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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념을 관철하는 용자의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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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妙法)이 바로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큰 배
오늘은 미국SGI 제1회 각부 합동기념연수회다.
지금 내 바람은 광포의 힘 있는 새로운 인재를 많이 육성하자는 것이다. 거듭 훈련을 하고 지도하면 할수록 인재는 잘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합동연수회를 열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광포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 성장할 소중한 분들이다. 아무쪼록 그 사명과 책임을 깊이 자각하기 바란다. 오늘은 내가 생각해 온 일 가운데 일부를 광포의 미래를 짊어진 여러분의 가슴속에 강력히 호소하고자 한다.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일본의 어느 저명한 학자가 오늘 내게 전화를 해왔다.
그 학자는, 나와 ‘미국의 양심’으로 불린 노먼 커즌스 교수가 어제 만나 대담한 내용을 <세이쿄신문>을 보고 알게 된 일본의 우인에게서 들었다.
우인은 커즌스 교수가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다. 죽음과 같은 삶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내 속에서 무언가 죽어서 없어진다. 이것보다 더 두려운 인생의 비극은 없다.”는 말을 듣고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자는 “매우 중요한 대담이었군요.”하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매우 황송하며 기쁘게 생각했다.
이번에 3년 만에 말리브연수원을 방문했다. 이 연수원에서 보면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바다,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 그리고 저녁놀에 물든 바다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연수원에 도착하여 도쿄에서 온 몇 분과 함께 시정(詩情)이 넘치는 말리브해안과 푸르고 아름다운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앞 바다에 배 한 척이 떠 있는데 언뜻 보면 표류하고 있는 듯 보였다.
도쿄에서 온 간부가 “난파선이다.”하고 말했다. 이 지역 미국SGI 간부가 “아닙니다. 저 배는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자세히 알고 보니 미국SGI 간부의 말이 맞았다. 도쿄 간부는 시차 때문에 머리가 몽롱해서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웃음)
역시 ‘미국 일은 미국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며 웃었지만, 우연히 ‘난파선’을 화제로 떠올리며 말리브연수원을 방문한 일도 있고 해서(웃음) 오늘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다’하면, 불법(佛法)에서는 인생을 ‘생사(生死)의 바다’ 즉 ‘괴로움의 바다’에 비유한다. 그리고 ‘생’과 ‘사’라는 준엄한 생명항로를 파도에 휩쓸리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배도 모두 그렇다.
그러면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묘법(妙法)’밖에 없다. 이 영원하고 무한한 대법(大法)인 묘법을 근본으로 믿고 행하며 인생을 산다 – 거기에 ‘영원한 복덕’과 ‘무한하고 절대적인 행복의 궁전’과 같은 생명이 구축된다.
타이타닉호 조난의 불운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는 해난사건으로 유명하다. 그 해난사고는 당시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지금도 여러 가지 행태로 입에 오르내린다.
그 까닭은 타이타닉호가 당시 과학기술의 정수를 모아 만든 ‘불침선(不沈船)’이라고 일컫던 여객선이기 때문이었다. 또, 1500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어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난사고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생사의 위기에 직면한 인간의 마음속 번민과, 구조과정에서 일어난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갈등 등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 사고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법의 눈으로 이러한 ‘생’과 ‘사’의 험난한 인간드라마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1912년 4월 10일 정오, 완전무결하다고 자랑하던 초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영국 사우샘프턴항을 출항했다. 이 배는 같은 날 오후 7시에 프랑스의 셰르부르항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후 9시에 셰르부르항을 떠나 다음 날 11일 오후 12시 반, 아일랜드의 퀸스타운항에 들어왔고, 오후 2시에 퀸스타운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가는 운명의 항해를 시작했다.
참으로 즐겁고 우아한 처녀항해였다. 그러나 북대서양을 3분의 2쯤 지나 뉴펀들랜드섬 앞바다에서(북위 41도 46분, 서경 50도 14분) 빙산과 충돌해 4월 15일 오전 2시 20분 무렵에 승객 약 1500명(여러 설이 있음)과 함께 가라앉고 말았다. 처녀항해를 시작한 지 불과 닷새 만이었다.
타이타닉호는 영국의 화이트스타기선(汽船)회사 소속이었다. 타이타닉호의 크기는 배수량 4만 6329톤, 길이 269미터, 폭 28미터, 배바닥에서 굴뚝까지 높이 52미터, 기관 세개 총 5만마력으로 25노트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이중저(二重底) 구조와 내수격벽 15개 설치해 ‘불침선’이라고 불렀다.
