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보림선원 서울선원
수행이 희망이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7길 24(구: 역삼동 696-33번지)에 위치한 보림선원 서울선원을 찾아가는 길, 그야말로 한 걸음 한 걸음이 공부 아닌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릉역(2호선, 분당선) 7번 출구에서 200미터 직진, 한스헤어를 끼고 좌회전, 골목으로 70미터 올라가면, 오른쪽 두 번째 빌딩 2층에 보림선원 간판이 보입니다.”라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스마트폰 네비를 보며 찾아가다가 길을 헤맸다. 어쩌면 그 덕분에 선원 주변의 들뜬 풍광을 보았고, 간판마저도 차분해 보이는 보림선원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선원에 들어서자마자 회원들의 수행 열기가 느껴진다. 불교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되었다는 소식, 그 원인 등으로 인해 속상하고 부끄러웠는데, 이렇게 수행하는 불자들을 보니 수희찬탄의 박수가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한국의 유마거사로 칭송받는 백봉 김기추 거사님이 입적하신 지 30년이 지났는데, 그분의 마음공부법이 도심 한복판에서 꽃피고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한편 백봉 거사님께 인가를 받고 8년 전부터 보림선원을 이끌어오는 일심행 선원장님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새삼 뿌듯해졌다. 눈 먼 거북이가 망망대해에 떠돌아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는 불연(佛緣)을 맺고 참 수행자에게 참 공부법을 듣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싶어서...
백봉 김기추 거사가 주창한 새로운 마음공부법인 새말귀,
현대인들을 사로잡은 까닭(소제목)
“백봉 선생님께서는 바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거사풍’과 ‘밥 먹고 일하고 사는 것이 바로 수행’이 되는 ‘새말귀’를 주창하셨어요. 처음 새말귀를 펴실 때 선생님께서는 ‘새말귀는 아직 때가 아니다. 내가 돌아간 50년 후, 영상통화가 가능할 때 새말귀가 꽃을 피울 것이다.’라고 하셨지요.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30여 년이 된 지금 어린애도 영상통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때가 도래했다는 생각으로 백만자성등 밝히는 원을 세우고 정진하고 있습니다.”
보림선원은 백봉 거사님께서 주창한 ‘새말귀’를 수행방법으로 정진하는 도량이다. 백봉 거사님의 대단한 수행력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새말귀 수행은 여전히 생소하게 다가온다.
“새말귀(新話頭의 우리말 표현)는 ‘모습을 잘 굴리자’ ‘바탕을 나투자’라는 말귀로 밥 먹고 일하는 것이 견성見性의 도리가 되는 새로운 화두新話頭입니다. 설법을 통하여 공부의 윤곽과 바탕을 마련하고, ‘내가 부처’임을 인정하고 믿어서 부처행을 하는 수행방법이지요. 새말귀는 밥 먹고,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공부하고, 운전하고, 성내고 욕심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상생활 모든 것이 그대로 수행이 됩니다.”
현대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관념 속의 당송 시대의 화두가 아니라 밥 먹고 일하는 것이 견성의 도리가 되는 새말귀, ‘새로운 화두’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특히 설법을 통하여 공부의 윤곽과 바탕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간화선 수행에 입문할 때 화두 하나 주고 무조건 의심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의심할지도 몰라 그냥 앉아 있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림선원 서울선원이 강남에 둥지를 틀고 벌써 8년째 건재할 수 있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스님들도 월세를 감당 못해 도심에 연 선원을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에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희 선원에서는 새말귀 수행을 하기 전 반드시 원장님의 설법을 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심행 원장님이 백봉 선생님의 가르침을 어려워하는 도반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모습공식을 만들어서 수행하고 있는데, 불교 교리를 확실하게 정립해 주고, 수행으로 이끄는 공부의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자리한 이수열 박사(전문코치, 경영지도사,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의 말씀을 듣고 궁금해졌다. 일심행 원장님께 수행 비법을 여쭈었다.
