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이란? 우리의 전통 속에서 민초들의 삶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주술형태로 질병의 치료는
물론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해 온 행위이다.
흔히들 미신이라 치부하며 외면시하는 경향이 강하나 역사적으로 조선이 건국하면서도 고려 때부터
있던 성수청(星宿廳: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한가인’이 성수청 무당이지요 ^^)에 국무(國巫)를
두고 나라의 기은(祈恩: 왕가의 복을 빌던 행사), 기청(祈晴)제ㆍ기우(祈雨)제 등을 위하여 공식적인
의식을 전담하여 왔다.
성종 이후 끊임없이 성수청과 국무당의 존폐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
부터 병자와 빈자를 수용하는 활인서를 동과 서 두 곳에 두고 무격(巫覡)으로 하여금 그들을 치료케
하거나 빈자를 돌보아 주게 하였다. 즉 무당은 의사의 신분이었던 것이다.
또한 한양의 모든 관아에는 부속건물로 부군당(府君堂)을 두어 신임관리는 반드시 이곳에서 부임
인사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것이 18~19세기에 이르러서는 한강유역 인근과 지방관아에까지
부군당(= 부근당, 부군묘, 부군사)이 설치되어 지역적 범위가 대폭으로 넓어졌다.
-> 혜원 신윤복 ; 무녀신무 (1805년作) 간송미술관 소장
무당이란? Shaman(즉, 신령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재자)로 예언기능과 치료기능도 가지고 있으며
보통 무(巫: 무당, 의사)는 여성을 지칭하고, 남자는 격(覡: 박수, 남자무당)이라 하나 통상 무당,
무격, 단골, 심방이로 부르며 남자 무당은 박수(博數= 박사)라 하였다.
무당이 되는 경우는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뉘는데 지역적으로 이북에는 대개가
강신무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병(巫病= 神病)을 앓고 신(神)내림을 받는다.
즉 몸에 들어온 신령을 모시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신어미(神母)를 통해 내림굿을 받고나서 무당이
되는 것이다. 한편 38선 이남지역에서는 주로 세습무라 하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이 무당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받으면서 저절로 무당이 되는 경우이다.
-> 인왕산 국사당 및 기자암 선바위( 무학대사 신당으로 서울 무속의 집결처이다.)
※국사당은 1925년 일본인이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하자 해체하여 지금의 자리에 복원한 것이다.
현재 국사당 내 17점의 무신도(중요민속자료 17호)가 있다.
전국에 있는 토속신앙의 신주(神主) 가운데 가장 많이 신앙되고 있는 신주로는 신라 경순왕과 고려
공민왕, 최영 장군 그리고 조선의 단종비 송씨부인, 남이 장군, 임경업 장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모두의 영혼들은 생전의 그 원한 때문에 완전히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한이 크면 공감도 크고 공감이 크면 신앙도 따라서 매우 커지는 것이다.
한국인은 원한에 대한 공감으로 한(恨)맺힌 인물에 대한 민중적인 동정심에서 그를 토속신으로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습속이 토착되어 원한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짓고 모시는 것이다.
고려 최영 장군과 조선조 남이 장군은 굳은 절개과 억울한 죽음으로 인하여 토속신앙에서 숭배 대상
으로 가장 많이 모셔지는 신령들이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들의 원혼을 민초들이 위로하기 위해 신앙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 최영장군 도당제( 현재 황해도 무형문화재 5호)
개성 동남쪽 10여리 밖의 덕물산(= 덕적산) 산상에 사당이 있었고 사당 내에는 흙으로 빚은 장군의
소조상이 있다. 사당에서는 반드시 처녀로 장군을 모셨고, 늙어 죽으면 다시 어린 처녀로 택하여 모셔
온 것이 조선초 이후 수백 년을 계승해 왔다고 한다.
도당제날은 최대의 축제날이다. 전국에서 소문난 사당패, 주색패, 제중패, 무녀패가 작패를 이루고
운집하여, 총 열두거리의 도당굿이 3일간에 걸쳐 벌어진다.
기간 중 신처(神妻)가 장군신에 등명(燈明: 神에게 받치는 등불로 神과의 교접을 의미.)을 들고 있는
동안 남녀 혼성으로 광란의 혼무와 끼고 뒹구는 축제가 벌어지는 신나는 날들이었다고 한다.
한국판 ‘리오카니발’은 이미 조선초에 시작되었다.
현재 이 도당굿은 옛날의 신나는 일(?)만 쏙 빼고, 단지 굿 행위만 2011년 황해도 무형문화재 5호
(보유자 서경욱)로 지정되어 ‘최영장군 당굿 보존회’ 주관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제는 도당굿에서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것 외에도 나라의 평안과 국민의 영복, 평화통일의 염원을
기원한단다. ( 경기 양주 장흥 부곡리 646- 37, 청향사 도지암, 031-877-3150)
민초들은 최영장군을 조선 왕조에 저항하는 고려민의 대표 인물로 우상화하였다.
장군은 동주최씨로 개성의 동쪽, 즉 철원을 의미한다. 동주최문은 조선시대 때 큰 인물을 거의 배출
하지 못하고, 겨우 한말에 이르러 육당 최남선님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장군은 그 억울한 죽음 때문에 지금도 무속에서 가장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되어 있다.
