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 <26> 제주 추자도
<제주 본섬과 전남의 중간쯤에 자리한 추자도는 상ㆍ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다.
1946년 제주로 편입되기 전까지 전남에 속했기에 남도의 풍습은 물론 자연환경도 남도에 가깝다.
제주에서 다도해의 풍광을 즐기며 추자도만의 독특한 매력을 빠져보자.>
추자도는 본래 주자도(舟子島)다. 말 그대로 어부의 섬. 지금도 추자도는 낚시꾼의 천국으로 통한다. 밤이면 고양이들이
귀한 돌돔을 물고 다닐 정도다. 하지만 제주올레 덕분에 추자도는 걷기여행의 천국으로 변했다. 추자도 올레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의 마을, 언덕, 봉우리들을 거치면서 추자도의 역사와 절경을 모두 들춰낸다. 특히 봉우리를 넘을 때마다 추자도가
거느리는 기기묘묘한 섬들이 펼쳐지는 장면은 잊지 못할 감동으로 전해진다. 총 거리 18.3㎞, 7시간쯤 걸리는 추자도 올레는
1박 2일에 걸쳐 느긋하게 걷는 것이 좋다. 하루에 끝내기에는 거리가 멀고, 배편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추자항에 도착해 대기
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신양항으로 이동, 올레를 시작한다. 올레 출발점은 추자항이지만, 다음날 신양항에서 배를 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출발점을 바꾸었다. 모진이 몽돌해변 위쪽 언덕을 지나면 황경한 묘가 나온다. 황경한은 학교 다닐 때 배운
‘황서영백서사건’의 주인공인 황서영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의 딸 정난주다. 올레 11코스에는 정난주의
묘지를 만나게 된다. 도대체 무슨 사연으로 그의 아들이 이곳에 묻혔을까. 황사영은 열여섯 나이인 1790년 진사시에 급제한
신동이다. 그는 조선의 유교가 아닌 천주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본 듯하다. 하지만 그 이념은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다.
신유박해로 황사영이 처형되자 정난주는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을 품고 제주 관노로 귀양길에 오른다. 대역죄인의 아들은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을 정난주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젖먹이를 추자도 예초리 물쌩이끝 바위에 내려놓고
떠난다. 갯바위에 놓인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다. 지금 황경한의 후손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고, 섬에서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않는 풍습도 이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황경한 묘 위에 놓인 정자는 이름이 ‘모정의 쉼터’다. 황경한은 어미가 그리워 얼마나 바다만 바라봤을까. 또 어머니 정난주는
아들이 그리워, 얼마나 많은 한숨을 바다에 내뱉었을까. 정자 뒤로 화강암 섬들과 보름섬이 둥둥 떠 있고, 그 뒤로 보길도가
선명하다. 이곳 바다는 황경한의 사연 때문인지 슬프게 시리다. 정자에서 내려오면 신대리 몽돌해안이 펼쳐진다.
추자도 해안은 모래가 없고 전부 자갈밭이다. 여기서 신대산 전망대 가는 길은 시멘트 도로를 그냥 따라도 되고,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선택해도 된다. 신대산 전망대에서 보길도와 섬들을 조망하고 내려오면 수려한 예초리 기정길이 펼쳐진다.
예초리 포구로 들어서면 돌로 쌓은 방파제가 남아 있는데, 그렇게 예쁜 방파제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추자도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한 예초리는 예로부터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마을이라 하여 ‘예초’(禮草)라는 명칭이 유래됐다고 한다. 예초리 포구에서
도로를 따르면 엄바위장승이 나온다. 주민들은 ‘예추 장석’이라 부르는 거대한 엄바위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엄바위 밑에서 태어난 ‘억발장사’는 인근 바다에 있는 ‘장사 공돌’이라는 바윗돌로 공기놀이하곤 했는데, 어느 날 횡간도까지
뛰어넘다가 그만 미끄러져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때부터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이 결혼하면 청상과부가 된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장승 앞에서 뒤돌아본 아담한 예초리 포구는 정감 넘친다.
‘학교 가는 샛길’을 따르면 돈대산 입구이고, 기지국 철탑을 지나면 정자가 선 돈대산 정상에 오른다. 날이 좋은 날에는 신양항
오른쪽 수덕도 뒤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돈대산 능선을 좀 타면 산불감시 초소가 나오는데, 그 뒤로 상추자도의 모습이
멋지게 펼쳐진다. 돈대산을 내려와 추자교를 건너 다시 추자항으로 와서 봉글레산에 오른다. 시나브로 감동적인 추자도 일몰을
맞고, 정자 반대편에서 추자항의 야경을 감상한다. 봉글레산을 내려와 추자항에 1박 후, 다음날 새벽 일찍 길에 오른다.
순효각을 지나면 처서각에 닿는다. 처서각 앞에서 펼쳐지는 추자항과 추포도 등 섬 풍경이 일품이다.
처서각 왼쪽 숲으로 들어서 한동안 산길을 오르면 나바론절벽 정상을 지나 추자등대에 올라선다. 상추자도의 가장 높은 산에
자리한 추자등대는 하추자도 돈대산과 함께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다. 여기서 돈대산 옆에서 극적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
한다. 시나브로 밝아진 빛에 추자항이 동화 속 마을처럼 예쁘게 보이고, 상ㆍ하추자도가 거느린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에서 내려와 추자교를 건너면 하추자도이고, 한동안 산길을 오르면 사거리인 묵리 고갯마루에 닿는다.
묵리 마을을 지나면 대망의 종점인 신양항이다. 멀리 육중한 완도카페리3호가 미끄러지듯 항구로 들어온다.
▨추자도 명소 △나바론 절벽 상추자도 추자등대 서쪽의 깎아지른 절벽 으로 이루어진 해안.
‘나바론’은 영화 ‘나바론 요새’(1961)에서 독일군 야포 진지가 있던 절벽을 닮았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웅장한절벽과 거친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이 이름과 잘 어울린다. 이 절벽은 올레 코스에서는 볼 수 없고, 용등봉 아래인 용둠벙
에서 잘 보인다. 또한 낚시 포인트로 유명해 사철 낚시꾼이 끊이질 않는다. 올레길에서 용둠벙을 가려면 봉글레산에서 내려와
오른쪽 후포 방향으로 15분쯤 가면 된다.
▨교통
추자도는 제주, 완도, 진도와 목포에서 갈 수 있는데, 제주에서 가는 것이 가깝고 편하다.
제주에서 오전 9시 30분 핑크돌핀호(064-758-4234)로 타고 들어가, 다음날 오전 10시30분 신양항에서 완도카페리
3호(064-751-5050)를 타고 나오는 게 좋다.
핑크돌핀호는 추자까지 1시간10분, 카페리호는 2시간쯤 걸린다. 제주공항에서 제주여객터미널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택시를 타는 게 좋다.
▨숙식
가장 시설 좋은 숙소는 태흥모텔(064-742-5600)이고 그밖에 여정여관(064-742-3152), 나바론민박(064-742-8205) 등이 좋고,
올레꾼이라면 추자도 게스트하우스(010-4057-3650)도 괜찮다.
제일식당(064-784-8940)은 추자도의 대표적인 횟집으로 삼치회와 돌돔 등 다양한 활어회를 맛볼 수 있고,
중앙식당(064-742-3735)은 굴비정식과 조기매운탕을 잘한다. 모두 추자항 근처에 모여 있다.
<사진 설명>추자등대 전망대에서 본 아담한 추자항이 아침 해를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저작권자ⓒ 대구지역대표언론 대구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