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목포노회 목사 임직식 설교
2018. 4. 16(월) 오후3시 하늘비전교회 임직자:박재필, 전사라, 정인숙
삼상17:38-40 잘하여 인정받읍시다.
(할) 서로 인사 한 번 하겠습니다.
“당신에게서 봄이 느껴집니다. 당신에게서 은혜가 느껴집니다.”
이 땅에 아름답다 뽐내는 꽃들은 모두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었습니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꽃들 역시 비에 젖으며 피었습니다.
오늘 여기 꽃보다 더 아름다운 성직자로, 어느 꽃보다 더 자랑할 만한 목사로 세워지기까지 긴 시간 흔들리며 젖으면서도 마침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입니다. 모두 주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긴 시간 허물 많고 부족한 자들 곁을 떠나시지도 않으시고 지치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으신 주님의 큰 은혜가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박수로 올려드리겠습니다.(할)
어린이 복음송처럼 오이 밭에 오이가 길쭉길쭉 잘도 컸구나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요. 위에 계신 하나님이 키워주셨죠.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농부들의 손길을 통해 잘 키워주시듯 임직자, 인허자들 역시 눈물의 기도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 가족, 친척, 교우들의 은혜가 있었고 스승님, 노회 선후배, 동기들, 특별히 담임목사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고마우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 담아 박사를 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할)
20년 전, 저는 급한 마음으로 목사 임직을 받았지만 막상 받고나니 가장 작은 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 임직은 다 이루었다가 아니라 이제 초년생으로서 출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목사로서 이제 시작입니다. 오늘 그 출발선에 선 임직자들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대를 잘 읽으십시오.
앞서가신 선배 목사님들 중 어느 목사님께서는 목사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절대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부단하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대는 4차 산업 혁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융합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습니다. 현 시대에는 획기적인 발명은 없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들끼리 융합을 합니다. 무선 전화기 기능에 인터넷, TV, 카메라, MP3, 내비게이션 기능 등을 융합하는 식입니다. 냉장고에 무엇을 융합할 것인가? 사물에 인공지능을 더해 어떤 편리한 시대를 열 것인가? 연구하는 시대에 사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알파고’가 어디에 있는 고등학교냐? 불계승이라는 스님 어느 절에 계신 스님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융합, 협업을 말하는 시대에 개척은 쉽지 않습니다. 협력목회를 고심해 볼 때입니다.
또한 산업화 시대에 인간이 기계인지, 기계가 인간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이 일만 했습니다. 어느 정도 살만하니 사람 중심의 웰빙 바람이 불었고 웰빙 산업이 각광을 받았습니다. 웰빙으로도 부족하여 힐링 시대가 왔고 이제 정점에 서 있습니다. 힐링 다음은 어떤 시대가 올 것인가를 통찰력 있게 볼 때입니다. 이처럼 시대정신을 읽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기 위해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대를 잘 읽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익숙한 걸로 목회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입니다. 결과는 작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약 4년 전 박홍률 시장님의 승리와 같습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과 싸우기 전, 사울 왕과의 면담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걱정스러운 질문을 했고 다윗은 은혜로운 간증과 신앙고백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은혜가 되고 믿음이 갔든지 사울 왕은 다윗을 골리앗에게 보내기로 결심하고 자기의 군복을 입히고 자기 놋 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혔습니다. 자신의 칼까지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출전한 다윗은 최상의 것으로 무장했습니다. 왕의 것으로 무장했으니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최상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것으로 무장한 다윗이 시험적으로 걸어 보았습니다. 너무 부자연스럽고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사울 왕은 키가 보통 사람마다 어깨 위만큼 커서 특대 사이즈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중간사이즈 정도 되니 최상의 갑옷일지라도 다윗에게는 걸리적거리고 불편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다윗은 스스로 문제점을 빨리 깨닫고 용기 있게 왕에게 말했습니다.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삼상17:39)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는 싸우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 벗어 버리고, 대신 자기에게 익숙한 것, 막대기와 물매와 돌 다섯을 준비하여 주머니 속에 넣고 골리앗 앞으로 나가 승리하였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느 가을날 노새가 귀뚜라미의 노래를 듣자 매우 부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귀뚜라미에게 무엇을 먹기에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느냐고 물었습니다. 풀잎 위의 이슬을 먹으면 된다는 대답을 들은 노새는 자기도 이슬만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이슬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이슬만 먹은 노새의 최후는 굶어 죽었습니다.
하나 더 하겠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자기 몸이 까만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얀 칠을 하고 까치 속에 들어가서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왔습니다. 하얗게 칠한 것이 빗물에 씻기기 시작하자, 까마귀도 아니고 까치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까마귀에게 갔더니 까마귀가 아니라고 쪼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피해 까치에게 갔더니 까치들도 우리와 다르다고 쪼아 버렸습니다. 이 까마귀의 최후 역시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이 무엇일까요? 서투르지 않고 능숙한 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셨으니 반드시 찾아 그것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합니다.
왕이 입은 최상의 갑옷과 왕의 칼, 부럽고 좋게 보여도 나와 섬기는 교회에 맞지 않아 익숙하지 못한다면 보잘 것 없는 물매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남의 것 흉내 내기로, 남의 옷, 남의 색깔로 허송세월 보내지 마시고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로 다윗의 표현대로 ‘내게 익숙한 것’으로 승부하여 기름지고 풍성한 열매로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 이전에도 나는 없었고 나 이후에도 나는 없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누구처럼 사는 것보다는 나는 나로서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다.
얼굴이 사람마다 다르고 손금과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듯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재능도 은사도 은혜도 사명도 다르게 주셨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대로 주님과 교회를 잘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사 임직자와 준목 인허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통찰력과 주님이 주신 익숙한 것들이 충만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어디에 쓰시려고
그 긴 시간
지친다.
피곤하다.
포기하고 싶다.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인내의 수고를 하셨나이까?
한데
저는 무례하게도
자격도 없으면서
안 한다.
힘들다.
너무 하신다며
참 많이도 주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목사로 세우시네요. 주님!
은혜의 주님께서
이 자리에서 저에게
너는 누구냐 물으신다면
평생 갚아도
천상에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영원히 찬양감사해도
다 갚지 못할
은혜 받은 자라 하겠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재차 물으신다면
주님의 은혜로 갓 태어난
핏덩이 목사라
이 세상에 가장 작은 자라
하여
제가 무엇을 하오니까?
제가 할 수 있겠나이까? 묻고 싶나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으신다면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주님 손 안에 있는
주님의 것이오니
주인 뜻대로
원대로 쓰시옵소서!
타다 만 숯덩이가 아닌
주님 위해 다 탄 재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지극히 작은 자가 구합니다.
주님 닮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사 되게 하소서!
너무 어려워 그리할 수 없다면
삯을 받고 받은 만큼이라도
일하는 삯꾼이라도 되게 하소서!
더는 안 됩니다. 주님!
게으르다.
나태하다.
악하다.
무익하다고
억만년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 베푸신 주님께
책망 받지는 않고 싶습니다.
그 언젠가 주님 앞에 서서
저는 주님을 아프게 한 자였습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까?
저는 주님을 괴롭힌 자였습니까?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였습니까?
주님을 닮은 자였습니까?
조금은 덜 부끄럽게
물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