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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적이 없는 세상이 더 무섭다
― 조세희의 두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시간여행』을 읽다
임종욱
1
우리나라도 출판 시장이 커진 탓인지 독자들의 편식 성향이 과한 탓인지 100만 부가 넘게 나가는 단행본 서적이 이따금 나온다.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드물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그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양은 대단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100만 부 나갈 책을 찍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출판사 사장은 엄청 많겠지만…)
그러나 그냥 돈 내고 들어가 두어 시간 스크린만 보다 나오면 되는 영화와 비교할 때(영화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러나 영화는 사실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현대인에게는 딱 어울리는 엔터테인먼트긴 하다.) 독서는 시간과 인내력을 더 요구할뿐더러 아주 고독한 행위다. 너무 재미있어 페이지 넘어가는 것이 아쉽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책이나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책에 대해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경구 가운데 하나가 “많이 팔리는 책 치고 좋은 거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베스트셀러에는 대중의 은폐된 속물근성이나 경박한 호사취미, 절박한 출세욕망 등을 자극해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많이 팔리는 데는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해도 그만한 미덕이 있기는 할 것이다.
건실한 출판문화가 자리하고 건전한 독서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베스트셀러가 출판계의 살림을 좌우하기 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많아져야 한다.(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구차스럽다.) 예전에 교보문고 광화문 매장 입구에 역대 베스트셀러가 전시된 적이 있었다. 거기에 걸린 책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은 제목조차 생소한 책이었다. ‘이런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었나?’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은 단기간에 판매고를 올린다. 기껏해야 일 년이고 짧으면 몇 달이다. 왕왕 책 자체의 품격보다는 마케팅으로 생명을 연장한다.(이게 의외로 잘 먹히니 그런 풍조를 탓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인기가 사라지면 인기만큼 덧없이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꾸준히 나가는 책은 인기에 판매를 의존하지 않는다. 책과 독자와의 신뢰를 추진력으로 삼고, 알찬 내용과 감동을 원료로 주입하기 때문이다. 신뢰와 감동이 바윗덩어리라면 인기나 마케팅은 모래알이 아니겠는가?
책이 나온 지 30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그리고 꽤 많이 팔리는 책이 있다. 제목이 길다 보니 보통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초판, 1978)은 1978년 초여름에 처음 세상에 얼굴을 보였다. 이전 3년 동안 여러 문예지에 단편들이 게재되긴 했지만, 이는 위대한 탄생을 위한 잉태의 과정이었다. 첫 책이 나온 출판사에서만 4판을 거듭해 총 134쇄가 발행되었고, 출판사를 옮기고도 이후 134쇄가 나왔다.(내가 사서 읽은 책이 134쇄다. 희한한 우연이다.) 물경 268쇄가 찍힌 셈이다. 한 권의 단행본 소설이 이렇게 오랜 기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예는 최인훈의 『광장廣場』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예가 아닐까 싶다. 어디서 이런 엄청난 힘이 나온 것일까?
2
내가 처음 이 소설을 읽은 것은 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암흑의 70년대가 지나고 더욱 어두운 흑암黑暗이 찾아왔던 시기였다. 70년대가 어떤 평가를 받든 우리의 경제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였다면 80년대는 도약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정치는 도약 대신 수렁에 빠졌다.(그 무렵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란 야릇한 제목의 소설도 나왔었다.)
한심하게도 별다른 정치의식이 없었던 나는 데모와 진압, 페퍼포그와 백골단을 일상으로 접하면서도 소문처럼 들리는 끔찍한 참극 이야기를 남의 집 일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 나는 내 개인사가 옭아맨 고민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내가 대학 1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중에 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온 첫째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사고뭉치였다. 공부는 당연히 못 했고(나도 못 했으니 꼬집을 입장은 아니다.)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겁이 많았던 나는 일탈을 꿈도 꾸지 못했는데, 동생은 그런 점에서는 달랐다. 심심찮게 패싸움에 가담해 아버지가 경찰서에 가서 동생을 데려오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동생은 성격이 독했지만, 붙임성도 좋았다. 동생과 싸워 나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심약했던 나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그런 동생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더니 어느 날 가출을 해버렸다. 별로 정 붙일 데가 없는 집안 분위기였으니 기이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가출 기간이 길어지고 소식조차 끊어지자 걱정과 불안감이 일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경기도 안양 어딘가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아버지는 동생의 친구와 함께 가서 설득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형이 걸머져야 하는 책임이라 여기고 멀게만 느껴지는 길을 나섰다.
