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16일, 목요일, Titicaca호수, Amantani 섬 (오늘의 경비 US $4: 식료품 8, 기타 6, 환율 US $1 = 3.5 sole) 오늘은 Titicaca 호수 관광을 가는 날이다. 아침에 짐을 싸서 로비로 내려가니 프랑스 관광객들로 꼭 차 있었다. 대부분이 부부인 60대로 보이는데 30여 명의 그룹이다. 프랑스 사람들 아니랄까봐 한 사람도 영어를 못한다. 관광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짧은 프랑스어로 몇 마디 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왔다 길래 포도주가 많이 나는 고장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며 반가워한다. 자기 고장의 특산물을 먼 나라 사람이 아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밑천을 털어서 프랑스어 노래도 할 줄 안다고 하고 "Frere Jacques, Frere Jacques, Dormez-vous ..." 하는 프랑스 어린이 노래를 한 소절 불렀더니 더 좋아한다. 이 사람들도 Titicaca 호수 관광을 하러 가는지 객실 하나에다가 짐을 전부 들여놓고 관광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도 이 호텔에 짐을 맡겼다. 1박 2일이니 짐을 다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맡기면서 간단한 영수증을 받았다. 영수증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버스가 당도해서 호숫가 선착장으로 갔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거대한 Titicaca 호수가 앞에 보이고 선착장에는 관광객들과 그들을 실어 나를 배들로 붐빈다. Titicaca 호수는 폭과 길이가 대강 100km 정도로 경기도 넓이와 비슷한 남미 최대의 호수다. 고도가 3,800m로 배가 다니는 호수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란다. 지정된 배에 오르니 15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타고 있는데 낮 익은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Inca Trail 트레킹을 같이 한 프랑스 젊은이 Jeremy가 그 중에 하나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트레킹이 끝난 후 아마존 정글 투어를 한 다음에 어제 이곳에 당도했다고 한다. Jeremy는 같은 배에 탄 다른 프랑스 사람들과 금방 짝이 된다. 우리보다 나이도 비슷하고 말 잘 통하는 자기 나라 사람이 훨씬 더 편하겠지. 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보니 Colca 계곡 트레킹 할 때 만난 30대 후반의 이스라엘 남자다. 처음에는 못 알아봤는데 나에게 "Exodus" 책을 다 읽었느냐고 해서 생각이 났다. 그때 한 15분간 쉬면서 이스라엘 얘기, 남북한 얘기를 나누었었다. 그 때는 몰랐는데 오늘 보니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부인과 15세, 12세의 딸 둘이었다. 딸들이 학교 갈 나인데 학교는 어떻게 하고 여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학교는 1년 쉰다면서 여행도 공부라고 한다. 우리하고 비슷하게 1년 예정으로 남미를 여행하고 있다. 참 부러운 가족이다. 나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 은퇴를 했을 때 용기를 내어서 온 가족이 함께 1년 간 남미여행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재미있는 친구 하나를 만났다. 30대의 중국인인데 국적은 덴마크다. 10여 년 전에 덴마크로 이민을 가서 덴마크 여자와 결혼하고 애 둘을 낳고 살다가 근래에 이혼했단다. 혼자 살기 때문에 휴가 때마다 한 달 정도씩 혼자 외국 여행을 한다고 한다. 애들 생각을 몹시 하는 것 같았다. 애들 사진을 보이는데 엄마와 살고 있는 듯 영락 덴마크 애들로 보였다. 이 친구는 자기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중국의 대지주였는데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집안이 몰락해서 자기 부모들은 지독한 고생을 했고 자기도 낙인이 찍힌 신세로 중국에서는 살길이 막막했는데 운 좋게 덴마크 이민 기회가 생겨서 1990년 중반에 중국을 떠났다고 한다. 여러 가지 얘기를 했는데 (영어를 곧잘 했다) 공산당에게 자기 집안이 망했는데도 중국은 당분간 공산당 정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산당 정권이 몰락하면 중국은 구심점을 잃고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 한다. 배가 부두를 떠나서 한 30분 달려서 그 유명한 물위에 떠있는 섬이라는 Uros 섬에 당도했다. 갈대로 만든 섬인데 옛날에는 사람이 살던 섬이었는데 이제는 사람은 안 살고 관광만을 위한 섬으로 바뀌었다. 배에서 내려서 갈대 위를 걸으니 꼭 두꺼운 이불 위를 걷는 기분이다. 발을 디딜 적마다 바닥이 움직인다. 세상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는 없을 것이다. Titicaca 호수에는 이런 섬들은 여럿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바람에 불려서 이동하는데 바람이 자면 제 자리로 끌어서 옮겨놓는단다. Uros 섬에서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한 다음 배에 다시 올랐다. 3시간을 달려서 오늘밤을 묵을 Amantani 섬에 당도할 때까지 주로 덴마크 국적 중국인 “심 선생”과 얘기를 나누었다. 자기 자신을 매우 불행하게 생각하는 친구다. 