“사실 특별한 건 아닙니다. 모습 공식은 이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법인을 쉽게 이해하고 생활 속에 적용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모습은 자체성이 없다. 모습은 변한다. 모습은 헛것이다. 모습에 머물 수 없다. 모습을 잘 굴리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것의 원리를 사실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면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습의 원리를 모습공식이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삼법인三法印(諸行無常, 諸法無我, 一切皆苦)은 일체만법의 속성에 대한 세 가지 법의 특성으로 불교를 대변하는 기본적인 교의敎義이다. 인연과 조건으로 생기는 모든 것은 변하고, 인연과 조건으로 생기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으며, 무지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것은 괴로움이라는 내용의 삼법인은 불교의 진위眞僞를 판별하는 중요한 이치인 것이다. 교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지 수행으로 체득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모습 공식을 들으니 그것만으로도 환해진 느낌이다.
순간순간을 수행으로 삶의 현장에서 살아 펄떡이는 공부를...(소제목)
“수행이 특별한 것이고, 특별한 장소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할 수 있고 사는 것이 수행이라는 것, 삶의 현장에서 살아 펄떡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희 선원에서는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모든 상황을 모습공식으로 연습하게 합니다. 모든 모습이 자체성이 없고 변하고 헛것이고 머물 수 없는 것을 관찰하게 되고, 관찰하게 되면 멈추고, 멈추면 통찰하게 됨으로써 지혜가 밝아집니다. 지혜가 밝아지면 공부의 윤곽과 바탕이 마련되고, 이에 따라 수행하면 일상생활에서 새말귀를 저절로 굴리게 될 것입니다.”
보림선원 회원들은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일과 수행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그야말로 삶이 수행이고, 가정과 일터가 법당이고, 몸과 마음을 선방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매일 예불, 명상(매일 아침에 일어난 후, 자기 전 명상하기), 발원(인생을 이끌고 가는 열정과 이정표, 원노트 쓰고 매일 보기), 축원(따뜻한 마음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와 가족, 다른 이들 축원하기), 감사[행복의 시작, 자기성찰을 위한 매일 감사 노트쓰기(Thanks Diary 앱 이용 가능)]. 실천(생활 속에서 모습공식 연습하기, 새말귀 굴리기)}
“매일 스스로 수행하면서 화요법회, 금요법회, 일요법회에서 점검하고 있는데, 매달 둘째 토요일 오후 8:00 입재 ~ 일요 법회로 회향하는 정진법회는 백봉 김기추 거사님이 처음 시작, 40여 년을 한결같이 지속해 오고 있는 철야법회는 회원들의 수행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림선원 서울선원에서는 오프라인법회와 수행뿐만 아니라 다음카페 보림선원 서울선원(http://cafe.daum.net/borimseoul)에서 온라인법당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유튜브(Zen Borim:영상 법문, Borim Zen:음성 법문)로도 수행법을 전하고 있다. 일심행 선원장과의 1:1 맞춤형 상담도 회원들의 공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 선원장님의 깊은 수행력과 헌신적인 보살행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몇 년 전 교계 신문에서 ‘새로운 시대, 선의 방편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정 스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간화선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새롭게 만든 새말귀 수행이야말로 그 대안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종교와 관련 없이 명상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새말귀 수행을 가르쳐 주면 개개인의 삶의 질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앞으로 새말귀수행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영성 지도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라는 이수열 박사님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실제로 새말귀 수행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 세상은 나 아닌 것이 없구나, 나와 세상이 하나가 되니 어찌 내가 상대를 나눌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을 보는 각도가 360도 달라졌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물소리, 새소리, 상대방이 되었을 때 즉 하나라고 말했을 때 비로소 자비심이 안 나올 수 없겠구나. 이것이 자유이며 행복임을 환희했다.” - 『새말귀 천일결사 이야기』(등광 이현숙)
기자는 위와 같이 수행을 통해 삶이 바뀐 수많은 보림선원 회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환희했다. 지혜와 자비가 점점 자라나서 자신이 바뀌고 나아가 세상이 바뀌는 수행이야말로 이 시대에 희망의 등불이 아니겠는가 싶어서 전율했다. 불자 감소라는 통계청 수치에 더 이상 애태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수행이 희망이다.
사기순/ 민족사 주간, 전 월간 불광 편집부장
기사전재-禪-발행처/선원수좌복지회/발행인 의정스님/2019년2월7일(통권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