그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장마 기간이었던 모양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동생의 친구와 함께 안양 천변을 헤매면서 동생의 소재지를 뒤지고 다녔다. 비에 흠뻑 젖어 세상이 나를 100톤의 무게로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집을 달아난 동생보다 내가 더 가련하게 느껴져 비참했다. 겨우 찾은 동생은 폐기물 창고 같은 정말 작고 지저분하고 허름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기술이 없는 동생이 무슨 대단한 공작을 했겠는가. 동생은 간신히 빗줄기를 피할 만한 천막이 처진 마당에서 망치를 들고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지금 기억에 선풍기 같은 전자 제품을 재생하기 위한 프레임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비릿하게 녹이 쓴 은갈색 철골을 연마하기 위해 동생은 망치질에 여념이 없었다. 빗줄기 사이로 저만치 있는 동생은 편안해 보였다. 동생이 깡패들과 어울려 몹쓸 짓을 하고 있지 않다니 다행이었지만, 표정에 구김살이 없어 그것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나는 서먹하게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동생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동생은 씩 웃더니 한 마디 던졌다.
“왜 왔어?”
나는 처음부터 동생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마지못해 내 임무를 실천했을 뿐이었다. 딱 부러지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더듬거리며 주워섬겼다. 동생은 알았다면서 그만 돌아가라고 내게 말했고, 나는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허탈감 때문인지 더욱 세상이 차갑게 느껴졌다. 내 설득이 효과를 본 탓일까? 얼마 뒤 동생은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지금 거의 기억에 없다. 특별히 감동적이었다기보다는 무겁고 무섭고 무덥기만 한 작품이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난장이(지금 표준말은 ‘난쟁이’다.) 일가가 겪은 그런 모진 시련과 풍파, 극빈의 현실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공장에서 일해보지도 않았고, 사용자의 횡포나 유해한 작업 환경 속에서 저임금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그러니 소설 속의 현실을 내가 그때 공감하고 분노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 다시 읽으면서 나는 대학 1학년 때 동생이 망치질을 했던, 안양 천변의 허름한 가내 공장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대학에는 야학에 나가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친구도 있었고, 독재 타도를 외치며 불온서적(?)을 읽거나 운동 서클에 가입해 시위에 앞장선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갔고, 또 몇몇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도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여겼지만 거기에 몸담지는 못했다. 다행히 누구도 내게 함께 하자고 권하지도 않았다.(싹수가 노래보였을 테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린 모범생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3
처음 ‘난쏘공’을 읽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이 소설을 읽었다. 이십대 청년이었던 나는 오십을 꽉 채운 어른이 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소설은 내게 읽기가 버겁다. 그때보다 내가 정신적으로 더 성장했다거나 육체적으로 더 단단해졌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묵시록 같은 이 소설은 지금도 답답하고 음울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막무가내로 몰려오는 세상의 압제와 편견을 견디다 지친 난장이 아버지는 벽돌 공장 굴뚝에 올라가 몸을 내던졌고, 난장이의 큰아들은 거대 그룹의 총수를 살해하려다 그 동생을 죽여 재판 끝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극빈과 불평등, 부조리가 소설 속에서는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고도성장이 가능했다는 말 따위가 세상에 존재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30년 만에 그들이 감수해야 했던 모순과 핍박들이 해소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자본이란 흡혈귀가 같아 피골이 상접한 노동자든 제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든 혈관이 흐르는 피부 위로 흡판을 들이대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70년대에 그들은 가난했고 나약했지만 용기와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가난한 자가 반드시 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때 가난하기에 억울하다고 외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어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에 이의를 제기했을 뿐이다. 값싼 노동력이 어쩌면 유일한 성장 동력이었던 그 시대에 노동 착취는 필요악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분명 고도성장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다. 다만 그때 그들이 치른 땀값과 피값이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다. 대학 때 많이 불렸던 운동가요 가운데 이런 구절이 지금도 기억난다.