중국을 떠나지 않았거나 떠났더라도 중국여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고 나 혼자 생각을 해봤다. Amantani 섬에 도착하니 민박 주인들이 부두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가 우리와 민박집을 짝 지워준다. 우리 부부는 Dario라는 민박집 주인에게 배정되어서 따라 갔다. 언덕 위에 여기저기 집들이 있고 주위에 농토가 있었는데 땅이 매우 척박해 보였다. 제주도만큼이나 돌이 많은지 여기저기 돌담이 보인다. 한 10분 걸어서 Dario의 집에 당도했다. 조그만 양옥집인데 손님방은 본채와는 떨어져 있었는데 침대 4개와 식탁 하나가 있었다. 밤에 추운지 한 침대에 두꺼운 털 담요가 3개씩이나 있었다. 전망이 좋아서 창밖으로 호수가 보이는데 바다같이 보였다. 마당에는 Dario 어머니인지 노인이 옛날 시골에서 본 듯한 천 짜는 기계로 천을 짜고 있었고 어린이들 몇 명이 놀고 있었다. 아마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이 시골집 풍경이다. 하루 밤 자고 갈만하다. 짐을 풀고 좀 쉬어있으니 점심이 나온다. 정갈한 음식이다. 처음에 수프가 나오고 주 요리로 감자, 고구마, 겨란 부침이 나온다. 문야 차라는 이 고장 차가 나왔는데 향기가 특이했다. 점심이 끝난 후 이 집 딸 Lusdelia를 (10세 정도) 따라서 이 마을 중앙광장으로 갔다. 조그만 성당, 정부 건물, 초등학교가 있는 아담한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에는 어느 Inca 왕의 동상이 있었다. Titicaca 섬은 Inca의 발상지란다. 이 섬에서 첫 번째 Inca 왕이 나와서 세력을 키우면서 이곳에서 멀지 않은 Cuzco로 옮겨가서 그 곳을 Inca 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이곳은 전기도 들어오고 모든 집의 지붕이 양철로 되어 있었다. 못사는 나라를 여행할 때는 항상 60년대의 한국과 비교하게 된다. 중남미의 아무리 못산다는 나라도 60년대의 한국보다는 훨씬 잘 사는 것 같다. 그것을 보면 한국은 옛날에 정말 못사는 나라였다. 이곳은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경치도 좋고, 먹을 것만 있으면 천국 같은 곳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도 관광 붐이 일어나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점심이 끝나자 주인 Dario가 자기 집에서 만든 것이라며 사라고 몇 가지 기념품을 내 놓는다. 우리는 벌써 Cuzco에서 다 샀다고 정중히 거절했더니 가지고 들어간다. 좀 미안했다. 우리는 장기 여행을 하기 때문에 기념품을 사서 지고 다닐 수 없다. 그래서 기념품은 안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여행이 다 끝날 때쯤 한두 가지 사게 될 것 같다. 광장에서 우리 그룹이 모여서 근처에 있는 Inca 유적 구경을 걸어서 했다. 가는 도중에 10여세로 보이는 남자애들 7, 8명이 따라 오면서 피리를 분다. 동네 밴드인 셈이다. 한 20분 따라와서 우리가 잠깐 쉬고 있으니 음악을 멈추고 한 애가 모자를 벗어들고 모금을 한다. 눈여겨보니 아무도 돈을 안 준다. 이 애들에겐 실망이겠지만 여행 안내서에는 애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섬에 와서 구경을 하고 가지만 가능한 한 이 고장의 문화를 바꿔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안 된다. 한참 길을 올라가는데 어느 집 돌담 너머로 2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귀엽게 웃으며 "Hola"를 연발한다. 영어의 “Hello"다. 근처에서 쉬면서 살펴보니 지나가는 여행객에겐 모두 인사를 한다. 자기 사진 찍고 돈 달라는 흥정인 것이다. 물론 부모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 휴가철에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이 길을 걸어올라 갈 테니 이 두 살배기 장사가 제법 잘 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좀 걷다가 힘이 들어서 주위 경치만 구경하다가 중앙광장으로 내려오니 민박집 딸 Lusdelia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Lusdelia를 따라서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6시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깜깜해진다. 이곳은 왜 이렇게 빨리 어두워지는지 모르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책을 조금 읽다가 밖에 나가서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구경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이곳에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도 Titicaca 호수 유람선들 뒤로 보이는 Puno Titicaca 호수의 갈대 밭, 이 갈대로 떠있는 섬을 만든다 Titicaca 호수에 있는 떠있는 갈대 섬 Uros 배들도 갈대로 만들었다 섬에서 걸으면 밑바닥이 움직인다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곳에서도 기념품을 판다 Inca 후예 사공 노인은 거인이다 옥수수 가루 만드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오늘밤을 지낼 Amantani 섬 마을이 멀리 보인다 전기도 들어오는 아담한 마을이다 부부가 함께 땅을 파고 있는데 땅이 매우 척박해 보인다 우리가 묵은 민박집은 제법 깨끗하다, 손님방은 오른쪽에 보이는 흰 건물에 있다 Amantini 섬 마을 중앙광장에는 아담한 초등학교가 Inca 석상을 마주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