그 때문인지 당시 법률에 따랐다고는 하나 구명보트를 18척만 구비하였는데, 태울 수 있는 인원이 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방심이라고 하면 방심이었다. 이때의 교훈으로 그 후 구명보트의 구비기준은 정원만큼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침몰 원인은 바다 위에 초대형 빙산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큰 빙산은 이 계절에는 드물었다. 빙산과 충돌해 선체에 균열이 생겼거나 구멍이 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딪힌 부위는 자랑하던 방수벽이 도움이 되기에는 위치가 너무 높았고, 그곳부터 침수가 시작되었다.
타이타닉호는 항해를 막 시작한 4월 10일에 생각지 못한 일을 만났다.
요란스런 축제 속에서 사우샘프턴항을 출항했는데, 선창을 떠나자마자 미국의 정기선 뉴욕호와 접촉사고를 낼 뻔했다. 마치 미래의 대참사를 암시하는 듯했다.
사우샘프턴항에서 타이타닉호에 탄 사람들은 상급(일등실, 이등실) 승객뿐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셰르부르항과 아일랜드 퀸스타운항에서 이주자 등 삼등실 승객이 탔다.
승선객 내역을 보면 일등실 승객 322명, 이등실 승객 277명, 삼등실 승객 709명, 승무원 898명으로 합계 2206명이었다.
이 가운데 조난으로 희생당한 사람이 일설에 따르면 1503명이고 생환자는 703명이다. 생환자 중에 승객이 493명(전체 약 40퍼센트)이고 승무원은 210명(전체 약 20퍼센트)으로 일·이등실 승객 중 여성과 유명인 등이 많이 구조되었다. 삼등실 승객은 어린이 76명 중 23명이 구조되었다.
타이타닉호는 당시로써는 사상 최대의 큰 배이고, 세기의 호화여객선이었다. 그래서 나폴레옹 1세의 영화(榮華)를 반영한 듯한 호화침실과 영국왕조풍의 선실에는 수많은 유명인과 부호가 탔다.
그리고 승객들은 침몰 같은 건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빙산에 충돌했을 때도 일·이등실 승객 중에는 사방으로 튄 얼음조각을 위스키에 넣어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인생에는 언제 어떤 운명이 덮쳐올지 모른다. 장수해야 할 인생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산에서 조난을 당하는 등 뜻밖의 죽음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조금 전 연락을 받았는데, 지난달 18일에 도쿄에서 만난 프랑스혁명·인권선언 200주년 기념위원회 바로완 회장이 미국에서 비행기추락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나는 곧바로 추선창제를 했지만, 바로완 회장은 프랑스 재계의 중요한 인물로서 매우 저명한 명사이다. 정말 아까운 분을 잃었다.
바로완 회장은 가장 사랑하는 딸을 지난해 4월 교통사고로 잃었다. 사람의 운명은 정말 알 수 없다. 그 생명의 숙업과 운명을 전환해 생사를 초월한 ‘행복한 인생’을 여는 일이 우리의 신심임을 깊이 명심했으면 한다.
‘무상(無上)의 부(富)’는 내 생명 속에
타이타닉호를 탄 명사나 부호들이 ‘죽음’이라는 준엄한 현실을 앞에 두었을 때 그 부와 명성이 얼마나 힘을 발휘했을까? 물론 현실에서는 조금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작가 월터 로드는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그린 《잊지 못할 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차디찬 4월 밤에 부(富)가 저토록 초라한 의미밖에 지니지 못했다고 한다면, 다른 날에도 그 부는 무엇을 의미할까?”
재산이나 권위 또 사회적 지위는 ‘죽음’이라는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얼마나 허무하고 무력한가. 따라서 그것만을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인생인지를 날카롭게 갈파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럼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영원한 ‘부’는 무엇인가. 그것은 ‘묘법’이라는 불변의 대법이요 신심이다.
이 ‘무상(無上)의 부’를 날마다 자기 생명에 빛내고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 지용(地涌)의 용자(勇者)가 해야 할 사명이다.
