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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때(1965)필자. 노고단 소풍 (박종배선생님과)
반달곰이야기-1
반달곰이야기는 필자의 사냥경험담과 함께 쓰려고 합니다. 사냥이야기는 따로 써보려 했더니, 중복되는 것이 많아 함께 쓰려합니다. 요즘엔 너무 일이 많아 보름 만에 쓰는 것도 버겁습니다. 당분간 한 달에 한번 올리려는 생각입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 합명회사에 곰 잡아 왔단다~ 곰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1963년)때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아랫골목에 사는 친구가 오더니, 합명회사 포수들이 지리산에서 곰을 잡아 왔다고 알려줬다.
필자의 집과 약 200m떨어진 합명회사(구례읍 봉동리 소재 막걸리 양조장)로 달려가 보니, 마당입구 모과나무 아래 반달곰을 누여 놨는데 검은 몸체에 앞가슴에 하얀 털이 선명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때의 다른 기억은 별로 없는데, 합명회사에서 처음 반달곰을 본 기억은 너무 강열하여 지금도 엊그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구례는 지리산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예부터 포수들이 끊이지 않았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낚시나 야생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겨울이면 합명회사의 포수들이 꿩, 고라니, 멧돼지를 잡아오는 것을 보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기회가 되면 털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꿩의 날개깃털이나 긴 꼬리털이라 도하나 얻으면 집으로 가져와 애지중지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꿩의 날개깃털은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기 때문에 날개깃털 하나 얻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합명회사는 사장이 김홍일씨였는데 사냥을 좋아하여 .벨기에제 브라우닝 수평쌍대 엽총과 실탄을 쏘는 윈체스타 303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었다. 김홍일씨는 재력이 있었기 때문에 구례 포수들의 좌장 역활을 했고, 야생동물을 추적하여 사냥을 돕는 발꾼들을 고용하여 사냥철이 아닌 때에는 주조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발꾼중에 엄센(엄씨)이라는 분이 계셨다. 이분은 뛰어난 발꾼으로 주로 멧돼지와 곰을 추적하고 사냥꾼이 총을 쏠 수 있도록 몰이를 하는 기술이 뛰어난 분이었다. 이분은 주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고두밥을 해서 마당에 덕석을 펴고 널어놓으면 아이들이 기회를 엿보다 담을 넘어 뛰어가 두 손으로 한주먹 쥐고는 달아나기 때문에 고두밥을 지키는 일을 했다. 필자는 어렸을 때는 형들이 훔쳐온 고두밥을 얻어먹다가. 초등학교 5~6학년 때는 친구들과 함께 직접 담을 넘어 행동에 나섰다. 고두밥을 지키는 엄센이 화장실에 가거나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면 잽싸게 담을 넘어가서 고두밥을 두 손에 쥐고는 도망을 나오곤 했다. 고두밥을 훔치다가 붙잡히기라도 하면 술을 만드는데 쓰는 큰 술독(항아리)에 넣어놓고 뚜껑을 닫아 벌을 주기도 했는데, 아이의 부모님이 가서 빌어야 풀어주기도 했다. 엄센은 고두밥을 담을 넘어와서 훔쳐가는 아이들을 혼내주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척하다가 아이들이 담을 넘어오면 뛰어가 잡곤 하였다. 필자는 한 번도 잡히지 않았는데 기회가 오면 담을 넘어 뛰어가 한주먹 쥐고 돌아 뛰어 나오면 엄센이 야 이놈아 거기 서~ 하면서 쫒아오는 시늉만 할뿐 굳이 잡으려 하지 않았다. 다음에 길을 가다 만나서 인사를 하면 야 이놈아~ 다치면 어쩌려고 담을 뛰어 넘어 훔치러 오냐, 먹고 싶으면 나더러 달라고 하지 앞으로는 담 넘지 마라 하시는 것이었다. 고두밥을 훔쳐 먹는 것은 필자가 어렸을 때 놀이였고 그런 인연으로 엄센과는 친해졌다. 엄센은 구례읍에서 서쪽으로 산 넘어 있는 계산리 상유부락에 살았는데 절골 뒤로 산을 넘어 다니곤 했다. 이 산에는 개호랭이(표범)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아침에 유곡에 사는 사람들이 읍내에 나오려면 모여서 함께 산을 넘어오곤 했는데, 엄센은 밤에도 혼자 산을 넘어 다니곤 했다. 6.25때 가족을 다 잃고 혼자 살아남았는데 일이 끝나면 술을 한잔하고 흥얼거리며 꼭 집에 돌아가는 분이셨다.
