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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낙남정맥 스크랩 낙남정맥7구간
영일만 친구! 추천 0 조회 107 12.02.09 21:57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7

                                일시; 2012.2.5 04:10---14;00

                                             구간;새티재..필두산..담티재..용암산..남성치..선동치..깃대봉.

                                                   준봉산..발산재..외곡고개..큰정고개..527m..오곡재(비실재)

산행소요시간 : 10시간

                                             참가인원; 봄여름가을겨울 산악회 회원 36명과 함께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날씨가 토요일부터 풀려 여간 다행이 아니다.

일요일 낮 진주 지방 날씨는 7도까지 오를 것 이라고 예보를 한다.

한동안 뜸하던 산우들이 합세하여 36명을 싣고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통영.대전 고속도로에서 연화산 IC로 빠져 나와 시골길을 달리다가

작은 촌락으로 잘못 들어서서 되돌아 나온다.

어두움 밤길에도 젊은 기사님이 좁은 시골길을 잘도 찾아 간다.

 

오늘은 절기로 봐서 입춘이지만 음력으로는 정월 13일 이다.

봄이 왔으되 아직 봄이 아니라고 절규하던 노 정치인의 말이 생각이 날만큼

산골의 봄은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만큼 쌀쌀하다.

반도의 남단에 자리한 고성 지방의 버들 강아지는 아직도 동면을 하고 있는 듯

싹이 돗아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티재에서 출발 준비를 하면서..

하나 둘씩 산길을 따라 오른다.(4:10)

다소 가파른 길이 이어 지다가 잠시 후에 밋밋한 정상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내려선다.(4:20)

짧은 V자형 계곡을 건너고(4:25) 조금 더 낮은 능선으로 올라선 후에(4:45) 평탄한 안부를 이어간다.

잡목이 이리 저리 가로 막아 등로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다.

잠시 후에 가파른 능선을 다시 오른다.

가뿐 숨이 안정감을 찾아갈 즈음, 

누런 송판에 필두산이라고 쓴 정상표지가 나무 가지에 외롭게 걸려있는 정상에 도착한다.(4:55)

 

 

 

    필두산筆頭(418m)

    새티재와 담티재 사이 능선에 우뚝한 산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붓 끝같이 매우 뾰족하게 보이는 산이다.

    자료에 따라 필두봉이라고 기록된 사례도 많다.

    은 붓과 상통하는 의미를 지녔고 그래서인지 경북 영양의 조지훈 시인 생가 마을 앞산은

    문필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잠시 땀을 훔치고 물을 마시는 사이 선두가 저만치 달아난다.

내려서는 등로는 지난 구간 대곡산에서 내려올때와 흡사하다.

급경사 내리막, 흙먼지를 일으키는 등로 속에는 얼음과 서리가 뒤 엉켜 위험 천만이다.

발을 지그재그로 엇 갈리게 내 딛으면서 스틱에 의지해 조심조심 내려선다.

 

잠시 후에 다소 완만한 등로로 바뀌면서 넓직한 임도가 드러난다.

우측으로 툭 터진 자리에 잠들어 있는 묘 2기가

그 앞으로 구만면 넓은 들판임을 짐작케 한다.

이동 통신사 중계기 탑을 지나서 넓직한 임도가 이어지다가 2차선 포장도로 담티재에 도착한다(5:23)

고개는 완만하고 좌측 고개 넘어 비탈에는 축사에서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담티재 (개천면과 구만면의 경계 고개)

선 자세로 잠시 휴식을 하다가 다시 출발을 한다.

도로 옆 높은 축대는 시멘트로 쌓아서 오르내리기가 불편하다.

오르막길로 들어 서면서 뒤 돌아 보니

고개 옆 축사는 여러동의 건물이 불빛을 비추고 이따금씩 개 짓는 소리가 새벽을 알린다.

가파른 오름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첫 봉우리에 도착하니 아무런 표시가 없고 꼬리표만 잔뜩 메달려 있다.

잡목과 넝쿨을 조심스레 피하여 등로를 이어가니 여기 저기 솟은 바위가 진행을 더디게 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풀숲속에 삼각점이 박혀있고 용암산이라고 쓴 표지가 나무에 걸려있다.(5:56)

정상 우측 발아래로 이곳 저곳에서 명멸하는 불빛이

구만면 소재지의 넓은 들과 농가가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정상에서 진행방향 우측으로는 송전탑이 서있고

등로는 그 사이 능선을 따라 잡목과 바위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해 간다.