이 지극히 높은 사명에 사는 영예와 긍지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은 매서운 추위 속의 사도에서 “일본국에서 제일로 부한 자는 니치렌이로다.”(어서 223쪽) 하고 말씀하셨다. 염불자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추위와 굶주림에 괴로워하는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대성인의 생명에는 무상의 부(富)가 빛나기 때문이었다. 이 준엄한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도 어본존에 창제할 때 부처의 생명과 경지명합(境智冥合)해 무상의 생명을 현현(顯現)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신심하는 우리도 ‘제일로 부한 자’라는 깊은 자각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이 투철한 신심에 서면 한없는 생명력과 창조성이 내면에서 솟아나온다. 그렇지만 아무리 열심히 창제해도 일과 생활을 허술히 한다면 ‘제일의 부’는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신심’ 즉 ‘생활’이고 생명에 풍기는 불멸의 ‘부’는 현실의 생활에 실현되어 빛나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의 신 ‘타이탄’에서 유래한다. 당시 해운·조선의 거인이라고 할 영국이 풍부한 자금과 최고기술을 모아 건조한 배가 타이타닉호다.
그러므로 처녀항해에서 허무하게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타이타닉호는 당시 사회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과학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어느 성직자 그룹은 이 사건은 자만과 만족에서 사람들을 일깨우고 물질적 진보에 대한 과신을 훈계하기 위해 하늘이 준 교훈이라고 역설했다. 몇 가지 불행이 겹쳐 일어난 이 큰 사건은 사회 일반이 ‘기술’에 대해 갖고 있는 깊은 신뢰를 한 순간에 잃게 만들었다.
비극이 비춘 인간의 진실
운명의 그날, 밤 11시 40분에 타이타닉호 정면에 갑자기 거대한 빙산이 나타났다. 당황해서 뱃머리를 왼쪽으로 틀었지만 빙산이 오른쪽 옆구리와 충돌했다. 두꺼운 얼음이 배 앞쪽 갑판에 떨어졌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당시 배에 있던 건조자 토머스 앤드루스는 틀림없이 난파할 것으로 보고 스미스 선장에게 경고했다. 선장은 곧바로 무전실에 구조신호를 타전하라고 명령했다. ‘SOS … SOS’라는 필사적인 구조신호는 이튿날 오전 0시 15분부터 2시 10분까지 이어졌다.
오전 0시 반에는 여자와 어린이를 보트로 옮기라는 명이 떨어졌다. 하얀 구명조끼를 입은 여성과 아이들이 차례차례 보트에 탔다. 선내는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그런 가운데 갑판에서는 악사 여덟 명이 차분한 음률을 연주하고 있었다. 한계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고 진정시키려고 했다. 나는 인간으로서 정말 훌륭한 행동이라고 가슴 깊이 느꼈다.
불안과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따뜻한 희망의 빛을 넓히는 아름다운 울림을 준 용기 있는 이 악사들의 연주는 학회 음악대와 고적대의 사명과 서로 통하는 모습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또 시종일관 용감하게 구출을 지휘한 2등 항해사 라이톨러가 증언했다.
“승객이 냉정함을 잃지 않았고, 승무원들의 규율이 흔들리지 않았던 모습을 지금까지 결코 잊을 수 없다. 대부분 승객이 조용히 구조를 요청했다.”
이 일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의 구원을 보는 듯하다.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피난시킨다 - 이렇게 부녀자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광포지도자도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이다. 특히 광선유포 조직에서는 부인부가 안심하고 온 힘을 다해 마음껏 실천할 수 있도록 장년부와 남자부가 충분히 배려하기 바란다. 부인부는 참으로 순수하고 진지하게 광포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마음에 꼭 새겨두기 바란다.
수많은 명사 승객 중에 광산왕 벤저민 구겐하임이 있었다. 그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구명보트에 타는 사람에게 “만약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아내에게 전해주시오.”라고 전언을 부탁하고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신사답게 죽을 각오입니다.” 하며 이윽고 배와 최후를 함께 했다.
구겐하임은 지위도 있었다. 부와 명예도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것들에 빠지지 않았다.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던져 사람들을 구출했다. 이것이 바로 진실한 용자의 모습이다. 또 십계론(十界論)으로 말하면 보살의 생명이고,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불법의 근본정신과 서로 통하는 모습이다.
