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2011.04.23.토
산행코스:저수령-문복대-벌재
산행거리:6km
산아래 마을도 매화, 진달래, 복사꽃이 앞을 다투어 개화를 시작하고 거름 뿌려 축축한 텃밭엔 코따뎅이(꽃다지), 냉이가 융단을 깐듯 펼쳐져있다.
긴 겨울잠에서 깬 대지들은 품었던 씨앗을 싹으로 튀우고 웅크리고 앉아 게으름을 피우던 뱃살 두둑한 새댁들 감성을 자극하며 봄이 코끝에 와 있다.
어제 내린 비로 산행길이 미끄럽고 질척하진 않을까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저수령에서 차갓재까지 오늘 산행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다.
평소와 달리 미모 받쳐주고 인품 받쳐주는 게다 야무진 살림꾼인 차영애선생님께서 동행하니 이상갑선생님은 점심메뉴에 엄청난 기대를 하시는지 신이 나서 차량지원까지 흔쾌히 하겠다신다.
그덕에 기름값 굴었으니 누이좋고 매부좋고.... 나야 그저 '고맙습니다.'다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누워서 뭉게다 늦어버렸다.
늦었다고 서두르다 보니 수통에 물을 채운다고 들고 다니다 수통마저 챙기지 않고 산행 들머리까지 와버렸다.
이런..... 이런 낭패가....온종일 목말라 봐야 정신을 차리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돼는 일임에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 출발지 저수령은 경북 예천시 상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대강리를 경계하는 재로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상주,문경,예천에서 서울을 가려면 이 저수령을 꼭 넘어야 했다.
그런데 죽령터널이 뚫리고 중앙고속도로가 연결 되면서 을신년스럽게 허물어진 저수령휴게소가 말해주듯 이젠 찾는 이가 없다.
대로가 뻥뻥 뚫리고 질주본능을 타고난 고급승용차들은 고갯길을 달리지 않는다.
우리같은 뚜벅이들이 애써 찾지 않는다면 고개를 넘나들 이유도 없는 셈이다.
예천 상리를 지나며 본 큰 저수지 때문인지 이곳 저수령은 저수령(貯水嶺)이라 표기하고 물과 관련된 지명이라 생각했는데 고갯마루에 저수령(低首嶺)이라 돌비석에 써져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끝도 없이 걸어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해서 저수령이라고 불렀을까?
까닭은 알수 없으나 오늘은 바람이 거칠고 추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안개 자욱하고 하늘 역시 구름 잔뜩끼었다.
소백산 자락은 어디에 서더라도 바람 고요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이상갑선생님 송천과 함께 마시려고 챙겨온 막걸리가 터져 아침부터 술냄새 풍기며 산행 들머리에 들어선다.
가스가 차서 반은 새고 남은 반도 술병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밖으로 새나올 기세다.
옷과 배낭에 밴 술냄새 때문인지 잰걸음으로 앞서 가신다.
간격이 생기면 배낭 정리를 하실 요량인 것 같다.
꺼내놓은 내용물은 막걸리에 적당히 젖어 요란한 냄새와 함께 볼품없는 모양들로 쭈~욱 널려 전시되고 있다.
활짝 핀 할미꽃이 간밤에 내린 비에 젖었다 찬바람맞고 통째 얼어버렸다.
야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모진 환경을 극복 해야 생이 가능한지.....
추위에 웅크리고 앉은 할미꽃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아 안스럽기만다.
산행 경로를 이탈한 덕이 예천 용두마을을 한눈에 펼쳐보게 됐다.
두꺼운 구름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이 그림처럼 예쁘다.
마을 풍경을 내려다 보며 지도를 꺼내든 이상갑선생님.... 아뿔사....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첫번째 봉우리에서 우측 길로 들어섰어야 했는데 잘 닦인 길을 걸어 오며 일말에 의심도 없이 30여분을 경로 이탈 한 것이다.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 간다. 이렇게 되면 올때 30분이었듯 갈때 또 30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대간길 걷다 보면 이런일 허다하겠지만 아침 첫 걸음부터 이러니 일진이 걱정스럽다.
지도를 펴놓고 나침반들 돌려대지만 현위치가 파악되지 않는다.
출발부터 확인하지 않고 시작했으니....
30분 알바 했으니 대충 1~ 1.5km를 용두산 방향으로 온 것이다.
순간에 실수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처럼 아차 하는 순간 하루가 휘청하는 것이다.
산행을 인생살이와 비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통한다.
마냥 순탄한 산행이 없듯 마냥 순탄한 인생살이도 없는 법이다.
여기에 하나 더 한다면 산행도 삶도 동행하는 반려에 실수는 공동에 책임이지 탓하며 원망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헛걸음 한 것 같아 투덜거려 보지만 그 덕에 햇살 쏟아지는 용두마을을 관망하지 않았던가
최단거리를 선택하며 최고속을 지향하는 현대인들에 습성이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공허감 처럼 산행도 마찬가지다.