어렸을때부터 훈련을 시킨 명견 독일포인터 케리와 꿩사냥
필자가 중학교 때 6십대 초반쯤 되었을 엄센은 마른체구에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이셨다. 구례에서는 가장 짐승 몰이를 잘하는 분으로 이름이 높았다. 필자가 길에서 만나면 졸졸 따라 다니면서 동물과 사냥에 대하여 물으면 ‘야 이놈아 공부나 하지 뭐하게 물어 쌌냐 하면서 사냥하면 못써 임마, 하곤 했다. 이분에게 개호랭이(표범), 멧돼지에 대해서 들었는데 개호랭이는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고라니나 멧돼지등 먹이를 잡아먹고 있을 때 사람이 접근하면 공격할 수 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산에 가다 이놈이 쉐~쉐~(고양이가 경계하는 소리와 비슷함. 필자는 중국 할빈동물원에서 경계음을 들었음) 하고 경고음을 내면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아 천천히 그놈으로부터 멀어져야 해. 그러면 괜찮아 하는 것이었고. 멧돼지는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불 맞은(총맞은) 놈은 사람이 접근하면 달려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분을 귀찮게 하며 야생동물에 관한 얘기를 듣곤했다.
구례에는 ‘향제줄풍류’라는 유형문화재가 있는데 이철호씨가 예능 보유자(인간문화재)이다. 이분은 필자의 친구의 형님으로 나이로 봐서는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친구의 형님이니 지금도 형님이라고 부르는 필자와는 매우 친하게 지내는 분이다. 이분은 젊었을 때 유명한 복싱선수로 로마올림픽때 선수로 선발되었는데, 정부에서 한 체급 높은 급에서 선발된 김기수 씨와 통합 전을 벌여 이기는 사람이 나가도록 하는 바람에 김기수씨에게 패하여 올림픽에 출전을 못하신분으로 총을 잘 쏘고 사냥도 잘하는 명포수다. 이철호씨의 부친은 한약방을 하셨는데 일제시대때 일제 무라다총으로 지리산에서 대호(호랑이)를 잡은 분이다. 어렸을때 부친께서 사냥을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란 이철호씨는 특히 산탄엽총으로 날아가는 꿩을 쏘는 기술이 뛰어난 분이다. 필자가 중학교 1학년때 이분의 엽총사냥을 따라 갔다. 구례읍 서쪽 산성봉쪽으로 사냥을 갔는데, 꿩을 잡으면 꿩을 들고 따라 다녔다. 꿩을 여덟 마리나 잡아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엽총을 가지고 싶다는 강열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합명회사는 구례읍 봉동리 479-2번지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었다. 필자가 지리산의 반달곰을 보호하기 위해 1996년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는데, 1997년 봄에 이 합명회사 창고를 개조하여 사무실을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때 처음 반달곰을 보았던 곳에 사무실을 마련하여 그 반달곰의 후손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게 된것이다.
멧돼지 사냥
필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님께서 섬진강에 낚시를 하러 가실때나 지리산을 등반할때 자주 따라 다녔다. 필자 위에 형님이 계시고 손아래 동생이 있지만 유난히 저만 기를쓰고 따라가려해서 안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1967년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었고 연하반을 지리산악회로 개칭한 후 필자도 지리산악회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친구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산악활동을 시작하였다. 지리산악회가 주관하는 철쭉제나 원추리 잔치등 산악행사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등산로 개척에도 참여하였다. 사냥과 등산활동을 통하여 지리산을 조금씩 알게 되었으며 특히 야생동물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1996년 3월 환경부 자연정책과 보건서기관 신동영씨, 사무관 유태철씨와 강릉대학 백남극교수 충북대학 고흥선 교수 일행이 구례에 왔다. 지리산 관통도로에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만들기 위해 현지답사 차 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분들은 필자의 아버님을 찾아오셨는데, 아버님께서는 야생동물의 생태를 잘 아는 저를 부르셔서 도움을 주도록 말씀 하셨다. 환경부 자연정책과 일행을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필요한 지점으로 안내하였다. 천은사~시암재~성삼재~심원마을 구간 중에 도로가 개설되지 않았을 때 야생동물이 잘 다녔던 곳인데, 철재 가드레일 때문에 길을 건너지 못하는 곳과, 다람쥐, 청설모, 산토끼, 뱀등 소형동물이 빈번히 로드킬을 당하는 지점으로 안내하였다.
안내한 곳 중 시암재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샘이 없어졌지만 샘이 있던 곳으로 시암재 위 는 차일봉 북쪽으로 경사가 급하여 멧돼지, 노루 고라니같은 야생동물이 넘어 다닐 수 없는 지역이다. 따라서 구례군의 동북쪽인, 광의면, 산동면에서 화엄사계곡 상층부로 교차 이동하는 야생동물들이 가장 많이 이동하는 통로 였다.
