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루[淸虛樓]와 빙허루[憑虛樓] /白頭翁/강원대학교 삼척켐퍼스 토4회 cafe.daum.net/samcheoku
청허루[淸虛樓]와 빙허루[憑虛樓],| ♣┣━━회원회고록━┫
白頭翁 | 2009.03.29. 08:07
자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우리네 조상들은 옛부터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면서 경치가 좋은 곳에는 으례이 정자가 아니면 이층으로 된 누각과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곳에는 대라고 하는 이름으로 누, 정, 대가 자리를 하게 되는 모습으로 누와 정, 그리고 대는 옛부터 우리조상들이 자연을 즐기고, 풍류를 알게 하는 조상들의 유물이고, 유적이다.
송강 정철 선생이 강원도 관칠사를 역임하고, 관동팔백리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고, 이름다운 경치를 읊게 되는 관동별곡도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이름난 여덟곳을 팔경으로 정하게 되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관동팔경은 동해안의 이름난 여덟 곳으로서 이를 하루에 한곳씩 돌아보기에 적당한 곳으로서 백여리 마다 한곳씩 정하게 되고, 이름도 누가 아니면 대가 되고 정이 되는 실정으로 북쪽에서부터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의상대,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으로, 절반이나 되는 대부분이 정자로 이루어지게 되는 모습으로 누와 정은 이층으로 된 누각이냐, 아니냐를 두고, 구분을 하게 되지만 현대에 외서는 구분이 모호해지는 모습으로 종래에 붙게 되는 이름으로만 구분이 되는 실정이다.
경포대와 죽서루는 누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구조로 주변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구조로서 누와 대로 이름을 얻게 되고, 정자가 가장 많은 것은 일대의 경치가 좋고, 풍류객들이 많이 찾게 되는 곳이 정자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을마다 동헌에 가까운 곳에 지방의 목민관들이 독서를 하고, 여가를 보내기 위한 곳으로서 봄과 가을에는 시회를 열고, 기생을 불러서 가무음곡을 하던 곳으로서 지금도 전국의 곳곳에는 이름을 알리게 되는 루각이 많이 있으니, 평양의 대동강을 굽어보며 지어진 부벽루, 경복궁안의 군신이 외국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베풀던 경회루, 창덕궁 경내에 있는 왕실의 휴식공간인 주합루, 남원의 춘양전의 무대로 이도령과 성춘향의 굳은 절개로 장래를 약속한 광한루, 의기 논개가 적장을 둘씩이나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진주의 촉석루,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파천을 하고, 잠시 기거를 한 곳으로 알려진 안동의 영호루의 현판은 공민왕의 몇 안 되는 친필이라는 사실로 유명한 안동의 영호루, 아랑의 정조로 알려진 밀양의 영남루는 영남제일루라고 하는 현판을 달고 있는 모습에 이를 한번씩 보게 되는 사람들은 힘 있게 달필로 쓰여진 글씨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하고, 밀양아리랑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는 아랑의 정조를 기리게 되는 아랑각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강원도에서는 춘천의 봉의산 자락에 있는 소양루, 원주에는 감영의 옛터에 선화당과 포정루, 강릉에는 임영관, 삼척에는 동헌인 칠분당의 서편이 되고, 옛 죽죽선녀의 전설을 안고 있는 죽서루가 대표적인 누각으로 지금까지 이름과 함께 유적이 전해지고 있으며, 옛부터 전해오게 되는 이름난 사찰의 정문은 거의 모두가 누각으로 지어지게 되는 구조로 누구든지 부처님이 상주를 하게 되는 도량에 들어가게 되면
먼저 머리를 숙이게 하느라고 누각으로 된 구조에 정문을 누각 밑으로 통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누각을 지나려면 고개를 숙이게 되고, 법당을 바라보면서 합장을 하도록 건축물의 구조를 만들고, 누각의 이름이 있으나 달을 맞이한다고 하는 망월루니, 누각에서 밝은 달을 음미하게 되는 명월루니 하는 이름으로 초하루와 보름에는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리게 되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게 하고 있다.
동막에 있는 천년고찰인 신흥사에 이르게 되면 학소루라고 하는 이름으로 지어진 누각 밑으로 통하여 정면에 있는 대웅전을 맞이하게 되는 구조로 좌우에는 칼을 찾아야 한다는 삼검당과 부처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설선당이 있으니 이를 잘 알게 하고 있다,
영월을 두고, 충절의 고장이라고 하는 이름을 낳게 한 역시적인 사실은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폐위된 노산군이 쳥령포에 위리안치되고, 최후를 영월에서 마쳐야 하는 실정으로 충신은 불사이군이라고 하는 공맹의 가르침을 실천을 하게 되는 초야에 묻힌 많은 사대부들의 후예가 많이 거주를 하게 되고,이들이 단종을 섬기게 되는 충절을 두고, 영월이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영월로 가게 되는 길목에 주천이라고 하는 지방이 있으니 지금은 영월군 주천면의 소재지로 옛날에는 주천현으로 현감이 다스리던 고을이었으니 관아가 있고,빙 허루와 청허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없어진 빙허루는 얼마 전에 지역의 국회의원의 협조로 복원이 되었으나 청허루는 아직 복원이 되지 못하고,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주천이라고 하는 자명이 붙게 된 재미있는 전설로 옛날에 샘에서 술이 나온다고 하여 사대부인 양반이 가면 맑은 술인 청주가 나오고, 상민이 가게 되면 탁주라고 하는 막걸리가 나오는 샘이 있었다 하여 술이 나오는 샘이라고 하여 주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주천에는 주변의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서 수십년이나 자란 낙엽송의 숲에는 그림같은 정자가 누워있으니 빙허루로서 정자가 지어진 망산 정상에는 이층으로 된 누각에 숙종과 영조, 정조대왕의 어제시가 남아있으니 주천은 옛부터 조정에 알려진 유서 깊은 고을임을 알게 한다.
