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성지를 찾아서
구역 이웃들과 함께 밀양 순교 성지에 갔다. 그곳은 순교자 김범우(토마스)가 묻힌 곳이었다. 그는 중인으로 명례방을 제공하여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집회를 열었다. 그 후 붙잡혀 밀양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로 이벽과 함께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운동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그곳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름길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 14처로 되어 있었다. 일행 14명도 함께 기도를 바치며 올라갔다. 미사 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들어갔다. 성모 동굴 성당이었다. 입구에는 목조 기와집으로 되어 있어 마치 옛날 어느 지체 놓은 양반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박해 시대의 쫓김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신앙을 지켰음을 상징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밖에서는 전혀 성당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순례자와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다.
일행과 함께 김범우의 무덤으로 갔다. 넓은 공간에 파릇한 잔디가 깔려있으며 둘레에는 온통 나무숲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기도를 바치고 기념사진을 담았다. 아래쪽에는 맏물 봉헌이라는 넓적하게 생긴 바윗돌이 제단으로 꾸며져 있었다. 묘의 봉분 앞에는 크고 멋진 소나무 두 그루가 묘를 중심으로 좌·우측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좌측의 소나무가 단풍이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푸른 소나무가 왜 죽었을까
싶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순교자 토마스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환청이 되어 뇌리를 스쳤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이며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고 한다. 그렇다. 200년 전의 그분이 삶과 죽음은 시공간을 달리할 뿐이라며 굳센 믿음을 가지라고 일갈했다.
그 순간 예수께서 제자 시몬 베드로와 야곱과 요셉을 데리고 타볼산으로 올랐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바치겠다고 한 말씀이 떠올랐다. 신약의 베드로가 구약의 모세와 엘리야를 어찌하여 들먹였을까?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이다. 그 말씀은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예수를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서 연결함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하느님의 시간에 비해 우리의 삶은 찰나이다. 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신앙 선조들의 삶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피를 흘렸다고 한다. 우리는 피를 흘리지는 못하지만, 이웃에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며 사는 게 믿음의 삶이 아닐까 싶다. 예수께서도 요한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적그리스도(666)와 싸워 승리자가 되어 새 하늘 새 땅을 차지하라고 했다. 믿음의 길에서 다시금 기울어지는 다림줄을 바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