특히 장군과 관련이 깊은 중부지방과 제주, 남해안 등 왜구출몰이 잦았던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사당이 지어지고 신앙화 되었다.
이북에 있는 개성 덕물산의 ‘최영 장군사’는 지금 어찌 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남쪽에 있는
장군의 사당 및 관련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국사당 내 최영장군 영정(중요민속자료 17호)
1)인왕산 국사당 -> 서울 종로 무악동 산2- 12.
-> 17점의 무신도 중 최영장군 초상화( 중요민속문화재 28호).
2)최영장군당 -> 경기 양주 장흥리 부곡리 646- 3, 청향사 도지암 (매년 도당굿 24마당)
3)기봉사(奇峰祀) -> 충남 홍성 홍북 대인리 산39- 7 (인근 노은리 남이장군 출생지)
-> 홍성문화제에서 최영 장군 영신제 거행.
4)기봉영당 -> 충북 청주 상당구 외평동 (최영장군 최종 유배지 충주에서 이전)
-> 1854(철종 5년) 문중에서 창건. 관복입은 좌상 영정.
5)무민사(장군당) -> 경남 남해 미조 미조리 539-3, 사항마을 북쪽 100m 지점.
-> 영정 1점. 화상 2점, 위패. 고려 우왕 때 평산포 수군진영 순시 후 방문기록.
6)최영장군 사당(문화재자료 32호) -> 통영시 사량면 금평리 150, 진촌부락 사량도.
-> 이곳 사당은 1385년 왜구가 침입 때 장군이 진을 치고 지휘하였던 곳이다.
7)최영장군 사당(지방기념물 11호) ->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산 155.
-> 상추자도 추자초등학교 북서쪽 벼랑위에 위치하며, 장군의 신위 안치.
->배경: 공민왕(1374년) 때 제주도에 있는 몽고인 목자들의 횡포를 토벌하기 위해 제주를 오가면서
잠시 머물렀다. 이 때 장군은 어망을 만들어 고기잡는법을 가르쳐 주셨다.
8)부산지역 일원 4개소로
◆최영장군 사당 -> 부산 동구 범일동 자성대공원 서쪽에 위치. 영정과 碑.
◆무민사(武愍祀) -> 부산 남구 감만동, 4월에 향사.
◆무민사(武愍祀) -> 부산 수영 수영동 팔도시장 동쪽 마을, 영정과 신위.
-> 본래 강신무녀가 장군을 모셨는데, 사후 주민들이 사당을 세웠다.
◆산제당 사당 및 산제당 아씨당(신선동 산3- 6) -> 영도 봉래산 중턱에 위치.
모두가 장군을 마을수호신으로 모셔 왜구의 침입을 막아 줄 것을 기원한 곳으로 해안지방의 사당들은 왜구토벌의 명장이신 장군의 사당을 지어 환란을 면하려는 수호신적의미가 크다.
-> 기봉사(홍성) 및 기봉영당(청주).
추: < 두나> 에서 남이장군의 야그가 이어집니다...
첫댓글 남이장군님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동영상으로 박신양 주연한
전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신당에 xx
박수무당이 아니고 박수건달..ㅎㅎ
평범한사람이 신을 받을때 ~
누구세요?하고 신어미가 물을때 유난히 장군신이 많이 거론됨을 보았지요~
때론 최영장군 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접신자도 보았구요~
이런 맥락이었군요~~
신기하기도하고 미신 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또하나의 전해내려오는 문화이지 싶네요~~^^
저두 2탄 기대 만땅요~~!!^^♥
두번 째 사진이 어디선가 많이 봤다 했더니 아파트 뒤 인왕산 선바위였네요!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바로 밑에 세번 째 사진인 국사당도 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진 못했습니다. 잠겨있어서..
어릴 적 하도 많이 접해 봐서리,,,,,,,,,,,,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절대로 믿을 건 아니지요.
우리부부 모두 그곳에서 어린 시절 보냈습니다. 우리 '또하나'님 국사당 아랫동네, 옛날 같으면 사하촌정도
될텐데... 그곳 영천에서 자랐고, 저는 옆 마을 향촌동에 살면서 그 동네 '독립문초등학교' 출신이랍니다.
향촌동은 울 학무님 어릴적 동네...
잘 읽고 갑니다...
하긴 중국에도 관우가 민간신앙으로 곳곳에 사당이 있다는...
우리나라에도 동대문 쪽에 사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왕이면 우리 문화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최영 장군이나 남이 장군 같은 우리의 장군들 사당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당...
해박하신 지식이 넘 부럽습니당...
참으로 유익합니당...
우리 역사의 새 지평을 여시고 계시다는...
약한 인간들이 힘쎈 옛날의 장군님들을 의지한다는게 이해가 되네요
왜 늘 무슨장군 장군 써 붙여놓은 작은 점집들이 많은가 했더니 ㅎㅎ
그 옛날 현저동에 있던 저 기자암 선바위가 보고도 그저 무당들의 귀신붙은 바위라고 누군가가 말하길레,
그저 그런가 하곤 더 알라고도 하지않고서리 지금까지 무엇인지 몰라서 그저 ~~~~~~
하나님의 명쾌한 해설을 들으면서리, 하나님의 역사의 깊이에 대한 존경을 더욱더 존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