려 예배당 안을 둘러보고는
놀라서 자신도 일어서며 총을 꺼내 들었다.
"맙소사..."
진경을 부축하며 일어선 희경은 태수와 현일이 있는쪽으로 다가와 섰다.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
쪽으로 수명의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정체가 무
엇이 되었든 예의 사악한 기운에 몸과 정신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그들의 입장이 신호라도 되는듯 아까까지만 해도 가만히 누워있던
예배당 안의 주민들 시체가 들썩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끄으윽.. 끄윽...'
익히 들어왔던 괴이한 신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건물벽에 반사되며 예배당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
했고 소리가 커져감에 따라서 여기저기 누워있던 사람들이 흉하게 얼굴을 일그러 뜨린채 일어서
기 시작했다.
"정말이야.. 죽은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태수는 긴장으로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수가 없군.."
"안돼!!"
희경은 비틀거리는 언니를 부축하려다가 옆에서 누워있던 연단위의 시체가 갑자기 팔을 뻗어 자
신의 발목을 잡으려 하자 얼른 발을 빼들어 걷어차며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본 태수는 얼른
그쪽으로 다가가 진경을 함께 부축하며 그나마 시체들로부터 가장 먼 연단 중앙의 십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조금전에 숨이 끊긴 신부의 시체가 누워있었다.
"입구가 모두 막혔어..."
출구쪽에 몰려있던 시체들이 죽은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유연한 동작으로 일어서는 모습을보면서 현일은 낮게 신음했다. 뿐만 아니였다 열린 문으로 밖으로 부터 또다른 한무리가 교회
안으로 이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현일은 또다른 출구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창문은 사람키보다 높은곳에 있을뿐더러 크기도 작았고 예배실 왼편으로 나있는 작은 쪽
문이 보였으나 그 앞에도 수구의 시체들이 쌓여있는데다 상당수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
였다.
'탕!!'
태수의 총이 갑자기 불을 뿜었다. 조금전까지 연단위에 누워있던 시체 한구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켜 그들에게 달려들려고 했던 것이다. 태수의 총에 머리 반쪽이 터져나간 시
체는 바람이 새어나가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그자리에 뻗어 버렸다. 분명 뇌를 공격한다
는 그들의 작전이 효과가 있는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고 해
도 사방에서 동시에 다가오고 있는 수십명의 마을 주민들을 한번에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진경씨.. 다른 출구는 없습니까?!!"
현일은 양손에 총을 들고 여기저기 휘둘러 대면서 소리쳤다.
"없.. 어요.. 저 두곳 밖에는..."
열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지 진경은 희경과 태수의 몸에 기댄채로 더듬거리듯이 대답했다.
"곤란한걸요.. 선배님, 이렇게 많은 수를 상대로는 방도가 없어요..."
"젠장.."
태수와 현일은 그들을 가운데 두고 뱅 둘러싼채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
을 겨눈 채로 사방을 살폈다. 아직은 그들을 멀뚱히 바라보며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에서 공격이 시작될지 알수 없는 노릇이였다. 긴장으로 둘의 호흡은 빠르고 거칠어졌고 두눈
은 깜빡일 시간도 아까운듯 부릅떠진채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사태를 살피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였다, 언니를 부축하고 있던 희경이 힘에 부쳐 자꾸만 자기쪽으로 쏠려오는 언니의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발을 굴렀던 것이다.
'퉁~'
희경이 세게 발을 구르자 바닥에서 둔탁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아무리 나무바닥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 앞에서 지나왔던 교회의 다른 나무바닥과는 다른 것이였다. 그 차이를 느낀 희경은
놀라서 다시 한번 발을 굴러보았다.
'퉁, 퉁!!'
희경의 짐작이 맞았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가 서있는 아래로 상당한 공간이 있다는게 확실했다.
놀라서 다시한번 살펴보니 신부의 시체에 가려져서 안보였던 나무바닥의 경계가 눈에 띄었다.
연단위 십자가 바로 앞에 작은 나무문이 아래쪽을 향해 나있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여기 문이 있어요!"
