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문학》 22호 (가을호) 명사초대석 화보
한강문학 22호 명사초대석-김소엽 시인
김 소 엽 _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별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
김소엽 시인의 시는 누구나 읽기 쉽게 쉬운 말로 썼고, 그 안에 깊은 철학이 있고 종교적 내용이 녹아 흐르며 읽을 때마다 꿈과 희망과 감동을 주는 명시이다. 그것은 느낌을 위주로 쓴 감성적인 시가 아니라 고난과 눈물 속에서 잉태한 보석 같은 영혼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김소엽 시인의 대표詩 퍼레이드
오늘을 위한 기도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살아 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 됨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내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통해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오늘 우리 이렇게 함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오늘 하루 되게 하소서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천하를 얻고도
다윗처럼 겸손히 엎드려 회개할 줄 아는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넉넉히 사랑 나누며
이웃과 더불어 감사와 기쁨으로
오늘 하루 살게 하소서.
가시나무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막8:35)
아픔을 노래하는
새를
나는 알고 있네
가시에 찔려
나 대신 죽으며
혼신을 다해
영혼을 노래하는 새를
나는 알고 있네
죽어가는 순간
신도 흡족히 미소 지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남기고 간
가시나무새여
내 마른 영혼의 가지 끝에 앉아
생명을 바쳐
사랑을 노래한
그 큰 새를
나는 알고 있네
목숨을 읽은 새는
하늘 끝으로 날아가고
그가 남긴 노래는
온 세상을 빛으로
화안하게 밝혀주네.
인생의 찬가
지혜 있는 자는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정면으로 파도를 맞지 않느니
설령 평생 걸려 만든 배가 파선되었어도
신에게 도전하여 항변하기보다는
파도가 남긴 말을 들으려고 애쓰느니
모래 한 알 한 알이 시간의 파편이요
선현들이 남기어 놓은 침묵의 언어이리니
멀찍이 앉아서 새겨들으면 풍랑의 말도 뜻이 있거늘
바람이 분다고 서러워 말라
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말라
파산되었다고 절망하지 말라
풍랑이 이는 것은 바다를 청소하기 위함이요
바람이 부는 것은 꽃씨를 퍼뜨리기 위함이요
비가 내리는 것은 땅 위의 모든 더러움을 씻기 위한
하늘의 방법이라면 무엇을 걱정하리요
인생의 풍랑에도 반드시 선한 뜻이 숨어 있으리니
생의 중반에나 혹은 노년에 이르러
무서운 폭풍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 보노라면
파도가 나에게 이르는 말
그 침묵의 언어를 깨닫게 될 날 있으리니
고난이 축복이 되는 인생을 음미하고 살다 보면
삶의 기쁨과 보람도 있으리니
옛 사람들이 그렇게도 살기를 열망하던 미래를 사는 우리는
선물로 받은 오늘을 감사로 받아 최선을 살자
형제여! 우리 모두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갈지니
나에게 맡겨주신 청지기의 직분 성실히 마치고
그분 품안에 평안히 안길 때까지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기나긴 시간의 영원 속에서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 너와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노래하자
나의 형제여!
낙엽의 꿈
가을이 되면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놓고
나는 떠나리라
나뭇잎이 가지 위에서
미련 없이 떠나가듯
당신의 가난한 사랑에서
소리 없이 떠나리라
가을이 되면
황금 들녘을 지나
물색 하늘에 닿으리라
떨리는 음향
빛 고운 노을 지나
하늘이 쏟아져 내리는 그곳까지
바람에 날려도 좋으리
당신 가슴에
가을하늘 한 자락 옮겨
울릴 수만 있다면
가을이 되면
섧디 섧은 몸
종鐘추 되어 울리리
몸은 언제나 슬프고
정신은 낙엽처럼 외로운 것
가을이 되면
낙엽 지는 숲으로 가리
낙엽 져 눈 내리는 가을 숲에 서서
가버린 사람을 추억하노니
사랑이여, 떠날 때가 되면
나뭇잎이 가지위에서
떠나가듯
나 또한 그렇게 떠나겠지만
우리 지순했던 사랑만은
열매로 남겨두련다
낙엽의 꿈은
대지의 품에 돌아와
죽어서 다시 사랑을 싹틔울
생명의 봄을 꿈꾸나니
비로소 누리의 평안과 안식이여
가을이 되면
낙엽 지는 숲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배우련다
되도록 단풍비 눈내리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별의 때를 택해서
지고한 정신의 알맹이만 남겨
사랑의 종추가 되리라
대지에 종 울리듯
당신의 겨울나무 표피 같은
단단한 영혼 흔들어 깨울 수만 있다면
가을이 되면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놓고
나는 떠나리라.
고백
홀로 있을 때만
당신 품에서
울게 하시고
더불어 있을 때엔
그들과 함께
웃게 하소서
해가 뜨고
달이 지고
그냥 그렇게 세월 흘러
내 일생
풍랑 많았어도
바다처럼 평온하다
이르게 하소서.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
우리네 인생길이
팍팍한 사막 같아도
그 광야 길 위에도 찬란한 별은 뜨나니
그대여,
인생이 고달프다고 말하지 말라
잎새가 가시가 되기까지
온몸을 오그려 수분을 보존하여
생존하고 있는 저 사막의 가시나무처럼
삶이 아무리 구겨지고 인생이 기구할지라도
삶은 위대하고 인생은 경이로운 것이어니
그대여,
삶이 비참하다고도 말하지 말라
내가 외롭고 아프고 슬플 때
그대의 따뜻한 눈빛 한 올이 별이 되고
그대의 다정한 미소 한 자락이 꽃이 되고
그대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이슬 되어
내 인생길을 적셔주고 가꾸어 준
그대여
이제 마지막 종착역도 얼마 남지 않았거니
서럽고 아프고 쓰라린 기억일랑
다 저 모래바람에 날려 보내고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만을
찬란한 별로 띄우자
그대가 나의 소중한 별이 되어 준 것처럼
나도 그대의 소중한 별이 되어 주마
이 세상 어딘가에 그대가 살아 있어
나와 함께 이 땅에서 호흡하고 있는
그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는 고맙고 행복하나니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
그대는 나의 가장 빛나는 별.
