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독일,헝가리영화, 장르:멜로드라마 재개봉:2016.11.03.(2000.10.21.)
감독:롤프 슈벨(Rolf Schubel), 관객:10,926명(2016.11.06.현재)
원작:닉 바르코(Nick Barkow), 제작:리차드 숍스(Richard Schöps)
주연:조아킴 크롤(Joachim), 스테파노 디오니시(Stefano Dionisi), 벤 베커(Ben Becker), 에리카 마로잔(Erika Marozsan)
1999년 가을, 독일인 사업가 “한스”(벤 베커역)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고급 레스토랑를 찾는다 그 옛날 추억의 사건이 멈춘 레스토랑에서 80세의 생일을 축하하는 곡으로 “글루미 선데이”를 신청한다 아름다운 선율이 레스토랑에 울려 퍼지고 한스는 피아노위에 놓여있는 한 여인의 사진에 시선이 고정된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글루미 선데이의 저주가 시작되었을까? 한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진주목걸이를 쥐어 잡으며 그대로 쓰러져 버린다 이 때, 들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비명스럽게 울려 퍼지며 레스토랑을 혼란에 빠뜨린다 “글루미 선데이!!! 그 저주의 노래야!!”
193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은 1년 365일 문을 닫지 않는 자보의 자랑거리다 젠틀하고 교양있는 신사 “자보”(조아킴 크롤역)와 그의 연인이자 자유로운 신 여성 “일로나”(에리카 마로잔역)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에는 피아노가 있다 새로운 피아니스트를 선발하는 오디션에 가장 늦게 온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역)는 일로나와 마주치는 순간 사랑의 감정이 밀려온다 유럽사회가 갖는 또다른 특징은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이성과 사랑을 쉽게 가진다는 것이다 일로나 또한 그런 여자다 그렇다고 정조없이 휘두르는 창녀는 아니다 그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것일 뿐이다
한스와 일로나가 욕조에 앉아 마주보고 있다 서로는 친절한 사랑을 나누며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이제 갓 들어온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의 연주는 여성을 매혹시키는 마력이 있다 자보의 레스토랑을 어김없이 찾는 또 한명의 남자, 그는 독일 최대의 사업가를 꿈꾸는 한스다 아름다운 매력의 소유자 일로나를 놓고 자보와 한스와 안드라스는 이렇게 경쟁아닌 경쟁의 위치에 있다
레스토랑의 모든 일과가 끝난 시간, 거리는 짙은 어둠에 깔려있고 자보와 일로나, 한스와 안드라스가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걷고 있다 자보와 안드라스가 거래관계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스는 일로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청혼을 한다 잠시 머뭇거리던 일로나는 거절의사를 비추며 안드라스와 함께 어디론가 걸어간다 부다페스트를 가로 지르는 도나우 강변에 서 있는 자보와 한스는 외로움을 달래고 그들 또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 순간 실연에 빠진 한스가 도나우강에 투신을 하고 자보가 그를 구하러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가까스로 구출한 자보와 한스는 친구가 된다
한편, 안드라스의 집을 찾은 일로나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키스의 물결속에 두사람은 짙은 사랑을 나누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깊어만 간다 다음날 아침 안드라스의 집에서 늦잠을 청하던 일로나는 커피 끓는 소리에 잠을 깬다 옆집에 설탕을 빌리러 갈 정도로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안드라스는 일로나를 위해 피아노 연주곡을 만든다 “글루미 선데이”, 일로나를 위해 작곡한 이 연주곡은 헝가리를 넘어 전 유럽을 석권하며 레코드시장을 점령해 나간다 자보의 레스토랑은 이제 사람들로 북적대며 품격있는 관광명소로 발돋움 한다
안드라스를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로나는 동시에 자보도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일로나의 이러한 이상한 사랑을 받아들인 것은 두 남자도 마찬가지다 일로나는 안드라스와 자보를 동시에 탐닉하는 이해할수 없는 애정관계를 이루며 러브 트라이앵글을 질서있게 유지해 나간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가 나치의 통치하에 들어갔을 때, 레스토랑을 찾은 것은 한스였다 그는 독일군 대령이라는 직함으로 화려하게 등장하며 일로나를 다시 찾은 것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계획의 일환으로 헝가리에 입성한 한스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물질만능의 퇴폐군인이었다 그는 그의 권력으로 일로나의 몸을 정복하고 싶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간다 안드라스의 활약으로 자보의 레스토랑도 성장해 가지만 한스의 등장으로 불길한 예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한편 안드라스의 글루미 선데이로 다섯명이 자살을 하는 등 문제점이 계속해서 등장하였다 자살 미수에 그친 한스가 그랬고 화가와 레스토랑을 찾은 여인들이 하나씩 자살을 결행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자괴감에 빠진 안드라스는 깊은 고뇌에 사로 잡히는 등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편 유대인이었던 자보는 한스의 그물에 걸려 들어있다 사랑하는 자보를 구하기 위한 일로나는 한스를 찾아가서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돌아서 