아무튼 우리는 묘법을 수지한 신앙자로서 자비의 행동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전 국회의원이며 실업가인 스트라우스 부부가 배에 타고 있었다. 부인은 보트로 옮겨 타려고 했으나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라도 당신이 가는 곳에 함께 가겠습니다.” 하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자신만 피난하려고 했다면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선택을 거부했다. 그리고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남편에게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부부애이다. 나는 타이타닉호의 비극에서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광포라는 미문(未聞)의 대업(大業)을 추진하는 우리도 어떤 운명의 폭풍우를 만날지라도 절대로 배신하지 않고 아름다운 부부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며 함께 광포와 신심에 전진해야 한다.
구명보트에는 노를 저을 남성들도 몇 명씩 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여성과 어린아이를 먼저 태웠다. 남성들은 대부분은 구겐하임이나 스트라우스처럼 자기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고 신사답게 그 방침에 따랐다. 그렇지만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어떻게든 보트에 뛰어올라 살아남으려는 남성들도 있었다.
삼등실 승객인 아일랜드 청년 다니엘 버클리는 여성용 숄에 얼굴을 파묻고 보트에 몰래 탔다. 또 선주(船主)인 화이트스타사의 이즈메이 사장은 충돌 후에 승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구명보트를 지휘했다. 그러나 보트 한 척이 배에서 내려지는 찰나에 몸을 던져 옮겨 탔다.
모두 자기 보신에 급급한 비겁한 모습이었다.
이즈메이 사장은 이 사건 이후 사업에서 물러나 은둔하며 쓸쓸히 살았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신의를 잃고 비겁한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의 인생은 덧없고 비참하다. 그 방정식은 매우 많은 사람의 생애를 지켜본 나의 결론이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일단 정한 신념과 신의의 길을 평생 늠름하게 나아가기 바란다.
타이타닉호 조난을 둘러싸고 이즈메이 사장에 관한 주목할 만한 사실이 또 있다. 그는 사장이라는 직위를 남용해 스미스 선장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 뜻대로 뉴욕으로 가는 항해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이런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타이타닉호는 거대한 빙산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결정할 때는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독단은 집단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이다. 광포의 조직에서도 이 원칙을 절대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이들과는 달리 용감한 사람도 많았다. 에드워드 J. 스미스 선장은 화이트스타기선에서 38년간 근속한 최장수 선장이었다. 선원과 승객 모두에게 존경받았다. 학회로 말하자면 수십년간 착실하고 솔직하게 ‘신심즉생활’을 관철하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지도하고 격려한 선배들과 같은 존재다.
오전 2시 5분, 스미스 선장은 이미 침몰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SOS를 필사적으로 타전하는 무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은 임무를 완수했다.” “여러분도 살길을 찾아라, 여러분을 해임한다.”
선장은 그렇게 말하고 무전사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했다. 그 뒤에 그는 가라앉는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
건조자인 앤드루스 씨는 여성들이 피난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다. 그런 다음 그는 가라앉는 거대한 배의 선미(船尾)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맥 빠진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역시 마지막까지 배에서 떠나지 않고 배와 함께 파도 속으로 가라앉았다.
갑판 위에서는 밴드연주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연주곡은 찬송가 ‘가을’로 바뀌었다. 큰 파도가 갑판을 덮치자 배 후미는 밤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았다.
오전 2시 10분 마지막 무전신호. 선체는 천천히 그리고 급속히 바다 속으로 미끄러지며 잠겨갔다.
최후의 최후까지 연주를 계속한 여덟 명의 악사들. 나는 당당한 용자들의 행동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용감한 사람이 있다. 비겁한 사람이 있다. 비겁한 사람은 인간으로서는 가장 애처로운 사람이다. 앞에서 말한 ‘죽음과 같은 삶’의 처참함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신사는 지위나 모양이 아니다. 일단 유사시에 비겁하고 미련한 행동을 하지 않고 떳떳하게 처신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오전 2시 20분, 세계제일의 거선(巨船)은 마침내 침몰했다.
빙산과 충돌한 뒤 약 2시간 40분이 지나서였다. 바다에 떨어진 사람들은 대부분 영하 3도의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바닷물에 목숨을 잃었다.
한편 구명보트에서도 혼란스럽고 비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보트는 장비나 승객배분도 안 좋았고, 정원을 다 채운 보트는 몇 척에 불과했다. 가까운 곳에는 익사하기 직전인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14호 보트 외의 다른 보트들은 끝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되돌아가지 않았다.
