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27호 만종(晩鍾)
복색화
전남 장성
김기길
만종 일화
1990년 3월 2일에서 4일까지 3일간 대전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한국자생란보존회 대전지회의
제3회 한국란전시회에서
「만종(晩鐘)」이라 이름하는 "여러색꽃(復色花)인 주홍 "갓줄무늬꽃(覆輪復色花)이 뭇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연록색 바탕에 선홍색의 갓줄무늬꽃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꽃에 걸맞지 않게 잎은 약하고 끝이 타는 등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만종을 출품한 분은 김기길부회장이다.
김기길부회장은 얼굴에 주름은 졌으나, 잔잔한 미소와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시골 고향마을에서
자주 대할 수 있는, 친척형 같은 인상을 풍겼다.
난과 더불어 인생이 익으면 저렇게 순진무구한 얼굴이 되는 것일까 하는 부러운느낌마저 들었다.
1986년 가을, 김기길부회장은 젊은 일행 두 사람과 같이 전남 장성군 서삼면 임곡리로 산채를 갔으나
오전 내내 빈손이었다.
무덤가에서 점심식사를 하다 내려다 본 춘란잎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 춘란잎은 연록색의 갓줄무의가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안들은 것
같기도 하여, 시력 좋은 젊은 일행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흐릿한 연두갓줄무의(緣覆輪)는 새측이 나오자 마자
기다리기나 한듯 소멸되어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이를테면 속성소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캘까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두었다.
그런 후 종일 주변을 누볐으나, 허탕이었기로,
'아빠 빈배낭 갖다 걸까요'하는 중학생 아들의 실망에 찬 소리를 번번이 듣던터라,
허탕이나 면하려고 하산길에 다시 그 곳으로 가서 흐릿한 연두갓줄무의를 캤다.
일행 두 사람에게 가져가라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해실해실
웃으며 거들떠 보지도 않던, '보였다 말았다' 하는 그 연두갓줄무늬를 말이다.
그 당시엔 이렇다 할 난실이 없었을 때라 다른 난들은 마루에서 끔찍이 후대를 받았으나,
만종은 얼어죽을 정도의 추위가 아니면 연중 처마 밑에서 얼고 떨고 하면서 우로(雨露)를 받고 살았다.
그랬으니 잎들이 성한게 없을 수 밖에...
작년에 분갈이를 하면서는 '죽었다 살았다' 하는 고난이 계속 되면서 타 들어간 잎과 많이 붙어 있는
백벌브까지 정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정도 난의 퇴촉과 백벌브를 분에다 심는다는 것은 분과 식재가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뉘 알았으랴, 금년 전시회를 앞투고 엄청난 1대의 꽃대를 올릴줄이야.
마치 괄시(恝視)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선홍색의 환상적인 빨강 갓줄무늬꽃이 사람의 넋을 빼앗았다.
난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김기길부회장은 밀레의 만종을 떠 올렸다.
온갖 미진(微塵)을 떨치고 출연히 피어난 한 송이 난꽃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자(聖者)같은, 석양의 들녘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 기울이며 모든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만종의 느낌을 받아 (만종(晩鐘)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김기길부회장은 여태까지의 홀대(忽待)가 미안키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부랴부랴 좋은 분에다 단장을 하고는 전시회에 출품하여 색화부문 은상을 받았다.
각고(刻苦)의 노력끝에 얻어지는 결과가 보람이 있듯이 고난을 딛고 일어선
만종은 그래선지 더 더욱 뭇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난이 이럴진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만종의 백벌브라도 한 개 얻으려는 난우들도 많았으나 '아뿔싸!' 이미 별 볼일 없다고 씨를 말리었으니,
씁쓸한 입맛만 다실 수 밖에...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또 한국자생란보존회 대전지회 회원인 모씨는 장성 근처의 산채 길에서 만난 희미한
연두갓줄무늬(緣覆輪)에서 핀, 약간 붉은끼가 보일락 말락 하는 갓줄무늬꽃(覆輪花)이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아무도 달라는 사람이 없어
그냥 가지고 왔었다.
그런데 다음 해에 핀 갓줄무의꽃이 여러색꽃(復色花)인 빨강 갓줄무늬꽃(紅色覆輪花)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난도
오기(傲氣)가 있는 것일까. 달라진 꽃색에 사람들은 또 껌뻑 죽고‥‥‥‥
그런 일이 있은 후 자생란보존회 대전지회 K회장은 연두갓줄무늬(緣覆輪)에 미쳐(?)
그것만 찾는다고 하는데 예전엔 흔하기도 하고
그냥 주어도 가져가지 않겠다던 연두갓줄무늬가 구경하기 조차 힘들다고 한다.
아무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연히 온라인에 선생님글이 있어 복사했습니다.
첫댓글 복색화 좋아요 꽃 확인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