서울역에서
오늘도 나는 서울역에서
수없는 이별과 만남의
축복 속에 싸여
슬픔과 기쁨의 눈물 흘리며
인생을 배우나니
가야 할 사람은 가고
남아 있을 사람 남아 있어
가고 오는 인생을 누가 탓하랴
모든 것이 삶의 순리인 것을
우리도 머지않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
종착역에 닿으리니
잠시 함께 여행하는 동안
동행하는 너와의 인연
이 얼마나 기가막히게 소중한가
나의 친구, 나의 연인아.
사막에서. 9
-별과의 화해를
사막에 와서
나는 모든 애증을 풀어 회개한다
뒤돌아보면 회개할 일 뿐이었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그때에는 한 치도 들지 않았다
나는 사막에 와서 나의 잘못을 모래알처럼 낱낱이 짚어보았다
바위가 모래가 될 만큼 산화될 시간이 필요했던 게야
시간은 나의 거울이다
조그만 잘못까지도 낱낱이 비추는 내 살 속 거울이다
거울은 내 실핏줄 속에까지도 다 비추며 말했다
반짝이며 말했다
용서하고 용서하라 사랑하고 사랑하라고
나는 저 우주의 거대한 생성과 소멸의 몇 억 광년 광대무변 세월 속에서 풍화된 사랑과 우주 만물의 법칙과 진리의 엄청난 이치를 보면서 너와 나의 남루와 허물과 한때 불타던 사랑과 증오와 원망까지도 은하에 풀어 헤우고, 마알간 새악시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볼연지 같은 사랑이나 미움까지도 한낱 한 움큼의 바람만큼도 안 되는 그 연유로 무얼 그리 오랜 가슴앓이란 말이냐
사막에 와서 보아라
저 우주의 신비한 별빛과 수 수천억 광년 시간을 셀 수도 없는 그 영원 사이에 너와 내가 별 한 번 반짝할 사이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사막에 와서 회개하며 눈물로 저 별과의 화해를, 화해에서 몇 억 광년 뒤에나 새롭게 태어날 사랑을 위해서 우리는 오늘 손을 잡자
은하를 건너 하늘에서 지구까지 내려온 별과의 악수를 노래해 다오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울려다오
오늘 밤은 은하의 강에 눈물로 배를 띄우자.
죽음은[召天]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이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가신님 유업을 성실히 받들고
남은 생을 부끄러움 없이 살고 난 후
기쁨으로 당신을 해후邂逅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1.꽃이 피기 위해서는
꽃이 그냥 스스로 피어난 것은 아닙니다
꽃이 피기위해서는
햇빛과 물과 공기가 있어야 하듯이
꽃이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벌과 나비가 있어야 하듯이
꽃의 향기가 저절로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아닙니다
꽃의 향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있어야 하듯이
나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
기도로 길을 내어 주고
눈물로 길을 닦아 준 귀한 분들 은덕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된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보이지 않는 그 분의 섭리와 은혜가 있은 까닭입니다.
김소엽 시인의 고희문집에서 ‘축시 발췌’
하늘꽃은 별이지
“남천의 꽃구름을/ 찾기 위하여/ 하늘문을/ 꽃잎으로/ 열었지// 석란 몇 송이가/ 구름 같은 눈썹 위에/ 피어있었네// 강물이 울고/ 꽃구름은/ 말이 없어라// 유양호 어린 빛을/ 달빛에 풀며/ 읊어보았지// 단계연 청자연적은/ 즈문 해가 하루 같고/ 꽃잎 위엔/ 눈물이었지// 구름 밭은/ 꽃잎 속에 있으나/ 하늘꽃은/ 별이네// 젊은 꽃잎/ 별 하나/ 〈소엽〉/ 시심으 하늘문을/ 열라/ 꽃잎 하나와/ 별 하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소엽 시인의 고희 문집 《별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의 모두에 실린 국민시인 황금찬 시인의 축시 〈하늘 꽃은 별이지〉 전문을 앞세운다.
김소엽 시인
“가을 하늘처럼 해맑은 얼굴/ 말소리가 아름다워 음악인데/ 민첩한 행동으로/ 세상일을 보고/ 좋은 시를 써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네/ 부정한 일을 보면 소나무가 되고/ 잘못한 일을 볼 때는 대나무가 되는/ 정의와 자유인, 그대는 유관순을 본받았네/ 글을 슬 대는 그대 마음 봄바람/ 남을 배려하기 살붙이 같은데/ 고통과 즐거움이 함게 드러나는/ 김소엽 시문학/ 글을 쓰면 천하문장/ 말을 하면 하나님의 심부름꾼/ 그대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진실한 사람일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기조 박사의 고희 축시 〈김소엽 시인〉에는 잔잔한 어조로 김소엽 시인을 읽고 있다.
시간의 별
“빛의 진주알로/ 약속의 나라에서 태어난/ 씨앗이었을 것이다// 원형질의 푸른 눈동자/ 시랑의 지평 헤매던/ 아름다운 이국낭인의/ 혼이었을 것이다// 생의 질곡과/ 숱한 그리움의 신화/ 오직의 눈빛과 마주했던/ 비밀스럽게 밀봉된/ 먼 그대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맑은 눈물 한 점/ 한 줄 시의 지문처럼/ 지상의 망망대해 마르는 날/ 그 뉘 향해 떠오르는/ 저 청청한 시간의 별 하나// 타는 불꽃 전신의 기쁨으로/ 또 한 번을 뜨겁게/ 피안의 하얀 뜨락에서/ 해후하게 되는 것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연작시〈한강〉을 발표한 김원 시인의 김소엽 시인 고희기념 축시, 〈시간의 별〉을 감상해보자.
김소엽 시인- 발자취 따라가기
김소엽 시인의 원고와 사진 등 방대한 자료를 접한 순간! 한 마디로 초인간적인 선교봉사활동과 시종일관, 믿음과 문학의 발자취를 남기며 헌신, 봉사, 성실, 나눔의 일생을 살아가는 분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사 작성을 비주얼 중심으로, 김소엽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사진 캡션 붙이듯 작성하기로 한다. 아울러 일생을 변함없는 보석처럼 이 시대의 소금과 같은 언행일치로 교회가 왜 민가 가까이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문학은 그에게 믿음의 실천행이다.
