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페 운영자 윤구현입니다.
작년 11월 알려진 서울 다나의원의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C형간염 발병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 지난 주 보건복지부는 ‘원주 한양정형외과’와 ‘제천 양의원’에서 주사기 등이 재사용되어 다나의원보다 더 많은 수의 C형간염환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다나의원 사건 당시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의사의 일탈행위 정도로 치부하던 의료계나 의원급 의료기관의 감염관리에 신경 쓰지 않던 정부 모두1회용품 재사용으로 인한 감염 문제가 특정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12월 4일 보건복지부는 ‘다나의원 역학조사경과 및 후속 추진방향’이라는 보도자료에서 ‘의료인 면허관리 강화’를 대책으로 제시하였을 뿐 감염관리에 대한 별다른 언급은 없었지만 실제 이번 발표에서 3개월 간의 현장조사, 심평원 청구 자료 분석, 1회용품 재사용에 대한 공익신고자 포장제도 적용, 처벌규정 강화 등의 강도 높은 대책을 함께 발표하였다. 아마 의료계에서는 한동안 각종 연수 강좌를 통해 감염관리와 환자안전을 강조하겠으나 이런 방법들로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이 세 의원에서는 최소한 환자의 몸에 직접 닿는 물건을 재사용하지는 않았다. 아마 이것까지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년 2월 보건복지부는 수술환자의 권리 보호와 안전관리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몇 가지 대책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수술실 설치 기준을 강화하여 수술실에 공기정화설비, 불침투질 내부벽면, 호흡장치의 안전관리 시설 등을 구비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에 대한 의료계의 반응은‘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는 것이었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현실적으로 감염관리의 모든 원칙을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 세 의원은 이걸 보다 넓게 적용했다.
이들이 벌인 감염사고가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일까, 습관과 문화의 문제일까. 아니면 귀찮아서-감염예방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불편해서였을까. 서울 다나의원, 제천 양의원은 100원짜리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였고 한양정형외과 역시 개당 2,000-3,000원에 불과한 1회용 튜브를 재사용하였다. 경제적 이익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액수이다.
조사가 끝나 사건의 정황이 보다 잘 알려진 다나의원 사건을 보자. 이 의원은 수액만을 전문으로 놓는 곳이었다. 원장은 특별히 조합한(?) 주사액 수액병에 직접 넣지 않고 주사기에 담아 정맥라인으로 투여했다. 환자마다 주사기를 쓰지 않고 큰 주사기에 담아 환자들을 오가며 조금씩 주사했다. 1회용 주사기 가격을 생각하면 수년 동안 아낀 비용은 몇 만원에 불과하다. 의사가 편하려고 했다면 수액병에 직접 약을 넣으면 됐다. 게다가 원장은 뇌병변 장애로 부인의 부축이 없이는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귀찮아서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제천의 양의원은 주사침만 교체하고 주사기를 재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5년 근육주사를 맞은 환자가 3,996명이라 하니 주사기 재사용으로 아낀 돈은 40만원 정도이다. 아니 주사침도 개당 50원 정도이니 실제로는 연간 20만원을 아낀 셈이다. 비용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액수다. 아마 이 의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에게 직접 닿지 않은 주기기 몸통을 다시 쓰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을 강화하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까? 주사기를 재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 원심분리용 혈액튜브를 재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너무 기초적인 내용이라 교육에서 다룰 내용조차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원칙을 강조하면 현실을 모르는 교육 내용이라고 할 것이다.
환자안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는 존스 홉킨스의 피터 프로노보스트 교수는 교육과 처벌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프로노보스트 교수가 강조하는 환자 안전 대책 중 하나는 의료진간의 의사소통 강화이다. 동료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도 문제 행동을 봤을 때 주저 없이 지적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종합적 병동 기반 안전성 프로그램(Comprehensive unit-based safety Program, CUSP)라고 부른다. 수술실에서 마취과 전문의인 자신이, 심지어 간호사가 집도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존스 홉킨스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수십년간 동료의사 없이 간호사, 간호조무사들과만 진료하는 의사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 받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십년 간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면 자신의 ‘융통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환자안전이 강조되기 시작한 2000년대 말부터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매년 ‘환자안전의 날’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전직원들이 1년에 한 번 환자안전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발표하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남의 일이고 대학병원을 떠난 지 오래된 의사들에게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다.
이번 사건들로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자 안전이 크게 의심 받게 되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정부 대책처럼 보건소 직원들의 단기간의 현장 조사, 처벌 강화나 연수 교육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존스 홉킨스, 한국의 대학병원들의 지식이 부족해 환자안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노보스트 교수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쉽게 잊어버리고,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최상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스스로 자율적인 상호 감시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현장 조사, 처벌 강화’는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