날씨가 맑으면 우측 구만면 방향으로 빼어난 전망을 안겨 주겠지만 이른 아침이라 아쉽다.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임도로 이어 지면서 등로는 넓고 평탄한 능선으로 바뀐다.

임도 끝 나무 가지에 꼬리표가 잔뜩 메달려 있고

누군가 써서 걸어놓은 옥녀봉이라는 표지가 비닐 봉지 속에 메달려 있다.(387m, 6:09)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봉우리라고 하기에는 어색할 만큼 평탄하다.

잠시 후 좌측으로 살짝 틀어서 내려서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면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고 맞이하는 첫 정상이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이 평탄한 임도로 바뀌면서

옆으로 살짝 벗어난 지점에는 수십기의 묘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그 중 하나를 들여다 보니 처사 이종두 묘라고 쓰여있고 주변에는 10여기가 같이 잠들어있다.

잠시 후에 넓직한 포장도로, 남성치로 내려선다.(6:17)

세 갈래로 갈래친 임도에는 남성치라고 쓴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그 뒤로는 근래에 세운 선동마을 소개 안내판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남성치

    구만면 화리리에서 올라와서 개천면 나선리로 이어지는 고개로서

    고개 마루에서 우측 골짜기로 들어서면 나선리 선동으로 가는 길목이다.

    

남성치라는 이름이 특이하여 여성 회원님들이 줄지어 먼저 사진을 찍는다.

잠시 휴식을 하는 사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해 본다.

산행대장이 적석산 산행을 계속 할 사람과 바로 이어갈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직진 그룹은 쉬엄쉬엄 가도 1시간 이상 먼저 도착할 것 이라고 안심(?)을 시킨다.  

옆에 있는 경암님께 물어보니 정맥 구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으니 그냥 직진을 하자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라서 말없이 공감을 한다. 

 

넓직한 임도를 따라 완만한 비탈길을 오른다.

좌우로 자리 잡은 묘 여러 기가 말 없이 길손을 반기는 듯 포근해 보인다.  

소나무 숲 사이로 시원스레 펼쳐진 임도가 한동안 이어 지다가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대학을 들어 가는데….

   ROTC가 어떤가요..?

   좋지요. 군 복무를 장교로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ROTC는 그 중 복무기간이 짧아서 가장 인기가 좋지요.

   왜 좋아요 ?

   해군 장교는 3 4개월, 공군은 4 4개월인데 비해 ROTC 2 4개월이면 훨씬 좋지요

   그러면 다들 그렇게 안 가나요 ?

   각 군별로 소요 인력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무한정 많이 뽑을 수가 없습니다.

 

   짧은 대신 몇 가지 제약이 따릅니다.

   2학년때 까지 일정 학점을 취득하고 선발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합니다.

   3,4학년 2년 동안 평소 군사 과목 이수와 방학 때 입영 훈련이 따르지요

   졸업을 하고 소위로 임관을 하려면 반드시 4년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취득 하여야 하므로

   재학 중에는 훈련과 학업을 병행 하여야 하는 애로가 있지요.

 

사병으로 가면 어떤가요 ?

그것도 하나의 방법 이지요

요즈음은 복무 기간이 육군의 경우 21개월 이라니 재학 중에 입영하면 좋지요.

저 나름대로 인생의 이정표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 입대시기, 복무기간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면 됩니다.

 

나즈막한 봉우리에 올라서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후미대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들을 가진 부모는 누구나 군대 문제가 걱정이 크다.

그러나 군대는 부모의 울타리에서 자라다가 조직과 사회성을 스스로 시험하는 무료 교습소이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완만한 오름길을 이어 가는 동안 서서히 아침이 밝아온다.

잠시 후에 큰 특징이 없는 정상에 도착하여 풀숲에 잠긴 삼각점을 발견한다.(벌밭들, 418.5m 6:50)

 

 

                       아무런 표시 없이 삼각점만 설치 된 벌밭들

 

   벌밭들(418.5m)

   지명도 위치도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를 보면 이곳은 지나온 남성치와 가야 할 선동치의 중간 능선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그러나  “OO이라 함은 대 부분 넓은 들판, 논밭 지대를 일컷는 지명으로서

   지금 표시된 지점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이다.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불려온 탓에 사리가 분명치 않은 지명을 가끔씩 만난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등로는 잡석과 잡목이 진행을 더디게 하지만

좌측 비탈에 서 있는 집을 내려다 보면서 고갯 마루 선동치에 내려선다. (7:10)

 

 

      선동치仙洞峙

   선동마을은 마을 뒤의 "선박골"의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용수가 약수로 이름나 있어

   옛날에 선인(仙人)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다녀갔다는 유래를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선동치는 마산 진전면 일암리에서 고성 구만면 주청리 선동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다른 고개와 달리 좁은 산길은 사람이 걸어서만 넘나들 수 있다.

