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9일, 금요일, Encarnacion, Hotel Germano (오늘의 경비 US $16: 숙박료 15, 버스 7, 점심 20, 저녁 10, 이발 10, 머리 염색약 30, 기타 2, 환율 US $1 = 6,000 guarani) 파라과이는 볼리비아와 비슷한 데가 많은 나라다. 경제가 낙후된 점,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국인 점, 주위 국가들과 전쟁을 여러 번 해서 모두 진 것 등이 비슷하다. 한 마디로 운이 없는 나라다. 어떻게 보면 볼리비아보다도 운이 더 없는 나라다. 볼리비아는 한때 은광으로 흥청거렸던 나라지만 파라과이는 땅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나라다. 땅은 많다. 인구는 고작 600만인데 땅 넓이는 한반도만 하다. 땅의 반은 불모지고 반은 개척만 하면 옥토가 될 수 있는 땅이니 경지 가능한 땅이 남한의 10배 이상이다. 한때 한국 이민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대부분 파라과이에 도착한 후 금방 브라질로 불법 이주해 갔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아직까지도 나쁘다고 한다. 평균 노동자 임금이 월 $100 정도라 한다.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얘긴데 물가가 너무나 달라서 쉽게 비교를 할 수가 없다. 내가 묵고 있는 방 숙박료가 한화로 3,000원인데 그런 방이 한국에서는 적어도 15,000원은 될 것이다. 물가가 대체로 아르헨티나의 반 정도 수준이 아닐까 한다. 남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의식주는 해결되고 교육, 병원은 무료이어서 최저 생활이 보장되는 나라인 것 같다. 사람들이 별로 일을 안 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끊임없이 Mate 차를 마시며 담소나 하며 소일하는 것 같다. 파라과이는 1540년경 Buenos Aires 정착에 실패한 스페인 사람들이 Rio Parana 상류로 올라가서 현재 파라과이의 수도인 Asuncion 지역에 정착하면서 생겨진 나라다. Buenos Aires 정착에 실패한 스페인 사람들이 Asuncion 정착에 성공하게 된 이유는 Asuncion 지역 원주민 Guarani 인디언들과의 관계 설정에 성공한 때문이다. 우선 Guarani 인디언들은 Buenos Aires 지역의 인디언들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었다. 다음에는 Buenos Aires 지역의 인디언들에게 못되게 굴어서 그들이 모두 밀림으로 도망가게 만든 실수를 뼈저리게 느낀 스페인 사람들이 Asuncion 지역의 Guarani 인디언들에게는 조심스럽게 대했다는 점이다. 오늘은 Encarnacion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Trinidad Jesuit Mission 유적을 보러 갔다. 가는 동안의 풍경은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 북부 지방과 다름이 없다. 구릉지형이며 목초지와 나무숲이 섞여있다. 목초지는 개척이 된 곳이고 나무숲은 아직 개척이 안 된 곳이다. Trinidad Jesuit Mission 유적지에 도착하니 햇빛이 따끈하게 느껴지는 아침 9시경이다. 우산을 가져와서 양산으로 쓰니 안성맞춤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약 500m를 걸어가니 유적지 입구가 나온다. 이곳의 규모는 San Ignacio의 Jesuit Mission 유적보다 작지만 보존 상태는 훨씬 더 좋다. 생각해 보면 Jesuit 신부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 쫓겨난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이 오지에 지상천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진장의 옥토와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인디언들이 있으니 이 신부들은 한 나라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결국은 너무나 부유해져서 다른 스페인 사람들의 질시를 받아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당 하나만 봐도 그 당시 큰 도시에나 있을만한 거대하고 화려한 성당을 이 오지에 세웠다. 왜 그렇게 크고 화려한 성당을 지었을까? 아마 욕심이었을 것이다. 좀 더 검소한 생활을 했더라면 훨씬 더 오래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 까지도 남아 있었을 텐데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옆자리에 두 달밖에 안된 아기와 20세 정도의 엄마가 앉아 있었다. 아기가 자다가 깨어나서 우니 젖을 꺼내서 물린다. 꼭 50년 전의 한국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Encarnacion에 돌아와서 Parana 강가로 나가서 아르헨티나의 Posadas와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 사진을 찍는데 군인 제복을 입은 친구가 어디서 나타나서 못 찍게 한다. 무슨 군사 비밀이라고 못 찍게 하는지 모르겠다. 미처 보지 못 했는데 바로 옆에 군대 막사가 있었다. 시내로 돌아와서 내가 좋아하는 아르헨티나 고기 parilla 점심을 들었다. 가격은 약 16,000 guarani인데 (약 3,000원) 양은 3인분은 되었다. 빵 대신 vandioca 찐 것이 나왔는데 생긴 것은 단무지 같고 맛은 찐 고구마 같았다.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이발을 했는데 이발 요금이 10 guarani, 한화로 2,000 정도다. 숙소에 돌아와서 머리에 물을 들였는데 40분이나 걸리는 힘든 작업이었다. 내가 보통 때 쓰는 5분밖에 안 걸리는 “Just for Men” 상표의 염색약이 없어서 다른 상표를 썼더니 그렇게 오래 걸렸다. 다음에는 머리 물 드리는 것도 이발소에서 해야겠다. Encarnacion에는 일본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사는 모양이다. 일본 음식점도 여러 곳 있다하고 일본 사람이 하는 철물점도 세 곳이나 보았다. 내가 묵는 호텔에는 하루 종일 일본말 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점심 먹을 때 웨이터 얘기가 파라과이에 한국 사람도 많이 산다고 한다. 수도 Asuncion에 가면 20년 전에 이곳으로 이민 온 고교 동창 친구도 찾아볼 생각이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녁식사는 호텔 옆 일본 음식점에서 NHK 방송을 보면서 두 번째로 먹었다. 우동을 시켰는데 국수가 제대로 익지가 않았다. 70대의 일본인 주인이 직접 요리를 하는데 지난번 스키야키도 시원치 않았는데 오늘 우동도 시원치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일본 여자노인 넷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반찬으로 일본 단무지와 김치가 있었다. 주인에게 "기무치"가 아니냐고 물어보니 그렇다며 원하면 주겠다고 한다. 김치가 언제 이렇게 일본 사람들이 많이 먹게 되었는지 좀 신기하게 느껴진다. 여행지도 Trinidad 가는 길의 열대 지방 풍경 Trinidad Jesuit Mission의 성당 유적 성당 벽 조각 인디언들이 살던 연립주택 건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