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서 좌우(左右)를 보다.
연구소에 들어서면 읽고 쓰는 일 외에 딱히 할 게 없다. 요즘은 주야장천 <왜 정조의 통치 리더십인가?>를 가지고 씨름한다. 딱딱해선가. 종종 머리가 지끈거릴 때가 있다. 이럴 때 보약이 있다. 정조와 함께 살다간 이덕무의 글을 읽는 거다. 그의 글은 완전 문학적이다. 어린아이가 쓴 글처럼 맑고 순수하다. 해학(諧謔)도 넘친다. 철학책에 파묻혀 살다 종종 문학관련 글을 읽으면 술술 읽히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같은 패턴. 모니터에 눈을 부라리다 독서전용 공간으로 옮겨 이덕무와 삼매에 든다. 그런데 갑자기 눈길이 책장으로 옮겨진다. 무지개빛 책들 속에서 유독 <명이대방록>이 눈에 꽂힌다. 눈길을 쫒아 <명이대방록>을 꺼내든다. 지인, 김덕균 교수가 26년 전 번역한 책이다. 차례를 살핀다. ‘군주론부터 신하론, 법제론, 재상론, 학교, 관리선발, 국경수비, 토지제도, 병사제도, 회계제도, 서리, 환관’ 순으로 펼쳐진다.
김덕균 교수의 ‘새 시대를 갈망하는 <명이대방록>의 사상사적 의의’란 글을 본다. 1장은 ‘명말청초 격변기의 사회 상황과 신사조의 형성’, 2장은 ‘파란만장했던 생애와 폭넓은 저작활동’, 3장은 ‘<명이대방록>의 구성과 판본’, 4장은 ‘신시대 대망론 <명이대방록>의 사상사적 의의’, 5장은 ‘<명이대방록>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역시 눈에 드는 건 4장 ‘신시대 대망론 <명이대방록>의 사상사적 의의’이다.
<명이대방록>에서 명이(明夷)는 <주역(周易)>에서 볼 수 있는 64괘의 하나다. 즉 상은 곤괘(坤卦), 하는 이괘(離卦)로 형성된 것인데, ‘밝은 태양이 땅 속에 빠져 들어간 상태’를 상징한다. 다시 말하면 ‘밝고 지혜로운 사람이 상처를 입고 때를 기다리는 형국’으로, 곧 암흑시대를 가리킨다. 여기서 초구(初九)를 보면, 지혜롭고 양심적인 사람이지만, 상층부의 음흉함이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상이다.
따라서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육이(六二)는 ‘밝음이 상처받는 상황에서 왼쪽다리를 다치는 형국’이니, 이를 벗어나는데 타고 갈 말이 건강하면 길(吉)하다는 내용이다. 구삼(九三)은 ‘서둘러선 안 되고 참고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즉 독재로 인해 밝은 지혜가 상처받고 양심들이 핍박받는 암흑시대에서 지성과 양심이 혼자서 저항하면 탄압을 받기 때문에 동지들을 규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육사(六四)는 ‘독재의 결과는 파멸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할 입장’이다. 그리고 육오(六五)는 ‘참고 견디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상육(上六)은 ‘밝지 못하여 어두워졌으니, 처음엔 하늘로 올라갔다가 나중엔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바르지 못한 정치는 결국 패망(敗亡)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명이(明夷)의 의미는, 곧 ‘명청교체기’의 명(明)왕조가 처한 ‘상황을 잘 표현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황종희는 이것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며 기다린다는 뜻에서 대방록(待訪錄)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명이대방록>은 ‘신시대 대망록’인 것이다. 즉 신시대를 바라면서 정치와 경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이 책에 수록한 것이다. 정리한다. 지금 여기서 <명이대방록>을 읽고 느낀 점이다. 명청교체기와 지금 우리나라 여야의 상황이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다. 독재시대, 즉 암흑시대를 만난 것이다. 참고 견뎌야 한다.
독재의 결과는, 늘 그렇듯 파멸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