 

일행이 모두 모여 결정을 한다.

산행대장과 여성 회원 전원을 포함하여 20여명이 적석산을 다녀 오겠다고 나선다.

왕복 2시간여 소요 될 것이며

정상에서의 전망이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 하면서 서둘러 출발을 한다.

 

 

                                            적석산 정상석(투투님 사진에서 옮겨  왔음)

 

남은 그룹은 홀가분 하게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출발을 한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느낌 때문인지 내딛는 걸음 걸이가 한없이 느릿느릿하다.  

서서히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아무리 올라도 끝이 안보인다.

중턱쯤에 이르니 우측 건너편으로 적석산이 보이고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주는 구름다리도 눈에 들어온다.

 

 

                   적석산 원경(투투님 사진에서 펌)

 

적석산에서 바라본  깃대봉 아래 산촌 마을 원경(투투 님)                                                

             

남아있는 힘을 다해서 다소 넓직한 정상에 오르니 깃대봉, 520.6m 라고 쓰인 정상석이 서있고

뒷면에는 진양 농협 함양 산악회라고 쓰여있다. (깃대봉, 7:35)

 

 

    

꼬리표가 잔뜩 메달려 있는 정상에서 좌측으로 살짝 발걸음을 옮기니

전방 바위가 시원스레 자리하고 있다.

가야 할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떡 시루같이 사각형으로 단아하게 잘라서 쌓아 놓은듯한 바위가 성채처럼 버티고 서있다.

 

                              깃대봉 지나서 전망 바위애서 바라본 떡시루 바위

 

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계곡 끝까지 올라와서 자리 잡은 건물이 여러 채 들어서 있고

그 아래로는 한 뼘이나 될까 말까 한 논밭들이 비좁게 들어서 있다.

협곡은 강원도 어느 골짜기를 연상 시킬 정도로 깊다.

 

                    깃대봉 지나서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서북산 능선

 

                 계곡 상단 회색 건물은 지도상 삼화소재산업이라고 표시된 건물로서

                 과거에는 타일을 생산하였으나 지금은 가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건너편으로는 검푸른 산군이 늠름하게 남북으로 뻗어있다.

비로소 산 다운, 의젓한 산들이 줄 지어서 연봉을 이루는 가운데

정상이 평평한 봉우리 여항산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깃대봉 지나서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여항산과(정상의 평평한 부분) 그 능선                                                     

 

 바위 구간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전망 바위 옆에서 베낭을 내려 놓는다.

전망 좋은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자는데 아무도 의견이 없다.

고문님이 건내는 소주가 입술에서 달찌근하다.

쌀쌀한 날씨에 공복에 마셔도 달찌근한 것을 보니 오늘은 조심을 많이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상, 소주가 첫 잔에 입술에 남아 달찌근하게 느껴지면 한 없이 마시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술꾼들이 이야기하는 술이 받는 날인 셈이다.

 

이번에도 경암님이 돼지고기 찌게를 한 덩어리 준비해 왔다.

채소와 호박, 거기다가 된장을 듬뿍 담아와서 그 맛이 구수하기 이를 데 없다.

도리께님은 밥을 한 숫갈 정도만 준비해 가지고 와서 라면을 끓여서 함께 먹는다.

탱크님은 그 큰 덩치에 비해 사발라면 하나로 아침을 때운다.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나서 한기를 느낄때 쯤 하나 둘씩 출발을 한다.(8:25)

 

소나무 숲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가뿐 숨을 몰아 쉬면서 내닫는다.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서니 우측으로도 꼬리표가 많이 메달려 있다.(8:38)

봉우리를 내려서서 철쭉이 무성한 비탈을 지나고 완만한 능선을 이어간다.

뱃속도 든든하고 완만한 능선이 뛰어난 조망을 안겨줘서 흥이 저절로 난다.