김소엽 시인과 이강철 시낭송가와의 만남
-한국 시단에 시낭송 장르 개척
*두 분의 만남은 장장 40여년이 된다. 이강철 시인은 우리나라 시낭송 보급의 개척자 이다. 시낭송 보급 운동은 1980~90년대부터 시낭송 저변 확대를 위해 한국시낭송가협회를 조직하여 국내 유명시인을 매월 초청, 〈랑데뷔 카페(서울 방배동 소재) 정기 시낭송회〉를 개최 하였다.
*참석자는 황금찬, 김남조, 도종환, 이생진, 유안진, 신달자, 이근배, 서정윤, 마광수, 김소엽 등 당대 유명시인 대부분이 초청받았고, 제1회 천상병 추모시낭송회도 고인이 되신 목순옥 여사, 김수남 전)한국일보 사장 외 많은 문인 낭송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 하였다
*1993년 서초구 시낭송 대회를 20여년 가까이 추진하여 지금 시낭송계 시낭송가 스타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서초구가가 문화예술구로 성장하는데 두 분의 역할이 지대했다.
나의 삶 나의문학
결정적으로는 신과의 소통이다. 이는 신과의 화해 없이는 나는 결코 나에게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신과의 화해야 말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지상 과제이다. 이는 내가 무엇보다 피조물이라는 겸손한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죄인이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신은 내가 감히 닿은 수 없는 창조자라는 사실을 조건없이 받아들여야 가능해 진다. 창조자인 신과 피조물인 나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이 하늘과 땅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게 바로 신과의 소통이며 이 소통으로 얻어지는 시야 말로 그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본고는 《기독시》(16호, 여름호,〈나의 삶 나의문학〉)에 실렸던 ‘나의 삶, 나의 시론’에서 인용 및 윤문하였음을 밝힙니다.
소통 치유 통합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소통’과 ‘치유’ 그리고 ‘통합’일 것이다. 요즈음 들어서 화두로 등장했지만, 실은 나의 시 쓰기의 목적이라면 등단 이전부터 이 세 가지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에드루스(Phaedrus)의 말처럼 “시는 자연과 사물, 신과의 소통으로부터 화해와 용서의 통합과정을 거쳐서 마음의 위안과 치유(healing)를 얻어내는 산물”이라고 한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는 바이다. 시가 위안과 소망을 줄 수 없다면 낙서에 불과할 것이다.
‘소통’이란 용어는 기실 최근에 들어 화려하게 등장한 언어가 되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시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사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과의 관계에서 소통으로 얻어 낸 감동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통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도와 기다림이 있어야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란 간절함의 염원과 정성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도한다고 금방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리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오래 기도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오래 참을 수도 없고 기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오래 기도해야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용서가 있고 화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왔던가. 우리는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왔던가. 그 많은 상처와 미움은 화해와 소통으로 치유 될 수 있다. 바로 사랑의 묘약이 기도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렇게 화해하듯이 사람과 자연과의 소통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말 못하는 자연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괴롭혀 왔던가. 먼저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자연에게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우리는 자신을 돌아 볼 수도 자연에게 용서를 구할 수도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과의 소통은 불가능해 진다. 그러나 자연과의 소통이 이루어 질 때 시는 바로 이런 벽을 허물어뜨리고 우리에게 자연과 친화하며 소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준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바로 시를 통한 자연과의 소통이 될 것이다.
너는 어디서 온 생명이기에
이토록 강인하게 살고 있느냐
이 땅 그 많은 곳 다 놓아두고
하필이면
두터운 아스팔트 갈라진 틈새로
생명을 피워 올렸느냐
모진 목숨
그 속에서도 생명을 밀어 올려
꽃을 피워 한세상 살고 있는
귀중한 생명
풀꽃 한 송이
-김소엽 〈풀꽃 한 송이〉 전문
위 시를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소엽 시는 생명의 발견 및 그에 대한 신뢰와 사랑, 찬양으로서 생명사상에서 발원한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또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생명에 대한 가없는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 시의 원류이자 바탕으로서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어서∽
생명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사랑에서 싹트고 사랑의 힘으로 성장하고 결실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종교적으로는 조물주 즉 신의 섭리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 하겠다.
생명은 빛으로 오네
사랑은 연초록
눈물로 오네
겨울바람
침묵의 기나 긴 동굴
오랜 기다림 끝에
참고 참아 터뜨린
생명의 발아發牙
가슴에 묻어 둔
한 줄기 사랑
이제 불이 되었네
새 순 돋듯
물기가 돌고
처음으로 내다 본
세상 가득
환희의 아가雅歌
사랑은
보드라운 연록의 숨결
여리고 순한 가슴에서
돋아난
아, 찬란한
초록빛 생명이여!
-김소엽 〈사랑은 초록빛 생명〉 전문
흔히 생명을 알려면 사랑을 깊이 있게 알아야 하고, 사랑을 알려면 눈물, 즉 슬픔을 실천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생명의 본성과 원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깊이 있게 체험해 내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아울러 생명의 운행 원리로서 사랑은 만남과 헤어짐, 환희와 고통, 기쁨과 슬픔 및 생성과 소멸의 원리로 짜여지고 전개되는 것이기에 그 근본은 아픔과 슬픔, 인내와 기다림이라는 인고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마련이다.
내 생애는
그대 영혼으로
불어지는
한 자루
피리되리
-김소엽 〈기도〉 중
은빛 자욱한 안개
영혼의 숲엔
아침 이슬 내리고
그의 목소리
아침종을 쳐댄다
종이 울릴 때
잠의 뿌리 흔들어
가로등이 꺼지면
새벽이 대신 내려와
이슬종을 친다
댕 댕 댕
영혼이 울리면
너와 나 사이
별과 지구 사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
강물이 흐른다
사랑하는 일은
아침 마다 종을 울리는 일
너와 나의 가슴에
풀잎에 이슬 내리듯
모든 때를 씻어 내는 일
잠에서 깨우는 일
-김소엽 〈사랑하는 일은〉 중
인용한 시편들에는 사랑이 삶의 본질적 구성 원리이며 현상적 추동력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략- 사랑은 생의 존재 의미이고 이유이며 가치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삶의 구성 원리이고 운행 법칙이고 에너지가 된다는 말이다. -중략- 이렇게 보면 산다는 일은 바로 사랑한다는 일로 수렴되고, 생의 모든 의미와 보람, 가치가 사랑의 실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김소엽 시인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나 수사학이 아니라 바로 생의 원리이자 실천 논리가 된다고 하겠다.
