見ててください 出直しますと 花はけなげな 雪中花
지켜봐 주세요 다시 시작 한다고 꽃은 기특한 설중화
やさしい母の 笑顔がさいてます
다정한 엄마의 웃는얼굴 피어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서민들이 즐겨부르는 대중가요 '트롯'이 있고, 일본에는 이와 비슷한 '엔가'(演歌)가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트롯 형 대중가요를 가르겨 '일본 엔가의 亞流'라고 비하 하기도 하나, 역사적으로 봐도 트롯은 트롯, 엔가는 엔가로,
그 시대적 발상이 다르며, 양 국민의 독특한 문화정서를 따라 뱔생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원래 트롯 리즘은 1914년 미국에서 발생한것이라고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의 대중가요 트롯은 일제의 강압에 의한 '한일 합방'(1910년)이후의 산물이며, 일본의 엔가는 엔가의 天皇격인 작곡가 '古賀 政男(고가 마사오)'가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가요형식이라고도 말한다. '고가'씨는 1904년 생으로,1912년 仁川으로 이주하여, 1922년 善隣상고를 졸업하는 등 다분히
한국적 정서에 익숙해 있은데가 그 정서에서 발생한 엔가이고 보니 이모 저모 비슷한 점은 있을 법 하다.
하지만 한국의 토롯을 '일본 엔가의 亞流'라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않은 것 같다. 더 이상의 이런 저런 역사적
고찰은 전문가에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오늘의 우리 트롯 가요와 일본의 엔가를 한번 단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우리 대중가요 트롯은 가수들의 노래 실력이나 작곡의 수준으로는 일본에 조금도 뒤지지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歌詞는
저질"이라고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사를 한번 비교해 볼까... 엔가 가사는 대부분 현역 詩人들이 만들어, 가사 자체가
情感과 감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않다. '엔가'가 우리나라 판소리의 '西便制'라면, '토롯트'는 東便制'라 할까...
트롯의 경우는 엔가에 비해 대체로 '애절한 情感'이 약한 편. 이 점은 우리나라 대중가요 작사를 시인들이 "천하다"며
외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요 제작자들이 처음서부터 시인들을 배제하기 때문인지는 알길이 없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
가령 엔가의 '유노 마치(온천마을)엘레지'는 그 가사가 한편의 敍情詩 같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는 말도 안되는 저속한 가사가 많다. 그 대표적인 가사 를 예로 들어보자.
가수 최희준이 부른 노래 가사 중에 " ,,,도대체 눈물이 뭐 말라죽은거냐,,," 는 표현이 있다.
대중이 이런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겠는가. 더 치졸한 것도 있다. "...키쓰 해주세요. 앞 잇빨이
쏙 빠지도록,,," , ",,,껴안아 주세요,
갈비뼈가 부르지도록..."- 이런 건 대중가요의 가사가 아니라, 뒷골목의 망나니 깡패들이 쓰는 비속어
수준이다, ( 어법 어휘가 안맞는 가사는 차치하고...)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시인들은 대중가요 作詞를 외면하지 않아야하고, 가요 제작자 또한 시인들을
작사 작업에 적극 끌어들여야 할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K-pop 등 韓流가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재주가 대중가요에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