그뿐 아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배를 붙잡지 못하도록 보트 안에서 머리를 때리는 자도 있었다. 어떤 보트에서는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을 때려 바다로 떨어뜨렸다. 또 보트 안에서도 온갖 승강이가 벌어졌다.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현실의 지옥도(地獄圖)라 해도 좋을 광경이었다.
인간의 마음은 무섭다. 생사의 순간에 맞닥뜨리면 한없이 용감해지기도 하지만 추악하고 비겁해지기도 한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의 지옥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그곳에 제목을 부르는 사람이 누군가 있었다면 하고 생각한다. 또 희생자를 위해 추선(追善)을 기원한다.
‘작은 일이 큰일’이라는 교훈
구출상황은 어떠했는가. 영국의 여객선 카르파티아호가 빙산을 뚫고 타이타닉호를 구조하기 위해 달려왔다.
아서 로스트론 선장은 타이타닉호의 SOS를 받자마자 곧바로 비번인 선원까지 모두 소집해 전속력으로 구출하러 갔다. 의사와 식량 그리고 담요를 준비했다. 온 힘을 다해 서둘러 구조준비를 했다.
구출을 시작한 시각은 오전 4시 10분이었다. 모든 보트를 구출하는 데 네시간쯤 걸렸다. 카르파티아호에 탄 승객도 밤새도록 구호에 가담했다.
카르파티아호는 18일 오후 9시 35분에 뉴욕항에 들어왔다. 부둣가는 카르파티아호를 기다리는 3만 명의 사람들로 넘쳐났다. 처음 육지를 밟은 사람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비틀비틀 걷다가 결국 웅크리고 말았다. 이 가슴 아픈 광경을 보던 사람들 속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가 커졌다가 다시 조용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카르파티아호가 구조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다른 배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사고 당시 타이타닉호와 가장 가까이 있는 배는 캘리포니아호였다. 일설에는 16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한편 카르파티아호는 9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카르파티아호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는 캘리포니아호는 왜 구출하러 가지 않았을까? 여기에 중대한 교훈이 감추어져 있다.
캘리포니아호는 타이타닉호가 보낸 필사적인 SOS를 수신하지 못했다. 캘리포니아호 무전사가 근무를 끝내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조난당하던 날 밤, 그가 무전기를 끈 시각은 11시 반이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시각은 불과 10분 후였다.
만약 무전사가 조금만 더 수신 상태를 유지하여 타이타닉호의 조난신호를 받았더라면 참으로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승객 전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캘리포니아호에서는 타이타닉호가 처음 쏘아 올린 조명탄 신호를 많은 사람이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돛대의 등불이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해 타이타닉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지 못했다. 만일을 생각해서 확인해보아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이때 누구라도 연락해서 무사한지 어떤지 확인했다면 큰 참사를 만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늘 말하지만 ‘작은 일이 큰일’이라는 교훈이다.
사람들을 구출한 카르파티아호의 로스트론 선장을 가리켜 “그는 이보다 더는 절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절찬했다. 영예로운 그의 이름은 역사에 오래 새겨져 지금도 광채를 발하고 있다.
이와 달리 캘리포니아호는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후회막급’이다. 구조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에 있었으면서도 조그마한 방심과 착오로 돌이킬 수 없는 참상을 불러왔다. 이 엄격한 역사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주 조그마한 일념의 차질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끝나버린다. 이 방정식은 한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사회나 조직에서도 같다. 준엄한 신심과 광포의 세계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정법을 수지한 우리는 생명의 ‘영원한 승리’를 향해 길을 걷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무상도(無上道)의 인생이다. 만약 보잘것없는 영예나 하찮은 만심, 비겁한 마음에 빠져 신심의 ‘마음’이 분동되어 퇴전한다면 삼세 영원히 괴로워하게 된다. 또 퇴전자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퇴전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금세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순간에 집착해 사로잡히는 것은 무상(無常)한 가제(假諦)의 영역(領域)이다. 허무하게 지나가는 금세(今世)만의 표면적인 현상에 미혹하여 영원불멸의 행복을 여는 ‘신심’을 잃는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도 없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에 담긴 여러 가지 드라마와 교훈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보면 그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삼세영원(三世永遠)’이라는 불법의 생명관에 비추어 그들을 보면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데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눈앞의 ‘죽음’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근본적인 자세와 생명의 ‘아(我)’가 지닌 실상(實相)이 여실하게 떠오른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에서 조난이라는 극한상황이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그대로 삶의 자세를 뚜렷하게 조명했다.