 

잠시 후에 부드러운 능선의 끝 봉우리에 오르니

평탄한 바위 위에  새워진 조그만 정상석이 수줍은 소녀 마냥  반기고 서 있다.(준봉산520m, 8:45)

이곳에서는 또다른 전망을 안겨준다.

지나온 등로와 서쪽 방향의 연봉들이 겹겹이 겹쳐서 조금전의 동쪽 방향과는 또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깃대봉 표지석에서 비슷 비슷한 봉우리를  3개를 지나왔다. 

첫 번째는 520m 라고 쓴 기대봉 표지석이 있는 보봉우리이고, 두번째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으며

세 번째 봉우리는 준봉산 표지석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조금 전 지나온 (8 38분에 지나친 두번째 봉우리) 진달래가 무성한 봉우리를 올려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봉우리 좌측(우리가 진행 할 때는 우측 방향)으로 돌로 쌓은 듯한 너럭 바위들이 줄을 잇고

가파른 절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끝 부분이 다소 높아 보인다.

지도를 재차 확인하고(국립 지리원 발간 1:5,000지도) 복기를 해 보니

 

맨 처음 깃대봉이라고 정상석이 새워진 봉우리는 가나무봉(528m)이고

--- 자료에 의하면 가나무봉 우측 골짜기에는 청량사라는 절이 있으며….”라고 되어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봉우리 끝 부분이 깃대봉이며(521m)

이곳은 표지석이 있는 준봉산이다.

, 깃대봉은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봉우리(521m)로 판단 된다.

 

조금 더 진행하여 네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8:50)

길은 3갈래로 나있고 좌우 양쪽으로 꼬리표가 많이도 메달려 있다.

좌측길을 따라 내려 섰다가 조금 후에 되 돌아서 오는 선두를 만난다.

송전탑까지 진행을 하였으나 꼬리표가 없어서 되돌아 왔다고 한다.

정상에 와서 다시 확인을 하니 우측으로 내려서니 이곳에는 꼬리표가 줄지어 이어진다.

 

                     준봉산 지나서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나선리 방향 원경

 

암릉구간을 지나고 소나무 숲을 내려서니 기가 막힌 바위 전망대가 우뚝하다.(9:15)   

조금전에 본 여항산 중봉들을 마주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즐거운 시간을 맞는다.

카메라 셔터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웃는다.

 

 

                            발산재 내려 서기 전 너럭바위에서 ......

 

   너럭 바위에서 여항산을 배경으로...(경암님, 후미대장 님)

 

 

( 나의 모습입니다...)

 

전망 바위를 내려서서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이번에도 좌우 등로를 따라 꼬리표가 가득하다.

앞선 사람들은 우측으로 진행을 하고 우리끼리 남아서 재차 확인을 해 본다.

좌측 방향으로 메달려 있는 선답자 비실이 부부님의 꼬리표를 확인하고 의심 없이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 지다가 2번 국도 위 절개지 옆으로 떨어지고 나서

근래에 설치한 동물 이동통로 위를 지난다.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선 그룹이 2번 국도를 넘느라고 시간이 지체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발산재 구 도로에 도착하여 후미(?) 그룹을 한동안 기다린다. (9:45)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쪽은 2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여 우리 보다 먼저 진행을 하였던 것이다.

 

 

                        2번 국도 발산재 위로 설치 된 동물 이동 통로

 

                                   발산재 장승

 

     발산鉢山

     고개 넘어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의 동내 이름과 관련이 있.

전설에 의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鉢臺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고 하여

인위적으로는 대단위 호수를 막고 살아야만 한다고 하였다.

고개 아래 발산 저수지가 있다.

 

한동안 기다리다가 우리끼리 다시 출발을 한다.

대나무 숲 속을 지나 묘 2기씩 자리한 지점을 지나고 나서 가파른 숲으로 들어서니 등로가 없다.

송전탑 방향을 중간 목표로 정하고 선두(?)를 따라 한동안 올라가서

발산재에서 올라오는 제대로 된 등로와 만난다.

조금 후에 나무 벤치가 설치된 지점에서 앞선 그룹과 만나서 휴식을 한다.(10:25)

시간상으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발산재 지나서 첫 봉우리에서.....

 

완만한 등로 사이로 늘어선 소나무 숲이 고즈녁 하다.

반대편에서 오는 2명의 등산객을 만나 앞선 일행을 보았느냐고 물어보니

조금전에 3명이 지나갔다고 한다.