희경의 외침에 태수는 놀라며 희경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그러자 신부의 시체로 반
쯤 가려져 있는 작은 나무문이 보였다. 분명 지하로 통하는 문임에 틀림없었다.
"이런게 있었다니!!"
태수는 잽싸게 몸을 낮추어 신부의 시체를 굴리듯이 옆으로 밀쳐내고는 잠시 손으로 나무문의
경계를 더듬어 보더니 곧 그것을 열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그 아래쪽으로 시커먼 공간이 들어왔
다. 상당한 넓이의 지하실이 그 밑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놓았던
손전등을 꺼내어 아래를 비추어 보자 계단이 눈에 보였고 2M쯤 아래쪽에 시멘트인듯 보이는 바닥
도 얼핏 보였다.
"선배님 여기 지하실이 있는데요!!"
"더 생각할거 없어! 어서 내려가자!!"
현일은 태수가 아래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을 보았는지 갑자기 달려드는 사람 하나를 총으로 쏘
아 쓰러뜨리고선 소리쳤다. 그에 태수 역시 서둘러 희경을 거들어 진경을 부축하며 좁은 통로를
통해 아래로 거의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현일은 희경이 내려가자 마지막으로 뒤를 따라 통로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전의 공격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달려
들기 시작했고 아래로 통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현일의 총은 그들을 향해 연신 발사되었
다. 모두 6발이 들어가는 리볼버의 탄환은 곧 바닥이 났고 그것을 재빨리 허리춤에 끼워넣으면서
나머지 한손에 든 자동권총을 난사하며 현일은 열려있는 나무문을 부여잡고 잽싸게 닫으며 마지
막 계단을 밟으려 했다. 막 나무문이 닫히려는 순간 조금 남아있는 틈새로 순간 사람의 손이 비
집고 들어와 억지로 나무문을 들어 올리려 하였다. 놀란 현일은 총을 겨누며 살짝 손의 임자를
보았다. 그것은 조금전 까지 그들 곁에서 쓰러져 있던 신부였다.
"이런!!"
현일은 신부의 얼굴에 총을 겨누었다. 바로 그때 반쯤 일그러진 신부의 입이 열렸다.
"나를... 나를 죽여주시요..."
현일은 놀란 눈으로 신부를 쳐다보았다. 피투성이의 얼굴이 반쯤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의 분명한
목소리와 아직 선명하게 살아있는 눈빛은 그가 마지막 정신을 부여잡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스스로를 죽이는 죄를 범하고 싶지 않소.. 나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줘요..."
신부는 힘겨운 목소리로 괴로워하며 현일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 중간중간에는 괴물
로 변한자 특유의 신음소리가 조금씩 섞여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현일은 나무문
아래쪽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잡은채 잠시동안 신부의 눈을 마주보았다.
"젠장...."
망설임도 잠시 현일의 총구가 신부의 미간을 향했다.
"주여 용서하소서..."
'탕!!'
총소리와 함께 신부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나무문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현일
은 신부의 최후를 미쳐 보지도 않고 재빨리 나무문을 닫고서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걸쇠를 잡아
당겨 문을 잠궜다.
손전등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태수는 천정에서 내려온 달걀모양의 작은 스위치를 발견하고선 전등
을 켰다. 천정에 달려있던 두개의 커다란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어둡던 지하실이 밝아지자
넷은 주위를 자세히 살펴볼수 있었다. 지하실은 거의 1층 예배실 규모의 매우 커다란 것이였고
여러가지 집기와 뗄감을 쌓아놓는 창고로 쓰고 있는것 같았다.
"이런곳이 있다니 굉장하네요..."
태수는 감탄하며 천장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들어왔던 나무문과 그 주변 일부를 제외하고는
천정 역시 바닥이나 벽과 같이 시멘트로 마감이 되어 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구조였는지 후에
보강을 한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바닥하나를 두고 윗쪽의 수많은 괴물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에서는 그나마 한동안 안심을 할수 있게 해주는 사실이였다.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쪽은 한동안
문을 열어보려는 듯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현일이 몇발인가 총을 쏴서 몇을 쓰러뜨리자
곧 조용해졌다. 본능인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지적 능력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어찌되었든간에 그쪽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아차린 모양이였다.