이렇게 평한 김재홍 교수의 글은 나의 이러한 시 정신을 많이 이해하고 쓴 글이라 하겠다. 이를 두고 키에르케고르는 일찍이 이렇게 표현했다.
“시인은 남모르게 괴로워하면서 그 탄식과 비평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뀌게 하는 입술을 가진 불가사의한 존재이다”라고 하면서 절망의 극복 방법을 시에 걸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절망의 심연에서 소망의 작은 빛을 시에 두었던 게 아닌가 싶다.
괴테도 “시인은 신의 접경지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대시인의 이러한 말에 기실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에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됨으로써 시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그 시절,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나는 어머니를 잃고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란 글제로 시를 써서 받은 장원은 내 자신을 치유하는데 큰 약이 되었고, 나는 필연적으로 시인이 되어야 내가 살 것 같은, 시는 나에게 일종의 비상구였다.
그래서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나는 문예반에 들어가서 활동하였다. 그 당시 대전여중의 교지였던 대원大苑에 〈떨어지는 계절〉이라는 수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도 문예반에 들어가서 활동을 했는데, 그 당시 중부권의 대표시인이신 한성기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 후 한성기 시인으로부터 기본적인 시의 바탕을 다질 수가 있었다. 시의 배를 띄울 수 있는 시의 서정적 강가로 나를 인도해 주신 분이셨다.
그 당시에도 역시 교내 백일장이 있었고 교내백일장에서도 입상을 했다. 이제 나는 나의 시 수업을 튼튼히 잘 쌓아가서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사범고등학교에 들어갔던 나는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을 단념하고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그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영미문학 등 세계 문학을 배우고 좀 더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자는 의도가 컸다. 그래서 나는 국문과 보다는 영문과를 택했다. 그래야 시를 써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그 결과 이대 영문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양명문 선생을 만나 또 다시 시의 바다에서 유영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영문학과였지만 국문학과 학생들이 같은 과 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국문과 수업을 다 들었다. 나는 열정에 넘쳐있었다. 그 당시 이대학보梨大學報나 문리대 잡지인 《녹원》에 수시로 원고를 내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양명문 선생님에게 감사한 것은 부인 김자림 선생은 극작가였는데, 주말에 집에 초대하여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나 모차르트, 바하의 음악을 들려주면서 시인이 되려면 음악, 미술, 연극 등 다른 예술분야의 교양을 넓히며 폭넓은 예술혼을 일깨우고 감성을 항상 예민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나는 새로운 눈을 뜨는 것 같았다. 마치 와트가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은 사물을 말하는 새로운 방식을 요구한다’고 한 것처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발상은 나로 하여금 표현의 새로운 충격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시절 나는 양명문 선생이나 한성기 선생으로부터 추천을 권유 받았지만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감히 그 당시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월계관 같아서 나를 더 연마시킨 후에 문단에 나가기로 스스로 타협을 보았다. 왜냐하면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범인과는 다른 비상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는데 나는 그런 재주꾼도 아니었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도 아니어서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속인인 내가 신의 접경지대에 살 만한 자격이 갖추어져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도서실에 살다시피 하면서 밤 10시 도서관 문 닫을 시각까지 정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통독하며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프로스트, 휘트먼, 베를렌느, 말라르메 등에 심취하였다. 그 당시, 도서관 2층 잡지실에 비치되어있는 《현대문학》, 《기독교사상》을 매월 정독을 하면서 프롬, 리차드 니버, 라인홀드 니버, 마틴 부버, 틸리히, 몰드만 등과 책으로 교감하면서 지적 최고봉에 달했던 시기였다.
시는 다 아는바와 같이 지극히 함축된 언어로 자연과 사물을 표현해 내는 언어예술이다. 그러나 자기만 아는 너무 주지적인 시를 쓰면 객관성이 떨어져 공감대가 멀어지고 너무 객관화 시키면 감동이 떨어진다. 시는 자기가 체험하고 자기 스스로 감동하고 쓴 시가 아니면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가 없다.
요즈음 문화센타나 문학카페 등에서 시 쓰는 기술을 가르쳐서 신춘문예에도 나가게 하고 문학잡지에 등단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듣자 아연실색을 했다. 시는 테크닉을 배워서 쓰는 게 아니다. 시는 마음의 깊은 울림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천재가 아닌 이상 나 같은 사람은 습작에만 이십여 년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내가 원하는 시가 나오질 않고 있다.
시 쓰기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나는 아무리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그것을 가장 쉬운 언어로 밝게 표현하려고 많이 고심하고 있다. 간혹 무슨 말인지도 모를 어려운 관념어나 철학적 언어를 나열해서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시를 본다. 그 시인에게 무엇을 노래했는지 물었던 바 그 필자의 대답이 나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자기도 모를 시를 쓰면 독자를 우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무책임한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자기를 속이고 독자를 속이는 짓을 시로써 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시의 계율이다.
나의 경우에는 한가지 상념이 오래 가슴에 남아 맴돌고 있다면, 그 상념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어떤 경이로운 진실에 부딪혀 그 상념이 이미지화 되고 다시 언어로 형상화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 것은 경이로운 진실에 부딪혀 마치 섬광처럼, 또 다른 어휘로 어떤 영감이 떠오를 때 시를 쓰기 때문에 다작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는 체험적 산물이다. 감성의 나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다. 그것이 오래 가슴에 머물러 자리하고 있으면서 하나의 주제를 떠오르게 하고 그리고 다시금 그 주제를 가지고 나는 머리로서가 아니고 가슴으로 삶에서 주는 경이로운 진실이라든가 어떤 깨달음 등이 느껴졌을 때, 그 때 시가 태어나는 모티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고 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잉태와 더불어 태아가 다 자랄 때 까지 정성과 공을 들이면서 기다려야 한다. 그런 다음 산고의 고통을 겪고서야 태어나는 것이 시다.
