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사 및 영상 관련)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적어도 어제 경기만큼은 천위페이가 강했던 게 아니라, 안세영이 약했다. 제2게임 초반 오른쪽 발목이 완전히 돌아가는 부상 속에서도 강한 투혼을 발휘한 천위페이의 정신력이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안세영을 압도한 데 그치지 않고, 스트로크의 정확성과 심지어 체력에서마저 천위페이가 우월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어제 정도의 경기력이라면, 굳이 천위페이가 아니었어도 랭킹 10위 안에 드는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으리라.(최소한 야마구치나 와르다니에겐 100% 패했다.)...... 왕즈이는 몰라도 천위페이와 야마구치는 안세영을 꺾기 위해 비약적인 체력 향상을 이룬 지 꽤 되었다. 1년 전만 해도 장시간에 걸친 랠리와 경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안세영에게 유리했다면, 이제는 그런 어드밴티지가 전혀 없다. 이 두 라이벌들이 자신의 코트 구석구석을 커버하는 수비력과 지구력, 상대 코트 구석구석으로 날리는 스트로크의 정확성 모두를 안세영과 동급의 레벨로 끌어올렸기에 어제 같은 느린 스트로크와 헤어핀 맞대결만으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경기력이 동일한 조건일 때 스매시 파워에서 천위페이와 야마구치가 안세영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세영이 박주봉 감독 취임 이후 공격력 강화를 목표로 내건 것은 지극히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지난 두 대회에서 개선된 듯 보였던 스매시 파워가 예전 수준으로 퇴보한 듯 보였고, 거기에 더해 발놀림마저 무겁고 체력적으로도 힘겨워하는 모습이 완연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되짚어봐야 하리라. 다리 부상에서 회복하느라 훈련량이 부족했던 것인지, 전완근을 키우기 위한 무리한 운동으로 흔히 '엘보우'라고 부르는 인대 손상 같은 게 있었던 것인지, 안세영 본인 말대로 몸에 큰 이상이 없는 게 사실이라면 현실에 안주한 채 훈련을 게을리한 건 아닌지를 말이다...... 어제 먼저 열린 첫 번째 준결승 야마구치와 와르다니의 대결을 안세영이 경기장에서 직관하는 게 카메라에 잡히던데, 아마 느낀 게 많았으리라 본다. 코트 구석구석을 정확하게 찌르는 두 선수의 강력한 스매시 대결에 안세영이 커다란 경계심을 느꼈어야 정상이다. 어쩌면 그 경기를 본 탓에 자신감을 더 잃은 채 천위페이와의 대결을 시작했을 수도 있고...... 스매시를 제외한 다른 모든 기술과 경기 운영 능력, 그리고 체력에 있어서 안세영은 분명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선수들도 그녀를 이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통해 같은 레벨로 올라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스매시 파워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더 강해져야 한다. 안세영의 스매시가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 곧바로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경기 중 간간이 섞어주며 템포를 빠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처럼 천편일률적인 느린 템포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상대의 수비력이 출중할 때는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샷을 때릴 때에만 공격이 성공한다. 그렇기에 경기 중 템포 변화는 필수다.) 문제는, 스매시를 때리려면 체력 소모가 극심해지고 상대가 완벽하게 받아낼 경우 수비적으로도 허점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도 자주 때려야 하고(지금보다 최소 3배 이상의 비율로), 상대가 받아낸 다음 상황들을 대비하여 지금보다 순발력과 지구력을 더 보강하는 수밖에 없다...... 상대보다 공격력이 뒤처지는 수비형 선수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대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순발력과 오래도록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겸비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체력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면 수비형 선수는 절대 초일류 공격수를 이길 수 없다. 2002년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올라간 비결은 세계 그 어느 강팀보다도 강한 체력을 길렀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하라. 선수들 개개인의 볼 트래핑 능력은 유럽 강팀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상대보다 두세 발짝 더 뛸 수 있는 체력을 길렀기에 그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물론, 그 이후의 멍청한 후임자들로 인해 한국 축구는 다시 예전 수준으로 체력이 떨어졌고, 그에 따라 성적도 퇴보하였다. 히딩크가 유일한 해법을 일러주고 떠났는데도 말이지.)...... 지금 대한민국 모든 구기 종목 중에서 배드민턴의 안세영을 능가하는 확실한 승리 보증수표는 없다. 힘들겠지만 계속 정진하며 국민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