“너희는 조금씩 빨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을 테다.”
이 구호 앞에 나는 많이 절망했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너희’와 ‘우리’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조금씩 빨아먹는’ 게 착취였지만 ‘너희’에게는 ‘한꺼번에 되찾는’ 게 착취였다. 조금씩 되찾기에는 잃어버린 것과 상처가 너무 많았고 너무 깊었다. 2010년대에 대부분의 노동자는 더 이상 1970년대의 ‘난장이’는 아니다. 그러나 난장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일가족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아동의 영양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대변 검사를 하는 때는 이제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앞과 뒤, 안쪽과 바깥쪽으로 단절된 세상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의 첫 장면과 끝 장면에 나오는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앞과 뒤, 안쪽과 바깥쪽이 나누어진 평면과 입체에서는 아무리 먼 거리를 가고 달려도 처음부터 다른 면과 쪽에 있던 사람들은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 씨의 병’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르다. 그들에게는 그런 구획이 없다. 그래서 비록 등졌다고 해도 가다 보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 등졌을 때 내미는 손은 대결하기 위한 것이다.(권총을 들고 결투를 벌이거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가위 바위 보를 할 때 우리는 으레 등진다.) 그러나 마주보았을 때 내미는 손은 악수를 위한 것이다.(주먹다짐을 벌인다고 해도 최소한 동등하다.) 사람은 한때는 등졌을 수 있지만 결국은 마주보며 악수하고 포옹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삶이자 자세라는 것. 이런 화해와 평등이 충만한 세상을 나는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했고, 이 소설에서 담고자 했던 희망이라고 믿는다.
이 소설이 단순히 70년대 노동자 가족들의 신산하고 원통했던 삶을 폭로하고 고발하기 위해 씌어졌다면, 그 문학적 수명은 꽤 오래 전에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찾고, 이 소설에서 뭔가 의미를 건져 올리고 있다면 그것은 이 소설에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어떤 성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 받고 핍박 받는 사람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궁핍함에 따스한 손길과 눈길을 주게 만드는 영양소가 바로 그 성분이 아닐까?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과 궁핍하고 등진 관계가 지속되는 한 이 소설의 생명력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이 소설은 현실 고발이 두드러졌지만, 이제 이 소설은 우리가 진정으로 실현해야 할 세상으로 나가는 나침반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이 소설이 잘 빚어진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작가가 80년대 이후 벌어진 우리 사회의 격변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렸을지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4
출판사를 바꿔 새로 출간된 이 소설의 모두에는 <작가의 말>이 실려 있다. 거기에 보면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의 하나인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데 철퇴로 대문을 부수고 시멘트 담을 쳐부수는’ 장면이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 싸움 끝에 돌아오면서 산 작은 노트에 쓰기 시작한 글이 지금의 ‘난쏘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70년대와 그 이전, 그리고 80년대까지 ‘악’은 그것이 비록 ‘선’을 가장하고 있더라도 눈 뜬 이라면 그것이 ‘악’인 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80년대를 지나면서 이런 이분법적일 만큼 단순한 선악의 구별법은 유통 기한을 다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과연 무엇이 몸과 생명을 바치더라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적’인지 그 정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자신과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나의 이익을 부정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과거에는 적과 동지는 선험적으로 윤리적으로 경계선이 분명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경험적이고 감정적인 선상을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더 풍요로워졌지만 심리적으로는 더 공허해져 버렸다.