나오지만 안드라스의 오해로 가슴이 아프다 안드라스의 흥행으로 새로운 음반이 출시될 무렵 자보와 일로나와 안드라스는 공원을 찾았다 도나우 강변을 중심으로 펼쳐진 러브 트라이앵글은 아름답게 보이기 보다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나치 치하의 헝가리 정국은 만만치 않다 한스는 자보를 도와주는 척 하며 돈벌이에만 몰입되어 있다 일로나에게 독일의 거부가 되겠다던 그의 계획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 생명담보 사업이라는 추악함이었다 자신의 생명과 유대인의 생명이 걸려 있는 풍전등화속에서 자보는 한스의 부를 축적하는데 일조하며 많은 유대인의 생명을 구해 내지만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일로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안드라스는 여전히 피아노 연주에 골몰해 있다 한스와 함께 자보의 레스토랑을 찾은 독일군 대령(안드라스 발린트역)은 유대인 자보에게 부상을 입히며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던 다혈질이었다 그와 함께 등장한 레스토랑에는 긴장감이 맴돌고 한스의 명령으로 자보는 재담을 들려주며 그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때마침 한스는 안드라스에게 글루미 선데이 연주를 명하고 안드라스는 수많은 자살자들로 인하여 망설이고 있다 한스의 권총이 옆구리에 채워져 있고 레스토랑은 일시에 침묵이 맴돌고 있다 일로나가 글루미 선데이의 노래를 부르자 안드라스가 연주를 시작하고 레스토랑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연주가 끝나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안드라스는 한스의 권총을 빼앗아 자살을 결행해 버렸다
사랑하는 안드라스를 잃은 일로나는 괴로움에 빠져있다 한스가 자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에 빠져있던 자보는 모든 재산을 일로나에게 일임하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갈 무렵 독일군에 의해 긴급 체포된다 같은 시간 한스는 자신이 축적한 재산을 관에 실은 상태에서 독일로 이송하며 일로나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위험직면에 빠진 일로나가 자신을 반드시 찾아 올것이라는 확신을 한 것이다 일로나가 자보를 구하기 위하여 한스를 찾았을 때 작전사령부는 이사를 가고 난 뒤였다 그러나 한스의 집무실에는 한스가 일로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스는 일로나를 정복하고 싶은 욕망이 자신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일 뿐 자보를 구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 일로나는 지금 사랑하는 자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버리고 있다 그녀의 몸이 엉망이 된 듯 어느것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위해 남겨준 독약을 자신이 자살하는 것에 사용하지 않았다
독일은 패전하고 헝가리는 독립이 되었다 그리고 60년 후, 한스는 독일의 성공적인 사업가로서 이 레스토랑을 다시 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완전범죄였을까? 레스토랑의 주방에는 세월속에 주름이 새겨진 노년의 일로나가 서 있다 사랑하는 안드라스와 자보를 앗아간 한스에 대한 복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만삭이 된 일로나의 배에는 누구의 아들이 들어 있었을까? 기분이 좋은 날 그녀는 자보의 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음악에 취하거나 우울할때는 안드라스의 아이라고 말하고 기분이 나쁠때에는 한스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결국 그를 임신시킨 주인공은 그저 베일에 가려져 관객의 몫으로 던져 놓았을 뿐이다
“글루미 선데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찬가”라는 익명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간 전설적인 노래다 레코드 출시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자살했고 정부는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선정하였다 1936년 4월30일, 프랑스 파리 레이 벤추라 오케스트라 콘서트 현장에서 글루미 선데이 드럼 연주자가 음악에 취해 권총자살을 하였고 작곡가인 “레조 세레스”도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보아야만 할까? 유럽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성적 관계를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생명을 살리는 노래가 아니라 죽음을 부르는 노래를 미화시키려는 의도 또한 얼마나 위험한가?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2000년에 이어 또다시 재개봉을 하였는지 알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영화속에서 드러나는 세상의 움직임과 반응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사랑을 중심으로 두 개의 몸짓이 가능하다면 그리스도는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영화가 죽음을 미화시킨 부분이 없었다 하더라고 그 곡이 분명 자살의 저주를 가져왔다면 복음과 찬송과 반대되는 악의 요소가 충분하였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정 반대의 위치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경험했다 그것이 가지는 결론이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에도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