환경부에서 온 분들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만들어 야생동물이 잘 이동하는지 모니터링을 하여 전국으로 확대 설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따라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어렵게 예산을 확보하였는데, 야생동물 이동통로 개설 후 야생동물이 잘 이용하지 않으면 이동통로를 확대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으니 위치선정에 신중을 기했다. 환경부에서 온 일행들과 지리산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필자가 지리산에 반달곰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했더니 확실히 반달곰이 살아있느냐고 물으면서 과장님께 보고를 해야겠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 유태철 사무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과장님이 곰이 살고 있다면 그 흔적을 볼 수 있으면 보고 오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현장에 함께 가서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필자는 그날 밤에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여 어느 곳에 가면 반달곰의 흔적을 볼 수 있는지 수소문 하였다. 필자는 당시 구례엽도협회 총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리산에서 사냥을 하거나 밀렵을 하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 남산부락 태생인 유판열(1953년생)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필자와 환경부 분들과 백남극박사님(당시 강원대 교수,비바리뱀을 발견하여 명명한분)과 구례군 마산면 출신 권재헌(1952년생)씨와 함께 유판열씨의 안내로 경남 하동군 화개면 선유동계곡으로 갔다. 약 3시간쯤 산을 올라가니 아름드리 산벗나무에 1995년 늦봄에 반달곰이 버찌를 따먹기 위해 오르내린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었으며 산벗나무 가지를 꺾어 놓은 것도 많이 있었다. 주위에는 산뽕나무도 많이 있었는데 산뽕나무에도 오디를 따먹기 위해 오르내린 반달곰의 흔적이 많이 있었다. 백남극 교수는 양서파충류 전문가이셨지만 엽총 사냥을 하신 분으로 곰의 흔적을 보더니, 반달곰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시고 흥분을 감추지 않으셨다.
1974년 노고단 철쭉제 참가한 필자
1996년 6월 환경부 자연정책과 선우영준 과장님과 직원들이 야생동물 이동통로문제로 다시 구례에 왔다. 선우영준과장님 일행과 시암재에 도착하여 도로옆 숲속에 야생동물의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도로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면서 남겨진 반달곰의 족적이 뚜렸이 찍혀있었다. 족적은 경사지 흙에 찍혀있었는데 경사지였기 때문에 발톱자국이 선명했다. 선우영준과장님은 반달곰이 살아있다면 매우 중대한 문제이니 꼭 살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지역주민들이 보호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으니 필자에게 적극적으로 반달곰을 보호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필자는 고민에 빠졌다. 사냥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필자는 엽총 두 자루와 생후 1개월 된 강아지를 2년 동안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강으로 다니면서 훈련을 시킨 잉글리쉬 포인터와, 멧돼지 사냥개 7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1982년 이후 매년 겨울이면 4개월 동안 엽총사냥을 하였다. 20대 후반에 몸이 아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이 쇠약하여 사냥으로 몸을 추스르면서 매년 겨울이면 사냥을 하였었다.
필자는 사냥을 하면서 사냥기를 구해 많이 읽었고 야생동물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 구례는 사냥의 고수들이 많아 함께 다니면서 사냥기술과 야생동물의 생태를 배울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수들과 함께 20년 이상 사냥을 했으니 제법 노련한 사냥꾼이 되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사냥꾼들을 알게 되었고, 지리산 주변의 사냥꾼들은 대부분 알게 되었다.
1996년 무렵에는 수렵과 밀렵에 의해 야생동물이 매우 귀해졌다. 매년 수렵을 하기위해 야생동물 서식실태를 조사하였지만 수렵을 하기 위해 야생동물의 개체수를 부풀리는 실정이었다. 1995년 겨울에는 하루내 사냥을 하여도 꿩이나 고라니등을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곳곳에 농약(다이메크론)을 뿌려 꿩이나 토끼를 잡았고, 산에는 올가미나 덫을 설치하여 고라니, 노루, 멧돼지를 잡는 실정이었다. 1995년 겨울 필자는 친구와 사냥을 갔다가 산에서 멧돼지를 잡기위해 설치해 놓은 와이어 올가미를 발견하여 친구와 둘이서 사냥을 중단하고 500여개의 밀렵구를 걷기도 하였었다.