"저정도 숫자라니.. 게다가 대부분은 마을 주민인듯 보였어요..."
희경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쪽에 놓여진 반쯤 부숴진 나무 의자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그 옆에 진경 역시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자기 힘으로 힘겹게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얼핏 봤지만 모두 마을 사람들인거 같았어요.. 상황적으로 봐도 안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은 대
부분 마을 사람들이라고 봐야겠죠, 나중에 밖에서 들어왔던 쪽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것이 아마도
주변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 같구 말이에요... 하여간 저정도의 숫자라면..."
진경은 잠시 말을 멈추고선 세사람을 둘러보았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변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건 없어요..."
"역시나..."
현일은 안타까운듯이 뇌까렸다.
"어찌 됐든 출구를 찾읍시다..."
"출구라구요 선배?"
태수는 아직도 이제 괴물이라고 할수 밖에 없게 변해버린 사람들이 서성이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
오는 나무문 쪽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래.. 여기 있는 집기들을 봐, 저기 있는 테이블이라던가 의자들.. 저정도 크기의 물건들을
여기까지 내려오려면 저 작은 문으로는 무리야.. 어딘가에 진짜 출입구가 있을거야, 내 생각엔
밖으로 통해 있을거 같은데.."
"정말 그렇겠네요..."
희경은 현일의 설명에 희망이 보이는듯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저도 일전에 교회 밖의 지하 입구로 뗄감을 나르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나요, 내 기억
이... 맞다면 아마 교회 뒷편으로 난 출구가 하나 더 있을거에요.."
진경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서며 말했다.
"뒷쪽이라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어!!"
태수 역시 좋아하며 여기저기 쌓여있는 집기들 사이로 나아가며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지하실 한쪽편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끼기기긱, 콰강!!'
넷은 놀라며 소리가 나는 쪽을 찾으려 했지만 여러가지 물건들로 복잡한 지하실 안에 소리가 메
아리 치며 방향감이 없어지는 바람에 정확히 어디서 난 소리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또다른 소리가 이어졌다.
'쏴아아아~'
그것은 대량의 물이 지하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인것 같았고,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그들의 발목께로 차가운 물이 밀려 들어왔다.
"아앗~ 뭐죠 이건?!!"
희경은 갑작스런 물세례에 놀라며 소리쳤다.
"설마..."
태수는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는듯 재빨리 물길을 따라 달려갔다. 그런 태수의 뒤를 따라 나머지
세명도 쫓아갔다.
"역시나.."
태수는 자신의 생각이 맞아들었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조금은 당황스런 광경을 바라보았다
조금전의 굉음은 그들이 찾고자 했던 지하실 출입구의 문이 부숴지면서 낸 소리였다. 꽤나 두꺼
워 보이는 철제문은 경첩이 완전히 구부러진채 지하실 바닥에 내동그라져 있었다. 그리고 형광등
불빛이 닿지 않아 어두운 벽 한쪽에 뻥하니 뚫린 입구를 통해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고
그 계단으로 대량의 물이 계속해서 지하실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진경이 당황하며 물었다.
"빗물입니다.. 폭우가 우리가 생각한것 보다 심각한 수준인 모양이에요.. 지하실 입구가 있는
공간에 물이 차서 수압을 못이긴 문이 터져나간 겁니다.. 어찌 되었든 입구를 찾았으니 일단 밖
으로 나가죠!!"
현일은 말을 마치자 마자 자신이 앞서서 밖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뒤를 희경과 진경이
따랐고 마지막으로 태수가 올라갔다.
계단을 몇단 올라서자 마자 세차게 내리치는 빗물이 어깨를 때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이리저리 부닥치고 있는 사이 밖에서 내리치던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있었고 그동안 내린
비로 인해 이미 대부분의 평지가 물에 잠겨 있는 것이 보였다.
"정말 엄청난 비군요!!"
