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집회가 귀를 때린다.
교통도 다 막혀서 걸어왔다.
영락교회에서 시청앞까지 ㅠ
만명이 모였다나?
지난주부터 고장난 새끼발가락이 악악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불굴의 의지로 걸어왔더니, 아뿔싸.
건물 입구 셔터가 닫혔다.
집회 때문에 못 열어놓는다고 ㅠ
골목으로 들어서자 훅 끼쳐오는 담배연기. 자욱한 골목안엔 뿌연 연기가 자욱했다. 고등학교때 하던 화생방 훈련 생각이 났다.
그리고 한 번 더 오른쪽으로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왠 남자가 소변을 보고 있었다.
오후 1시, 햇살이 부서지도록 밝은 백주 대낮에 ㅠ
경비아저씨가 왜 건물 셔터를 내려놓으시는지 그 이유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담배연기를 들이 마시며 기다렸다.
푸른 조끼를 입은 그 남자가 볼일을 다 볼 때까지 ㅠ
기분은 왜 이렇게 구겨지는지...
아 정말 싫다!
흡연구역 설정보다
이동식 화장실 설치가
더 급한 것, 아닐까?
오래된 뉴욕시의 재난계단처럼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서 사무실에 들어와도 여전히 귓청을 때리는 소음. 그 소음을 줄여보려고 창문을 꼼꼼히 점검했다. 오래돼 삐걱거리는 창문을 다시 열었다 쾅 다시 닫기를 반복하다 발견한 전교조 깃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저들은 학생들한테 부끄럽지 않을까? 내일 수업준비는 다 해놓고 길거리에 나왔을까?
나는 아침에 영락교회에서 학생인권조례 반대 서명을 하고 왔는데...
영락교회 본당안에서는 목사님이 태극기를 앞에 세워두고 설교를 하시던데...
민노총은, 전교조는, 저들은
과연 어떤 나라를 꿈꾸는 걸까?
2022년 5월 1일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지난 2022년 5월 1일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본 집회는
단순히 민주노총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집회가 아니라 세계 노동절을 기념하는 대회였는데 왜 그에 대한 언급은 없는지 좀 안타깝네요.
<노동절의 유래>
노동절.
국제 노동자의 날(International Workers' Day)로 불리우는
세계 노동절의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됩니다. 지난 1886년 5월 1일,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에 시달리던 미국의 시카고 노동자들 8만여명은 하루 8시간 근로를 위해 파업에 나섭니다. 그런데 이 평화적인 파업이 행진으로 진행되던 5월 3일 미국 경찰은 어린 소녀를 포함 6명의 노동자들을 총격으로 살해합니다. 5월 4일 이를 항의하기 위해 모인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다시 집회를 개최했고 당시 집회장소인 헤이마켓 광장에서 폭탄이 터지며 수십 명의 사상자가 생겼으며, 주동자 8명이 체포되어 이 중 5명이 폭동죄로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당시 재판으로 기소된 8명은 당시 현장에 없었거나 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아나키스트 내지는 마르크스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됐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때문에 이 판결은 미국 사법부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오심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당연히 전세계 노동 운동가들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이 후 1889년 프랑스에 모인 세계 각국 노동자 대표들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2인터내셔널 선언을 통해 5월 1일을 노동절이라 명명하고 이듬해 1890년부터 세계 노동절이 시작됩니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에 조선노동연맹회에 의해 2,000여명의 조선 노동자가 모인 가운데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의 구호를 주장하며 한국 최초의 노동절 기념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의해 노동조합의 노동절 행사는 물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조직들의 노동절 행사 역시 금기시 되었습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해방 정국에서 5월 1일 메이데이(May Day) 혹은 워커스 데이(Workers’ Day)라는 이름으로 좌파 정당 내지는 단체들이 주도하는 노동절 행사가 치뤄졌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단체별로 진행되던 기념행사는 이승만 정권이 공산당의 선전도구로 이용된다며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 날짜를 옮겨 버립니다.
한국노총의 전신 대한노동조합총연맹은 6·25 전쟁 이 후 1958년 3월 10일 이승만 정권의 지시로 창립됩니다. 당연히 대한노총은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이 아닌 정부의 관변단체 성격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 때부터 매년 3월 10일 노동절 기념행사가 치뤄지는데 이 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명칭까지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꿔 버립니다. 박정희의 군가재건최고회의는 1963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등을 강제로 개정하는 과정에서 법률 제1326호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합니다. 1963년 4월 17일 공포된 이 법률에 의해 노동이라는 단어와 명칭이 근로자로 바뀌면서 유급휴일인 근로자의 날이 정해집니다. 박정희는 법률제정 과정에서 노동자라는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계급적 의미를 의식적으로 차단함과 동시에 산업화에 필요한 의식 고취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근로자라는 명칭을 주입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노동절의 의미가 왜곡되고 이름마저 바뀐 것에 대해 한국의 민주적 노동단체들은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5월 1일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계속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1970년 11월 13일 고 전태일 열사가 분신과 죽음으로 한국의 노동 현실을 고발합니다. 서울 한복판 평화시장에서 벌어진 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 반향으로 번졌고 노동자의 권리 즉 노동권에 대한 각성이 촉구 됩니다. 이는 1980년 5·18 광주 항쟁으로 촉발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1987년 6월 국민적 항쟁으로 이어지고 동시에 민주적인 노동운동이 급속히 활성화되면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하는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는 실내 체육관 행사로 변질됩니다. 1990년 창립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선언하고 노동절 행사를 역사적으로 복원함으로써 사실상 이원화된 노동절 행사가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됩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3월 10일 진행되던 기념일 날짜를 1994년 5월 1일로 다시 바꾸는데 안타깝게도 이름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정한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합니다. 2024년 현재 근로자의 날은 한국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향상하고 안정된 삶을 도모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계승하여 1995년 창립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매년 5월 1일 세계 노동절 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관변단체로 창립된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아직도 5월 1일 근로자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모든 국가들은 5월 1일 노동절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영어로는 메이데이(May Day), 워커스데이(Workers' Day)로 명명하고 있으며 미국 일부 노동조합들은 레이버 데이(Labor Day) 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한편 노동절의 유래 국가인 미국은 5월이 아닌 9월이 노동절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1882년 9월 5일 미국 뉴욕 중앙노동조합이 뉴욕 시청에서 유니온 광장까지 10,000여명이 노동절이라는 이름의 노동자 행진을 진행한 것을 미국 노동자들과 정부가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1889년 프랑스 파리 제2인터내셔널 선언으로 세계 노동절이 제정되기 이전인 1882년 이미 미국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절을 정한 것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첫댓글 ㅜㅜ 학생인권조례 반대하는 분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의원회 위원장님을 하시는건 좀 부적절해 보이네요
박선영 이 분 예전에 교육감 후보로 나온 분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