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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1)
- 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
**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
제목: 위로와 소망
찬송: 539, 545
성구: 살후 2:16-17
1. 이별이 주는 선물
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삶 자체에 대해 별 의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아픈 마음을 들어 주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에 다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말도 해주지를 못했습니다. 세월이 약임을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인간의 헤어짐은 새로운 소망을 향한 출발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아픔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2.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죽음’의 문제로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불확실한 성도가 있었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들도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의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을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당신을 구하셨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정도로 존귀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당신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하늘로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는 상담자, 위로자, 변호자를 의미합니다. 당신을 위로하시고 상담하실 분,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께 당신의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당신의 생애 속에 아무런 낙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주님은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둘째로 당신을 굳게 세워 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될 때 당신을 붙잡아 주실 분,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당신이 실망될 때 당신을 든든히 지키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당신을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 영원한 위로와 소망
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추거나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허전함이 느낍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000님에게 하늘로부터 말미암는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굳게 세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둔 가족들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000님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영원한 소망의 줄을 잡고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슬픔 가운데 머리 숙인 우리를 능히 굳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질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선한 싸움을 위해 질주할 뿐입니다.
오늘 임종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십자가 그늘 아래서 위로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운명 전 예배 설교(돌아가실 분이 믿음이 없는 경우)
제목: 인생의 종말
찬송: 534, 539
성구: 창 49:28-30
인생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한 한정적인 존재입니다. 태어났다가 때가 이르면 죽고마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 지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을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곧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생이 아닌 죽음이 다가옴으로 인해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 사실입니다.
1. 죽음의 의의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도 존재의 사라져버림도 아닌 분리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본체이신하나님과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범죄하면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겔18:4).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이 곧 영혼의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육체가 영혼과 분리될 때 육체만 남게 됩니다. 영혼이 떠난 몸은 부패되고 썩어버립니다. 야고보서 2: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대심판대 앞에서 주를 밎지 않던 불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끝도 없는 세월 동안 단절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 속에서 영육이 다같이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2. 사후 상태
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로 그 상태를 성경은 보여줍니다. 첫째, 일반적인 상태인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멸하지 않는 생을 가지며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둘째, 신자의 상태를 보면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립니다(히 12:23, 고후 5:1,6). 셋째, 불신자의 상태인데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고통과 어두운 가운데서 대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서 능욕을 당하기 위해 부활하게 됩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좋은 세계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세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최후를 장식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최종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영원토록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부름을 받는 날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000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000님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000님과 가족 여러분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 천국의 소망이 든든한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임종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
제목: 영원한 세계
찬송: 291, 295
성구: 고후 5:8-9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고 000(직분)님께서 0일 0시 0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000(직분)님께서 살아 생젼에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는지. 믿음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눈물과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00년간 병석에 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000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자녀들이 믿음 위에 서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이제는 000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유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바울 사도의 소원
사람들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몸을 떠나가서 주님을 만나 뵈옵는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000님께서도 바울과 같이 속히 육신을 떠나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소망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몸 안에 거하든지 또는 떠나든지 간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이 세상을 떠나, 몸을 떠나 주님을 만나는 것을 고대하였을까요?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이 세상에는 없는 참된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000님께서도 이제는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서, 슬픔 많은 이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아픔과 고통이 없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줄 믿습니다.
2. 성도들의 소원
누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선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어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000님은 예수를 믿어 이미 저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그분이 그렇게 소원하시던 것과 같이 주님과 더불어 이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 000님의 시신 앞에서 자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떠난다 하여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계시는 고 000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까? 이 소망이 여러분들의 변치 않는 영원한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 000님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과 역경 중에서 고달픈 생활과 무거운 짐을 지고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쉬라 하시매 이 모든 무거운 것과 짐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 안식의 세계에, 행복의 세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세계, 천군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는 세계를 바라보시면서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누리는 유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임종예배 설교(믿지 않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
제목: 영원한 장막
찬송: 187, 188
성구: 고후 5:1-5
우리는 나그네 인생들입니다. 누구든지 이 장막집에서 영원토록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그네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인생들입니다. 자녀들이 휴가를 받아서 텐트를 들고 경치 좋은 바닷가에 며칠지냅니다. 그런데 거기서 영원토록 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육신의 장막집은 언젠가는 무너질 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흙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 지으신 장막집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데, 만약 우리 인생이 그렇다면 우리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선악을 판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그네 인생을 잘 살아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천국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둘러 앉은 유족들에게 저는 목사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남은 날이 얼마일런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아도 믿음으로 준비하며, 우리도 우리의 장막집을 벗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소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2-3절 말씀에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리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2.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
사람의 몸은 흙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의 생명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날이 한 번 불어 흔적도 없어지는 바람 같고 공중에 쏘아서 금방 보이지 않게 되는 살과도 같습니다. 해가 오르면 말라서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가야합니다. 죽음의 길을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같이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귀한 유족들의 영혼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아버지 집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라건대 사랑하는 유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모든 이웃들에게도 지금 바로 이 위로가 함께하사 과도한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이라는 형벌을 주신 대신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천국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만이 이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명예로 집을 짓고 어떤 이는 돈으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이는 힘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지은 집은 육체가 죽는 그 순간에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돈을 쌓아 놓고 이제 잘 살아보자고 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를 얻어 놓고 그 다음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지은 집은 영원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모든 유족들이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훗날 아버지 집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