당시는 지리산 국립공원 지역도 아무 제제를 받지 않고 사냥을 하는 실정이었다. 국립공원지역은 수렵이 허용되지 않는 지역이지만 수렵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인력이 없으니 무법 천지였다. 필자는 평소에 사냥 선배나 친구들에게 지리산에서는 사냥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었다. 대부분 구례의 수렵인들은 지리산 국립공원 지역에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필자와 사냥을 오래 함께한 박인환(전 전라남도 도의회의장)씨, 이경식씨, 권재헌씨등은 언젠가 야생동물을 잘 아는 우리가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환경부에서 관심을 가질 때 반달곰과 야생동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사냥친구들에게 반달곰을 보호하는 활동을 함께 하자고 권하였다. 박인환씨, 이경식씨, 권재헌씨는 흔쾌히 동의하였다.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단체를 발족하기로 했다. 지리산악회의 젊은 회원들과 수렵인들을 설득하고 야생동물 보호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가입 시켰다. 70명의 회원들이 가입하였는데 경찰공무원도 가입하였다. 단체를‘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라고 명명하고 1996년 7월30일 전라남도에 환경단체 설립신고를 하였다. 회원들중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사냥을 하고, 회장으로 선임된 필자는 사냥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필자가 사냥을 계속한다면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냥을 중단해야 했다. 1980년대에 필자의 부친께서 반달곰, 사향노루, 수달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을 했던 것을 보아온 터였다. 보호를 한다고 야생동물의 서식을 확인하여 공개하면 몇 년 지나 잠잠해지면 오히려 밀렵꾼의 표적이 되는 것을 잘 아는 필자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그래 지리산의 반달곰을 보호하여 지리산의 자연생태계를 회복하고 보전하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쳐나가자고 자신에게 다짐 했다. 필자의 나이 46세인 1996년 가을부터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지리산 반달곰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계속-
1974년 노고단 에서, 두번째 필자, 마지막 함태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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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리산이야기 넘 실감나게 잘 읽었답니다.
선생님 지금도 미남이시지만 예전에는 더욱 멋지셨군요.^^
미남이신거... 저도 한표!ㅎㅎㅎ
저도 너무너무 잘 보았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ㅎㅎ 글쓰다보니 제자랑만 하는 거 같아 쑥쓰럽습니다.
개인의 역사이자 한 시대의 흔적이군요... 감동적인 글...
덕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반달곰이야기.....지리산의 생생한 이야기 늘 감사히 잘읽고 있습니다.
함태식 선생님의 젊은 시절사진.....참 멋지지시네요.
늘 잔잔한 미소로 대하시는 우두성샘의 젊은 시절은 상상만하겠습니다...*^^*
지리산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설산님께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표범을 개호랭이라 불렀군요. 주조장 마당에 늘린 하얀 고두밥, 그 밥을 한줌씩 들고 담을 넘어 달아나는 개구장이들...
야생동물 보호 얘기가 나온지 수 십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끊어지지 않는 밀렵, 건강원에서 즙이되어 나오는 야생동물들..
앞으로는 야생동물들이 귀해서 모시고 살아야 할 때가 올 것같습니다.
젊은 선생님의 모습은 참으로 준수하시고 사냥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표범을 개호자, 개호랭이불렀답니다. 개를 잡아가는 호랑이라고....
1990년대에 비하면 밀렵이 80%이상 근절되었고 야생동물도 많이 늘었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밀렵은 근절되지 않고 있답니다.
1997년 밀렵과의 전쟁을 이끌어 내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답니다.
밀렵에 관한 자세한 내용도 제 글에서 볼 수 있을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다행스럽네요. 야생동물이 멸종하는 그 날이 바로 인간도 멸종하게 될테니까요.
사냥복 입은 모습 너무 멋있으세요.
데미스 루소스 조회를 해 봤더니
Rain and Tears 부른 가수네요.
항상 여운을 남기게 해주시는 칼럼 고맙습니다.
이곡 이글과는 어울리지 않는데 제가 좋아하는 곡이고,
곡 선택할 여유도 없어서 그냥 올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리산과 함께 살아오신 젊은 날에 사진..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선생님^^
오다가다 들려서 차한잔 하시고 가세요. 맛있는 막걸리도 있습니다 ^^
우두성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마치 한 편의 다규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부디 차근차근 지리산 얘기를 잘 정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개인 뿐만이 아니라 지리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의 아버님과 우천 허만수, 변규화 선생, 그리고 함태식 선생 등 지리산 어른들의 애기들이 잘 정리돼있지 않아 늘 안타까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머리에 있는 것과 쓰는 것엔 차이가 많네요. 사실대로 쓰려고 자료나 메모를 뒤적이고 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나마 쓰겠어요.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선생님 한달에 한번이라도 이런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읽을수록 정말 생생해요.
다음에 한번 더 강의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덕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의랄건 없구요.
제가 자연에서 느낀 얘기를 11월 학습때 해보죠.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원광보건대학의 김홍철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먼저 픽업과 하루밤편의 막걸리 감사합니다. 저는 오미마을 지나 송정에서 무더위로 귀가했습니다. 건강하시고 ... 원장님과 소중한 인연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11월 24일은 가서 뵙고 그전에 8월중에 내려갈 생각입니다. 괜찮으시죠?
바로 가고싶은데 퇴직전에 건강검진 좀 받아두려는데 날짜가 안되서 8월 초에 받고 한번 찾아 뵙고 여러가지 말씀 드릴 께요.
교수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지리산학교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구요
언제든 구례에 오신다면 환영합니다.
이곳 지리산학교에서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