마치 석공이 돌을 다듬어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구성은 어떻게 하고 표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석재는 무엇을 쓸지 이미지와 은유와 직유는 어떻게 할 것인지 형식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돌을 오래 잘 다듬었다고 모두 아름다운 집을 짓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래 다듬은 시라야 꼭 좋은 시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는 오래 걸려도 보기 좋게 되지 않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금방 썼는데도 꽤 괜찮은 시가 탄생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인 자세는 내면으로부터의 울림이 있기까지 기다리는 시가 그래도 완성도가 높은 시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내가 중요시 하는 것은 음률과 회화성이다. 시는 언어로 듣는 음악이며 언어로 보는 그림이다. 음률은 우리나라 말의 어율이 3, 4조에 기인한다. 또한 시는 눈에 보이는 음률만이 아니라 내재율 또한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음악성은 내재율과 외재율에서 회화성은 이미지로써 구현하며 나는 독자들도 나와 같은 이미저리로 시를 이해하며 공감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나의 졸시 〈獻詩〉를 소개해 보겠다.
내 마음 속
물레 저어
비단실 빼어
슬픔과 사랑으로
무늬를 놓아
신비한 북으로
비단을 짜노니
머언 훗날
친구여,
주저 말고
한 필씩
골라 가구려.
-김소엽 <獻詩> 전문
나이 들수록
땅 뺏기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서
호드기 부는 것도
잊어버리고
내 유년의
초가지붕 위엔
각시풀만 무성히
자라고 있네.
-김소엽 〈각시풀〉 전문
이 시에 대해서 이명재 교수(문학평론가, 중앙대)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우선 그의 시문학적 호흡은 3,4조에 가까운 전통의 가락을 기조로 하고 있다. 우리 겨례의 숨결인 고유의 음조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시의 호흡이 으레 물 흐르듯이 막힘없이 흐르고 있음은 그의 오랜 문학 수련기에서 다듬은 시의 세련미가 전통의 정서에 속속들이 동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언어의 예술인 시문학의 바탕을 바르고 튼튼하게 다진 결과라 생각 된다. -중략-
이들 보기에서처럼 물레, 비단실, 북, 호드기, 초가지붕, 각시풀, 고향의 샘물, 두레박 등의 시어 활용이나 동심 겨운 숨결이 우리의 원초적인 정서를 자아내서 감동을 더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자연스런 시인의 시적 내재율은 청각적 결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조화된 시각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시의 내용이 인간의 근원문제 같은 무거운 테마이면서도 한결 부드럽고 감미롭게, 밝고 고운 음악이나 수채화를 대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신 임의 ‘목소리’를 차라리 “갈잎같은/ 이 세상에 /음표와 꽃씨만/ 뿌려놓고” 라고 읊은 것은 죽음을 오히려 밝고 고운 노래나 그림으로 그려내 보인 것이다.
이와 같은 회화성은 〈그리움〉에서처럼 “가슴은/ 노을빛// 몸에선/ 낙엽 타는/ 냄새” 로 구현했고... -중략-
소엽시인이 지닌 인간과 신에 대한 사랑은 결코 불꽃같은 열정이 아니라 가슴에 오래 간직하여 정금같이 순화된 사랑이다. 그것은 그윽하며 깊고 그윽한 한국의 넋을 지닌 채 서양의 기독교 사상이 그 안에서 잘 융화되고 일치되어 승화된 사랑이다. 더구나 소엽의 시들은 상상적인 산물이기보다는 실생활에서 겪은 실제체험을 주로 하고 있어 절실한 감동을 더한다.
부끄럽지만 나의 졸시를 이렇게 평해준 것을 보면 나의 시작의도와 시정신의 설정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실 내가 1978년 미당과 박재삼선생의 추천으로 《한국문학》에 등단 한 후 10여년이 지나서 첫 시집을 내게 되었다. 그 첫 시집은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은 상처를 남겨 준 남편의 소천 후 쓴 것이었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후 나는 나의 세계 속에 갇혀있던 애벌레에서 비로소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이 세상을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필연의 몸짓이었다. 나는 비로소 이생과 저 세상, 삶과 죽음을 통합하는 세계를 넘나들며 시를 쓰게 되었다. 이는 그 동안 내가 가진 정신세계에서 영적세계로의 비상이었고 전혀 새로운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지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피안의 세계, 곧 영혼의 세계에 대한 관심
한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나의 인생의 중반부에 닥친 너무나도 큰 시련 앞에서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 고뇌하며 상실의 아픔으로 인생의 고통이나 고난 그리고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가 “고통의 용광로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던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좋은 작품을 쓰려거든 바로 이 고통의 용광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었다. 나는 진실로 시로써 나의 고통을 걸러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신앙과 시를 쓰는 통로가 없었다면 나는 생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앙과 시는 나를 견인해 준 두 수레바퀴였다.
나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절실한 상태에서 나는 첫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1987)를 6월 10일, 결혼기념일에 펴냈다. 나의 절실함에서 뽑아 올린 시편들은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서 그 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기쁨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이는 감당할 수 없는 내 슬픔의 무게를 조금은 줄일 수 있는 위로가 되긴 했지만 그 위로마저 더 큰 슬픔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 무엇으로도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덜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변화는 내 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을 나는 살기위해 줄기차게 글을 쓰며 앞만 보고 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어언 은퇴할 나이가 되었고 몸도 나이 값을 치르게 되다 보니 열정도 많이 사라졌고 내가 생각한 것만큼 시가 써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보며 마음을 비우고 그리고 영적인 생활에 몰입하면서 영성시靈聖時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수 생활을 은퇴하면서 여섯 번째 시집 《사막에서》를 출간했다.
‘사막’은 내가 건너 온 ‘광야’였고, 삶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을 탈출하여 모세가 이끄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고 온갖 추위와 굶주림과 고생 끝에 가나안에 입성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 광야생활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네 인생길이
팍팍한 사막같아도
그 광야길 위에도 찬란한 별은 뜨나니
그대여,
인생이 고달프다고 말하지 말라
-중략-
이 세상 어딘가에 그대가 살아 있어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그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는 고맙고 행복하나니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
그대는 나의 가장 빛나는 별
-김소엽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 중
중앙대 이승하 교수는 이 시에 대해 이렇게 적은바 있다.
김소엽 시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팍팍한 인생길인 사막에 가서 별을 찾을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가장 빛나는 별을 찾으면서, 시인 자신이 많은 독자들에게 가장 소중하고 가장 빛나는 느낌표로 기억 될 것이다.