작가가 재개발 지역에서 겪은 체험은 ‘난쏘공’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명작이 탄생하는 동인이 작가에게 있는지 사회에 있는지, 상상력에 있는지 체험에 있는지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작가는 ‘난쏘공’ 이후 다시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하는 깊은 창작의 암흑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작가가 이 소설 이후 일궈낸 문학적 성과는 ‘난쏘공’이 보여준 거대한 담론과 도저한 예언에 비할 때 놀랄 만큼 초라해졌다. 그가 이후 낸 작품집이라고는 1983년에 나온 『시간여행』(문학과지성사)밖에 없다. 이 책에 붙은 김병익의 훌륭한 독후감에 따르면 『천사의 달』이라는 장편을 쓰다 중단했고, 난장이 이야기에 ‘질려 버렸다’는 고백이 책에도 나온다. 사람의 힘으로 피라미드를 쌓아올렸지만, 사람은 피라미드를 짊어지지는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난쏘공’은 그 탑을 쌓아올린 작가 자신에게도 엄청난 장벽이 되어버렸다. 그 장벽의 끝 모를 높이에 작가마저도 질려버렸다.
『시간여행』에는 ‘난쏘공’ 후일담과 작가 자신의 신변잡기 같은 글들이 촘촘히 실려 있다. 그리고 상당히 긴 중편소설 <시간여행>이 있다.
이 중편은 상당히 난해하다. 우리의 역사를 두고 제대로 된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병들고 왜곡된 수난과 질병의 연속이라는 점을 강변하고 있지만, 도무지 그 힐책의 촉수와 반성의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잘 짐작되지 않는다. 정말 우리의 기니긴 역사적 삶과 그 삶에서 걸러낸 어떤 흔적 또는 알갱이에 대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했다면, 이 소설이야말로 한 권의 묵시록이 아닐 수 없다.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는 완강한 철조망 때문이었는지 작가는 이 소설도 사실상 미완으로 끝내야 했다. 작가를 버티게 했던 가늘지만 질긴 하나의 줄이 더 이상 장력을 견디지 못했던 듯하다. 작가는 그 와해와 파탄이 가져온 고통 때문에 작가로서의 생명마저 (그것이 자의든 불가피한 것이었든) 끊어버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작가의 절망은 <시간여행>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서도 읽혀진다.
재판할 사람을 남겨 두지 않은 일본인에게 고마와하게. 그리고 재판받아야 할 죄인들이 재판을 안 받고 대거 참가한 우리의 그 뒤 진행에 고마와하게. 재판할 사람이 없었지. 죄인을 잡아 조사하고 기소해서 형을 선고해 그 죄인들을 감옥에 가둘 사람이 없었어. 아이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지. 결국 죄인들이 또 범죄하고 말았네. 나쁜 선례를 남겼어. 죄를 지은 사람과 죄를 안 지은 사람이 똑같이 다루어지는데 애써 죄짓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음 아이들이 살 세상이 눈에 보여.(『시간여행』, 244∼245쪽)
이 독백은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 되었을 때 자신을 고문한 조선인 고문리를 해방 뒤 보신각 종각 앞에서 만나, 자신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려지지 않는 현실에 어리둥절 해하는 그를 보며 주인공 신애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해방 이후나 80년대 이후나 세상은 조금 변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여행』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완결된 구성과 의미망을 가지지는 못했다고 해도 이 책이 이제는 절판이 되어 도서관이 아니면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왜 268쇄까지 나간 ‘난쏘공’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잃지 않고 있는데, 『시간여행』은 외면해버린 것일까? 그가 남긴 소설이 수십 권에 이른다면 모르겠거니와 고작 두 권밖에 없는데 말이다.
임종욱 한문학자. 소설가. 저서『동양 문학 비평 용어 사전』, 장편소설『시상은 왜?』
첫댓글 난쏘공을 가장 감명 깊은 책으로 꼽던 장애우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