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사랑에 눈을 뜬 사람들 2
안방으로 건너오라던 경연의 말에 몸을 일으킨 예령은 옷을 차려입고 안방문을 열려다 다시 불붙은 남녀의 열락에 빠진 소리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다시 자기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직 열여덟인 자신과 동갑이긴 해도 말투나 행동이 이미 어른인 것으로 보이던 경연의 전륜한 정력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몸이 다시 달궈지고 있었지만 애써 다스리며 입은 옷 그대로 살포시 눈을 내리 감았다.
지나온 과거가 다시 주마등처럼 스쳐갔으나 이내 새벽녘에 자신의 귓가에 남긴 경연의 나긋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며 기분을 들뜨게 했다. 그 들뜬 기분으로 황홀한 느낌을 느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고 화들짝 놀라서 잠을 깨어보니 주방에서 흥겨운 콧노래가 들려왔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정숙은 옷매무새를 거울에 비춰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응. 깼어요?"
"예 죄송해요. 제가 늦잠을 잤나 봐요." 눈을 마주친 정숙이 빤히 예령을 쳐다보며 짖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땠어요?"
'뭐가요?"
"시치미 떼기는...나 다 알아요...어때요? 우리 서방님?"
"....."
아주 노골적으로 말을 건네는 정숙의 질문에 예령은 순간 당황했다. 에령의 당황한 표정을 눈치 챈 정숙이 가만이 예령의 손을 잡으며 그윽한 말투로 나직히 예령을 불럿다.
"아가씨..."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예령이 나직히 대답했다.
"네"
"우리 이제 숨김없이 다 말해요. 아가씨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 그이의 엄마 아녜요. 첨엔 그이의 유모였지요. 그리고 어느 샌가 난 그이의 아내가 되었어요. 그이는 아직 아가씨 또래지만 나에겐 하늘 같은 남편이며 내 몸뚱이의 완전한 주인이예요."
"....."
"혼자서 30년을 넘게 남자를 잊고 살다가 어느날인가 아들처럼 키우던 그이에게 몸을 열었고 그 순간 나는 영원히 그이의 노에가 되었어요."
"....."
"하지만....현실적으로 그이와 나이 차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그이는 또 나 말고 누군가가 정식 부인으로 자리를 채워줘야만 하지요."
"....그냥 딸 긑은데...말씀 편히 하세요."
"그래요...편해지면 그렇게 할께요. 그이에게 대강 들어서 알지만 아가씨도 우리 그이 만큼이나 외로운 사람이고....어찌되었든 이것도 인연인지.... 우리 그이와 몸을 섞었으니...우리 차츰 서로를 알아가기로 하고... 함께 그이를 모셔요."
"네"
"그이는 굉장한 한을 가진 사람이예요. 아직 그 누구도...그이 자신도...자신의 신분과 자신이 해결해야할 한에 대하여 알지 못해요......이 세상에 딱 두 사람 ...나와 또 한 분.....아니지 어쩌면 모두 살아 있다면 또 세 사람이 있지."
"????"
"이렇게 난마처럼 얽힌 한을 풀 사람은 그이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그이가 그 일을 아름답게 매듭지을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도와야해요."
"...."
"아가씨....아니 예령씨"
"네"
"어쨌든 우린 한 남자를 같이 모시는 여자가 되었어요."
"네에"
"우리 둘이나 그이와 셋이 같이 있을 때는 그냥 나를 언니라 불러요. 정식으로 하면 형님이라고 해야 하지만 그냥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나도 편하게 동생처럼 대할께요"
"예"
"그리고 그이가 시킨대로 해요. 공부도 하고 대학도 가고....애기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애긴 내가 먼저 낳을 거예요...."
"???"
"우리는 그이가 원하면 어디서든 그이를 받아들여야 하고...따로 하든지...그이가 둘이 같이 원하면 둘이서 함께 그이를 모셔야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
"어땠어요? 좋았어요?"