목적지를 향한 과속 보다는 느리더라도 우회하며 꼼꼼히 살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더 많은 경험과 추억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풍요로운 삶이란 어쩌면 이런것이 아닐까?
안개 자욱한 능선길엔 가지끝에 얼음꽃이 피었다.
푸른 소나무잎 끝에 하얀 서리꽃 핀 풍경은 계절에 경계를 허물고 겨울과 봄이 짧은 시간 동거를 타협한 것같다.
하루를 반려해주신 차영애선생님과 산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소소한 일상에 조각들이지만 그안에 따뜻한 삶에 향기가 느껴져 참 좋다. 아이들에 이야기며 농사를 짓는 여성농업인이라는 자긍심과 철학은 분별없는 나를 일깨워준다.
난 인복이 참 많다. 가까이에 친구같고 선배같고 또 같이 늙어갈 여성동지가 많아 삶에 방향을 제시 해 주니 말이다.
차영애선생님 머리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 하나가 있는데 저 봉우리가 천주산이다.
실지 보면 봉우리 하나 외따로 가파르게 서 있는데 사진으로 봐서는 완만해보인다.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인다 하여 하늘받침대라는 뜻의 천주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멀리서 보기에 경사급한 저 산도 산행이 가능할까 궁금해진다.
이상갑선생님 말로는 길이 있다고 하니 저산을 통해 하늘로 등천하는 길도 있지 않을까? 혼자 또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황사와 안개 자욱해 사진속에는 뒷쪽 산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천주산 뒷쪽으로 공덕산이 자리하고 있다.
천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에서였을까 두 봉우리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진행 방향으로 좌측편 문경시 동로면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저 있다.
정상석에 이름처럼 이곳 문복대는 저수령과 벌재 사이에 있는 최고 봉우리다.
단양과 문경,예천을 경계하는 산으로 북으로 뻗어 수리봉, 신성봉, 단양 팔경중 하나인 상,중,하선암이 있는 도락산으로 연결된다.
우리처럼 백두대간을 남진하는 경우 문경에 첫관문이 되는 산이기도 하다.
그래도 대간동지인데 이상갑선생님 나더러 뚱하고 못생겼다며 사진 버리지 않게 몸을 쑥여 차선생님 얼굴 가리지 말라신다.
그래도 등치값은 했다. 가리지 않으려고 쑥였지만 차선생님 보다 두 배로 크게 나왔다.
벌재로 가는 길 내내 진달래 길이다.
날씨가 수상하니 용기 있는 녀석들만 꽃을 피웠다.
3~4일 더 있으면 이 길은 만개한 꽃길일 것 같다.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진달래 꽃을 따먹어본다.
쌉싸름하고 새큼한 맛은 예전 맛 그대로다.
가늘고 매끈한 수피와 야리야리한 꽃잎이 차영애선생을 닮았다.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 할 즈음 벌재에 도착했다
간식으로 사과하나에 떡 그리고 이상갑선생님께서 싸오신 수육 넣고 야채쌈 싸서 먹은지 불가 한시간 전인데 벌써 배가 고프다.
벌재에 도착하면 점심을 먹고 차갓재까지는 서둘러 걸을 생각이다.
아침부터 알바 한탓에 서둘러야 대중교통 이용해서 차량을 회수 할 수 있다.
벌재에 내려서니 엄청난 돌비석이 우리를 맞는다.
이런.......
오늘 일진은 왜이럴까?
아침부터 수통을 잊어버리고 산행에 들어서지 않나, 한시간 가량 알바를 하지 않나, 거다 출구없이 꼭꼭 싸묶은 벌재라.....
점심을 미루고 철조망 틈새로 어디 개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 서려고 어슬렁어슬렁 찾고 있던중에 월악산국립공원 직원이 도착했다.
차를 새우고는 내려 위엄성 있는 표정으로 "이곳은 통제구간이라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치 도둑질 하다가 들킨 사람을 훈육하듯 하신다.
"안그래도 산행을 포기하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탈 요량으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 산아래까지 저희 좀 태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상갑선생님은 이럴 때 보면 정말 눈치가 100단이시다.
"아 그렇습니까? 잘 생각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가 산 아래까지는 태워다 드릴 수 있습니다." "가십시오 "
이렇게 짧은 시간 선택에 여지 없이 산행을 포기 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아쉬운 마음이야 간절 하지만 이런 상황에 우겨가며 강행군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벌금도 걸려 있는 상황인데 문제삼지 않고 산아래까지 태워다 주신다니 이얼마 다행스러운 일인가
얌전히 팔려가는 강아지 처럼 공원관리공단 직원 차에 올라 앉았다.
어처구니 없이 저수령에서 차갓재 구간은 허리가 댕강 끊어진 반토막이 되버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짧은 산행중 알바 했던 한시간이 있었기에 조금은 덜 억울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해서 8시간 산행계획이 알바 1시간을 포함해 4시간 산행으로 끝이 났다.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하는 산행엔 이런 문제들이 시시탐탐 고개를 쳐들고 기회를 노리니 방법은 하나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