태수는 현일을 향해 말했다.
"이런.. 정말 곤란하게 됐어요..."
그런 태수의 뒤에서 진경이 당황하며 말했다.
"왜그러죠 진경씨?"
"이정도로 비가 심하게 내린다면... 분명 강물의 수위가 높아져서 다리가 잠겼을 거에요, 설령
차를 구한다고 해도 마을 밖으로 빠져 나가는게 힘들게 됐다구요.."
"맞는 말이다 태수야, 일전에 이곳으로 통하는 다리를 지나 본적이 있는데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서 이정도의 비라면 강물이 다리를 넘겼을거야 게다가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치는 상태라면
걸어서든 차를 타고가든지 간에 그 다리로 마을을 빠져 나간다는 건 불가능해.."
"새로 만들고 있는 다리는요? 여기 오면서 봤는데 새로 큰 다리를 만들고 있던데..."
희경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 다리라면 아직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서 건넌다는건 불가능해 희경아.."
진경은 희경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듯이 대답했다.
"산길을 어때요 선배? 우리가 왔던 길로 돌아갈수는 없나요?"
"그쪽으로도 무리다, 아까 넌 누워있어서 몰랐겠지만 그 길은 산을 따라 난데다가 완전 비포장
도로야.. 이정도 비라면 중간중간 진창으로 변해서 지프가 아닌 다음에야 제대로 나가지도 못할
거야, 게다가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산속에 숨어 있지 말란 법도 없고, 비가 이렇게 심하게 내린
다면야 산사태의 위험까지 있어.. 그쪽으로도 빠져나간다는건 불가능해.. 진경씨 다른 길은
없을까요? 외부로 통하는 다른 길 아시는거 없어요?"
"저도 잘.. 항상 아는 길로만 다녔으니까요..."
"곤란하군..."
"어찌 되었든 간에 일단은 차를 찾아보죠, 이렇게 노출된 상태로 돌아다니는건 아무래도 위험한
데다가.. 어느쪽이 되었든 일단 차가 있어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태수는 말을하며 진경쪽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상태가 나아진거 같다고는 하나 진경의 모습은
상당히 위태해 보였고 그런 진경을 계속 걷게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마을에 차가 있을까요 진경씨?"
"무리에요.. 시골이라서 차를 가지고 있는 집이라곤 손에 꼽는데다가.. 변해버린 사람들 속을
뚫고 가야 한다면.."
"그렇겠군..."
진경의 대답에 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지만?"
"공장이라면 어떨까요?"
"공장?"
진경의 말에 현일은 놀라며 반문했다.
"그래요, 비료 공장이라면 트럭이라도 있을거 아니에요.. 게다가 여기서 공장까지는 넓은 공지로
난 길을 따라서 20분 정도만 가면 되니까요..."
"그렇군요. 공장이라면 분명 차가 있을겁니다, 선배"
"아니야.. 아까 봤잖아.. 공장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버린 모습을, 그곳이라고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다구..."
"하지만 적어도 차는 구할수 있잖아요, 게다가 우린 무장한 상태구 말입니다. 차만 구하면 거기
서 빠져나오는건 순식간일 거라구요... 제가 보기엔 가능성 있어 보이는 얘긴데요.."
태수의 말에 현일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황에선 무엇보다도 차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였다. 게다가 공장이라면 확신도 없이 위험스런 마을길을 돌아다니는 것보다 확률적으로
훨씬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게다가 그들은 지금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괴물들
과 맞서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지 이렇게 고민만 하고 서있을수는
없었다.
"좋아요, 일단 공장으로 가보죠!"
"오케이! 진경씨 어디로 가면 돼죠?"
태수는 현일이 결정을 내리자 쾌재를 부르며 진경에게 물었다.
"저쪽 길로 가면 돼요.."
"그럼 더 지체할거 없이 어서 가도록 하죠!"
현일의 말이 신호라도 되듯 네 사람은 다시 어두운 빗길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이동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듯 교회 안에서는 괴물로 변한 사람들의 신음과 괴성 소리가 빗속에
묻힌채 아련하게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