나는 후학들의 사랑으로 활판인쇄로 나온 시선집과 기념문집과 논총집을 금년 초 출간하면서 나의 시에 대해서도 정리를 좀 해 보았다. 영시집과 시선집을 모두 합해서 열두 권의 시집을 내왔지만 이 중에서 과연 몇 편이나 생명을 가지고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 생각하며 다시금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 편이라도 좋으니 생명을 가진 시가 남기를...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꽃에는 이슬이 있고
내 눈에는 눈물이 있음이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으니
이 어찌 아니 기쁘랴
무엇을 근심하랴
위에는 바라 볼 하늘이 있고
아래는 든든히 설 땅이 있고
하늘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땅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어찌 아니 평안하랴
눈을 뜨면
산과 들, 새와 나무, 풀과 바람
서로 만나 노래하고
내 곁에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고
내 가슴에는 사랑이 있으니
이 어찌 아니 감사하랴.
-김소엽 〈복된 일〉 전문
-중략- 김소엽의 시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상의 사막에서 하늘의 별을 통한 삶의 길 찾기를 궁극적 테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생명에서 시작되어 사랑의 시학으로 확대 심화되고 마침내는 섭리사관과 은총의 길, 평화의 길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마무리 되는 특징이다.”라고 김재홍 교수는 평하고 있다.
기실 나의 인생의 전반부는 시가 목적인 삶이었다고 한다면 나의 후반부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할 것인가에 있었다. 따라서 나의 시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기쁘고 영광스럽게 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지 시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이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달라지면서 나의 삶의 목적도 분명하게 달라졌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삶 자체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까지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나의 멘토였던, 고 정진경 목사님께서 20세기는 문화의 시대인데 기독문화가 올바로 창달되고 확산 발전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이를 위해 김권사가 총대를 매줘야겠다고 여러 번 말씀 하시는 것을 귓전으로 듣고 말았었는데, 어느 날 그것이 나의 사명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목사님의 주선으로 1992년 처음으로 한국기독교문인선교회를 창립했고 94년에는 열 개의 기독예술단체가 창립되어 가히 기독교예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를 창립하여 오늘날 12개의 산하단체를 품은 기독예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순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어쩌면 일찍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내게 주신 사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미술인선교회에서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을 열어 훌륭한 기독미술인들을 배출해 내고 있고, 문학인선교회에서는 국민일보와 공동주최로 본회가 여는 기독신춘문예를 주관하여 기독시인들을 배출해 오고 있으며, 서예협회에서도 많은 상을 시상함으로써 서예인을 발굴하고 양성하고 있다. 금년에는 특별히 뮤지컬선교회에서 이민욱 총감독이 창작뮤지컬 대본을 쓰고 직접 감독하여 〈갈릴리로가요〉라는 작품을 한인수(베드로역)를 비롯한 이진우, 이응경 등 주제곡을 부르고 톱배우들이 50여명 출연하는 대형무대를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연일 만석을 이루며 절찬리 공연을 마치고 앵콜공연까지 가졌었다.
기독문화선교는 21세기를 맞이하여 새 시대에 우리 기독인들이 관심과 가치를 두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의 남은 생애는 이 일을 위해 연소되고 쓰임 받게 되지 않겠나 싶다. 그렇게 끄임 받기를 바라면서 내게 주신 시를 쓰는 달란트를 통해서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문인선교회에서는 기독신춘문예 공모전 외에 회원들의 시를 모아 해마다 같은 주제로 시를 써서 시집을 내고 그것을 다시 교도소 노인병원 등 소외지역에 배포하고 시낭송이나 전시회 등을 통해서 불우이웃, 소외지역과 소통하며 치유와 위안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영원성이란 십자가에 접목될 때 가능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이 유한한 존재가 영원성을 지니려면 십자가에 접목될 때만이 가능하다. 예수님을 믿고 그의 부활을 믿을 때 영원성은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언어나 문자 내지는 창작물도 유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담는 내용이 예수님과 접목 될 때 사랑도 생명도 영원해 지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불멸성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읽었다. 그러므로 불멸의 명작을 남기기 위해서는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당당하게 “나는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 와서 비로소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작가정신이 내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의 전집을 탐독했다. 그는 나의 영혼의 심연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오래도록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지만 그것을 담을 어휘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막막했다. 그러던 중 이 죽음은 인류 보편적 과제로 떠올랐고 한가닥 영감이 잡혀왔다. 그것은 문자가 아닌 부호였다. 인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다섯 개의 부호! 그것이었다. 나는 그 부호를 가지고 죽음을 구체화시켰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이 땅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가신님의 유지를 받들어 살고 난 후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김소엽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전문
나는 이 시를 엄청난 고통의 값을 치루고 형상화해서 쓴 시이다. 독자들이 얼마나 공감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후대에 이 詩를 맡기기로 한다.
나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휠더린의 말을 기억한다.
“신성을 잃어버리고 이 세대가 악에 노출되고 어두움에 물들어갈수록 성스런 사제로서의 시인의 사명을...”
