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든 남자
기막힌 날씨다. 에어컨이 없이는 도무지 견디기 힘든 여름이다. 또 언제 이렇게 더웠을까? 첫애를 가졌던 그 해 여름과 시아버님 돌아가셨던 그 무렵의 여름, 그리고 또 몇 번을 더 기억한다. 그 중에 으뜸으로 꼽고 싶은 올 해 여름. 부채, 선풍기로 견뎌내던 어릴 적 여름은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얼음가게에서 사온 덩어리 얼음을 바늘을 꽂고 망치로 쪼개서 얼음 띄운 수박화채나 미숫가루 한 그릇에 선풍기 바람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건만.
도심의 여름은 건물 벽에, 혹은 건물 옥상의 에어컨 실외기 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운 열기로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 그런 열섬현상 때문에 여름날의 새로운 진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이들의 손에는 흔한 부채 보다는 충전해서 쓰는 한뼘 만한 작은 선풍기와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위한 일환으로 남성분들은 골프장에서 볼 법한 아주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간다. 검은색 장대우산은 이젠 비 올 때가 아닌 한 여름의 남성의 필수 아이템이 된 듯했다. 한 여름, 한 낮의 우산 든 남자라…….
대학 때 소개팅이 있던 날, 만나기로 한 장소에 검은색 접이 우산을 들고 나타난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예비역.
‘비도 안 오는데 무슨 우산??’
의아해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커피숍에서 나설 무렵에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서 굵은 장대비가 마구마구 쏟아졌다. 덕분에 함께 우산을 쓰고 비 그칠 때까지 제법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오빠, 동생으로 잘 지냈다. 그 예비역 오빠가 직장 때문에 타 지역으로 가는 바람에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잊게 됐지만 검은 우산을 쓰고 스치는 남자를 보면 그 예비역인가 하며 뒤돌아 볼 때가 있었다.
아무튼 요즘은 소나기가 그 시절 소나기가 아니다. ‘게릴라성 집중 폭우’ 라는 이름으로 짧은 시간 엄청난 양으로 일대를 초토화시키기도 한다. 일기 예보도 이 같은 게릴라성 집중 폭우의 양에 대해서는 어림하기 힘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난 물로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까지 이어진다.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는 더 이상 어릴 적 읽던 소설의 한 장면처럼 길가 모르는 집 처마 밑이나 상점의 햇빛 가리개 아래서 잠시 피하는 그것이 아니다. 기상이변으로 극에 치닿는 날씨로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이 점점 더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된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매미는 목도 쉬지 않는지 오늘도 늦은 밤까지 울어댄다. 식지 않은 도시의 밤, 오늘도 열대야로 에어컨 덕을 봐야하고 난 두통에 몸을 떨어야한다. 말복도 지났건만……. 하지만 곧 처서다.
한 여름, 햇볕 짱짱한 훤한 대낮에 우산 든 남자와도 이별을 고해야한다. 조금만 더 견디면 햇볕의 날카로움도 무뎌 지고 부는 바람도 청량해 질 것이다. 그렇게 또 계절이 바뀌면 이 기막힌 날씨도 잊히고 말 것이다. 사계절이 절기에 맞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인간으로 인해 병들어가는 지구, 훼손되어가는 자연에 대해 고민하며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을지 관심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