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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열 말씀 강론 03
출애굽기 20:1-3
다른 하나님
열 말씀을 대부분 십계명으로 이해하고 열 개의 계명으로 나누어 1-4계명은 하나님을 위한 계명, 5-10계명은 인간을 위한 계명으로 말한다. 예수님께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cf 율법사의 답변 눅 10:27).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십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열 말씀 전체가 하나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첫째”라는 말의 헬라어 ‘프로토스’는 ‘처음에, 최고의’라는 최상급 표현이며, “둘째”의 ‘듀테로스’는 ‘짝’이라는 ‘뒤오’에서 온 말이다. “그와 같으니”라는 말 ‘호모이오스’(함께, 동시에)는 동등하다는 개념인데 짝으로 같다는 의미이다. 결국 여기서 말씀하는 “이웃”도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다.
둘로 말씀하신 것은 증거의 숫자이다(신 19:15). 예수님은 두 증거의 의미로 구약을 “모세와 선지자”(눅 16:29, 31, 24:27, 44), “모세와 엘리야”(마 17:3)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두 돌판으로 주셨는데(출 24:12, 32:15, 4:13, 5:22, 9:10-11, 15, 17) 언약서이기 때문이다(출 24:7). 그러나 그 언약서는 하나님이 언약궤에 보관하게 하심으로 자신이 책임지시는 것으로 나타내셨다(출 25:21, 40:20). 그러므로 열 말씀을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계명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이기에 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열 말씀은 출애굽기 20:1-17과 신명기 5:6-21에 기록되어 있는데 두 본문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근거를 출애굽기 본문은 ‘창조’로 말씀한 반면 신명기의 본문은 ‘구원’으로 말씀한 것에서 차이가 있다(이 차이에 대해서는 해당 본문을 다루면서 나눌 것이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1-2절). “이 모든 말씀”이란 직접적으로는 열 말씀이지만 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율법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율법 전체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말씀 전체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애굽에서 종 되었던 자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나”란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자는 죄의 권세에 매여 종노릇 하였던 자로 죽은 자, 없음의 상태에서 구원의 은혜가 베풀어진 자이다.
4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호 13:4-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것이며 그것은 이스라엘 쪽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다(신 7:7). 하나님의 사랑으로 애굽에서 빼내심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이다. 애굽에서 나왔으니 이제 이스라엘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켜 순종하는가를 봐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언약의 말씀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실 것을 율법으로 설명하고 보여 주신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면서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말씀하셨다(출 4:22).
그런데 신명기 5:3에 보면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상관이 없고 그 조상들과는 언약을 세우지 않으셨다는 것인가? 그런 말씀이 아니라 언약이란 죽은 자와 맺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백성들과 맺는 것이라는 뜻이다.
출애굽 하였을 때 이미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언약을 주셨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한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에 이스라엘은 언약의 땅을 거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약속의 땅을 거부한 자들을 다 죽이고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신다는 차원에서 주신 언약의 말씀이 신명기이다. 그래서 여기 살아 있는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언약은 죽은 자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와 세워진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할 죄인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다는 증거이고 살려서 언약을 주셨다는 의미는 그 속에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보여 주시겠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열 말씀은 언약 안에 있다는 증거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자기 아들로 삼으셨기에 언약의 말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제자들이 질문을 하였을 때 예수님의 답변은 이런 것이었다.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1-17)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천국의 비밀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다. 즉 언약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나 다 말씀을 듣기는 듣고 보기는 보지만 듣는다고 해서 또 본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를 본문에서 한 마디로 “마음이 완악하여” 그렇다고 말씀한다. ‘완악하다’라는 것은 ‘살지다’라는 말이다. 즉 자기가 원하는 것, 먹고 싶은 것만 먹어서 살찐 상태를 말한다. 그것을 아주 적절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시편 119편에 있다.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 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69-70)
여기서 “교만한 자”란 자기 먹고 싶은 것만 먹겠다고 고집하는 자를 말하는데 그런 자는 살져서 기름 덩이 같은 상태에 있는 자이다. 이런 자가 곧 ‘완악한 자’이다. 언약의 말씀이 주어져도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기가 해석하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으로 주셨지만 인간들은 자기 죄성을 가지고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지켜야 할 계명으로 해석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주의 법도”, “주의 법”이란 곧 ‘율법’을 말하는데 율법을 계명으로 이해하였다면 무거운 짐으로만 다가왔지 과연 즐거워할 수 있을까? 본 시편의 기록자는 율법을 계명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말씀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이루실 것을 미리 보고 즐거워한 것이었다. 언약의 말씀 안에 자유함을 누리는 상태가 바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상태이다. 그 상태에 있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다(시 1:1-2). 열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율법의 짐에 눌려 힘든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1계명으로 알고 있는 말씀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라고 되어 있다.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히브리어에서 미완료형은 미래를 나타내는 것은 명령의 의미로 해석한다. 또한 히브리어는 동사부터 표현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4계명은 ‘자카르’(기억하라), 5계명은 ‘카바드’(공경하다, 경배하다)로 시작하고 나머지는 다 ‘로’(아니다)부터 나온다. 여기서 우리 성경은 번역하면서 “네게”라는 말을 집어넣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 말이다. 그래서 본문을 직역하면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얼굴 앞에 나 아닌 다른 하나님(신들)으로’라는 말이다.
“다른 신”이란 ‘엘로힘 아헤림’이라는 말인데 ‘엘로힘’이란 ‘하나님, 신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다른 신이 존재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아헤림’이란 ‘상대방들, 대적자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얼굴 앞에 다른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이란 단순히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다른 신”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을 향해 마주 서 있는 자들,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18, 21-25)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상태가 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를 보여 주신 것이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대속의 죽음으로 여자가 남편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교회를 이루셨다. 그것이 언약의 성취이다. 그래서 언약이 성취된 상태를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6-5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6-20)
그래서 ‘아헤림’의 의미가 신약에서는 ‘에크드로스’(적의가 있는)로 표현되었는데(마 13:25)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고 하나님을 향해 마주 서 있는 상태를 성경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한다. 하나님 상대로 두고 섬기려고 했던 우리가, 내가 그렇게 원수로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던 자이다(롬 5:10, 엡 2:14-16). 하나님 앞에 원수로, 대적자로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던 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신 것이 십자가 은혜이다. 그러므로 열 말씀은 내가 너를 애굽에서 건져내었기 때문에 너는 결코 다른 하나님이 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언약을 주신 그 하나님이 아닌 너를 다른 하나님이 되지 않도록 일하실 것이라는 언약이다. 그래서 언약의 말씀이라는 차원에서 표현하자면 ‘너는 나 아닌 다른 하나님으로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2023060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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