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보문동 산79~2 낭산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로서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의식에 의해 여왕이 되었다.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여왕이 죽거든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이해를 못하자 여왕이 직접 도리천이 낭산(狼山) 정상이라 알려주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문화재청자료에서...
신라 제 27대 왕 선덕여왕(善德女王) 陵
그는 덕만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선덕여왕 릉 가는 길목에 사천왕 터가 철조망으로 둘러체인채 발굴중임
농토 수리시설인지 아니면? 이 물길이 신라시대 때는 도리천인지 ?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신라시대 선덕여왕의 릉으로 가는 입구의 나무계단 .
2012년 7월 땡볕을 벗삼아 지금도 여왕속에 살고 있지만 경주 낭산으로 신라 최초 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핏줄로 이어지는 아버지 진평왕이 아들이 없자,신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대단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7번 국도 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이날은 신랑이 동행을 해주어 앞전보다 편하게 답사를 했고 대부분 산속 깊이 릉이 있어 두려울때도 참 많습니다.
선덕여왕이 드라마에서는 화려하고 거창한 이미지로 연기를 부상 했으나 실상은 아니었다,
인물의 비중에 비해 설명이 빈약했고,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마지막 신에서 1억짜리 옷을 입고 연기를 했지만, 선덕여왕릉이 관리 소홀로 방치되고 있는 듯 보였다.
릉의 입구는 알림판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엇지만, 陵 까지는 산길로 꽤 먼거리인데 중간쯤에 산속에서 3갈래 길에 이정표가 없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인적도 전혀없는 산속에 혼자서 이길인가? 저길인가? 헤메였던 그날의 일은 지금도 섬짓하다.
관계자님 산속 3갈래 길에 이정표를 바란다.
첫댓글 자료 올리는중
인적도 없는 선덕여왕릉에 혼자갔을 때 산속을 헤메다가 릉에 들어서니 구세주 같은 신혼부부가 있어서 한숨을 내쉬고
인증사진도 부탁하고, 자료 다 찍을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해서 같이 나왔는데 이럴수가!!!!!!
친정이 나주동신대학교 앞이란다...... 그 고향 신혼부부가 경주 터미널까지 절 데려다 주었습니다..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좋은일을 하니 천운이 따르는 듯합니다 훌륭한 여행하시고 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