그러나 실은 타이타닉호의 승객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절대적으로 ‘죽음’이 결정된 존재다. 누구나 ‘생사(生死)의 대해(大海)’를 항해해야 한다.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 준엄한 ‘생사의 바다’를 어떻게 무사안온(無事安穩)하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그리고 그 해결의 길을 가르쳐주고 나타내는 것이 바로 묘법이다.
말법의 ‘여도득선(如渡得船)’은 어본존
그런 의미에서 묘법이 ‘생사의 대해’를 건너는 큰 배라는 점을 교시(敎示)한 어서와 경문을 몇 가지 배독하겠다.
법화경 약왕품(藥王品) 제23에는 “여도득선(如渡得船)”(법화경 597쪽)이라는 말씀이 있다. ‘나루터에서 배를 얻듯이’라는 뜻이다.
생사의 괴로움이 가득한 세계인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대해’에 비유하고,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는 배만이 그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른 권경(權經), 외전(外典), 외도(外道)의 작은 배로는 건널 수 없다.
‘야겐타전답서(彌源太殿答書)’에는 묘법에 대해 “어두움에는 등불이 되고 나룻터에서는 배가 되고”(어서 1227쪽)라고 씌어 있다.
또 ‘시지시로전어서(椎地四郎殿御書)’에는 “이 경을 일문일구(一文一句)일지라도 청문(聽聞)하여 혼에 물들인 사람은 생사의 대해를 건널 수 있는 배이니라. (중략) 생사의 대해를 건너는 일은 묘호렌게쿄의 배가 아니면 불가능하니라.”(어서 1448쪽) 하고 씌어 있다.
그리고 ‘시지시로전어서’에는 ‘여도득선’에 관한 구체적인 구절이 있다.
“대저 법화경의 여도득선의 배라고 하는 것은 교주대각세존(敎主大覺世尊)이 교지무변(巧智無邊)의 목공(木工)으로서 사미팔교(四味八敎)의 재목(材木)을 취집(取集)하여 정직사권(正直捨權)으로 깎아서 사정일여(邪正一如)로 잘라 맞추어, 제호일실(醍醐一實)의 못을 딱 박아서 생사의 대해에 밀어 띄우고, 중도일실(中道一實)의 돛대에 계여삼천(界如三千)의 돛을 올리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순풍을 얻어서 이신득입(以信得入)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태우고, 석가여래는 노를 잡고 다보여래는 밧줄을 잡으시면 상행(上行) 등의 사보살(四菩薩)은 함개상응(函蓋相應)하여 세차게 저으시는 바의 배를 여도득선의 배라고 말하느니라.”(어서 1448쪽)
요약하면 여기서 대성인은 석존을 능숙한 지혜를 지닌 ‘목공’에 비유하고, 또 이전(爾前)의 제경(諸經)을 ‘재목’에 비유했다. 그리고 실교(實敎)인 법화경을 재목으로 배를 만드는 ‘못’에 비유했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버리는 일이 ‘정직(正直)’하게 ‘방편(方便)’을 버리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법에서 ‘여도득선’의 배는 어본존을 말한다. 이 배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이신득입의 일체중생’이라고 말씀하신대로 어본존을 믿는 모든 사람이다.
이 묘법이라는 ‘큰 배’에 타면 석가불과 다보불 그리고 사보살을 비롯한 삼세시방(三世十方)의 부처와 보살이 지켜주고,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생사의 대해’를 유유히 즐겁게 건널 수 있다. 어본존 외에 다른 ‘작은 배’로는 결코 성불이라는 피안(彼岸)에 이를 수 없다.
마지막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묘법을 강하게 확신하며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친 불퇴의 실천을 끝까지 관철하기 바란다. 그리고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과 삼세시방의 부처, 보살에게 칭찬받는 영예로운 신심으로 인생을 끝까지 살기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 내가 지도한 내용이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다행이겠다.
마지막으로 미국SGI의 소중한 벗들이 더욱 활약하고, 인생이 영광으로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국광포가 더욱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염원하며 오늘의 스피치를 마친다.
☞ 제1회 미국SGI 각부 합동기념연수회 (1987.2.5 말리브 연수원)
타이타닉호 - 제1회 미국SGI 각부 합동기념연수회 (1987.2.5 말리브 연수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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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되었어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