아뿔싸…. 우리가 걱정하던 선두는 발산재를 제대로 통과하여 우리보다 앞선 것이었다.

송전탑 106번을 지나고 (10:44)

조금 후에 등로 우측에서 올라온 임도를 만난다.(10:50)

 

 

                                      첫 임도 인근 지점

 

임도는 등로와 한동안 나란히 이어진다.

완만한 등로 옆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구덩이를 수시로 발견한다.

임도 건너 발아래 마을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손 바닥 만한 논밭을 끼고 들어선 작은 동리 뒤로 꽤 큰 저수지가 있고

그 뒤로는 건물이 들어서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옥녀봉과 평암 저수지 원경

 

                 좌측으로 우뚝한 봉우리는 옥녀봉이고(429m)

                 평암 저수지 뒤로 보이는 건물은 진로소주 마산 공장으로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주는 전량 해외로 수출을 한다고 한다.

 

완만한 봉우리와 안부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이어진다.

조금 더 진행을 하여 완만한 오름길 중간에서 좌측 영봉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을 만난다.(11:10)

지도상으로 이쯤 어딘가에 좌측 하곡리 외곡 마을로 향하는 외곡고개가 있는데

조금 전 평암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지점이었는지 ?

아니면 이곳인지 정확히 판단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평탄하다.

 

                                      영봉산 갈림길

 

흩날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

흐린 하늘이 이따금씩 열렸다가 다시 흐려지기를 반복한다.

소나무 숲에 갇힌 등로는 갈참나무 잎만 무성할 뿐 아무런 특징이 없다.

등로는 능선 사면으로 이어 지다가 다시 풀이 무성히 자란 묘 6기가 잠들어있는 지점을 통과한다.(11:25)

풀속에 가리워져 있는 상석의 글씨를 들여다 보니

강양江陽 이씨묘라고 쓰여있다. 아주 희귀한 성씨로 판단이 된다.

 

 

                        풀숲에 덮힌 강양이씨  묘

 

강양이씨(江陽李氏)

시조 이 초(李超)는 고려시대에 사재령(司宰令)을 지냈다.

그의 선조는 합천 이씨의 시조 이 개(李開).

이 개의 6세손인 이중비(李仲庇)가 고려 때 전서(典書)로 강양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집성촌은 경남 합천군 합천읍 금양리와 경남 진주시 일대, 경남 사천군 일원,경남 의령군 일원,

경북 김천시 일원과 경남 김해군 이북면 장방리 등지이다.

본관 강양은 경상남도 합천군의 옛 이름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양이씨는 1985년에는 총 1,058가구(4,476),

2000년에는 총 582가구(1,903)로 조사되었다.

오히려 줄어든 것은 조사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목규의 성씨 칼럼에서….

 

조금 더 진행을 하여 좌측 능선 위에 넓게 자리한 묘지와 등로 중간에 자리한 묘 2기를 연 이어서

지나고 나서 우측으로 드러난 임도를 또 다시 만난다. (11:35)

임도는 평암 저수지 부근의 마을에서 시작하여 큰정고개까지 산 사면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주변은 산불이 났던 자리인 듯 큰 나무들이 이리 저리 뒤엉켜 흩어져 있는 안부를 지난다.(11:44) 

 

 

    

주변의 소나무가 하늘로 쭉쭉뻗어 20여 미터나 됨직한 울창한 지역으로 들어선다.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서 평탄한 봉우리에 오르니

앞서가던 도리께 님과 다른 2명이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356M, 11:50)

아무런 표시도 없어서 도리께 님에게 물어본다.

여기가 어디 인가요 ?

356m봉우리 입니다

스마트 폰에 산행구간 지도를 Down받아 꼼꼼히 챙기는 도리께님이 힘주어서 대답한다.

 

 

                                 평탄한 365m 봉우리

 

건내는 소주 한잔을 들이키니 유혹에 빠질까 두렵다.

아침 식사때와 마찬 가지로 입술에 남은 소주가 또 달콤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심을 해야지…. 이러다가는 또 고주 망태가 될까 두렵다…..

 

   국회의원 없으면 나라가 안될까요…?

   돈봉투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요즈음 왜 이리 난리 인가요…?

   유죄가 확실한 벌금형을 메기고 왜 현직에 복직 시키나요 ?

   국회의원은 2회만 하도록 하면 좀더 깨끝하지 않을까요…?