"...네에"
"난 그이의 손길만 스쳐도 몸이 그냥 반응해요.....사랑이라면...사랑이 그렇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거고....그냥 본능이라면 또 본능이겟지만....난 30년 이상을 수절해왔으니 본능이라고 하기에는...그래서 난 이것이 지독한 사랑이구나 하고 생각해요."
"저도 그래요. 전 그 사람 처음 본 순간부터...정말 경황이 없었지만 얼굴이 붉어졌어요. 고아원 원장의 손길은 징그럽기만 했고 원장이 보낸 깡패들에게 희롱을 당할 때도 꼭 죽고 싶을 만큼 치욕스러웠는데....그 사람이 나를 안은 순간 내 몸이 흐느적거리듯 무너졌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입술을 받았고... 뜨거워진 몸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
"그래요. 우린 이미 그이의 포로가 되었어요. 그이가 우리 몸을 어떻게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그이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우린 서로 조심해야 되요. 그이의 건강도 생각해야 되니까."
"네"
"아이구 이거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네? 찌게 다 탄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조곤조곤 얘기하는 동안 불에 올려놓은 찌개가 타고 있었다. 그러나 예령은 그 매캐한 내음도 좋았다. 이제 자신이 정착할 집을 찾았고 언제부터인지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 아니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할 남자도 생겼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몸을 열어준 이 아침, 새로운 세상이 자신에게 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한 남자를 공유하는 처지이긴 해도...한 남자의 여자가 되었고 그 남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믿음직한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
그것이 사랑인지는....그 남자를 먼저 차지했던 여자로부터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지만....그것이 사랑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정신의 반응이나 몸이 반응이 이전의 남자들과 확연히 달랐으므로....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결실을 아름답게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숙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전 까지는 그냥 수절했던 자신의 몸뚱이가 늦은 개화기에 만난 흡족한 봄비에 젖은 나무인 것으로 생각했으나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열락에 빠진 남자를 생각하면서 불같이 솟구친 질투심 때문에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 결과는 이 모든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사랑하나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흔적도 없이 불타버린 집터에서 아직 걸음마도 서투른 경연의 손목을 잡고 맹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숙은 이제 엄염히 자신의 주인이 되어버린 남자이기도 한 경연의 앞날에 자신은 끝까지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더 쉬운 길일 것이다.
'여보게...유모....이 아이를 책임지게.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자네가 엄마노릇을 해주게. 그리고....혹여라도 이 아이가 이 억겁의 한을 알게 되더라도...자네가 이 아이를 잡아서 슬기롭게 그 한을 풀어내도록 해야 되네.'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애원하던 노마님의 마지막 눈빛을 생각하며 정숙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이놈이 제 아들인 것을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각별히 부탁드리는 것은 이놈이 지 생부를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이놈이 자신의 생각까지를 갈무리할 수 있을 때 내가 이놈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놈 생부가 욕정에 눈이 어두워 나에게 했던 것 들...우리 아버지에게 했던 몹쓸 행패들....이놈 어미에게 했던 그 몹쓸 행패들...또 다른 자식 하나를 버리게 만든 패륜적 행위들....이 모든 것들을 내가 말해줄 것입니다. 그리고....그 업보에 대한 해답을 이놈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눈에 선 핏발을 간수하지 못한 스님의 모습은 그냥 스님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눈빛만으로 보면 스님은 스님이 아니라 한 마리의 야차였다. 그러나 정숙은 그의 눈빛에 담긴 한의 깊이를 알고 있으므로 그것에 대하여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정숙에게 자신도 모르게 사랑이 찾아왔다. 몸뚱이를 불붙힌 정염이라고 알았으나 그것은 사랑이었다. 세월의 무게가 더께더께 앉은 사랑은 더욱 그 깊이가 깊었다. 정말 경연의 완전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 그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정숙은 아침에 뿌려준 주인님의 씨앗이 혹여 바람에라도 날아갈까 두려워 두 손을 모아 지긋이 사타구니 사이의 음부를 눌렀다. 그리곤 금새 아침의 열락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게 붉혔다.
첫댓글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잘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겁게 탐독합니다.
즐감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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