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26)
빌뱅이 언덕
하늘이 좋아라
노을이 좋아라
해거름 잔솔밭 산허리에
기욱이네 송아지 울음소리
찔레 덩굴에 하얀 꽃도
떡갈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이 좋아라
해 질 녘이면 더욱 좋아라
- 권정생(1937-2007), 권정생 산문집 『빌뱅이 언덕』, 창비, 2012
**
1983년 8월 말, 권정생 선생은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빌뱅이 언덕 아래 흙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흙집은 조그만 야산에 붙어 있어 주인 없는 땅이라며 동네 청년들이 터를 닦고 흙벽돌을 찍어 만들어 준 집으로 방 하나에 부엌 겸 창고가 하나 딸린 작은 집이었습니다. 집 옆의 야산의 이름이 왜 빌뱅이 언덕인지 선생도 정확히는 몰랐던가 봅니다. 달을 보고 비는 언덕이라서 ‘빌배’라고 했다는 이도 있고, 일제 강점기와 6ㆍ25전쟁 이후 빌어먹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아 ‘빌뱅이 언덕’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이충렬,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산처럼, 2002, 213-214쪽). 선생과는 저도 인연이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나들잇길에/일직 조탑동/선생의 집에서/하룻밤을 묵었다.//선생은/버너와 코펠에/불을 피우고/국 끓이고/ 밥을 안쳤다.//…//호롱불 남폿불도 안 켜고/밤을 보내다 잠들었고”(졸시 「1식 3찬」 일부) 이 빌뱅이 언덕 아래 선생의 집에서 하룻밤을 잔 기억이 있습니다. 집을 떠나 여기저기 자주 떠돌아다닐 때라 먼 길도 나들잇길처럼 가벼웠는데 해는 아리까리합니다. 그때까지도 선생의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오며 가며 때로는 혼자, 때로는 여럿이서, 방송을 타면서 방문객이 늘어서 힘들다고 하시기 전까지는 가끔 선생의 집을 들르고는 했습니다. “맑은 눈은 아름답다/중년에 들었어도 맑은 눈은 더 아름답다/그 사내는 눈이 참 맑았다”(졸시 「청명」 일부) 제가 선생을 처음 뵌 건 1980년 여름, 교회 중고등부 지도교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 중에 일직교회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였습니다. 그 이틀의 짧은 시간을 선생과 함께 보내면서 저는 선생의 맑은 눈에 푹 빠졌습니다. 선생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음에도 동화를 들려주는 그 눈빛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은 아마 선생 같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일 겁니다. 그때 이후로 저는 선생을 제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삶의, 마음의 스승입니다. 떠나신 뒤에도 여전히요. 세밑까지도 들려오는 소식이 온통 우울하고 답답합니다. 천년 왕국이든 20년 정권이든 밑바탕이 없는 희망의 말은 억압과 부패를 불러옵니다. 이런 시국이라 희망의 말이나 바램 대신 오늘은 정겨운 풍경을 선사합니다. 풍경에서 아련한 추억이라도 건져 올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새해 인사 마저 드립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지으십시오. 물론 지은 복을 나누는 건 세트입니다. (20231227)
첫댓글 보광님의 권정생 선생님과의 인연이 많으시네요! 열행에서도 2017년 가을학기 인문답사로 남안동을 다녀올 때 빌뱅이 언덕 그 집에, 주인이 떠나신 그 집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