   지역구 출마는 지역구에서 수년간 거주한 자들만 자격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정치판의 어두운 면을 보고 불만과 비평을 속사포처럼 내 뱉는다.

지구상에 최초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요. 정치가 입니다 ?

왜 그렇지요 ?

성경에도 쓰여 있어요. “태초에 혼란이 있었나니…”.라고요

그 혼란을 일으킨 자들이 정치인들 입니다……ㅎㅎㅎ

 

등로는 완만하게 이어진다.

눈은 그치고 잿빛 하늘은 서서히 밝아진다.

갈참나무 잎이 수북히 쌓인 등로를 이어 가다가 능선을 좌우로 가로 지르는 갈림길을 만난다.

지도 상으로 표시된 큰정고개에 도착 한다(12:12)

우리와 나란히 이어 온 임도에서 등로를 가로 질러

좌측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진안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큰정고개 

 

등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힌다.  

소나무 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색깔도 진하다.

일전에 고성군 개천면에 연락을 해 보니 군청에서 간벌을 지속적으로 하였던 결과라고 한다.

숲도 빼곡하고 쑥쑥 자란 소나무도 싱그럽기 그지 없다.

가파른 길을 헉헉 거리면서 오르다가 산마루를 만나서 전망이 트인 바위에 풀썩 주저 앉는다.

내려다 보이는 마을은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이고 산골 치고는 마을이 꽤 넓어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진안 마을 원경

 

 

진주시 이반성면은 그 옆 일반성면과 함께 특이한 이름으로 느껴진다.

 

경기도 안성군에는 일죽면, 이죽면, 삼죽면이 있다.

세 면은 당초에는 죽일면, 죽이면, 죽삼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관련 제품도 많이 생산 되어서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의 이름으로 바뀐 사연이 재미있다.

 

군에서 회의를 할라치면,

일죽 면장은 으례, “ , 죽일면 면장 ooo입니다…”로 인사를 하여야 되는데

당사자는 물론이고, 듣는 사람들 마져 그 고충이 오죽 하였으랴….

걸핏하면 죽일면,죽일면하였을 터 인데,  죽일놈을 연상 시키는 이름이 얼마나 거북 하였을까 ?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면 이름을 바꿔 달라고 하여 앞뒤로 글자를 뒤 바꿨다고 한다.

 

진주 일,이반성면은 원래 반성면 이었다고 한다.

후에 면이 2개로 갈라 지면서 편의상 일, 이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저수재 아래에 위치한 경상북도 예천군에도 특이한 이름이 있다.

뿅뿅 다리로 그 이름이 알려진 의성포가 있는 지역은 용궁면이고,

그 옆의 면은 풍양면, 지보면이다.

글자의 순서를 바꿔 부르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지명이지만

그래도 예천에서 지보면은 정계나 군의 고위 인사를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진주 일,이반성면은 원래 반성면 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면이 2개로 갈라 지면서 편의상 일, 이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양지 바른 능선에서 가야 할 마지막 산 봉우리를 쳐다보니 거의 다 올라온듯 한 느낌이 든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털썩 주저 앉아 마지막 보따리를 펼친다.

조금 후에 도착한 다른 한 분이 마지막 봉우리라는 말을 듣고

꼭꼭 숨겨둔 떡 2팩과 맥주 3통을 끄집어 낸다.

연 이어서 고문님 두분과 경암님도 도착하여 마지막 오찬(?)을 즐긴다.

 

 

                             527m 봉우리 직전 능선에서의 휴식

 

원기를 회복하고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형형색색의 돌이 특이한 모습으로 이곳 저곳에 자리하여 카메라가 분주하다.

색상도 모습도 기이한 돌이 오늘 산행 내내 산재되어 있다.

공룡, 바다, 고성읍에 대한 단어들이 연상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잠시 후에 도착한 정상은 깃대봉에 이어 또다시 멋진 전망을 보여준다.(527m, 13:00)

정상에서 조금 비켜나서 툭 트인 곳에서 동북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발아래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 들판은 가지런히 정리되어있고

산 비탈에는 그림같은 농가들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다

 

오곡리에서 시작한 도로가 구불구불 산비탈을 따라 오르다가 숲속으로 숨어버린다.

도로 뒤로 치솟은 산 자락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다.

