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관촌수필]은 화자가 직접 자신의 성장과정을 말하고 있는 수필 같은 소설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에서 내내 흐르는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와 1인칭 독백체의 문체는 작품 전체를 훈훈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산업화 과정에서 겪는 소외, 갈등, 농촌의 어려움 그리고 그 헤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숭헌... ... 뉘라 양력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을 아는 벱여... ...." 혀를 끌끌 차는 마지막 이조인 할아버지에게서 아침마다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배우고, 낮이면 펄밭을 뒤져 꽃게를 잡고 고둥을 주우며, 아이다운 장난기와 심술로 장에 온 촌사람들을 놀려 먹기도 하고, 밤이면 개펄 위를 몰려다니는 도깨비불에 마음 졸이다가도, 잠결에 어렴풋이 들리는 여우울음에 홀린 듯 어슴새벽 바닥가로 나가 보는 것이 그 일상이었거니와, 전쟁은 그 가나나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근본부터 뒤흔들어놓고 만다.
이문구는 [일락서산(日落西山)] 이하의 연작에서 6.25이후에 태풍처럼 몰려온 이야기 소재를 여덟편으로 풀어나가는데 그의 첫 번째 연작 [일락서산]에서는 화자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할아버지와 예날 어린 시적 고향 풍경을 향수조로 엮어나갔고, [화무십일]은 6.25전쟁을 통한 윤영감 일가의 수난사, 비국적 관계를 그리고 있다. [행운유수]에서 작가는 성장기에 함께 했던 옹점이의 결혼 생활, 인생유전을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으며 [녹수청산]은 대복이와 그 가족에 얽힌 이웃 이야기 그리고 그 삶이 퇴색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리고 그 다음 연작에서는 [공산토월]이란 제명하에 왕조 체제의 억압적 구조 속에 신음하면서도 서로 돕던 백성의 전형을 [석공]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하였다.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 등에서도 연결며 이러한 방식의 연작소설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리고 서정인 소설 [달궁]의 연작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은 우리네 마음자리 밑바닥에 가라 앉아 있는 한국적 유토피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것은 사실 유토피아니 무릉도원이니 하는 외국에서 들어온 언어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한민족의 정서로써만 표현과 이해가 가능한 정복의 두레공동체일 터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어른의 코골음과 부엉이의 울음과 강아지의 꿈꾸기가 서로 넘나들며 뒤섞인다. 자연과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고 어우러지는 원융과 합일의 시공간이 그곳이다. [관촌수필]이 추억하는 풍요와 화평의 세계는 작가의 토속적인 문체에 얹혀 광휘와 윤기를 더한다. 멸종 위기의 동식물을 보호하고 번식시키는 환경운동가처럼 작가는 계레의 말글살이에서 잊히고 묻히게 된 순우리말과 한자어를 적극 살려내고 있다. 게다가 토종 된장국과 같은 능청과 해학, 그리고 씀바귀나물처럼 싸름한 비애와 아픔은 한국적 감성의 현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관촌수필]이 그리고 있는 한국적 유토피아의 원형은 그러나 6.25라는 미증유의 비극으로 처참하게 찢긴다. 특히 작가의 분신인 <민구>일가는 아마도 전쟁의 발톱에 가장 혹독하게 할퀴인 집안일 것이다. 남로당 충남 보령군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인근 청양과 서천의 지하당을 조직, 관할하던 민구의 아버지는 두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며, 겹의 참척을 본 조부마저 자식들의 뒤를 따르자 집안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들의 구체적 사연을 시시콜콜 주워섬기지는 않는다. 소설의 초점은 그것들을 보듬고 흐르는 일상에 맞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