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은 역사 소설을 많이 쓴다.
그 부분에서는 한국에서 별로 따라 올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김진명의 소설은 도박사와 무궁화 꿏이 피었습니다 를 읽었는데,
살수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살수란 살수대첩의 주인공인 을지문덕의 이야기이다.
왠지 무협 소설같은 느낌이지만, 작가 나름대로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중국의 옛황제가 등극하자 마자 고조선에 와서 경배했다는 내용과 시경과 중국역사서에
한국에 대해서 나온다는 점 등이다.
여기서 특별히 삼국지의 제갈량과 조조에 대한 해석을 한 부분이 흥미로운데,
그의 글을 소개해 보겠다.
양광(고구려 침입한 중국황제)과 유사룡의 대화
-유 대신이 생각하기에 일국의 황제는 부드러워야 하오? 엄해야 하오?아니면 그 중간이 좋겠소?
-딱히 정해져 있는 바는 아니지만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에는 부드러워야 하며 안정되어 있을 때에는
엄해야 합니다. 중용은 좋지 않습니다
-그 반대가 아니오? 혼란기의 황제가 지나치게 부드러우면 잡아먹히기 십상이고, 안정기의 황젝가
엄하면 민생이 불행하여 국력이 약해지지 않소?
양광은 유사룡의 말이 재미 있다는 듯이 그를 흝어보며 물었다.
-작게 보면 그렇습니다. 허나 반대로, 혼란기의 황제가 엄하면 민란과 분파를 가져오게 되며 타국에 위협이 되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한 황제라 하시면 법치의 성격을 띠게 될진대, 혼란기의 법이란 경위와 때를 맞추기가 어려워 차라리 순리를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같은 맥락에서,안정기의 황제가 부드러우면 여루 중신들이 힘을 갖게 되고, 지방의 귀족을이 어줍짢은 야망을 품게 됩니다. 국가가 안정스러울 때에는 여러가지 국가적인 사업을 벌이는 것과 때가 맞습니다. 한데 이에 무른 성격을 지닌 황제가 사업을 한다면 시일은 오래 걸리게 되어 단시간에 많음 힘을 소비하는 것만 못하며 소심한 지출을 여러번에 나뉘어 하게 되어 과감한 지출을 단번에 하느니만 못합니다. 강함속에 부드러움을 감추거나, 부드러움속에 강함을 감추는 일 역시 일국의 황제에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신과 백성에게 있어 이러한 중용의 길은 미덕일 수 있으나, 만일 황제가 이러한 중용을 띠게되면 조정은 혼란스럽고 나라는 갈피를 잦ㅂ지 못하여 결코 외곬을 띠느니만 못합니-
유사룡의 말은 일리가 있었으나 양광은 쉽게 인정할 수가 없었다.
-유대신은 여러모로 멀리 내다본 듯하오. 그러나 가까운 과거의 위무제(조조)를 보면 결코 안정기라 할 수 없었던 때에 강함을 내세워 부드러움을 제하였고. 그다가 그에 맞섰던 요순 이래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제갈무후(제갈공명)역시 군주에게 법치주의를 극력 주장하였는데 이에 관해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진왕 저하는 저를 놀리시려는 듯합니다-
-하하 내가 어찌 대신을 놀리겠소,진정 궁금하여 그러니 대답해 주시오
-빚나가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정 그러하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무제는 엄한 군주라기 보다는 앞서 말씀하신 중용의 성격을 띤 군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비록 엄격한 체제를 내세웠지만 신하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하였으며 기본적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였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가 세운 위국은 결국 사마의에 의하여 전복됩니다.사마의 같은 자가 생겨난 이유는 그가 신하들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가 전적으로 부드러운 자였다면 사마의에게 충심을 갖도록 할 수 있었을 테고, 전적으로 엄한 자였다면 사마의가 감히 그런 뜻을 품지 못하도록 하였을 겝니다. 제갈무후의 경우는 군주에게 법치를 주장한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법자체가 되려 하였습니다. 때와 경위를 맞추지 못하는 고정법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법이 되어 나라를 관리하려 했던 것이지요. 만일 제갈무후가 섬겼던 것이 현명한 황제였다면 그는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