시인의 위상을 ‘성스런 사제’로서의 사명으로 끌어 올린 시인의 예언자적 메시지와 시인으로서의 사명을 다시금 반추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김소엽金小葉 약력
이름 : 본명 ; 김광자(金光子), 필명 ; 김소엽(金小葉)
생년월일 : 1944년 1월 9일 성별 : 여
주소 : 충남 천안시 청수동 261번지 LG Apt.112동 601호
현직 :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교회 : 신촌성결교회 권사
1. 학력
1950 논산군 양촌초등학교 입학
1950-1955 대전삼성초등학교졸업
1955-1958 대전여자중학교 졸업
1958-1961 대전사범학교졸업
1961-1965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문학사)
1979-1981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 졸업(문학석사)
2000-2001 호서대학교 산업경영벤처대학원 16기 최고경영자과정수료
1995-1997 은준관 박사가 이끄는 TBC 성경 대학원 과정 3년 수료
2008. 6 미국 Midwest 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수여(문학박사)
2. 경력
<가르친 경력>
1966-1974 보성여자 중 고등학교 정 교사 (담당과목;영어)
1984-1995 서울신학대학교 교양과목 시간 강사(담당과목;기독교개론과 문학강의)
1986-1987 육군사관학교 상담관(담당과목;상담학과 상담실제)
1989-1991 연세대학교 국제어학당에서 강의
1996-2008 호서대학교 전임 조교수 부교수 교수(담당과목;시 감상및 시 창작지도)
<사회단체 활동 및 봉사활동>
1992-현재, 한국 기독교 문화예술 총연합회장(산하단체 12개 문화단체. 회원 약 500여명)
1992-현재, 군복음선교회 전문위원
1995-2005,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각당호스피스 지도위원
2000-2007, 일가(김용기 장로)기념재단 운영위원
2000-2007, 장애인 참사랑 둥지회 회장(장애인을 돌보는 회)
2004-2008, 천안 아산 환경연합 공동대표(환경운동연합회)
2008-현재, 21세기 찬송가 편찬위원회 공동대표
2002-현재, 국제기아대책 홍보위원 (고아를 돌보는 국제적 기구)
2002-2009, 고어헤드(Go-ahead)선교회 고문(고아를 돌보는 회)
*문학 및 기타 단체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한국기아대책본부,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한국찬송가작가총연합회
<방송관련 경력>
1988-1993 FES방송 <하나되게 하소서> 간증프로 진행
1991-1992 KBS방송 <밤과 인생이야기> 2시간 생방송진행
1992-1994 CBS방송 <새롭게 하소서> 간증프로 진행
1996-1999 CTS.TV방송 <나의 사랑하는 책> 칼럼진행
2009-현재 CTS.TV 영상시 낭송 연재
<언론 출판관련 활동>
1990-2004, 청소년 선도 잡지 <주변인의 길> 편집위원
1990-2006, 건전한 가정을 위한 기독월간 <주부편지> 편집위원
1992-2008, 해외 700만 교포와 파송선교사를 위한 양식을 제공하는 월간 기독교 교양지 <광야> 주간, 발행인, 편집고문 등
1992-2001, 지성인을 위한 월간 교양지 <낮은울타리> 편집고문
1992-현재, 군복음신문 고정 칼럼니스트 ‘장병들에게 띄우는 사랑의 에세이 편지’ 칼럼, ‘젊은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시와 묵상’ 칼럼
2002-현재, 기독교 월간 문예지 <창조생활> 편집자문위원
2019-현재 원더플 시니어 편집고문
<행사 관련 활동>
1978-현재까지 지난 30여 년 동안 각종 행사(3.1절 민족화합기도회, 7.17 제헌절, 8.15광복절,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등) 범교단적 국가행사에서의 시낭송과 장애인과 고아, 불우이웃을 위한 행사를 주관 주최, 및 각 교회에서의 초청간증설교와 평생대학원, 산업대학원, 청소년수련원, 전국여성연합수련회, 산업체 등에서의 사원교육, 공무원연수 기타 교양강좌 특강을 1000여회 이상 해왔음.
3. 저작활동을 통한 공적
1) 저서
-. 시집 : 《그대는 별로 뜨고》(문학세계사, 1987, 24쇄-베스트셀러시집),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둥지, 1990, 3쇄), 《어느 날의 고백》(종로서적, 1991, 3쇄),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 놓고》(1993, 베드로서원, 8쇄), 《마음속에 뜬 별》(1995, 마을, 3쇄), 《하나님의 편지》(2003, 두루, 4쇄), 《사막에서 길을 찾네》(2008, 문학세계사, 2쇄), 《꽃이 피기 위해서는》(2012, 시와 시학사),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2012, 시월), 《풀잎의 노래》(시선, 2019)
-. 영시집 : 제1권 《My Star, MY Love》(2004, 한림출판사), 제2권 《At the Well》, 제3권 《In Case You May Drop By》( 2005년, 서독 프랑크 프루트에서 열린 ‘세계도서박람회’에 한국대표서적으로 출품되었음.
-. 수필집 : 《사랑 하나 별이 되어》(1989, 문학세계사, 6쇄), 《초록빛 생명》(2002, 군복음선교회, 50주년 기념문집)
-. 논문집 : 〈‘카라마조프네 형제’에 나타난 죄와 구원의 성서적 이해〉
-. 기념문집 : 《김소엽 기념문집》(2012)
-. 논총집 : 《사막 그리고 별의 시학》(2012, 창조문예사)
-. 공저 : 《끼리에 엘레이손》(1985, 지평서원), 《십자가, 사랑의 연가》(1988, 삼영사, 박두진 외), 《그대여, 좀 더 따뜻한 날에 이별할지라도》(1991, 소학사-김소엽, 신달자, 유안진 3인 시집), 《그림자 없는 사람들》(1992, 지혜원-황금찬, 김소엽 외 5인 시집), 《갈바람 사랑소리》(1992, 지혜원-황금찬, 김소엽 외 5인 시집), 《예수 그리스도》(2000, 창조문예사-김소엽 외 11인의 노래), 《시와 찬미로 여는 아침의 노래》(2001, 쿰란-김소엽 외),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라》(2002, 도서출판 한글-김소엽 외), 《외투 한 벌》(2003, 도서출판 한글-김소엽 외), 《그대 만나는 날은 참 좋으리》(2004, 뇌성마비복지회), *《사랑하십니까? 나눕시다.1》 - 불우이웃 돕기 연말행사(2000, 한문예총, 국민일보, 기아대책 주최 소책자 발행), *《사랑하십니까? 나눕시다.2》 - 불우이웃돕기 연말행사(2003, 국민일보, 기아대책 주최 소책자 발행), *《사랑하십니까? 나눕시다.3》 - 불우이웃돕기 연말행사(2004, 국민일보, 기아대책 주최 소책자 발행)(*연말 ‘사랑과 나눔의 행사’ 시집)
2) 창작품(시)을 문예지와 각종 잡지, 여성지 등에 ‘권두시’, ‘초대시’ 발표 활동을 통한 업적 - 1978년 등단 이후 현재까지 지난 30여 년 동안 500 여 편 이상 발표.