주천을 우리말로 하게 되면 술샘이라는 뜻으로 조선조 중엽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술이 샘솟아 니왔다는 주천석에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고구려시대부터 주천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옛날에는 신기하게도 망산의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양반이 와서 물을 뜨면 약주가 나오고, 천민이 오면 탁주가 나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한 천민이 양반 복장으로 가장을 하고, 약주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기다리던 약주는 나오지 읺고, 평소와 같이 탁주가 나오자 화가 난 천민이 샘을 부순 다음부터는 맑고 찬 샘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방허루가 복원이 된 망산은 해발 364m의 얕은 산으로 주천면 남쪽 강가에 있다.
망산 밑에는 옛부터 주천을 빛낸 인물들의 선덕비가 있는 비석거리가 있는데 이 비석을 끼고 내려가면 예전에는 별모양의 커다란 암반이 있고, 그 암반의 틈에서 샘이 솟았다고 한다. 주천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역사적 장소라 하기에는 초라하고, 너무 소흘히 관리되고 있어 안타까운 곳이다.
박물관이 많은 고장으로 알려진 영월에는 여러가지 박믈관이 속속 문을 열게 되고, 주천에 술샘박물관이 올해에 착공을 하게 된다고 하는 데는 술이 나온다고 하는 주천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술샘박물관에는 전통주 생산지[더덕주,복분자주,머루주]로서 지역의 전통과 특색에 맞는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에 따라 적절한 착안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영월은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는 박물관의 고을로 자리매김한 상태라 술샘박물관이 또 하나의 박물관 명소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주천의 명물 섶다리는 겨울을 이기고, 차갑고 투명한 강물위에 다정한 그림으로 나그네를 맞이하기에 바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봄이 왔음을 알리기라고 하듯이 섶다리의 다리사이를 오가며, 춘심이 발동하여 짝을 찾기에 바쁘다.
주위에는 수령 수십년을 자랑하는 낙엽송과 잣나무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낙엽송은 푸른 새싹을 틔우기 바쁘고,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긴 잣나무와 소나무는 만고상청하는 모습으로 매죽당의 시조에 등장을 하게 되는 독야청청으로 푸르름을 잊지 않고 있다.
망산 정상에는 빙허루라고 하는 아담한 2층 누각으로 정면3칸 측면 두 칸의 전형적인 정자의 모습으로 네 귀퉁이는 하늘을 향해서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유서 깊은 누각임을 알게 한다.
원래의 누각이 자리한 곳은 주천현의 객사 서족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의 누각은 1986년도에 국회의원 심모의원과 안모군수에 의해 복원이 된 것으로 빙허루재건기에 소상하게 기록이 되었으니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빙허루와 청허루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는 원래 청허루가 있었던 곳으로서 청허루가 아니고 빙허루가 복원이 된 모습에서 아마도 주천에는 빙허루가 먼저 지어지고, 주천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빙허루가 지어지고, 청허루는 보조적인 누각으로 뒤를 잇게 되지 읺았나 하는 생각으로 어느 독지가가 청허루를 마져 복원을 했으면 하는게 주민들의 기대라고 한다. 빙허루에는 조정에서 하사를 하게 된 숙종과 영조, 정조의 어제시문과 어필이 있었으니 훼손이 되고, 지금은 복제를 한 게판[偈版]을 붙였다고 한다.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의 태실지처가 있는데 숲가꾸기로 말끔하게 정비를 한 모습으로 주천의 새로운 명소임을 알게 한다.
주천을 대표할 수 있는 빙허루와 청허루도 완벽하게 복원을 하고, 술이 나왔다고 하는 술샘인 주천도 술이 다시 나오도록 복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나,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불가능 하니, 흔적만이라도 알리게 하는 모습으로 복원을 하고, 지금 전국적으로 주천을 알리게 하는 주천의 다하누촌의 한우가 실비에 정통한우임을 알게 하는 다하누의 명성으로 주천은 전국에 알려지게 되는 유명세로 추천을 찾게 되는 국민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으니 언젠가는 빙허루와 청허루가 마주하는 사이에서 다하누촌의 한우맛을 즐기며, 웰빙에 일조를 하게 되는 삶이 영위될 것이다.
충절의 고장 영월에서 조상들의 삶의 발자취를 살피게 되는 많은 박물관을 돌아보고, 주천에서 술이 나오는 샘에서 비록 술은 나오지 않지만 땅소주라고 하는 냉수를 술로 생각하고 주천을 돌아볼 수 있는 게기를 만들어 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