다음 구간에 갈 미산령을 경계로 우측 여항산 정상과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 새마을에서 오곡재로 오르는 언덕 

   

이 봉우리를 경계로 좌측은 진주시 이반성면, 우측은 마산시 진전면,

그리고 정면 방향은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이다.

정맥길은 이제 진주와 작별을 하고 함안군, 마산시의 경계로 들어선다.  

정상에서 좌측 능선을 따르면 오봉산이고, 가야할 낙남의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진다.

노란 솔잎이 수북히 쌓인 능선을 따라 발걸음도 가볍게 이어진다.

 

                                    527m정상에 서있는 이정표

 

 조금 후에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우측 계곡에 자리한 여양리 오실골, 둔덕 마을은 짓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진행 방향의 등로는 능선을 따라 살짝 내려 섰다가 다시 솟구친다.

아마도 살짝 내려앉은 지점이 오곡재 일터인데 무슨 사연인지 버스는 산 중턱 도로에서 기다린다.

오곡리와 여양리 사이 능선 아래로 터널이 뚫려있구나….라고 지레 짐작을 하고

경암님과 말을 주고 받으면서 마지막 하산길을 재촉한다.

 

잠시 후에 비 포장 도로, 오곡재에 도착한다.(13:39)

알루미늄 기둥에 붙어있는 이정표에는 좌측 군북 오곡, 우측은 마산 산서(비실)로 쓰여있다.

지도에 오곡재, 또는 비실재로 표시가 되어있는 이유를 이제사 알 것 같다. 

중간 지점 발산재에서 부터 이곳까지 8.85km 3시간 반에 지나온 셈이다.

등로도 순탄하여 휴식도 충분하게 취하고 여유있게 지나온 셈이다.

 

                        오곡재 정상에 있는 이정표

 

           오곡재烏谷

           오곡리()烏谷洞)은 함안군 군북면 소재지에서 약 6km 떨어진 산간 벽지로서

   재()넘어 비실을 지나 진전면 국도(國道)와 통하는 옛길의 요충지에 위치한다.

 

     이정표에 쓰여진 마산 산서(비실)

     오곡재에서 여양리로 내려오면 산골마을 오실골과 둔덕을 만난다.

     여항산 자락 산골에 자리잡은 둔덕마을을 예전에는 비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서는 여항산의 마산 방면 여항면에서 볼 때 여항산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산서로 불렀고

     여항면은 산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데서 연유된 지명이다.

     80년대 까지도 여양리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현재의 여항 수련원이 있는 월산 이라는 곳에

     함안군 군북면 산서 출장소(면 사무소 단위 보다 작은 규모)가 있었다고 한다.

     한때 이 지역은 함안군 관할 이었다가 지금은 창원시 진전면으로 변경 되었다고 한다.   

                                  --진전면 사무소 직원 설명

 

당초에는 오실(娛室)이라 불리워져 오다가 신라 말엽 고운(孤雲)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어린 시절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 중 피로가 겹치고 배도 고파 오곡 뒷산에서 쉬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마귀가 나타나 닭다리를 물어주고 날아갔다고 전한다.

최치원(母子)는 그 닭고기를 구워먹고 허기를 면하여 목적지인 통영까지 무사히 도착 하였다 하여

그 후부터 오곡(烏谷)이라 불렀으며

또한 오곡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2마리가 깃을 펴고 나를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선조 16년에 함주도호부사(, 함안군수)로 부임한 한강 정구선생이 오곡이라 이름 지었다고도 한다.

 

잠시 고민을 한다.

오곡재에서 비포장 도로를 따라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아마도 중간에 터널이 있어서 버스가 그 지점에서 기다릴 테니

조금 더 진행하여 터널 부근 능선에서 내려 가자는 의견을 많아서 다시 이어간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 길 이지만 주변의 소나무 숲이 너무도 황홀하다.

산행 초기에는 다리통 만한 소나무가, 중간 지점에서는 쭉쭉 뻗은 멋진 소나무로,

그리고 이곳에서는 아름드리 소나무로 바뀐다.

진한 송진 냄새와 함께 솔잎의 향그러운 냄새를 한껏 들이마신다.

 

 

   

낮은 능선에 올라서니 앞서가던 분이 뒤돌아 내려온다.

전방의 안부 어디에도 우측(터널)으로 내려서는 길이 없다고 한다.

다소 김이 빠지는 헛걸음 이었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돌아 내려선다.

