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能淨業障分
또한 보리수야!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 독송하면서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당한다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져야 하지만 금생에 멸시를 당했기 때문에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고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수보리야! 내가 생각해보니 과거 무량아승지겁, 연등불을 뵙기 전에도 팔백사천만억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후 말세에 이 경을 수지 독송하여 얻는 공덕에 비하면 내가 여러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이나 천 만 억분의 일내지 언떤 산수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수보리야! 선남자선여인이 이후 말세에 이 경을 수지 독송하여 얻은 공덕을 내가 다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산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야! 이 경은 뜻도 불가사의하며 과보도 불가사의함을 알아야한다.
(이 경을 수지 독송하여 체득하는 반야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지혜이기 때문에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으므로 어떤 공덕보다 뛰어납니다. 반야지혜는 분별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뜻과 과보가 불가사의하다고 합니다)
2016-07-10 철원 심원사
장마철에 반짝 해가 들었다. 산뜻한 아침 먼길을 달려 철원땅에 내렸다. 심원사 앞 뜰의 백련이 객을 반긴다.
●연혁 및 설화
647(진덕여왕) 영원스님, 영주산 흥림사 창건
859(헌강왕) 범일국사 재창, 천불 봉안
1393(태조) 화재로 소실
1396(태조) 무학대사, 3창 보개산 심원사로 개칭
1592(선조) 임진왜란으로 소실
1595(선조) 인숭 정인스님, 4창
그 후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소요 태능 제월 경헌 등 수많은 선승 학승이 주석 정진
천불전 등 250여칸의 건물과 1702위의 불상을 봉안, 호국불교의 대가람으로 발전
1907(순종) 300명의 의병전쟁시 일제가 소각
1909 주지 유연수 스님이 5창
1950 한국전쟁으로 소실. 전쟁후 민통선 출입통제
1955 김상기 김상수 스님, 보개산 서쪽 연천 신서면(1963이전 철원 외서면)에서 동쪽 철원 현재 위치로 이건 중창
명주전에 봉안된 석대암에서 옮겨온 ‘지장보살좌상’으로 인해 지장보살이 상주하는 도량, 즉 ‘생지장기도도량’으로 불림.
도솔암 개심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지장 기도 도량.
▶충렬왕 33년(1307) 민지가 쓴 '보개산석대기'
옛날 사냥꾼 이순석 순득 형제가 한 마리의 금빛 멧돼지를 보고 활을 쏘았다. 붉은 피를 흘리고 달아난 흔적이 있어 쫓아가니 환희봉 쪽으로 간 것이다. 두 사람이 그 뒤를 추적하여 멈추어 바라보니 금빛 멧돼지는 볼 수 없고 단지 석상만이 보였다.
석상은 샘물 가운데에 머리만 나와 있고 그 몸은 샘물 속에 감추었는데 좌측 어깨에 순석이 쏜 화살이 꽂혀 있었다. 두 사람은 크게 놀라 화살을 석상의 몸에서 뽑으려고 하였으나 석상은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연실색하여 맹세하기를, ‘대성이시여,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주십시오. 우리들을 이 세상의 죄에서 구제해주시려고 몸을 바꾸어 나타내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만약 내일 이 샘물 곁에 있는 돌 위에 나타나 주시면 출가수도하겠나이다.’하고 물러 났다. 다음날 다시 그곳으로 와서 보니 석상이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곧 출가수도하니 이 때가 당 개원 8년(720)이었다.
그들은 300여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이 암자를 창건한 후 숲 속에서 수도하면서 돌을 모아 대를 쌓고 그 위에 항상 앉아 정진하였으므로 석대라 이름하였다. 그 후 두 사람은 득도후 열반 승천했다 한다.
금강경백팔배
점심공양. 가는날이 제사날이라 너무 잘 먹었다.
대웅전
극락보전
삼성각
▶기도빨 쎈 곳 ‘명주전 지장보살좌상’
한국전쟁으로 석대암은 폐허가 됐지만 심원사 김상기 김상수 스님이 심원사를 철원으로 이건하면서 지장보살좌상도 함께 모시게 됐다. 현재 명주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상은 그때 멧돼지로 변신한 지장보살님이시며, 예부터 생지장보살님 전에 열심히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1948 이전 석대암 인법당에 있다 한동안 행방불명되었다가 김상기스님이 서울에서 찾았다고하나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증언하는 이도 있다. 지장보살 좌상이 조선시대 양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명주전은 연천 심원사 천불전의 기둥 도리 등 부재를 옮겨 세웠다. 명주전 현판은 퇴경 권상로의 글씨이다. 동국대 초대총장 조계종원로원장을 지낸 권상로는 친일활동을 한 불교학자이자 승려였다.
※2010년 보개산 원심원사 방문시 전 해인사 주지 세민 스님께서 복원 불사중이었다.
입구에 부도밭이 있고 조금 오르면 천불전 명부전의 초석이 있고 터를 닦고 있었다.
원심원사에서 1시간 반도 넘게 길도 희미한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보개산 지장봉 아래 석대암터가 있었다.
수조 샘터 샘 축대 돌탑 비석 등이 있었다. 보개산에는 환희봉은 없고 지장봉 화인봉이 있다. 동네 사람들에 의하면 보개산 정상이나 지장봉이 환희봉이라고 한다.
범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