3) 창작시의 사회화 운동 - ‘축시’, ‘기념시’ 등 각종 행사에서 축시와 ‘좋은 시’ 낭송 등 수백 회 출연.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비 제막식-미국 CA. Riverside에서 축시, 순교자기념관 추모시, 3.1절 민족화합을 위한 행사, 4.19 추모시, 8.15 경축시, 남북통일을 위한 민족 행사-미국 LA에서), 기독교성령 100주년 축시, 환경을 위한 생태시, 안중근 의사 탄신 100주년 행사, 손양원 목사 오페라 개막식, 사랑과 평화의 콘서트-예술의 전당, 이미자 가수등단 50 주년 축하음악회-〈내 삶의 이유 있음은〉-세종문화회관 공연, 〈김소엽 시 노래〉 공연 13여회 등 행사에서 수 백회이상 낭송함
4) 국민정서 함양을 위한 시낭송대회(심사)
1990년부터 소년동아일보와 재능교육의 후원 하에 ‘전국어린이시낭송대회’를 김수남 사장과 함께 열어왔다. 1992년부터는 ‘어머니시낭송대회’를 열어 지금은 전국대회로 자리 매김 되었다. 현재 ‘시낭송어머니회’가 ‘재능시낭송어머니회’로 확대되어 전국적 조직이 되어 회원이 수백 명에 달한다.
*현재 ‘재능어머니시낭송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매년 지역별 심사를 맡아서 하고 있음. 또한 〈한국기독교 문화예술총연합회〉 산하의 ‘시낭송선교회’와 ‘성경구연선교회’가 조직되어 시낭송과 구연성경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음.
5) 방송, 언론매체와 특강을 통한 시 문화 운동
-. 방송 : MBC명사초청 방송(2001. 10. 10 방송, 재방송 10. 30), 주제 : 〈시로서 자녀 교육〉 이라는 주제로 방송하여 반응이 좋아 재방송 하였음, 재능방송에서 시에 대한 강의를 하여 호평을 받았음(2002. 5. 11회째)
-. 특강 : 평생교육원, 청소년수련원, 기업체사원교육, 공무원교육, 교육자수련회, 육사생도수련회, 노인대학, 전국여전회연합회, 상담소, 각 교회, 코스타지식인모임 등 국내외 수많은 곳에서 특강과 집회를 1,000회 이상 해 오면서 詩가 미치는 영향과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강의를 했음.
-. 일반 언론 매체를 통한 시운동 : 순수 문예지 뿐만 아니라 신문의 칼럼, 일반기업체 사보와 일반 잡지의 ‘권두시’, ‘초대시’ 등을 통해서 시의 대중화에 주력해 왔음.
-. 활동 현황(1987-2018까지 21여년간)
〈10년간의 발표 사례〉
*초대시낭송 : 약 200여회 이상,
*간증예배인도 및 특강초대 : 약 500여회 이상,
*방송 진행 : 약 780여회, 각종 사회단체 참여활동 다수,
*신문-잡지 등의 인터뷰 : 수십회, 군복음화보 : 300회, 〈국방일보〉 일일칼럼 : 15회, 〈국민일보〉 : 45회, 〈동아일보〉 청론탁설(10), 과시(2) : 12회,
*《신앙계》 : 15회, 《신앙세계》 : 15회, 《주부편지》 : 18회, 《월간문학》 : 20편, 《문학과 의식》 : 22편, 《한국문학》 : 8편, 《현대문학》 : 8편, 《꿈과 시》 : 19편, 《문학정신》 : 8편, 《창조문예》 : 20편, 《심상》 : 5편, 《월간에세이》 : 4편, 《문학사상》 : 5편, 《삶과 꿈》 : 9편, 《동서문학》 : 12편, 《시선》 ; 20편, 《낮은 울타리》 : 3편, 《기독교사상》 : 3편, 《월간목회》 : 16회, 《가정조선》 : 6회, 《빛과 소금》 : 4회, 《여원》 : 6회, 《활천》 : 38회, 《선교정보》 : 25회, 《열린마음》 : 7회, 《좋은생각》 : 5회, 《주변인의 길》〈시인칼럼〉 : 50여회, 《여성다이제스트》 : 6회 등, 그 밖의 교회관련 인쇄물 다수, 기타 각종 사보 신문 잡지 칼럼 등 약 250여편
6) 각 기관 단체 등에 시 보급-시낭송
노인복지선교회 일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노인대학, 평생교육원, 청소년수련원 등 에서 ‘좋은시’를 낭송해서 들려줌으로 정서적 안정과 시를 통한 기독정신 함양과 기독문화 창달에 주력해 왔음
7) 시가 노래로 작곡되어 13여회 공연되다
*좋은시 보급을 위한 세계 전문인 CEO 선교회 주관, 박형렬 박사의 주도로 (50여곡 작시-이종식 작곡) 작곡 발표회
-. 제1회 〈김소엽 시인의 노래〉 ‘치유를 위한 콘서트’ - 2007. 6. 2. 영현중앙교회/ 성악가 복음성가가수 합창단 중창단 등 다양한 연출
-. 제2회 〈김소엽시인의 노래〉 ‘구도자를 위한 콘서트’ - 2007. 10. 6. 영현중앙교회
-. 제3회 〈김소엽시인의 노래〉 - 100주년 기념관 2008. 11. 17
-. 제4회 〈김소엽시인의 노래〉 -100주년 기념관 2009. 4. 18 / 박형렬 박사가 위 발표한 노래곡을 모아 CD를 만들고 《장엄한 일몰》이라는 책을 펴냈다. 현재 제13회째 작곡발표 행사를 통해서 좋은시를 보급하고 있음.
* 이미자 가요 50주년 기념공연 〈내 삶의 이유 있음은〉 가사 작사 - 세종문화회관 공연, 2009. 4. 23, 이미자 가요60주년 기념 노랫말 작사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 조선호텔에서 60주년 앨범제작(기자간담회, 2019. 2. 21)
8) 〈국민일보〉와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가 공동주최하고, 연합회 산하기관인 한국기독교문인선교회가 주관하여 ‘기독교 신춘신앙시 공모’와 ‘좋은시 낭송대회’를 통하여 국민정서를 기독교 정서로 순화, 함양하고자 대회를 개최함.
4. 수 상
국제PEN문학상 수상(2019), 한국을 빛낸 사람들 상(2018), 제47대 대한민국 신사임당 추대, 신사임당상 수상 (2015), 세계전문인선교 대상(2010), 제46회 한국문학상(2009), 제17회 이화문학상(2009), 제1회 순복음문학상 대상(2004), 들소리문학상 본상(2003), 윤동주문학상 본상(1995), 기독교문화예술대상(19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