오곡재에 도착하여 비포장 도로를 5분여 걷는 사이 미리 도착한 선두와 조우한다. (14:00)

맨 나중에 도착한 3명도(15:20) 우리 그룹과 같은 판단을 하여 꽤 멀리 갔다가 뒤돌아 왔다고 한다.

 

 

                               오곡재로 다시 돌아오는 능선 길........

 

오곡재로 돌아와서  비 포장 임도로 내려선다.

포장 도로와 맞 닿는 지점에  내려오니 좌측 길옆에는

위험을 알리는 출입금지 표시판이 세워져 있고 동굴 입구는 흙으로 덮고 철 구조물로 막아 놓았다.

 

 

                                   흙으로 덮고 철 구조물로 막아놓은  폐 동광산 

 

           비포장 도로 끝나는 지점에 있는 폐쇄된 동광산,

          일제 시대에 동 채굴 광산을 개발, 운영 하였으나 6.25때 폭파 되어서

          지금은 폐 광산이 되었다고 한다.

          위험 표지를 새우고 광산 입구에는 철 구조물로 설치하여 출입을 금지하여 놓았다.

                                                           --진전면 사무소 직원 설명

 

오늘 같은 경우를 대비해서 산행 중 무전기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필요해 보인다.

산행 중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으며

선행자가 뒤 따르는 그룹에게 수시로 상황을 전달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오실골 마을로 내려서니

버스 한대가 지나기도 어려운 농로 수준의 산골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올라올 때 버스 기사가 간담이 서늘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좁고 위험한 길이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이어진다.

 

조금 더 내려오니 개울가에는 기가 막힌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주변은 잘 단장된 묘가 잠들어 있다.

나중에 진전면 관계자에게 확인을 하니

밀양 박씨 문중의 선대 묘지로서 아름다운 소나무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이곳, 들담 마을을 지나 계곡을 따라 골옥방 마을을 따라 올라가면

소무덤봉을 지나 여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를 수 있다고 한다.

 

20여분 후에 양촌 온천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이런 호사가 없다.

엊그제 저녁 TV에서

산행 후에는 찬물에 3, 온수에 1분씩 번갈아 냉.온탕을 즐기면 좋다고 하여

그대로 해보니 무릅이 훨씬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양촌온천

      마산 진전면 양촌리는 근래에 개발된 온천이다.

      경남지방에서는 부곡 온천 다음으로 수질이 좋다고 알려진 곳이다.  

      지근거리에 있는 대정大井마을은 예로부터 어디를 파도 물이 샘솟는다 할 정도로

물이 풍부 한 곳으로 이름이 난 곳이다.

 

마산은 물이 좋다고 예로부터 이름이 난 곳이다.

동마산 천주산 아래에 있는 OB맥주 공장, 이곳에서 4km떨어진 곳에 있는 진로소주 공장,

그리고 경남 지방에서 압도적으로 사랑을 받는 몽고간장이 물과 관련이 있다. 

대정마을에서 서쪽 방향으로 적석산이 정상의 구름다리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이 서있다. .

 

대정마을에 들러서 돼지고기 두루치기로 식사를 한다.

시골 동네 식당이라서 비좁지만 밀려오는 허기를 단숨에 메꾸기에 충분하다.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을 들여다 보니 역시 경상도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빈약하다.

 

적석산이 좋았습니까?

, 정말로 멋진, 이쁜 산 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우리는(적석산에 가지 아니한 그룹14) 오늘 정말로 여유 있는 산행을 하였습니다.

혹시, 다음 구간에도 어디 댕겨올 때 있으면 갔다 오시지요…..

???.....ㅎㅎㅎ

 

마주앉은 경상도 대구 사나이의 웃음에 총무님의 눈이 점점 커진다.

산세가 뻬어난 적석산,여항산,서북산을 뒤로하고

온천과 함께 한우 마을로 이름난 이곳은 재미있는 산행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양촌온천을 배경으로 대정마을 식당 앞에서......

산행과 함께 식사까지 준비를 해주신 산악회 진행요원 님들께 재삼 감사 드립니다.

  (2012년 12월5일 낙남7차구간을 마치며 영일만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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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2.09 22:10

    첫댓글 내가 보는 형님은 진정한 산꾼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 12.02.10 14:30

    우리들의 산꾼...
    항상 몸조심하시구요.
    사진찍을실때 좀 웃으세요. 무서워..

  • 작성자 12.02.10 21:12

    힘들어서그려 다음부턴 스마일 포즈로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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