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과 다뉴브 강의 크루즈 낭만여행
제24화 보헤미안 볼타바의 도시 프라하
-2016년 7월 2일-
체코 프리하 (Prague)
우린 오후 4시 프라하에 도착하니 호텔 택시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프라하 (Prague)는 체코의 수도이며 인구는 체코 전체가 약 1000만명 인데
프라하는 약 120만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체코는 보헤미아 지방과 슬로바키아 지방에 흩어져 살든 슬라브 민족이
서기 833년에 모라비아 왕국을 건설하고 헝거리 서부까지 세력을 넓혔으나
906년 헝거리의 마자르 족에게 패하여 이후 슬로바키아 지역은 1000년 동안
헝거리의 지배를 받았으나 보헤미아 쪽의 체코인들은 프르세미슬 제후를
중심으로 프라하로 집결하여 보헤미아 왕국을 세워 로마 황제를 추모하는
그리스도교를 도입하여 1204년에는 왕국의 독립도 인정받아 100년간
크게 번창하였으나 1307년 바츨라프 3세가 사망하자 프르세미슬 왕조가
망하고 함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대 왕 카롤4세는 134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자 프라하를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에 걸맞는 도시로 만들어 보헤미안 왕국(체코)은
크게 번창하였으나 15세기 들어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패망하고 이후
1526년부터 함스부르크 가의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의 속령으로 1918년
까지 300년이 넘게 외세의 지배를 받은 슬픈 역사를 안고 있었으나
독립 투사 마사리크(Masaryk)의 투쟁으로 1차 세계대전 후 1918년에
체코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45년 2차 대전이후 쏘련의 지배 하에서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어 1968년 자유를 갈망하는 “프라하의 봄“도 좌절되어 억압 당하였으나
1988년 쏘련이 붕괴되자 1990년 바츨라프 하벨은 “벨벳혁명”의 주역으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로 국호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1992년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 체코와 슬로바키아 2개 공화국으로
분리되었으니 이 처럼 불행한 역사를 가진 체코 민족이 측은해 보였다
지금의 체코문화는 14세기부터 합스 부르크가의 영향으로 크게 발전되었기에
오스트리아 문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린 택시를 타고 나므네스티(Namesti) 광장에 있는 5성급 호텔
‘Hotel Kings Court“에 여장을 풀고 체코의 관광을 시작하였다
오늘 일정은 저녁에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를 관람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티켓팅 하여
가지고 온 일정대로 시간에 맞추어 19시 국립 오페라 극장을 찾어
가면 되는 것이다
우린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국립 박물관 근처에 있는 국립 오페라 극장
스타트니 오페라 하우스(Statni Opera House)로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갔다
국립 박물관 옆에 1888년 네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오페라 극장은
오픈 기념 작품으로 오페라 바그너의 작품 “뉘른베르크의 마스터 징거”를
공연을 시작으로 하여 체코 안에서 뛰어난 음악가와 오페라 가수를
배출하였을 뿐 이니라 1992년에는 오페라 전용극장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유명 예술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프라하에도 마찬가지로 국립 오페라 극장이 있고 국립 극장이 따로 있었으며
1881년 독일의 지배하에 있을 때 독일어 사용이 강요되고 독일어 극장만
있을 때 체코 예술인들은 “체코어로, 체코인을 위한 무대”란 슬로간으로 체코
예술인들의 기부금 모금으로 1883년에 황금빛 돔을 가진 네오 르네상스식
건물을 완공하고 보헤미아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작가 스메타나의
작품 “리부세”가 초연되었고 지금도 이 국립극장은 체코인의 작품만을
공연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구입한 티켓은 2층 로얄박스 5로 정원 3명의 최고 VIP 좌석인데
990코룸으로 약 환화 60,000원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할 오페라 극장의 로얄석을 체코 여인 한명과 같이
3명이 전세 내어 공연을 관람한다는 것이 우리들에겐 정말로 행운이었다
우리가 로얄석에 앉아 1층 좌석을 내려 보니 5-6명의 미국인들이 동양인 2명인
우리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어 자세히 보니 2일전에 헤어졌든
크루즈여행의 일행들이라 우리도 반가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화려한 무대장치와 우령찬 합창이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배우들의 열연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 여름밤의 하루였다
투란도토는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로 1926년 밀라노에서 초연되었으며
우리에게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알려진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
(Nessun Dorma)‘의 노래로 잘 알려 진 오페라이기에 나도 그 내용은
다소 알기에 오페라의 흐름을 조금은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인터벌 시간에는 와인도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중국의 명나라시대 투란 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페라이다
할머니의 복수를 위하여 아름다운 투란공주에게 구혼하러 오는 주위의
왕자들에게 어려운 3가지 질문을 내어 맞추지 못하면 사형에 처했다
어느날 타타르 국의 왕자가 이 말을 듣고 구혼을 신청하였다
투란공주는 첫재 질문을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하고 질문을 던지니
왕자는 “희망(La Speranza)” 라고 대답하였고
두 번째 질문으로 공주가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 오른다 그것은?“ 하고 물으니
왕자는 “그것은 피 (Sangue!)”다 라고 대답하자
공주는 다시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된다 그것은?” 라고 질문을 던지니
왕자는 “투란도트!(Turandot!)" 라고 외치며 3가지 질문을 통과하고 나니
화가 난 투란공주는 나는 남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니
왕자는 '새벽녘까지 내 이름을 알아내 보시오. 알아 맞힌다면 그대의 승리!
원한다면 내가 죽으리다'제안하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
의 아리아 울려 퍼지고 아침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 하여도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자 왕자는 '이제 공주는 나의 것,내 이름도 목숨도 공주에게 바치리라.
나는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힙니다
그러나 공주는 아버지인 황제에게 '이 젊은이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Amor)!'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며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오페라이다
정말 행복한 밤이었으며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하고 나니 나 자신도
업 그래이드 되는 것 같았다
무대가 동양의 중국인데 무대 예술은 유럽의 무대 양식이라 아쉬운
의문점으로 남아 있었다
우린 이렇게 하여 프라하에서의 첫째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